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했다! 한국이 패소할 경우, 수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보상해야 한다. 론스타는 한국 땅에서 사업활동을 해서 막대한 소득을 내긴 했지만 거기에 한국정부가 과세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또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었는데 그걸 놓친 데는 한국정부의 책임이 있으므로 보상하라고 한다. 어떻게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 책은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한미FTA가 무엇인지, 그 핵심만을 간략히 간추렸다. 송기호 변호사의 전작 《한미FTA 핸드북―공무원을 위한 한미FTA 협정문 해설》이 한미FTA 협정의 세부내용을 꼼꼼히 살핌으로써 앞으로 도래할 미래를 예측하였다면, 이번 책은 한미FTA가 발효된 오늘의 현실에 맞추어, 실제 사례들을 갖고 이야기한다.
광우병 위생검역처럼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취하는 기본적인 조치와 정책들, 수도, 전기, 우편, 철도 같은 공공서비스, 국민건강보험 등이 모조리 글로벌 금융자본 투기꾼들의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서 폐기 혹은 결박되는 믿기 어려운 현실을 독자는 보게 된다.
더불어 이 책은 ‘경제민주화’를 이 땅에서 이루기 위한 주목할 만한 방책들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미FTA 재협상의 나침반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목차
개정판에 붙여
일본어판 서문
초판 서문
제1부 잘못된 선택
1. ‘비전 2030’의 진단
2. 미국식 질서를 이식하는 장치
3. 외환위기와 투기자본
4. 무소불위의 국제금융회사
제2부 ‘투자자 국제중재 제소권’ 폐지
1. 공공서비스 지키기
2. 사법주권 확립하기
3. 투자자에게만 주어진 특권
4. 투자위험은 투자자가 지게 하기
5. 한미FTA와 공정한 국제질서
제3부 ‘간접수용’ 폐지
1. 간접수용 현금 시가 보상이란
2. 공격받는 토지공개념
3. 공익과 정책주권 지키기
제4부 ‘규제 완화’ 폐지
1. 국민건강보험 지키기
2. 농업 회생을 위한 3대 조치
마치며 | 조화로운 욕망을 위하여
주석
초판 저자 후기
초판 감사의 말
한미FTA 협정문 11장 공식 한글본
판사들이 대법원장에게 보낸 건의문
국회의 한미FTA 재협상 촉구 결의안
용어 색인
국제중재 판례 색인
소개의 말
지난 11월 ‘론스타’는 예고했던 대로 한국을 국재중재에 회부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한국이 패소할 경우 보상해야 할 금액은 수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한국 땅에서 사업활동을 하여 막대한 돈을 벌고도 한국에 세금 한푼 내기는커녕, 더더욱 큰 이윤을 낼 수 있었는데 한국정부가 훼방해서 이익을 놓쳤으니 그걸 보상하라는 이 미국회사의 요구에 공분을 느끼지 않을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부내용을 따지기 전에, 우선 어떻게 일개 회사가 한 나라를 국제중재에 회부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답은 한미FTA에 있다. 한미FTA에 그 근거가 있다.
한미FTA의 본질은 한마디로 글로벌 금융자본에게 국경을 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는 것이다. 글로벌 자본이 좀더 활개치며 이윤추구에 나설 수 있도록 법을 만든 것이다. 개인의 재산권을 최우선시하는 문화, 국가의 공공정책이라는 최소한의 울타리도 없이 저마다 각개약진해야 하는 사회, 1%의 파이를 더 키우기 위해 필연적으로 99%는 더더욱 작아진 파이를 두고 사투를 벌여야 하는 미래가 한국인들 앞에 놓여 있다.
혹자는 한미FTA는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투자자에게도 유리한 협정이라고 반론하지만, 한국기업들의 주주 구성을 살펴보면 맞지 않는 논리다. 한국기업들은 이미 외국계 글로벌 자본에 의해 커다란 부분 장악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미FTA 체제하에서는 외국계 사모펀드, 글로벌 자본에 의한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및 소유권에 대한 투자(지배 시도)가 아무런 장애 없이 가능하게 되므로, 한국경제의 불건전한 구조는 갈수록 악화될 전망이다.
실례를 통해서 배운다
위의 주장은 탁상공론이 아니다. 이 땅의 현실과, 다른 나라의 선례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한미FTA가 발효되고 불과 수 개월 만에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수출량은 감소했다. 한국의 도시 과일상점의 매대는 미국산 오렌지에 의해 점령되었다. 한국 농가의 평균소득은 올해 처음으로 도시 가구 평균소득의 60%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계 사모펀드 회사는 한미FTA에 근거하여 한국을 국재중재에 회부하여 막대한 금액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영리병원이 한국 땅에서 입지를 굳힘으로써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제약회사의 특허권의 강화로 서민이 부담해야 할 약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게 예상되고 있다. 쇠고기 광우병 검사 같은 위생검역조치, 유전조작식품 표시 및 환경위해성평가 등 국민건강과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조치나 정책들은 완전히 결박되었다.
2003년 멕시코는 스페인 회사 텍메드에게 550만 달러를 보상하라는 국제중재부의 판결을 받았다. 텍메드의 유해폐기물 매립장 가동허가 갱신 신청을 멕시코 정부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텍메드가 가동허가 조건을 위반하여 생물학적 전염병 폐기물을 매립장에 반입하고 구역 외에 폐기물을 매립하고, 심지어 다른 곳에서 처리할 유해물질까지 임시 보관했다는 사실은 중재 판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2000년 캐나다 정부는 마이어스사(社)가 환경호르몬 함유 폐기물을 해외(미국)로 반출하려는 것을 금지해서 국제중재에 회부당했다. 캐나다 정부의 조치가 국내에서 폐기물 매립사업을 하는 캐나다 기업과 마이어스(미국회사) 사이에 불균형을 초래했으므로 보상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른바 ‘내국민 대우’ 위반이다. 벨기에 고에츠사(社)는 1993년 자신이 투자한 광산을 면세 지역으로 지정해달라고 브룬디 정부에 신청했고, 그렇게 지정받아 광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1995년에 브룬디 정부가 광업 전반에 대해 이런 특혜를 폐지하자 손실 보상을 요구했다. 중재부는 회사의 재산권이 ‘간접수용’되었다고 인정, 브룬디 정부는 300만 달러를 지급하고 새로운 면세 지역을 제공해야 했다. 다국적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호주 정부가 2011년 담배 포장에 화려한 디자인과 로고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자 호주를 국제중재에 회부했다.
핵심 개념을 살펴보자
투자자 국제중재 제소권(ISD)이란 개인 투자자가 자신의 ‘투자’에 대한 기대이익이 침해되었다고 판단할 때 그 보상을 요구하며 국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미FTA에서 국가는 언제든, 어떤 사안으로든 투자자에 의해 국제중재에 회부될 수 있다. 이로써 투자자는 국내에서 사업활동을 하면서도, 국내법과 국내 법원의 판결에 구속을 받지 않는다.
“각 당사국은 동종 상황에서의 투자의 설립, 인수, 확장, 관리, 경영, 가동, 매각 및 기타 처분과 관련해서 자국의 투자자보다 불리하지 않게 상대국 투자자를 대우해야 한다.”(한미FTA 11.3조) 흔히 오해되고 있는 이 ‘내국민 대우’ 조항은, 단지 미국인을 한국인보다 불리하지 않게만 대우하면 된다는 그런 뜻이 아니다. 특기할 것은 투자의 진입단계에서부터 내국민 대우를 규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투자자에게 ‘진입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석유공사 같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체)에 대하여 외국인 투자자가 경영권(소유권) 장악을 시도할 때, 국가는 그것을 제재할 도리가 없다.
국제관습법 최소기준 대우란 “외국인의 경제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모든 국제 관습법상 원칙을 지칭”(한미FTA 11.5조, 부속서 11-A)한다. 요컨대 국가는 투자자의 ‘재산권’에 관하여 국제적으로 용인된 최소의 기준을 충족해주어야 한다는 뜻인데, 실상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해외에 투자한 미국인의 재산권이 현지 국가의 국내법에 구애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국이 만들어낸 개념이고, 그래서 실제로 이 조항이 쟁점이 된 국제중재에서 동일한 사건에 대한 판결이 정반대로 나오기도 했다. 다만 그 판정기준은 ‘투자자의 이익’이라고 보는 게 법리적 해석이다(지멘스 사건 판정문 290항, 에스지에스 사건 판정문 116항).
우리 헌법은 국가가 공익을 위해서 법률에 의거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수용’할 경우, 법률에 근거하여 배상토록 하고 있다. 한미FTA에서는 그러나 투자자의 재산권이 실제로 수용되지 않았더라도 효과면에서 간접적으로 수용되었다고 인정되면, 국가는 보상해야 하고, 그것도 시가(市價)에 따른 현금보상을 해야 한다. 이 ‘간접수용’이라는 개념 역시 개인의 재산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미국식 질서를 한국 땅에 이식하기 위한 장치이다.
대한민국 헌법 119조 2항 122조에 의하면,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한국정부의 유무형의 정책 및 조치가 이와 같은 공공성, 국민경제의 건전성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헌법에 기반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때, 중재부의 판정기준은 한미FTA, 즉 투자자의 이익이지 국내 헌법이나 사법부의 해석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복하지만,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투자자 국제중재 제소권’ 조항이 한미FTA에 포함된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 방식을 취하고 있을까
우선, 국제중재 제소권을 투자자에게 아예 주지 않는 방식이 있다. 같은 국민경제 안에서 사업활동을 하는데 외국인 투자자에게만 내국인에게는 주지 않는 국제중재 제소라는 특권을 주는 것은 불공평하다. 다른 한편, FTA를 체결한 당사자(국가 대 국가)가 아닌 투자자 개인이 국가를 국제중재에 회부하는 것은 국제법 원리에도 맞지 않다는 논리이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대법원 2009년 1월 30일자 선고 2008 두 17936 판결), 유럽연합-멕시코FTA(2000), 미국-호주FTA(2004), 중국-아세안 포괄적 경제연합 골격협정의 분쟁처리 협정, 한국-유럽연합FTA, 세계무역기구협정이 이와 같은 입장이고, 도하라운드도 이 방식을 선택했다. 한국정부가 2003년 8월 칸쿤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에서 지지한 방안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투자분쟁에 대해서 투자자에게 먼저 국내 법원에서 권리 구제 절차를 밟도록 하고, 여기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은 경우에만 국제중재 제소권을 주되, 국제중재로 가더라도 그 판정에 국내법과 국제법을 함께 적용토록 하는 방식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것이 국제법의 기본 원칙임을 밝혔다.
마지막은 국가가 개별 사건에 대해 별도로 동의를 한 경우에만 투자자가 그 건에 대해 국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는 방식인데, 역시 판정에 국내법이 함께 적용되도록 했다. 이것은 국제투자분쟁처리센터 설립조약과 일치하는 방식으로서, 캐나다-아르헨티나 투자협정(1993), 뉴질랜드-태국 경제연대협정(2004)이 택한 방식이다.
자, 그런데 한미FTA는 어떤가? 투자자는 조건 없이 국제중재 제소권을 갖는다. 국가가 투자자의 국제중재 회부에 미리 포괄적으로 동의해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재 판정에선 국내법을 배제키로 명시했다. 더 나아가 그 판결을 국가가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상대국은 합법적으로 무역보복을 가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은 미국-멕시코FTA(1994)밖에 채택하고 있지 않다.
진정한 복지‘사회’로 가는 길
지금 행복하십니까, 하고 저자는 묻는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의 손을 잡고 데리고 가고 있는 종착지는 어디인가. 그곳에서 과연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IMF 이후 한국 땅에서 성장하고 강화된 신자유주의 세력은, 이제 한미FTA를 통해 노골적으로 우리사회에 강고히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고 송기호 변호사는 예측한다. 이 책의 풍부한 사례들로 인해 독자들은 앞으로 닥칠 약육강식의 세상을 실감하며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사회의 ‘경제민주화’ 담론과 함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주제는 ‘복지’다. 그러나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국가가 서민을 보호하고 공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모조리 방기하면서, 복지를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저자가 주창하는 사회는 무어 특별히 도덕적이고 고상한 사회가 아니다. 그저 개인의 욕망과 공공성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 한 국가가 자국 국민과 국토를 보호하는 정책을 자유롭게 취할 수 있고, 국민경제를 위해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사회를 성취하자는 것일 뿐이다. 또 그것은 많은 다른 나라들이 채택하고 있는 공정한 국제질서에, 우리도 따르자는 이야기이다.
복지‘정책’이 필요하지 않은 진정한 복지‘사회’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 더 늦기 전에 한미FTA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