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몇몇 지식인, 언론인, 정치인들이 모인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떤 학자가 “20대 국회가 시작될 때에는 그나마 여기저기서 기대 섞인 얘기들이 나왔는데, 21대 국회가 시작하는데 주변을 보면 별 기대가 없는 것 같다”는 얘기를 꺼냈다. 필자도 솔직히 말하면, 같은 심정이다.
21대 국회에 별 기대가 없는 것은, 대의정치 일반에 대한 불신 때문만은 아니다. 감염병, 기후위기 등 지금 우리가 부딪힌 위기는 매우 심각하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는데, 지금의 국회가 과연 문제해결 능력이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회의원 개개인의 역량이나 의지 문제도 아니다. 개인의 역량이나 의지도 미흡한 것이 사실이지만, 훨씬 더 미흡한 것은 대한민국 국회라는 기구가 움직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흔히 국회의원들은 당선된 다음 날부터 재선을 생각한다고 한다. 지역구로 당선된 경우는 물론이고 비례대표로 당선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도 당선된 지 1년이 지나지 않아서 지역구를 선정하고 지역구 관리에 들어간다. 국회의원이 지역의 민원부터 동네 경조사와 체육대회까지 챙긴다. 그러니 국가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기후위기와 같은 시대적 문제를 풀 수 있겠는가?
이런 국회의원들의 욕망을 통제하고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은 여전히 ‘떳다방’ 수준이다. 시대적 과제나 비전을 생각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정당의 부설 정책연구소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거대 양당의 정책연구소들은 1년에 수십억 원의 국민세금을 보조금으로 지원받는다. 국가의 정책을 연구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거대 양당의 정책연구소조차도 정책 연구에 집중하지 않는다. 실제로 연구를 하는 인력보다 다른 일을 하는 인력이 많다. 그나마 하는 일이 정치공학적인 보고서 생산이다. 그러니 거대 양당은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만 계산하면서 정쟁을 일삼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조직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이니, 21대 국회에 기후위기에 대한 즉각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21대 국회가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가 한국 정치를 잘 안다는 지식인, 언론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것이다.
무능한 국회는 관료·재벌 지배만 강화시켜
그러나 21대 국회에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위기가 심화되는 것을 손놓고 보겠다는 얘기가 되어선 안된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라는 것이 유엔 차원의 권고이다. 2020년인 지금 손놓고 있으면, 2030년에 어떤 상황이 되겠는가?
그나마 국회는 국민들 눈치라도 보는 곳이다. 선출직들로 구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에 있다. 관료들, 재벌들, 기득권 언론들이 그들이다.
선출직들이 무능하고 무기력하면, 선출되지 않은 자들이 힘을 쓰게 되어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그들이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면, 이들이 국가의 주요한 의사결정을 좌우하게 된다. 얼마 전 긴급재난지원금을 70%의 국민들에게만 지급하느냐 100% 국민들에게 지급하느냐를 놓고,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보인 행태를 보면 관료지배의 실태를 잘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관료들은 자신들이 국가의 정책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경제관료들은 ‘한국판 뉴딜’을 핑계 삼아 규제완화와 토건개발사업으로 방향을 잡으려 한다. 재벌들이 좋아할 일이고, 그들과 유착된 기득권 언론들이 그렇게 분위기를 몰아가려고 할 것이다. 이것을 통제하고 제대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그래서 국회가 중요하다.
물론 국회가 무능하면, 대통령이 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기득권자들에게 대통령은 ‘5년 임시직’일 뿐이다. 또한 대통령에게 확고한 정치철학이 없는 이상, 대통령과 그 참모들조차 관료들에게 휘둘리고 재벌·언론들에게 휘둘릴 가능성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그래서 대통령 1인보다 정당이 제 역할을 하고, 국회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제도 개혁을 하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해서 정당들이 정책에 집중하게 하고, 국회의원들이 국가의 일에 집중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득권 정당의 저항 속에 선거제도 개혁은 후퇴를 거듭했고, 결국 20대 국회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수준으로 귀결됐다.
21대 국회에 요구할 세 가지
따라서 현실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1대 국회가 스스로 대한민국의 방향전환을 이뤄낼 것이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가지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핵심을 추려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는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달라는 요구이고, 두 번째는 기후위기에 대해 제대로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라는 요구이다. 그리고 셋째는, 선거제도 개혁, 헌법개정 등 정치개혁을 진전시키라는 요구이다. 아래에서는 하나하나에 대해 설명을 해보겠다.
첫 번째는,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달라는 요구이다. 이것은 촛불을 들었던 거리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외쳐왔던 요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20대 국회 막바지에 의미 있는 사건이 있었다. 국민들이 직접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는 국민발안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원포인트 개헌안이 추진된 것이다. 2020년 3월 6일 국회의원 148명(결원으로 국회의원 총원은 290명이었으므로 과반수를 넘었다)의 찬성으로 이 개헌안은 발의까지 됐지만,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제안된 국민발안 제도의 내용은 국민 100만 명의 찬성이 있으면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1987년 헌법개정 이후에 정치권에서 헌법을 한 줄도 고치지 못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 개헌안이 국회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에게 권력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국회의원들도 무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무성 의원 등 일부 미래통합당 의원들도 발의에 참여했다.
‘촛불’을 통해 대통령 탄핵까지 이끌어낸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이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여전히 없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참여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따라서 이 요구를 21대 국회에 전면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국민발안제는 물론이고,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21대 국회에 요구하는 것은 주권자들의 몫일 것이다.
기후위기를 논의할 수 있는 특위와 시민의회
두 번째는, 기후위기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만들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입법권을 가진 기후위기 특별위원회’와 ‘기후위기 시민의회’의 구성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입법권을 가진 기후위기 특별위원회’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국회에서는 워낙 특별위원회가 수시로 만들어졌다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도 ‘미세먼지 대책 특별위원회’ 등이 만들어졌지만,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끝났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특별위원회는 입법권(법안 심사·처리권)이 없는 유명무실한 위원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후위기와 관련된 국회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진다면, 반드시 입법권을 가진 특별위원회여야 한다.
이런 특별위원회가 필요한 이유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은 범정부적인 과제이고, 국회에서도 특정한 상임위원회가 담당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국회를 보면, 이명박 정권 때 만들어진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관이다. 에너지·전력 관련된 부분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상임위원회가 담당이다. 환경정책은 환경노동위원회 소관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하려면 탄소세 도입 등 조세정책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데 그것은 기획재정위원회 소관이다.
이처럼 국회 상임위원회가 관할하는 정부 부처에 따라서 조각조각이 나 있다. 그러니 기후위기처럼 종합적이고 근본적이며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어렵다. 따라서 ‘기후위기 대책 특별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입법권을 부여해야 한다. 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21대 국회가 해야 할 최대의 과제일 것이다. 지금 논의되는 그린뉴딜기본법 같은 것도 이 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또한 국회의원들끼리만 논의할 것이 아니라,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 300명으로 ‘기후위기 시민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래서 기후위기 대책에 대한 토론을 하고, 쟁점에 대해 논의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시민의회의 모든 회의는 공개하고, 영상으로 촬영해서 시민 누구나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논의를 해야 기후위기조차도 국회의원들끼리 정파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관료, 재벌 등 이해관계 집단의 입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에도 기후위기 대책을 논의하는 시민의회를 구성·운영하고 있다.
연동형에서 전면 비례대표제로
셋째는, 선거제도 개혁, 헌법개정 등 정치개혁을 진전시키라는 것이다. 어차피 선거제도는 손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총선 직후인 4월 17일 YTN이 리얼미터에 의뢰해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44.7%가 “제도를 유지하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고,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도 42.5%로 집계됐다. 선거법 개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여론인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불문하고 지금의 선거제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의 퇴행을 가져올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연동형’ 방식을 고수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연동형 방식은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를 각각 하는 1인2표 방식이다. 다만, 지역구 따로, 비례대표 따로 계산하는 ‘병립형’과 다른 점은, 전체 의석을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에 맞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당이 의석을 더 차지하려면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을 높여야 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책 경쟁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런 연동형 방식은 독일, 뉴질랜드 등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인데, 이들 나라에서는 위성정당이 등장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정당정치 수준의 차이도 있겠지만, 지역구 의석 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의 차이도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지역구 의석 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299:299이기 때문에, 위성정당을 만들기가 어렵다. 지역구는 본체 정당, 비례대표는 위성정당으로 표를 나누기에는 비례대표 의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역구 의석 253 : 비례대표 의석 47’인 상황이다. 어차피 비례대표 의석이 얼마 안되니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이 쉽다. 여기에서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늘리려면, 전체 국회의원 총수를 늘려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 숫자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유권자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는 연동형 방식이 아닌 전면 비례대표제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전면 비례대표제는 쉽게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지역구 선거를 하지 않는 방식이다.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을 배분하면 되기 때문에, 계산은 훨씬 간단하다.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등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다수의 국가들은 전면 비례대표제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전면 비례대표제라고 해서, 지역대표성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면 권역별로 비례대표 선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대표성도 확보할 수 있다. 가령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17개 시도별로 권역을 나눠서 전면 비례대표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도 단위로 크게 권역을 나누면, 지금처럼 국회의원들이 시·군·구 기초지역의 민원까지 챙길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고 비례대표제이기 때문에, 정책이 중요한 선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권역별로 전면 비례대표제를 할 때에 참고할 만한 국가가 덴마크, 스웨덴이다. 덴마크는 175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그런데 그중에 135명은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눠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뽑는다. 그리고 40명을 보정의석이라고 해서 남겨 놓는다. 이 40명의 보정의석은 전국 단위 정당득표율과 의석 비율을 맞추는 데 사용한다. 가령 10명을 뽑는 권역에서 어떤 정당이 1명이라도 비례대표를 받으려면 10% 이상을 득표해야 한다. 5%를 받은 정당은 그 권역에서 비례대표를 받지 못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보정의석을 두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 단위에서 5%를 받은 정당에게는 175석의 5%인 8.75석(즉 8~9석)을 보정의석에서 가져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에도 349명의 국회의원 중 310명은 29개 권역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뽑는다. 그리고 39명은 보정의석으로 남겨뒀다가 전국 정당득표율과 의석 비율을 맞추는 데 사용한다.
이처럼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택하면서 보정의석을 두는 방식은 대한민국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다. 국회의원 숫자도 늘릴 필요가 없다. 지금 지역구에서 뽑는 253명을 권역별 비례대표로 뽑는 것으로 하고, 비례대표로 되어 있는 47명을 보정의석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역대표성도 확보하면서 정당득표율과 의석 비율도 거의 완벽하게 맞출 수 있다.
개방형 명부를 도입하자
한편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은 유권자들이 정당만 고르는 것이 아니라 비례대표 후보도 고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개방형 명부 방식이라고 하는데,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등이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개방형도 수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정당이 후보자의 순번까지 정해서 명부를 내면, 그것을 존중하되 유권자들이 순번을 일부 조정할 수 있는 가변형 방식도 있다. 예를 들어 정당이 낸 후보 명단에서 끝 번호에 있는 후보라고 하더라도, 유권자들이 그 후보를 많이 선택하면 그 후보가 당선권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네덜란드가 이런 가변형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정당이 낸 후보 명단은 순번이 없는 단순 명단이고, 이를 놓고 유권자들이 선택을 하도록 하는 완전개방형 방식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개방형 방식을 택하면, 비례대표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비례대표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그 이유는 비례대표 공천 과정이 밀실이고, 비례대표에 대한 검증이 충분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돈 공천, 낙하산 공천이 여러 번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개방형 방식을 택하면, 이런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 각 정당이 낸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까지 투표용지에 나오고, 유권자들이 후보 명단을 보고 직접 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당이 낸 후보자 명단 중에서 유권자들이 많이 선택한 순서대로 당선이 되게 하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을 엮어서
지금 설명한 전면 비례대표제를 권역별―개방형 명부 방식으로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정치를 개혁하는 데 매우 유용할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위성정당도 차단할 수 있다. 위성정당이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역구 1표, 정당 1표를 찍는 1인2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체 정당은 지역구 표를 받고, 위성정당은 비례대표 정당투표를 받는 방식으로 표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설명한 전면 비례대표제는 1인1표 방식으로 할 수 있다. 유권자가 1장의 투표용지에서 정당도 고르고 후보자도 고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위성정당이 등장할 수가 없다.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한 이유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살로몬 오렐라나의 연구에 따르면,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선거제도를 택한 국가는 1990년에서 2007년 사이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45.5% 증가한 반면,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는 9.5%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비례대표제 선거제도가 나은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비례대표제 선거제도에서는 정당이 얻은 득표율만큼 의석이 배분되는데, 유권자들은 정당투표를 할 때 정책을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유권자들은 기후위기 대책에 적극적인 정당에 투표를 하게 된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와 오스트리아, 스위스 총선에서 녹색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진 것도 비례대표제로 선거를 치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위기가 정치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려면,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로 바뀌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선거제도 개혁을 하면서 헌법개정까지 묶어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개정도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나, 시민의 기본권을 확대·강화하기 위해서나 헌법개정은 필요하다. 심각해진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도 헌법에 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최소한 헌법 전문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현세대의 책임이라는 것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헌법개정의 최대 쟁점인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서는 시민의회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권력구조에 대한 이견 때문에 개헌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직접 권력구조에 대해 논의를 해서 해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을 어느 정도로 분산시킬 것인지는, 현 정권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서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기존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해관계의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에 합의가 어렵다. 그래서 주권자인 시민들이 토론해서 해법을 찾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수 있다.
국회에 기대할 것이 아니라 시민이 행동해야
미국의 진보적 사상가였던 헨리 조지는 《사회문제의 경제학》에서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 또한 정치경제학을 대학교수들에게만 맡겨둘 수도 없다. 국민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행동할 수 있는 것은 국민밖에 없다”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21대 국회가 스스로 뭔가를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 일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 요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