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생존경쟁론이 생겨난 이래 문명인의 이상은 ‘자연의 정복’에 있었다. 자연의 정복은 곧 땅의 파괴이다. 땅의 파괴는 곧 우리 자신의 파괴이다. 문명생활이 인간생활의 퇴폐를 초래하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문명생활은 바로 땅에 대한 반역이다.
―石川三四郞《近世土民哲學》(1933년)
지난 3월 중순 모처럼 서울을 방문한 일본의 저명한 작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오다 마코토(小田實) 씨는 어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일본과 한국에서 보수세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닮아가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두 나라의 진보진영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점에서는 너무도 흡사하다”라는 말을 하였다.
일찍이 전후 일본의 지식인으로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그리고 다양한 시민적 권리신장을 위한 싸움에 헌신해온 이 노작가는 오늘날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의 평화구조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심히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 한국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했다. 지배적인 권력구조의 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본과는 대조적으로 ‘민주화 세력’에 의한 정부구성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한국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과 역할에 대해서 그가 품고 있는 기대는 컸다.
그러나 지난 몇년간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참여정부’에 대한 그의 기대는 많은 경우 좌절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미련을 버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최근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된 볼리비아의 모랄레스가 당선자 신분으로 해외 첫 나들이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때 왜 한국정부가 그를 먼저 초청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무척 아쉬워했다. 한국의 ‘진보’ 세력에게 비전이 결여되어 있다는 그의 견해는 이런 아쉬움에도 관계되어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풀뿌리 민중의 위치에서 볼 때,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대통령의 출현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사건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랜 민주화 투쟁의 산물인 ‘참여정부’가 자신의 위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 원주민 대통령의 존재에 각별히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용기도 없었겠지만, 애초에 그 원주민 대통령 당선자를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참여정부’나 그 주변 사람들에게는 진정으로 민중과 함께한다는 자부심도, 이념도, 상상력도 이미 오래 전에 고갈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조나단 파워라는 한 미국의 저널리스트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 임기를 끝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우리들 중의 하나였다. 즉, 60-7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이상주의자였으며, 게다가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몸소 빈곤을 체험했고, 가족적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세상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깊은 욕망이 그에게 있을 것이라고 우리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빌 클린턴의 대통령직 수행 8년간을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그것은 무산된 기회들로 가득찬 풍경이 될 것이다.”(〈보스턴 글로브〉2001년 1월 19일자)
말할 필요도 없이, 빌 클린턴의 경우와 한국의 ‘참여정부’의 사정이 같은 것일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운명의 개선을 위해서나 출범 당시의 ‘참여정부’에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참여정부’의 리더는 종래의 낯익은 권력 엘리트들과는 달리 늘 굴종과 소외를 강요당하며 살아온 민초들의 삶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배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그동안의 ‘참여정부’의 행적을 되돌아보면서, 소중한 기회가 너무도 어이없이 무산되어버렸다는 생각에 깊은 회한(悔恨)에 잠긴 사람들이 드물지 않을 것이다.
회고컨대, ‘참여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이라크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현대사에서 가장 무도한 전쟁범죄의 공범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의 역사학자 개번 매코맥이 어디선가 말하고 있듯이, 한국 대통령 노무현은 부시와 블레어, 그리고 고이즈미와 함께 언젠가 국제 전범재판에 회부될지도 모르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는 개발독재 시대 이래의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환경오염의 관행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새만금이나 핵폐기장 문제 혹은 천성산의 예가 극명히 대변하듯이, 어느모로 보든지 자멸적인 파괴행위에 분명한 ‘국책사업’들을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겨가면서 완강하게 추진해왔다. 그런가 하면 경제 활성화 대책이라면서 내놓는 게 전국에 걸쳐 수백개의 대규모 골프장을, 보조금을 주어가면서,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참여정부’ 최대의 업적이 될 것이라고 자부하는, 행정수도 및 공공기관 이전에 의한 국토의 균형개발이라는 계획도 어이없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제부터 전국 방방곡곡에 걸친 대대적인 환경파괴를 좀더 심화시키겠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계획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가 무엇이건, 아까운 농토가 대규모로 사라지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이제까지 조용하던 시골에서까지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욕심없이 살던 시골 사람들이 순식간에 탐욕에 시달리고 마음이 병들어버린다면 그것은 ‘악마의 계획’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자기 땅에 의지하여 이웃과 더불어 마을을 이루어 살아왔던 평택 대추리의 농민들은 지금 자식보다 더 소중한 땅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주민들과 사전에 아무 상의도 없이 정부가 미군기지 이전용으로 그 땅을 강제 수용해버린 탓이다. 삶터를 빼앗기게 된 농민들의 처지에서 볼 때, 이런 경우 국가란 과연 무엇일까. 근대국가란 본질적으로 폭력에 기초해 있고, 또 폭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권리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권리가 법적·윤리적 테두리를 존중하는 한도 내에서 행사될 때만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보증된다는 것은 기초적인 상식에 속한다. 게다가, ‘참여정부’란 모처럼 이 사회의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할 것을 정치적으로 약속함으로써 성립한 민주정부이다. 그런 정부가 사전 설명도, 동의도 구함이 없이 토지의 강제수용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뜨내기들도 아니고, 오랫동안 뿌리를 박고 살아온 풀뿌리 민중의 소중한 삶터를 박탈하려는 데서 지역 주민들과 이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시골 사람들에게 땅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생계수단의 박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농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 농토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오랜 세월 이웃들과 함께 형성해온 마을생활의 상호부조적, 협동적 관계의 망(網)이다. 삶터란 이런 의미에서의 공동체를 전부 포함하는 것이며, 이 공동체적 관계는 사람의 인간다운 생존에 불가결한 근본 토대이다. 이 토대가 보상금 몇푼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사람살이의 근본이 무엇인지 완전히 망각한 어리석은 생각에서 나온 믿음일 뿐이다.
지금 평택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항운동은 헌법에 보장된 생존권을 지키고, 한번 깨지면 돌이킬 수 없는 자신들의 공동체적 삶을 방어하려는 사람들의 싸움이다. 거기에 대해 ‘국익’을 들먹이며 희생을 강요할 때, 그것을 국가에 의한 부당한 폭력, 혹은 심지어 테러로 받아들이는 현지 주민들의 반응은 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경우 대체 ‘국익’이 과연 누구의, 무엇을 위한 ‘국익’인가라는 좀더 근원적인 물음도 여기에 내포되어 있는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해서, 지금 평택에서 전개되고 있는 저항운동에는 농민들의 소중한 땅이 미국의 새로운 세계제패 전략에 의한 전쟁수행 기지로 전용됨으로써 미구에 동북아시아 지역에 어떤 파국적인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사태에 대한, 평화를 희구하는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불안과 위구심이 표출되고 있다는 측면도 들어있는 것이다. 지금 이 저항운동을 반미운동으로 지목하는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어디까지나 반전평화 운동의 일부라는 것은 사태의 내면을 조금이라도 깊이, 그리고 편견없이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참여정부’에 와서 전쟁 가능성의 위험이 오히려 높아지는 상황이 되고, 이 나라의 환경문제가 더욱 돌이키기 어려운 사태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이러니컬한 것은 출범 초부터 끊임없이 부의 공평한 분배를 말해온 참여정부 하에서 점점더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경제적 정의가 흔들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더 불안하고 고달파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대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증유의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혹은 그렇기 때문에) 전체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어가고, 노동자들과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지위가 나날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한편에선 상상을 초월하는 부동산 및 주식 투기로 떼돈을 버는 불로소득자가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청년실업이 기약없이 증가하고, 현재 취업중인 사람들도 대부분 조만간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나날을 지내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가장 마음 아픈, 그리고 결정적인 실패는 농민·농촌·농업의 전면적 몰락이다. 실패라는 것은 정확한 단어가 아닐지 모른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참여정부’에는 농민과 농촌을 살리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농민·농촌·농업의 몰락이라는 현상은 다른 어떤 것들의 성공으로도 보상받거나 상쇄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것의 죽음을 뜻한다. 흔히 농민·농촌·농업의 쇠퇴라고 하면 곧바로 식량자급이나 식량주권의 문제에 결부하여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볼 때 농사의 문제는 그러한 식량의 안정적 확보문제라는 차원을 떠나서도 진실로 인간다운 삶과 문화의 유지에 중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농(農)의 세계는 인간으로 하여금 늘 자신보다도 더 큰 생존의 근원과 테두리를 의식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이 지상에서 살 수 있게 하는 터전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모든 건강한 지적·윤리적·심미적 사고와 행동의 뿌리를 이루는 종교적 감수성과 덕성이 함양되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를 비롯한 생태적 위기의 현실을 고려할 때, 오늘날 문명사회가 끝없는 생산-유통-소비-폐기라는 지속불가능한 산업적 방식을 벗어나서 농(農)적 순환사회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이 날로 급박해지고 있다는 것은 길게 말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년간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한국사회에서 농사의 가치는 일관되게 무시되어왔고,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저임금 노동력의 공급원으로, 또 산업 생산품의 소비시장으로 마치 내국 식민지처럼 수탈을 당해오면서 경제성장에 절대적 기여를 해온 한국농촌은 이제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WTO에 의한 농산물 시장 개방의 파고가 들이닥치기 전에 이미 벼랑 끝에 다다른 농촌은 이제 그대로 내버려두면 조만간 자연적으로 운명(殞命)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부족하였는지, 지금 ‘참여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철퇴를 꺼내 들고, 비산업적 순환형 농업의 존립근거인 가족 중심 소농과 그 공동체의 사멸을 서둘러 앞당기려 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한미 FTA를 현재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부나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이 협정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의 구체적 실체가 무엇이건, 한국농업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은 별로 숨기지도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기는 막대한 정부보조금을 받고 있는 미국의 농기업이나 대농과의 경쟁에서 한국농업이 제아무리 재간을 부려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만한 일이다. 그런 탓인지, 지금 정부는 농업부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방책을 강구하겠노라고 입으로는 말하고 있지만, 이것이 공허한 허사(虛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요컨대,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위해서는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은 무엇이든 버려도 좋다는 것이 오늘날 관료, 기업, 언론, 대학을 포함한 이 나라 지배 엘리트들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안목으로 볼 때, 농업이란 단순히 산업의 일부일 뿐이며, 따라서 경쟁력이 없다면 농업의 퇴출도 당연한 것이다.
실은, 굳이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의 식탁은 외국농산물에 의해 대부분 점령되어버렸다. 이런 판국에 미국의 농산물이 더 자유롭게 들어와 국내 시장에 범람하게 된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사정은 더 달라질 것이 없을지 모른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한국의 농민과 농촌이야 어떻게 되든 식품의 원산지에 개의치 않고, 그저 값이 싸다면 그것을 사서 먹는 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익숙해져갈 것이다. 식량안보에 대한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 농산물 수입이 불가능한 사태는 쉽게 닥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그것은 미국이 가령 유전자조작 농산물(GMO)에 관해서 논쟁이 없는 유일한 국가일 뿐만 아니라, 교역상대 국가에 광우병 의심이 있는 쇠고기마저 순순히 수입해 줄 것을 강요하는 국가라는 점이다. 무역자유화니 시장개방이니 하는 것을 주장해온 사람들의 논리는 늘 그런 것들을 통하지 않는 한 한국경제와 사회의 ‘선진화’가 요원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선진화’의 결과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이 뿌리로부터 위협받는 사태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면, 그런 ‘선진화’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미국을 포함한 세계 전역에서 종래의 산업적 농업이 갈수록 지속불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석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화학비료와 살충제의 남용으로, 그리고 단작(單作)과 기계화로 인하여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에서만 표토의 3분의 1이 상실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급속도로 농지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두려운 사실이 가리키듯이, 소위 현대식 대규모 산업영농 방식의 장래는 극히 불투명해져 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나아가서, 지금까지 현대농업을 지탱해온 석유가 조만간 생산최대치에 다다를 것이라는 석유자원 분석가들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고가 근년에 들어 점점 강도 높게 들려오고 있는 현상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흔히 오일피크(oil peak)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석유생산 능력의 극점 도달이 현실화되는 순간 그 시각부터 세계 석유가격은 어떻게 폭등할지 예측을 불허할 것이며, 그 결과 에너지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에너지 위기만이 아니다. 현대적 산업활동이 거의 전부 석유를 원료로 하거나 석유에 의존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경제를 포함해서 세계경제의 파국은 필연적인 것이 될지 모른다. 실제로, 1990년을 전후해서 소비에트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해 석유공급이 끊어졌을 때, 북한과 쿠바에 들이닥친 재앙은 결코 고립된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석유의 순조로운 공급에 이상이 생겼을 때 지금까지 석유에 의존해 있던 산업사회들이 어김없이 직면할 상황을 앞질러 예시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그러한 재앙에 직면하여, 북한과 쿠바가 보여준 각기 다른 대응 방식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쿠바는 첫 수년간의 엄청난 간난과 신고(辛苦) 끝에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자연적 농법의 광범한 보급과 실천을 통해서 적어도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성공한 것에 비해서 북한의 경우는 홍수 피해까지 겹쳐 미증유의 기아사태를 면할 수 없었다. 해외로부터의 식량원조에도 불구하고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는 극도의 비참한 상황에 빠진 북한의 경우는 아직까지 식량문제에 관한 이렇다할 해결책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자신이 농업관계 서적을 100여권이나 독파했다고 하는 사실에서도 얼마만큼 짐작할 수 있듯이, 쿠바의 경우 석유대란이 닥치기 이미 훨씬 전부터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적합한 자연적·생태적 농법에 관한 국가적인 관심과 꾸준한 연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랬기 때문에 1990년 이후의 재앙 속에서 온 나라에 걸친 대대적인 유기적 농법으로의 전환이 가능했던 것이다.
쿠바가 국가 전체적으로 유기농업 국가로 전환해온 과정과 그 성공적인 결과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인상적일 뿐만 아니라, 석유소비에 중독되어 있는 산업 문명국가들의 위태로운 미래에 비추어 깊이 경청해야 할 모범적인 선례의 하나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범례가 가능해진 것은 꾸준한 사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장기적인 전망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찰나적 충동과 욕망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체로 미래 세대의 운명에는 아랑곳없이 지금 여기에서의 나 자신의 개인적 욕망의 즉각적인 충족에 골몰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무책임이 일상화된 것은 사람살이의 근본을 묻지는 않고, 우리가 경제인간(homo economicus)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이 밤낮없이 듣고 말하는 것은 경제성장과 경쟁력에 관한 이야기에 국한되어 있고, 우리 각자의 생활은 온통 좀더 많은 소득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배타적인 경쟁에 바쳐져 있다. 그리하여 돈이 되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선(善)이 되고, 그 반대는 무조건 버려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 인간다운 삶의 근본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환대의 정신은 갈수록 퇴화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경제발전 여부가 중요할 뿐 그것이 식민지이건 독재체제이건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식의 경제지상주의적 역사인식이 버젓이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행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근년에 한국 역사학계의 일부에서는 식민지근대화의 논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나타났지만, 그들의 논리를 들어보면 가령 남북전쟁 전 흑인노예의 생활수준이 당시의 북부 백인 노동자들의 생활수준보다 높았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하려고 한 어떤 미국 역사학자들(Robert Fogel 외, Time on the Cross(1974년))에게서 엿보이는 것과 유사한, 기묘한 정신상태가 느껴진다. 식민지시대를 통해서 조선의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식민지가 긍정될 수 있는 가치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흑인노예들이 비록 백인 노동자들보다 덜 일하고, 더 잘 먹고, 이따금씩밖에 회초리질을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리고 노예제 농업시스템이 경제적으로 높은 효율성을 가졌다고 해서, 노예제가 긍정될 수 없는 것과 완전히 같은 이치이다. 물론 이런 학자들이 노골적으로 노예제를 찬미하고, 식민지나 독재체제를 옹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인간적인 체제일망정 거기에 경제적인 효율성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순수한 학문적인 관심의 표명이라고만 하기 어려운, ‘경제인간’으로서의 그들 나름의 약육강식적 인간관이나 정치적 입장이 깊이 개입돼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말해둘 필요가 있는 것은 이들에게는 ‘근대’ 혹은 ‘근대화’라는 것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근대적인 것’은 무조건 긍정해야 하는 정언명령 같은 것인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농사의 중요성을 식량자급이나 식량주권의 문제, 혹은 환경이나 에너지 위기와의 관련에서만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경제인간’으로서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우리가 농사를 옹호하고, 소농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그러한 실리적인 차원에서의 고려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과연 농민·농촌·농업이 몰락해버린 세상이 진실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세상인가 하는 질문이다.
물론 농사가 없는 사회를 상정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짐작컨대 그것은 아마도 거대한 쇼핑몰과 같은 세계일 것이다. 우리가 만약 쇼핑몰 속에서 평생을 산다면 필요한 것은 현금일 뿐, 다른 것들―예컨대 상부상조와 협동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상호관계, 우정과 환대, 사상과 시와 예술은 심히 거추장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쇼핑몰 속의 우리들에게는 우리가 어렸을 때 어머니의 품속에서 그리고 가족과 동네사람들을 통해서 익힌, 풍부한 뉴앙스와 깊은 울림을 가진, 우리들 대부분에게 유일한 시적 언어, 즉 모어(母語)가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건과 서비스를 사고팔며, 단순한 상거래적 접촉을 유지하는 데는 일차원적인 기능적 언어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된 쇼핑몰이라면 여기서는 영어와 같은 소위 국제어가 더 편리할지 모른다. 하지만 돈만 있으면 온갖 물건과 서비스와 안락함을 제공받을 수 있는 이 쇼핑몰 속의 ‘멋진 신세계’가 결국 모든 내면적 깊이를 잃어버린 정신적 불모의 공간이라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쇼핑몰이 오늘날 실제로 평균적인 미국 사람들의 삶에―그리고 아마도 적지않은 한국 사람들의 삶에도―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이 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미국문화의 몰락》이라는 책으로 국내 독서계에도 웬만큼 알려져 있는 미국의 문화사가(文化史家) 모리스 버만은 최근에 다시 내놓은 그의 새로운 저서《암흑시대 아메리카―제국의 최종 국면》(2006년) 속에서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적 이상과 시민적 윤리가 어떻게 쇠퇴하고, 미국인들의 지적·정신적·도덕적 삶이 얼마나 퇴폐적이거나 황폐화되어 있는가를 미국인들의 일상적 생활에 대한 풍부하고 구체적인 분석을 근거로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버만에 의하면, 절제를 모르는 자본주의 소비문화, 기독교 근본주의, 교육의 실패, 분별없는 군사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가 갈수록 창궐하는 상황에서, 미국경제의 붕괴와 미국문명의 쇠퇴는 필연적이며, 이 경향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것은 미국사회는 이미 사람 사이의 최소한의 인간적인 유대마저 끊어진 사회이며, 공동체적 관계는 철저히 사라지고, 원자화된 개인들은 고립 속에서 배타적인 자기이익 외에 아무것도 볼 줄 모르는 사회로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정치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기 인식은 잊혀졌고, 그 대신 철저한 소비자와 고객으로서의 의식만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미국인들에게 쇼핑몰은 가장 중요한 삶의 공간, 즉 성소(聖所)가 되어버린 것이다.
9·11 테러 사태 직후 많은 미국인들이 던졌던 질문은 “그들이 우리를 왜 미워하는가”였다. 그러나 케네스 폴락이라는 중동관계 전문가에 의하면, 그 질문은 다른 나라 사람들, 특히 제3세계 사람들의 생각을 정말로 알고 싶다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 질문은 단지 수사적인 것이었다. 다수 미국인들이 원했던 것은 자신들이 느끼는 분노와 복수심을 정당화시켜줄 논리였을 뿐이다. 버만에 의하면, 부시 대통령은 오늘날 평균적인 미국인들의 멘탈리티를 집약적으로 표상하는 아이콘이다. 그들에게는 만사를 선과 악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잣대로 잴 능력 외에 어떠한 깊이 있는 이해력도 없으며,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설 수 있는 사고력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시를 비롯하여 오늘의 미국인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바로 타자의 내면을 이해하는 감정이입(empathy) 능력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나르시시즘에 갇혀 자신의 것 외에 대한 아무런 호기심도, 타인에 대한 동정적 관심도 잊은 채 오로지 ‘미국식 생활방식’의 고수에 몰입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이드 쿼트브(Sayyid Qutb, 1906-1966)는 일찍이 청년시절의 미국유학을 통해서 미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인종주의와 성적 방종과 극단적인 개인주의 문화에 충격을 받고, 서구적 가치를 철저히 배격하는 급진적 이슬람주의 사상가로 전신한 이집트의 저명한 작가, 지식인이었다. 그의 이슬람주의 운동은 나세르의 정치적 입장과 충돌함으로써 그는 나중에 투옥되고, 드디어는 국가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서 집필한 여러권의 책은 현대 이슬람주의 운동이 발화하는 데 큰 자극제가 되었고, 그런 연유로 9·11 사태 직후〈뉴욕타임스〉는 오사마 빈 라덴의 정신적 스승으로 사이드 쿼트브를 지목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온 세계가 미국이 된다면 그것은 인류 전체에 대재앙이 될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겨놓았다. 물론 우리는 그의 급진적 이슬람주의를 감안하여 이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발언에는 원래의 의도가 무엇이건 깊은 진실이 담겨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모리스 버만은 계속하여, 오늘날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대표적인 미국적 생활방식은 개인마다의 차를 소유·운전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자동차 문화로 가장 잘 대변된다고 말하고 있다. 서부로의 끊임없는 공간이동이 곧 자유로운 삶으로 이해되어온 미국문화의 전통적 모티프에 적합한 뿐만 아니라, 미국인의 개인주의적 감수성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개인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개인 자동차는 미국인들에게 요컨대 자유와 해방의 상징인 셈이다. 전차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은 미국적 가치에 모순된다고 그들은 은연중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만이 지적하듯이, 개인 자동차는 사람들의 생활을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며, 사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어떤 다른 것보다도 크게 공헌하였고, 그 결과 미국인의 시민적 삶과 민주주의, 그리고 도시환경, 나아가서는 지구 생태계에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한 손상을 입히는 괴물이 되었다. 자동차는 절대로 공생공락의 도구가 될 수는 없다. 더욱이 자동차의 석유 의존도를 고려하면, 다가오는 석유위기에 비추어 볼 때, 개인 자동차 중심의 문화란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하는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자동차 문화(car culture)는 곧 전쟁 문화(war culture)인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삶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세계화’의 논리는, 간단히 말하면, 미국식 생활방식의 확산을 선진적인 문명으로 받아들이라는 요구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미국식 개인 자동차 중심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은 다시 물어볼 것도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한 거부의 목소리는 아직까지 이른바 진보세력에게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노동운동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한 채 농민과 농촌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이 나라의 소위 진보세력의 근본적인 한계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농민과 농촌이 소멸될 때, ‘저항’의 마지막 근거지가 사라진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의 공평한 분배나 경제적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다급하고 절실한 것은, 미국식 생활방식 혹은 근대문명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묻고, 그 너머를 내다볼 수 있는 급진적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는 한 우리는 저항한다고 하면서 실은 비인간적 체제의 영구화를 돕는 신민 혹은 노예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개안(開眼) 혹은 회심(回心)이다. [김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