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발전과 기후위기
지구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4℃ 정도 낮았던 마지막 빙하기를 지나 약 1만 년 전, 기후가 안정화되고 생명 서식지가 넓게 확보되던 시기에 인류는 처음 작물을 재배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신석기 농업혁명으로 문명이 탄생했다. 이후 1만 년 동안 인류는 자연의 에너지와 물질 순환에 의존하고 노동력과 축력, 도구 등을 보태어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인구가 늘어났다. 18세기 초 인구는 7억 5,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화석연료를 이용하게 되면서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동력과 에너지가 엄청난 양으로 늘어나고 활용하는 분야가 사회경제적으로 분화·발전하였다. 근대의 시작이다. 농(農)을 뒷받침하던 분야나 ‘농’에서 파생된 분야들이 화석연료 동력에 힘입어 산업부문으로 자리 잡고, ‘농’은 농업이라는 먹거리 생산의 역할로 특화, 축소된다. 농업 또한 공업과 마찬가지로 화석연료에너지를 활용해 생산·공급 역량을 키웠고, 산업화와 도시화를 뒷받침했다. 1920년대 인구는 20억 명 수준이다.
과학기술은 20세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급속히 발전하였고, 화석에너지와 결합하여 1950~1960년대 녹색혁명을 가져왔다. 20세기 초 암모니아 합성의 성공으로 폭탄 제조와 화학합성비료를 양산할 수 있게 되었고, 2차대전 이후에는 화학비료 생산에 더욱 집중해 산림과 작물에 투여하였다. 미국 대평원에서는 밀과 옥수수 수확량이 증가하고 잉여농산물이 넘쳐났다. 덕분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생산기반이 황폐해진 한반도 남쪽 우리 부모 세대들은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를 받아 우리 세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남아도는 옥수수를 가축에게 먹이기 시작하며 공장식 축산산업을 일으켰고 육고기에 마블링을 새겨 넣었다. 전쟁 중에 개발된 독가스 기술은 작물을 갉아 먹는 벌레, 세균을 죽이는 농업독약(이를 우리는 농약이라 부르고 있다)과 제초제 개발로 이어졌다. 이렇게 품종개량, 화학합성비료, 농약과 물관리 기술이 합쳐진 녹색혁명은 인류역사상 가장 높은 농업생산력을 달성하기에 이르고 현대적 농업생산시스템으로 관행화한다. 두 번째 밀레니엄까지 인구는 10여 년에 10억 명씩 늘어 63억 명에 이르게 되었다.
농업은 기업화, 산업화, 자유무역으로 확대되며 현재의 ‘화석연료에 기반한 지구적인 농식품체제’를 구축하였다. 이것은 우리 농업이 세계체제에 편입되어온 과정이기도 하다. 마트에 넘쳐나는 풍요로운 먹거리는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화석연료 기반 자재와 기계, 설비만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시간(저장, 가공 등)과 공간(운송, 무역 등) 거리를 화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구는 3배 증가했고 전 세계 실질국내총생산(GDP)은 7배 늘었으며 에너지 사용은 4배, 비료 사용량은 10배 이상 불어났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케 하는 먹거리를 생산·소비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 화석연료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으니 그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이 기후변화를 초래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이제 기후변화가 더욱 빈번해지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나타나 농업생산의 시기와 장소, 수확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농―에너지―기후위기의 악순환이 가속화하고 있다.
현실과 정책의 괴리
농식품체계에서도 산업화와 세계화에 따라 생산―유통―소비―폐기의 모든 단계에서 화석연료 이용이 증가하고 온실가스 배출이 늘었으니 그 정도와 원인을 찾아 배출을 감축할 책무가 있다. 다른 한편 변화된 기후로 인해 이상기상 빈발, 재배적지 변화, 병해충의 발생 증가, 수확량 감소 등이 초래되면서 이에 대한 대응 및 적응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후자에 대한 연구와 시험은 활발해지고 있으나, 전자, 즉 농식품부문에서의 온실가스 배출을 조사·연구하고 줄이는 일은 상대적으로 경시되고 있다. 농업·먹거리의 온실가스 배출 정도를 낮게 평가하고 이 부문의 감축 효과가 다른 부문에 비해 크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농업생산이 여타 부문에 비해 적고, 줄어들고 있어 정책적 관심이 적고, 혹은 중요하게 보더라도 감축 대상을 정책적으로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정이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녹색혁명을 거치며 지금의 풍요로운 먹거리를 생산·소비하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화석에너지에 기대고 있는지를 알아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인식과 행위의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말 정부가 산정해 발표한 부문별 배출량을 보면, 우리나라의 2017년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이산화탄소 환산 7억 900만t인데, 에너지부문 86.8%, 산업공정 7.9%, 농업 2.9%, 폐기물이 2.4%이다. 인구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3.8t으로 1990년 대비 102.6%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19.8%인 인구 증가율에 비해 5배가 넘는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지금 석탄발전을 증설하고 감축 목표는 안이한 수준에 머물고 있어 ‘기후악당’ 국가로 지적받고 있다.
농업분야의 배출량(전체 배출량 중 2.9%인 2,000만t)은 농업생산 과정에서 비롯된 온실가스 배출만 산정한 것인데, 논밭이 58%, 축산이 42%를 차지한다. 배출가스 비율로 보면, 벼 재배와 축산(장내발효, 분뇨처리), 소각 등에서 메탄가스로 57%가 배출되고, 화학비료, 가축분뇨 등에서 연유하는 농경지 토양과 소각으로 아산화질소가 43% 배출된다. 그런데 문제는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구온난화지수(이산화탄소를 1로 볼 때)가 메탄은 21, 아산화질소는 310에 이른다는 점이다. 메탄은 유기물의 혐기성 발효나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육류 소비 증가에 따라 급격히 늘고 있고, 아산화질소는 비료의 과다 투입 영향이 크다.
농사 현장에서는 올해 내년의 기후변화, 오늘 내일의 날씨에 일희일비하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왜 정책적으로는 기후변화와 농업이 연결되어 논의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농업·농민 비중이 낮고,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는 사회적 의제로 다루지 않는 정치권이나 언론 때문에 국민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농업생산에서의 직접 배출만 고려하다 보니 배출량의 비중이 높지 않아 관심도가 낮은 것이다. 국내에서는 먹거리의 생산―유통―소비―폐기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을 산정하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축산이나 사료, 비료 등의 문제를 부각하는 연구나 캠페인이 없다. 예를 들면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2012년 국립환경과학원은 두 번째로 농산품 전 품목에 대해서 푸드마일리지(얼마나 멀리서 얼마나 많은 먹거리를 가져오는지 측정하는 개념)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2010년도에는 인구 1인당 푸드마일리지가 7,000t―km, 그에 따른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142kg로 일본의 수치를 훌쩍 넘었다. 운송에서만 2010년에 700만t 정도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농식품을 수입했다.
데이터 공유 플랫폼 ‘데이터 세계’가 2018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을 토대로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농식품부문(생산, 가공, 유통 포함)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축산과 어업 31%, 작물생산 27%, 가축용 및 식량작물을 위한 토지이용 24%, 가공·운송·포장 등 공급망 18%). 즉 농식품분야의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우리의 중요한 도전과제라는 말이다. 전체 배출량의 4분의 1이라면 농식품분야에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마땅히 이 분야에서의 온실가스 감축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수치와 통계자료들을 들먹인 이유는 우리나라 농업정책이 얼마나 주먹구구인지를 따져 묻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국가정책이 비전과 방향성을 갖지 못하니 데이터의 일관성과 신뢰가 떨어지고 그에 따라서 정책 목표치도 쉽게 뒤집어진다. 이미 오래전 제도화되어 있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나 농지법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었다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계획에 담아야 할 자급률 실태와 목표치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이렇게 낮지는 않을 것이고, 농지 보전의 방향, 이용 실태와 관리도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정책의지와 비전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를 견제하고 견인할 책임은 생산자와 소비자인 우리에게 있다. 농정은 ‘농’을 바라보는 관점의 정치적 표현이다. ‘농’의 주체(생산자, 정치인과 전문가, 기술관료, 유통 등 경제활동 행위자, 소비자까지 결국 사회구성원 모두)들이 관여된 일이다. 그러나 농업·농촌을 지원하는 건 그냥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관리들이 예산을 쥐고 시혜를 베푸는 양 농민들을 관리 대상화하고 있다. 농업·농촌 기초 데이터의 수집, 관리, 분석, 활용이 미비한 이유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지속하지 않고, 협력·연대하지 않고, 감시·견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자, 농촌 주민들이 주변인에서 주인이 되고, 자존심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농정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 사회에서 농업과 농민이 담당하고 있는 중차대한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격려로부터 농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감, 소속감, 사회적 역할자로서의 자부심이 비롯될 것이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전환
기후위기, 코로나19, 한계에 다다른 경제성장이 다중적, 복합적으로 현재의 위기를 엄중케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경제적 성장을 꾀한 방식(산업화, 도시화, 대량 생산·소비 등)과 수단(화석에너지)이 기후위기를 초래했고, 코로나 감염병을 장기화하고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과거의 햇빛(화석연료)을 캐서 태우고, 미래세대의 기회를 차입하고 부채(황폐해진 생태계, 핵폐기물 등)를 남기며 ‘우리가 지구의 마지막 세대’인 듯 낭비적으로 살아온 업보가 ‘위기의 일상성’으로 닥친 것이다.
그렇다면 복합위기의 원인 진단과 성찰이 우선되어야 하겠다. 우리의 현재 삶의 방식(구조적인 사회경제체제와 사회적 인식과 행위)이 지금의 위기상황을 초래하고 뒷받침하고 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는 다음 세대의 안녕과 행복을 보장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 즉 지역균형발전과 농촌지역 과소화·고령화 문제 또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인한 국가적 당면 과제이다. 또한 가장 경계해야 할 과제로는 양극화 문제가 있다. 빈부격차의 심화는 개인 간, 지역 간, 국가 간, 도시와 농촌 사이를 더욱 갈라놓게 될 것이기에 전환의 과정에서 최저소득 보장, 고용보장, 기본소득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를 야기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현재의 복합적 위기는 우리가 과거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다른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연과 사회의 경고다. 우리의 삶에 큰 전환이 절실한 때이다. 저성장·제로성장 경제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한편 그 과정은 불균형할 수 있으며, 상대적 박탈과 부정의, 변화요구 압박에 따른 이해관계 갈등 등이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전환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의 증대’와 함께 ‘정의로운 전환’을 원칙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린’이 없는 한국판 뉴딜
현 위기상황을 전환의 계기로 삼겠다며 정부는 지난달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160조 원을 투자하여 19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세 축의 정책방향으로 ‘디지털 뉴딜’(디지털 혁신경제를 선도), ‘그린뉴딜’(친환경·저탄소 전환 가속화), ‘안전망 강화’(사람 중심 포용국가 기반)라는 구색을 갖추었다. 그러나 탄소배출 감축 목표도 없고, 식량과 에너지 자급 목표도 없고, 공공의료나 농업·농촌은 거의 언급조차 없이 기존의 정책 아이디어와 디지털산업 지원으로만 점철되어 우려와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는 2050년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올가을에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데 어떤 안을 짜고 있는지 이 계획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대통령의 기조연설이 담긴 160쪽짜리 문건에서 ‘농’을 검색해보면 반복되는 몇 가지 사업만 나타나는데, 기껏해야 ‘농어촌·취약계층의 디지털 접근성 강화’, ‘농촌 태양광 융자지원 확대’ 등이 있다. 비대면 유통 플랫폼을 지원하면 생산과 출하 가격의 안정성이 보장되는가?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취지는 실종되고 시설과 설비만 남은 ‘스마트팜’은 왜 이렇게 반복적으로 거론되는가?
‘한국판 뉴딜’은 여전히 복합위기의 본질(근대적 개발방식으로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발생)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성장신화의 허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무지하고 무심한 계획으로 보인다. 왜 뉴딜을 거론하면서 미국은 1930년대에 농정을 전환하여 농업·농촌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지 않고, 유럽연합(EU)은 왜 ‘농장에서 밥상까지’ 전략을 그린딜의 핵심 과제로 삼았는지 살펴보지 않는가.
‘녹색성장’을 내세우며 4대강을 파헤치고 보를 쌓는 데 세금을 낭비하고 물난리를 초래한 토건세력과, ‘그린뉴딜’을 내세우며 데이터와 스마트산업에 160조를 투자해 ‘똑똑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치세력은 얼마나 다를까? 포클레인이 컴퓨터로 바뀌면 우리는 ‘더 보호받고 따뜻한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 ‘사람이 중심인 나라다운 나라’는 각자도생의 사회는 아니지 않겠는가.
‘그린’도 나중에 들어왔고 내용은 보완해가겠다고 하지만, 애초에 농식품부는 논의과정에 참여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7월 말 뉴딜계획에 대한 농어민·지역 국회 토론회에서 농식품부 차관은 발표된 뉴딜 과제에는 기재부 검토가 끝난 사업만 포함된 상태라며 연계 과제를 발굴해 개선해 가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발표한 추진방향(안)에는 농촌재생, 재생에너지 확대, 친환경·저탄소 농업 확산, 적정 자급기반 확충, 거버넌스 등이 언급되었으나 새로운 목표나 구체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농민·친환경농업·먹거리 운동단체들은 농업·농촌이 배제된 그린뉴딜 계획을 비판하며 그린뉴딜을 통한 먹거리체계의 전환을 위해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와 농식품부가 거버넌스의 틀을 만들고 관련 핵심 행정 부서, 농민단체,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논의의 장을 만들어 실효성 있는 이행방안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아울러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는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로의 전환을 위한 그린뉴딜 정책수단으로 공정한 가격보장, 계약재배 개혁과 확대, 농지접근권 보장, 농업노동권 보장, 생태적 영농 지원, 농업·농촌 에너지 전환, 축산 전환, 금융 지원, 일자리 지원, 먹거리 무역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참고로 ‘유럽그린딜’은, 2019년 12월 폴란드를 제외한 EU 회원국 정상들이 2050년 탄소중립(경제활동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 조림, 재생에너지 사용, 배출권 거래 등의 상쇄활동을 통해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듦) 목표를 담은 합의서이다. 주요 내용은, 외교적 역할과 정의로운 전환을 천명하고 재생에너지, 순환경제 산업, 건물, 지속가능한 수송, 농식품, 생물다양성 등 분야별 계획을 담고 있다. 그중 농식품 분야를 살펴보면, EU집행위원회가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존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환경친화적인 식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을 통해 순환경제를 촉진하는 계획으로, 탄소중립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농수산업 종사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공정한 전환의 기회를 보장하고, 살충제 등 화학제품의 사용을 줄이며, 친환경적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수입식품에 유럽의 기준을 적용한다는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올봄에 구체화하여 발표한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에 대해서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위한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은 ‘유럽그린딜’의 핵심 요소다. 유럽 먹거리는 안전하고 영양가가 풍부하며 질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이제 지속가능성의 세계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 목표는 2030년까지 화학합성농약 50%, 비료 20%, 항생제 50%, 양분 손실 50% 감축, 유기농 면적 25%까지 증대, EU 수입품은 EU 환경기준 준수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요 내용으로는 ①건강하고 적정하고 지속가능한 먹거리 보장, ②기후변화 대응, ③환경보호와 종다양성 보전, ④공정한 식품체인의 경제, ⑤유기농업 확대를 명시하고 있다.
코로나가 가르쳐준 것
코로나로 봉쇄와 격리 조치가 이뤄지면서 먹거리의 생산과 공급, 소비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코로나가 확산을 시작한 시기와 농사철이 맞물리면서 농촌에서는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입국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고, 어촌에서는 배를 탈 중국과 러시아 노동자들이 없어 출어에 나서지 못했다. 과수농가는 4월 초 냉해로 꽃을 잃고 올해 농사를 접기도 했고, 두 달간의 장마로 기후위기를 톡톡히 실감했다. 20여 개의 세계 주요 곡물·농산물 수출국들은 3월 말 즈음부터 곡물,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였는데 짧게는 30일, 길게는 9월까지 이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자연환경이 살아있고 인구밀도가 낮은 농촌에 대한 선호와 방문은 늘어나고, 지역봉쇄를 경험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인근 농민들이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작고 직거래를 하는 농민시장이 부각되기도 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세계가 연결되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상품무역에 기댄 세계화의 취약성, 기존의 생산·공급 방식의 한계가 드러났고, 생필품 제조업 등에서의 지역화의 중요성, 각 사회단위의 기본필요를 충당할 생산만큼은 각 사회단위가 스스로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기본필요의 첫째와 둘째는 식량과 에너지이다. 그런데 우리의 자급률은 각각 20%와 3% 남짓에 머무르고 있다.
잠시 멈추고 돌아본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왜 여기까지 왔는지. 같은 방향으로 더 나아가는 것은 공멸이 분명해 보인다. 되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우선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전환의 계기로 삼자. 그게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뉴딜이다.
그렇다면 밑자리부터 살펴볼 일이다. 우리 삶이 구축되어온 토대인 ‘농’도 산업화하면서 기후위기에 일조해왔고, 그 기후위기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현실을 살피는 것에서 전환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린뉴딜은 ‘농’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농업·농촌 살림’으로 전환의 방향을 잡자. 농업·농촌을 살리는 것이 성장의 한계에 부딪혀 위기에 직면한 우리 삶의 토대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고, 건강한 농업·농촌은 도시화와 산업화의 정점에서 지친 이들에게 새롭게 살아갈 활력과 넉넉함을 제공할 것이다. 농업·농촌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사회적 관계(연대)’가 공존할 수 있는 느슨한 공동체이고, 인간이 자연과 교감하고 공존할 수 있는 생태적 공간, 인간들의 오래된 미래의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농’의 전환을 그린뉴딜의 본류로 삼을 때의 단기·중기 과제를 몇 가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린뉴딜에서 ‘농’의 위상
농업 건강한 먹을거리의 생산과 공급, 사회지속성의 근간, 기후위기 유발자로서 저투입·저탄소화를 이루어야 할 책무, 기후위기의 직접적 피해자로서 구제 대상이자 기후위기에 적응해야 할 과업
농촌 생산과 생활 에너지 공급과 소비 공간, 생산과 생활 에너지를 자립하고 감축할 과제, 생활 에너지 추가 생산의 잠재적 공간(바이오작물, 바이오매스, 영농형 햇빛발전 활용 가능성)
농민 농업생산자, 농촌 공간을 운영·유지하는 생활자, 사회 구성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린뉴딜의 주요 주체
위기별 대응 방향
기후위기 부문별 탄소배출을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분산·확대, 저투입농업으로 전환, 저탄소 식생활 권장·보급
코로나 지역화·지역균형발전, 지역분권과 농촌 활성화, 식량주권·자급력 강화, 농식품의 안정적 생산과 공급, 농민 기초생활보장
경제 저성장 기조, 지역·농촌 일자리 투자, 양극화의 경계·보완
사회적 안전망 농민기본소득(에서 출발, 전국민 기본소득으로 확대)
저투입·저탄소 기후위기 대응 농업으로 전환
― 화학비료, 농약, 항생제 등 고투입 자재 저감 목표 설정
― 친환경농업 확충과 유기농업 전환 지원
― 논농업의 전면적인 저탄소(저메탄) 유기농업 전환
― 저탄소·유기·동물복지 지향, 한반도 축산의 적정 규모화(공장식 축산 규제 및 일정 규모 이상은 사료 조달 계획, 양분 총량제)
― 지역·마을별 경종·축산 순환농업 지원
― 스마트팜이 아니라, 기후 적응 데이터 모니터링과 기초(적정)기술 개발 보급
농촌사회의 저탄소 전환, 기초생활 보장
― 농지 보전, 활용 지원
― 재생에너지 보급 지원(발전차액지원을 근간으로 하고, 농지·산림의 훼손과 전용 없는 영농형, 농촌공동체형 개발)
― 에너지자립 마을, 경종·축산·생활 에너지·물질 순환 마을 권장, 지원
― 면 단위 365생활권 구축, 농촌사회보장프로그램(생활서비스·복지·일자리 연계)
― 청년농 육성·지원 체계 개발, 보편적 지원
― 농민―농촌―국민 기본소득 순차적 도입
지속가능한 농식품체계 구축
― 국가, 지역 단위 자급역량 목표 설정과 시행
― 기초농산물 수매 공급 제도
― 로컬푸드, 유기농산물 유통 소비 지원(공공·지역 급식 확대)
― 농업·농식품 분야 사회적경제 활동 지원
― 농·식생활 교육 확장
― 육류 자제 식단 보급, 채식권 보장 식단 확대, 공공급식 주 1회 채식 식단
사회적 뉴딜
― 건강한 농업과 먹거리 생산·소비를 위한 정부―생산자―소비자 사회협약(투명, 민주, 정의 원칙)
― 농지 보전과 활용 목표·비전, 농지법 점검과 실행
― 자급역량 평가와 목표·비전,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실행
― 푸드플랜 점검 및 제도화
― 농산물, 농업소득 과세 및 실질 기초생활보장(제도 혁신의 기초 정보)
― 농정·조직 개편, 농정 거버넌스 혁신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받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사람과 생명보다 물질과 이윤이 앞선 상품·자본 중심 체제 내에서 성장을 갈구하고 있다. 게다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식량과 에너지의 세계체제 의존도가 극심한 상황 등으로 국가의 정책방향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비주체적, 의존적 삶을 살고 있다. 외환위기라는, 경제와 삶의 틀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도 우리는 삶의 몸뚱이를 보전하기 위해 사회경제적 체질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무더위에 마스크를 써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물리적 거리두기로 사회경제적 활동이 위축받고 있는 올여름, 기후위기로 두 달간 장마가 이어지고 큰 물난리가 일어났다.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갈 것인가. 거대한 전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