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3년 4월 18일, 녹색평론사 세미나실에서 진행된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대담자는 김정현 본지 발행·편집인이다.
―우선 저희 편집실에서 복간호를 준비하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취지를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녹색평론》이 일관되게 관심을 가져온 주제는 지속가능한 문명, 즉 좋은 삶과 사람살이의 근본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라는 유한한 체계 속에서 인류문명이 지속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를 생각했을 때, 인간생존의 궁극적 근거인 토양, 즉 농사(農)를 중심에 두고 사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 전대미문의 시험대 앞에 있는 인류사회가 농촌·농사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사회·경제 영역에서 지속성을 구한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런 신념을 토대로 《녹색평론》 작업을 해나갈 생각인데요, 그런데 근년에 와서 우리 사회의 물리적 토대인 농촌(농지) 자체의 소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당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맞서서, 적어도 저희가 알기로는, 최전선에 계신 분이 하승수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서 오늘 말씀을 듣고자 모셨습니다. 제가 알기로 선생님은 진보적 시민운동에 오랫동안 몸담아오셨지만,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는 녹색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녹색당을 창당하고 ‘녹색’을 포함한 다양한 목소리가 한국 정치에서 유의미한 세력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노력을 기울여오셨지요. 그러다가 2020년에 농본(農本)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농촌을 지키는 일에 집중하게 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두 가지 정도가 있어요. 우선 제 활동에 대한 반성이었죠. 환경운동, 녹색당 활동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녹색의 핵심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원자력·화력 발전을 태양광과 풍력으로 바꾸면 ‘녹색’인가 하는 것이죠. 우선 태양광·풍력 시설이 들어오면서 숲이 파괴되고 농토가 잠식되고 피해를 보는 주민들이 있잖아요. 가령 어떤 개발사업을 환경운동 차원에서 반대한다고 할 때에도 진정으로 삶터―농촌, 농민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또 제가 한 6년 전부터 완전히 시골로 거처를 옮기면서 농촌주민들께 조금씩 법률적 자문을 해드릴 기회가 생겼던 것도 중요한 계기였어요. 농촌의 사정을 직접 들으면서 이분들이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최소한 자기 목소리는 낼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우리 정치는 농촌·농업을 무시하는 정도를 넘어서 박해한다고 말할 수 있죠. 바로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녹색정치가 필요한 것이지만, 당장 현장에서 농촌·농업을 직접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 제도적·법률적으로 맞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농본(農本)이라는 공익법률센터를 시작했습니다. 실은 처음에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처럼 ‘농변’(농촌·농민·농사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을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그 정도로 저는 이 시대에 농(農)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함께할 법조인들이 당장 눈에 띄지 않더군요. 추후에라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같이 할 사람들이 모이면 꾸려볼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농촌으로 이주하신 게 결정적 계기였네요. 지금까지의 농본 활동을 보면 주로 농촌에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산업단지나 폐기물 처리장 등에 맞서서 주민들이 싸우는 일에 법적 조언과 전략적 도움을 주고 계신 것 같은데, 특히 산업단지에 주목하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농촌에 가서 살지 않았으면 생각을 못했을 거예요. 제가 변호사이기도 하고 시민운동을 했던 이력도 알려져서, 관공서나 기업을 상대로 문제가 생기면 저를 찾아와서 조언을 구하는 분들이 생겼는데, 특히 산업폐기물이나 송전탑 같은 시설로 마을이 위기에 처한 곳들에서 계속해서 연락을 주셨어요. 처음엔 저도 내용을 몰랐죠. 도시에서는 생활폐기물만 접했기 때문에 산업폐기물이 어떤 문제가 있고 관련 법이 어떻게 돼 있는지 저도 새삼스럽게 찾아봐야 했어요. 그리고 살펴볼수록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명박 정부의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이 농촌에 대한 산업의 전면적인 공격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보시는 것 같던데요?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까 이명박 정부 특례법이 나오더군요. 산업폐기물 매립장, 소각장이 왜 이렇게까지 난입하는가 파고들다 보니 산업단지가 농촌에 자꾸 들어서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산업단지라고 하면 보통 국가가 정책적으로 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최근 농촌에 들어서는 산업단지는 대부분 민간기업이 추진하는 것입니다. 건설회사 등 기업들이 땅을 확보해서, 심지어 강제수용까지 해서 산업단지를 만드는 것을 보고 사실 좀 놀랐어요. 민간기업들이 이 정도로 주도적으로 하는구나. 그래서 왜 이렇게 민간기업들이 여기저기서 산업단지를 추진하는가 하고 조사해보니까, 2008년 특례법이 나오더군요.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1호 법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인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 법을 그때 알게 되었어요. 결국 단순히 자본주의 기업들의 횡포라기보다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죠.
―그 법 이후로 농촌에 대한 파상공세가 시작된 건가요? 이미 2008년부터 그런 일들이 시작됐던 거네요.
산업단지와 관련해서는 그렇습니다. 민간기업들이 주도하는 지방 산업단지가 이렇게 많이 무분별하게 추진된 것은 특례법 영향이 큽니다. 그 전에는 국가·지자체 주도 산업단지가 많았다면 특례법 이후엔 민간기업들이 산업단지를 주도해왔어요. 심지어 어떤 경우엔 산업단지 한다고 하고 아파트를 짓기도 해요. 택지개발사업 절차를 밟는 것보다 특례법을 활용하면 인허가가 쉬우니까요. 폐기물처리 단지를 만들면서 산업단지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문제는 여야 차이가 없어요. 4대강사업에 대해서는 어쨌든 민주당이 비판적으로 거론하잖아요. 그렇지만 산업단지 특례법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아요. 민주당 정치인들도 다들 지방에서 산업단지를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죠. 농지 없애고 농촌 파괴하는 일을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들은 마치 성과처럼 내세웁니다.
―재생에너지도 산업단지로 분류됩니까? 그것도 민간 주도로 진행되면서 현장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재생에너지는 별도의 절차가 필요한 사업이긴 하지만 역시 공적 주체가 아니라 민간기업들이 주도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어요. 지금 제일 심각한 것은 풍력인데요, 우리나라 연안바다에 해상풍력 할 수 있는 데는 전부 민간기업들이 바람 측정하는 기구 꽂아놓고 벼르고 있어요. 민간기업, 외국 사모펀드, 예를 들면 맥킨지 같은 데서 부산 앞바다에 해상풍력발전을 하겠다고 하는 상태예요. 이런 거대한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공적인 역할이 실종되었어요. 산업단지도 공적 주체가 하는 게 아니고, 재생에너지도 대규모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시설을 전부 민간기업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근원이 있습니다. 공적 통제가 전혀 안되고 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요?
우선 정계에 공적 통제를 해야 된다는 문제의식 자체가 없어요. 환경운동가 중에도 일부는 그렇게라도 빨리 해야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이런 식으로 민간이 주도해서 하는 개발사업은, 재생에너지라고 해도 안된다고 봅니다. 하나의 이윤추구 수단이 되면서 농촌주민, 농민·어민에게 말 못할 피해를 주고 있어요. 더욱이 사후 관리문제도 있는데, 풍력이든 태양광이든 민간기업에 맡겨두었을 때 발전시설 수명이 끝나서 이윤을 더이상 내지 않을 때에도 제대로 관리되고 폐기될 수 있을까요? 경북 영양에 거대한 육상풍력발전단지가 있는데, 이게 원래 스페인 업체가 하던 것인데 맥킨지에 팔고 나갔어요. 이렇게 계속 떠넘기는 거예요. 처음에 시작한 업체는 팔고 떠나고 또다른 사모펀드가 샀다가 떠나고, 이런 것을 녹색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하지만 주민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묵살당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2013년 밀양송전탑 반대운동은 원전에서 출발하는 송전선이었고, 반핵운동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지금 재생에너지 때문에 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질 상황이니 기가 막히지요. 발전원이 원자력에서 재생에너지로 바뀌었다고 해서 결코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어요.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발전단지나 송전선 인근 주민들에게는 똑같은 폭력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 전남 영광에 계신 분과 통화를 했는데, 영광에는 원전이 6기나 있고 방폐장 때문에도 주민들이 고초를 겪은 곳이잖아요, 그런데 신안 앞바다에 8GW 해상풍력단지가 조성되면서 또 송전선을 건설한다는 것인데 이게 영광을 지나가요. 게다가 고형폐기물(SRF) 열병합발전소라고 한빛원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산업폐기물을 소각하는 발전소도 추진되고 있어요. 도대체 세상이 이래도 되는 거냐고 탄식하시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기업들의 투기장이 되어버린 농촌
―지난 3년 동안 숱하게 접하셨을 테지만 산업단지, 산업폐기물 관련해서 전형적인 사례를 몇 가지만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충북 진천 이월면에 관지미마을이라는 곳이 있어요. 태영건설이라는 민간기업이 추진하는 진천테크노폴리스라는 산업단지가 계획되어 토지강제수용 결정까지 났습니다. 마을 전체가 통째로 산업단지 부지에 들어가기 때문에 주민 모두 이주를 해야 되고, 농지도 굉장히 넓은 면적이 편입돼서 사라지게 됐습니다. 농촌주민들은 삶터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일입니다. 진천군수가 기업체 대리인인 것처럼 밀어붙여서 결국 주민들이 전원 끝까지 반대했는데도 이렇게까지 돼버렸어요. 진천에는 산업단지가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서 도시인지 농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예전 구로공단 같은 것들이 전부 농촌으로 오면서 이렇게 된 것이죠. 서울에서 굴뚝이 사라진 대신 농촌에는 어마어마하게 굴뚝이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렇게 농촌주민들의 피눈물 위에 세워진 산업단지인데 실제로 공장들이 다 입주해서 가동이 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작년에 나온 농본 자료를 보니까 실분양률이 계속 떨어진다고 하더군요.
지자체들은 분양은 다 됐다고 말하지만, 분양돼도 실제로 공장들이 입주해서 가동하는 비율은 낮은 경우가 많아요. 땅투기를 위한 꼼수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이미 있는 산업단지들에 공장들이 입주해서 가동되고 있지도 않은데 또다른 민간기업이 산업단지를 한다고 하면 지자체가 적극 밀어줍니다. 진천만 그런 게 아니에요. 충남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서도 SK그룹이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어요. 이곳 특징은 실제로 그 지역에 거주하면서 농사짓고 살아가는 주민들이 산업단지 부지에 들어가는 땅을 많이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50% 이상이 인근 대학교나 종중(宗中) 소유거나 군유지, 이런 식이에요. 산업단지를 추진할 때에는 적어도 토지면적 50%의 소유주 동의가 필요한데, 그 조건을 충족하기 용이한 곳이죠. 농사지으며 실거주하는 주민들이 땅 주인이기도 한 곳은 동의를 받기 어려우니까 기업들이 부재지주 비율이 높은 곳을 찾아내는 거예요. 결국 실제로 거주하고 농사짓는 사람들의 동의가 필요 없다는 건데, 이런 상황을 주민들이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어요? 오랜 삶터에서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이 쫓겨나고 귀한 농토가 산업폐기물로 오염되는 일들이 무슨 국가나 지자체가 공익을 위해 하는 일도 아니고, 민간 대기업 돈벌이를 위해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지자체가 왜 그러는 거예요? 진심으로 개발이 좋은 것이라고 아직도 믿고 있는 건가요?
경제성장주의에 찌들어 있기 때문이죠. 산업단지가 들어와야 인구가 늘고 지역경제가 좋아진다는 환상을 여전히 갖고 있어요. 지방자치단체장은 실적이 된다고 생각하죠. 이미 틀렸다고 판명이 났는데. 그게 맞다면 지역소멸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산업단지가 이렇게 많이 들어섰고 국토가 전부 도로로 덮였는데도 지역이 소멸한다는 얘기가 나온다면 지금까지 해온 일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여전히 지역 국회의원·지자체장들은 ‘산업단지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못 버리고 있어요. 지자체는 주민들이 반대하는 산업폐기물 매립장은 빼고 산업단지만 추진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 경향을 보면 사업주체인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폐기물이 더 돈이 되기 때문에 빼지 않아요.
―도시에서는 생활쓰레기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그렇게 생활폐기물 이야기는 이따금 나와도 산업폐기물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요.
생활폐기물은 ‘발생지 책임의 원칙’이라고 해서, 지자체가 책임을 지게 되어 있어요. 서울시라면 서울에서 나오는 생활폐기물을 자체 처리해야 되는데, 지금 대규모로 한곳에 소각장을 건설하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죠. 그런데 산업폐기물은 발생지 책임 원칙이 적용이 안된다는 것이 환경부 입장입니다. 가령 충남의 어떤 곳에 산업폐기물 매립장 인허가를 받으면, 전국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도록 법이 돼 있고, 환경부도 그걸 옹호합니다. 공무원들은 어디서 소각, 매립하든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정말 전형적인 관료주의 책상머리 행정을 하고 있고, 환경부는 빨리빨리 허가해주라고 재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충청도가 수도권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니까 현재 충북에 굉장히 많은 산업단지와 폐기물 매립장, 소각장 등이 들어와 있고 충남에서도 계속 시도되고 있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다시 말하지만, 이게 다 민간기업이 하는 거라는 거예요. 생활폐기물을 지자체가 처리하니까 흔히 오해를 하는데, 산업폐기물은 민간기업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폐기물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이윤이 커지니까 바람직한 거예요. 도시에서는 이 문제가 눈에 안 보이니까 산업폐기물을 줄이려는 노력도,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전체 폐기물 중에 생활폐기물은 12% 정도이고 나머지 88%가 산업폐기물인데, 대부분의 언론이 생활폐기물 얘기만 하잖아요. 산업·의료 폐기물로 민간기업들이 막대한 돈을 벌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어요.
―결국 다 함께 공멸로 가는 길에 엄청난 인센티브가 있는 거네요. 어떻게 보면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수용 대상 토지면적의 50% 소유주가 동의해야 한다는 조건인 것인데, 거꾸로 그게 약점이 된 측면이 있군요. 그러니까 지금 너무 많은 농토가 농사짓는 사람들의 손에 있지 않다는 것,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봐야겠네요. 부재지주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부재지주 비율이 너무 높은 것이 근본원인이죠. 보상만 잘해주면 언제든 팔 수 있다는 땅 주인 비율이 굉장히 높아요.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들도 예전만큼 강하지 않고요. 부재지주가 늘어날수록 농촌은 취약해집니다. 그래서 농민단체들이 농지 전수조사를 하자고 계속해서 주장하는 거예요. 농사짓는다고 이름만 올려놓은 경우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서류만으로 알 수 없고 실제로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어요. 투기든 어떤 이유에서든 농지소유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될 때마다 농민단체들이 전수조사를 촉구해왔는데 정부가 외면하고 있어요. 조선시대 때도 했는데 정보화시대라고 하면서 못할 이유가 없죠. 기득권층에게는 껄끄러운 일이겠죠. 부재지주 비율이 60%를 넘었다는 추정치는 있지만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습니다.
―산업단지가 우후죽순 들어서는 것을 보면 아무튼 대단히 높다는 것이겠지요. 이런 식으로 간접적 역산으로 평균적인 부재지주 비율이 밝혀질 수도 있겠는데요. 그런데 주민들이 산업단지나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막아낸 사례도 있지 않나요?
산업폐기물 매립장은 백지화가 된 사례가 꽤 있어요. 폐기물 처리장만 들어올 때에는 지자체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으니까 주민들이 반대하면 수용하는 편이죠. 충남 홍성, 부여, 예산, 청양 등지에서 산업폐기물 매립장만 별도로 추진되다가 백지화됐어요. 얼마 전 충북 괴산에서는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동시에 추진됐는데, 처음엔 산업단지를 표방해서 주민들이 긴가민가하고 했어요. 나중에 산업폐기물 매립장도 같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지역 이장단과 주민자치회 위원회가 모두 반대입장을 냈어요. 그런데 당시 군수가 업체와 결탁이 돼서 반대하는 주민들만 골라서 불법 건축물 단속을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괴롭히고 탄압하면서 막무가내로 추진했어요. 군수가 바뀌면서 지금은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정치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주민들이 사업의 실체를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아까 얘기한 예산 신암면 조곡리에서 SK가 추진하고 있는 산업단지 명칭이 ‘그린컴플렉스’예요. 자원순환시설이라고 했는데 내용은 산업폐기물 매립장이었던 것이죠. 이름도 늘 이런 식으로 지어서 사람들이 좋은 건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요. 기만하는 것이죠.
―그래서 무엇보다 농촌의 자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것이죠? 현재 상황에서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시는지요?
가장 큰 문제는 자본과 나쁜 정치가 결합을 해서 농촌을 이윤추구 공간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촌이 만만한 거예요. 반대도 약할 것 같고, 땅값도 쌀 것 같고, 여기선 뭐 좀 나쁜 짓 해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겠다는 계산도 있겠죠. 그래서 제가 정치의 문제라고 누누이 말하는 거예요. 도시에서 토지강제수용하고 산업폐기물 묻겠다고 하면 난리가 나겠죠. 군청 소재지가 있는 읍에서도 이런 일 안합니다. 가장 외곽에 있는, 인구 적고 고령화된 가장 취약한 면 지역 마을에서 하죠.
산업폐기물 매립·소각은 예전에는 지역 기반 업체들이 맡아 했는데, 이제 SK, 태영 이런 대기업들이 업계 1, 2위가 되었어요. 최근 몇년 동안 이렇게 바뀌었는데 이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명확하게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돈 벌겠다고 작정을 한 거예요.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흐름이라고 봅니다. 그동안에도 농촌·농업을 무시하고 천대해왔지만 이제 자본이 정치하고 유착해서 농촌을 파괴하면서 이윤추구를 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가 농촌문제라고 얘기하지만, 산업시설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사실 이건 도시문제죠. 도시의 짐을 모두 지고 있는 농촌이 지금 우리 사회의 시야에 없다는 게 문제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농촌·농사를 천대해서는 사회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고 있잖아요. 우리 정부가 자급률을 제고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런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70대 이상 농가경영주가 이미 42%가 넘어요. 농지는 해마다 1.2%씩 사라지고 있다고 하는데, 10년쯤 지나면 농사지을 사람도, 땅도 없다는 이야기죠. 농촌이라는 공간을 보존하고 농토를 지키고 어떻게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농민을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사회와 국가가 농사를 천대하고 무시하고 있어요. 정부가 자급률 얘기하는 것은 ‘유체이탈 화법’이죠. 농림축산식품부는 법에 따라서 계획을 세워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식량자급률, 곡물자급률 올리겠다고 목표는 제시하지만, 실제 자급률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 떨어져왔죠. 앞으로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윤석열 정부도 식량자급률 올린다고 하면서도 국가산업단지 15개 조성한다고 발표했어요. 그게 어디에 들어서겠어요? 최근 20년 동안 산업단지로 전용된 농지면적이 충남에서만 700만 평이에요. 또 국회에서 예산심사할 때 보면 늘 신규 도로건설 예산이 들어가 있는데, 도로도 농지하고 임야 덮어서 만드는 거예요. 공항 건설도 그렇고. 농지 잠식할 온갖 개발계획 다 통과시키면서 식량자급률 올리겠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죠.
―제가 이해하기로는 양곡관리법 논의도 간단히 말하면 정부가 농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 아닙니까? 단계적으로 쌀 농사를 고사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한 것인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예전에는 쌀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관해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쌀 안 먹는데 생산 줄이자, 논 다 없애자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잖아요. 일국의 식량정책에 미래에 대한 전망이 이토록 조금도 들어 있지 않을 수 있을까요. 기후변화나 값싼 에너지 시대가 끝나간다는 인식이나 대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쌀 소비가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생산량도 함께 줄었어요. 매년 40만t 정도 쌀을 수입하고 있는데, 수입이 없으면 지금도 오히려 쌀 생산량이 소비량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 농민단체들의 주장입니다. 맞아요. 쌀 소비가 줄어서 문제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쌀은 그야말로 생존기반이에요. 밀은 자급률이 1%도 안되지, 다른 곡물도 30% 안되는 수준입니다. 쌀이 무너지면 우리 농업은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쌀 하나라도 지키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되는 거예요.
양곡관리법 논의는 한마디로 농업에 들어가는 국가예산을 줄이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거예요. 2019년까지는 변동직불금 제도가 있었죠. 쌀값 목표가격을 설정해 놓고 거기에 미달하면 85% 소득을 농가에 보전해주는 것인데, 결국 기재부나 이런 곳의 경제관료들이 농업에 들어가는 예산이 아깝다고 폐지를 시킨 거예요. 그런데 걱정을 많이 하니까 ‘자동시장격리’라는 조항을 양곡관리법에 넣어서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한 건데요, 그 내용은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쌀을 매입(시장격리)해서 쌀값을 안정시키겠다고 약속한 거예요. 그런데 국회가 법 조항을 애매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이용해서, 2021년산 쌀값 폭락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시장격리(쌀 매입)를 늦추었고, 쌀값이 폭락했죠. 그래서 쌀값이 폭락하지 않도록 양곡관리법을 개정해서 일정한 경우에 정부가 쌀 매입(시장격리)을 의무적으로 하게 하자는 논의가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이미 ‘자동시장격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법 조항의 의미를 확실하게 하자는 것뿐이죠. 민주당도 자기들이 정권 잡고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정권 바뀐 다음에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했는데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내용은 껍데기였어요.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상한 중재안을 내서 통과된 법 자체는 별 의미도 없는 것이었는데 그것마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죠. 애초에 변동직불금을 유지했어야 했어요. 농민들을 속인 거예요.
경제관료나 주류 정치인들은 농업은 없어져도 좋은 산업 정도로 생각하겠지요. 농업에 들어가는 예산이 아깝다고 하는데, 다른 산업들에 직간접으로 지원하는 돈은 얼마인데요. 민간기업이 조성하는 산업단지도 진입하는 도로라든지 폐수처리시설 같은 것은 국가예산으로 보조해줍니다. 그런 돈은 안 아까운가요. 정부부처 산하에 기관이나 조직들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서 쓸데없는 일 많이 하고 있는데, 그 돈은 안 아까운가요. 사실 그런 사고방식이 양곡관리법 문제의 핵심이고, 그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정말 농업을 생각한다면 변동직불금을 부활시키면 됩니다. 그러면 경제관료들이 직불금 적게 주려고 알아서 쌀값 유지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양곡관리법 개정은 최소한의 비상장치라도 마련하자는 취지였고,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으려면 논의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이번 논의과정에서 중요한 이야기는 다 묻혀버렸죠.
―얼마 전 〈한국일보〉 기사를 보니까 베트남 기후전문가들은 메콩삼각주에서 쌀 생산이 급격하게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더군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WTO 협정 아래에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쌀 수입을 늘려야 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세계적으로 쌀이 부족해서 수입하고 싶어도 들여올 쌀이 없거나 높은 비용을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예요.
육류, 밀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쌀 소비가 줄어서 그렇지 쌀 생산량도 많이 줄었어요. 재배면적은 지난 10년간 12만 2,000ha 줄었고(2022년 72만 7,000ha), 생산량도 24만 2,000t(2022년 376만 4,000t) 줄어들었어요. 1990년에 쌀 재배면적이 124만 4,000ha, 생산량이 560만t이었던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감소했죠. 이렇게 엄청나게 논이 줄고 쌀 생산량도 줄었는데 쌀 소비 감소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안 보이는 것뿐이에요. 게다가 그게 다 고기라든지 수입 농산물 등으로 대체된 것이니까 식량자급 기반이 정말 취약하다고 봐야죠.
―고기는 사실상 수입이라고 봐야 되잖아요. 국내에서 키웠다고 해도 수입 곡물을 먹이니까. 밀도 수입이고 사료도 수입이고 고기도 외국산이라고 봐야 하고, (2021년 기준) 식량자급률 44.4%, 곡물자급률(쌀 포함) 20.9%라는 것도 종자, 비료, 농기계며 모두 수입 석유에 의존하고 있고, 농·어업 노동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 결과인데 정말 모골이 송연하네요. 지금 OECD 국가 중에서 자급률이 이 정도인 곳이 또 있어요? 일본도 자급률이 높은 편이 아니잖아요?
우리밖에 없죠. 일본도 노력은 하는데 그렇게 성공적이진 않아요. 근본적으로 경제성장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죠. 일본은 그래도 밀 자급률이 17%(2019년 기준)로 1%도 안되는 우리보다 나은 편입니다. 중요한 차이는 일본은 국가가 자급률을 올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우리는 사실상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런 점도 생각해야 하는데요, 유럽에선 한 나라에서 좀 남고 다른 나라에서 모자라면 육상으로 교역을 할 수 있죠. 아메리카 대륙은 자급이 되고. 그런데 일본과 한국은 바닷길을 통한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니까 어떤 이유로든 해상 수입선에 문제가 생긴다면 큰 어려움에 빠질 거예요.
농민들이 고령화되고 기계가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상황이기 때문에 에너지위기와 식량위기가 동시에 오면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 될 거예요. 요즘 저는 정말로 위기상황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기후위기도 고려한다면 식량을 확보하는 차원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비상계획이 필요합니다. 너무 비관적인 전망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저는 이미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되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2차대전 때 영국 사례를 보니까 참고가 되더라고요. 당시에 독일 잠수함들이 선박을 공격해서 바다를 통한 식량수입이 안되니까 전국민적 농사 캠페인(Dig for Victory)을 했잖아요. 그게 영국 도시농업의 시작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그런 것을 준비해야 되는 게 아닌지….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