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주 지음 《빼앗긴 숨―최악의 환경비극, 가습기살균제 재앙의 진실》(한울, 2016년)
30년 경력의 환경·보건 전문기자인 저자는 저널리스트인 동시에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은 환경·보건 분야의 전문가이며, 석면추방운동 등을 해온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2013년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조사에 착수했을 때 저자는 조사자로 참여했고, 전국의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삶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았다. 이후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고,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피해자들과 한 몸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10월 4일 활동 종료한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민간 전문위원으로서 함께 활동하면서 저자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베테랑 환경전문기자, 환경·보건 박사, 환경운동가라는 이력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나 ‘실천적 지식, 행동하는 지성’과 같은 표현을 쓸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저자다.
저자의 말대로, 올해 1월 검찰이 뜬금없이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늑장)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모든 것이 일순간에 바뀌었다.” 19대 국회에서 이 문제를 4년간 다뤄온 나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대한민국에서 마술쇼가 벌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배신감”도 느꼈다. 2011년 8월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영유아·산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 미상의 급성 폐질환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으나, 지난 5년 동안 한국사회는 국민적 분노는커녕 국민적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다가 올해 초 갑작스런 검찰수사 착수에 비로소 언론과 여론이 폭발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20대 국회가 국정조사특위를 구성한 것도 여소야대라는 여건의 변화뿐만 아니라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거나, 국가적 재난이 개인의 불운으로 기록되는 역사적 비극은 피할 수 있었기에 뒤늦었지만 세간의 관심에 감지덕지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2011년 8월 바로 그때 한국사회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응당하게 반응했더라면 이후에 벌어진 크고 작은 환경피해·환경사고가 줄어들지는 않았을까? 19대 국회 임기 내에도 빈번하게 발생했던 화학사고들 그리고 사건의 피해자들,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다른 미래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런 덧없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화학사고·환경사고뿐 아니라 ‘안전’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그때 일어났다면, ‘4월 16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 또는 미련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2011년 여름, 우리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과 분노를 가졌다면, 적어도 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지난 5년 동안 고통스런 몸과 마음을 이끌고 거리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목놓아 외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 과정이 피해자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이었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국가는 무엇을 하는가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여러가지 상식적인 의문을 낳는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왜 한국에서만 발생한 것인지, ‘가습기살균제’라는 제품이 왜 한국에서만 판매되었는지, 어떻게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제품에 온갖 광고문구가 버젓이 달릴 수 있었는지, 나아가 어떻게 KC(국가통합인증)마크까지 획득해서 소비자에게 안전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는지, 왜 피해자들은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피해구제를 받지 못했는지, 왜 검찰은 5년 동안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는지, 국가는 왜 문제해결에 직접 개입하기를 회피하고 피해자들과 가해 기업 간의 법적 다툼을 방관했는지 등등,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들여다볼수록 납득이 안되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나에게 남긴 화두는 하나다. 여전히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마치 늪처럼 점점 빠져드는 의문은, 왜 지난 5년간 한국사회가 이 사건에 무관심했는가 하는 것이다. 앞의 의문점들이 가해 기업 또는 정부나 수사기관의 생리에 대한 것이라면, 나의 의문은 바로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가습기살균제는 구하기 힘든 물건도 아니다. 15년 이상 1,000만 개 가까이 팔린 제품이고, 대형할인점뿐만 아니라 동네 슈퍼마켓, 저가 생활용품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이었으므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국제적으로 유례없는 생활화학제품에 의한 환경피해 사건이다. 게다가 특정 회사의 제품만 문제된 게 아니라 제조사, 판매사를 불문하고 가습기살균제라는 제품군 전체가 원인이 되어 사망자를 발생시켰다는 점, 게다가 장장 15년간 유통되었다는 점, 이 두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이 참사는 가해 기업만의 단독 범죄라고 볼 수 없고 한국정부의 화학제품 관리제도에 심각한 허점(나는 허점이라기보다 화학물질·화학제품 관리제도 자체가 없었다고 생각한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인재이다. 그런데 왜 한국사회는 2011년 당시 정부와 가해 기업을 비판하고 책임을 묻지 않았을까?
사실 정답을 구한다는 바람도 접은 지 오래고, 가설이라도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여전히 미궁이다. 이제 나는 풀리지 않는 거대한 물음표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 수수께끼를 풀게 된다면, 가습기살균제 참사뿐만 아니라 삼성 백혈병 사건과 같은 산업재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안전사고, 핵발전소 문제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면서도 해결이 요원한 ‘한국적 문제’들을 관통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언론을 통해 수차례 소개되기도 했지만,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쓰여진 광고 문구는 볼 때마다 섬뜩하다. ‘GS리테일’의 ‘함박웃음 가습기세정제’와 ‘애경’의 ‘가습기메이트’에는 “라벤더 향, 아로마테라피 효과”라고 쓰여 있고, ‘이마트’ 가습기살균제에는 “솔잎 향, 천연성분의 삼림욕 효과”라고 버젓이 쓰여 있다. KC마크까지 받고 ‘코스트코’에서 판매된 ‘가습기클린업’에는 “최고급 피톤치드 함유, 우리 가족 건강지킴이”라고 쓰였고, ‘세퓨’ 가습기살균제는 “EU 승인을 받고 유럽 환경국가에서 널리 쓰이는 PGH 성분, 인체에 무해하며 흡입 시에도 안전, 유아 및 환자에 안전, 감기·폐렴 유발균 제거, 이제 안심하고 가습기를 켜세요!”라고 쓰여 있다.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은 “아이에게도 안심,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이라는 문구로 소비자를 안심시켰고, 가습기살균제의 원조 ‘유공(현 SK케미칼) 가습기메이트’는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습니다”라는 문구로 참사의 서막을 올렸다.
이렇게 일일이 나열한 이유는, 올해 초 검찰수사 이후 언론보도의 경향과 시민단체의 불매운동 등의 이유로 옥시 등 특정 기업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대신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은 과소평가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판매량이 많고 따라서 피해자 규모가 큰 기업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닮은 꼴인 제품의 형태, 성분, 광고문구를 볼 때, 해당 기업이 특별히 더 악의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죄질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의 주범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꼽는다. 정부의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지 않는다면 향후 발생할 환경사고와 그 피해를 결코 줄일 수가 없다. 가습기살균제 말고도 지금까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생활화학제품 관리제도하에서 제조·판매된 모든 제품이 잠재적으로 화학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간주해야 맞다. 또한 이미 일어난 사고를 단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간주해야 옳다. 라벤더 향이니 솔잎 향이니 피톤치드니 아로마테라피 효과니 삼림욕 효과니 버젓이 표시해놓은 제품들에 대해 ‘살균제’이기 때문에 흡입독성 실험을 안했고, 그것이 문제될 것 없다고 주장하는 대한민국 정부다.
언론이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오류도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개별 사건으로 다루는 점이다. 검찰은 당연히 해당 사건에 한정해서 수사를 하지만 이 수사 결과에서 드러나고 있는 정황들은 한국에서 유통되는 화학제품 일반에 적용되는 문제들이다. 이런 점을 제대로 분석하고 해석해야 할 의무가 언론과 국회, 관련 시민단체 등에 있다. 그리고 《빼앗긴 숨》이 바로 그런 통찰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참사를 막으려면
나는 이전에도 이 같은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정부의 책임 규명과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과연 정부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또는 한국정부의 직무유기가 어디까지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 점에 대해서 《빼앗긴 숨》에 빚졌다. 가습기살균제와 비견할 만한 역사적인 화학사고·환경참사를 두루 소개하는 책을 따라가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한국정부가 최소한 어디까지 책임지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정리가 되었다. 한국정부가 지금까지 얼마나 책임 회피에 급급해왔는지, 그리고 피해 당사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2차 폭력을 가했는지 확인하면서 분노가 다시 차올랐다.
저자는 폭넓은 식견과 경험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다. 다채로운 변주는 일관된 주제를 전달한다. 마치 한 곡의 관현악을 듣는 것처럼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까지 입덧완화제로 전세계 50여 개국에서 팔려 1만여 명 이상의 중증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나, 역시 1950년대 중반 역학조사에 들어가 2004년 비로소 대법원 판결로 일본정부가 책임지게 된 수은중독 미나마타병 사건, 1984년 수만 명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장애인을 발생시킨 미국계 다국적기업 ‘유니온카바이드’의 인도 보팔 공장 메틸이소시안산염 유출 사건 그리고 1988년 국내의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 등 내가 지금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 심지어 전혀 알지 못했던 환경피해 사건들을 소개하면서, 특히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비교하여 저자만이 할 수 있는 해석을 곁들여주어 나의 좁은 시야가 조금은 넓어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이었다. 물론 단순한 지적 만족이 아니라 이후로 꾸준히 싸워나가는 데 도움이 될 작고 날렵한 무기를 손에 쥐게 된 기분이다.
예상과 어긋난 것은 또하나 있다. 저자는 보건복지부의 피해자 조사에 참여하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심층 인터뷰한 경험을 가졌다. 따라서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더 깊고 무겁게 전해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단호하게 피해자들의 사연은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선언해놓았다. 저자는 그것은 여러 매체에서 다뤄왔기 때문이라고 썼지만,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사실 2012년부터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의정활동을 할 때 나 역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출발했다. 실제로 이 문제를 다루게 된 계기도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던 피해자모임 회원을 우연히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올해 들어 여러 언론사가 관련 인터뷰를 요청해왔는데, 첫 질문은 대개 어떤 계기로 이 사건을 다루게 되었는지 그리고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 언제였는지 하는 질문을 매번 들었던 것 같다. 계기를 소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나 가슴 아픈 사연이라니, 그런 일이 물론 있지만 입 밖으로 내기란 늘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사연은 “가슴이 아프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말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생각이나 감정이 마비되는 듯하여 가슴이 아픈지 찢어지는지 알 수 없고, 내 자신이 그 일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말할 자격은 물론, 말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일을 모른다. 상상 밖의 일이다. 그런 마음은 작년 2월 나 역시 엄마가 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내 아이가 어느 날 곁에 없다는 것을 어느 부모가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얼마나 아픈가?
지난 7월부터 나는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가로서 새로운 삶을 연마하고 있다. 배워야 할 게 많지만 다행히 국회에서의 경험도 요긴하게 쓰일 것 같으니 감사한 일이다. 《빼앗긴 숨》은 어려운 책이 아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평이한 문장으로 풀어주었으니 고마울 따름인데, 나의 새로운 동료들에게 꼭 읽어볼 것을 권유하고픈 책이다. 나는 싸움에 임하는 마음 자세와 싸움의 기술을 모두 전수받은 기분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