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화 전북민언련 사무처장
윤현식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장
황종규 동양대 교수, 행정학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사회)

2024년 1월 11일, 녹색평론사 자료실

하승수 곧 총선이 다가오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사회나 지역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희망을 품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책이라고 나오는 이야기는 건설사업이나 재개발, 재건축 등 난개발과 관련된 것이 많고, 기후위기 같은 문제는 거대 정당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근본적인 정치개혁, 선거가 아니라 우리 삶에 밀착한 지역과 지방자치에서 대안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흐름들을 소개하고 고민을 나누어보고 싶어서 지역문제에 천착하고 계신 분들을 모셨습니다. 우선 각자 자기소개를 겸해서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을 말씀해주시면 어떨까요. 그 이야기가 현재 한국의 지역 현실과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말해줄 것 같거든요.

손주화 저는 지역에서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을 하고 있어요. 서울민언련은 거의 40년 돼가지만 전북은 올해 24년차인데요, 지역의 언론들이 토호세력과 유착돼 있다 보니까 감시‧견제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고, 전북민언련은 주로 그런 활동에 중심을 두고 있어요. 저는 한 10년 사무처장으로 일해왔는데요, 처음에는 단순히 언론이 보도 가이드라인을 잘 지켰는지 이런 부분에 집중했는데, 그런 작업을 하면서 느끼게 된 점이 몇 가지 있었어요. 저희는 ‘지역의 이중소외 현상 ’이라고 말하는데요, 의제든 정책이든 수도권 중심이고 지방은 소외되고 있다고 항상 한탄하지만, 지역만 놓고 보면 다시 그 안에서 차별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전라북도라면 전주, 군산, 익산 같은 핵심지역 외의 지역에 관한 이야기는 잘 보도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특히 지역방송사는 규모가 작고 취재인력도 신문사보다 적으니까 이중소외 현상이 굉장히 심각합니다. 중요한 현안임에도 인구가 적은 지역이라는 이유로 보도에서 배제되는 현상, 이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지방의 작은 시‧군들은 지역민이 그들의 문제를 공론화해서 논의할 수 없겠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농촌 및 비수도권의 문제, 지역정치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하승수 지방정부 예산 감시나 기업 감시 활동도 하고 계시지요?

손주화 네. 중요한 현안임에도 보도되지 않는 현상은 보통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는데요, 기자들의 역량 부족 때문이거나 이권세력들과 언론이 유착돼 일부러 보도하지 않는 것이죠. 후자는 의도성이 있는 경우인데, 카르텔과의 결탁도 있지만, 전라북도라는 지역이 잘되고 지역 출신 정치인이 잘돼야 지역이 잘살 수 있다는 논리 때문인 경우도 많아요. 특히 신문사를 중심으로 해서 그런 공통의 이해관계 아래 동질화돼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2023년에 전북은 아태마스터스 대회와 새만금 잼버리를 치렀는데요, 두 국제행사 모두 대실패작이었죠. 예산 낭비도 심했지만 이 사안에 대해서 지역신문들은 보도를 기피했어요. 이런 행사 때마다 참여한 인원은 부풀려지고 계획보다 많이 지출된 예산을 무마하기 위해서 실제보다 과대평가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리고 시민들, 시민사회단체가 이런 것을 제대로 감시할 능력이 없거나 그런 활동을 하지 않으면 실패한 행사가 성과로서 평가되고, 이게 또 (지역) 정치인의 업적으로 포장되는 일이 반복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지방정부와 정치인들이 설정해놓은 논리를 우리가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지역시민들이 모여서 예산 감시 활동을 펼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기업의 돈의 흐름을 분석하는 그룹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기업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지역의 이권 카르텔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지역에 사모펀드들이 굉장히 많이 내려와 있거든요. 사모펀드들이 지역의 핵심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지방의 자본탈취도 늘어나고 있지만, 주민들에게 불리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음식폐기물 리사이클링 타운, 이런 곳들에서 예산이 대단히 이상하게 사용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황종규 저는 근거지가 경북입니다. 이른바 ‘TK’이지요. 의성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구에서 학교 다니고 경북 영주에서 직장을 구했어요. 제가 몸담고 있는 동양대 본교는 영주에 있고 캠퍼스를 일부 경기도로 이전시켜 놓았는데, 3년 전에 그리로 발령이 나서 제가 팔자에 없는 서울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처음에는 일종의 반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심오하고 속이 찬 저항의식이 아니라 단순히 비주류라는 의식이었던 것 같아요. 서울 갈 필요 없고 서울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키우면서 지방을 안 떠나고 계속 거기서 살아가다 보니까, 지역의 삶에 천착하게 되고 ‘로컬리스트’로서 사고하게 된 것 같아요. 사회적 양극화 또는 공간적 양극화의 문제가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배경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어린 나이에 대학교수가 되어서 영주로 간 것이 1996년인데,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되고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게 되면서 제도적 부활이 완성되잖아요. 그때 저는 영주 같은 중소도시에서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현실은 달랐죠. 지역사회에서는 행정학 교수를 지역개발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역할로 생각하거든요. 30대 초반의 교수를 끊임없이 불러서 개발계획, 토론회에 참여시키고, 중앙정부를 상대로 하는 논리 개발을 요구하더군요. 제가 영주에 가서 자치가 아니라 지역개발을 했습니다.(웃음)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약이 됐어요. 행정학 교수가 일상적으로 공무원들을 만나고 정부 보고서를 읽게 되는 일은 드문데, 저는 교수생활 초기부터 그런 기회를 잡았으니까요. 그리고 비록 개발을 위한 행정이고 자치가 아닌 관리행정이었지만 초창기 지방자치에 직간접으로 관계하면서 중앙이 아닌 지방의 눈으로 보는 훈련을 하게 되었어요. 중앙정부는 왜 지방의 논리를 거부할까, 라는 시각에서 중앙정부를 대상화한 경험이 지금의 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렇게 2000년 즈음이 되면 공무원들로 (지방자치가)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실제 행정을 근거리에서 겪으면서, 지식인들하고 주민들이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봐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2002년에 (살맛나는 영주를 만드는) 주민자치연대를 출범시켰습니다. 출범선언문에는 서울바라기가 아닌 자발적인 지방주민이라는 지향이 반영됐지요. 이렇게 활동을 시작했는데, 성명서 하나 발표할 때마다 회원 한 명이 줄어들어요.(웃음) 이제 성직자하고 교수 두 명 남았지만 그래도 10여 년 버텼네요.

하승수 의성군에서 하신 활동은 마을만들기였지요?

황종규 그건 최근의 일인데, 2003년경 대구에서 지방분권운동이 시작되는데 제가 원래 교류가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같이 하게 됐어요. 아래로부터의 자치를 골간으로 상향식으로 운영되는 국가, 개인과 작은 생활권의 권리가 작동하는 분권사회를 꿈꾼 것이죠. 보통 ‘대구 경북’이라고 말하는데 대구와 경북은 엄연히 다르죠. ‘대구 경북’이라는 이름으로 대구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지 경북을 위한 활동이 없지 않냐, 이런 이야기를 저는 계속 했어요. 중앙정부를 상대로 ‘지방의 몫’을 요구하는 운동은 작은 공동체나 소지역 단위에서 다시 몫을 배분해야 하는 문제가 되면 소위 거점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위로부터의 자원 배분이 아니라 일상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가는 작은 단위의 자치적 실천이 지역의 지속성에 관건적 요소라는 것이지요. 제가 영국에서 안식년을 마치고 2018년에 귀국해보니 여전히 우리 지방자치운동은 ‘좀더 많은 재원과 권한’ 요구에 집중되어 있더군요. 저는 논쟁을 하는 것보다 사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고향에 가서 제안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의성군마을자치지원센터가 만들어졌어요. 저는 마을만들기 운동이 마을자치로 전환돼야 할 때라고 봤거든요. 2022년 여름까지 마을자치지원센터장을 맡아서, 리 단위 마을자치회를 만드는 활동과 기존의 면 단위 주민자치회를 활성화하는 일을 함께 묶어서 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자치를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깊이 느끼는 경험이 됐지요.

하승수 윤현식 선생님은 진보정당 활동하실 때 제가 뵈었습니다만, 최근 지역정당에 관한 책도 쓰시고 활동하고 계시죠?

윤현식 네, 저는 정당활동을 하면서 정책을 만드는 역할을 주로 해왔어요. 저는 공고를 나와서 공장 다니다가 뒤늦게 대학에 들어갔는데, 당시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던 때입니다. 그래서 지역 청소년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었어요. 지역경제가 활기를 띨 때에는 청소년들도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재밌는 일을 찾을 수 있었는데 지역이 쇠퇴하면서 이 아이들이 오갈 데 없이 무기력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대학생들이 탄광촌 청소년들과 문화활동을 하는 모임이 있는데 저도 거기에 참여하고 있었죠. 한번은 흰 페인트로 칠해진 학교 건물 벽에 영사기를 비춰서 영화를 봤어요. 제 옆에 할머니가 한 분 앉으셨는데, 태어나서 이렇게 큰 화면으로 영화는 처음 본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 말이 제 마음에 세게 박혔고, 학교 졸업하면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후 여러 활동을 하면서, 어떤 분야든 사회적으로 일이 제대로 되려면 제도화해야 한다는 확신이 커졌습니다. 제도화를 위해선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봤고 그래서 정당을 택했어요.
국민승리21 때도 선거운동을 했고, 민주노동당이 창당한 후 입당했어요. 2004년 17대 국회 때 민주노동당에서 10명이 국회의원이 되면서 저도 중앙당 정책위원회에 합류했어요. 당시에는 꿈이 컸어요.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보수 양당의 벽이 너무 강고했어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이 두 세력이 대한민국의 정치적 자원을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죠. 2007년 연말에 민주노동당에서 분란이 일어나고 2008년에 당이 갈리고 이후 이합집산이 있었지만, 결국 진보신당이 만들어지고 통합진보당 만들고 나가고 이런 과정에서 굉장히 회의가 많이 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양당의 벽을 깰 수 있는가? 그런데 양당은 도대체 뭘 가지고 있는가 들여다봤더니, 모든 지역을 가지고 있어요. 보통 민주당이 호남을, 국힘은 영남을 장악하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사실상 대한민국 모든 지역의 패권을 이 두 당이 갖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이들의 힘이 나오는 것이죠. 그럼 진보정당들은 어떤가. 사실 이들만큼 지역과 현장을 강조하는 데도 없는데 정작 지역의 기반은 없었죠. 그래서 전국적 사안에 대해서 좋은 정책을 만들어 봤자 공허하게 흩어져버리는 거예요. 메아리는 현장에서, 지역에서 오거든요.
선거법 얘기도 해야겠는데, 2004년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이 10명 의석을 차지했는데 그중 8명이 비례였어요. 선거제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덕을 봤던 것이죠. 그런데 그게 그때는 득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독이 된 거죠. 2007년에서 2008년이 되면서 그 비례 자리를 누가 가져가느냐를 두고 싸움이 났던 것이니까요. 일정한 민주노동당의 지지율만큼 자리는 분명히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까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이 돼버렸던 겁니다. 정책적 지향을 가지고 토론을 통해서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앞자리 순번을 받을 것이냐의 싸움이 되었다는 거예요. 저는 비례대표제가 진보정당이 이용할 수 있고 활용해야 될 수단이지만 동시에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양날의 무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지역과 현장뿐이라고 봅니다. 바로 그래서 지역정당이 필요한 것이죠.
진보신당, 노동당 거쳐오면서 정당법 개정하자고 제가 계속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지역정당이 우리 지역조직과 경쟁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지역정당은 보수 쪽도 만들 수 있고, 지역 유지들이 더 잘 만들 수 있다” 등의 이유였어요. 저는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라면 이해득실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진보정당의 가치관이고 자부심 아닐까요. 그러니까 저는 전국적 시각을 가지고 활동을 하다가 지역으로 눈을 돌리게 된 셈인데요, 지역정치를 살리고 지역에서부터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야 지금 우리 현실의 걸림돌인 보수 양당체제를 깰 근거가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 10년 넘게 그런 얘기를 해왔네요.

하승수 지역정당 네트워크 활동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분들이 있죠?

윤현식 많이 있죠. 지역정당 네트워크에는 우선 제가 속해 있는 ‘ 노동‧정치‧사람’이라는 단체가 있어요.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2017년 연말인데, 지역정당운동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4~5년 활동을 하고 드디어 2022년 11월에 ‘직접행동영등포당’이라는 지역정당이 창당을 했어요. 한국 정당법상 지역정당은 용인되지 않으니까 선관위에 등록은 못 했습니다. 그 직후 과천시민정치당, 은평민들레당이 창당을 했고요. 노동‧정치‧사람, 직접행동영등포당, 과천시민정치당, 은평민들레당이 같이 만든 게 ‘지역정당 네트워크’인데 지역정당 관련해서 헌법소원 대응 같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2023년 9월 26일에 헌법재판소에서 정당법 헌법소원에 대한 판결이 나왔는데 위헌의견을 낸 재판관이 5명이어서 딱 한 사람 모자라는 바람에 위헌결정을 못 받았어요(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2항에 따라, 위헌결정을 위해서는 6명의 재판관이 위헌으로 판단해야 한다).

하승수 그래도 과반수가 위헌이라고 봤다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것 아닙니까. 2006년에는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이 합헌이라고 봤잖아요. 제 얘기도 해야겠네요. 저는 1996년에 참여연대를 통해서 시민운동에 발을 디뎠는데, 활동을 하면서 붕 떠 있는 느낌이랄까요, 내가 하는 운동과 내 삶이 밀착해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역에서 시민운동에 참여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경기도 과천시에서 공동육아협동조합, 학교운영위원회, 보육조례 주민발의운동, 지역아동센터 설립‧운영, 지역신문 만들기 같은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2006년 지방선거 때에는 시민운동 출신 후보(무소속)와 민주노동당 후보가 과천시의원에 당선되는 데에 힘을 보탰어요. 이후 제주대학에서 4년 동안 교수생활을 했는데, 그때에는 제주지역 시민운동에 관여했어요. 당시에 강정해군기지 문제로 도지사 주민소환도 추진되었고, 특별자치도 출범 등 제주에 현안들이 많았어요. 2011년에는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고 정당활동을 하면서도 지역과 지방자치에 대한 고민은 이어졌습니다. 저도 지역정당 법제화를 녹색당 안팎에서 공론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는데요, 그러다가 충남 홍성으로 귀촌하면서 농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죠. 지금은 농촌‧농민‧농사를 위한 공익법률단체 ‘농본’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어요.
말씀하신 지역 내 이중소외 현상, 차별의 구조가 서울과 지방 사이에, 다시 지역 내에서 재현된다는 것은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는 충남에서도 예전엔 ‘대전 충남’으로 묶어서 얘기했는데 최근에는 대전과 충남이 다르다는 인식이 정착돼가는 것 같습니다. 언론사들은 여전히 다 대전에 있지만요. 대전KBS, 대전MBC가 충남까지 담당하는데 충남이 굉장히 넓잖아요. 그러니까 특히 농촌지역 뉴스는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 보도가 제대로 안되는 것을 저도 보고 있습니다. 대도시 중심 사고방식이 비수도권 안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죠. 저도 시민사회활동이나 정당활동을 해왔지만 지역과 현장에 밀착한 정치에 대해서는 그동안 고민과 노력이 부족했다는 데 공감하고 있습니다.

 

‘지역’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손주화 그건 언론환경 문제와도 연결될 것 같아요. 저는 건강한 지역언론이 존재하지 못하는 현실이 지방자치(민주주의)의 큰 장벽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전북의 경우에는 정당 간 경쟁보다 민주당 내 계파 간의 경쟁이 심각해요. 이낙연이냐 이재명이냐, 이런 식으로 갈라지고 줄서기를 합니다. 민주당 다음으론 정의당이 세력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약화돼 있고 국민의힘이 위세를 회복하고 있는 상황인데, 저도 이렇게 된 큰 이유는 진보정당들이 지역에 밀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역에서 후보자를 내지 못하고 의제를 개발하지 못했죠. 그런데 이건 언론환경하고도 연결돼요. 우선, 이중소외 현상과 관련된 것으로, ‘리포팅 기사’라고 해서 기자가 직접 나와서 설명을 하는 보도방식이 있는데요, 저희가 분기별로 시‧군별 뉴스가 얼마나 나오는지 확인을 했더니, 2023년 3분기 동안 MBC에서 고창은 3개월간 보도가 한 건도 안 나왔고, 부안 1건, 순창 0건, 임실 1건이었어요. 내용적으로도 개발과 행정 이외에 농민, 노동, 여성, 청년, 장애인, 이주민 같은 주제는 아예 다뤄지지 않아요. 이런 이슈를 화두로 삼는 정치인도, 시민사회단체도 없고, 건강한 지역언론이 자리매김하지 못하면서 중요한 현안들이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어요. 그래서 지역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야 양당정치를 깰 수 있다는 말씀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지역의 조건들, 지역언론과 시민사회단체의 현실을 고려할 때 회의가 듭니다.
전라북도에는 16개 일간지가 있는데 대부분 사주가 지역에서 사업을 합니다. 버스업계나 건설업계 사장이고, 자회사들도 지역의 주요한 독점사업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고 지자체 개발사업에 자기들도 개입해서 이권을 취하기 때문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것이죠. 전북에서 두 번째로 큰 신문사인 전북도민일보의 경우에도 사주, 운수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기사가 양산되고 있어요. 신문사를 내세워 정보를 빨리 입수하고 사주의 이익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게 하려는 거예요. 전라북도에 인터넷신문까지 합치면 신문사가 230여 개나 됩니다. 인터넷신문이 자꾸 생겨나고 있는데 이 매체들은 대체로 언론의 감시기능보다 사업자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죠. 기자들도 광고를 확보하는 것이 주요 업무가 되면서 행정을 비판하기보다 보도자료를 홍보하는 역할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저는 지역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이런 언론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승수 언론과 정치와 시민사회운동이 다 맞물려 있는 것이죠. 지역의 언론, 시민사회, 행정 이야기를 했는데, 지방자치 32년이 경과한 지금에도 좀 암울한 상황이라는 진단인 것 같습니다.(웃음) 그래도 전라북도에 좀 독립성이 있는 지역언론들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손주화 저희가 열심히 찾았어요. 지역신문사들이 모두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는데, 지자체에서 나오는 홍보비, 지역 행정기관들의 구독료, 연감 판매, 기사형 광고, 각종 행사들, 보조사업들이 주된 수입원이라는 거예요. 비율로 구독료가 1이라면 나머지 9에서 지자체 광고가 대부분이니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저희가 구독료 등의 수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해서 지자체의 홍보예산에 의존하지 않는 매체들을 찾아봤어요. 그리고 김제시민의신문, 부안독립신문, 진안신문, 이런 곳들을 찾아내서 ‘전북풀뿌리언론운동연대’를 만들었어요. 전북 14개 시‧군 중에서 10개 지역 정도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지역 현안들을 공론화하면서, 2018년쯤부터 지역언론 환경을 개혁하기 위한 기지로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선거 때가 되면 지역 방송사나 신문사들이 주요 도시 중심으로 의제들을 뽑잖아요? 저희는 소외된 지역의 다양한 의제들을 정리해서 도지사, 시장 후보에게 공통 질문지를 보냅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소득 감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산업‧의료 폐기물 문제들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지역민들을 내몰고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답을 요구하고, 교육청에는 인구 감소로 학교가 문 닫는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물었어요. 이런 식으로 지역 현실에 천착한 문제들을 공론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고, 그렇게 해서 지역방송사들에서 시‧군 보도 비중이 조금씩 늘어나는 결과도 얻어냈습니다. KBS 전주총국에는 이들 독립 신문사들과 협업하여 시‧군의 현안을 방송하는 ‘풀뿌리 K’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어요.

 

제주특별자치도의 경험

하승수 소수지만 노력하고 있는 풀뿌리 지역언론들이 있고 더디지만 변화가 아예 없는 건 아니네요. 황종규 교수님께선 최근 제주특별자치도의 기초지방자치단체 부활을 논의하기 위한 일에 관여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얘기 좀 해주시죠. 제주특별자치도는 “연방제 국가의 주(州)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하며 출범했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부가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시행해보는 시험대 비슷하게 시작된 측면도 있지요. 제주 내부에서는 한국 지방자치의 한계를 넘어서보자는 문제의식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황종규 ‘특별자치’는 한마디로 개발을 위한 것이었죠. 중앙정부가 가진 개발 관련 권한을 제주도에 부여함으로써, 말하자면 분권 시범사업을 정부 주도로 추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제주는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기초자치단체를 두지 않도록 되어 있어요. 이것 자체가 반자치(反自治)적인 일이지만 ‘특별한 자치’, ‘분권’이라는 말에 주민들이 현혹된 것이죠. ‘지방분권’은 본질적으로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와 얼마나 나눌 것인가를 뜻하는 행정적 접근입니다. 제주도는 인구 60~70만으로, 규모가 전주시 정도니까 중앙정부 감각으로 그런 곳에 광역과 기초, 중층으로 지자체 구조가 필요한가 하고 생각한 것 같아요. 특히 개발을 위해선 행정효율성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겠지요. 여하튼 주민들 동의하에 4개 시‧군이 없어지고 특별자치도가 되었던 것인데, 애초에 특별한 자치는 난망했던 것이고 결국 모든 결정을 도지사 혼자 한다는 거예요. ‘제왕적 도지사’라는 표현도 나오기 시작했어요. 상실감도 있었어요.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행정시이기 때문에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은 제주도지사가 임명합니다. 제주도가 시민사회 활동과 역량이 강한 데잖아요. 지역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또 지역 엘리트들 입장에서는 시장과 시의원 자리가 없어져버린 데 대한 아쉬움이 결합되어 제주도 자치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2010년 이래 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 문제를 다루어왔고, 이번 신임 민선 8기 도지사가 ‘제주형 기초자치단체’를 만들겠다고 공약으로 내걸었던 거예요.
우선 연구팀이 구성되고 주민 의견을 수렴할 팀이 별도로 만들어졌는데, 제가 참여한 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는 이 두 용역팀의 활동을 관리하고 방향을 잡거나 자문해주는 역할을 했어요. 1년간 주민들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다양한 기획이 있었는데, ‘도민경청회’라는 이름으로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일정을 잡아서 각 읍‧면‧동을 방문해서, 연구팀에서 가져온 내용을 설명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1년간 3단계로 나누어 경청회를 48회 수행했어요. 경청회가 끝나면 무작위 선발된 300명 공론단을 소집해서, 연구된 내용과 경청회의 의견을 제시하였고, 공론단은 그 내용을 가지고 토론한 뒤 질문을 만들고, 질문이 수합되면 다시 토론하고, 또다시 토론하고, 이렇게 해서 하나의 안건에 대한 공론단의 잠정 합의안을 만들었습니다. 동원된 자원과 시간이 엄청났는데, 아쉬운 것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아이디어들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최종적으로 합의된 내용은 무엇이냐.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과 기초자치단체 부활이라는 두 안이 마지막까지 경합했는데, 3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시‧군) 부활로 정리가 됐습니다.
제가 가장 아쉬웠던 것은, 초기에 연구진이 제안한 건 시‧읍‧면을 자치단체 단위로 하는 것이었는데 여론조사에서 탈락된 거예요. 1952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시행된 지방선거는 시‧읍‧면을 단위로 했거든요. 기초자치는 형태도, 범위도 다양하게 제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지금의 방식이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가 도지사에게 권고안을 내면(지난 1월 17일 전달됨) 아마도 국회의원 선거 끝나고 하반기에 기초지방자치단체 부활 등을 다루는 주민투표를 할 것 같아요.

 

중앙집권과 맞물린 개발주의

하승수 제주도가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따라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행착오를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까 ‘자치주의’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대척점에 중앙집권주의가 있다면, 지역 단위 안에서 그것은 개발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특별자치도를 ‘특별개발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제주도에서 있었지만, 이제 강원도와 전라북도도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마찬가지로….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