《녹색평론》 통권 제27호(1996년 3-4월)부터 제46호(1999년 5-6월)에 실린 글 중에서 선별하여 엮은 책이다.
목차
책머리에 / 김종철
1부. ‘자유무역’과 세계의 황폐화
세계무역과 환경 / 에드워드 골드스미스
광우병―산업축산의 폭력성 / 반다나 시바
한 토착민의 자살계획 / 존 바이달
노동운동, 자본, 생태계 / 홀거 하이데
대공황의 불가피성 / 고철기
2부. 위기를 넘어 생명의 부활로
IMF 시대―삶의 위기를 삶의 기회로 / 강수돌
‘세계화’의 타파를 위하여 / 데이비드 코튼
생명을 살리는 농업 / 윤구병
성난 카우보이―축산업자에서 채식주의자로 / 하워드 리먼
‘보살핌의 경제’를 위하여 / 김종철
스와데시―간디의 자립경제 철학 / 사티쉬 쿠마르
경제에 대한 여성주의의 시각 / 캐럴 브루이에
3부. 지역화폐와 공동체 만들기
레츠―상호부양의 교환체계 / 길 세이팡 / 콜린 윌리엄스
탐욕과 ‘희소성’을 넘어서 / 베르나르 리에테르
희망의 도시, 꾸리찌바 / 박용남
공동체의 꿈과 좌절 / 하나후사 료스케
직거래 모임 ‘한울회’ 이야기 / 이덕자
4부. 땅에 뿌리박은 삶과 사상
땅에 뿌리박기 위하여 / 장길섭
나무의 생명과 목수의 지혜 / 니시오카 츠네카츠
삶을 위한 디자인 / 윌리엄 맥도너
이규보의 생태주의 사상 / 박희병
5부. 기술시대의 교육, 영어의 문제
생태공경―생태윤리를 위한 교육 / 정화열 / 피티 정
아이들과 컴퓨터 / 제인 힐리
도르프학교의 아동교육 / 윤선영
영어의 문제 / 김진만
영어 조기교육의 근본 문제 / 김길중
영어회화의 이데올로기 / 더글러스 러미스
6부. 기술에서 연민으로
후손의 처지에서 평가해야 할 생명공학 / 박병상
유전자 침범과 환경윤리 / 미라 퐁
암소―우유생산기계?_유전공학의 생명관 / 크레이그 홀드리지
의학기술―재앙인가 축복인가 / 김진국
사랑의 치유능력 / 장현갑
비폭력주의―연민의 과학 / 마이클 네이글러
안데스 농민의 과학 / 마시 에이브럼슨 스클로브
추천의 말
이 책에 실린 많은 글이 숲의 파괴, 강의 오염, 인간의 동물에 대한 끔찍한 착취 등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괴적 살육 행위’를 고발한다. 그리고 경고한다. 이는 머지않아 인간의 자멸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또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대안적인 미래시스템에 대한 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공한다.
―〈한겨레〉
소개의 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20년이나 30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1991년 환경-생태학에 관련된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국내의 유일한 인문교양잡지로서 출발한 격월간 《녹색평론》의 창간사 첫 구절이다. 유감스럽게도 18년이 흐른 지금, 국내의 환경운동은 전에 없이 활발해졌으나 풀뿌리 민중의 삶은 더없이 황폐해지고 우리의 산하는 여전히 끝없이 유린되고 있다. 지금부터 이십년이나 삼십년 뒤에 이 땅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이번으로 세번째가 되는 녹색평론 선집들은 《녹색평론》의 충실한 성과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이 잡지의 의도와 지향을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어느 정도 예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각도에서 편집되었다. 구체적으로 《녹색평론선집3》은 1996년 봄부터 1999년 여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격월간 《녹색평론》에 실린 글들 중에서 선별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러나, 각 글이 그 시의성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절박함에 있어서 더욱더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이 선집 시리즈는 절판된 지난호를 구해 읽고자 하는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목적에서 처음 구상되었지만, 단행본의 형식으로 출판함으로써 나날이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는 오늘의 사태의 근원을 살피고, 자연과 생명의 질서에 순응하는 새로운 삶의 논리를 책임 있는 태도로 모색하고자 하는 《녹색평론》의 작업을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정당하게 평가받고자 하는 동기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본문 중에서
“영국 사람들은 중앙집권적이고 산업화된, 그리고 기계화된 생산양식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간디는 이런 원칙을 뒤집어서, 탈중심화되고 땅중심의 수공업적인 생산양식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간디 자신의 말로, 필요한 것은 “대량생산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이었다.
대중에 의한 생산이라는 원칙을 채택함으로써, 마을공동체는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일에 존엄성을 회복시켜줄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에는 그 일이 무엇이든지 내재적인 가치가 들어있다. 우리의 일을 기계에 넘겨줄 때 우리는 물질적인 혜택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혜택까지도 잃어버린다. 왜냐하면 손으로 하는 일에는 명상과 자기실현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간디는 이렇게 썼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손을 손으로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은 가장 큰 비극이다. 손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위대한 선물이다. 기계적 방식에 대한 열광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우리가 너무나 무능력하고 약해져서 우리 자신이 신이 우리에게 준 생명의 기계를 사용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 것에 대하여 스스로 저주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수백만 명이 게임이나 스포츠로 자신의 신체를 건전하게 유지할 수는 없다. 대중들은 어째서 쓸모없고 비생산적이며 값비싼 스포츠와 게임을 위해서 쓸모 있고 생산적인 힘든 일들을 포기해야 하는가?”(156쪽)
“우리는 우리의 행성이 공격을 받고 있고, 바다가 죽어가고 있고, 강이 오염되고 있고, 숲이 파괴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끔찍한 착취로 고통당하고 있으며, 매순간 생물종들이 소멸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살육, 이 파괴의 파도를 우리는 어떻게 역전시킬 수 있을까? 이 지상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과 생명형태들을 우리는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우리는 지금 인류와 지구를 괴롭히고 있는 질환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주도적인 세계관은 분열을 조장하고, 전문화를 장려하며,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신의 세계에 대한 관계를 보는 데 있어서 전일적인 견해를 부정하고 있다. 그 세계관은 생명의 신성함이나 살아있는 생태계, 사람들, 그리고 측량하거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세계화 경제’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우리의 어머니 지구 사이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조금도 보지 못한다.”(163~1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