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다. 코로나19(COVID19)라는 병은 언제까지 갈 것인가, 라는 질문. 몇 개월이면 끝날까? 아니면 1년이면 끝날까? 아니면 그보다도 더 갈까?
대답은 조금 시시할 정도로 뻔하다. 그 대답은 “인구 집단이 집단면역을 가질 때까지”이다. ‘집단면역’이라고 하면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준비를 하라”는 역사에 남을 망언을 하면서 이제는 다들 꺼리는 악명 높은 어구가 됐지만 사실은 감염병을 다룰 때 가장 흔히 쓰이는 말이다. 다만 한 사회가 집단면역을 획득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나는 보리스 존슨이 말했던 길, 즉 질병에 걸려 집단면역을 가지게 되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백신으로 사람들이 집단면역을 획득하는 길이 있다.
첫 번째 길, 즉 사람들이 역병에 감염되어 집단면역을 획득하는 길은 코로나19의 경우 이론상으로는 인구의 약 60%가 감염되어 면역이 생기면 집단면역 문턱치(역치)에 도달한다. 그러고 나서야 감염이 서서히 줄어든다. 그런데 이 길은 코로나19의 사망률을 최소 2~3%로 잡더라도 우리나라 인구로 따지면 인구의 60%, 즉 3,000만 명이 코로나19에 걸려야 하고, 그중 2~3%인 최소 60~90만 명이 사망하는 길이다. 당연히 이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따라서 두 번째 길이 남는다. 그 길은 백신으로 사람들이 면역을 획득하는 길이다. 예를 들어 소아마비의 경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지금 50대 중반의 연령대만 해도 학교 다닐 때 60명 한 반에 한 명꼴로 소아마비로 인한 장애인이 있었다. 지금 형태의 소아마비 백신이 나온 것은 1961년이었다. 홍역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백신으로 별문제가 안되는 병이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주요 사망원인 중의 하나다. 백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신의 중요성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백신으로 집단면역을 획득하는 길이 바로 두 번째 길이고 이 길이 우리가 선택할 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인류가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치명률 3% 정도의 새로운 질병에 맞닥뜨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치료제도 아직 없고, 백신은 빨라야 1년 내지 1년 반 만에 나오고, 아니 몇 년이 걸릴지 모르고, 그때까지 사람들이 2m 이상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면? 이 사회의 지배자가 자본가의 이익을 수호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감염을 통한 집단면역의 길인가, 아니면 백신을 기다리면서 하염없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것인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하면 생산이 멈추고 이 자본주의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데?
따라서 보리스 존슨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실수가 아니다.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스페인독감 때처럼 전 세계 인구가 18억일 때 5,000만에서 1억 명 정도를 죽이고 1년에서 1년 반 내에 역병을 끝내는 것이 오히려 싸게 먹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이 질병에 취약한 사람들은 60대 이상의 고령자와 원래 고혈압이나 당뇨, 심장질환 등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이들이다. 즉 생산활동 인구가 아니다. 또 의료체계가 마비되어 사람들이 죽는다 할지라도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죽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언제 나올지 모를 백신을 기다리느니 그냥 사회를 질병에 노출시켜 집단면역을 획득하는 편이 빠르고 싸다. 스페인독감을 대입하면 75억 인구 중 2억 명에서 4억 명이 죽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 인류 앞에는 코로나를 끝내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야만의 길이고 하나는 우리가 모두 사는 길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기
백신이 나올 때까지 감염의 확산을 억제하면서 버티는 길만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이다. 다른 길은 수억 명을 죽이는 길이다. 그러나 백신이 나올 때까지 버티는 길이 쉬운 것은 아니다.
감염의 확산을 억제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방법으로는 치료약제이다. 예를 들어 신종플루 시기에는 타미플루와 같은 약이 있었다. 이러한 잘 듣고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약이 있으면 이 약으로 백신이 나올 때까지 버티면 된다. 이것이 우리가 신종플루를 극복한 길이었다. 신종플루는 다행히도 치명률이 1,000명이 병에 걸리면 1명 이하가 사망하는 정도의 위험성 정도밖에 안되었고 또 다행히 예방접종이 9개월 만에 나오면서 쉽게 넘어간 셈이지만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엔 알려진 치료제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감염의 확산을 억제하는 방법은 이른바 ‘확진자 추적’과 밀접 접촉자 자가격리로 잘 알려진 역학적 방법의 ‘봉쇄와 완화’, 즉 사회역학적 환자 억제 방법이다. 감염자와 감염 의심자의 추적, 격리 그리고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감염병과의 속도경쟁인데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감염병이 빠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 번째로 나오는 것이 전통적 방역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 또는 물리적 거리두기, 손씻기, 마스크 등이다. 여기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소한 1m 외국에서는 2m를 이야기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기본적으로 비말(침방울, 콧물 등) 감염이고 접촉감염이므로 서로 팔을 뻗어 닿지 않는 거리로 떨어져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하나씩 따져보자. 첫 번째 치료제는 개발되거나 임상시험을 거치려면 시간이 걸리고 또 지금 떠오르는 약물로는 100% 치료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치료제에 대한 여러 보도들은 주식시장에서의 이윤을 노린 ‘과장 광고’일 가능성이 대부분이다.
둘째 역학적 봉쇄와 완화 방법은 감염병의 전파 속도를 줄이지 못하면 효과가 없다. 이는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시작해서 미국 등 방역에 실패한 나라들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세 번째 방법, 그리고 가장 유력한 방법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손씻기 등인데 이 사회적 거리두기 혹은 물리적 거리두기야말로 개인이 아닌 사회적으로 실천되지 않으면 실효가 없는 일이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나 체육관, 클럽이나 스포츠 관람 등을 당분간 그만두거나 그 형태를 2m의 거리를 두는 것으로 바꾸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만을 바꾸는 것도 엄청난 일이겠지만 말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생산 현장에서 과연 2m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가, 또한 유통과 대중교통에서의 사회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돌봄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개인 간의 거리를 2m로 유지할 수 있는가가 또하나의 중요한 지표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물류 현장, 지하철과 버스, 기차에서 2m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가? 요양원, 요양병원, 수많은 사회복지시설에서 2m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가?
여기까지 오면 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그러면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즉 코로나19는 언제까지 갈까라는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답은 백신이 나올 때까지이다. 그럼 언제 백신이 나올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개월 운운하자 미국의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 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 앤서니 파우치가 최소 1년 내지 18개월이라고 이야기한 사실은 이제는 잘 알려져 있다. 영국의 수석과학자문 패트릭 발란스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막상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 1년 내지 1년 반조차도 ‘천운이 따르면’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RNA 바이러스는 변이가 많아 예를 들어 “에이즈는 30년간 개발했지만 백신이 개발되지 못했고, C형간염 역시 백신이 없다.” “인플루엔자는 1940년대 첫 백신 등장 이후 가장 최근 업데이트된 백신 개발까지 무려 70년 걸렸다. 개발은 됐지만, 매년 백신을 맞아야 하고 예방 효과가 제일 높아 봤자 70%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백신이 나올 때까지 천운이 따라야 1년 내지 1년 반이고 몇 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냉정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몇년 동안 아니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면 세계가 코로나 이전(BC:Before Corona)과코로나 이후(AC:After Corona)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더이상 재담이 아니다.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시대는 이제 ‘코로나 시대’다.
대구, 신천지, 공공의료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유럽 의료시스템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은 공공의료의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보다는 잘 견딜 줄 알았는데 결과를 보니 우리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는 현재 성적상 낫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75명의 사망자가 나왔던 3월 16일까지의 사망자 중 23%가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한때 2,000명이 넘는 환자가 진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병원이나 치료시설에도 입소하지 못했다. 즉 한국에서도 의료용량 이상으로 의료수요가 폭발하는 환자폭발이 일어났고 그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사실 우리도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로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이 30점도 안될 만큼 너무 못해서 우리가 상대적으로 잘했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이는 결코 잘못했다고 우리나라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이 상대적 점수로 한국은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정한 평가 없이는 우리가 잘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래서 대구의 코로나 사태를 냉정히 되돌아보아야 한다.
흔히 이른바 ‘31번째 환자’가 대규모 감염의 시발점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또 여러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정치적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2월 18일 진단된 그 환자도 추정키로는 4차나 5차 전파자의 하나였을 뿐이다. 즉 문재인 대통령이 “국내에서의 방역관리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단계로 들어선 것 같다”며 “방역 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발언했을 당시 즉 2월 8일 당시에 이미 한국에서는 지역감염이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우한(武漢)에 대한 중국 자체의 봉쇄가 1월 23일부터 시작되었고 한국에서는 우한을 포함한 후베이성(湖北省)을 거친 입국자들을 2월 4일부터 입국금지 조치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의 입국자들도 특별관리를 하기 시작했고 사실상 단기 관광 입국자들을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조치는 초기의 입국자들을 방지하지 못했다. 대구에서의 지역감염은 1월 중순이나 그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따라서 중국인 입국금지를 주장한 대한의사협회(의사협회의 첫 번째 중국인 입국금지 주장은 1월 26일)나 또 미래통합당의 주장(중국 내에서의 우한 봉쇄 이후의)은 실제로는 대구·경북 지역사회에서 감염이 진행된 이후의 이야기였다.
이 글은 대구 경북에서의 코로나 발생 과정을 되짚어보는 글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신천지’의 감염은 지금까지의 환자 발생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 약 5,600명에 해당하는 환자가 신천지 관련 대구·경북 환자라고 추정된다. 따라서 신천지 때문에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일면적 파악이다.
신천지교회의 신도는 약 25만 명으로 한국 전체 인구의 0.5%에 해당할 정도로 큰 집단이었다. 첫 환자가 1월 20일 처음 진단된 이후부터 2월 26일까지 30명 환자가 진단되는 것에 그친 반면, 2월 28일 처음으로 진단된 대구의 31번째 환자부터 진단된 환자는 대구시와 대구지역 인근 경북지역의 지역감염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신천지 교인들이 매우 폐쇄적이어서 지역감염이 대구와 대구시 주변 지역에 그쳤고 더 퍼져 나가지 않았다는 점, 또한 신도 명단을 통해 추적과 진단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는 점이다(또 한편으로는 신천지교회가 마치 범죄집단인 것처럼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혀, 추적에 경찰력을 동원하더라도 사회적 저항이 약했다). 또 젊은 신도가 많아 상대적으로 치명률도 낮았다. 심지어 호남 신천지 교도 사이에서는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게다가 한국은 신천지교회의 집단감염으로 인해, 초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효과를 얻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2015년의 메르스 집단 발병 경험은 이번에 초기부터 광범위한 검사와 확진자 사회격리와 접촉자 추적 및 격리와 같은 대응을 가능하게 했고, 여기에 비교적 초기에 발생한 신천지교회 집단감염은 사회적으로 거리두기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데 큰 효과를 냈다. 그 때문에 상당수 전문가는 ‘신천지 착시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인구의 약 50%를 차지하는 수도권 지역(서울·인천·경기)에서 지역사회 감염이 진행되고 있고, 완만하지만 그 발생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거나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경기도지사 이재명이 4월 4일 “감당 못할 코비드19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또하나 짚어야 할 것은, 한국의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가 코로나19를 잘 막아냈다고 하는 주장이다. 실제로 “대구·경북은 종합병원과 병원 27곳에 약 4만 개의 병상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5,000명 정도(경증 환자 제외)의 코로나19 환자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분석 결과 전체 병상의 10%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4명 중 3명을 진료한 반면, 전체 병상 중 90%를 보유한 민간병원은 나머지 1명만 진료하는 데 그쳤다.” 또 “평소 질이 떨어지고 적자를 낸다고 찬밥 취급을 받던 공공병원이 위기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살펴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환자의 치명률이 계속 높아져가는데도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이른바 ‘빅5’ 병원에서 진료받은 환자는 채 10명이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대구에서는 대구의료원 450병상, 국군대구병원 303병상, 대구 산재병원 200병상, 대구보훈병원 90병상, 경북대병원 70병상 등 국공립 병원이 1,100병상을 마련했고 여기에 포항의료원 등까지 나섰다, 반면 민간병원은 마침 계명대 동산병원이 이사 가고 남은 공간을 빌려서 200병상을 썼고, 대구가톨릭대병원과 영남대병원 200병상을 쓴 것이 전부다.
경제위기와 기후위기
2008년 경제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학교 교수는 “대공황보다 훨씬 더 나쁘다. 경기침체는 V자도, U자도, L자도 아닌 I자로 올 것이다”라고 〈야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미 “1930년 이후 유례없는 경제위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미 경제위기는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벗어날지 알 수도 없다.
이러한 경제위기 시기에 자본주의체제가 무슨 일을 강요할지를 우리는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우리 사회만 해도 1997년의 경제위기, 2008년의 경제위기의 경험을 통해 자본가계급이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전가하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벌써부터 타격을 입은 항공업, 호텔업계에서는 정리해고가 진행되고 있다. 서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직격탄을 맞아 생계가 걱정인데 정부는 기업에는 100조 원을 푼 반면 서민들의 생계 지원에는 5조 원을 쓰느니 마느니 하고 있다.
다른 한편 기후위기는 이제 8년 정도만 지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불가역적인 지점을 통과할 것으로 예측된다. 인류는 1930년대 이래 전례 없는 경제위기와 인류 생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인류 자체의 존망이 걸린 기후위기도 맞닥뜨리고 있다.
코로나19가 왜 발생했는가를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인류는 전례 없는 전세계적 신종 감염병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미 사스, 신종플루, 지카, 에볼라 등 떠오르는 것만 세어도 몇년 만에 한번씩 전세계적 감염병을 겪고 있다. 이 역병들은 자본주의적 농·축산업과 더불어 자본주의적 토지이용이 환경을 파괴하여 인류가 이전에 접하지 못하던, 자연에 남아 있어야 할 동물들의 바이러스를 직접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역병들이다. 예를 들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가 가지고 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천산갑 등의 포유류를 매개로 인간에게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종플루 바이러스나 조류독감 바이러스처럼 이렇게 새로운 바이러스는 멕시코의 축산농장과 같은 자본주의적 공장식 축산업에 의해 마련된 최적의 배지를 통해 인간에게 전파될 수 있는 바이러스로 변모하고 증식된다. 그리고 이는 전례 없는 세계화로 인해 빠른 속도로 전세계적으로 전파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불평등을 악화시킨 지 40년째이다. 이 예가 유럽의 공공의료체계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민영화되고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재정부족으로 고통을 받은 지 오래다. 유럽이 이 정도인데 미국은 더 말할 것도 없으며 아프리카나 남미, 아시아의 제3세계는 신종 감염병의 의료적 대비를 생각할 수조차 없다. 인도의 예가 그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코로나19로 인한 인류의 보건위기와 경제위기를 동시에 극복하는 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그 과정은 생산 현장인 공장과 유통, 대중교통에서부터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로 인해 생길 사회적 부담은 노동자와 서민들이 지는 게 아니라 최대한 사회적으로 정의롭게 부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럽 여러 나라의 경우 코로나 기간 동안 해고를 금지하거나 해고되었을 경우 국가가 실업급여로 90%까지 급여를 지급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노숙자를 주차장 같은 곳에 금을 긋고 수용하지만, 반면 프랑스는 정부가 호텔과 계약을 해서 노숙자를 재운다. 스페인의 경우 의료시설이 부족하자 민간병원을 국유화했다. ‘샤넬’이 향수 대신 손세정제를 만들고, 심지어 미국에서도 자동차회사나 ‘록히드마틴’이 인공호흡기를 만든다. 자동차회사들이 탱크를 만들고 비행기회사들이 전투기를 만들던 2차대전 시기의 전시경제 ‘뉴딜’이 지금 코로나 시기에 형태를 바꾸어 다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딜’이다.
일단 우리가 시작할 것은 이 경제위기 시기의 경제적 부담을 노동자와 서민에게 떠넘기지 않고 불평등을 역전시키는 ‘코로나 뉴딜’이다. 예를 들어 당장 할 일은 기업의 해고 금지이다. 그리고 결국 문을 닫는 기업이 생기면 국유화를 통해 국가가 나서서 고용유지를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하에서의 ‘공간이 곧 이윤’이 되는 일을 중단시켜야 한다. 즉 토지와 공간의 이용을 공공화하는 일이다. 당장 임대료를 못 내도 퇴거를 중지시켜야 한다. 공장의 사람 사이의 공간을 1m 이상 유지시켜야 한다. 대중교통을 대폭 확대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에게 공간을 확보해주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돌봄노동자들을 대폭 확대 고용해야 한다. 이러한 공간의 사회적 이용이 ‘코로나 뉴딜’의 핵심 중 하나이다. 또한 생계가 곤란한 사람들에게는 재난수당 등의 생활비가 지급되어야 한다.
보건·의료 부문에서도 앞서 이야기했듯이 공공의료가 대폭 확충되고 필수적이지 않은 의료기관은 공공화해야 하며 필수적인 인공호흡기나 의료장비, 마스크 등의 생산과 유통은 정부가 관리해야만 한다.
이러한 내용들이 ‘코로나 뉴딜’의 기본적인 얼개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코로나 뉴딜’의 출발로 그쳐서는 안된다. 이 ‘코로나 뉴딜’은 ‘녹색뉴딜’의 첫 번째 단계여야 한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1930년의 위기에서 2차대전으로 이어진 야만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이 야만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한 세기 전에 던진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야만인가, 자본주의의 극복인가? 인류의 생존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