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도 5년을 훌쩍 넘어 이제 오는 2016년 3월 26일이면 6주기를 맞는다. 46명의 희생자와 1,200톤급 대잠 초계함의 절단 및 침몰이라는 직접적 피해뿐 아니라 정부의 성급한 발표와 발표 내용의 숱한 의문부호로 군사·외교·사회적 비용도 크게 치렀다. 또한 그 의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언론의 태도 역시 그런 총체적 비용에 한몫을 했다. 누구보다 앞서서 의문을 쏟아냈던 언론들은 정부발표 이후 사건 자체에 대한 관심을 중단했다. 정부발표에서 비합리적이거나 틀린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언론은 외면했다. 하지만 백령도와 평택을 다니며 진실을 찾아내고자 동분서주한 기자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천안함 사건이 꺼림칙하게 박혀 있는 ‘불편한’ 주제이다.
사고 직후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이던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가 의혹을 제기했다 되레 검찰에 기소돼 1심 재판만 5년 넘게 받았다. 신 대표에게 최근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으며, 이제 판결 선고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지난 5년여를 돌아보며 언론의 행적과 법정에서 등장한, 진실규명을 위한 몇 가지 특이사항을 정리해봤다.
천안함 재판정에는 기자가 없다
지난 12월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이흥권 부장판사, 형사2단독) 주재로 열린 신상철 대표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앞서 신상철 대표는 지난 2010년 8월부터 시작해 5년 3개월 넘게 재판을 받아왔다. 공소사실이 30여 개 항목일 정도로 쟁점이 많을 뿐 아니라 핵심 쟁점은 천안함 침몰에 대한 정부발표가 진실한가에 대한 다툼이었다. 명예훼손의 피해를 봤다는 고소·고발인 모두 국방장관, 합참의장, 해군참모총장, 민군합동조사단장 등 사건의 책임자들이다. 그런데도 기자들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재판 방청석에 기자들이 나타난 때는 지난 2012년 6월 최원일 천안함장이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와 5주기인 지난 3월 재판 등 몇 차례 외엔 없었다. 그리고 이번 결심공판 때이다. 현장에 종종 나왔던 김치관 〈통일뉴스〉 기자와 오철우 〈한겨레〉 기자 외에 다른 기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디어오늘〉은 처음부터 모든 공판을 취재했으며, 법정에 오지 못했을 때도 누락하지 않고 지켜봐왔다.
대부분의 언론사에 보도된 신상철 대표의 결심공판 기사는, 간략한 검찰 구형 소식이거나 검찰 최종의견진술만 일방적으로 반영된 것이 주류였다. SBS, YTN, KBS, OBS 등 방송사와 〈뉴스1〉, 〈머니투데이〉, 〈조선일보〉, 〈이데일리〉 등 구형 소식을 전한 언론사는 모두 검찰 입장만 보도했다. 변호인 반론이나 변호인의 최후변론과 신 대표의 최후진술을 함께 실은 곳은 〈연합뉴스〉, 〈뉴시스〉, 〈쿠키뉴스〉, 〈헤럴드경제〉, 〈포커스뉴스〉 정도였다. 〈한겨레〉는 오철우 기자가 지난 11일자 칼럼으로 “(천안함에 대한) 설명되지 않은 물음이 사회적 논란거리로 남는다면 논쟁은 계속돼야 한다”며 “우리사회가 그 논쟁의 장을 마련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법정이 그마나 공론장의 구실을 해왔다는 점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썼다.
이런 보도 행태는 천안함 5주기였던 지난 3월에도 나타났다. 3월 23~ 24일자 일간지 등의 천안함 5주기 보도는, 최원일 당시 천안함장 인터뷰, 유가족 인터뷰, 음모론 비난 등으로 채워져 있을 뿐 침몰 원인에 대한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을 재조명하거나 검증하는 기사는 없었다.
반대로 ‘황당한’ 추측 기사가 눈에 띄었다. 〈조선일보〉는 24일자 6면 ‘북의 천안함 폭침 직전, 기상청 접속 갑자기 급증’에서 “2월에 하루 평균 24만 명이 접속하던 웹사이트에 30~40만 명이 몰렸다”며 “증가분에 해당하는 접속자들의 인터넷주소(IP)가 대부분 중남미·아프라카란 점이었다”고 썼다. 수십만 명이 서해상의 조류 파악을 위해 아프리카로 경유해 기상청에 접속했다는 추측이다.
3월 23일 천안함 재판에 나온 변호인 진술을 왜곡한 TV조선 보도도 있었다. TV조선은 ‘북한 어뢰 아니다…5년 지나도 여전한 의심’이라는 뉴스에서 신 대표 측 변호인이 “국방부가 공개한 북한의 어뢰 설계도가 정말 북한의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며 “해군이 보안을 이유로 북한 어뢰 설계도의 일부만 공개하자, 북한의 것이 맞다면 설계도를 전부 공개하라고 물고 늘어졌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신씨 측은 또 국방부가 공개한 천안함 폭침 당일 열상감지장비(TOD) 동영상도 믿지 못하겠다며 현장 재검증을 요구했다”고 방송했다.
합조단 보고서에 게재된 어뢰 사진과 어뢰 설계도 크기가 다르니 설계도 원본을 공개하라는 변호인 주장을 이런 식으로 맥락을 왜곡해 보도한 것이다. 이흥권 재판장도 당시 “더 상세한 도면을 공개하는 것이 국익 침해 우려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으나 보도는 이를 외면했다.
무엇보다 지난 10월 재판부 현장검증과 증거조사에서 어뢰 설계도상 크기와 1번 어뢰추진체의 실측 크기가 다른 것으로 확인이 됐다. 이 사실도 이 매체를 포함해 대부분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았다.
최원일 천안함장의 5주기 인터뷰도 반성이나 고백에 관한 질문은 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과 공격을 담는 데 급급했다. 최 함장 인터뷰에는 “군함 어뢰공격을 감행할 집단이 북한 외에 이 지구상에 또 있나?”, “과학적 조사 결과를 못 믿는다는 것은 정부와 군에 대해 맹목적으로 불신하는 일부 인사들이 진실을 왜곡해 선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닐까” 등 일방적인 주장투성이였다.
5년 전 적극적인 천안함 취재를 했던 KBS의 한 중견 기자는 지난 3월 24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최원일 인터뷰를 그대로 싣는 것은 언론이 추모와 확성기 도구로 전락한 것이며, 진정한 추모의 의미를 망각한 것”이라며 “책임자 처벌도 하지 않은 문제를 그냥 넘기는 ‘캘린더 기사’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정부 때부터 자행된 언론탄압 탓에 실체를 규명하려는 시도조차 사상검증의 대상이 됐다”며 “언론 역시 ‘묻지도 말라’고 하니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보수 신문뿐 아니라 〈한겨레〉, 〈경향신문〉 등도 천안함 법정에 출석한 증인의 증언 취재에 소홀한 것과 관련해, 김상균 전 MBC PD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현상을 지적했다. 김보근 〈한겨레〉 기자는 “편집국 간부들의 판단이었을 텐데, 제가 거기에 대해 뭐라고 대답하기가 어렵다”며 “다만 뉴스가치로 볼 때 새롭지 않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김 전 PD는 자신의 논문에 썼다.
의혹 제기에 앞장설 때는 언제고
언론의 천안함 보도 태도와 관련해 조·중·동의 천안함 사건 보도를 분석한 연구논문도 눈여겨볼 만하다.
김상균 전 MBC PD는 〈보수언론의 천안함 침몰 사건 보도에 관한 사례연구〉를 제출해 지난 8월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언론매체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 전 PD는 보수언론이 탈북자 등 출처가 모호한 소스를 근거로 북한 소행설을 추정해왔으며 ‘3일만 참아주면’과 같은 전쟁불사론을 펴온 반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척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초기부터 보도된 이른바 북한의 ‘인간어뢰설’의 소스가 탈북자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 자폭임무 인간어뢰 부대 있다’는 〈동아일보〉 기사(2010년 3월 29일)의 근거는 탈북 시인 장진성 씨 주장이었으며, ‘북 해상저격부대 소행 가능성 제기’(〈조선일보〉, 2010년 3월 30일)는 고위 탈북자들이 “기뢰 매단 2인용 잠수 어뢰정 타고 침투 땐 감지 안돼”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인간어뢰설 보도의 백미인 그해 4월 22일자 〈조선일보〉의 ‘북 인간어뢰, 바닷속 자살폭탄’에서는 탈북 시인 장진성 씨가 취재원으로 등장한다. 장씨는 “북한의 인간어뢰부대는 잠수함 승조원들보다 우대받고 있으며 모든 훈련이 자폭 위주로 돼 있다”고 말했다고 〈조선일보〉는 보도했다.
이 밖에도 사건 발생 나흘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중·동의 보도에는 천안함 침몰 사고의 피해 현황과 기뢰폭발 가능성 등 몇 가지 원인에 관한 추정, 원인 진단에 관한 신중설, 북 공격 가능성, 버블효과, 북한 인간어뢰, 천안함의 내역 등 다양한 관점이 나타났다고 김 PD는 분석했다. 〈동아일보〉의 경우 3월 28일자에서 “군과 정부는 북한의 어뢰공격 가능성은 적다면서도 북한과의 관련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백령도 인근서 폭발로 선미 구멍’)고 보도하기도 했다.
더구나 조·중·동은 초기에 어뢰보다 기뢰 가능성에 대해 더 많이 보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해역 수심에 대해서도 20~24m라고 보도됐다. 그러다가 4월부터 어뢰 잔해를 찾아야 한다는 기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고 김 PD는 전했다. ‘아이서퍼’로 검색한 결과 천안함 보도 중 ‘파편’이라는 키워드를 지닌 기사 수가 4월 2일부터 5월 14일까지 조·중·동에서 120개에 이르렀다고 김 PD는 논문에 썼다.
이후 민군합동조사단이 5월 20일 북한 어뢰에 의한 공격이라고 발표한 뒤부터 이들 신문은 전쟁불사론을 펴는 데 앞장섰다. 〈조선일보〉는 5월 24일자 칼럼 ‘국민의식, 천안함 이전과 이후’에서 “천안함 테러는…안보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해온 한국인들에게 던져진 경고”라고 주장했으며,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같은 날짜에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심 목표를 폭격해 전쟁을 승리로”라고 주장했다. 김진 위원은 “천안함이 피격된 만큼 잠수함 기지를 응징하는 것은 정상적인 나라에서 내놓을 수 있는 정상적인 선택”이라며 “정의를 실행하려면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당시 서재정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학 교수와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의 흡착물질에 대한 의혹 제기 등 과학적 의문은 조·중·동에서 거의 묵살되거나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김 전 PD는 2010년 6월 2일부터 7월 10일까지 〈조선일보〉는 서재정 교수에 대해 1회, 이승헌 교수에 대해 3회 보도한 반면, 〈한겨레〉는 9회 보도했다고 전했다. 또한 7월 11일~11월 24일 서재정 교수 기사는 〈조선일보〉 1회(〈한겨레〉 5회), 이승헌 교수 기사는 〈조선일보〉 4회, 〈중앙일보〉 2회였다는 것(〈한겨레〉 8회). 그 이후인 11월 25일부터 2015년 4월 30일까지 서재정 기사는 5회(〈조선일보〉 1회, 〈중앙일보〉 3회, 〈동아일보〉 1회/〈한겨레〉 3회), 이승헌 21회(〈조선일보〉 5회, 〈중앙일보〉 8회, 〈동아일보〉 8회/〈한겨레〉 11회)였다고 김 PD는 썼다.
2010년 7월 9일, 서재정·이승헌 교수의 도쿄 외국인특파원협회 기자회견에 대해 〈조선일보〉는 ‘음모론자들의 외국 회견’으로, 10일자엔 ‘당신들은 한국인이면서 왜 정부발표를 못 믿나’라는 제목의 칼럼과 기사를 썼다.
미국 잠수함 전문가인 전 ‘안테크’ 대표 안수명 박사와, 국제학술지에 잠수함 충돌 가능성을 논증한 논문을 게재한 김황수 경성대 명예교수에 대해서도 보수언론은 철저히 배제했다. 안 전 대표는 북한 잠수함에서 어뢰를 발사해 천안함을 두 동강 냈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밝혀 큰 반향을 낳았다. 김황수 교수는 천안함 지진파의 고유진동수(조화주파수)와 113m 크기의 잠수함이 천안함과 충돌 시 나오는 주파수가 동일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좌초 후 기뢰 폭발 가능성을 담은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보고서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축소하거나 비난하는 데 급급했다. 유용원 기자는 2010년 9월 10일자 데스크 칼럼에서 “(합조단 조사와) 3명이 와서 일주일간 그야말로 ‘둘러본’ 러시아 측 조사를 같은 비중으로 취급한다는 자체가 난센스…엄밀히 말하면 러시아의 활동은 ‘조사’라고 할 수 없으며 ‘참관’이라고 불러야 옳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1주기 특집 2011년 3월 23일자 〈조선일보〉 기사는 “‘조작설 근거’ 러시아 보고서 실체 없는 ‘괴담’으로 드러나”였다.
김상균 전 PD는 “보수언론은 북한 소행설 이외의 다른 원인 프레임에 대해 축소, 은폐 혹은 무보도(배제)로 대응함으로써 북한 소행설 프레임에 대한 대항적 프레임을 철처히 배척했다”며 “이후 천안함 사건은 보수언론과 권력에 의해 개인의 사상을 검증하는 수단이 되고 이견을 제기하는 이는 모두 종북몰이의 대상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 난삽한 내용을 국민에게 날것으로 내놓기 전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검증하도록 하는 신뢰 보강 절차를 밟아야 했다.…두 번 열리고 활동을 마감한 국회 천안함조사특위를 즉시 재가동해 국정조사에 버금가는 강도로 이 최종 보고서에 대해 토론하고 검증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는 〈한겨레〉나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과 같이 천안함 의혹을 제기해온 매체의 주장이 아니다. 바로 〈조선일보〉 사설의 한 대목이다. 천안함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발표 이튿날인 2010년 9월 14일자 사설이다. 〈조선일보〉조차도 정부발표에 대해 검증을 요구한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의문점은 〈조선일보〉에만 있던 것이 아니다. 방송뉴스는 이런 정도를 넘어서 의혹을 가장 앞장서 제기한 의혹의 보고였다. 신상철 대표가 허위주장을 했다며 검찰이 3년 구형을 한 대표적인 주장은 좌초 후 미상 물체와의 충돌 가능성이다. 이 주장의 근원은 모두 방송이었다.
천안함 침몰 제1보로 한국언론대상까지 받은 김문경 YTN 기자가 보도한 내용에 등장하는 것은 ‘충돌’이었다. 김 기자는 2010년 3월 26일 밤 10시 42분 〈YTN뉴스특보〉에서 “사고와 관련해 군 당국으로부터 간접적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 해군 초계함이 ‘뭔가에 부딪힌 뒤에 충돌’한 것으로 군 관계자가 전하고 있습니다”라며 “뭔가에 충돌한 부분이 바위에 충돌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에 충돌했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또한 〈이투데이〉 역시 3월 27일 새벽 1시 30분에 송고된 기사에서 “군 소식통은 정확한 사고원인은 알 수 없지만, ‘무언가에 충돌한 뒤 침몰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좌초와 관련해 KBS는 3월 30일 〈뉴스9〉 ‘폭발설 4가지 의문’에서 화상 환자가 없고, 대량 부유물이 없으며, 화약 냄새도 없을 뿐 아니라, 함장 증언은 ‘폭발’이 아닌 ‘충돌’이었다는 점을 제시했다. KBS는 “배가 두 동강 날 정도의 폭발력이라면 화상 등의 부상자가 속출해야 하지만 화상 환자는 1명도 없고, 함수 부분에서 구조된 58명도 대부분이 타박상과 일부가 골절상”이라며 “배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통상 파손된 함체와 배 안에 있던 물건 등이 대량으로 주변 바다에 흩어지지만 천안함의 경우 부유물이 없었고 일부 수거한 것도 불에 탄 흔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KBS는 “당시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함장도 ‘폭발’이 아닌 ‘충돌’을 침몰 원인으로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KBS는 “군 내 폭탄감식 전문가들도 오늘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해상무기에 의한 폭발로 확증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국방부에 전달했다”며 “폭발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잇따르면서 암초 충돌에 의한 침몰 가능성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KBS는 그해 4월 7일엔 한주호 준위가 작업하다 사망한 장소가 제3의 지점이었다는 보도까지 했었다. 함수와 함미가 침몰해 있던 곳이 아니라 그 중간인 용트림바위 앞의 부표가 설치된 곳이라는 내용이었다. 함수와 함미가 아닌 다른 구조물, 즉 잠수함이 아니냐는 의혹에 결정적인 단서가 된 보도였다. 이 뉴스는 해군이 강력히 부인하면서 다음 날 반론보도까지 방송하면서 온라인에서마저 삭제됐다.
MBC는 4월 17일 〈뉴스데스크〉에서 “일각에서는 7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측이 폭뢰를 개량해 백령도 연화리 앞바다에 설치했던 전기식 기뢰가 천안함이 연안에 근접하자 바닥에서 솟아올라 터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MBC는 지난 2001년 연화리 앞바다에서 부표를 설치하는 작업을 했던 한 전역 장병의 증언을 전했다. “15~20m 깊이에 30~ 50m 간격으로 기뢰가 설치돼 있었고, 어구나 로프에 감겨 있어 위험해 보였다.”
법정에서 정부발표의 허점·오류가 증명됐으나
그렇다면 지난 5년 넘게 법정에서 이뤄진 천안함 관련 증인들과 증거는 어떻게 나타났는지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북한 어뢰의 수중 폭발에 의한 침몰이라는 정부발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이 됐는가. 입증에 실패했다는 것이 신상철 대표 변호인 측의 주장이다. 적어도 객관적인 오류들이 있다.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이른바 ‘1번 어뢰추진체’의 진위에 대해 합조단 관계자 그 누구도 어뢰 설계도 원본을 본 일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뢰 설계도 검증 과정에서 군이 제시한 책자의 어뢰 설계도면이 국산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파일(hwp)로 돼 있었다고 신 대표 법률대리인인 이강훈 변호사가 밝혔다. 또한 어뢰 설계도에 표시된 어뢰의 크기와 수거한 1번 어뢰추진체의 실측 크기가 상이하게 나타났다. 이는 재판부가 검증 과정에서 측정했을 때 확인됐다. 또한 폭발재라던 백색 물질에 대해 이근득 합조단 책임자는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고 시인했다. 또한 수중 폭발로 나타나야 할 물기둥 목격자의 부재, 수면 아래에 보여야 할 섬광의 부재, 사망자와 생존자의 경미한 상처와 크지 않은 충격, 멀쩡한 형광등의 존재, 청각장애가 없는 생존자와 사망자 등이 법정에서도 재확인됐다. 폭발 시 어느 정도 충격이 가해져야 천안함을 두 동강 낼 것인지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실제와 달랐다. 시뮬레이션대로 하면 충격 지점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김수길 전탐장(수면하침실)과 김기택 음탐사(함교 뒤편 음탐실)는 0.3초 만에 2~3m 이상 떠올랐어야 하나 이들은 충격 순간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지난 5년여의 재판은 정부발표의 허점과 오류를 법적으로 확정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 재판을 지켜본 이들의 한결같은 평가였다. 그런데도 정작 의문을 해소하고, 정부발표의 석연치 않은 구석을 검증해야 할 언론은 천안함 사건을 이미 끝난 문제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보수언론의 천안함 보도 분석 박사논문을 쓴 김상균 전 PD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인터뷰했던 기자들도 천안함 언급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피한다”며 “개별적으로 친한 언론인들도 부담스러워할 정도”라고 전했다. 김 전 PD는 “합조단 발표 결과가 진실일 것으로 믿는 사람은 극소수이지만, 북한 소행 외에 책임을 물을 대상이 있느냐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당시 기사를 쓰지 않았던 기자들은 이미 매년 몇 주기마다 쓰는 기사가 돼버린 것 아니냐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언론사 고위 간부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발표 이후 5년여가 지났다 해도 천안함 사건은 기자들 가슴 한곳에 꺼림칙한 채로 남아 있다”며 “어느 시점이 되면 결국 기자들도 (진실규명을 위해) 달려들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언론사의 한 과학담당 기자도 “TNT 250~360kg의 어뢰가 폭발했다면 시신과 생존자의 겉모습이 멀쩡한 것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