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환경연구소(IEER) 아르준 마키자니(Arjun Makhijani) 소장과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리우연구소 M.V. 라마나(M.V. Ramana) 교수가 공동으로 작성한 이 글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영리 교육·미디어 단체 ‘Environmental Working Group’ 웹사이트(2021년 3월 25일)에 발표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소형모듈원자로(SMR)는 1,000~1,600MW 수준의 전력을 생산하는 일반적인 원전보다 훨씬 작은 용량인 300MW 이하 발전을 위해 설계된 원전이다. 이렇게 표준화된 개별 설비의 규모는 작지만, 일반적으로 하나의 부지에 여러 개의 원자로가 설치되도록 계획되어 있다.
원자력산업계와 미국 에너지부(DOE)는 기후변화의 혹독한 영향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소형원전 개발을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SMR은 과연 이 목적에 부합하는 실질적이고 현실성이 있는 기술일까?
이 문제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두 가지 요인, 즉 시간과 비용이 관건이다. 그리고 이 기준에 따라서 소형원전은 크게 두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미국에 있는 기존 핵발전소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기술과 설계목적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수로형 원자로이다. 이 유형은 원리적으로는 좀더 손쉽게 승인을 받고 운영허가를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폭넓은 범주의 연료를 사용하는 설계들로서, 고체 볼이 노심 속을 통과해 움직여가거나, 용융물질이 노심을 통과해 흐르는 경우, 그리고 흑연과 같은 감속재가 사용되거나, 헬륨, 액상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경우, 또 용융염을 사용하는 원자로 등이 있다. 그러나 어떤 유형이든 소형원자로의 전망은 어둡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경제성과 규모
원자로가 큰 것은 규모의 경제성 때문이다. (대형) 원전이 소형원자로보다 3배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가정했을 때, 철강이나 노동력도 3배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950~1960년대에 숱한 소형원전이 개발되고도 이른 시기에 폐쇄된 데에는 이렇게 경제적으로 불리한 점도 한 가지 이유로 작용했다.
소형원전 옹호자들은 규격화된 공장식 제조방식으로 채산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원자로 부품을 규격화하여 조립라인에서 대량생산하면 비용이 절감된다는 논리이다. 그들은 더 나아가 단위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비용이 비슷해진다면 개별 소형원전의 비용이 낮아진다는 뜻이 되고, 전력사업자가 투입해야 할 자본도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양산시스템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SMR 기술이 빠른 시일 내에 생산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낙관적으로 전망하더라도, 생산 단위전력당 비용에 따라 제조될 것이기 때문에 대형 원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고가일 터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봐도 단위전력 생산량 대비 투입 자본의 비율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전 세계에서 핵발전소가 가장 많은 두 나라 미국과 프랑스의 전력(前歷)을 살펴보면 신규 원전은 대체로 구형 원자로보다 오히려 비쌌다. 그리고 소형원전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1기당 비용은 기존의 원전보다 적을 테지만, 보통 하나의 발전 부지에 여러 개가 설치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사업의 총비용은 더 높아지게 된다.
대량생산의 측면
만약 원자로에서 안전성과 관련된 오류가 발생한다면 그 많은 대량생산된 원자로가 모두 회수되어야 할 수도 있다. 보잉사의 737맥스, 드림라이너 제트여객기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나 방사성 원자로를 어떻게 회수할 수 있을까? 더욱이 발전시스템이 동일한 공장제 원자로들에 의존하고 있을 때 이것이 리콜 대상이 된다면 전력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 원자력산업계나 에너지정책 입안자들은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실은 이런 질문들은 아직 제기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리콜 가능성은, 스마트폰에서 제트기에 이르기까지,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이 문제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은 ‘뉴스케일’ 모델과 같은 경수로 소형원전들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는 가압수형 원자로(PWR) 설계에는 커다란 경제성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원자로 수명이 다하기 전에 증기발생기를 조기에 교체해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기발생기는 원자로에서 나온 고압의 온수가 터빈발전기를 가동시킬 증기로 변환되는 장치로서, 고가의 거대한 열교환기이다. 바로 그 문제로 지난 10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산오노프레 원전의 원자로 2기와 플로리다에 있는 크리스탈리버 원자로 1기가 영구히 폐쇄되었다.
심지어 일부 경수로 소형원전의 경우에는 증기발생기가 원자로 용기 내부에 있는데, 그럼 그것을 교체하는 작업이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극도로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요컨대 증기발생기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곧장 폐로로 이어질 수 있다.
모듈구조가 갖는 문제들도 이미 드러났다. 그것은 웨스팅하우스사(社)의 ‘AP1000’ 원자로 설계에서 핵심적 측면이었는데, 미국과 중국에 건설된 AP1000 원자로들은 건설비용도 예산보다 엄청나게 초과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사기간도 대단히 지연되었다. 조지아주 공공서비스위원회(PSC)의 위원을 지낸 한 인물은 2015년에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렇게 말했다. “모듈구조는 약속했던 해결책이 되지 못했습니다.”
대량생산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공장들에서 대량생산이 되지 않는다면 소형원전은 (이론상 가능한) 비용 경감을 결코 달성할 수 없다. 그런데 바로 대량생산으로 비용을 낮춘다는 것이 규모의 경제로 인한 약점을 보완하는 전략에서 핵심인 것이다. 그렇지만 애초에 비용이 낮지 않으면 사업자가 나설 리 없고, 일련의 대량생산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투자를 자극할 유인이 없는 것이다.
소형원전의 지금까지의 실적
지금까지의 실적을 보면, 소형원전 역시 기존의 원전들과 같은 형편없는 채산성을 보여주고 있다. 2015년에 아이다호주에 제안되었던 원전사업(뉴스케일 설계를 사용한)의 총비용은 약 30억 달러였는데, 2020년 기준으로 이미 61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그런데 실제로 건설에 착수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다른 유형의 소형원전들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경수로에 기반하지 않은 설계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서 나트륨(소듐)을 사용하는 소형원자로의 경우에는 냉각재로 물이 아닌 액상 나트륨을 사용하는데, 1950년 이래로 전 세계에서 약 수천억 달러가 투자되었지만 어디에서나 소듐 원자로는 상업적으로 실패해왔다.
더욱이 그런 설계는 안전성 승인을 받기 위한 과정이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비용도 더욱 많이 들 가능성이 크다. 각각의 설계 유형에 따라서 안전모드와 대비해야 할 사고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가령 고온의 가스―흑연 원자로는 노심 용융보다 화재가 위험요소이다), 인증을 받기 위한 절차를 준비하는 데에만 수년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비용이 얼마나 들지 짐작하기 위해서 참고로 예를 들어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경수로형 원전인 뉴스케일 원자로의 경우에 개발과 인증을 받는 데에만 약 15억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형의 비경수로 원전의 경우에는 구상에서부터 인가를 받기 위한 심의 단계까지 발전하려면 비용은 더욱 많이 들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소형원전이 기존의 원전과 대등한 단위전력당 생산비용을 꾸준히 달성하는 일은 엄청난 난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대형 원자로들이 얼마나 비싼지를 감안한다면, 소형원자로가 그 어려운 일을 달성한다고 해도 여전히 경제성이 없다. 풍력과 태양광 전기는 꾸준히 가격이 떨어져왔고, 앞으로도 하락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금융투자회사 ‘라자드’는 태양광 및 풍력의 사업용 발전량의 비용을 메가와트시당 약 40달러로 추산한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은 4배 더 많은 약 160달러이다.
소형원전 주창자들은 그동안 전력망에서 비중이 증가해온 변동성이 큰 전력원(풍력, 태양광 등)을 보완하는 데 핵발전이 유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전력 배치는 비용 면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다.
규모가 작든 크든, 원전은 변동성에 대응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원자로는 고정비용(자본)이 높고 가변비용(연료, 유지비)이 낮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소들이 기저부하 전력원으로서 사용되어온 것도 바로 그래서이다―장기간에 걸쳐 가동되면서 높은 고정비용이 희석되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변동성에 대응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는 정격 용량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결과적으로 비용을 크게 증가시키게 되는 것이다.
한편, 해수에서 염류를 제거하여 담수화하는 데 이용한다거나, 수소 및 고온의 열을 사용하는 등 소형원자로를 이용하여 다른 물자(상품)를 생산한다는 시도 역시 여러가지 이유로 경제성이 없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에너지 공급(즉 원자력)의 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소형원전과 기후위기
기후변화는 다급한 인류의 현안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등의 국제기관들은 기후변화가 되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 안에 탄소배출을 극적으로 감소시켜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부터 10년 동안 소형원전이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는 사실상 전무하다. 더욱이 원전이 건립되고, 시험 가동되고, 실제로 운용되어, 지금 약속하고 있는 바가 실제로 입증된 뒤에야 전체 공급사슬이 구축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10년 이후의 소형원자로의 전망도 암울하다.
미국정부는 지난 세기부터 소형원전 개발을 추진해왔다. 에너지부 산하의 원자력사무국은 2001년에 10종에 가까운 소형원전 설계가 “경제성을 가질 가능성이 있고, 몇 가지 기술적 문제와 운영 허가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번 세기 안에 배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제 이러한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20년이 지났지만, 가장 앞서 있는 설계인 뉴스케일 원자로의 경우에도 최단기간으로 잡아도 2029~2030년은 되어야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공식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한조차도 매우 불확실하다. 원자력규제위원회 산하 원자로안전자문위원회(ACRAS)에서 상업용 소형원전 건설이 승인을 받으려면 그 전에 해결돼야 할 심각한 안전문제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점적인 우려 사항은 증기발생기와 관련된 것인데, 앞에서 지적한 대로 원자로 용기 내에 설치된 증기발생기는 안정성 및 경제성 문제를 일으킬 소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소형원자로 개발에 매달리는 일은 다른 곳에 사용될 수 있는 소중한 공적 자금이 헛되이 낭비된다는 문제도 갖는다. 미국 연방정부는 지금까지 뉴스케일 소형원전 개발에 적어도 3억 1,400만 달러를 쏟아 넣었다. 그리고 전하는 바에 따르면 3억 5,000만 달러까지 추가로 자금을 제공하기로 동의했다. 밥콕앤윌콕스사(社)는 자신들의 ‘엠파워’ 원자로 개발을 위해서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1억 달러 넘게 받았지만 (원전 사업자) 수요가 전혀 없자 2017년에 이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그 밖의 우려 사항들
물 부족도 심각한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또하나의 우려 사항이다. 원전 가동에는 매우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300MW 원자로 한 기가 90% 설비이용률로 가동된다고 가정한다면 매일 1억 6,000만~3억 9,000만 갤런의 물이 사용된다. 만약 공기 냉각법을 사용하여 용수량을 줄인다고 해도, 추가적으로 타워를 건립하고 거대한 선풍기(전력으로 가동되는)가 필요한데, 그럼 건설비용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발전량은 원전 용량의 7%까지 축소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형원전은 원자로의 크기가 작고, 경제적인 이유로 원료를 재활용하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방사성 핵폐기물을 만들어낸다. 뉴스케일과 같은 경수로 소형원전의 경우에는 생산된 단위전력당 부피가 더욱 큰 핵폐기물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미국 연방정부는 이미 기존의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기로 한 의무도 이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벌금을 물고 있는 형편이다. 1982년의 방사성폐기물정책법에 따르면 1998년에 핵폐기물 지층처분을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거의 40년이 지난 현재, 그 계획은 실패로 귀결되었다.
결론
탈탄소 전력시스템으로 신속히 전환하는 데 있어서 소형원전이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가장 앞서 있는 경수로형 원전의 경우에도 늦지 않게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다른 설계의 원자로(흑연 연료, 나트륨 냉각 등)들의 경우에는 전망이 더욱 어둡다.
소형원전이 기존의 대형 원전과 경제성에서 견줄 만하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설혹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비용은 여전히 너무 높을 것이다. 우리가 기후친화적인 에너지시스템을 향해 가는 길에는 시간과 돈이 모두 몹시 부족하다. 그런데 소형원자로는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실패라는 것을 객관적 자료들이 증명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경감하는 데 있어서 소형원전이 실질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가능성은 없다.(김태언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