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그린 지음, 이영진 옮김
《실리콘 제국》(예문아카이브, 2020년)
“다르게 생각하라!” 1997년 ‘애플’의 광고 문구였다. 상품광고치고는 사뭇 철학적이고, 소비자들을 훈계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별로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2000년대 접어들어 놀라운 신제품들을 출시할 때마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무대에 올라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의 말과 표정과 몸짓은 단지 하나의 상품을 홍보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는 분위기였다. 청바지와 검정 셔츠 차림은 애플의 로고만큼이나 강력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아이폰’ 디자인에 담긴 단순함은 잡스가 추구해온 선(禪)의 경지를 정갈하게 구현하였다. 바야흐로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는 법의 정수를 기술과 비즈니스를 통해 배우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잡스만이 아니다.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등 지금 최상급의 IT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들은 글로벌 ‘셀럽’(유명 인사)이 되었다. 그들은 단지 장사꾼이나 경영인 또는 기술자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정신을 설파하는 현인(구루)으로 여겨진다. 막대한 부(富)는 물론 전문지식과 통찰력 그리고 자기 나름의 스타일과 오라를 가지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거대한 체제에서 사소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하며 혁신을 주도하는 그들은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에어비앤비’, ‘넷플릭스’ 등은 21세기의 문화적 아이콘이다.
단시간에 거대기업의 랭킹을 통째로 갈아버린 이 기업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잉태되고 성장했다. 실리콘밸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디지털기술을 개발해낸 집단을 가리키는데, 캘리포니아주가 프랑스보다도 큰 규모의 지역경제(이곳보다 큰 국가는 중국, 일본, 독일 영국뿐이다)를 구축하게 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 자리 잡은 기업들을 아울러 ‘빅테크’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빅’은 테크놀로지에 국한되지 않는 힘을 갖는다. 금융, 문화산업, 자동차, 식품, 보건, 유통, 수송, 에너지, 교육, 우편 등 거의 모든 영역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삶과 사회 곳곳에서 그 실상을 목격하고 체험한다. 빅테크는 상상의 한계를 돌파하면서 미지의 영토에 도전한다. 그런데 그들이 빚어내는 현실은 어떤 모습인가? 겉으로 드러나는 경이로움이나 즉각적으로 증명되는 효율 및 편리함 이면에 드리운 그늘은 없는가? 그들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겨도 좋은가? 그쪽으로 권력이 이동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빅테크가 지배하는 세계
루시 그린의 《실리콘 제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지구촌을 지배해온 거대 기술기업들의 정체를 다각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원제는 ‘Silicon States’인데, ‘United States’를 염두에 두고 뽑은 단어가 아닐까 짐작된다. 하나의 중심이 우뚝 서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제국보다는, 여러 권력들이 연합체를 이루는 합중국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실리콘밸리는 단지 거대기업들이 한군데 모여 있는 것을 넘어, 그들 사이에 경쟁과 긴밀한 상호작용도 존재하는 생태계다. 그리고 브랜드파워에서도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대중적 호소력을 높이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지배 전략을 입체적으로 조감하는 이 책은 발로 쓰여졌다. 저자는 여러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기업인, 학자, 컨설턴트, 비평가, 언론인, 사회운동가 등을 만나 생생한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을 일정한 주제들에 맞춰서 배치한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피력한 말들이 직접화법으로 인용되기에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많은 사건이나 인물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맥락을 알지 못하면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대목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저자가 착목하는 지점과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우리에게 이미 다가온 여러 현실과 연결해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주축을 이루는 빅테크 기업들의 야심을 보자. 그들이 구사하는 디지털기술은 기존의 사업 모델의 붕괴를 유발하면서 전방위적으로 놀라운 효력을 발휘한다. 각광받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의료다. 수명이 길어지고 건강이 삶의 질을 천차만별로 갈라놓는 가운데, IT산업은 새로운 목표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혈당의 변화를 감지하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말초신경의 전기 신호를 변조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생체전자공학 의약품, 수면 패턴과 실내조명과 스트레스 수준 등을 모니터링하여 하루의 생체리듬을 최적화하는 기기가 그것이다. 더 나아가 피부에 인터넷을 접속해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부여하여 사이보그로 만들고, 자신의 정신을 복제하여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여 영구 보전하는 시스템(지난해 널리 읽힌 깁초엽 작가의 SF소설 〈관내 분실〉은 그런 서비스가 상용화된 세상을 상상하여 모녀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까지 개발하고 있다.
빅테크는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과감하게 확장하려 한다. 안락한 근접 우주 공간을 체험하는 벌룬 투어를 개발하고, 그런 사업을 벌이는 기업 네트워크로서 우주체험경제나 우주관광협회 등이 등장했다. 더 나아가 잘 알려진 대로 일론 머스크는 화성을 인류의 새로운 서식지로 개척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여러 광물을 채취할 뿐 아니라 지구에 넘쳐나는 온갖 쓰레기를 처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한다. 환경오염과 에너지 고갈에 대한 위기감이 깊어지는 가운데 부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만한 프로젝트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위기의 실체를 부정하면서 파리협약에서 탈퇴했을 때 일론 머스크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데는 그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물론 별천지만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에어비앤비’는 단순한 숙소 공유가 아니라, 현지의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한다. 다른 한편 빅테크는 인류의 보편적인 복지를 위해 막대한 돈을 기부하거나 투자한다. 저개발 국가의 빈곤을 물리치고 열악한 위생과 보건을 개선하기 위해, 그리고 인터넷을 보급하여 드넓은 세상과 연결시키기 위해 많은 부호들이 기꺼이 큰돈을 내놓고 있다. 또한 가난한 지역의 주민들에 대해서 그들이 박탈당한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한편, 고비용 저효율의 구태의연한 교육을 탈피하여 학습체계를 업그레이드하는 모델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업들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혁신을 거듭하는 첨단 의료장비들은 신체의 건강을 증진시켜주고 의료비를 낮출 수 있지만, 개인의 건강 정보가 무제한적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빅데이터로 가공되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로 이어질 텐데, 예를 들어 보험회사의 손에 들어가면 건강이 취약한 소비자들의 가입을 거부하는 자료로 악용될 수 있다. 빈곤 국가의 개발을 지원하고 인터넷을 보급하는 것도 해당 지역의 복리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빅테크는 질병 퇴치나 교육 개선 등을 약속하면서 그 시장에 제국주의적으로 진입하여 권위를 행사한다(베풂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그런 행태를 ‘자선자본주의’라고 칭한다). 그리고 막대한 돈이 흘러 들어가는 기부금 단체나 민간 재단이 탈세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교육 혁신은 어떤가. 기존의 낡은 학교체제를 대체할 여러 학습시스템을 창안하여 가동시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 널리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미네르바스쿨’은 배움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런데 그 혜택을 누리는 인재들은 부유한 특권층 자녀들이다. 물론 보다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한 모델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기업가들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변화를 도모하기보다는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짙다. 그 기대에 부응하다 보면 기술해결자의 관점으로 접근하기 일쑤고, 그래서 애당초 내세운 취지를 달성하기가 어려워진다.
‘실리콘 제국’이 추구하는 프로젝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글로벌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결국 부유한 백인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배타적이고 자족적인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기아문제에 매달리지만 샌프란시스코 도심지에서 힘들게 연명하는 노숙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젊은 엘리트들은 자유로운 사고와 탁월한 창의성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과 다른 처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공감능력은 아주 부족하다. 그리고 그 기업들의 인적 구성이나 권력 배분은 백인 남성에 치우쳐 있어서 실질적으로 공헌한 여성들이 가려지기 일쑤고, 여성 창업자들이 투자를 받을 기회도 매우 적다. 그렇듯 남성 우월주의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성희롱이 오랫동안 빈발해오다가, 몇 해 전에 ‘미투’ 고발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그것은 조직 내부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윤리감각이 결여된 집단이 압도적인 기술 우위로 시장을 지배하면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빚어질까? 기업 연합체가 정부보다 더 큰 재정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대중적인 지지까지 확보한다면,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플랫폼과 검색엔진이 언론을 능가하는 새로운 계급을 형성하고 ‘구글’이 최종적 ‘팩트체커’(사실 확인자)가 된다면, 공공영역의 지형은 어떻게 될까? ‘페북’의 막대한 데이터가 의도와 전략을 가지고 사용된다면? 저커버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가권력과 정치가 시민들을 배반하고 관료제의 무능과 비효율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상황에서 세련된 엘리트집단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나설 때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구축되는 세계는 부유한 이들 위주로 돌아가고, 소비지상주의의 에너지로 추동되는 경향이 짙다. 아무리 국가가 낙후되어 있다 해도 그것은 수리하고 혁신해야 할 대상이지 폐기해버릴 일은 아니다. 정부를 바로 세우는 것은 소비자의 욕망으로는 결코 해낼 수 없다. 시민의 책임을 모아내면서 공공성을 새롭게 구축해가야 한다.
공동의 미래를 디자인할 집단지성이 절실하다
이번 바이러스 재난은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입증해주었다. 2차대전 이후 최대의 세계사적 위기인 지금 이 사태 앞에서 ‘실리콘제국’은 어떤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접촉과 이동이 크게 제약되는 상황에서 ‘줌’ 같은 화상회의 시스템이나 ‘넷플릭스’ 등의 채널이 인기를 누리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문명의 비전을 빅테크가 내놓을 수 있을까.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것이 2018년인데, 저자가 지금의 거대한 난국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이미 실리콘밸리의 오름세는 2014~2015년을 정점으로 꺾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워낙 탁월한 위치에 있기에, 그리고 소비자들의 동의와 승인 덕분에 그 위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산출되는 성과들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건강하게 향상시켜줄 것인가이다. 노동시장에서도 취약한 입지에 있고 국가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엄청난 규모의 시민들에게 빅테크가 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다(팬데믹 상황에서 온라인 거래가 폭증하면서 ‘아마존’ 같은 기업에 일감이 밀려드는 가운데, 밀폐된 창고에서 일해야 하는 이탈리아와 미국의 배송 직원들이 자신들의 건강을 지켜달라고 시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현재의 서비스와 시스템이 끊임없이 첨단을 향해 치닫는 대신, 보다 포용적인 성격으로 변환하면서 부유한 백인 남성이 아닌 모든 이들을 대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실행파일’을 제시하지는 않고, 밀레니얼과 Z 세대의 각성된 힘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다.
‘실리콘 제국’은 일상생활과 사회적 상호작용과 상거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기세로 신체와 생명을 리모델링하고 국가의 기능을 능가하려는 단계에 이르렀다. 사물의 작동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알고리즘에게 우리의 주권을 어디까지 양보할 것인가. 그 ‘슈퍼파워’가 인류를 위협하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대의를 모아가는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 너와 나를 정의와 사랑으로 연결하면서 공동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집단지성이 절실하다. 그것은 우선 우리가 각자 삶의 주인으로 스스로를 일깨우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 모두는/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내가 나 자신을 연구하지 않으면/다른 자들이 나를 연구한다네/시장의 전문가와 지식장사꾼들이/나를 소비자로 시청자로 유권자로/내 꿈과 심리까지 연구해 써먹는다네//(중략)//내 모든 행위가 CCTV에 찍히고/전자결제와 통신기록으로 체크되듯/내 가슴과 뇌에는 나를 연구하는/저들의 첨단 생체인식 센서가 박혀 있어/내가 삶에서 한눈팔고 따라가는 순간/삶은 창백하게 빠져나가고 만다네//우리 모두는/자기 삶의 최고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네”(박노해, 〈자기 삶의 연구자〉(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