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에 탐닉하면서 쉽게 사서 먹고 입고 쓰고 버린다. 안락한 주거를 위해 거리낌 없이 짓고 부순다. 물질 소비를 통해서 욕망을 실현하는 시대에 자급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자고 나면 새로운 상품들이 넘쳐나고, 화려한 몸짓으로 욕망을 도발한다. 물신의 시장에서 자급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는 소비가 넘쳐나는 도시에 사는 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한살림)를 구성하는 지역 생협 중 한 곳의 이사장으로 일하다가 지난달 임기를 마쳤다. 내가 이곳 해변도시(부산)에 정착한 것은 갓 서른을 넘겼을 때다. 88올림픽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던 그해 가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폐간됐던 신문의 복간에 참여하면서다. 잿빛 콘크리트로 점철된 삭막한 도시가 낯선 땅이어서 더 숨이 막혔다. 한동안 불화했고 밤잠이 불편했다. 소모적 도시생활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럴수록 생태적 삶에 대한 갈망이 컸다. 산야가 펼쳐진 곳에 자리를 잡아 아침저녁 자연 풍광을 마주하고 흙을 밟고 만지며 사는 꿈을 꿨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 삶의 모습이 확연하게 변화했다.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물질적 풍요에 대한 기대와 추구가 거세게 일어났다. 아파트가 보편화되면서 주거생활이 크게 바뀌었고, 식생활 또한 서구화되던 시절이었다. 도시 곳곳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식탁에 육류가 자주 오르고 아이들은 우유병을 물고 자랐다.
고도의 산업화 시대로 들어서면서 소비가 급속하게 확장됐다. 도로는 늘어난 차량으로 곧잘 막히고 자가용을 끌고 출근하는 직장인이 늘어났다. 레저생활이 대중적인 관심사가 되고 주말에 골프장으로 나가는 이가 주변에서 하나둘 생겨났다. 새로운 세기를 코앞에 둔 어느 새해 아침, 나는 망가져가는 지구환경을 위해 내 삶에서 세 가지를 배제하기로 결심했다. 자가용 타지 않기, 골프 안 치기, 휴대전화 쓰지 않기였다. 부끄럽게도 휴대전화 안 쓰기는 그해를 넘기지 못했고, 자가용과 골프를 멀리하겠다는 약속은 여태껏 지키고 있다.
자급에 대한 오래된 기억
나는 무엇이든 알뜰하게 쓰던 촌사람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 마구 써대는 소비에는 동화되지 못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는 것은 도적질이나 마찬가지다. 남의 것을 빼앗는 범죄행위다.” 권정생 선생의 말씀이 늘 뒷덜미를 묵직이 누르고 있다. 무언가를 필요 이상으로 소비할 때는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가끔 가난했지만 정 넘치던 예전을 떠올리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탈자본적 여유를 즐기곤 한다.
오래전에 사과농사를 짓는 친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읍내 버스정류장까지 마중을 나온 친구는 장을 좀 보고 가자고 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벗을 위해 삼겹살 파티를 해야겠다며 정육점으로 향했다. 이어 가까운 농협마트로 가서 상추와 깻잎, 마늘을 샀다. 친구에게 명색이 농사짓는 이가 상추와 깻잎까지 사 먹어서 될 말인가 하며 지청구를 날렸다. 농부가 푸성귀까지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는 모습이 농촌 출신인 내게 낯설었다.
어릴 적 농촌에서는 어지간한 먹을거리는 집 안 마당이나 가까운 텃밭에서 해결했다. 어머니는 뒤꼍에 상추와 열무에서 토란과 도라지까지 키우며, 때맞춰 싱그러운 제철 밥상을 차려내셨다. 어디 먹을거리뿐이었겠는가. 집을 짓거나 옷을 만드는 등 의식주 생활 전반에 걸쳐서 가족이나 마을공동체 안에서 자급했다. 심지어는 침을 놓고 뜸을 뜨는 이까지 있어 마을의원 노릇을 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을 돌봤다.
근대 이후 산업화의 격랑이 농촌에 몰아치면서 농업도 분업화했다. 자급하기보다 사서 쓰는 편이 값이 싼 상황이 만들어졌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게 돈으로 교환하는 상품이 되면서 농촌 역시 효율을 따지게 되지 않았나 싶다. 어느새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돈이 필요한 세상이 돼버렸다. 그래서 돈이 되는 작물로 단일경작을 하면서 소소한 먹을거리를 직접 거두는 게 성가신 일이란 판단이 섰을 것이다.
‘농촌근대화’란 기치 아래 전통적 삶의 모습들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공동체가 무너졌다. 중학교 때 새마을운동이 거센 파도처럼 온 농촌을 휩쓸었다. 마을공동체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당제가 미신이란 오명을 쓴 채 쫓겨났다. 마을마다 경쟁적으로 부역을 하며 길을 넓히고 마을회관을 지었다. 정부에서는 포상으로 시멘트와 밀가루 포대를 뿌렸다.
녹색혁명의 깃발이 나부끼는 가운데 비료와 농약이 농사에 투입됐다. 자연의 순환에 기대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 농법이 밀려났다. 봄마다 산에서 풀짐을 날라 쌓던 두엄더미가 사라졌다. 더이상 거기로 소의 배설물에 범벅이 된 마구간의 깔짚을 내지 않았다. 겨울이 물러난 휑한 들판에 거름을 뿌리던 무명옷 입은 농부들의 모습도 볼 수 없게 됐다.
마을공동체를 지탱하던 부조와 돌봄이 수치로 계량된 채 비교됐다. 품앗이도 남녀노소 노동의 질을 따졌다. 전기가 들어오고 월남전 참전자가 들여온 TV가 마을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영혼을 홀렸다. 바야흐로 소비의 시대가 열렸고, 공동체의 자급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입의 일이다.
당시 농촌공동체는 소농이 중심이었고 마을 단위로 자급이 이루어졌다. 화학 재질의 신발, 옷가지 등 생필품이나 농기구는 농산물을 들고 나가서 오일장에서 바꿔 왔지만, 생활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순환과 공존의 틀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썼다. 사람과 자연의 유기적 연결망 속에서 생태적 순환에 순응했고, 사람과 사람의 호혜적 관계망 속에서 자급을 실현해낸 것이다.
시장 만능 속에서 자급
‘자급’은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을 자기 힘으로 마련해 쓰는 일이란 사전적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 비춰 본다면 우리가 사는 꼴은 자급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모든 것을 시장에서 상품으로 사서 쓰는 우리에게 자급이란 단어는 사전 속에 유폐된 죽은 언어다. “아껴서 자급하자”는 빛바랜 표어 정도의 가물거리는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의식주 생활을 통틀어 우리가 직접 만들어 쓰는 게 무엇이 있을까. 아무리 뜯어봐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오직 외부에서 공급되는 상품에 기대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품을 소비하기 위한 존재, 끊임없이 사고 쓰고 버리면서 생활하는 ‘소비하는 동물’이 돼버렸다.
현대인들은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지 못하면 불안해진다. 구해서 쓴 뒤에도 만족을 모르고 다시 욕망의 갈증에 시달린다. 이처럼 소비를 향한 욕망은 강력한 원동기로 일상에 밀착한 채 우리를 시장으로 줄달음치게 만든다. 도시에서의 삶은 더욱 그렇다. 도시는 소비욕구를 실현하는 데 최적화된 공간이자 소비에 필요한 돈벌이의 공간이기도 하다.
소비의 메커니즘을 한번 들여다보자. 거기엔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외부적 자극, 돈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자본의 논리가 작동한다. 잉여를 통해 확대재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 속성은 필연적으로 과잉생산―과잉소비를 불렀다. 우리의 소비는 그 틀 속에서 감응하고 교화된 채 폭발적으로 질주한다.
오늘 우리에게 자급은 어떤 의미일까. 자본주의체제 아래서 자급한다는 것은 자본의 작동체계에 맞서고 시장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비정한 경제적 가치를 떨쳐내고 공동체적 가치를 앞세워 협동으로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틀을 만드는 게 자급 아닐까. 자급으로 가는 또하나의 길은 물자를 아껴 쓰고 소비를 줄이며 자립의 생활양식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 길은 불편을 감수하는 일로, 자신이 누리고 있는 풍요와 편리를 내려놓는 데에서 시작된다.
자급은 돈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자본의 시스템이 아니라 호혜의 관계 속에서 공동체적 생산양식과 소비양식을 구축할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생협운동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생협의 ‘공동체적 자급’
갈수록 짙어지는 산업문명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대안으로서 생협운동이 태동했다. 국내 생협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 한살림은 1986년 11월 서울에서 자리 튼 한살림농산에서 시작됐다. 쌀과 유정란, 참기름 등 유기농산물을 매개로 도시사람의 밥상을 살리고 농민의 농사 터전을 지키기 위한 직거래운동이다. “생산자는 도시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농촌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구호를 처음 접했을 때 얼마나 가슴 떨리고 벅찼는지 모른다. 폭주하는 물질문명에 맞서 서로 어깨를 내어주는 도농연대, 도시와 농촌이 한 몸인 것을 확인한 아름다운 맹세가 한살림 생협의 초심이자 정서적 바탕이다.
한살림은 상품을 생산 공급하고 유통 소비하는 시장의 논리를 넘어서 호혜적 관계 속에서의 생산―소비 체계를 마련했다. 바로 ‘공동체적 자급’ 아닌가. 조합원의 물품 이용은 물품에 담긴 취지를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물품에 스민 천지자연의 이치와 생산자들의 정성과 땀을 읽고, 고마운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
조합원들은 물품 이용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데, 그 가운데 생산자와 연대감을 높이는 활동이 적잖다. 대표적인 것이 생산지를 찾아 일손을 돕는 일이다. 일손을 보태면서 생산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림살이가 어떤지, 부닥친 현안이 무엇인지 살핀다. 한창 바쁜 농사철 부엌에 수북이 쌓인 설거지거리와 북새통 된 집 안을 보면서 ‘눈코 뜰 새가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또 농민이 얼마나 홀대당하는지, 백척간두의 위기로 내몰린 농업 현실도 알게 된다.
이렇게 생산자들의 처지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그들의 삶이 내 일처럼 받아들여진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농사는 별 탈이 없는지, 혹한 속에서 겨울은 잘 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인다. 지난해 봄 일부 생산지 과수의 꽃눈이 얼어붙었다는 냉해 소식에 조합원들은 발을 동동거렸다. 여름에는 폭우 피해 생산지를 찾아 수마가 할퀸 삶터를 복구하면서 생산자와 아픔을 나눴다.
물품 이용을 넘어서 생산자와 조합원, 조합원과 조합원이 관계 속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함께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이제 조합원은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에서 생태적 공동체적 각성을 통한 자립적 생활인으로 거듭난다. 자립과 협동에 기초한 공동체적 자급은 소비 만능의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는 동력이 될 게 틀림없다.
‘좋은 삶’으로 가는 길
생협 조합원으로 사는 것은 ‘좋은 삶’으로 가는 또하나의 길이다. 물질적으로 많이 갖고 쓰는 것보다 정신적 풍요가 훨씬 더 삶을 윤택하게 하리라 믿는다. 나 또한 공동체적 자급을 실현하는 가운데 소비를 줄이는 질박한 생활로 좋은 삶으로 나아가려 한다.
나이 들수록 영양에 신경 써야 한다지만 우리 집 식탁은 단순 소박하다. 세끼 밥을 집에서 먹는데 밥에다 국과 반찬 두세 가지 정도다. 육식은 한 달에 한두 번 미역국에 들어가는 쇠고기가 전부다. 가족과 함께 하는 외식은 일 년에 손꼽을 정도다. 식탁이 단조로운 만큼 쌀과 잡곡, 달걀과 두부, 콩나물 등 야채를 필요에 맞춰 소비한다.
한살림 조합원들이 대개 그러하듯 밥을 대하는 마음이 각별하다. 밥상에 오른 밥을 보면 그 속에 담긴 자연의 조화로움과 농부의 정성이 느껴진다. 천천히 밥을 씹으면 구수한 밥 냄새와 함께 햇살에 논물이 반짝이고 푸른 벼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논배미가 그려진다. 벌교의 쌀 생산자 선종구 시인의 구릿빛 미소 속에 잘 익은 야성의 시정도 헤아려본다.
병원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평소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몸살림도 한다. 무엇보다도 걷는 일에 집중한다. 행선지가 4km 안쪽의 거리는 걸어 다닌다. 걷는 것은 몸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만 정서적 건강에 보탬이 된다. 목적지를 찾아 나서면 자연스레 골목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새로운 길을 만날 때마다 설렌다. 비가 온 뒤 골목에서 마주치는 삶의 냄새, 해 질 녘 빛살에 부드럽게 드러난 풍광들은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한다.
걷기는 일상에서 빠르게 흘려보냈던 생명과 사물을 만나 귀를 기울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른 봄 골목길 한 귀퉁이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생명이 꼬물꼬물 싹을 틔워 올리는 걸 보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시멘트 길 균열에 생명을 피워낸 작은 꽃을 보면 인고의 기적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사유의 시간을 선사하는 ‘이동의 자급’은 놀라운 선물로 내면의 성숙과 평화로 이어진다.
쌀 한 톨, 천 한 조각, 허드렛물까지 알뜰하게 쓰던 할머니와 어머니가 남겨준 유산은 절약하는 마음이다. 나는 생활 속에 모든 것을 아껴 쓰고, 다시 쓰고, 나눠 쓰려고 애쓴다. 특히 전기와 수돗물을 아끼는 일에 의미를 둔다.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기후위기는 화석연료를 과도하게 사용한 게 원인이고, 위기를 넘는 유일한 해법이 에너지를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집은 1970년대에 지은 슬래브 주택이다. 오래된 주택들이 다 그렇듯이 단열상태가 매우 나쁘다. 한겨울에는 실내 기온이 12~13°C로 떨어진다. 집 안에서도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뜨거운 물을 마시면서 추위를 견딘다.
수돗물도 에너지 덩어리다. 취수에서 정수를 거쳐 가정까지 배수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런데도 물을 틀어놓은 채 설거지를 하고 머리를 감고 샤워하기를 당연시한다. 우리 집은 물을 아끼기 위해 통에다 받아 쓴다. 특히 화장실은 소변을 서너 차례 본 뒤에 물을 내린다. 변기를 한번 비우는 데 10L 정도의 물이 든다는 걸 감안하면 가정에서 가장 효과적 절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생협운동의 한계와 과제
우리 사회에 좋은 영감을 주었던 생협운동도 한계에 직면한 듯 보인다. 그동안 한살림을 비롯한 생협들이 조직의 규모나 사업적으로 엄청나게 존재감을 키웠다. 한살림만 하더라도 조합원 90만 명에 이른다. 조합원이 많다 보니 욕구들이 다양하고 소비자적 성향도 분출한다. 조직 또한 커지면서 효율을 중심으로 체계화되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시장의 논리가 앞서는 일이 생긴다.
최근 한살림은 쌀 적체 문제로 고민이 큰데, 거기엔 생협운동의 한계가 축약돼 있다. 조합원 수는 해마다 늘지만 쌀 소비는 갈수록 급격하게 줄어든다. 밥을 생명의 가치로 바라보고 밥상 살림을 기본으로 하는 한살림에서 쌀 소비의 급감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쌀 소비 감소 속도가 시장보다 훨씬 가파르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걱정이 크다.
약정량에 대해 책임소비를 한다는 한살림의 오랜 전통이 빛바랜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쌀을 시장상품의 하나로 바라보는 조합원의 시선이 도사리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한살림에서 쌀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쌀 소비가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쌀 적체가 한살림의 정수인 밥상이 무너지는 걸 반증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가뜩이나 기후위기로 농사를 걱정하는 판에, 소비 감축으로 생산기반이 무너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지속가능성과도 직결된 문제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도 더 적극적이었으면 한다. 여러 생협이 기후위기 대응을 핵심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조합원들의 생활 속 실천 운동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한살림도 조직 차원에서 온실가스 줄이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성과도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생활운동으로 끌어내는 데는 미흡해 보인다. 행여 조합원들의 불편함을 고려한 눈치보기가 아니었으면 한다.
생협 조합원들의 가족까지 따진다면 전체 국민의 5%를 넘는다. 이들이 대대적인 절전운동을 펼치면 어떨까. 수십만 세대가 동시에 절전에 나서고 그 결과를 집적한다면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나 기업들의 위선적 기후위기 대응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 기후위기의 대응은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것을 넘고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탈핵운동이나 기후위기 대응이나 절전 등 에너지 절감이 전제되지 않으면 공염불 아니겠는가. 여전히 생협운동으로 세상을 바꿀 기회는 남아 있다.
자급으로 가는 길
생협에서 일을 맡으면서 오랫동안 꿈꾸던 귀농의 길이 지체됐다. 이 봄에 도시의 소모적 삶을 뒤로하고 농촌으로 들어가 생태적 삶을 실현하고 싶다. 가능하면 먹을거리를 자급하고, 에너지의 자급도 이뤄보고 싶다. 소음과 불빛, 뉴스가 뜸한 농촌마을에서 서로 돌보며 좋은 삶을 살고 싶다.
이제 죽음을 헤아려야 하는 나이가 됐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요즘의 과제다. ‘좋은 죽음’ 역시 좋은 삶의 결과이고 겸허하게 삶을 마감할 때 가능하다. 생의 말기를 산업화된 의료와 상업적 요양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준비를 하고 싶다. 삶과 죽음이 명멸하는 자연을 마주하고 우주의 섭리에 따라 마지막을 준비한다면 ‘죽음의 자급’을 이루지 않을까.
상품이 철철 넘치지만 내게 주어진 물질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라도 아끼고 절약하는 일이 자급의 길이다. 자급적 생활은 기후변화의 재앙적인 사태, 극단적 이기주의와 승자독식의 무한경쟁, 사회‧경제적 양극화 등 우리가 마주한 복합적 위기를 넘는 해법이기도 하다. 내가 누려온 편리와 풍요를 내려놓고 불편과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공생빈락’, 그 가치를 삶으로 실현하는 자급은 우리의 자존과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