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현재 우리나라의 농가인구는 약 217만 명. 전체 인구의 4% 남짓이다. 1970년에는 당시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인 1,422만 명(*)이 농가인구였다. 인구가 3,000만 명에서 5,000만 명으로 늘어나는 동안 농가인구는 85%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단군 이래 최대의 ‘영양 과잉’을 누리고 있다. 우리 농민은 한정된 땅에서 이전에 비해 엄청난 생산성을 올리고 있다. 물론 우리 국민을 우리 농민만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사람과 가축이 먹는 곡식 기준)은 20%에 불과하다. 우리 밥상은 해외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은 온실가스도 상당히 배출한다. 정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농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100만t으로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7.3억t 중 약 2.9%이다.
우리는 기후위기 한가운데 살고 있다. 그와 맞물려서 세계 도처의 전쟁과 미중 간의 대립은 달러만 있으면 먹을 것은 외국에서 싼값에 얼마든 사올 수 있다는 자유무역 신념을 신화로 바꾸고 있다. 이러한 비상한 상황에서 우리 농업정책은 어디로 가고 있나?
기후위기 가운데에서 성장강박에 시달리는 농업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농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농업생산액 부가가치액은 2022년에 약 31조 원이었는데, 농업과 관련된 정부의 예산은 농림축산식품부 것만 보더라도 약 17조 원이나 되었다. 이 수치들은 정부의 정책이 농업의 모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눈에 보이게 나가는 돈만 이 정도이고 각종의 조세감면제도, 전기료 등에 대한 정책을 통해서도 정부는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들 대부분이 비슷하다. 즉, 현대의 농업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국가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 있다. 자기 땅에서 자기 판단으로 당당히 농사짓는 농민은 이상형으로만 있을 뿐이다. 이 막강한 힘을 통해서 정부는 어떤 농업을 만들려고 하는가?
윤석열 정부가 시작할 때 제시한 ‘120대 국정과제’를 보면 ‘살고 싶은 농산어촌을 만들겠습니다’라는 꼭지 아래 세 개의 농식품 정책 묶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농산촌 지원 강화 및 성장환경 조성’, ‘농업의 미래 성장산업화’ 그리고 ‘식량주권 확보와 농가 경영안정 강화’이다. 몇개 안되는 단어들이 뭉쳐 있는 가운데 ‘성장’이 두 번이나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 정부가 농업을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농업을 철저히 성장해야 할 산업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나 농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예를 보자. ‘농업, 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은 우리나라 농정의 근본적 틀을 정하는 법이다. 이 법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하여금 5년에 한 번씩 ‘농업, 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약칭 농발계획)을 세우도록 정하고 있다. 최근 2023년 초에 그 주기가 돌아와서 새 계획이 발표되었다. 이 계획을 보면 중요한 ‘전략 분야’ 다섯 개가 제시되어 있는데 거기 어디에도 ‘기후’나 ‘환경’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 대신 여기에도 ‘미래 농식품산업 기반 조성’이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농업정책의 중요 목표로 ‘성장’과 ‘산업’을 거의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매우 특이한 예외적인 현상이다. EU의 경우 2023년부터 2027년까지 공동농업정책계획을 보면 열 개의 핵심정책목표 중에 이른바 지속가능성 의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세 가지이다. ‘기후변화 감소에 기여’, ‘효율적 자연자원 관리’ 그리고 ‘생물학적 다양성 손실 저지 및 역전’이 그것이다. 미국 농업부의 2022년부터 5개년 정책계획(USDA Strategic Plan Fiscal Years 2022~2026)을 보자. 여섯 개의 전략목표 중 1번이 ‘기후변화에 맞서 싸워 미국의 토지, 자연자원, 그리고 공동체를 지탱한다’로 되어 있다. 산업으로서의 농업이, 그것도 수출산업으로서의 농업이 가장 발달했다고 국내 많은 사람들이 ‘모델’이라고 바라보는 네덜란드는 어떠한가? 2018년 그 나라의 농업자연식품품질부가 발표한 ‘비전 문서’는 부제가 ‘순환농업의 지도국 네덜란드’이다. 농업활동을 통한 물질소비를 가능한 한 최저로 낮게 하면서 자원의 순환을 추구하는 것을 비전으로 내걸고 있는 것이다.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 농업과 관련한 정책, 계획, 제안을 평가하는 기준을 아홉 가지 제시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식료체계 전체에 걸쳐서 자원순환을 완결적으로 만들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바이오매스 낭비를 감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농업과 토지이용에 있어서 기후과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가?’ ‘생태계(물, 토양, 공기), 생물다양성 그리고 농업경관의 자연적 가치에 도움이 되는가?’ 강조하지만 농업 중 환경과 관련된 분야 정책에 대한 평가 기준이 아니라 국가의 농업정책 일반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물론 무엇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제시한다는 것과, 실제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지, 그리고 정말 그것을 이루어내는가는 다른 일이다. 우리 정부도 세부적으로는 환경, 기후 문제 대응을 내걸고 있는 농업정책들을 몇 가지 시행하고 있고 지금도 개발 중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대응과 농촌환경 보존을 농업정책의 핵심에 세워놓지 못하고 ‘세부 수단’으로만 여기는 나라가 무언가 그 문제에 대해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농업을 성장산업으로 만든다는 것은 결국 돈이 되는 농업을 하자는 것인데, 농업의 특성상 경제수준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인구가 증가하지 않는 이상 소비하는 물량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 상황에서 생산성 증대는 농산물 가격을 떨어뜨리므로 소득 증대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게다가 값싼 외국농산물이 자유롭게 들어온다. 그것을 뚫고 ‘성장’을 하고 돈을 벌라고 하면 농민들은 한정된 농지를 놓고 경쟁하면서 좁은 땅에 농약, 비료를 많이 투입하고 각종 기계, 장비를 마련하느라 진 빚을 갚기 위해서 허덕이는 쳇바퀴 돌기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단위농지면적당 농약과 비료 살포량이 최상위권이다. 이상형으로서의 ‘소농’은 지구를 지켜왔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농지면적이 작은 농가일수록 단위면적에 더 많은 농약과 비료를 투입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우리 농가는 농지 100제곱미터당 평균 2.4만 원어치의 농약과 비료를 뿌리고 있지만 농지면적이 0.5ha(약 1,500평)가 안되는 소규모 농가들은 100제곱미터당 평균 3.5만 원어치를 뿌리고 있다(통계청 농가경제조사에 근거). 전체 농지 중 친환경농업을 하는 면적은 독일과 프랑스는 10% 내외, 이탈리아는 17%이지만 우리는 아직 3%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건이 다르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친환경농업 지원 정책이 초창기였던 2000년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친환경농업의 면적도 3%, 1% 정도에 불과했었다. 지난 23년 사이에 이렇게 차이가 벌어지게 된 것에 대해서는 ‘산업으로서의 성장’을 우선시하는 정책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250개 버튼이 달린, 그렇지만 먹을 것 없는 자판기
목표가 그러한 가운데 농업예산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정부가 펼치고 있는 농업정책의 중점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일차적인 방법은 농업 관련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쓰고 있는 예산이 어떤 용도로 얼마만큼 쓰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보려고 할 때 마주치는 벽은 정부가 돈을 쓰고 있는 예산 항목 종류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단위 사업’은 2022년 기준 101개, 그것을 쪼갠 ‘세부 사업’은 245개이고 세부 사업은 또다시 수많은 ‘내역 사업’들로 잘게 쪼개진다. 인터넷 농림축산식품부 사업 정보 페이지(agrix.go.kr)에 가보면 거기에 올라 있는 사업 개수는 2023년에 337개나 된다. 실로 정부는 우리 농업•농촌을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로 여기에 우리 농업정책의 근본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17조 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수백 개의 이른바 ‘사업’으로 나누어져서 그 누구도 그 전체 구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로 이곳저곳에 쓰이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소비자와 환경을 생각하기보다 그 떠도는 돈을 쫓아 이리 쏠리고 저리 달려가기 바쁘다. 개인적으로 유능하고 사명감도 있는 농림부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무엇인가 농업과 관련하여 새로운 사회적 주제가 떠오르거나, 신선한 충격을 주는 좋은 사례에 접할 때 조건반사적으로 그것으로 무슨 ‘사업’을 할 수 있는가를 찾는 것을 자주 본다. ‘사업’이라는 이 단어는 우리나라 관료조직이 경제정책을 대하는 생각의 틀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일반인들은 이 단어를 남에게 고용되지 않고 돈을 버는 자영활동이나 기업의 활동이라는 뜻으로 쓴다. 이 낱말이 우리나라 공무원조직에서는 특정한 주체들을 선발해서 그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면서 세금을 주는 정책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 사업들은 정부 내에서 비교적 약자에 속하는 농림축산식품부라는 부처가 돈(예산)을 확보하고 자리(조직)를 지킬 수 있게 하는 그야말로 ‘사업’이 된다.
일선에 계신 농민 중에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꼬집어 말씀하신 분이 계셨다. “우리나라 농업정책은 200여 개의 버튼이 달린 자판기와 같다. 그중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버튼은 없다.” 수백 개의 버튼이 달린 자판기 앞에서 많은 농민들은 허기와 목마름을 느끼고 일부 재빠른 농업인들과 관련 업자들이 ‘보조금 사냥’, ‘다방 농사’를 짓는다는 의심을 받는다.
자판기의 비유는 가짓수가 많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해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중앙정부가 디자인해둔 상태라서 버튼을 눌러서 꺼내 먹든지 아니면 안 먹든지(못 먹든지) 하는 선택 이외에는 할 수 없다는 것도 말해준다. 농업만큼 지역성과 개별성이 큰 인간의 활동도 없다. 강력한 중앙정부는 그것을 고려해줄 만큼 섬세하지 못하다. 유능한 공무원과 이른바 전문가들이 문서와 숫자를 참고하여 정책을 만들고 실제로 농사짓는 사람들이나 지방자치단체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말거나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재정력이 약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어떻게 해서든 중앙의 예산을 끌어다가 무엇인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 중앙정부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사업 유치’를 위해서 경쟁을 벌인다. 이것은 마치 가난한 가정들이 자기 집에 어린아이가 있는지, 임산부가 있는지, 혹은 고령자가 있는지에 맞게 식재료를 골라서 요리하지 못하고 그날그날 세일로 나온 음식을 사서 배를 채우기에 바쁠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런 비판이 이어지자 ‘농촌협약’이라는 제도를 도입해서 지방자치단체가 보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종합적으로 ‘사업’을 계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협약’은 흔히 농촌정책이라고 하는, 생활을 위한 시설 건립 위주의 사업에 국한되어 있고 농업을 지역에 맞게 가꾸어나가는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농업정책에서도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이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 중에 “정부에 너무 실망하고 정부가 우리를 귀찮게만 하니까 이제는 정책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정부가 우리를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분이 계셨다. 이렇게 말씀드렸던 것 같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무관심으로 대하기에는 정부는 너무 힘이 강하고 돈도 많다.”
정부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정부가 만드는 정책이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시민들이 폭넓게 개입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개입을 허용하는 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중요한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농업, 농촌, 식품산업 기본계획은 농정에 있어서 유일한 종합적 중기적 계획이다. 그런데 이 계획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철저히 농림축산식품부의 집안일이었다. 국책연구기관이 연구용역의 형태로 기본적 틀을 만들었고 최종 단계에서 이른바 전문가들의 의견을 형식적으로 청취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자체 판단으로 만들어졌다. 계획의 수립 주체가 정부인 것은 법이 정하고 있는 바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다. 5년간 농정의 기본적 틀을 만드는 일에 농민, 농촌 주민, 소비자, 환경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은 의견을 표명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였다.
모든 나라에서 농정계획이 이렇게 농민을 포함한 시민들의 머리 위로 지나가버리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는 4~5년 단위로 연방정부가 중기적인 농정계획을 세울 때에 그 초안을 공개해서 농민단체는 물론, 농업, 식품,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진 모든 단체와 개인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발표된 2022~2025년에 대한 계획의 준비 단계에서 주정부, 정당, 농민단체 등은 물론, 378개의 기관 의견과 3,419건의 개인 의견이 표명되었다. 스위스도 결국 계획은 정부가 세우지만 그 계획을 확정하여 보고서를 발표할 때에는 그 첫머리에 그러한 단체와 개인들이 표명한 의견들을 정리하여 제시하고 그 각각에 대해서 어떻게 반영했는지, 반영하지 못한 경우에는 왜 하지 못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뿐 아니라 홈페이지에 의견을 표명한 단체와 개인들의 명단을 모두 공개하고 그 의견서 전문을 모두 수록하고 있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서 농정계획에 대해서 다양한 주체들이 어떤 입장과 주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서로 알게 하고, 그것을 얼마나 정책에 반영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농업분야에 고유한 것이 아니고 스위스 연방헌법 147조에 명시된 의견 청취 제도에 근거한 것이다.(147조는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주(州), 정당, 그리고 관심을 가진 집단들은 중요한 법령과 기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계획 그리고 중요한 국제법적 조약을 준비함에 있어서 의견표명을 하도록 요청받는다.”)
이 조항에 따라서 의견 청취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이 제정되어 있다. 우리 헌법에는 국민의 권리로서 ‘방어적’ 성격의 기본권에 대한 조항이 매우 많지만 정부가 정책을 형성하는 과정에 국민이 주권자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어렵다. 헌법에는 청원할 권리(26조)가 정해져 있지만 그것은 국가가 ‘심사’할 대상이 될 뿐이다(26조 2항). 또 ‘행정절차법’이 있지만 여기서 ‘계획’과 관련해서는 정부에 ‘예고’할 의무만이 정해져 있을 뿐이다.
정부가 계획을 세울 때 농민과 시민사회가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말하고 서로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통로가 중요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농민들이 지역과 전국 단위에서 농업 내부의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서로 조정하고, 중지를 모아서 농업 외부의 요구와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틀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미 많은 농민단체들이 있다. 오래된 조직도, 새로운 조직도, 일반적 조직도, 특정한 집단을 대표하는 조직들도 있다. 이처럼 조직이 다양화되는 것은 우리 농업의 모습이 다양해지고 농민들이 중시하는 삶의 필요가 다양해지고 있으므로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그러나 그 다양한 조직들이 서로 대화하고 생각과 목소리를 모으지 못하면 결국 정책기획은 관료와 일부 전문가에 맡겨지고 그 혜택은 그들과 이런저런 연줄을 가진 소수의 사람과 조직에 집중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미 1990년대 말부터 유럽과 일본의 예를 참고하여 ‘농업회의소’를 조직하고자 하는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 농업회의소는 나라와 지역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법률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진 공적 조직으로, 농업부문에서 민주적 대의제 원칙하에서 농민의 이익과 전문성을 농정에 반영하고 정부의 농업정책 집행의 일부를 위임받아서 수행하기도 하며 농민에 대한 교육, 훈련, 컨설팅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임의 또는 강제 가입한 농민들이 회원이 되어 그들이 선출한 조직이 실제 업무를 담당하며 재정은 회원의 회비, 위임사무 수행 및 회원에 대한 서비스의 대가로 충당한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농업회의소들은 외국의 모델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졌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었음에도 그리고 입법 시도가 있었음에도 아직 전국적 수준의 법률적 근거가 없다. 2010년부터 정부의 시범사업(!)의 지원을 받아서 소수의 지방자치단체에 농업회의소가 만들어져 운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미 만들어진 농업회의소가 모두 긍정적 성과를 내고 있지도 못하고, 그 활동의 방향조차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 못한 곳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인 분들의 수고에 힘입어서 과거에 독점되었던 농업정책 정보가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 전파되고, 지역의 주민들이 어떤 농업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어서 그것이 지방자치단체에 전달되는 성과도 내고 있다.(김정섭, 〈농어업회의소 10년 평가와 발전 방안〉(2021), 농어업회의소 10년 회고와 전망 토론회 발표 자료)
이러한 농업회의소가 되었든, 다른 대안적 조직이 되었든 농업정책의 형성과 시행 과정에 농민을 민주적으로 대표하는 조직이 제도화된 간여를 하지 못하면 우리 운명을 좌우할 농업정책이 소수의 손에 독점되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 책에서는 1970년 농가인구를 716만 명으로 잘못 기재하였습니다. 독자분들께 혼란을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2023년 12월 6일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