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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6.

디지털교육이라는 신화

녹색평론 통권 제189호 오윤주

괴테의 시 〈마법사의 제자〉에는 늙은 마법사가 집을 비운 사이 빗자루에 마법의 주문을 걸어 물을 길어 오도록 하는 약삭빠른 제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제자는 스승의 주문을 모두 외웠노라 자신만만해하지만, 빗자루를 멈추게 할 주문을 잊고 만다. 빗자루는 계속해서 물을 퍼 오고, 온 집 안이 물난리가 나고 만다. 제자는 어떻게든 빗자루를 멈추게 하고 싶지만, 자신이 만든 재앙을 멈추게 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21세기의 커다란 변화 중 하나는 디지털 시대로의 대전환이다. 디지털기술은 삶과 분리할 수 없는 불가결한 일상의 요소로 자리 잡았다. AI(인공지능)가 전지전능한 존재로 부상하고, 거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교육의 영역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술과 교육의 접합을 의미하는 ‘에듀테크’는 최첨단 교육의 발전을 상징하는 주류 언어로서 교육 현장에 메아리치고 있다.
최근 쟁점의 중심이 된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DT)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2024년 교육부가 발표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역량 강화 지원방안〉은 ‘교사가 이끄는 교실혁명을 위한’이라는 부제를 달고, 학습자 주도성에 기반한 학습이나 깊이 있는 학습, 교육격차 해소 등 최근 대두되는 교육적 이슈들이 모두 디지털 기반 교육과 연계할 때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교육은 정말로 우리 교실을 ‘혁명’적으로 바꿀 핵심적 변수일까? 우리는 디지털기술이라는 도구가 우리 교육에 가져올 결과를 우리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일까? 마법사의 제자들은 빗자루를 제 뜻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비법을 알고 있는 것일까?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둘러싼 쟁점
사실 디지털교과서는 2018년부터 이미 현장에 도입되어 있었다. 서책형 교과서를 디지털 텍스트로 물리적으로 전환한 데에 지나지 않아 쓰는 이가 거의 없었을 뿐이다. 현 정부가 2025년부터 시범 도입하고 2028년부터 전 과목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AI디지털교과서는 디지털교과서에 AI를 입힌 것이라 한다. 교육부는 2024년 보고서에서 ‘모두를 위한 맞춤교육’을 목표로 ‘교실혁명 선도 교사’ 3만 명을 양성하여 디지털교육으로의 대전환을 이룰 것이라고 선언하고, 디지털교과서의 활용을 구체적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디지털교과서의 보급을 주장하는 이들은 AI디지털교과서가 학습자의 학습 정보를 데이터화함으로써 교사의 수업 설계를 돕고 학습자의 자기주도 학습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느린 학습자와 빠른 학 습자가 각각 자신의 수준에 맞는 학습을 선택함으로써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모두를 위한 맞춤형 학습’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한다.
한편 디지털교과서에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디지털교과서가 아직 조잡한 수준이어서 디지털 시대의 요구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교사를 위한 연수나 학교 현장에서의 활용 방안, 준비가 미비한 점,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점, 맞춤형 학습이라고 하나 반복형지식습득형에 머무른다는 점 등을 반대의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러한 논의들은 대체로 디지털교육의 도입은 필연적이나, 현재 디지털교과서의 수준이나 상황적 여건이 미흡하다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교과서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되고 상황적 여건이 무르익는다면 도입을 해도 좋은 것일까?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독해력, 학습력 등에서 디지털 기반 학습이 전통적 학습에 비해 낮은 효율을 보인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미디어의 사용에서 파생되는 집중력 저하, 시력 저하, 디지털기기 및 소셜미디어 중독의 문제 등도 있다. 특히 학부모들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일찍부터 디지털기기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디지털 과의존 환경의 조성에 초점을 두어 디지털교과서에 대해 강력한 반대세력을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스웨덴 등 일찌감치 교실의 디지털교육으로의 전환을 추구했던 국가들이 다시 이를 축소하고 제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문제 지점들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교과서가 과연 미래를 향한 ‘교실혁명’을 추동할 수 있을 것인지, 몇 가지 문제 지점들을 중심으로 짚어보기로 한다.

현실세계와 연결된 교육을 가로막는 디지털교과서
일단 디지털과 교과서의 결합은 근본적으로 부조화스럽다. 디지털교육을 활성화할 것을 주장하는 마크 프렌스키의 경우, 디지털교육을 통해 현실세계 자체를 텍스트로 삼아 교실 안과 밖을 넘나드는 실천적 경험이 주요 학습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과서라는 한정적 자원에 머무르지 않는 개방적이고 연결된 교육 내용과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어교사인 나는 수업에서 종종 이른바 ‘에듀테크’를 사용하는 편이다. ‘패들렛’을 통해 의견을 공유하고, ‘구글문서’로 글을 쓰면 피드백을 해주기도 한다. 특히 나는 교과서에 실린 제한적 텍스트들로만 수업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디지털 공간에서 자유롭게 탐색하며 인터넷 사이트나 포털에서 글이나 자료를 수집하여 읽고 학생들이 쓴 글을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여 웹진으로 발행하고 공유하도록 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갈 학습자들이 실제로 맞닥뜨릴 생활세계의 문제 상황을 교육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수업에서 이러한 디지털 도구들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이미 일반화되어 있고,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디지털교과서의 경우에는 좀더 숙고가 필요하다.
디지털교과서는 정해진 하나의 궤도를 염두에 두고, 그 궤도에 탑승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맞춤형 반복 학습을 통해 궤도에 오르도록 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디지털교과서라는 플랫폼은 AI와 연결된다 하더라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교과서가 자유로운 참고가 가능한 교육자료가 아니라 교과서로서의 지위를 갖는다면 더더욱 문제적이다. 이미 현장의 교사들은 몇 년간 고정된 형태로 활용될 수밖에 없는 교과서의 틀을 넘어 당대성을 지닌 자료들을 가지고 학생들과 함께 디지털 현실을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러한 흐름을 다시 ‘디지털교과서’라는 하나의 경로로 묶어 한정해야 하는가?

디지털교과서는 고정된 지식 꾸러미를 주입하는 도구
디지털교과서의 전제는 학생이 배워야 할 지식과 개념의 무더기가 있다는 것이다. 학생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학습을 진행한 후, 덜 알고 있었던 부분이 채워졌는지 다시 한번 점검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반복 학습하며 익히고, 교사는 그 과정을 지원한다. 학습에는 분명 그런 부분이 있다. 연산을 학습해야 하거나, 맞춤법 규범을 익혀야 하는 학습자라면, 영어 단어나 문법을 익혀야 하는 상황이라면 AI에 의한 학습 정도 진단이나 반복형 학습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다만 그런 학습은 배움의 총체적 국면 중 일부이지, 배움의 핵심적 요소가 아니다.
산업혁명 시대의 교실에서는 학습자가 얼마나 아는지 진단하고, 반복 학습하여 익히고, 다 배웠는지 확인하는 학습을 ‘공부’라고 불렀다. 달달 외우고, 여러 번 반복해서 몸이 익히는 것, 그것이 ‘습득’이다. 물론 그 역시 배움의 중요한 일부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부로 배움 전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일부를 전체인 것으로 만든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교육의 근원적인 어떤 것이 훼손될 여지가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를 위한 교실혁명의 도구라 하기에는 디지털교과서는 여전히 산업혁명 시대의 논리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학습이란 개념은 ‘이해의 축적 혹은 확장’이라는 의미로 통용되어왔다. 학생들이 이미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을 축적하는 것이 학습이며, 교사의 주된 과업은 그러한 과정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어왔다. 교육학자인 거트 비에스타는 학습의 개념을 “학생들이 이미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주침”이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학습의 과정에서 학생들은 낯선 것, 새로운 것과 만나 기존의 자신을 깨뜨려야 하는 실존적 어려움에 처한다. 학생들은 ‘현재 존재하는 것’과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의 긴장을 느끼며 저항하고자 하기도 하는데, 이때 교사는 학습을 위한 ‘지연’의 공간을 열어 학생들이 자신과 함께 있기만 한 상태로부터 벗어나 함께 이 세계에 존재하도록 학생들을 초대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축적적 이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주체로서 세계에 존재할 해방적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 열린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교사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들의 실존적 만남이며, 그 과정에서 교사의 실존 역시 변화하게 된다. 교사와 학생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세계에 잘 존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처럼 교사와 학생이 실존적 배움의 공간에서 만나 세계 속에 성숙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과정을 학습이라고 할 때, 학습을 시작과 끝이 있는 고정되고 단단한 닫힌 체계로 보고 있는 디지털교과서의 체계는 이러한 해방적이고 실존적인 학습의 면모를 적절하게 담아내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교육의 본질을 묻다
하지만 이 역시 디지털교과서의 초기 개발 단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고, 디지털교과서 및 디지털교육이 학습자의 질문을 이끌어내고 깊이 있는 학습을 촉진하며 프로젝트 학습을 활성화하고 모든 학생의 주도적인 배움을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교육부의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역량 강화 지원방안〉에서는 AI디지털교과서가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미래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이어졌던 코로나19 교육 시대이다. 이 시기에 일부 교과에서는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기도 했다. 원격수업과 대면수업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교실에 서책 교과서를 두고 와서 교과서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들은 하루에 여섯 시간을 꼬박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줌’이나 ‘팀즈’ 등의 화상회의 플랫폼으로 소통하면서 무언가를 읽고 썼으며 화상토론도 하고 ‘구글클래스’나 ‘E학습터’ 같은 플랫폼을 통해 피드백도 주고받았다. 교사들은 수업 영상을 촬영하여 올리고, 학습 플랫폼을 통해 학생들의 진도율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영상을 수강하지 않았거나 과제를 올리지 않은 학생에게는 메시지를 보내 학습을 독려하기도 했다. 수업은 이처럼 첨단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SF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래 학교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초기의 SF적 상황에 대한 신선함은 금세 사라졌다. 교사와 학생들은 서로의 존재가 실제로 저 화면 건너편에 존재한다는 ‘실재감’을 좀처럼 느낄 수 없었다. 해야 할 것은 모두 했고 진도는 교실에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갈 수 있었지만, 학생들의 성취도는 교실수업에 미치지 못했고, 수업의 즐거움이나 교육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특히 학습에 대한 주도성이나 제어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중하위권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눈에 띄게 하락했다. 매우 유용한 도구들이 있다 해도, 그것은 수업을 일부 도울 뿐 배움의 총체적 맥락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경험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특히 우리가 알게 된 것은 교육이 ‘전면적인 만남’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디지털 도구라는 매개로 만날 수 있었지만, 또 오히려 대면 만남보다 효율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는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서로의 기운을 공유하며 만나야 했다. 그 만남을 디지털기술이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목표와 그 도구가 전도될 수는 없다. 디지털기술을 넘어 그다음은 늘 교육의 근원적 물음인 “그래서 무엇을 배웠는가”, “학습자는 어떻게 변화했는가”의 문제이다.
교실을 혁명해온 것은 늘 ‘교사’였으며, 교사와 학습자를 둘러싼 ‘세계 그 자체’였다. 교육은 늘 이미 있던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데, 교사들은 학생의 요구와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며 교실 속의 구체적인 만남 속에서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려 애써왔다. 혁명은 늘 일어나지만, 그것이 디지털교육 혹은 디지털교과서로 인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수업이라는 만남 속에서 대화를 통해서 매일매일 ‘배움’이라는 오늘의 혁명을 이루어갈 뿐이다. 기술이 만능열쇠처럼 우리 교육의 해묵은 과제들을 해결해주리라는 생각은 기술에 대한 오래고 강력한 신화이지만, 언제나 그것은 신화일 뿐 현실은 아니었다.

비즈니스와 교실
기술이 과연 교육을 구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할 때 무시할 수 없는 또다른 요소가 있다. 기술의 발달 및 그와 연관된 기술 비즈니스가 교육의 변화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이 교육을 압도하는 듯한 양상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90년대의 교대나 사범대 과정에서는 OHP(오버헤드프로젝터)나 실물화상기 활용법을 열심히 배웠다. 그것을 활용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 많던 기기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아마 폐기물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교실 선도화 사업을 통해 교실마다 몇백만 원을 호가하는 전자교탁 세트가 등장하고, 주기적으로 렌즈를 갈아야 하는 빔프로젝터가 설치되었다. 학교마다 메타버스 열풍이 불면서 가상현실 체험을 위한 VR 기기를 학교당 수십 대씩 구매하기도 했는데, 기술이 순식간에 발전하면서 1~2년이 지나면 낡은 도구가 되어 창고에 처박히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새로운 모델을 구입하면 되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처럼 학교는 기술 비즈니스와 관련하여 소비력이 좋은 구매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2020년 코로나19를 맞아 학교와 아이들은 순식간에 디지털 시대의 ‘온택트 교육’으로 소환당했는데, 이때부터 학생당 한 개 이상의 디지털기기를 가지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원격수업이 종료된 이후의 교실에서도 수업에 디지털기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여전히 지속되거나 더욱 강화되었다. 모든 학생에게 디지털기기가 제공되고, 각 교실에는 기기를 충전하기 위한 소형 냉장고 크기의 충전함이 비치되었다. 코로나19 시기에 사용하던 ‘줌’이나 ‘패들렛’ 등 디지털 플랫폼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최근에는 ‘챗GPT’나 ‘미조’ 등 인공지능 기반 플랫폼이 급부상하면서 그 구독료를 교사 개인이 감당하거나 학교 단위 예산으로 지출하고 있는데, 지출 규모가 만만치 않다. 디지털기술 비즈니스의 입장에서 보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이제 디지털교과서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학교마다 안정적으로 구독료를 내야 하니 기술 비즈니스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2024년 10월 국회 현안 분석 자료에 의하면 초중고등학교의 AI디지털교과서 구독료로 4년간 총 4조 7,255억 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도구는 쓰면 유용하다. 그런데 도구들은 종종 그 새로운 매력으로 그 자체가 목표가 되려 한다. 도구를 파는 이들은 이것을 쓰면 모든 것이 참 좋으리라고 사람들의 귓가에 속삭인다. 도구를 먼저 쓴 이들은 선지자가 되어 이 예언을 널리 설파한다. 그러다 또 한바탕 열풍이 지나고 나서 알고 보니 도구는 도구일 뿐이더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깨닫게 되어갈 즈음, 다시 놀라운 도구가 등장하고, 이렇게 생산자와 소비자와 그 사이의 무수한 매개자들은 끌어주고 밀어주며 어디론가 나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도구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 했던가? 기술 그 자체가 목적이던가? 무엇을 위해 디지털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인가? 혹 그것은 교육적 요구에서만 출발한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될 비즈니스적 맥락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근본적 질문과 지연의 전략이 요청된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현존을 앞서며 변화를 촉진해왔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기술에 맞추어 변형하는 한편, 기술을 전유하여 자신의 삶에 필요한 어떤 부분으로 재조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최근의 변화는 너무나 급격하고 전면적이어서 인간이 기술과의 조정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적응 혹은 성찰의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학교는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변화를 재빠르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응하는 교육방안을 제시하고 실행해야 하는 책무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학교는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학교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며 그려가는 성찰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학교는 미래를 향한 가속장치일 뿐 아니라 속도를 제어하는 브레이크로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속도가 문제인 시대에는 오히려 그 속도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 시선과 ‘지연’의 전략이 요청된다. 당장 미래사회에 적응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울 것이라 외치는 목소리들이 온 사회에 울려 퍼지고 있다 해도, 교육을 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그 답을 차근차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마법의 빗자루를 타고 우리가 도달하려는 지점은 어디인가? 우리는 이 빗자루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가?

189호 공개글 목록

01 책을 내면서 | 87년체제와 대의민주주의 | 김정현
02 좌담 | 좋은 정치는 시민들이 만든다 |
03 디지털교육이라는 신화 | 오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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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보
오윤주
수원 수일여자중학교 교사. 공저로 《국어과 창의인성 교육》, 《현대소설교육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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