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남 나주시여성농업인센터장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박웅두 정의당 농민위원장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편집인(사회)
2019년 10월 4일, 녹색평론사 회의실
김종철 : 다들 바쁘실 텐데 멀리서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농민기본소득이라는 주제를 놓고 좌담을 해볼까 합니다. 그동안 저희 《녹색평론》은 농사가 제일 중요하다는 얘기를 줄곧 해왔고, 농사를 살리기 위해서 농민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해왔습니다만, 이제부터는 그 이야기를 좀더 열심히, 집중적으로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경철 선생님은 우리 지면을 통해서 여러 차례 농민기본소득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려 보여주셨는데, 오늘 이 좌담에서는 그것도 포함해서 농민기본소득이 이 시점에서 왜 중요한지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다음호부터는 좀더 세밀한 각론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아마 그동안 했던 이야기들도 상당히 되풀이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에서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폭넓은 논의가 있었으면 합니다.
《녹색평론》은 사실 10여 년 전부터 기본소득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하기 시작한 셈인데, 저 자신도 그동안 돌아다니면서 기본소득에 관한 강연을 꽤 많이 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기본소득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것 같아요. 돈 이야기니까.(웃음) 근데 이제는 굳이 《녹색평론》이 나서지 않더라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불충분하나마 기본소득을 실제로 시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요 근래에는 저희 지면에서는 기본소득에 관한 일반적인 논의는 예전처럼 그다지 열심히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이제부터는 농민기본소득에 대해서 집중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농사를 살리는 일이 어느 때보다도 더 절박해졌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전체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아무래도 아직은 현실성이 좀 약한 것이 사실이고, 또 나중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동안 기본소득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는 약간 찜찜한 기분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저를 포함해서 기본소득을 주장해온 사람들이 앞으로의 인공지능 시대에는 일자리가 대폭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거기에 대한 대비책으로 기본소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게 꼭 100% 정당한 논리일까 하는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논리 속에는 인공지능이 곧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거라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들어 있단 말이에요. 설사 전면적으로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때가 곧 닥친다 하더라도, 그런 세상이 과연 긍정할 만한 세상일지 근원적으로 따져보는 일이 먼저 선행돼야 할 텐데도,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세상의 도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추세로 보면 인공지능 시대는 불가피하게 닥칠 가능성이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인간인 이상, 따져볼 것은 따져보고, 만약에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다운 삶이 뿌리째 거덜 날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데까지는 저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욱더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저는 농민기본소득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농민기본소득이라는 것은 더 깊이 따져볼 것도 없이 농사를 살릴 수 있는 최적의 방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살린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온 세계가 직면한 긴급한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언론은 아직은 미온적이지만, 세계의 주요 언론은 거의 매일같이 기후위기를 인류사회가 직면한 가장 다급한 최대의 현안이라고 톱기사로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도 조만간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그 자체로 고립된 이슈가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지구환경 전체가 겪고 있는 광범위한 생태적 위기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 외에도 생물종이 대량 멸종의 길로 가고 있고, 대기와 물이 오염되고, 바다와 땅이 죽어가고, 광물자원들이 고갈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가 보기에 가장 심각한 것은 농사의 기반인 농지가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것과 토양이 오염되거나 혹은 심각하게 사막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도 토양을 살리고, 농사를 옳게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사를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희가 계속 주장해온 것입니다.
자, 그럼 서론은 이쯤에서 줄이고, 우선 한 분씩 돌아가면서, 자신이 왜 농민기본소득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는지, 이를테면 자전적인 이야기를 잠깐씩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말씀을 하시는 동안에 오늘 우리가 강조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저절로 밝혀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농민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를 제일 많이 하고 계신 박경철 선생님부터 말씀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논문에서 썼던 것과는 다른 톤으로, 격식에 매이지 말고 편안한 기분으로 말씀해주시죠.
박경철 : 제가 개인적으로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 때입니다. 제가 89학번인데 졸업을 늦게 해서 1998년 여름에 졸업을 했어요. IMF 위기가 한창일 때였죠. 나이는 먹었고 취직하기는 어렵고 고전하던 참에, 마침 그때 정부에서 주관하는 3개월짜리 청년들을 위한 공공근로사업이 있어서 거기에 참여를 했어요. 그리고 그때 처음 ‘청년기본소득’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지요. 아, 이런 제도도 있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들어갔다가 4년 반 만에 나와서 중국으로 유학을 갔는데요, 거기서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농업 공부를 했고, 농업정책 연구기관에서 근무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농업정책들이 펼쳐졌지만 결과적으로 소득 면에서 농민들한테 실질적인 도움이 된 것이 없는 거예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갑작스런 개방정책을 시작하면서 우리 정부는 급하게 농촌을 회생시킨다면서 ‘농업선진화’라고 이름을 걸고 유리온실 등 시설농업을 권장했고, 이후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자 도농교류, 농촌관광이라며 각종 마을개발사업들이 시작됐어요. 또 환경보호와 식품안전을 위해 친환경농업정책도 도입됐죠. 앞으로의 생태위기 시대에는 친환경농업을 해야 된다고 하면서 정부가 많은 투자도 하고 법도 만들고 직불금도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친환경농사를 짓는 사람들조차도 농산물을 팔아서 소득 증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게다가 우리 농업정책에서 대다수 농민들은 소외되어 있습니다. 대농이나 시설농업, 축산 등 일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그 결과 중소농이 정말 눈에 띄게 몰락해가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정책들은 크게 바뀌지 않는 거예요. 그때 ‘기본소득’을 떠올렸어요. 우리나라에 농업직불금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 직불금을 기본소득 형태로 지급하면 어떨까.
현재의 직불금은 농가 단위로, 또 경작 면적에 따라서 주고 있기 때문에 농지 규모가 큰 일부 사람들한테만 혜택이 많이 돌아가거든요. 우리나라 농가는 대부분 소농인데, 소농들한테는 직접 주는 혜택이 거의 없어요. 조사를 해보면 실제로 72%의 농가가 1년에 받는 직불금이 33~34만 원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유럽의 경우를 보면 연간 몇천만 원의 직불금을 받고 있어요. 유럽도 사실상 직불금이 없으면 농가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요컨대 우리나라 농민들은 구조적으로 살 수 없게 되어 있는 거예요. 기본소득과 직불제를 어떻게 연계하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우선 생존권 차원에서 보편적으로 기본소득을 주지 않으면 한국 농가들이 존속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는 농민기본소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박웅두 : 저는 농사지은 지 30년 됩니다. 고향은 진도인데 대학 졸업하던 해에 곡성으로 가서 만 30년째 농사짓고 있습니다. 제가 농사를 시작할 때, 그러니까 1990년대에는 800만, 850만 농민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220만이라고 합니다. 30년 사이에 600만 명이 줄어든 거예요. 이렇게 급속도로 감소가 일어나는 계층이 또 있을까요? 농민 인구가 급감한 배경에는 농산물 가격 문제, 수입개방 문제 그리고 특히 소득 양극화 문제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농촌에서 농민으로서 삶을 풀어가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실제로 저희 동네에도 이농, 탈농하시는 분이 꽤나 많아요. 특히 젊은층은 아이들 교육을 핑계로 농촌을 떠나는데요, 그렇지만 최소한의 소득이 뒷받침된다면 쉽게 농촌을 뜨지는 않을 거예요.
기존의 정부의 가격정책이나 여러 농업정책으로는 도저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확인되고, 판명된 것 같아요. ‘신농정’도 있었고, 또 119조 원 긴급 투자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양극화나 농촌 공동화의 흐름을 저지하지 못했잖습니까. 오히려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죠. 예전에 ‘목표소득제’라고 해서, 농가별로 일정한 소득 기준을 정하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직불금 형태든 다른 어떤 형태든 보조해주는 방법이 한때 화두가 됐었어요. 아마 2000년대 초반인가에 그게 좀 논의가 되었는데 결국은 사장돼버렸어요. 이렇게 농가소득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답을 찾지 못하니까, 그나마 남아 있는 농민들은 ‘규모화’로 급속히 편제된 것이죠. 실은 농민운동가들 중에도 규모화에 편승한 분들이 많아요. 농업·농촌의 몰락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서는 새로운 뭔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절감하고 있습니다.
2007년도 대통령선거 때 민주노동당에서 나왔던 공약 중에 ‘기간농민제’라는 것이 있었어요. 전국에서 활동적인 농민 50만 명을 정부가 양성해서 일정하게 급여를 주고 농사를 짓게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가 당내에서 엄청 논쟁이 되었어요. 관변 농민을 만드는 거냐, 기존의 이장하고 차이가 뭐냐, 오히려 이장들에게 수당을 더 줘서 그 사람들을 활성화하면 되지 하면서 논쟁이 되었는데요, 제 생각에 당시의 그런 논의가 기본소득 내지 농민수당에 대한 첫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고민들이 발전해서 지금 농민수당이 구체화되고 조례가 제정되어 실제로 수혜자가 지역에서 나오고 있는데요, 이게 이후에 어떻게 발전해서 농민기본소득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여기에 초점을 맞춰서 깊이 있게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강정남 : 저는 노동당원인데요, 사회당하고 합치면서 기본소득을 접하게 되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당내 토론회에 참석해서, 무슨 소리래? 허황된 소리를 저렇게 하네, 일도 안했는데 돈을 줘? 하고 생각했었죠. 우리가 노동을 해야 돈을 받는 거라고 세뇌되어 있잖아요. 노예가 되어야 돈을 받는 것이고, 놀 권리가 없는 거예요. 이른바 ‘근로의 정신’을 갖고 있죠. 그런데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이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라는 거예요. 저는 기본소득이 실제로 시행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떠나서, 기본소득이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그리고 기본소득의 의미와 당위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저는 매력적이었어요. 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청년수당 같은 것들이 단순히 일정한 액수의 돈을 준다는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농민수당이나 농민기본소득 관련해서는 저보다 활동을 많이 한 분들이 계시고, 저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참석을 거절하려고 하다가 마음을 바꿨어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농민수당 논의가 틀에 갇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어서입니다. 농민단체 내에서도 논의의 방향을 정해 놓고 조금도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제가 보기에 농민수당은 기본소득과 연결선에 있어요. 그런데 농민수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농민수당은 기본소득과 다르다면서 차이점만 강조합니다. 뭐가 다르냐고 물으면, 여러가지 설명을 하는데요, 결론적으로 보면 기본소득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도 부정하지 못해요. 제 짐작에는 농업 관련 행정과 농민단체 쪽에서 농민수당을 시행하고 싶은 마음이 급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기본소득은 전반적으로 아직까지 공감대가 확산되지 못했고, 그래서 기본소득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부정적 측면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빨리 시행되게 하려면 농민만 특화해서 농민수당으로 내용을 가져가야 된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김종철 : 그러니까 현재 지금 하려는 농민수당은 각 도별로 도 예산을 가지고 하겠다는 거죠? 그런데 해남에서 하는 것은 해남군 예산으로 하는 거라고 하던데요?
박웅두 : 해남과 강진은 먼저 시작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9월 30일에 전남도의회에서 농민수당 조례안이 통과가 됐는데요, 재원의 40%는 도가 대고 60%는 시군이 대고 해서 월 5만 원 기준으로 규격화가 되었어요. 내년부터는 이 기준에 따라 모든 시군이 일률적으로 시행할 예정입니다.
김종철 : 지금 전남 말고 다른 도에서도 하기 시작했습니까?
박경철 : 전북에서도 조례가 통과되어 내년부터 실시할 예정이고, 충남도 준비 중입니다. 내용은 조금씩 다릅니다. 전남은 농어민 공익수당이라서 어업 종사자까지 포함되어 있고, 대상 농가도 경종, 축산, 임업 등을 다 포함하는데요, 전북에서는 경종 농가에만 지급합니다. 전북은 예산이 약 620억 정도 되고요, 전남은 약 1,400억 정도입니다.
김종철 : 그런데 농민수당이라는 것도 개인별로 주는 게 아니죠? 농가별로 주는 거죠?
박경철 : 지금은 사실상 그렇습니다. 정부가 농업직불제 등 여러 농업정책을 시행하면서 대상 농업인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농업경영체 정보 등록제’를 만들었어요. 농민이라도 농업경영체로서 등록을 해야 농업정책의 대상이 됩니다. 농업경영체는 보통 가구 단위로 등록하는데요, 한 가구 내에서도 나눠서 등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산다면 부모와 자식이 각각 농업경영체 등록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물론 가족 구성원이 중복으로 등록될 수는 없고, 농경지도 중복으로 등록할 수 없어요. 그런데 경영체 등록이 따로 되어 있어도, 같은 집에 살면 농민수당은 한 가구로 받습니다.
박웅두 : 문제가 복잡합니다. 강진에서 2018년에 처음으로 70만 원을 지원했지 않습니까? 그러자 2019년에 경영체 등록이 확 늘어났어요. 농업경영체 등록은 전남 평균 매년 0.9% 정도 증가하는데, 강진에서 2019년으로 넘어오면서 7% 가까이 는 거예요. 농업경영체별로 농민수당을 지급하니까 한 농가 내에서 서류상 경영체 분리를 한 것이죠. 부부간 또 부모 자식 간에 분리를 한 거죠. 그래서 행정에서 한 집에 거주하면 하나의 경영체로 보겠다고 기준을 정한 거예요.
김종철 : 독일 같은 데에서도 농민한테 주는 보조금이나 직불금을 개인별로 주지 않습니까?
박경철 : 경영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하지만 거기는 한 농가가 하나의 경영체를 대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에서는 면적 단위로 지급하는 기초직불금에 더해서 친환경농업, 생물종 다양성 보전, 경관 보전을 위한 농업 등을 하면 추가로 직불금을 받습니다. 이러한 직불금을 가산형 직불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규모 농가는 별도로 소농직불금을 받습니다. 사실 유럽 농가들도 잘사는 것 같지만 직불금이 없으면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이들이 잘살지는 못해도 농촌에서 그런대로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직불금 때문입니다.
농민기본소득으로의 통합, 왜 안되나?
김종철 : 기본소득이라는 건 무조건적으로 최소 생계비를 개인에게 지급하는 것이니까 농민기본소득도 결국 개인별로 해야 될 거예요. 기왕의 직불금이나 농민소득이라고 주는 것들을 다 통합시키면 안될까요?
박경철 : 그런 논의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농업재정 구조를 연구하고 있는데요, 지금 우리나라 농림부 사업이 380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정부 부처 중에서 사업 수가 가장 많은 데가 농림부예요. 중앙에서 설계해서 시도, 시군, 읍면, 마을까지 다 관장하는 게 농림사업인데요, 농업소득 올리자고 그 많은 사업들을 만들었는데 결국은 농업소득만 안 오르고 경영비라든가 자재비 등만 다 올랐어요. 그리고 이 사업들이 대부분 간접보조 형태이다 보니까 농민들에게 혜택이 가지 않고 중간에 있는 관련 사업자들만 혜택을 보는 거예요. 혹시 농민이 혜택을 보더라도 소수 몇 사람에 한정되어 있고요. 그래서 농가에 직접 지불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김종철 : 가짓수 많게,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명분은 농민을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결국은 그런 구실 밑에서 자기들이 돈 뜯어먹으려는 의도가 아니겠어요?
강정남 : 행정 쪽에도 물어보면 사실 답이 없다고 해요. 농업 부분에서 답이 없는데, 뭔가는 내놓아야 하니까 패턴을 바꿔서 계속 무슨 사업이라고 내놓는 거예요. 지금 우리 농촌의 인구는 줄어들 대로 줄어든 상황이에요. 현재 농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죽지 못해 사는 아주 소규모의 농가들이나 고령의 할머니들, 아니면 어떻게든 땅을 넓혀서 대규모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죠. 후자의 사람들은 정책자금이 나오면 일단 무조건 받고 보는데요, 그렇지만 빛 좋은 개살구인 경우가 많아요. 실상은 거의 빚이거든요. 그리고 나머지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소농 농가들인데, 이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죠. 가족농 중심의 복합농, 자연환경을 살리는 농업, 이런 쪽으로 가는 게 맞지만 이 사람들이 먹고살려면 상업농을 해야지 어떻게 그런 걸 합니까. 가족농, 복합농, 친환경농업으로 가야 한다면 농민들에게만 뭐라고 그러지 말고 사회가 농산물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부터 갖추어야 해요.
나주 같은 경우에는 ‘로컬푸드’ 정책으로 그런 부분을 해소하려고 하고 있는데요, ‘로컬푸드’는 사실 다품종 소량 생산의, 옛날부터 농사를 지어온 우리 할머니들과 어머니들한테 딱 맞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현실적으로 ‘로컬푸드’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들은 외지에서 들어온 젊은 농가들이에요. 기업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그걸 또 농민들 내부에서 제어하지를 못합니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서도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요. 요즘은 귀농에 또 무지하게 돈을 쏟아붓고 있잖아요.
김종철 : 지금 귀농자는 어때요? 좀 늘어나고 있습니까?
박웅두 : 귀농 흐름은 한창때보다 좀 줄어들기는 했는데, 정부에서 귀농을 촉진하기 위해서 귀농하면 엄청나게 많은 지원이 있을 것처럼 이야기를 하니까, 귀농자들 쪽에서도 행정에 대해 기대라든가 요구가 더 커지고, 결과적으로 오래 농사를 지어왔던 사람들이 오히려 정책에서 소외되고, 귀농한 사람들이 정책의 우선적 대상이 되는 역전 현상도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김종철 : 아무 연고 없는 사람들이 농촌에 와서 농사지으려고 하면 정부지원이 필요하긴 하죠. 일본처럼 우리도 정책적으로 제도화된 게 있다고 볼 수 있나요?
박경철 : 청년창업농 제도가 있습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오면 3년간 지원해주는데요, 첫해에는 월 100만 원, 둘째 년도에는 90만 원, 셋째 해에는 80만 원을 지원해줍니다.
김종철 : 그래가지고 농촌에 정착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입니까? 도시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죠?
박경철 : 최근에 실행이 돼서 성과는 좀더 기다려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원 대상이 승계농에 편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어요.
박웅두 : 실제로 농촌으로 들어오는 젊은 사람들의 한 80%는 부모가 이미 갖추어둔 기반에서 농사를 짓는 경우이거든요. 약 20% 정도가 전혀 연고 없이 농촌에 들어오는 젊은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소득이 없어서 애를 키우고 살 수가 없으니까 다시 도시로 나가 기러기 아빠가 되든지, 부부 중 한 사람은 농업이 아닌 직종에 종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나온 제도이지요. 근본적으로 우리 농정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조로 집행되어왔지 않습니까. 대다수 농민들의 전체적인 수준을 높이기보다, 소수를 끌고 가겠다고 하는 정책의 방향이 지금까지 사실상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김종철 : 결국 정부의 방침은 농가 수를 줄여나가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게 몇십 년 동안이나 계속되어온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잖아요. 농업경영체라는 용어 자체가 이상해요. 그냥 농민이라고 하면 좋잖아요. 그렇게 이상한 용어를 써가지고 농민들을 산업사회의 하나의 직업군으로 다루려고 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농업이 갖고 있는 특수성을 무시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부의 농업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참다운 농사는 안되는 것이지요. 정부가 생각하는 농업이라는 것은 진정한 땅 살리기도 농촌공동체 살리기도 아니고, 단지 지금 당장 돈이 되는 농사를 말하는 건데, 그런 식으로는 지속가능한 농사가 될 리가 없습니다.
박경철 :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국민이 소비하는 식량의 규모는 일정하니까 규모화, 기계화를 통해서 적은 수의 농민으로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죠. 그럼 거기서 소외되는 나머지 농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어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일자리가 급감하게 되고, 이런 정책이 진행될수록 소외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지는데, 약간의 복지정책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는 것 같아요.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