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왜 정치위기인가
“2050 탄소중립은 무책임한 기후위기 대응 코스프레.” “30년 뒤 넷제로? 우리에겐 죽음뿐.” “우리는 지금 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살고 싶다.”
비폭력 시민불복종 환경운동 네트워크 ‘멸종반란한국’ 소속 청년들이 외친 구호다. 이들은 2020년 11월 19일 아침 일찍 비가 세차게 오는 가운데 자신들의 목을 국회 정문에 자전거 자물쇠로 묶어 놓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발표한 성명서 제목은 ‘한국정부 기후 대응, 금메달 아닌 목메달’이었다.
“당신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협상만 하고 있습니다.” 20살의 캐나다 대학생 안잘리 아파두라이가 2011년 11월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린 유엔 기후정상회의 석상에서 비정부기구를 대표해서 한 말이다. 유엔 기후정상회의는 그녀가 태어난 해인 1992년 브라질의 리우에서 처음 열렸다.
“세계 지도자 여러분, 저는 직업을 위해 연기하지만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타이타닉의 주연 남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2014년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각국의 지도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당신들은 헛된 말로 저의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았습니다.” 16살의 그레타 툰베리가 2019년 9월 23일 뉴욕의 유엔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렇다. 이것이 진실이다. 오늘날 정치는 끝없는 회의와 협상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기득권 엘리트 직업정치가들은 권력을 놓고 다투는 화려한 리얼리티 쇼의 극장정치를 매일같이 미디어를 통해 선보인다. 이런 정치 쇼가 되풀이되는 사이 전 세계 국가와 기업은 점점 더 많은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국가 정치는, 그리고 국제정치는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능력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는 기후위기 해결사가 아니라 기후위기를 증폭시키는 주범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나 정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핵·화석연료 에너지를 폐기하고 해·바람·물 에너지로 급속하게 전환할 수 있는 방안도 이미 다 제시되어 있다. 자본주의 산업화에서 벗어나 공유와 협동의 지역순환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실천도 일부에서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는 중이다.
한마디로 기후위기는 정확히 대의정체제의 한계와 종말을 보여주는 정치위기다.
1992년 리우회의에 참석한 185개국 정부대표단은 역사상 처음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UNFCCC)’을 맺었다. 이 당시 114개국은 대통령과 수상 등 정상들이 직접 참석해서 협약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 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시행령은 무려 5년이 지난 1997년에서야 교토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 교토의정서가 발효된 것은 1992년으로부터 무려 13년이 지난 2005년에 이르러서였다. 미국은 아예 발효되기도 전인 2001년에 탈퇴해버렸다. 교토의정서는 2011년 캐나다, 2012년 일본, 러시아가 탈퇴하면서 아예 무너지고 말았다.
교토의정서가 무력화된 뒤 또 길고 긴 회의 끝에 합의에 도달한 것이 2015년 파리기후협약이다. 교토의정서의 온실가스 감축은 강제성을 띤 의무 조항이었다. 반면 파리협약은 강제 의무 조항을 없애버렸다. 국가별로 알아서 감축하자는 협약이었다. 미국의 트럼프는 이런 파리협약조차 2017년 6월 또다시 탈퇴해버렸다.
1958년 3월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세계 최초로 측정한 이산화탄소 농도는 313ppm이었다. 1992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평균은 357ppm. 산업화 이전 지구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대략 280ppm. 산업화의 엔진에 발동이 걸리고 200여 년 동안 33ppm이 높아졌는데, 관측이 시작되고 리우회의까지 34년 만에 44ppm이 증가했다. 2013년 5월 마침내 마우나로아 이산화탄소 측정값은 400ppm을 넘어섰다. 리우회의로부터 20여 년간 43ppm이 증가한 것이다. 마우나로아 관측소가 발표한 2020년 11월 평균 이산화탄소 측정값은 412.89ppm, 2019년 11월 평균은 410.25ppm이었다(https://esrl.noaa.gov).
1776년 와트의 증기기관이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산업화 시대가 본격화된 이래 250여 년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 국민국가 정치지도자들은 대부분 오직 부국강병의 성장과 개발만을 끊임없이 추구해왔다. 1958년 마우나로아 관측소의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 시작, 1992년의 리우회의, 2005년 교토의정서 발효, 2015년 파리협약 등 일련의 사건이 웅변해주고 있는 사실은 분명하다. 근대 산업화체제는 인간이 만든 최악의 잘못된 체제였다.
성장과 개발은 사람들에게 전무후무한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숨을 쉴 수조차 없는 시꺼먼 스모그와 미세먼지, 거침없이 기록을 경신하는 폭염과 가뭄, 점점 더 거세지는 초초대형 태풍과 장마에 정신 차리고 눈을 떠보니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류 공동의 집을 밑에서부터 갉아먹으며 허물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아들딸들이 써야 할 저금통장을 도둑질해서 모조리 남김없이 인출해 쓰는 약탈경제를 맘몬의 신으로 숭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기후위기와 멸종으로 직진하고 있는 초고속 크루즈선 타이타닉호에 탑승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왜 성장과 개발의 타이타닉호 특등실에 탑승한 정치지도자들이나 기업가들은 항로를 바꿀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일까. 까닭은 지극히 단순하다. 지금의 체제에서 매일매일 돈과 권력을 누리고 있는데 정치경제 체제를 바꿀 이유는 하나도 없다. 재생에너지체제로의 전환도 기득권을 유지하는 선에서만 허용될 뿐이다. 리우회의의 정식 명칭도 유엔환경개발회의였다. 개발과 성장은 근대 국민국가와 기업의 유전자 그 자체다.
때문에 명백히 기후문제는 정치문제다.
지금의 정치경제체제 항로를 180도 바꾸지 않는 한 기후위기는 점점 더 심화될 뿐이며, 엘리트 기득권 국가지도자들과 기업은 파국을 향해 점점 더 가속페달을 밟을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에 속한 20여 개 국가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의 온실가스도 한수원 등 공기업과 포스코 등 민간기업 100여 개가 90% 이상을 배출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기 운항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경제활동 자체가 위축되었음에도 지금 이 순간 온실가스는 끊임없이 대기 중으로 점점 더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이들 기득권 엘리트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하루라도 앞당겨야 할 시급한 기후위기 극복 체제로의 생태적 전환은 지금의 기득권 엘리트 정치체제로는 불가능하다는 냉엄한 현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중이다.
기후위기 극복, 가짜 민주주의 바이러스 면역력 확보부터
우리는 살아남으려면 지금의 정치체제 자체를 밑바닥에서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필요한 일은 코로나바이러스보다도 몇백 배 더 끈질긴 가짜 민주주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가짜 민주주의 바이러스란 민주주의가 아닌 정치체제를 민주주의라고 인민들에게 믿게 만드는 이상한 정치 바이러스다. 이 가짜 민주주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추지 않는 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립은 지체되고 인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삶, 기후위기 극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의정과 선거, 정당정치를 민주주의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괴물 정치 바이러스는 근대 국민국가의 선거제도 정착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서구의 귀족들은 18세기 후반 절대왕정에 대항해 자신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고 권력자가 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수립하고자 했을 때 동원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그들은 그 힘의 원천으로 처음에는 그 당시 막 부상하기 시작하던 부르주아계급, 즉 자본가들을 끌어들였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이윽고는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전체 인민들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인민들에게는 권력을 나누어 주지 않으면서 인민들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방식이 바로 선거였다.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혈연에 의한 세습이 아니라 인민의 동의를 구한 권력자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대의정이다.
물론 귀족들은 처음에는 극소수 제한된 수의 부르주아만을 동의절차에 참여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오직 통치의 대상으로서 권력으로부터 지배를 받기만 하던 노동자와 농민, 여성들에게 선거라는 정치참여의 문이 열렸다는 사실은 신대륙 발견과도 같은 것이었다. 영국의 차티스트운동과 프랑스대혁명을 비롯한 서구의 시민혁명 역사는 1인 군주정과 소수 귀족정의 권력독점에서 정치를 해방하는 투쟁의 역사였다. 그리고 동시에 피지배계급이었던 인민들도 선거라는 동의절차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고자 싸웠던 피의 역사이기도 했다. 서구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참정권이란 당연히 선거 투표권을 의미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선거권은 생명과 같은 귀중한 권리’라고 선언한 프랑스대혁명 당시의 프랑스 인권선언은 이 당시 인민들의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귀족과 자본가들이 선거참여를 철저하게 막았던 노동자들과 여성들의 참정권 투쟁 역사에 대해서는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여성참정권 획득 하나만 보더라도 미국은 1920년, 영국은 1928년, 프랑스는 1944년에 이르러서였다. 심지어 스위스는 1971년에 비로소 여성참정권을 허용했다. 1966년에서야 비로소 모든 주에서 선거권을 얻게 된 미국 흑인보다도 정치에서 배제되어 있었던 것이 스위스 여성들이었다.
초기 대의정 주창자들은 대의정과 민주주의를 전혀 동일시하지 않았다. 이들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극도로 기피하고 경멸했다. 심지어 미국 건국 당시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모욕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러던 이들이 태도를 백팔십도 바꿔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대의정과 선거에 갖다붙여 형용모순의 정치 언어를 만들어낸 것은 그만큼 인민들의 힘이 선거를 통해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노예 소유주였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민주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원칙들을 바꾸느니 검둥이를 문질러 씻어서 하얗게 만드는 일이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자들은 이 나라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할 것입니다.”(이보 모슬리, 〈민중의 이름으로(1)〉, 《녹색평론》 175호)
180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당시 대통령이던 존 애덤스와 부통령이던 토머스 제퍼슨이 격돌한 선거였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미국은 지금의 트럼프 사태처럼 선거인단과 하원이 누구를 대통령으로 정할지를 놓고 끊임없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배제하고 인민들의 권력접근을 원천에서부터 차단하는 복잡한 미국의 간접선거제도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국 선거에서 인민의 표의 등가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상한 선거제도가 아니라면 당연히 제퍼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어야 했다. 제퍼슨은 41,330표를 얻었고 애덤스는 25,952표를 얻었다(이렇게 숫자가 작은 것은 선거권자를 21세 이상 백인 남성, 재산 소유자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합중국 연방을 구성하는 주는 16개였다. 주의 권한을 강조하던 제퍼슨은 연방주의자인 애덤스를 권력에서 아예 배제하고자 미국 최초의 정당인 민주공화당을 창당해서 대통령 후보인 자신과 함께 애런 버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그런데 선거인단 선거 결과 제퍼슨과 에런 버가 각각 73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고 애덤스가 65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인단에서 1위가 대통령이 되고 2위가 부통령이 되어야 하는데 동수가 나와버린 것이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출 권한은 1개 주에서 1표를 행사하는 하원으로 넘어갔다. 1800년 하원선거는 민주공화당이 압승했지만, 대통령 선출 권한은 1798년 선거에서 당선된 하원의원들에게 있었다. 제퍼슨과 버를 놓고 7일간 35번이나 투표를 했는데도 과반을 확보한 후보자가 나오지 않았다. 연방주의자들은 제퍼슨의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버에게 표를 던졌다.
이때 제퍼슨에게 표를 던진 인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다수 인민이 지지한 대통령이 당연히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이다. 자칫 내전으로까지 치달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알렉산더 해밀턴을 필두로 연방주의자들이 제퍼슨에 투표함으로써 마침내 제퍼슨은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미국 정치가들은 인민들의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명을 민주공화당으로 정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미국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대의제 민주주의, 선거민주주의, 선거대의정이란 사기꾼 언어로 포장, 인민들을 호도하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감각기관으로 보고 경험하는 세상만을 세상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이 지구상에 사람의 세상은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020년 12월 현재 사람의 세상은 약 78억 3,000만 개나 된다. 유엔에 가입한 193개 국가 또한 저마다 다른 세상, 다른 정치체제를 갖고 있고 다른 정치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다.
정치란 이런 서로 다른 수많은 세상과 문화, 사상을 조정하고 소통시키면서 사회와 국가를 통치하고 운영하는 어떤 방식이다. 동시에 정치는 말 그대로 공동체와 국가의 항로를 바로잡는 다스림이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지금까지 인민들은 왕정, 귀족정, 참주정, 입헌군주정, 대의정, 민주정 등등 결이 다른 무수한 정치체제를 경험해왔다. 어떤 정치체제도 모두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인민이 어떠한 억압과 착취를 당하지 않으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와 자유의 공간을 가장 폭넓게 확보할 수 있는 체제는 그나마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온갖 약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야말로 인민이 스스로 자신의 사회생활을 결정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체제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자가 통치자이자 피통치자가 되는 독특한 이중 정체성의 정치다. 그리고 이 같은 이중 정체성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주권자들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드는 핵심 동인이다.
하나의 정치체제인 민주정을 이데올로기로까지 격상시켜 민주주의라고 번역해서 사용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밖에 없다. 19세기 말 서구 민주정을 소개하고 번역할 때 한·중·일 3국 지식인들의 왕정에 대한 배격과 인민의 정치에 대한 염원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후위기시대 대의정과 선거는 인민들에게 더이상 호소력 있는 신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낡은 구체제의 감옥이다. 대의정에서 주권자는 결코 권력을 행사하는 통치자가 될 수 없다. 주권자는 그저 관객으로서 구중 궁궐 ‘왕좌의 게임’을 관람하는 극장정치 소비자로만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대의정이란 주권자를 거대한 극장에 가둔 암흑의 리얼리티 정치 쇼다.
새로운 기후 신세계는 아마도 독재와 풀뿌리 민주주의 두 갈래 길이 가장 유력할 것이다. 현명한 독재자가 강력한 권력을 휘둘러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의 국가로 급속하게 전환할 수도 있다. 이런 기후독재정치를 많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주장하는 철인정치는 말이 좋아 철학자 정치지 왕이나 절대자가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꾸는 일은 역사상 부지기수이다. 젊을 때 근본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이 어느 순간 정반대 극단의 태극기 부대원으로 변신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재건 이래 70년이 넘는 동안 우리는 선거와 정당, 대의제가 민주주의라는 괴벨스의 선전선동 같은 세뇌공작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만 했다. 이런 가짜 민주주의 바이러스를 지금도 강력하게 퍼뜨리고 있는 대표 사례가 최장집류의 강단 정치학자들이다. 서구 정치와 정치학을 추종하는 누런 피부 흰 가면의 이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자 기후위기의 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인민들로 하여금 선거와 대의정을 민주주의라고 오해하고 착각하게 만든 원흉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초·중·고와 대학의 교육 현장에서 그렇고 그런 거꾸로 된 정치학을 교육하도록 교과서와 정치학 교재를 편찬하고 가르쳤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이 말도 안되는 가짜 민주주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확보하고 생존을 위해 기득권 엘리트 정치체제를 뒤집어엎을 수 있을까.
지금은 좌우혁명이 아닌 상하혁명의 시대
가짜 민주주의는 기후위기만 심화시킨 것이 아니다. 한국은 물론 서구 유럽과 미국의 대의정은 불평등도 극한까지 확대시켜왔다. 미국은 상위 1,600명이 미국 전체 부의 90%를 소유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그리고 워렌 버핏 3인의 부가 중·하위 1억 3,000만 명의 부와 똑같다(이 숫자는 얼마 전 1억 2,000만 명으로 줄었다, 제프 베조스가 이혼으로 재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억만장자 26명의 재산은 전 세계 하위 인구 절반의 재산과 같다.
한국도 똑같다. 상위 10%가 전체 국민소득의 절반을 가져간다. 상위 10%의 자산은 나머지 90%의 자산 총액보다 더 많다. 하위계층 10%는 자산보다 더 많은 부채에 허덕거리는 부채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국민은 더욱 가난해지는 지옥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과 같은 대의정체제에서 이 같은 불평등은 해결 불가능하다. 청와대와 여의도의 엘리트 대리정치인들이 다름 아닌 기득권 금수저 계급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이들 대부분은 오히려 이 같은 불평등을 법과 제도로 촉진한 공범자들이다. 청와대와 여의도 정치꾼 가운데 지금도 최저임금으로 살고 있는 하위 10% 계급이 있는지 묻고 싶다.
1994년 부자들만 납치해 잔인하게 살인하고 아지트에서 화장한 충격의 지존파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부자들을 증오하고 죽이자는 강령까지 만들었다. 21세기 한국사회는 수많은 지존파가 속출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어 있는 위험천만한 사회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재벌과 언론, 검사와 판사, 여의도 정치인, 관피아 등 대한민국 1% 상류계급의 대를 이은 부와 ‘갑질’은 이미 혁명이 아니고는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지고 있다. 대한항공 일가족의 행패,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손녀의 행패는 빙산의 일각이다.
촛불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는 이미 실망과 분노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기후위기 극복은커녕 청와대고 여의도고 우리는 살고 싶다는 청년들의 절규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가짜 민주주의의 실상을 뼈저리게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거의 없다. 청년들은 취업을 해서 집 한 채 사는 일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하는 3포, 5포 등등의 포기가 일상인 삶을 살고 있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한다는 ‘영끌’이라는 말은 이를 표현한 슬픈 언어다.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절망할 때, 청년이 미래가 없다고 자포자기할 때 혁명은 일어난다. 지금 한국의 절반에 가까운 무주택자들의 골방과 원룸과 지하 단칸방, 공장과 택배회사의 물류센터 등 우리 사회 ‘밑바닥 인생’들이 사는 곳에서는 혁명이 시베리아의 메탄가스처럼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는 중이다
1960년대 비틀즈는 시대를 앞선 문화운동이었다. 비틀즈의 노래는 68혁명의 전주곡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위로와 소통, 평화의 노랫말은 다가오는 청년과 여성, 밑바닥 인민들의 비폭력 민주주의 혁명 전주곡으로도 들린다.
청년과 여성들이 일어서고 있다
한국 인민들은 주권자 통치자로서의 정체성과 능력을 드러내면서 거의 폭발에 가까운 정치혁명을 숱하게 감행해온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집강소 민주주의는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과부의 개가를 허용하고 공사채를 탕감하고 토지를 분배하고 탐관오리를 처단하는 등 폐정 12개조를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 오로지 세금을 쥐어 짜내기 위해 필요도 없는 보를 만들어 과도한 수세를 징수했던 고부군수 조병갑 등 당대 조선왕조 관료들의 가렴주구와는 근본부터 판이하게 달랐다. 주권자 인민의 통치능력을 이보다 생생하게 입증하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일제가 물러간 뒤 권력의 공백상태에서 전국에서 인민 스스로 조직한 좌우합작의 인민위원회 또한 주권자들의 통치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였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저항 공동체의 민주주의와 자치야말로 주권자의 자치와 통치 실천 능력의 전범이었다. 그리고 2016~2017년의 촛불시위는 한국 국민들의 비폭력 평화 행동을 통한 국가통치권의 탈환능력을 유감없이 전 세계에 과시한 혁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유구한 주권자 통치권 행사의 역사를 이어받은 촛불혁명의 완수는 물론 당연히 제7공화국을 열어젖힐 수 있는 국민발의제 개헌이었다. 원천권력의 주체인 주권자에게 국민발의권을 부여하는 것은 촛불정부의 의무이자 권한이었다. 그래야만 기후위기 적응과 극복의 혁명과도 같은 전환이 주권자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해진다. 그래야만 이 지옥 같은 불평등이 주권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래야만 실종된 재벌개혁, 노동개혁, 관피아 척결 등의 과제가 국민 스스로의 토론과 합의와 결정을 통해 가능해진다. 그러나 문 정부는 그런 개헌을 하지 못했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청소년들이 등교거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영국 등의 멸종반란 직접행동은 연행과 구속을 당연하게 감수하면서 도로와 지하철과 의회를 무단 점거하는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가짜 민주주의 바이러스 면역력을 갖추고 대의정의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주권자들이다. 스페인의 포데모스를 비롯한 유럽의 직접민주주의 정치에는 이들이 있다. 미국의 샌더스 현상 밑바닥에도 이 같은 기후위기 직접행동에서부터 풀뿌리 공동체운동, 협동조합운동, 에너지전환운동, 유기농 직거래운동, 원주민운동 등등이 확고부동하게 튼튼한 주춧돌로 자리 잡고 있다.
멸종반란 한국 청년들과 기후비상행동, ‘미투’로 일어선 여성들 또한 새로운 신세계 풀뿌리 기후민주주의 체제를 개척하고 있는 한국의 주권자들이다. 여의도 극장정치와 디지털미디어의 네트워크 정치가 좌우 진보/보수로 확연히 나뉘어 끝나지 않는 지겨운 갈등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때, 기후위기의 정치폭력과 성폭력에 대항해 일어선 이들의 직접행동은 민주주의혁명의 문을 여는 개벽의 행동에 다름 아니다.
기후위기의 해결책은 결국 정치에 있다. 결코 과학기술이 기후위기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모든 기후위기 직접행동의 도착지는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정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후 생존 정치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인민이 멸종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격렬한 신기후체제로의 전환과 이행의 정치투쟁이다.
역설이지만 대의정의 선거는 주권자의 연대연합을 통한 직접민주주의 정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폭넓은 정치무대를 제공해준다. 특히 풀뿌리 지역에서는 합종연횡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다양한 연합정치전략을 지역 실정에 맞게 무궁무진하게 펼칠 수 있다.
1987년 노동자와 농민, 학생, 재야 민주화운동, 야당 정치인 등은 연대연합의 운동정치를 통해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하고 직선제 헌법개정과 함께 6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그 직후 선거정치는 운동정치의 연대연합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에도 이런 풀뿌리 연합정치운동은 늘 정당정치의 선거전략에 따라 되풀이해서 무너졌다. 풀뿌리 민주주의자들이 중앙 정치무대를 중심으로 맴돌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시대 기후정치의 중심은 여의도가 아니라 밑바닥 풀뿌리 지역에 있다. 지역주민들이 기후비상행동에 나설 때 비로소 혁명에 가까운 온실가스 감축은 가능해진다. 주권자인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기후위기 극복의 대안을 실천하면서 연대연합을 통해 지역정치의 권력자가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풀뿌리 기후민주주의 정치혁명의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