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발행 겸 편집인 김종철 선생이 <경향신문>, <시사IN>, <한겨레>에 지난 몇 년(2012년 9월~2015년 12월)간 발표해온 칼럼 글들을 모아 엮었다.

저자는 근 사반세기 동안 우리사회의 선구적 생태인문지 《녹색평론》을 통해 시대 현실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발언해왔다. 독자는 일간지 칼럼이라는 제약 때문에 차근하고 자세한 기술이 못될 것이라는 기우는 버려도 좋다. 우리사회와 인류사회가 공통으로 빠진 나락의 정체를 명철한 눈으로 보고, 용기 있게 말하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 변화의 움직임을 소개해온 《녹색평론》 발행인의 핵심 메시지는 여기 묶은 글들을 통해 충분히 포착할 수 있다.

지금 한국사회를 포함한 인류사회는 기후변화, 환경위기, 석유, 물 등 각종 자원의 부족, 광범위한 농경지 축소 및 사막화, 근대 금융통화제도의 실패, 빈부격차 심화, 치솟는 실업률과 범죄율, 급증하는 전쟁·환경 난민 등 전대미문의 복합적 위기에 봉착해 쩔쩔매고 있다. 그런데 이 위기상황은 유한한 지구상에서 무한한 진보를 추구하는 맹목적인 성장논리가 초래한 필연적 결과이다. 자연과 사회적 약자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한순간도 지탱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시스템 ― 현대문명의 본질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과제는 조금이라도 더 인간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정치시스템, 즉 대의제 정당정치는 단기적, 착취적인 이익추구의 논리에 매달려 장기적 비전이나 공생의 윤리는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이 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자, 권력엘리트들이 현 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바랄 리도 만무하다. 따라서 사회적 정의는 물론이고 생태적 정의를 위해서도,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풀뿌리 차원의 연대와 자치·자립 능력의 회복, 기성 체제에 대한 비협력과 불복종, 보이콧, 직접민주주의의 확립보다 더 긴요한 일이 없다.

“암울한 시대를 비통한 심정으로 견뎌내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상투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예컨대 지역통화, 기본소득, 협화민주주의, 숙의여론조사, 시민합의회의, 공동체평의회와 같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한 실천의 구체적 사례들을 접하면서 “교감의 공동체”를 선물 받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책머리에

1부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
영토문제와 국가의 논리
왜소한 정치, 상상력의 빈곤
협화민주주의
원자력 안전을 위한 긴급 제언
말 따로, 행동 따로
성장 없는 시대의 삶
밥과 민주주의
후쿠시마의 교훈과 ‘좋은 삶’
경제민주화, 주식회사, 협동조합
‘좋은 삶’과 4대강 파괴
증여의 원리, 삶의 토대

2부 변화냐 자멸이냐
권력의 거짓말, 노예의 언어
차베스가 독재자라고?
차베스와 근원적 민주주의
차베스, 대처, 미디어
변화냐 자멸이냐
전력대란, 정말 두려운 게 뭘까
국익이라는 관념, 악마의 논리
‘괴담’ 운운할 때인가
진짜 싸움, 가짜 싸움
원전은 서울에, 권력자는 최전선으로
물구나무선 세계
‘복음의 기쁨’

3부 ‘기본소득’이라는 희망
문명의 지속가능성과 민주주의
과학자의 양심과 ‘국익’
‘기본소득’이라는 희망
기본소득과 ‘도덕경제’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비극
정치의 실패, 아이들의 죽음
비협력, 불복종을 위하여
세월호 진상규명, 누가 해야 하나
왜 전교조를 지켜야 하는가
인간다운 국가냐, 재앙의 원천이냐
생각 없는 정치, 인간다운 삶의 소멸
양심의 정치,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예의를 지켜라, 제발

4부 ‘깊은 민주주의’가 세상을 살린다
제비뽑기 민주주의, 왜 필요한가
녹두장군이 꿈꾼 ‘됴흔’ 나라
희망의 정치, 개헌, ‘시민의회’
삼척 주민투표, 국민주권, 개헌
‘모욕 속의 삶’에서 해방되려면
‘깊은 민주주의’가 세상을 살린다
민주정치의 재생, 어떻게?
‘깊은 민주주의’의 또다른 예
민병산, 무소유, ‘자유시민’
피케티, 자본주의, 민주주의
후쿠시마 4년, 문제는 민주주의다
세월호 1년, 민주주의를 살려야 한다

5부 ‘패도’의 세계에서 ‘왕도’를 생각한다
제비뽑기 민주주의라는 희망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뒤늦은 추도사
‘개혁’의 아름다움
메르스와 민주주의
정치와 용기
평범한 자들의 민주주의
김수행, 아름다운 영혼을 기리며
‘패도’의 세계에서 ‘왕도’를 생각한다
거짓언어의 홍수 속에서
프란치스코, 샌더스, 코빈
학술원과 예술원은 왜 침묵하고 있나
‘헬조선’, 국가의 거짓말, 니힐리즘
무욕의 정신, 진짜 에고이즘
정치의 부재, 공화주의 정신의 결여

추천의 말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한 실천의 구체적 사례를 접할 수 있다.

―강원도민일보

 

현대문명의 여러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한국사회의 부조리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들에선 인간과 세상을 향한 그의 깊은 통찰력과 동시에 따뜻한 눈길을 느낄 수 있다.

―경향신문

 

김종철의 발언은 경제 중심주의와 성장담론, 국가주의 등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으로서, 또 자연과 가난을 주제로 한 새로운 삶에 대한 상상력으로서 주목을 받아왔다.

―국민일보

 

분노와 냉소, 열패감에 빠져 있는 현대인,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의 구조와 현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죽비 소리가 되는 책.

―부산일보

 

저자는 ‘폭력의 논리에 중독된 권력자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고, ‘더 많은 촛불을 더 높이’ 들자고 말한다.

―영남일보

 

더 지속가능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바라면서 한 ‘발언’은 독자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다.

―일간스포츠

 

김종철의 칼럼은 시간이 흘러도 아프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중요한 건 우리사회가 ‘아웃사이더’를 대변하는 ‘광야의 외침’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한겨레

저자 소개

김종철 (金鍾哲)
1947년 경남 출생
서울대학교 영문과 졸업
전(前) 영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격월간《녹색평론》발행·편집인

저서 《시와 역사적 상상력》,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간디의 물레》,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땅의 옹호》, 《발언Ⅰ》, 《발언Ⅱ》
역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등

본문 중에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

“현재의 경제위기는 생산력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생산으로 인한 위기이다. 그리고 부의 집중, 사회적 격차, 구매력 부족이 이 위기를 초래한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제가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야 옳다.”(37~38쪽)

“근대국가는 자본주의를 토대로 전개돼온 정치제체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성장·확대에 불가결한 기술혁신을 위한 테크놀로지는 자본과 국가 모두에게 요긴한 존재이다. 설령 그 기술의 궁극적 결과가 세계의 파괴일지라도 단기적인 이익에 골몰한 눈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핵폐기물 처리와 같은 것은 자신들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 사실상 오늘날 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정치와 경제, 법질성 전체가 ‘조직화된 무책임의 체계’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43쪽)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시련과 고통은 결코 더 많은 경제발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에의 확고한 신념과 그 실천이다. 경제위기를 계속해서 성장논리로 대응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강화된 파시즘체제로 나타날 것이다.”(48쪽)

 

변화냐 자멸이냐

“제아무리 뛰어난 기술적 재간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지구가 제공하는 한정된 자원과 생태적 조건을 벗어나서 영위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 근본적 제약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이라는 주문을 무작정 외며 위기를 돌파하려 해봤자 헛일이라는 것을 아직도 세계의 다수 권력엘리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49쪽)

“실제로 장구한 세월 동안 풀뿌리 민중이 생존을 영위하며 삶을 향유해온 주된 방식은 국가의 틀도, 시장의 논리도 아니었다. … 중요한 것은 역시 공동체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공동체가 살아 있는 한, 사람이 외로이 굶주려 죽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동체란 화폐의 원리가 아니라 증여의 원리에 의해 유지되는 생의 공간이기 때문이다.”(55쪽)

“이렇게 ‘물구나무선’ 세계에 오랫동안 길들여지다 보면 많은 사람들은 체념과 냉소주의에 함몰되기 쉽다. … 아무리 애써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과 냉소주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그러한 체념과 냉소주의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는 점이다. 분노와 슬픔이 깊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102~103쪽)

 

왜소한 정치, 상상력의 빈곤

“권력은 원래 자기보다 더 큰 힘에 의해서 도전을 받지 않는 한, 꿈쩍도 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민중에게 권력이 양보를 하는 것은, 양보하지 않고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뿐이다. … 철저한 비협력, 불복종운동만이 민주적 권력의 탄생과 진정한 정치의 쇄신을 가져올 수 있다.”(140~141쪽)

“인간이란 그저 ‘안락’과 ‘안전’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라도 최소한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인간다운 인간의 존립을 위해서는 인간에게 ‘고요히 사색할 수 있는’ 능력과 장소를 허용하는 문화가 살아 있어야 하고, 정치도 마땅히 그 방향으로 겨냥되어 있어야 한다.”(157~158쪽)

“지금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의 생활수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가난’을 저주하고 증오하면서 우리사회 전체가 일념으로 추구해온 것이 결국은 공허한 물질적 안락이었다는 데 핵심적 비극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다가 우리는 뜻밖에도 우리의 삶이 전혀 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인간다운 삶의 근본 기반이 망실돼버렸음도 발견하고 말았다.”(158쪽)

 

기본소득이라는 희망

“물질적 혜택의 불균등 분배라는 이 결함은 불평등 구조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는 자본주의시스템 자체의 내재적 원리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연구자에 의하면, 자본주의문명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실제로 이 문명의 수혜자는 인류 전체의 15퍼센트를 넘어본 적이 없다. 나머지 다수는 늘 소수의 안락과 행복을 위한 제물이 되어왔다는 것이다.”(124~125쪽)

“사회구성원 전원에게 아무 조건 없이 기초생활비를 지급하는 이 방안은, 기왕의 시장논리를 존중하면서, 대다수 민중에게 그들의 잃어버린 생존 기반, 즉 ‘공유지’를 되돌려주고 ‘도덕경제’를 복원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126쪽)

 

깊은 민주주의가 세상을 살린다

“오늘날 ‘민주정치’가 쇠퇴하고 있는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대의제 정치가 공공선이 아니라 자본과 기업의 이익을 무엇보다 앞세우며 하수인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195쪽)

“오늘날 환경문제 못지않게 시급한 대응을 요하는 빈곤, 실업, 출산율 저하, 중산층 몰락, 심화하는 부의 집중화 등 사회적 삶의 기반을 위협하는 온갖 사회경제적 문제들도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의 쇠퇴 혹은 결여에 기인한, 합리적 국가운영의 실패 혹은 정치다운 정치의 실종에 따른 어김없는 결과임을 우리는 확실히 보지 않으면 안된다.”(240쪽)

“상관의 지시 없이 실무자들이 자주적으로 판단·행동한다는 것은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실제로 거의 불가능하다. 식민지 지배, 군사독재, 독선적인 정부를 거치는 동안 관료사회든 기업이든 한국인 대다수는 기본적으로 노예의 삶에 길들여졌다. 그러니까 메르스 사태도 결국 민주주의의 결여로 빚어진 재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247쪽)

 

패도의 세계에서 왕도를 생각한다

“이 위기상황은 예전처럼 국가적·민족적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자민족, 자국 중심의 배타적 이익 논리이다. 그러나 이 배타적인 논리의 장기적인 결과는 비참한 공멸일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국익논리는 ‘악마의 논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86쪽)

“지금 그리스가 직면한 것은 그리스만이 아니라 세계의 민중 전체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다. 언론들은 흔히 이 문제를 그리스와 유럽연합 혹은 그리스와 독일이라는 각도에서 국가 간 문제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것은 ‘국익’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특권적 부유층과 일반 민중 간의 대립과 갈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250쪽)

“우리가 양심적인 인간이고자 한다면, 필요한 것은 하늘을 나는 새의 눈(鳥瞰)이 아니라 땅을 기는 벌레의 눈(蟲瞰)이다. 지배자나 엘리트의 입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난한 민초들, 평범한 생활인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눈으로 봐야 비로소 세상의 ‘진실’이 보이고, 따라서 평화롭고 인간적인 사회에 대한 절박한 요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263쪽)

“교황이나 샌더스 혹은 코빈의 메시지는 별로 새로운 게 아니다. 그것은 인간다운 사회가 되려면 경제는 사회적 공통자본(공공재)을 고르게 나누는 일이어야 하고, 정치란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상식’의 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2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