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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5.

책을 내면서 | 큰 문제, 작은 해법들

녹색평론 통권 제190호 김정현

2년 전 《녹색평론》의 출간을 재개하면서, 우리는 무엇보다 사람들한테 ‘필요한’ 잡지를 만들고 싶었다. 모든 것이 과잉으로 넘쳐나는 시대에 책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후위기를 걱정한다고 하는 저 많은 출판물과 영상물과 강연회와 모임, 크고 작은 국제회의까지―이런 작업과 활동들이 얼마나 기후변화에 기여하고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우리는 와 있다. 이미 이 세상에는 불필요한 것들이 태산과 같이 쌓여 있는데 거기에 우리 몫을 더 보태는 일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인류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궁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경제를 근본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천지자연의 풍요로움이나 지구생태계의 수용능력이 고갈되어가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현세대에게는 필요한 것이 너무 많아졌다는 뜻에서 그렇다. 더욱이 이 필요는 끊임없이 새로 창조되고 있기 때문에 영원히 충족될 수도 없는 것이다. 쇼핑중독은 그것의 직접적인 결과이겠지만 약물이나 게임, SNS(소셜미디어) 중독, 섭식장애, 우울증이 전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인간관계가 왜곡되고 마찰과 갈등이 빈번하게 그것도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런 결핍을 해소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현대의 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과는 오래전에 결별을 한 것 같다. 합리적인 경제라면 필요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인간과 자연을 소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경제체제는 그 자체의 내재적 원리에 의해서 끝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대가가 인간적, 사회적, 생태적으로 측량할 수 없이 가혹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멈출 수가 없고, 그 결과가 인간의 삶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뭇 생명의 삶터를 망가뜨리고, 우리 아이들의 앞날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알아도 멈출 수가 없다. 인간활동이 지질학적인 문제가 되고, 천재지변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재앙이 되어버렸다는 증거를 눈앞에 두고서도, 반세기 동안 인류사회가 회의만 거듭하면서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라고 말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그 틀에서 벗어나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이 체제 내에서는 애초에 왜 그토록 많은 전기가 필요한가 하는 질문은 제기될 수 없고, 그저 막대한 양의 전기를 석탄을 태워서 얻을 것인가, 원자력이나 재생에너지로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 놓고 갑론을박을 반복한다. 즉 자본주의는 경제적 구조나 이론이 아니라 정치적인 원리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나라의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인물이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성장을 말하는 것을 두고, 이념과 무관한 실리적인 태도라고 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실용주의는 지극히 정치적인 노선이다.
자본주의 혹은 실용주의라는 이념 아래에서 현재의 경제와 정치체제를 근본에서부터 바꾸는 일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고 할 때, ‘민생’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생각하는 정권으로서는 경제성장에 다시 매진할 수밖에 없다. 북극항로 개척, 반도체 클러스터 육성, 신재생에너지(RE100) 확대와 그린뉴딜, 스마트농업이라는 구상은 그 결과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장개방과 자유무역, 조선업과 자동차산업, 석탄발전과 핵발전, 녹색혁명의 변주곡에 불과하다. 1%의 호주머니를 불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99%의 삶을 고양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도, 에너지 집약적이고 수출 의존적인 경제는 성장할수록 더욱 깊고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트리클다운’ 효과라는 것도, ‘선 성장 후 분배’라는 공식도 틀렸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근래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같은 보수적 국제기구들이 분배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지난 30여 년의 경제지표를 조사해봤더니 불평등이 개선될 때에야 경제가 성장(GDP 증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오늘의 세계경제가 격랑 속에서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무역 비중이 경제의 80%를 차지하고 곡물자급률이 20%에 불과한 나라의 새 대통령이 (게임의 규칙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 이런 복합적인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물론 기업들이 마음대로 날뛰는 것을 단속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신자유주의체제 아래에서 보통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고통은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큰 성과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은 비유하자면, 빙하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타이태닉호 삼등실의 좌석을 푹신한 의자로 교체하는 일이다.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긴 해도 그 자체가 목적지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고 국가를 사유화하려는 욕망밖에 없어 보이던 정권이 물러나고, 국정 운영자로서 펼치고자 하는 뜻도 있고 실력도 있어 보이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민중의 생활 현실을 이해하는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 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혹은 우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로 당선된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화석연료에 무겁게 의지하고 있는 경제를 지속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일에 서둘러 착수하리라고 전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것은 단기간에 가능한 개혁도 아니지만, 끈기를 가지고 시간을 들여서 대중을 설득하면서 합의에 이르는 민주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실제로 성공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마도 틀림없이 시행착오와 희생도 따라야 할 것이다. 4년 뒤의 총선, 5년 뒤의 대선 일정을 늘 머릿속에 두고 있어야 하는 정치인들이 흔쾌히 선택할 수 있는 경로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이 일을 언제까지나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시민이 주도하는 헌법개정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태생적으로 근시안인 데다가 사사로운 이익밖에 도모할 수 없는 정치인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이들을 우리가 도와야 한다. 압박을 해서 필요한 개혁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최우선적인 과제는 기후위기라는 미증유의 실존적 위협에 대응할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므로, 이번 개헌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작은 지역 단위에서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확립되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이라고 하면 전체 지구 차원의, 스케일이 큰 문제이고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므로 여러 국가의 정상들이 지도력을 발휘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기술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지하광물에 전면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 삶의 양식을 바꾸어서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보면, 오히려 국가보다는 지역 단위에서의 실천이 필요한 일이고, 그리고 일반시민들이 얼마나 참여하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농업, 산업, 교육, 의료, 교통 등 우리 사회의 전 영역에서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식을 서둘러 찾아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공유지와 공동체적인 문화를 회복하여 각 지역공동체가 저마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립적인 생활을 도모하도록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민주주의가 아니고서는 지금 우리에게 닥친 긴급한 현안들과 위기를 헤쳐나갈 길이 없다.

* * *

계간 《녹색평론》이 두 돌을 맞았다. 지난 여덟 권의 책을 돌아볼 때 아쉬움도 크고 후회도 큰 이유는, 편집실의 조급한 마음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야기, 그러나 주류 알고리즘에서 밀려 내쳐지고 있는 이야기를 알뜰히 모아서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녹색평론》을 읽는 과정이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하는 데에는 편집실의 정성이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실존적 위기가 어떻고, 지속가능성이 어떻고, 여섯 번째 대멸종이 어떻고 하면서 만날 겁을 주는 책이 늘 반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탓도 있어서인지, 구독자 수를 판단의 근거로 삼았을 때 이 잡지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효는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녹색평론》이 외부지원 없이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구독료에 의지하여 운영한다는 방침을 고수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그 자체가 우리 사회에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이 갈수록 나빠지기만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한편에서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이 세계를 진실로 아끼면서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불의(不義)에 압도되어서 하루하루를 비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마음속의 캄캄한 어둠, 깊은 절망과 체념, 무기력에 《녹색평론》이 계속해서 말을 걸 수 있도록, 독자들께서 앞으로도 비판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190호 공개글 목록

01 책을 내면서 | 큰 문제, 작은 해법들 | 김정현
02 기후위기 시대, 산불을 막을 대안은 | 홍석환
03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치개혁을 -독일의 정치구조에서 녹색정치의 조건을 살펴본다 | 조성복
190호 목차보기 정기구독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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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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