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정기구독자 및 후원회원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를 드린다. 지난 6월 말, 본지 발행인 김종철 선생의 타계 후 깊은 비통함과 당혹감 속에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한 탓으로, 다음호의 발간을 궁금하게 여겼을 회원 여러분께 편집실에서 제때 공지를 발신하지 못한 점, 부디 너그럽게 혜량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많은 분들이 《녹색평론》의 지속적인 발간에 대해 우려하셨을 줄 안다. ‘사실상의 1인 매체’라는 평을 때때로 들었던 만큼, 173권의 책의 ‘편저자’였던 김종철 발행인의 역할은 독보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잡지를 우리의 힘으로 발간하는 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편집실은 생각하고 생각했다. 서당개 3년에 풍월을 한다 했으니 아마도 미흡한 대로 지면을 흉하지 않게 메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손으로 《녹색평론》을 계속 발간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가에 답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각오가 필요한 일인가. 그것은 이 매체의 사회적 역할을 그 누구보다 높이 평가하고, 개인적으로도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되어준 《녹색평론》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다는 우리의 사심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173권의 《녹색평론》에서 김종철 선생이 했던 이야기보다 새로운 것을 제시할 수 있는가? 계속해서 잡지를 발간하겠다는 욕심은 계속해서 선생을 붙잡아두려는 미련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더욱이 선장(船長)을 잃기 전부터도 ‘녹색평론’이라는 배의 항행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종이매체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우리 역시 장기적인 잡지의 존속 여부를 조만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었다. 《녹색평론》만 예외적으로 그 대세를 거슬러 운항해나갈 복안을 갖고 있는가? 어쩌면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고 물었던 29년 전 창간사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회와 자연, 생명공동체 전체의 건강은 그 세월 동안에도 나날이 쇠락해왔고, 생태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불가결한 사회정치적 전제조건인 사회적 정의나 평등의 문제도 악화일로에 있는 듯 보인다. 이렇듯 “더 크고, 더 높고, 더 많은 것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지금까지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에 대한 욕망이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 잡지의 정세적 필요성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메시지를 요구하고 반기는 독자들이 늘어나기는커녕 줄어들고 있는 현상은 《녹색평론》의 존망에 대해 결론을 내려주는 듯했다. 설혹 그것이 우리 삶의 묵시록적인 상황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면서, 오히려 그런 삶의 진실을 외면하고 자기파괴적인 소비적 일상에 우리 사회가 더욱 집착하게 된 결과일지라 하더라도 말이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우리의 손을 잡아 이끌어준 것은 독자들이었다. 통상적인 사무업무가 어려울 만큼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 걱정 어린 전화가 쇄도했다. 더 나아가 원고를 작성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하는 분도 있었다. 실은, 이러한 반응은 편집실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지난 10년은 독자들의 관심이 시들해졌다는 것을 체감해온 세월이었기 때문이다. 공들여 준비해 게재한 글이나 특집에 대해서도 별다른 호응이나 비판이 없었고, 특히 여러 해 구독해온 독자들의 이탈이 최근 들어 두드러졌다. 메아리 없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자괴감과 외로움도 느꼈던 것 같다. 재정적 곤란과 함께 《녹색평론》의 지속적 발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이었다.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창간된 이 잡지가 지난 29년간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는 우리가 평가할 일이 아니겠지만, 주류 사회의 흐름에 맞서서 우리 사회의 민감한 영혼들이 계속 나아갈 힘을 얻는 공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막막한 절망감 속에 빠져 있던 우리의 시야에 29년 동안, 아니 시간의 길고 짧음과 상관없이 한결같은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 독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녹색평론》은 항상 공기(公器)이기를 지향해왔고, 《녹색평론》을 지탱해온 것은 발행인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렸다. 이 잡지를 지속적으로 발간하는 문제는 어쩌면 우리의 자아를 내세워 선택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 만든다―다른 이유가 필요한 것일까.
아마도 틀림없이 우리는 김종철 선생이 손수 만들어온 《녹색평론》만큼 깊이 있고 새로운 잡지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선생처럼 넓고 깊고 멀리 볼 수 있는 시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더 새로운 것,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29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숙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도록 북돋는 게 아닐까. 용기를 갖도록, 체념하지 않도록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이웃과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작업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적어도 《녹색평론》의 지향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외람되지만 선생과 다르게, 다른 방식과 형태로 생태적 문맹자를 줄여나가는 작업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지구라는 유한체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해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최선의 지혜와 정신적 능력을 발굴하고 결집하는 일은 독립적인 인문잡지인 《녹색평론》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이다. 29년간 173권의 책에 남겨두신 선생의 자취를 사상적 구심점으로 삼아 삶의 돌파구를 찾는 작업을 이어나가자는 결심을 했다. 파국을 증언하고 소실되어가는 인간성을 복권시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면서 ‘녹색평론 공동체’를 지키자고 다짐했다. 우리는 결코 역사의 승리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꺾일 수 없는 인간정신과 온전한 삶의 비전을 증언하며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삶의 자세야말로 선생의 가장 큰 유산이라고 믿는다.
내년 가을이면 《녹색평론》은 창간 30주년을 맞는다. 지금부터의 항해는 편집실의 능력과 동시에 독자의 역량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의 힘으로 충실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이 잡지가 공적인 매체로서 명맥을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녹색평론》이 30년간 우리 사회에서 어떤 쓸모 있는 사회적 구실을 해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친구와 동지를 얻었는지를 냉정하게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호는 김종철 선생의 추모 특집호로 구성되면서 다소 불균형한 짜임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선생의 삶과 작업을 돌아보는 일은 《녹색평론》의 주제로서도 적합하고 유의미한 읽을거리가 된다고 편집실은 판단했다. 한국 땅의 예외적인 사상가, 한 양심적인 지식인의 삶의 궤적을 온전히 되돌아보기에는 몹시 부족한 구성일지 모르지만, 선생의 지극한 생명공경의 가르침, 그 절실한 마음은 전달이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발행인을 잃고 상실감 속에 헤매고 있던 편집실에 눈에 보이게 또 보이지 않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준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특히 다급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이번호 발간작업에 협력해주신 필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가장 큰 스승이자 가장 친한 친구, 동료였던 나의 선친 김종철 발행인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