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후반, 결혼하고서 신혼살림을 막 차렸을 때의 일이다.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사다 보니 가습기가 하나 딸려 왔다. 겨울철만 되면 목감기로 고생하던 때라서 가끔씩 가습기를 켜놓고 자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며칠 가습기를 쓰다 보니, 안쪽에 물때가 끼기 시작했다. 필요할 때마다 물을 갈긴 했지만 그 안에서 증식할 ‘세균’도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장을 보러 우연히 들른 마트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보았다. “이거 하나 살까?” “찜찜하지 않아?” “왜?” “소독약을 끓여서 밤새 공기 중으로 내뿜는 격이잖아?” “그렇지.” 아내와 그런 무심한 대화를 나누고 나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 겨울 이후로 가습기는 게으른 주인에게 버림받고 집 안 어딘가에 처박혔다.
그 시점에 이미 재앙은 진행 중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겨울만 되면 대학병원 응급실에 어떤 약을 써도 듣지 않는 폐 질환 환자들이 찾아왔다. 이들 가운데는 산모, 갓 태어난 아기를 포함한 영·유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몇몇은 속수무책으로 폐가 망가지면서 목숨을 잃었다. 처음에 의사는 신종 바이러스를 의심했지만,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2011년 4월, 서울아산병원에 같은 증상을 보이는 20~30대 산모 7명이 입원했고, 그 가운데 4명이 사망했다. 잇따라 영·유아도 비슷한 증상으로 사망했다. 바이러스나 세균 전염병이 아닌 다른 원인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질병관리본부가 중심이 되어서 역학조사에 나섰다. 2011년 8월 31일, 결국 범인이 지목되었다. 바로 가습기 살균제였다.
2016년 6월 현재, 두 차례에 걸친 정부 조사에서만 사망자는 146명이다. 공식 인정받지 못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사망자 숫자는 464명에 이른다. 보수적으로 추산하더라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수가 약 800만 명에 이른다니,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죽거나 혹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안방의 세월호’라는 표현이 정말로 와 닿는 끔찍한 참사다.
가습기 살균제와 얽힌 온갖 일들을 취재하고 보도하면서 2000년대 후반의 어느 날 아내와 했던 무심한 대화가 문득문득 떠올랐다. 먼저 안도의 한숨―나는 살았다. 다른 하나는 어쩔 수 없는 미안함―그때 나는 왜 문제를 알고도 무심히 지나쳤을까? 바로 여기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시장의 합리성’, 맘몬을 키우다
한동안 의사나 과학자를 만날 때마다 가습기 살균제의 사용 여부를 확인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상당수 의사나 과학자가 안방의 가습기에 살균제를 집어넣고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했던 것이다. 다들 자기 손으로 직접 그런 재앙의 씨앗을 뿌린 사실에 어처구니없어했고, 다행히 무사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은 굳이 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금은 전 국민이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본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 가운데 하나인 폴리헥사메틸구아니딘(PHMG)이 적절한 예다. 송기호 변호사의 집요한 추적으로 확인되었듯이, 애초 PHMG는 카펫 등에 ‘뿌리는’ 살균제 용도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들어왔다. 이 용도로만 사용되었더라면, 사람 목숨을 잃는 것과 같은 심각한 문제로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물에 희석해서 카펫에 뿌리거나 소독용으로 물티슈에 적시는 것만으로는 PHMG 덩어리가 커서 인체에 직접 흡입되지 않으니까. 그런데 가습기는 이 PHMG 덩어리를 쪼개고 쪼개서 인체가 흡입하면 폐 속 깊숙이 박히도록 만든다.
그러고 보니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은 미세먼지와도 닮았다. 먼지는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자동차 한 대, 공장 하나 없는 산골 마을에서도 우리는 숨 쉴 때마다 엄청난 양의 먼지를 흡입한다. 우리는 이렇게 흡입한 먼지를 적당히 거르는 장치를 몸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먼지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요즘 논란이 되는 미세먼지는 이런 보통 먼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동차나 공장에서 ‘만들어진’ 아주 작은 먼지는 대부분의 보통 먼지와는 다르게 우리 몸속의 거름 장치를 무시하고 단번에 폐 깊숙이 박힐 수가 있다. 그렇게 폐에 박힌 먼지는 폐뿐만 아니라 혈관, 심장 심지어 뇌까지 공격한다.
고백하자면 “소독약을 끓여서…” 이렇게 말하며 가습기 살균제를 저어한 사람은 ‘과학 담당’ 기자인 내가 아니라 과학에 문외한인 아내였다. 이렇게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을 왜 대부분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심지어 의사나 과학자 같은 전문가조차도 왜 전혀 의심 없이 살균제를 가습기에 넣었을까? “도대체 왜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은 의사·과학자의 대다수는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답했다. “옥시 같은 대기업이 그런 위험한 상품을 내놓을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렇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시작과 끝에는 우리 시대 최고의 신(神) 맘몬, 즉 기업이 있었던 것이다.
옥시래킷벤키저, SK케미컬, 롯데마트, 이마트 같은 기업은 가습기에 덧붙여 파는 새로운 소모품 시장을 개척하고자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했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흡입독성 실험 같은 사전 안전점검은 이뤄지지 않았다(이런 일련의 과정은 기업이 맹신하는 ‘시장의 합리성’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옥시, 롯데마트, 이마트 같은 브랜드를 내세운 맘몬에 홀린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이 위험한 상품을 스스로 샀다.
그러니까 가습기 살균제를 둘러싼 참사는 기업의 민낯을 가장 참혹한 방식으로 드러낸 사례로 기억해야 한다. 보통사람이 신뢰하는 ‘시장의 합리성’은 경우에 따라서는 시장의 한 행위자인 소비자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끔찍한 결과를 낳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것이었음이 이번 참사로 확인되었다.
이렇게 시민의 생명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 때까지 제 역할을 못한 국가는 어떤가? 생각해보자. 국가를 조롱하고 그 역할을 기업에 넘기는 것을 당연한 시대의 추세로 인식한 당사자가 바로 우리가 아닌가? 그 결과 국가가 기업에 포섭당해 ‘기업국가’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기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한 몸이 된 국가와 기업(기업국가)이 어떻게 시민을 공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로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업국가가 존재하는 한 이런 비슷한 일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과학기술사회의 악
2013년 후배 기자를 닦달해 전국에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과의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그때만 하더라도 가습기 살균제 이슈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적었던 탓에, 피해자 가족의 분하고 가슴 아픈 사연을 널리 알리는 것이 인터뷰의 목적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후배 기자가 듣고 온 사연을 편집해서 기사로 올릴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특히 이런 대목이다. 16개월 손녀를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떠나보낸 한 할머니는 지금도 자책에 잠을 못 이룬다. 손녀를 기르는 아들 내외에게 가습기 살균제를 사준 것이 바로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원인 미상 폐 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탓이라는 사실을 접하고도 한동안 아들 내외에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너무 미안해서. 지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을 가장 괴롭히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사랑하는 아기, 아내 또 남편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를 바로 ‘내 손’으로 샀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아기, 아내, 남편을 죽인 당사자는 바로 ‘나’다. 어느 순간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어 자책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반대편은 어떤가? 살균제에 들어가는 PHMG를 처음 합성한 과학자, 그 PHMG로 살균제를 만들어낸 엔지니어, 가습기 살균제 상품을 만들고 판매한 기업의 직원들, 제조와 판매를 승인하고 진두지휘한 기업가 등 이들은 분명히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말한다. “우리는 몰랐다!” 검찰 수사 결과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을 어느 정도는 알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게 가습기 살균제로 사람의 폐를 망가뜨리고 목숨을 앗아가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가해자인 그들도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나도 또다른 피해자라고.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고, 가해자도 피해자로 바뀌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는 바로 이 질문에, 수전 니먼이 《현대 사상에서의 악》(2004)에서 현대 윤리의 가장 심각한 딜레마로 비인격성(im―personality)을 언급한 사실을 떠올렸다. 니먼에 따르면, 우리는 더이상 윤리의 핵심적 문제로 악한 ‘의도’에 초점을 맞출 수가 없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그렇게 할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악을 저지를 수 있다. 미세먼지를 둘러싼 상황은 또다른 본보기이다. 당신은 연비가 좋기 때문에 혹은 경유가 싸기 때문에 혹은 출력이 좋기 때문에 디젤엔진이 달린 자동차를 구입했다. 이렇게 판단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의도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당신의 디젤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면서 배출한 미세먼지는 도로변에 서 있던 누군가의 폐 깊숙이 박혀서 ‘그도 모르는 새’에 폐, 심장, 뇌에 질환을 유발하고 수명을 단축한다. 당신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둘러싼 참사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살균제에 들어간 화학물질을 흡입했을 때 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해당 기업의 기업가와 노동자조차도 그것을 팔아서 소비자의 목숨을 앗아갈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다시 강조하자면, 이 모든 의사결정은 ‘시장의 합리성’에 입각해 이뤄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고통을 당했다. 그들은 그렇게 할 의도가 없었음에도 돌이킬 수 없는 악을 저지른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거대한, 또 복잡한 시스템이 과학기술과 결합할 때(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과학기술사회’의 본질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디서든 가공할 만한 악이 등장할 수 있다.
그렇게 등장한 악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또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가해자를 피해자로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낳으며 사태의 파악과 문제의 해결을 더욱더 어렵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의도와 행위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만 따지는 데 익숙한 법이나 규범은 그 한계를 드러내며 우왕좌왕한다.
과학기술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의도치 않은 악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하지만 느슨한 성찰과 나태한 실천만으로는 이런 자각이 쉽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같은 일이 언제든지 반복될 것이라고 비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방에 악이 똬리를 틀고 있는데 보통사람이 어찌 그것을 피할 수 있는가?
살균제를 다시 생각한다
“왜 유독 한국에서만 가습기 살균제가 필수 용품처럼 자리 잡게 되었을까?” 2016년 6월 3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공론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안종주 박사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어서 “세균에 대한 지나친 공포 문화, 특히 언론의 일그러진 세균 공포 심어주기가 그 원인”이라고 답했다.
우리 몸속에는 약 10조 개의 인간 세포뿐만 아니라 약 100조 개의 세균이 함께 살고 있다. 장내세균의 존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렇게 인간과 동거하는 미생물은 소화, 대사, 면역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체내 세균은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진화해온, 그 자체로 인간의 한 부분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병원성 세균 역시, 인간과 함께 지구 생태계를 공유하는 일원으로 접근하면 다른 식의 평가가 가능하다. 인간과 병원성 세균 역시 상호 공존이 가능한 균형상태를 지향해왔다. 그런 점에서 전쟁, 비곤, 기아, 난개발 등 비정상 상황에서 전염병이 겹쳐서 퍼지는 것은 바로 이런 균형상태가 깨진 데 대한 세균의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안종주 박사의 지적을 음미해보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다른 시각에서 성찰해볼 수도 있다. 인간 중심적인 시각을 버리면 지난 100년간은 인간과 세균 사이의 전쟁사로 규정할 만하다. 1928년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추출한 화학물질로 세균을 죽일 수 있음을 확인하면서 항생제가 등장했다.
1940~1950년대부터는 석유산업의 부산물로 등장한 각종 화학물질이 살충제·살균제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농약의 시대’가 열렸다. 그 이후 각종 화학물질은 ‘위생’과 ‘청결’에 대한 강조와 함께 병원과 논밭을 넘어서 일상생활 곳곳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이런 세균과의 전쟁의 결과는 참담했다.
DDT로 대표되는 화학물질 기반의 살충제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폭로한 것은 레이첼 카슨이었다. 그는 1962년 《침묵의 봄》을 통해 합성 살충제가 초래한 생태계 교란을 고발했다. 이어서 먹을거리에 남은 독성 물질, 해충과 세균의 내성, 생태계 파괴 등을 낳은 농약의 문제점이 여기저기서 폭로되기 시작했다. 항생제 내성을 가진 슈퍼세균도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1996년, 테오 콜본은 결정타를 날렸다. 그는 《도둑맞은 미래》를 통해서 화학물질이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생식기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제기했다. 성호르몬과 구조가 흡사한 환경호르몬(내분비교란물질)이 생식기능에 장애를 일으켜 종의 보존 자체를 위협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화학물질에 대한 다각도의 문제제기가 수십 년간 이뤄졌음에도 일상생활에서 그것의 비중은 오히려 커지기만 했다. 단적인 증거가 2009년 독감(‘신종 플루’)의 유행과 함께 우리사회에 확산된 손 세정제다. 어쩌면 손 세정제 유행은 몇년 뒤에 확인될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예고하는 일이었다. 사실 일반 비누를 이용해서 흐르는 물에 손을 씻는 것만으로도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하지만 2009년을 기점으로 유행병에 대한 공포, 청결에 대한 집착,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 맞물리면서 손 세정제가 병원은 물론이고 공공장소, 더 나아가 집 안까지 파고들었다.
그 중심에 옥시의 손 세정제(‘데톨’)가 있었다. 데톨은 옥시의 기막힌 마케팅 전략의 결과물이다. 데톨은 비누에 비해서 오히려 세정 효과는 떨어지는 반면에, 피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과 발암 의심 물질을 함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데톨을 사용하는 일은 세정 효과는 떨어지는 유해 물질을 몸에 좋다고 발라댄 것이었다. 데톨로 상징되는 세균에 대한 혐오와 화학물질 애호는 가습기 살균제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일상생활로 들어오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에도 세정제, 화장품, 방향제 등 온갖 화학물질이 여전히 일상생활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세균 혐오, 화학물질 애호의 관행 역시 바뀌지 않음은 물론이다.
엄밀히 말하면 ‘살균제’는 어불성설이다. 종별로 독특한 생리 현상이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지구상의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공통의 생명현상을 따른다. 다르게 말하면, 세균이나 해충을 죽일 수 있는 살균제는 인간과 같은 포유류에도 어떤 식으로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당연한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인간을 세균과 똑같은 지구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 인식하지 않는 뿌리 깊은 인식에 연원이 있다. 하지만 가습기의 세균을 죽일 목적으로 넣은 살균제가 결국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듯이, 인간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이것을 깨닫지 않는 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또다른 형태로 반복될 것이다.
생물학적 시민권의 등장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뒤늦게나마 공론화된 것은 직접적으로는 갑작스런 검찰 수사 탓이다. 하지만 그런 검찰 수사가 가능했던 데는 자신의 상처 혹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에 굴복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한 피해자와 그 가족 또 그들을 묵묵히 지원하며 공론화에 앞장선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역할이 컸다.
아드리아나 페트리나는, 우크라이나 민주화 이후 체르노빌 인근 지역 시민들이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1986) 피해 보상을 국가에 요구하는 움직임에 주목하고 나서, 2002년 ‘생물학적 시민권’ 개념을 새롭게 내놓았다. 근대 시민권의 기저에 있었던 ‘생명의 권리’가 드디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공론화되고, 정부가 마지못해 진상 규명에 나서고, 피해자 보상이 논의되는 모습 역시 생물학적 시민권이 전면에 등장한 모습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약 800만 명 이상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었고, 앞으로 그것이 시민의 건강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을 염두에 둔다면 생물학적 시민권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 대목에서 시민권의 한 구성요소로서 생물학적 시민권이 최근에야 주목받는 현상을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1949년 토머스 마셜은 서유럽의 시민권이 ‘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사회적 권리’로 확장되어왔다는 고전적인 주장을 펼쳤다. 마셜은 이런 시민권의 확장 과정을 일종의 역사적 진보 과정으로 이해했다. 알다시피, 시민권의 첫 단계(시민적 권리)의 중요한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죽임을 당하지 않을 권리’다. 그것은 국왕, 귀족 등이 자의적으로 인신을 구속하고 때로는 신체를 훼손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전근대사회의 질곡에서 근대의 시민은 자유롭다는 선언 또 그런 권리를 얻는 실천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민적 권리가 획득된 지 200년이 지난 지금 체르노빌 사고, 후쿠시마 사고, 미세먼지의 위협,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이어지는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태가 계속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또 그것에 대응해서 촉발된 생물학적 시민권에 대한 새삼스러운 관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사태는 우리가 당연시해온 시민권에 얼마나 심각한 공백이 있는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과학기술과 결합된 거대한 시스템이 굴러가는 과정에서 시민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말한다. 즉, 근대 이후 우리가 쌓은 성과(과학기술사회)가 바로 시민권의 근간인 생명 그 자체를 위협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단지 ‘일탈한’ 기업의 탐욕, ‘무능한’ 국가의 태만, ‘순진한’ 시민의 부주의가 빚어낸 우발적인 사건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참사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에 버금가는 일종의 문명위기의 징후로 포착해야 한다. 바로 이런 절박한 인식이야말로, 다시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는 실천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