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구는 5,182만 명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40.7%는 석탄발전소에서, 24.9%는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다(2019년 기준). 석탄발전소 60여 기에서 호주, 러시아, 인도네시아로부터 수입한 석탄을 1년에 남산 체적만큼 태워 전기를 생산한다. 자동차 등록대수는 2,437만 대(2020년 12월)로 인구 2.13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하고 있다. 2020년 신규로 등록한 차량만 191만 대이다. 주유소는 1만 1,331곳으로 지난해 184곳이 줄었다. 국토 전역에 1,225개의 산업단지가 있고, 산업부문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36%를 차지한다. 소는 364만 5,000마리를 키운다.
석탄발전소, 자동차 등록대수, 주유소, 산업단지, 소 사육두수. 상징적인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이다. 지난해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발표했는데, 순배출량 ‘0’를 의미하는 탄소중립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도무지 감을 잡기 어렵다. ‘2050 탄소중립’은 간단히 말하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30년 안에 석탄발전소, 내연기관 차량, 주유소 같은 화석연료 기반 시설은 완전히 사라지고 산업단지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전환해야 하며, 소 사육두수는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1.5도 특별보고서를 계기로 본격 등장한 ‘탄소중립’은 지금껏 지구에서 인간이 구축해온 화석에너지 기반의 경제·사회 체제를 완전히 뒤흔드는 일이다.
기후위기와 탄소예산
인류가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다. 1997년 교토의정서 채택으로 책임이 큰 선진국이 먼저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 인도, 브라질, 한국의 배출량이 급증하면서 새로운 약속이 필요했고, 2015년 파리협정으로 협약 당사국 모두 자발적으로 감축목표(NDC)를 설정해 온실가스를 줄이기로 했다. 회의만 30년을 하더니 2018년 IPCC가 1.5도 특별보고서를 내놓은 이후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IPCC는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려면, 적어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탄소예산이 논의되기 시작한다. 1.5도를 넘지 않으려면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한도를 지켜야 하는데, 그것이 ‘탄소예산’이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연구기관인 MCC는 우리에게 남은 탄소예산은 2,817억 이산화탄소톤인데, 현재 속도로는 6년 8개월 정도면 다 배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972년 로마클럽이 발간한 《성장의 한계》를 간명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탄소예산’이다. 유한한 지구에서 인간의 무한한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후위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인류가 이 경고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한계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터득할지는 미지수이다. 그 과제를 수행해야 할 이들은 바로 지금 지구에 와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구 역사상 가장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하면서 풍요를 누리는 한편, 그 풍요에 따른 생태적 한계에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 앞에는 1.5도, 탄소예산, 8~30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이 놓여 있다.
유럽연합과 미국이 주도하는 신기후체제
전 세계 에너지 사용에서 화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84%이다. 그런데 120여 개가 넘는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의 강도에 비례해 온실가스 감축 합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19년 12월 ‘유럽그린딜’을 통해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돌입했고, 미국도 바이든 정부 출범과 동시에 파리협정에 복귀하면서 탄소중립을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4월 22일, 미국이 소집한 기후정상회담을 기점으로 2030년 감축목표를 얼마나 더 높게 설정할 것인가로 행동 시점이 당겨졌다. 파리협정을 통해 각국이 지키기로 한 감축목표를 달성해도 지구 평균기온 2~3도 상승 경로에 있기에 2030년의 목표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약속한 목표치보다 2배 가까이 높은 목표치를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3월 2일, 미국 민주당은 기후법안 ‘청정미래법’을 발의했는데, 법안에는 2005년 대비 2030년 온실가스 50% 감축을 목표로 명시하고 있다. EU는 지난해 2030년 목표를 1990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하기로 했던 것을 55% 감축으로 상향 조정했다. 영국은 1990년 대비 68% 감축을 결정했다. ‘2050 탄소중립’이 최종 목표 달성 시점을 명시한 것이라면, 2030년까지 10년의 행동은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정부 임기 내에 2030년 감축목표를 수정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11월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까지 감축목표를 재설정할 것으로 보이며, 국제사회의 상향 논의 흐름을 반영해야 한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기후위기 대응과 무역을 연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EU는 ‘탄소국경조정’ 제도를 통해 EU로 수입되는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2021년 상반기에 법제화를 마치고, 2023년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제조 과정이 단순해서 탄소 함유량을 쉽게 측정할 수 있는 시멘트와 철강, 비료, 비철금속, 화학, 펄프·제지, 유리 제품에 대해 우선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현재 친환경 배터리 규제 개정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2024년 7월부터 유럽에서 판매하는 전기차와 산업용·휴대용 배터리는 ‘탄소발자국’을 공개해야 하고, 2027년부터는 탄소발자국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제품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다. 한국의 배터리 기업도 이 규정을 따라야 한다.
미국정부도 ‘탄소국경조정요금제’ 도입 추진 등 기후변화 대응에 무역정책을 연계할 것임을 밝혔다. 탄소집약적 상품에 대해 탄소관세와 부과금, 쿼터 등을 도입하고,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교역국과의 무역협정 조건으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 탄소발자국 등 주요 기후규제는 2023~2024년 본격 실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기후위기 대응이 국제사회 외교, 통상, 경제 정책으로 확장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미국도 탄소중립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어, 이것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세계 어느 지역에 어떻게 감축부담이 전가될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인류가 기후파국으로 인한 인간과 생물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렇게 뚜렷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한정된 시간 8~30년 안에, 석유·석탄·가스를 땅속에 묻어두고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주어진 탄소예산 내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숙제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첫째,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를 준비할 때, 그래프는 우상향을 전제로 했다. 에너지 소비도, 온실가스 배출량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도 늘어나는 것으로 전제하되, 어떻게 조금 더 소비와 배출량을 줄일지를 이야기해왔다. 2015년 파리협정 당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배출전망치(BAU) 대비 37% 감축이었다. 그랬던 것이 배출전망치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지금은 2050년에 배출량을 ‘0’로 찍고, 그 ‘0’를 향해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를 계획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를 만들려면,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고, 이동량을 줄이고, 생산량을 줄이고, 덜 쓰고, 덜 먹는 시대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확장’의 세계에서 ‘축소’와 ‘전환’의 세계로 방향이 바뀌었다.
둘째, 경제활동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세계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작정하고 실행에 옮기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 분석, 평가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국가, 지자체, 기업, 시민의 활동이 온실가스를 얼마나 어떻게 줄였는지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배출권거래제, 탄소세, 탄소발자국 제도가 만들어지고 운영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기업은 상품 생산과 물류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계량하고, 배출량에 따라 비용을 내는 체계가 만들어진다. 자본주의적 접근에 대한 반론도 있을 테고, 계량하지 않으면 구체적인 책임과 비용을 물릴 수 없다는 주장도 있을 테다.
셋째, 대책이 늦어질수록 누가 더 큰 충격을 받을지 명확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충격은 공평하게 나뉘지 않는다. 국가, 세대, 업종, 지역별로 기후재난으로 인한 충격에 있어 취약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재난에도 취약하지만, 탄소중립이 실행되는 과정에서도 감당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기에 전환에 따른 대응력도 떨어진다. 안 그래도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환경의 질이 낮고,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으며,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 불평등의 격차가 심한 사회에서, 기후위기 적응이든 감축이든 약자들에게 충격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전환의 과정에서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넷째,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의 과정에서 고통을 감당해야 할 집단과 새로운 기회로 이익을 입게 될 집단이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기존 화석에너지에 기반을 둔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면 에너지, 산업, 건물, 교통, 농축산어업, 폐기물 전반에서 변화가 불가피하다. 어떤 영역은 산업이 쇠퇴하고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변화의 과정에서 새롭게 기회가 만들어지는 영역이 있다. 석탄발전, 내연기관, 축산은 줄고, 에너지 효율, 전기차, 재생가능에너지 등은 늘어날 것이다. 내연기관 차량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인 완성차기업보다는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 대량실업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EU는 탄소국경조정제 실시 연도를 2023년으로, 배터리의 탄소발자국 부착 의무화 연도는 2024년으로 설정하고 있다. G7 국가와 EU가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를 협의한 시점은 2025년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가 탄소규제에 대비해 준비할 시간은 2~3년 남짓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경제의 판도가 바뀌게 되면, 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을 때 대량 실업과 고용불안이 발생할 수 있으며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회적 고통도 커진다.
다섯째, 탄소중립사회를 만들려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탈석탄, 탈내연기관 시점, 환경에 유해한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시점, 전기요금,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비용, 비료의 사용, 축산에서 가축 수 감축 등은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이해관계자가 있어서 결정하기 쉽지 않지만 앞으로 수년 내에 빠르게 결정해야 할 사안들이다. 이런 결정을 누가 참여해서 어떻게 결정하고,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소통과 합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2020년 11월, 500여 명의 시민정책참여단이 숙의 과정을 거쳐 2040년 탈석탄발전, 2035~2040년 내연기관 생산·판매 금지, 전기요금의 환경비용 반영과 연료비 연동제를 제안한 바 있다.
탄소중립과 한국사회의 과제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80%를 화석에너지를 태워서 쓰고 있다. 2017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석탄 소비 세계 4위, 석탄 해외투자 3위, OECD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30년 이내에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난 30년간 하는 체만 해왔던 기후위기 대응을 끝까지 버티다가 이제는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동안 정부와 산업계는 기후위기를 방관해왔다. 특히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산업계는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규제를 강화하면 해외로 산업체를 이전하겠다고 정부를 압박했고, 정부는 그런 산업계에 끌려다녔다. 지금까지 정부와 기업이 행동하지 않음으로 인해, 한국사회 전체가 3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 셈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하고, 시행령 제25조에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20년의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100분의 30까지 감축하는 것”으로 명시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녹색성장기본법을 통해 탄소를 줄이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실체는 4대강사업과 핵발전 수출 80기를 목표로 하는 정책이었고, 임기 말 석탄발전소 건설을 대거 허가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시점을 2030년으로 연장하는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신규 핵발전과 석탄발전소를 짓지 않기로 했고, ‘2030’ 정책으로 203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를 전력 중 20%로 늘리겠다는 정책을 펼쳤다.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수정해 “2030년의 국가 온실가스 총 배출량을 2017년의 온실가스 총 배출량의 1,000분의 244만큼 감축”하는 것으로 개정한다. 감축 목표치는 국외분을 국내로 돌리고, 배출 전망치를 절대량으로 바꾼 것 외에는 박근혜 정부가 설정한 감축 목표량과 같다. 문재인 정부가 기후정책과 에너지정책의 정합성을 맞춰 2030년까지 현재 7억 톤 수준의 배출량을 5억 3,600만 톤으로 줄이는 정책을 만드는 사이에, 국제사회 논의는 탄소중립과 2030년 NDC 강화로 확대되었다.
4월 5일, 영국의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 의장인 알록 샤마 의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알록 샤마 의장은 기재부 장관, 산업부 장관, 환경부 장관을 만나 한국의 2030년 NDC 목표 상향을 이야기했는데, 장관들의 답변은 2050년 탄소중립에 맞춰져 있었다. 정부는 한국이 산업화도 빠르게 이룬 만큼 탄소중립도 빠르게 달성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산업화는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삼아 정부와 산업, 개인의 욕구가 일치한다. 더 많이 생산하고, 일해서 소득을 높이고, 성장하면서 물질적인 풍요를 이루기를 바라는 욕구 말이다. 그런데 탄소중립은 그 반대로 해야 달성할 수 있다. 경제 규모를 축소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으며, 실업을 감수해야 한다. 기존의 편리와 풍요를 포기해야 하고, 성장과는 반대 방향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은 교토의정서 때부터 시작해 약 30년의 논의의 기반을 바탕으로 향후 30년 동안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지만, 배출량 최고치를 찍고 있는 한국이 인식도, 기반도 취약한 가운데 앞으로 30년 동안 7억 톤을 ‘0’로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탄소중립 선언 이후 ‘2050 저탄소 발전전략’ 보고회에서 “2050년 탄소중립은 우리 정부의 가치지향이나 철학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새로운 경제·국제질서”라며 “국제적으로 뛰기 시작한 상태인데 우리만 걸어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너무나 솔직한 표현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 탄소발자국, 탄소세 등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규제가 제도화되면 무역 규모 7위에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제품을 수출할 때 이산화탄소 4,800만 톤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탄소 순수출국에 속한다. 전력 중 석탄발전 비중이 40%에 달해, 탄소집약도가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제무역에서 가격과 제품의 질이 주요 경쟁력이었다면, 탄소중립 시대의 무역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경제·국제질서’라는 것은 틀린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앞서 “2050년 탄소중립은 우리 정부의 가치지향이나 철학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 말을 하게 된 배경이 있을 테지만, 탄소중립이라는 엄청난 전환이 ‘가치지향’이나 ‘철학’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 가능한 일인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으로의 급격하고도 꾸준한 전환이 이뤄지려면 정부의 재정과 자원배분 방식이 완전히 바뀌어야 하고, 배출을 많이 하는 기업에 엄격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 이처럼 기존에 형성된 이권과 기득권 체계를 뒤흔들려면 ‘가치지향’과 ‘철학’이 확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치지향’과 ‘철학’에서 나온 정책이 아니다 보니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한국사회에서는 맥락이 전혀 맞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탄소중립 로드맵을 만들고,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성장·개발정책이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 삼척과 강릉에 석탄발전소 건설은 계속되고, 가덕도·새만금·울릉도·백령도 등 신규 공항 건설도 추진한다. 국토교통부는 항공산업이 어렵다고 ‘무착륙 해외관광’을 확대하고 있고, 예비타당성 면제도 남발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라도 사회안전망과 불평등을 완화해야 하지만 부동산과 아파트 값 폭등은 자산과 불평등 격차를 유례없이 벌려 놓았다. ‘그린뉴딜’에서 노동자, 농어민, 농업을 위한 정책은 찾아볼 수도 없다. 재생가능에너지를 둘러싼 갈등은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을 중심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 국회포럼이 출범했다. 이 혼돈의 원인은 여전히 정부가 지금 당장 책임지고 해야 할 일로서 기후위기 대응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탄소중립사회를 만들 것인가
기후위기 대응은 국제사회 탄소규제가 강해지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생존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각각의 영역별로 해야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면 어물쩍 넘기거나 결정을 미룬다. 지난 30년 동안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각 부문별 정책과 기술은 큰 틀에서는 이미 연구된 것도 많고, 실제로 줄인 사례도 있다. 문제는 실행의지에 있다.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을 정부정책의 최우선 의제로 삼아서 실행에 옮기지 않는 한 탄소중립은 선언으로 머무르게 된다.
국제사회는 성장과 풍요에 대한 갈구와 날로 심화하는 기후재난,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요구가 충돌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해나갈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경로를 가게 될까.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룰까? 아무런 대비 없이, 유럽연합과 미국이 만드는 질서에 편입되어 어쩔 수 없이 줄이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까? 탄소중립사회를 만들어가면서 적응하는 사람들만 생존하게 될까? 아니면 탄소중립과 살 만한 사회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같이 가게 될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고 각자도생의 길을 갈 것인가?
남은 시간에 따라 시기별로도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10년 단위로 나눠보면 2021~2030년의 경로와 2030~2040년, 2040~2050년의 경로가 다를 것이다. 제대로 한다면 앞으로의 10년은 급변하는 무역과 경제 질서에 대비해 에너지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에너지와 모든 자원의 총 소비량을 줄이면서, 재생가능에너지와 순환경제체제로 전환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2030년대에 들어서면 국가 간의 사람과 상품의 이동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을까? 한국은 수출과 에너지다소비 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새로운 상상과 기술, 자원의 재분배가 동시에 필요한 이유이다. 물자와 사람의 이동이 지역화되며, 자원을 꼭 필요한 생산과 소비에 사용하고, 먹거리와 에너지를 지역 단위로 생산하는 사회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2040년 이후의 사회는 또 어떻게 될까? 한정된 자원을 더 잘 나누고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 단위 생활권으로 완전히 재편될지도 모른다.
어쩌다, 지금, 지구에서, 사는 우리는 한정된 지구에서 인간의 무한한 소비와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는 세대이다. 지구의 생태적 한계 내에서 살 만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탄소중립사회는 정부와 기업, 시민이 각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합의해야 실현할 수 있는 사회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무엇이 지금의 위기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뼛속 깊이 인식하지 않고서는 변화도 합의도 만들어내기 어렵다. 탄소중립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탄소중립사회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지 등 우리가 바라는 사회에 대한 그림을 공유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비관적인 것은 지금 정부가 만들고 있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2050 탄소중립’ 사회상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경제·사회 시스템 변화도, 살 만한 미래도 안 들어가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애초에 답을 낼 수 없는 이들에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기후위기 시급성에 공감하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움직여야 한다. 기업과 정부에 하나하나 책임을 묻고, 탄소중립사회로의 실행을 촉구해야 한다. 살고 싶은 미래를 위해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도 이야기해보자. 먼저 문제를 인식한 사람들이 모이고, 일을 도모해야 한 발 전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