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라는 의제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 이른바 탄소중립이라는 것을 달성하는 방편이 될 ‘30억 그루 나무 심기’와 태양광·풍력 시설을 위해 수없이 많은 나무와 숲 생태계가 도륙되고 한반도의 산과 바다가 난도질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산업농법에 의한 환경피해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또한 증가하는 세계인구를 부양하려면 더 많은 농지(식량생산을 위해서든, 에너지 작물을 위해서든)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로 인한 삼림파괴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식품을 땅(흙)에서 기르지 않고 실험실에서 제조한다는 구상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계획들은 무엇 하나 주장하는 목적에 실제가 부합하지도 않지만, 그러나 그 허구성을 따져보기 이전에, 지구 위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진지하게 한 번이라도 숙고해본 사람이라면, 혹은 건강한 인간적 감수성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면 머리가 아니라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몹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회학자들은 노동생산성과 수익성에 의해 추동되는 기술의 친기업적, 반사회적 측면이나 식민화하는 힘에 대해서 지적해왔다. 특히 인공지능 및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으로 ‘감시자본주의’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선구적 기술철학자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기술의 전체주의적 속성이었다. 즉 기술이 다른 모든 논리를 압도하면서, 인간이 기계의 마음을 갖고 기계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고 기계 자체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편리와 안락함을 제공하는 콘센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과 비판력을 잃어버리고, 찰나적 유흥조차 기계에 의존하는 오늘의 우리 현실을 말이다. 기후변화의 가혹한 영향을 모면하고자 한다면, 탄소배출을 절대적으로 줄이는 쪽으로 생활방식과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 말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없다. 그러한 단순한 사실을 외면하면서 ‘탄소중립’이라는 기술논리의 장난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현대인들이 기술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역시 기후위기를 빌미로, 지난 70년의 역사를 통해 사업적으로 실패라는 결론이 난(시장논리에 따랐다면 일찌감치 지상에서 사라졌어야 할 원자력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결국 핵무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국가의 지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이 SMR(소형모듈원자로)을 앞세워 다시 꿈틀대고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든 원자력발전이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기만적인 주장이다. 기후위기 경감에 역할을 하려면 적어도 세계 에너지 수요의 20%는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운영되고 있는 440여 기 원전이 전 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이다. 바로 오늘부터 동네에 건물 들어서듯 원자로가 건설되더라도 인류사회가 기후위기의 파국적인 영향을 회피하기 위해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10년이라는 시한 동안 그 비중을 달성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또한 핵발전 원료인 우라늄 고갈이라는 문제도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추산으로도 현재의 400개 남짓한 원전 가동을 위한 수요로만 5~10년 이내에 우라늄이 생산정점에 이르게 된다. 물(담수)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참고로 현재 56기 원전이 가동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전국 담수 사용량의 약 절반이 매년 원자로 냉각을 위해 사용되면서 생태계와 농업에 커다란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해결될 수 없는) 핵폐기물 처리문제 하나에만 근거해서도, 지금 원자력 운운하는 것은 시각을 다투는 기후위기의 엄중함을 생각할 때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원자력을 허용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체제가 공생의 원리를 부정하는 산업사회의 정점에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국익을 내세우고 부국강병을 말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자연을 수탈, 착취해온 국가―자본의 논리에 토대를 두고 있는 원자력시스템은, “원천적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차별과 희생의 구조 위에서만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비인간적인 체제이다.”(김종철) 따라서 원자력체제를 근원적인 차원에서 넘어설 수 있는 힘은, 자립과 자치, 분권적인 삶을 전면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감시자본주의 시대》(2019)의 저자 쇼샤나 주보프는 산업문명이 자연을 갉아먹으며 번창하여 지구에 실존적 위협을 가져온 것처럼, 정보문명이 인간성을 훼손하면서 성장하여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뿌리째 없애고 인류사회 전체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 늦기 전에, 즉 땅을 돌보고 자연의 이치를 존중하며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중시했던 전통사회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남아 있고, 기계적 합리성의 논리에 앞서서 여전히 ‘역겨움의 지혜’(레온 카스)가 작동하는 지금, 그리고 알고리즘이 우리에게서 실패하고 좌절할 자유와 우연성이라는 인간으로서 고양될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빼앗아가기 전에, 인간으로서 지구 위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광범하고 진지한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