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는 인간의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로 가뭄, 홍수, 폭염, 한파, 태풍, 대형 산불 등 기후재난이 증가하고 불균등한 피해가 발생하는 현재의 상황을 ‘기후위기’로 엄중히 인식하고, 기후위기의 적극적 해결을 위하여 현 상황이 ‘기후위기 비상상황’임을 선언한다.
―국회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문(2020년 9월 24일 채택)
늦장 부리다가 날림? 기후위기대응법 논의 현황
기후위기는 점점 심화되고 과학자들의 경고는 거듭되며 시민들의 걱정은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국회는 작년 9월에 결의문을 통해서 기후위기 비상상황을 선언하였으며,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을 천명하였다. 이런 흐름을 이어, 작년 말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도 관련 법안을 여러 개 발의하기 시작했다. 8월에 정의당이 선도적으로 그린뉴딜 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이를 넘어서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법안들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법안을 발의하면서 정부의 탄소중립 의지를 법률로 뒷받침하겠다며, 올해 2월까지는 처리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8월이 다 되도록 이 법안 논의는 여야 대립 속에서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다. 비상상황을 선언해 놓고도 늦장을 부린다고 비판을 받을 일이다. 그러나 제대로 만들기만 한다면 참지 못할 일도 아니다.
국회의 최우선 관심은 기후위기 대응법에 있을까?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국회는 지난 2월에 부산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안을 신속히 처리했다. 법안 발의는 더 늦게 이루어졌는데도 4개월도 지나지 않아 빠른 속도로 통과된 것이다. 신규 공항 건설계획이 기후위기 비상상황 결의와도 반하고 탄소중립 추진 의지에도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거를 앞둔 보수정당들은 그런 것쯤은 언제든 무시해버릴 수 있다는 ‘진실’을 새삼 확인해주었다. 국회가 결의문에서 약속한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설치도 진즉에 잊혀졌다. 그 탓에 법안 심의는 기존의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무위에 발의된 관련 법안을, 그나마 사정을 좀 아는 환경노동위원회로 이관하여 논의하기로 한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겨야 할 상황이다.
현재까지 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의원들에 의해서 7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병합심사 중에 있으며, 정부는 이를 종합한 대안법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법안들에는 수많은 쟁점이 놓여 있지만, 국회 논의는 바람직한 해결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정부·여당은 탄소중립을 천명하면서도, 기존 이해관계 그리고 사회구조와 단절할 용기와 전략이 부재하다. 그 탓에 기후위기의 심각성, 탄소중립의 과학적 기반,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을 무시한 터무니없는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들도 오락가락하는 주장으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5월 말 P4G 회의 개최에 맞춰 법적 기반 없이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범시킨 후에, 사후적으로 법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서둘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11월 말 COP26(글래스고) 이전에 NDC(2030년 감축목표) 강화안을 내놓기 위해 뒤늦게 허둥대고 있다. 마음 급하기야 정부보다 수백 배 더하지만, 그러나 날림은 환영할 수 없다.
기후위기 대응 법안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
우선 엉뚱하게 불거진 쟁점부터 살펴보자. 이명박 정부 때에 만든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하, 녹색성장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령을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민의힘 소속 법안심사소위 위원장 임이자 의원이 녹색성장법으로도 충분히 탄소중립 추진의 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고집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하고서도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계획을 승인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했던 정부가 내세운 ‘녹색성장’을 되살리자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황당해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여당은 국민의힘의 고집과 타협하여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이라는 대안을 제시해 놓고 있다. 이런 타협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사실 기술과 시장을 통해서 온실가스도 줄이고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킨다는 ‘녹색성장’ 전략을 거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좀 긴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뒤에서 다시 짚어보겠다.
다음으로 부각된 쟁점은 2050년 탄소중립 이전,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 즉 NDC를 정하는 일이다. 한국은 ‘기후악당’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하면서, 대통령은 여러 차례 NDC를 상향하겠다고 공언했다. 임기 안에 상향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COP26 전에 하겠다고 앞당겼다. 현재 2017년 배출량 대비 24.4%인 목표를 상향한다면 얼마나 해야 할까?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2017년 대비) 40% 내외의 감축목표를, 그리고 홍정기 환경부 차관은 2018년 대비 37.5% 감축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당 그리고 기후위기비상행동은 2010년 대비 50% 이상 감축을, 청소년기후행동은 2017년 대비 70%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기후위기의 심각성, 탄소중립의 과학적 기반, 그리고 기후정의 관점에서 한국이 져야 할 책임의 크기를 둘러싼 논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송영길 대표와 홍정기 차관의 제안은 근거가 없거나 부실하다. 상향한 감축목표치를 두고 “어렴풋한 숫자가 떠올랐다”고 발언하여 놀림감이 된, 일본의 고이즈미 환경상에 비교될 수 있다. 아무런 근거도 설명도 없이 목표치를 제시한 송영길 대표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홍정기 차관은 배출 정점인 2018년 배출치와 2050년 배출제로 사이를 직선으로 그은 후에 2030년에 해당하는 수치를 제안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근거가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전지구적 감축 권고치(2010년 대비 45% 감축)에도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한국의 역사적 책임 그리고 역량을 고려할 것을 요구하는 기후정의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 허용될 수 있는 ‘탄소예산’ 내에서 탄소중립 경로를 선택해야 하지만, 모든 법안들은 탄소예산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NDC와 관련하여 어처구니없는 쟁점도 불거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2030년 감축목표치를 법률에 명시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민주적 결정과 이행의 책임을 떠안기보다 자신들이 주무를 수 있는 기술관료적 결정을 더 선호한다. 이미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은근슬쩍 시행령을 바꿔서 감축목표를 후퇴시켰던 역사를 잊을 수 없다. 정부는 아직껏 아무런 해명과 사과도 없지만 말이다. 정부·여당은 2030년 목표치를 상향하게 될 경우에 법률 개정의 경직성 때문에 곤란하니 시행령에 넣자며, 짐짓 목표 상향을 위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강은미 의원이 “50% 이상 감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야심 차지만 최소한의 목표치를 정한 후 정부의 의지에 따라서 이를 강화할 방안이 충분히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최근 정부는 국회 논의과정에서 2018년 대비 30% 이상 감축안을 제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잘 부각되지 않았지만 짚어야 할 쟁점은 너무 많다. 특히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및 흡수원의 활용에 대해서도 엄격한 토론이 필요하다. 2050년 탄소중립은 여야가 이견이 없지만, 기후정의의 관점에서는 잘못되었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대신 흡수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접근은 화석연료 채굴과 이용을 금지해야 할 필요성을 가려버린다. 또한 탄소환원주의 아래 숲과 나무를 단순히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흡수원으로만 간주하는 경향을 강화한다(산림청의 30억 그루 사업을 상기하라). 게다가 해외에서 산림을 조림하는 등의 방식으로 흡수원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국제적 기후정의운동이 오랫동안 맞서 투쟁해온 일이다. 무엇보다 위험하고 실효성도 의심되는 탄소포집이용저장(CCUS) 기술을 정당화시킨다. 정부의 탄소중립 전략과 시나리오, 그리고 대안법안에도 CCUS가 상당한 비중으로 포함되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제안한 기후정의 법안은 ‘배출제로’와 ‘탄소중립’을 구분하고 있고, 화석연료 사용을 중지하는 ‘탄소제로’를 원칙으로 주장하고 있다. 필요할 경우 제한적인 수준에서 국내의 숲에 대한 흡수원만을 인정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탈탄소 전환을 추진하면서 버려야 할 에너지원으로 화석연료 이외에도 핵에너지를 명확히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정책을 지속적으로 방해하였던 국민의힘, 그리고 그 후보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윤석열 씨 등은 핵발전을 기후위기 대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후 선진국들은 유럽연합(EU)에서 핵발전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을뿐더러, 국내 기후위기비상행동 역시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반대로 지향해야 할 에너지원으로, 신에너지를 제외한 재생에너지임을 분명히 해서 혼란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석탄에 기반을 두고 있는 IGCC(석탄가스화복합발전)나 천연가스를 개질해서 얻는 수소(소위 그레이수소)를 제외시켜야 한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에너지를 기후위기 대응 법안에 담을 수 있다는 발상은 그 기술을 둘러싼 기존 이해관계가 얼마나 강고한지를 보여준다. 탈탄소 전환은 단순히 재생에너지의 확대에 투자하고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소위 ‘탄소잠김’ 현상과 핵심적인 화석연료 동맹을 분쇄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녹색성장’이 아니라 ‘기후정의’가 필요하다
다시 가장 중요한 쟁점인 ‘녹색성장’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자. 필자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기후위기 대응법은 “‘탈탄소경제법’이 아니라 ‘기후정의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여당은 기후위기 상황에서도 경제성장 강박증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하면서도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는, 소위 ‘탈동조화론’에 기반한 ‘생태적 현대화론’이라는 환상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접근 탓에 기업들을 해결 주체로 삼아 이들을 지원하고 기술과 시장을 활성화하여 탈탄소경제로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회 논의과정에서는 기존 지배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맞설 배포도 없어 감축목표 상향을 깎아내리는 데 매달리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그렇게 접근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 기후위기의 책임이 적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떠안고 있는 민중들을 해결 주체로 세워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고, 무한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려는 목표와 전략으로써만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짐작할 수 있듯이, 국회의 기후위기 대응 법안 논의는 새로운 길을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이 애초 기존의 녹색성장법에 토대를 둔 것이어서 녹색성장 프레임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법안들이 기업을 지원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녹색성장법의 목표와 조항들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민주당의 대표적인 법안인 이소영 의원안의 경우, ‘탈탄소경제의 실현’이라는 장을 두고 “국가경제의 건전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성장 잠재력이 큰 새로운 탈탄소산업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9개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업들의 탄소배출량, 감축 실적 및 감축 계획의 공개 등, 기업이 부담스러워 할 내용이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사회적 관심사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은 기업들이 반길 만한 선물들로 가득 차 있다. 몇 가지만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탈탄소기술 연구개발 및 사업화 등의 촉진을 위한 금융지원(51조), 탈탄소경제 및 탈탄소산업 지원을 위한 재원의 조성 및 자원 지급, 기반시설 구축 사업에 대한 민간투자 활성화(52조), 탈탄소기술·탈탄소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우선적인 신용보증 혹은 보증조건의 우대, 소득세, 법인세, 취득세, 재산세, 등록세 등의 감면, 고충을 조사하고 불합리한 규제 등의 시정(53조), 집적지 및 단지 조성, 그 소요 비용의 전부 및 일부를 출연(55조), 자산가치 하락의 위험이 있는 기업의 조기 전환 지원(57조) 등.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민의힘의 법안에도 들어가 있는 조항들이다. 정부 대안법안에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지난 야당 시절, 민주당의 녹색성장에 대한 비판은 당시 정권에 대한 반대였을 뿐,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한 노력은 아니었다. 지금 민주당과 정부 안에서는 녹색성장은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개념이며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잠시 오염되었을 뿐이라는 옹호도 나오고 있다. 사실 이 말은 맞다. 유럽연합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하는 그린딜은 새로운 경제성장의 방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녹색성장 전략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또 맞는 것인지 토론은 없다. 그동안 온실가스를 거대하게 배출해오던 기업들은 친환경 기업들로 전환할 것을 약속만 한다면 막대한 정부지원을 얻고 기존의 막강한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기에 옹호되고 있을 뿐이다. 기업들을 보호하고 육성하여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지배적인 접근 위에, ‘기후정의’니 ‘정의로운 전환’이니 하는 장식품만을 유행처럼 올려두고 있다. 온실가스는 줄일지 모르지만(그것도 장담하기 힘들다)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한 세상이 예고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 상황에서의 (‘국민’으로 제한되지 않는) 사람들의 권리와 정부와 기업의 의무를 규정하자는 제안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사람들은 기후위기로부터 보호받으며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는 점을 법에 명시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어느 법안도 ‘국민의 책무’가 아닌 ‘사람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지 않다. 또한 국가와 기업은 기후변화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을 보상할 책임을 가진다는 점도 주장했다. 정의당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기후위기 피해와 손실에 대해 보상해야 할 책임을 가진다”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위기의 책임을 지닌 사업주는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와 손실에 대해 보상해야 할 책임을 가진다”고 구체적인 조항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환경부는 대안법안을 제시하면서, 책무 규정에는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인 손실 보상은 담을 수 없다는 법리적인 이유를 들어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행동하지 않아서 위기를 유발하고 가속화시킨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선물을 잔뜩 안겨다 주는 법은 기후정의법이 아니다. 아무리 법안에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언급하고 그 정의(定義)를 제시하고 있다 해도 소용없다. 또 기후위기를 벗어날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도 불가능해진다.
기후정의를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우려하고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현재의 제도화된 입법과정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이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정의당과 같은 국회 내 소수 진보정당의 힘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매번 무기력하게 주저앉는 정치개혁에 대한 안타까움이 뼛속까지 시리다. 주저앉을 수 없는 시민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기후 시민의회’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런 제안은 영국의 멸종저항이 “기존 정치를 넘어서자”며 제안한 시민의회 요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미 영국과 프랑스 의회와 정부가 그 이름으로 진행한 시민참여의 사례에 고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최근 들어 이 정부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관행적으로 활용하는 공론조사와 같은 방법론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인구통계학적으로 ‘작은 대중(mini―public)’을 구성한 이들의 숙의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영세 상공인 등의 직접적인 참여를 대신할 수 없다. 게다가 터무니없는 선택지들 사이에서 선택할 것을 요구받으며, 기존 체제에 대한 의문과 도전이 허용되지 않는 ‘극장 민주주의’로서의 숙의민주주의라며 더욱 그렇다. 오히려 저들의 의사당을 위협하며 시민들이 다시 거리에 서는 것이 필요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미 일부 시민들은 ‘기후불복종 직접행동’에 나서고 있다. 기후정의법은 거리에서 ‘기후정의동맹’에 의해서 먼저 만들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