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는 통상적인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넘어선 문명적인 위기이다. 세계적 차원에서도 국내적으로도 양극화, 도농 격차, 인구 감소, 실업, 공동체의 붕괴, 시민사회 및 사회적 연대의 해체, 에너지 및 자원 고갈, 그리고 기후변화로 대변되는 가공할 생태적 위기로 인해 국가들 간에는 냉전이 다시 운위되고 전쟁위협의 암운마저 감돌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궁극적으로 화석연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산업자본주의 문명이 끝나감에 따라서 나타나고 있는 증상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위기가 실제로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고, 그러므로 개별적으로 분리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거의 모든 근대적 제도와 관행들은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의 불가결한 일부로서 형성되어 발전해온 것이다. 산업적 생산과 유통 체계, 화폐제도 및 금융시스템이나 (정당정치, 대의제 민주주의 같은) 근대적 국가의 통치시스템이 산업자본주의의 팽창과 함께 성장해온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교육, 의료, 교통, 통신 등의 사회적 서비스들 역시 산업문명을 뒷받침하고 유지하는 데 불가결한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산업문명의 급진적인 개혁이 오늘의 총체적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규율해온 가치와 제도, 관습에 대해서도 되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호 《녹색평론》은 그래서 교육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자유의지와 도덕,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시민의 존재는 일체의 억압적인 권력의 설 자리를 빼앗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여 마침내 공동체의 좋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 중의 토대이다. 그러나 성장경제 노선에 편입되어 있는 교육제도는 생산성, 능률, 진보라는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거대기계’에 복무하는 인적 자원을 양산하는 기능밖에 하지 못한다. 거기에 더해 주의력을 한없이 분산시키는 소비주의 문화의 끊임없는 공세와 인간을 중독, 마비시키는 미디어의 감각적 공격에 날마다 노출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현실세계를 스스로의 오감으로 인지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주체적인 판단력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주변에 대한 무관심과 폭력성을 나타내면서, 권력과 도피주의에 경도되어 기계적(기술적) 자궁 속으로만 파고드는 유아성(幼兒性)은 신인류의 특징이 되어 있다.
8월 9일 유엔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여섯 번째로 경고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실증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수적인 전망을 내놓는 이 단체가 ‘매우 심각한 위기상황’을 거듭 이야기할 정도로 우리 현실은 긴박한 행동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비상한 위기감과 조바심 속에서도 우리의 목적지는 기후변화의 경감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지구온난화라는 실존적 위협에 대한 인류의 대응이 결코 단순히 살아남아서 ‘멋진 신세계’를 구축하는 것일 수는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인류세의 시대에 가장 긴급한 일은 뭇 생명의 터전인 땅(자연)을 보살피고 이웃과 더불어 후세대를 고려하면서 살아가는 공동의 삶의 방식과 원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성에 대한 오래된 정의(定義)를 우리가 보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관건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