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 사회학
성한용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김정현 《녹색평론》 발행·편집인(사회)
2025년 1월 15일, 녹색평론사 세미나실
김정현 근대 산업문명의 끝자락에서 인류가 말 그대로 절멸이냐 전환이냐를 걸고 단호하게 행동에 나서야 할 이때에, 이상한 대통령으로 인해 우리 공동체의 운영이 큰 틀에서 마비돼버린 것은 말할 수 없이 유감스럽습니다.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정치 앞에서 좋은 사회를 위한 노력들이 모두 수포가 되는 듯해서 낙심도 됩니다. 그런데 12·3 혹은 용산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복합적인 위기상황에 대해 정치가 응답하고 있었던가요? 천지자연과 약자와 미래를 착취하여 물신을 섬기는 삶의 방식이 윤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더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특히 젊은 층에서―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로 눈을 돌린다면, 지금 우리 눈앞의 정치적 난국을 돌파하는 일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가져오는 일이 결국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일에 비상한 집중력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누구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한국 대의정치가 어떤 점에서 취약하고 어떻게 개선해나갈지 알아보고자 세 분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포고된 때부터 시작해서 시민들, 국회, 군인, 국무위원 등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부터 말씀해주시면 어떨까요.
성한용 제 친구가 광흥창역 근처에 사는데, 비상계엄 소식 듣고 반사적으로 부인과 30대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서서 걸어서 서강대교를 건너 국회로 갔다고 하더군요. 국회 앞에서 의원들 담 넘는 것 도와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이 모두 수고했다고 칭찬을 해줬어요. 가장 중요한 건 그날 밤 국회 상황이 실시간으로 모바일로 중계가 됐다는 것입니다. 1979년(12·12), 1980년(5·18) 쿠데타는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기 때문에 성공한 측면이 있잖아요. 이젠 실시간으로 모두가 정보를 공유하는 전혀 다른 세계예요. 나중에 듣자니 50~60대 이상은 집에서 나올 때 속옷, 혈압약 이런 것부터 챙기고, 20~30대들은 핸드폰 충전기, 배터리를 챙겨서 나왔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문화적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의 나이 든 세대들은 명령이 내려오면 부당한 것일지라도 단호히 거부하지 못하는 문화에 젖어 있지만, 40대 아래, 민주화 이후 세대들에겐 부당한 명령은 따르지 않는 게 당연한 거예요. 이번 쿠데타의 패인에 대해서 단편적인 인상을 말씀드렸어요.
저는 김영삼 대통령이 1995년에 특별법 만들어서 전두환노태우 처벌한 것을 평가하고 싶어요. 우리가 일제 청산도 못 하고 김재규로 인해서 박정희 쿠데타도 제대로 정리를 못 했지만, 그래도 비록 다 집행이 안돼서 효과가 반감되긴 했어도 전두환 쿠데타는 청산을 한 셈이에요. 비상계엄 발표 나자마자 사람들이 곧장 막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즉시 움직였던 배경에는 성공한 쿠데타도 사법처리가 된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김동춘 저는 대만에 있었는데 처음엔 가짜뉴스인 줄 알았지요. 실제 상황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한국에 못 돌아가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30분쯤 혼미한 상태에서 덜덜 떨었습니다. 저는 10·26, 12·12, 5·17도 겪은 세대잖아요.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보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는데, 새벽쯤 홍준표 시장이 무슨 해프닝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 싶어서,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정해서 페이스북에 급히 글을 써서 올렸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쿠데타라는 것까지 감행하게 되었을까요? 20세기 군사독재의 기억과 21세기 신자유주의 현실이 결합된 결과라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윤석열, 김용현 이 사람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성장,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군부와 사법기관의 세계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동시대인이지만 우리와 전혀 다른 현실인식을 갖고 있는 거예요. 망상 속에 있으니까 쿠데타라는 터무니없는 일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이죠. 한편 그 배경은 매우 현재적입니다. 제가 이번에 친위쿠데타 사례들―1990년대부터 페루, 튀니지, 터키 그리고 쿠데타는 아니지만 브라질과 미국에서 일어난 난동 사태를 죽 살펴봤는데, 모두 신자유주의시대에 우익들이 통치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회주의진영 몰락 이후 우파세력은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에서 경쟁 상대 없이 통치를 해왔는데, 양극화라든지 혐오라든지 계속 터져 나오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거예요. 구체적으로는 행정권과 의회권력의 충돌을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쿠데타 같은 돌파구를 찾는 것입니다.
하승수 저는 기차 안에서 소식을 들었는데, 동트기 전에 상황 정리가 안되면 큰일 나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당장 다음 역에서 기차에서 내려 여의도로 갔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 개인들의 민주적 역량이 상당하다고 느꼈어요. 50대 이상은 독재와 민주화운동 경험 덕분에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알고, 젊은이들은 정당하지 못한 명령에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는 자율성을 보여줬잖아요. 세대별 역량이 긍정적으로 발휘돼서 비교적 빠르게 상황이 정리됐다고 봅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한국은 ‘민주주의 공고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했는데 허상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군과 경찰이 여전히 권력자에 의해 동원되고, 행정 관료들도 뭐든 수동적으로 따라가잖아요. 이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도 상당히 미비합니다. 게다가 내란을 일으켰는데도 이들을 비호하는 정치세력이 건재하다는 건 충격적이지요.
김동춘 한국은 민(民)의 힘이 큰 나라예요. 1945년 이후 46건, 1990년대 이후 31건의 친위쿠데타 사례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성공했어요. 힘이 있으니까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고, 그래서 곧바로 제압된 경우는 거의 없어요. 우리는 예외적 사례로 기록될 거예요. 역설적이지요. 아직도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는 나라이면서 동시에 쿠데타를 그 자리에서 제압할 수 있는 나라이니까.
저는 민주주의의 공고화(democratic consolidation) 이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 정치학자들이 후발국의 민주화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인데, 주기적이고 투명한 선거, 평화적 정권교체, 군사정권으로의 역전 불가 등이 가능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죠. 저는 과거사 문제에 오래 관여해왔지만 그쪽에서 흔히 쓰는 ‘이행기 정의’라는 말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군사독재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했다는 말인데, 독재를 경험한 후발국이 서구적 자유민주주의를 제도화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요. 이건 미국의 주류 정치학자들이 그들의 정치이론을 세계에 설파하기 위해 만든 모델이에요. 저는 한국과 같이 냉전과 분단이 지배하는 나라에 이런 이론은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해왔어요. 무엇보다 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이런 근대화론적인 발상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김정현 그럼 본격적으로 2024년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친위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신자유주의적 배경은 다른 나라들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조건이니까 뒤에 말씀 듣기로 하고 우선 한국의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데요. 다만 윤석열이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길래 이토록 무능하고 왜소한 인물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또 대통령이 폭군일 때 전횡을 막을 수 없고 정치가 마비되는 시스템적 결함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성한용 저도 윤석열 정권의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도 튼튼한 민주주의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 비슷한 것이라고 봐야죠. 그런데 우리 제도에 문제가 없지 않지만 제도 때문에 이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봐요. 현대 민주주의국가들은 독일 바이마르헌법을 원형으로 삼았다고 하죠. 그런데 나치가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정권을 잡았잖아요. 일부 학자들은 이원집정부제, 비례대표제만 도입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저는 제도보다 중요한 건 정치를 어떻게 운용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민주적 제도를 어느 정도 갖춰 놓았다고 우리가 그동안 방심하고 나태했던 게 아닌가 하는 거죠. 87년 이후로는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니까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으로 착각한 거예요. 게다가 경제적 양극화와 디지털 기술혁명의 부작용으로 확증편향이 만연하고 포퓰리즘이 횡행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되어 있었는데, 윤석열이라는 뇌관을 만나서 빵 터진 게 이번 내란 사태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승수 그렇지만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제도 아닐까요? 말씀대로 극단적 세력이 권력을 쥐고 힘을 행사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 있는데, 저는 그걸 제어할 수 있는 건 보다 민주적이고 정밀한 제도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2차대전 이후, 히틀러 집권의 배경이라고 해서 바이마르헌법을 폐기하지는 않았어요. 제도를 정밀하게 다듬었죠. 가령 비례대표제를 포기하지 않고, 다당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게 혼합형(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5% 진입장벽을 만들었고, 국회에서 총리 불신임을 결정할 때에는 차기 총리 후보를 미리 선출했을 때에만 가능하도록 ‘건설적 불신임’ 제도를 도입했어요. 또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에 대통령과 수상 간 권한 배분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반성으로부터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 총리 중심의 내각이 국정을 책임지도록 했고요.
이렇게 제도를 개선해나가는 일이 우리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87년 이후 제도를 정비한다고 했지만 내용적 개혁이 안된 게 많아요. 우선, 군부독재를 겪고 나서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그렇게 강조했지만 여전히 군 장성 출신들이 국방장관을 맡고 있어요. 경찰조직 통제하려고 국가경찰위원회가 설치됐지만 역할을 전혀 못합니다. 개혁이 필요한 지점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중반까지 다 나왔지만 매듭지어진 것이 없어요. 제도적 허점들이 남아 있으니 문제적 집단이나 개인이 민주주의를 위협할 때 적절히 통제할 수 없는 거예요. 123 밤에 국회에 투입된 특전사 부대원들이 예전 군인들과 달라서 천만다행이었지 군이 동원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한 게 없잖아요. 제가 이번에 특전사, 방첩사 같은 기구들의 설립근거를 찾아보니까 전부 대통령령이더군요. 수방사, 특전사, 방첩사, 정보사 등 주요 군 조직은 국군조직법이라는 법 말고는 전부 대통령령으로 설치변경할 수 있습니다. 의회의 통제는 체계상 이뤄질 수 없는 구조예요.
김동춘 전쟁을 명분으로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분단체제라고 하는 한국의 거시적 조건 때문에 생겼다면, 미시적으로는 87년 이후 검찰권력 강화가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고 봐야 할 거예요. YS 정부가 군부는 어느 정도 정치에서 후퇴시켰으나 검찰은 문민화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었지요. 이 검찰개혁의 실패가 12·3 쿠데타의 하나의 조건이 되었어요. 또다른 조건은 정당정치의 부재입니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대통령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난 2년 반도 그렇고 박근혜 정부 때에도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인사나 정책 오류를 내부에서 비판, 견제하기는커녕 100% 복종했어요. 그건 정당이 사회적 기반이 없기 때문이에요. 구조적 이유도 있지만, 가까이는 DJ 정부 당시 지역정치 부패 척결한다고 지구당 제도 등을 폐지하면서 지역정치나 지역정당 같은 정당의 사회적 기반을 다 잘라버린 탓이에요. 정당과 국회의원 하고 싶은 사람들이 최고권력자 눈치를 봐야 하고,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안전장치들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게 한국식 대통령제의 문제인가는 따져봐야겠지요. 프랑스는 이원집정부제이지만 마크롱이 국회 해산했잖아요. 그런 권한을 대통령이 갖고 있고, 대통령제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긴 있어요. 그럼 내각제는 문제가 없느냐. 일본을 보면 기득권 구조가 고착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문제가 내각제에서 발생합니다. 내각제냐 대통령제냐 이건 문제의 본질은 아니나 각각의 근본적 속성이 있어요. 어쨌든 우리가 5년 단임제로 대통령을 교체하는 것 이상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고, 이번에 그 최악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지요.
관료독재의 위험, 실종된 정치
성한용 저는 정치부 기자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경찰, 검찰을 포함한 관료집단의 문제도 제기하고 싶어요. 관료 출신 정치인도 있지만,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선출직 정치인들과 대결하는 구도라고 봐야 합니다. 국회나 정치인들이 관료들을 통제해야 되는데 관료들이 정치인들의 권위를 인정을 잘 안합니다. 그래서 관료집단 개혁은 민주주의체제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과제인 거예요. 사람들이 나쁘다기보다 관료조직의 속성이 그래요. 아메바처럼 끊임없이 세력을 확대하려고 들고. 저는 이 부분에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가 굉장히 미진했다고 생각하고, 이번에 이 문제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관료 중에서도 검찰 얘기를 하자면, 이 부분은 문재인 정부에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박근혜 탄핵 이후 2017년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인데, 제가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핵심 참모에게 조언을 했어요. 대선 전에 후보 단일화는 쉽지 않더라도 이후에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과 연합을 해서 입법연대 같은 것을 구성해서 검찰개혁의 토대부터 갖춰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검찰에 당하게 될 거라고 했는데, 결국 현실이 됐잖아요. 잘 드는 칼이니까 검찰을 활용해서 적폐청산부터 하고 개혁을 하겠다고 방만하게 생각한 것이죠.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어요. 지금 민주당이 검찰개혁 법안을 안 내고 있거든요. 이재명 대표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순진해서 당했지만 자신은 검찰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는 게 아닌지 저는 걱정스럽습니다.
하승수 국민의식조사 해보면 국회가 제일 불신을 받지만, 저도 가장 못 믿을 건 관료라고 생각합니다. 섣부른 진단일지 몰라도, 민주세력이 권력을 잡았을 때 국회와 정당정치를 강화해서 관료집단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이들을 활용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쪽으로 경로를 잡은 건 패착이었어요. 덕분에 민주화 이후 관료권력이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민주적인 정권에선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나쁜 권력이 탄생하면 비대해진 관료집단이 최악으로, 쿠데타에까지 활용되는 거예요. 물론 정당과 정치인, 특히 내가 속한 당이 아닌 정당, 정치인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는 건 어렵고, 관료들에게 의지하고 싶은 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쉬운 길만 밟아왔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런 상황에 와 있다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정당과 좋은 정치인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충분히 노력했는가. 대의제에서는 좋은 정당과 좋은 정치인들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서 선거제도 개혁은 꼭 필요한데, 국회 욕만 했지 좋은 국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던 것 아닌가요? 촘촘한 입법도 필요합니다. 법률은 대강 만들어놓고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위임하는 방식이 남발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우리 법에 친환경농산물은 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는데, 시행규칙에서 합성농약이 ‘검출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둔갑해서 친환경 농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거든요. 법을 정밀하게 만들어서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관료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걸 제어해야 합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