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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8.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단비를 기다리며

녹색평론 통권 제192호 하승수

필자가 강연을 할 때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일상적으로 하는 일은 농촌농사농민을 돕는 일(공익법률센터 농본 활동)이고, 30년째 계속하고 있는 일은 권력 감시예산 감시 활동(세금도둑잡아라 활동)이며, 기우제 지내는 심정으로 하는 일이 헌법개정과 선거제도 개혁 활동이라는 얘기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특히 헌법개정이나 선거제도 개혁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공감을 많이 한다. 이 문제들에 관심을 가졌다가 좌절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렇다. 그만큼 헌법개정과 선거제도 개혁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뭄이 심하면 비를 기다릴 수밖에 없듯이, 정치가 엉망일수록 반드시 필요한 것이 헌법개정과 선거제도 개혁이다.

좌절의 반복
1987년 민주화 이후 헌법개정은 여러 차례 논의되어왔다. 선거제도 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정치인이라면, 두 가지 주제는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대표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정치개혁의 핵심은, 정치를 비정상화하고 지역주의를 강화시키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헌법개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신념이 너무나 강하고 절박했기에, 2005년 7월 “선거제도만 바꾼다면 야당에게 총리 추천권을 주는 대연정을 할 수 있다”고 발표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대연정 구상에 대한 반발이 여당 안에서도 거세자 그는 “되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낡고 고장 난 정치제도로 비정상적인 정치를 계속하자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언제까지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까?”라고 여당 당원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들에게는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정치의 정상화’보다 더 큰 관심사였다. 그래서 늘 제도개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국정농단이나 내란과 같은 엄청난 사건이 터져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직후 국회에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 특별위원회는 여야 국회의원 36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였다. 1987년 이후에 최초로 정식으로 구성된 헌법개정을 위한 위원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종료됐다. 당시에 이 과정을 지켜봤던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국회의원들이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회의장에 나와 자리를 지키지도 않았다고 기억한다.
이렇게 헌법개정이 무산될 상황이 되자 대통령이 헌법개정안 발의에 나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3월 헌법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헌법개정안은 투표도 하지 못하고 무산됐다. 국정농단과 국민들의 촛불집회 그리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청난 과정을 겪었지만, 헌법은 한 줄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내란’을 배태한 헌법
그리고 그 이후에는 헌법개정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정치권에서는 없었다. 시민사회에서는 헌법개정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었지만, 정치권에서는 간헐적으로 말만 나왔을 뿐이다. 선거 때에는 헌법개정을 하겠다고 공약해도, 선거가 끝나면 헌법개정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던 와중인 2024년 12월 3일 내란이 발생했던 것이다. 내란의 과정에서도 현행 헌법의 결함이 드러났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의결을 해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계엄을 해제하지 않으면 계엄 상황이 종료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2024년 12월 4일 새벽 1시 1분 국회에서 계엄 해제 의결이 되었지만, 윤석열이 계엄 해제를 발표한 4시 27분까지 수많은 국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것은 헌법 77조 5항이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라고 해서, 국회의 해제 의결이 있어도 대통령의 계엄 해제라는 조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내란을 계기로 헌법개정 문제가 다시 공론화되었다. 내란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대한민국 헌법에 존재하는 허점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지난 63 대선 당시에는 후보자들이 헌법개정을 공약했다.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국정과제 1호로 헌법개정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의 상황을 보면, 헌법개정은 물 건너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대통령은 헌법개정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여당이든 야당이든 헌법개정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38년간 이뤄지지 않았던 헌법개정이기에, 성사되려면 정치권이 제1의 과제로 선정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이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벽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당이든 야당이든 헌법개정을 제1의 과제로 삼고 있지도 않으니, 헌법개정의 전망은 현재로서는 어둡다.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선거
헌법개정만 난관에 부딪힌 것이 아니다. 선거제도 개혁도 표류하고 있다. 대선 당시에 민주당은 선거제도 등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소수정당, 시민사회와 공동선언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민주당 차원에서 움직임이 미약하다. 몇몇 국회의원들이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촉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당 전체 차원에서는 움직임이 없는 것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이런 상황이다.
지금의 추세라면 현재의 ‘나쁜 제도’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르게 될 상황이다. 현 지방선거 제도는 여러가지 점에서 문제가 많다.
첫째, 광역지방의회(시도 의회) 선거는 최악의 불비례성을 보이는 선거이다. 다시 말해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50~60% 정도의 지지율을 얻은 정당이 80~90%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선거이다. 그래서 대구경북과 호남에서는 일당 지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그 지역의 야당이 차지하는 의석이 10% 미만이니, 견제 역할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서는 ‘널뛰기 의회’가 나타난다. 거대 양당이 선거 때마다 번갈아 가면서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부산시의회 의석의 87.23%를 차지했는데,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95.74%의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중앙정치의 바람에 따라 어떤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의석을 싹쓸이하고, 그다음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의석을 싹쓸이하는 것이다. 지역구에서 대부분의 광역지방의원(시도 의원)을 승자독식 방식으로 선출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수도권에서도 이런 ‘널뛰기 의회’ 현상이 계속 발생해왔다.
둘째, 기초지방의회(시군자치구 의회)는 사실상 임명직처럼 되어가고 있다. 거대정당의 공천만 잘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니, 사실상 임명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수도권도 마찬가지이다. 기초의원은 1개 선거구에서 2~4명을 선출하는데, 2인 선거구가 70%를 차지한다. 거대정당들이 장악한 시도 의회에서 기초지방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는데, 2인 선거구 중심으로 선거구를 획정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수도권에서도 2인 선거구에서 민주당이 1명, 국민의힘이 1명씩만 공천하면 사실상 당선이 보장된다. 다른 정당 후보나 무소속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투표 없이 당선될 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에 ‘살당공락(살인마도 거대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고, 공자님도 공천 못 받으면 떨어진다)’의 선거제도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바로 그래서 2인 선거구만이라도 폐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어온 것이다.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서는 민주당이 의원총회에서 ‘지방선거에는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겠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이후에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2인 선거구 폐지를 반대했기도 하지만, 민주당의 개혁 의지도 후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2022년 지방선거에 국한해서 전국의 기초의회 선거구 1,030개 중 30개 선거구에서만 3~5인 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하는 것으로 여야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전체 기초의원 선거구의 2.9%에 불과한 곳에서만 2인 선거구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의미가 별로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2022년 지방선거는 역대 최악의 지방선거가 되었다. 곳곳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속출했다. 인천광역시의 경우, 기초의원 선거구 10곳에서 20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서울의 경우에는 154개 구의회 의원 선거구 가운데 2인 선거구가 98개였는데, 이 중 50개 지역구에서 100명의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도저히 민주국가의 선거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살당공락’의 선거를 계속할 것인가?

주권자의 참여만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
해묵은 숙제인 헌법개정과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서 분명해진 사실은 두 가지이다.
첫째, 국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개정과 선거제도 개혁이 성사되려면, 주권자들이 참여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를 보면, 거대 양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한 상태에서 ‘상대방이 나보다 못 하기’만을 바라는 식의 경쟁을 하고 있다. 내가 잘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잘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상대편과 협상하고 타협을 하는 어려운 숙제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정치권에서 헌법개정이나 선거제도 개혁이 안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헌법개정과 선거제도 개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권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법뿐이다. 헌법개정이나 선거제도 개혁을 다루는 ‘시민의회’가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시민의회를 설치운영하려고 해도 법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개헌 절차법’, ‘정치제도 개혁 공론화법’ 같은 법률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법률에 근거해서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구성하고, 헌법개정이나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해나가야 한다. 지금은 헌법개정의 내용이나 선거제도 개혁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주권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절차를 제도화하는 법을 요구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둘째, 헌법개정의 경우에는 한번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담아내기는 어렵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아무리 시민의회 방식으로 헌법개정안을 만들어도 최종적으로는 국회 의석 3분의 2가 찬성해야 헌법개정 국민투표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국회 의석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는 이 조건을 생각하면, 국민의 모든 요구가 한꺼번에 수용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단계적연속적인 방식의 헌법개정이 현실적이다. 이것을 ‘개헌 절차법’에 명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국가적 차원의 선거가 있을 때마다, 선거와 동시에 헌법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을 법률에 명시하는 것이다.

2026년 지방선거는 어떻게?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헌법개정과 선거제도 개혁이 이슈가 될 수 있을까? 2026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 지금 상황을 보면 쉽지 않다. 여의도 정치는 이미 내년 선거에서의 유불리만 따지고 있다. 게다가 주권자들의 관심도 이런 제도개혁에 있지 않은 상황이다.
‘좋은 헌법’과 ‘좋은 선거제도’는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정치’가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람들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단기적 선거 승리와 싫어하는 정당의 단기적 선거 패배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제도개혁에는 관심이 덜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2026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헌법개정을 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거대 양당이 합의해서 헌법개정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내란의 재발을 방지하고, 정파적으로 의견이 엇갈리지 않는 과제 중심으로라도 헌법개정을 하면 좋겠지만, 그런 ‘협상의 정치’가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리고 현재로선 지방의원 선거제도 개혁도 정치권에서 제대로 논의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방의원 선거제도 개혁은 결국 거대 양당의 기득권 포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눈앞의 정파적 이익보다는 우리 정치의 중장기적인 전망까지 고민할 때 가능한 일인데, 지금의 거대 양당에 이런 일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이런 암울한 전망 속에서도 헌법개정과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말라가는 땅을 보면서, 비가 오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과 ‘어려운 숙제를 성사시킬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192호 공개글 목록

01 농어촌기본소득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 박경철
02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단비를 기다리며 | 하승수
03 숲 생명들을 대신해 종을 울린다 | 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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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보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저서로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녹색당 선언》(공저), 《껍데기 민주주의》(대담집), 《대권에서 분권으로》(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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