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 오당 지음
녹색평론사, 2011년
폭력적 인간 대 생태적 인간
올해는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운 해가 될 거라고 한다. 인간의 활동이 빚어낸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해 생기는 기후변동이 해가 갈수록 규모의 기록을 깨는 재난을 낳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환경파괴로 인해서 생기는 거라고, 그러니까 지속불가능한, 무분별한 개발주의를 버리고 환경을 보존하면서, 다른 생명과 공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지 수십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지구환경 파괴는 가속화되고 있고, 그로 인한 환경재앙의 규모가 커져가고 있다. 우리 주변만 보더라도 천성산 터널 문제를 놓고 도롱뇽 때문에 사람이 먹고살 일자리를 없애야 한다니 말이 되느냐고 분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띄고, 산림을 파괴하고 화장장을 건설하는 데는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 없이 지자체 단체장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고 있다.
이런 입장의 차이는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환경문제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 사회가 바뀔 거라고 생각했던 환경운동가들에게는 좌절감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변화라고는 오히려 그것을 사업 기회로 삼는 상업주의의 확대일 뿐, 더 많이 차지하고 더 과시하기 위해 파괴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신호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미셀 오당의《농부와 산과의사》는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고자 하는 책이다. 그의 논지는 인간의 범주를 파괴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으로 나누는 데서 출발한다. 파괴적인 인성의 소유자는 생명의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해했다 해도 그것을 외면하고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파괴적 충동으로 인해 습관적인 파괴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생태적 인간은 타고난 생태적 감수성이 있어서 처음에는 잘 모르고 파괴행위에 동참했다 하더라도, 생태계 위기 문제의 본질을 알게 되면 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게 되고 자신의 감각으로 대안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셀 오당은 유기농업을 확대하는 것보다도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보다도 더 시급한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형의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의 이런 생각은 파리 근교의 피티비에(Pithiviers) 병원의 산과의사로서 20년 넘게 일해 오는 가운데 익어왔다. 임상경험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범죄의 증가는 출산관행에 있어서 폭력성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불필요한 폭력성을 배제하고 인간의 생리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하여 산과의사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미셀 오당은 출산과정에서의 폭력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아마 유럽과 미국에서 이 문제에 대한 담론이 어느 정도 진전되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는, 출산의 폭력성이 구미 선진국 수준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가리키는 바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아마 아기를 낳아 본 일이 있는 여성은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나는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한국 여성이 이 주제와 관련된 담론에 접하기만 하면 예외 없이 열띠게 공감하는 모습을 여러번 보아왔다.) 그래서 이해를 돕기 위해 출산에서의 폭력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출산 폭력성의 양상과 그 결과
전통적으로 출산이 가정 내에서 진행되었던 문제인 데 비해, 20세기에 들어서는 가정 밖의 전문적 출산 장소(주로 산과병원)에 가서 돈을 주고 출산을 하게 되며, 이에 관련된 시설이 설립되고 전문인들이 양성되며 필요한 기구와 약제들이 개발, 생산되게 된다. 즉 출산이라는 관행이 산업화되어 버린 것이다. 미셀 오당은 이렇게 산업화된 출산이 과거의 출산형태에 비해 훨씬더 폭력적인 관행으로 변해왔다고 본다. 물론 과거에도 출산관행이 전적으로 비폭력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출산에 있어서의 폭력성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호전적인 사회의 경우 폭력성이 더 강했던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러나 출산과정이 산업화되면서 그 폭력성 수준은 과거 어느 시대, 어느 사회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출산은 아기를 임신한 여성이 그 아기를 낳아 하나의 인간으로 키우는 출발을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생명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필요한 도움을 주고, 태어난 아기와 엄마가 잘 맺어져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아기를 낳아본 경험이 있고, 산모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으며, 생명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많은 여성들, 즉 산파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이런 산파의 영역도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는 직업으로 간주되면서, 출산의 경험도 없고, 따라서 그 과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바 없는, 대부분의 경우 남자인 산과의사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발달과 맞물려 제왕절개술, 흡인술, 분만촉진제, 다양한 합성 호르몬 등 소위 출산 관련 의료기술이 ‘진보’하면서, 기계와 약품, 기타 산업화된 장치에 점점더 의존하게 되어왔다. 그에 따라 출산관행에 있어서 폭력성의 수준은 점점더 높아져 왔다.
산업적 출산에서 폭력은 여러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산모를 위해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의사가 ‘내진’을 하기에 편리하도록 고안되어, 분만시 힘주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산모가 누워있기도 불편한 진찰대 및 분만대, 그 위에 눕혀진 산모에게 수시로 접근하여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불쑥불쑥 ‘내진’하는 의사 및 의사 수련생들의 태도, 소위 ‘산전 관리’에 사용되는 태아 모니터기의 파동이 태아에게 주는 스트레스, 산모의 의향을 묻지도 않고 출산 일정의 일부로 투입되는 진통제, 분만촉진제, 안정제 등 화학약품이 산모의 신체 속에 들어와서 주는 부정적 영향, 산모의 의사나 산모 몸의 상태는 완전히 무시된 채 병원측의 편의와 독단에 의거한 진행, 회음절개, 제왕절개 등의 수술이 산모의 몸에 가하는 폭력, 태어난 아기가 마치 물건처럼 냉혹하게 처리되는 방식, 그러는 동안 망가지는 최초의 모자 관계의 유대, 분만 후 바로 투입되는 약물들이 산모 신체의 자연스러운 진행에 가하는 간섭 등등.
이것은 분명히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하는 산모의 힘들고도 의미 있는 노력을 격려하고 도와주며, 생명이 태어난 이후 산모의 몸이 자연스럽게 회복되고 모자관계가 올바로 정착되도록 도와준다는 목적과는 별 상관이 없는 폭력적인 행태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소위 ‘의학의 진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그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산업적 출산의 임상경험이 충분히 축적되는 20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출산과정에서의 폭력의 결과는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우선 각 지역의 출산관행이 그 지역의 범죄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상파울로, 멕시코시티, 로마, 아테네 등 제왕절개의 비율이 높은 곳에서는 범죄율이 아주 높다. 도쿄, 스톡홀름, 암스테르담처럼 출산시 약품이나 기계, 수술에 의존하는 정도가 비교적 낮은 곳은 대체로 밤에도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다. 또 미성년의 폭력적 범죄, 미성년 자살, 약물중독, 신경성 무식욕증, 자폐증 등의 배경에는 반드시 출생시 무통분만, 제왕절개, 마취제 사용 등의 과정이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합성 옥시토신이나 에피듀랄 마취제를 사용한 산모는 모성애를 일으키는 호르몬 분비의 저하로 자식을 돌보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출산 후 아기를 엄마에게 주지 않고 바로 데려가 버리면 모자관계가 약해지는 경향이 있고, 병실이 너무 밝거나 병실에 있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난산이 되고 모자가 서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이 모든 부정적인 영향은 단순히 임상적인 관찰이나 주먹구구식 추측에 의한 것이 아니다. 미셀 오당은 여기에 대해 최근의 두뇌 과학 및 호르몬 연구들이 밝힌 생리학적 근거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산업영농과 산업출산
미셀 오당은 이렇게 출산 영역에서 진전된 산업화, 그리고 그에 따른 폭력성의 증폭은 일차적인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 및 축산 분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으로 가족 중심으로 해오던 농사일이 화학비료, 농약, 농기계 등에 크게 의존하게 되면서 산업화되는 과정과, 가족 내에서 치르던 출산이 병원을 중심으로 역시 산업화되는 과정을 대조해서 보여준다.
그는 농사와 출산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말한다. 먼저 역사적인 유사성으로, 둘 다 오래 전부터 인간사회 형성의 기초를 이루어온 부분이지만, 이것이 산업화된 것, 즉 영리를 목적으로 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부터였고, 그 이후 폭발적인 발전을 해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또하나의 유사성은, 그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두 영역에서는 새로운 것이 나타날 때마다 열렬히 환영을 받았다는 점이다.
농약과 화학비료의 도움을 받는 ‘과학적 영농’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집단적인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수십억 인구를 지구의 자원으로 먹여살려야 하는데 이제까지의 농업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 맬더스의 우울한 예언이 공감대를 형성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풀을 뽑고 퇴비를 만드는 노동자에 주는 임금이 부담이었던 농가에서는 제초제, 살충제, 살균제, 화학비료로 일과 돈을 훨씬 줄일 수 있었고, 젖소에 투여하는 단백질 보충제, 항생제, 호르몬제로 고기와 우유의 생산량이 대폭 증가했으니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하고 풍부해진 먹을거리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출산관행에서도 새로운 ‘기술의 진보’가 등장할 때마다 열렬하게 환영을 받았다. 큰 병원에서 약물과 기구를 동원하는 출산이 처음 등장하던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기형아 출산이 급증하여 그 가능성에 대한 산모들의 두려움이 컸었고, 따라서 정기적으로 검진하여 안전성 여부를 확인해둘 수 있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의료 중장비를 갖추고 있는 큰 병원에서의 출산 방식이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또한 ‘무통분만’ 등의 이름으로 통증을 전혀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현대의 젊은 여성들이 매료되었다. 합성 호르몬의 개발은 그때그때 안전한 출산, 빠른 회복, 출산 후에도 변치 않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보장해줄 수 있는 것처럼 선전되었고, 역시 ‘소비자’들에 의해 열렬히 환영을 받았다.
이런 유사점보다 더 근본적인 공통점으로서 산업영농과 산업출산을 그 이전 시대까지의 관행과 구별 짓는 주요한 특징은 ‘폭력성’이다.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을 기초로 하는 산업영농의 문제는 우리사회에도 이제 잘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이 관행의 폭력성은 생태계 파괴, 농사짓는 사람들의 생명 파괴에서부터 그를 통해 생산된 먹을거리를 섭취한 사람들의 생명 파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먹을거리에 자신의 삶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신체에도 독성 수준이 높지만, 성격적으로도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경향이 강하다.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교도소 재소 청소년을 대상으로 유기농 먹을거리를 공급한 실험 결과 소내 범죄 발생률을 반 이상 줄인 것이 보고되는 등, 산업영농의 생산물이 지닌 폭력성이 사회의 폭력성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밝힌 연구가 다수 행해졌다. 산업화 출산과정의 폭력성 및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중요 정책결정자들이나 대중들이 이런 관련성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범죄율, 특히 청소년 범죄율의 증가가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라들일수록 출산에의 폭력적 의료 개입의 정도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출산에서의 폭력성과 이후 나타나는 폭력성의 인과관계는 본격적으로 탐구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미셀 오당은 묻는다. 이런 사실들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지금의 잘못된 관행이 고쳐지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큰 재앙을 기다려야 하는가? 마치 잘못된 축산관행으로 인해 광우병과 구제역이 세계에 만연한 후 사람들이 올바른 먹을거리 생산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기 시작했듯이, 잘못된 출산관행에 대해 사람들이 올바로 인식하기 시작하려면 얼마나 더 큰 재앙을 겪어야 하는가?
“출산을 치유함으로써 지구를 치유하자”
출산과정에서의 폭력성이 사회의 폭력성으로 귀결된다는 지적을 한 것은 미셀 오당이 처음이 아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미국의 문화인류학에서 유행했던 ‘인성론’은 각 사회에서 아기를 낳고 기르는 방식이 그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인성의 형성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상세하고 광범위한 연구 성과를 낳았다. 그 이후에도 빌헬름 라이히, 프레데릭 르보이에를 비롯한 선구자들의 통찰이 있었다. 최근에는 존 로빈스가《우리 건강 되찾기》라는 책에서 미국에서 성행하는 출산관행의 폭력성이 어떻게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고 모자관계를 망치는가 하는 것을 특유의 날카로운 유머 감각과 더불어 폭로한 바 있다.
그러나 문화분석가로서 미셀 오당의 뛰어난 점은 단순히 출산관행의 폭력성이 사회에 미치는 관계를 밝혀내는 데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런 관계 양상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현재 인류의 문제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통찰한 데 있다. 즉 인간 행동의 기본적 패러다임이 ‘자연의 지배’였을 때는 지배적이며 폭력적인 인성이 촉구되고 선택되었으나, 이제 ‘자연과의 공존’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에서는 자연을 잘 이해하고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생태적인 인성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약 1만년 전 농업과 가축 사육이 이 지상의 지배적인 생산형태가 되면서 인간은 미셀 오당의 표현을 빌자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즉 자연을 지배하는 것을 기본적인 생존전략으로 삼았다. (미셀 오당은 자세한 부연 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자연을 지배하는 전략은 파괴 일로를 달려 결국에는 자멸의 길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뜻에서 ‘막다른 골목’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자연의 지배는 재산의 개념을 형성했고, 이후 갈등의 주요원인을 낳았다. 갈등은 전쟁이 되고 그것이 인간집단들의 관계에서 가장 흔한 것이 되었다. 이런 전쟁에 알맞은 인간을 형성하기 위해서 출산을 폭력적으로 통제하게 된 것이다. 즉, 더 공격적이고 더 생명을 잘 파괴하는 인간이 성공적인 개체로서 선택되어 온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런 선택의 열매들이다. 이것이 사랑의 능력이 손상된 분명한 표시를 알아보고 그것에 대한 조처를 취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부족한 이유이며, 우리가 쉽사리 그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라고 미셀 오당은 말한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산업화된 출산 문화 속에서 일층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출산을 치유함으로써 지구를 치유하자”―이것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며, 그가 해온 모든 연구의 결론을 담은 슬로건이다. 그는 이렇게 출산을 치유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현재 상태에서 가능한 방법, 앞으로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방향으로 나누어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비폭력적이며 인간의 생리에 순응하는 방법으로 태어난 새로운 세대에게 20세기가 남긴 빚인 지속가능성 문제를 제대로 교육해야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본다. 여기서 미셀 오당의 탁월한 행동가로서의 측면이 드러난다. 이런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제안은, 오랜 산과의사로서의 경험을 통해 출산의 폭력성 문제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하더라도, 아마도 상당히 컸을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해가면서 실제로 대안을 실천해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이런 탁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 두 아이를 낳아서 성년이 되도록 키워온 어머니로서, 또한 출산의 문제점을 고민해온 사람으로서 나의 입장에서 볼 때 역시 이 책은 제1세계 남성 의사의 입장에서 쓴 책이다. 그런 입장으로 인해 그의 분석에는 현대의 출산관행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몇가지 중요한 논점들이 빠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첫째, 제3세계 의료의 종속적 구조, 둘째, 출산을 비롯한 생명과 관계된 일에서 보여왔던 성적 분업, 셋째, 이익집단으로서의 산과의사들 및 관련 집단의 행적 등이다. 이로 인해 이 책은 산업출산의 폭력적 특성에 대한 분석으로서 어느 정도 한계를 지니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이 중 뒤의 두 논점에 대해서는 미셀 오당도 어느 정도 인식하거나,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말하는 듯한 부분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첫번째 논점에 대해서는 거의 감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알아도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위 세 논점을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첫째는 의료체계의 종속구조로 인해 선진국에서는 여론이 조심스러워 남용하지 못하거나, 시행해본 결과 잘못된 것으로 비판받아 인기를 잃어가는 폭력적 의료시술이 보다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약한 국가들에 강매되고 있다는 것(이 강매의 품목에는 약품, 기계기구뿐 아니라 정보, 제도, 그리고 이데올로기도 포함된다), 이런 구조가 후진국에서 더욱 폭력적인 산과시술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조건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인류 진화의 오랜 역사 속에서 산파술을 비롯해서 생명과 건강을 살리는 일은 여성들이 담당해오는 한편 남성들의 생명에 대한 태도는 주로 전투 속에서 발휘되는 폭력․파괴․지배로 특징지어져 왔기 때문에, 남성인 의사들이 주축이 되면서 출산관행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셋째, 현재의 폭력적인 출산관행이 가장 과학적이며 안전하고 절대적인 방법인 것처럼 인식되게 된 것은 출산 영역도 소득 확보를 위한 직업 영역으로 간주한 산과의사들이 전통적인 조산술을 ‘더럽고 무지몽매한’ 것으로 몰아 산파들의 존재를 강제적․폭력적으로 파괴해오면서 대중들에게 주입한 이데올로기 조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료계의 종속 구조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놓여져 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인가가 보이게 된다. 미셀 오당이 거론한 대부분의 예들보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일층 심각하다고 봐야 한다. 아마 그 자신도 어느 정도 이 점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농부와 산과의사》에 나오는 구절을 그대로 옮겨본다. “한국에서 조산원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고(미셀 오당에게 있어서 조산원에 의한 출산은 폭력적이지 않고 생명의 원리를 따르는 출산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고도의 의료장비가 갖춰진 환경에서 아기를 낳으며 제왕절개의 비율은 40% 정도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미셀 오당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그가 제왕절개 수술의 종주국으로서 지목하는 미국의 경우 제왕절개의 비율이 전체 출산의 20% 미만이다.) 임신 건당 초음파 스캔 횟수가 세계 기록을 넘는다…” 프랑스 사람 특유의 절제된 우회적인 표현이 주된 문체인 이 책 전체에서, 부정적인 측면에 관해서 이 정도로 자세한 수치가 제시된 사회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폭력적인 출산 상황에 받은 충격이 잠재의식 속에서나마 강하게 작용해서가 아니었을까?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에게는 불과 이삼십년 전만 돌아보아도 거기서 끊어진 길의 흔적을 찾기 쉽다는 이점이 있다. 미셀 오당이 생태적 인간의 기원으로서 예시한 출산관행 중에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만이 함께 해주는 따뜻하고 어둑어둑한 환경에서의 출산, 출산시 외부인들의 접근 통제, 몇년이고 아기가 원하는 한에는 자연스럽게 젖을 주는 수유문화, 엄마와 아기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생활방식’ 등이 있다. 친정집에 가서 따뜻한 온돌방에서 아기를 낳으며,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치고, 자연스럽게 젖을 떼며, 모자가 한 이불에서 자는 모습은 바로 얼마 전까지도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이런 바람직한 관행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 문화, 그 문화 형성 과정에 작용한 특정 이익집단의 본 모습을 바로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에, 유전자 정보 속에 남아있는 출산관행의 바람직한 측면을 현대 생활구조 속에 되살려내기까지 성공한다면, 우리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생태적 인간의 탄생’을 준비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