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 본지 발행인. 이 글은 2019년 6월 29일, 시 전문 계간지 《신생》 창간 20주년을 기념하여 부산일보 소강당에서 행한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근본주의’라는 꼬리표
《신생》 창간 20주년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전에 《신생》의 초대를 받아서 부산에 와서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간 적이 있는데, 오늘 다시 여러분들을 뵙습니다. 이 척박한 땅에서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시문학 잡지를 20년 동안이나 발간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날이 갈수록 인쇄문화가 위축되어가고, 실제로 책을 보는 독자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문화적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비록 소수일지라도 진지한 지적·예술적 작업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이들의 노력을 결집시키는 공론의 장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창간 20주년을 맞는 《신생》의 발행인과 편집진의 그동안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오늘 제가 맡은 강연 제목은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입니다. 이건 실은 요 며칠 전에 나온 저의 새로운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녹색평론》과 그 밖의 지면들에 발표했던 글 중 일부를 추려서 묶은 책인데,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제목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막상 그렇게 정하고 보니까, 지난 30년 동안 제가 해왔던 작업들을 총괄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제가 지난 28년간 《녹색평론》을 발간하고 그 밖의 일들을 해온 것은 무슨 학술적인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당면한 생태위기와 그것과 긴밀히 관련된 사회적·실존적 위기를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돌파할 것인가, 라는 어디까지나 실천적인 목적을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제게 늘 중요했던 것은 사태를 원리적으로 진단하고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갈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면서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평론》 창간 이후 지금까지 저한테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습니다. ‘근본주의자’라는 호칭 말입니다. 그런데 외람된 말이지만, 《녹색평론》을 꼼꼼히 읽어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저는 늘 의문입니다.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남들이 하는 일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사람을 보고 ‘근본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기 전에 제가 쓴 글이나 발언을 조금 성의 있게 들여다보고 비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근대’에 대한 물음의 결핍
어쨌든 ‘생태위기’는 제가 수십 년 동안 붙들고 있는 화두라면 화두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녹색평론》 창간 당시에는 우리의 자연환경이 갈수록 오염되고 파괴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모두 알고는 있었지만, 조만간 생태계 전체가 붕괴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소수의 예민한 사람들은 내심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공론화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녹색평론》 창간사에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20~30년쯤 뒤에는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게 우리들에게 축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저주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이게 설마 30년 후의 실제 현실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실로 엄중하게 돼버렸습니다. 요즘은 아무리 둔한 사람도, 특히 기후변화에 대해서 꺼림칙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어떻게 방향을 전환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따라서 사회적 공론화도 아직은 너무나 미약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요 언론의 기자들이라면 이 나라의 중요한 지적 엘리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게을러서 그런지 무지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언론의 막중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런데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언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의 정신적·문화적 풍토와 큰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이토록 둔감한 것은 그 배경에 좀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진보파’ 지식인들의 관심사는 경제민주화, 남북문제 혹은 통일문제, 친일파 청산 문제, 노동문제나 복지문제, 교육문제, 성평등 문제 등등, 다양한 범위에 걸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늘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각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존의 삶의 원칙과 관습을 근본적으로 변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좀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투입하거나 기술의 혁신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혹은 적어도 해결을 기대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태위기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생태위기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삶의 어딘가에 부분적으로 고장이 난 사태가 아니라, 지난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성장을 해온 자본주의 산업문명, 즉 ‘근대문명’의 존립 방식이 총체적으로 빚어낸 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근대문명 그 자체를 근원적으로 묻는 작업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지금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라면 어디서든 다급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대인은 예외 없이 생태적 파국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근대적 제도와 관행에 오랫동안 익숙해져온 사회에서 근대문명 자체를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이른바 ‘압축적 산업화’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는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식인들에게는 좀 다른 면이 있어야 할 텐데, 한국의 지식사회에는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근대문명 그 자체를 물어야 한다는 관념이 유독 심하게 결여되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예를 들어볼까요. 심심하면 고개를 들고 나오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논쟁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식민지근대화론이란 한국사회가 근대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는 일제 식민통치였다는 주장에서 출발합니다. 즉, 식민지 지배를 받는 동안에 한반도에서 경제가 괄목할 만하게 성장하고, 그와 더불어 근대적 제도와 관행이 이 땅에 발붙이기 시작했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이에 맞서서 거세게 반론을 펴는 민족주의적 성향의 지식인들의 주장도, 제가 보기에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본질적으로는 더 나을 게 없습니다. 그들은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기 이전에 이미 조선사회에 자본주의적 근대의 싹이 터서 나름대로 진전되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그 상황에서 일제에 의한 침략으로 조선의 자생적인 근대화의 싹이 잘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식민지근대화론이나 자생적 근대화론이나 ‘근대’라는 것을 뭔가 대단히 좋고 가치 있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발전사관의 덫
실제로 서구에서는 근대라고 하면, 그것은 그냥 시대구분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일지 몰라도, 서구에 의한 침략을 통해서 근대화를 경험해온 비서구 사회,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근대라는 것은 단순히 시대구분을 위해 사용되는 중성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경우를 두고 생각해보더라도, 우리가 이 ‘근대’라는 말을 듣거나 사용할 때는 우리의 뇌리에서는 거의 자동적으로 보다 개화된 어떤 것, 보다 문명화된 어떤 것, 보다 향상된 어떤 것, 보다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연상됩니다. 즉, 우리의 내면에서는 이미 근대라는 것은 ‘가치 개념’으로 깊이 정착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근대라는 말을 쓰거나 들으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지난 100년 남짓 우리가 겪어온 굴욕의 역사를 반추하게 되고, 우리들의 내면 속에 아직도 그 굴욕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우리는 착잡한 감정 없이 근대를 생각할 수 없는 인간들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근대’란 단순한 시대구분용 어휘일 수 없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의 지식계 일부에서는 이른바 ‘이중과제’라는 기치를 내걸고 ‘근대에의 적응과 근대의 극복’을 동시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거기서도 역시 ‘근대’라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할 역사적 단계로 상정되어 있습니다. 이 ‘이중과제’를 말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근대를 좋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들도 역시 근대를 어떻든 한번은 거쳐야 할 단계로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역사를 고대, 중세, 근대 등으로 구분하는 이른바 ‘발전사관’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근대라는 것이 많은 부정적이고 불건강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나 어쨌든 인간의 물질적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온 것은 분명한 만큼 근대 그것의 역사적 공적은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사고방식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역사라는 게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사고 자체가 문제라고 저는 봅니다. 우리가 고대, 중세, 근대…, 라는 식으로 인간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자기도 모르게 걸려드는 덫이 있습니다. 즉, 고대보다는 중세가, 중세보다는 근대가 좀더 나은 삶을 약속하거나 보장하는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물론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인간의 삶을 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단순히 재화와 서비스가 풍부한 생활이 좋은 삶을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면, 당연히 근대가 가장 좋은 시대임에 틀림없겠지요(물론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근대문명이 가져다주었다는 ‘풍요로운’ 물질생활이라는 것도 실상은 한갓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실제로 근대문명의 혜택을 누려온 인구는 전체 인류의 15%를 넘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잣대, 예를 들어 사람이 사람끼리 돕고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이야말로 정말 좋은 삶이라고 한다면, 근대는 가장 열악한 시대로 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따져 들어가면, 근대는 물질적 생활의 편의성이나 풍요로움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온갖 면에서 가장 비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가장 어리석고 부조리한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근대는 지속 불가능한 생활방식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유지·확대하기 위해서 온갖 무리수를 쓴 나머지 이제는 마침내 인간 생존의 자연적 토대를 전면적으로 교란·붕괴시키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근대문명이 벼랑 끝에 이르렀다는 것은 누구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인류가 살아남고, 인간다운 삶이 최소한이나마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을 지속시키려면, 근대문명을 넘어서 생태문명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우리들 뇌리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고정관념, 즉 역사는 보다 나은 단계로 발전해간다는 이른바 발전사관과 이에 결부된 시대구분입니다. 근대문명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하고, 생태문명을 재창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발전이니 진보니 하는 관념적 장벽부터 깨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역사는 일직선적으로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목표를 향해서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사회에 도달해야 할 최종적인 목적지가 있다는 생각이나, 그 목적지를 향해서 역사가 부단히 움직여 나간다는 생각은, 간단히 말하면, 근대적 미신입니다. 실제로 18세기 서구에서 소위 ‘계몽사상가’들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동서양 어디서나 발전사관이라는 것은 낯선 것이었습니다. 세계사란 ‘절대정신’의 자기전개 과정이라고 규정짓고는 세계사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유럽인이라고 천명했던 헤겔이나, 그 헤겔식의 사고를 이어받아 인간 역사를 최종적인 인간해방을 위한 투쟁의 과정으로 파악해온 맑스주의적 역사관 역시 그 사상적 모태는 계몽사상이었습니다. 이러한 계몽사상 때문에 ‘근대’는 지구사회 전체에―제국주의적 지배를 통해서라도―확산되어야 할 ‘문명적’ 가치로 인식되어왔고, 그 인식의 지배 밑에서 지난 수 세기 동안 세계 전역의 민초들의 삶이 끊임없이 짓밟히고, 자연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온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인간 역사를 굳이 시대적으로 구분해야 한다면, 단순히 ‘비근대’와 ‘근대’로 나눌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흔히 근대 이전을 ‘전근대’라고 표현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근대 이전의 삶은 어딘가 미개하고 야만적인 제도와 관습이 지배하던 시대,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개화’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 경우 근대화란 바로 문명화의 다른 이름이죠. 그런데 잘 생각해봅시다. 자연 만물과 사회적 약자들을 오로지 자신의 이기적 욕망 충족의 이용 대상으로만 간주하여 끊임없이 수탈·착취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립기반 자체를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는 자멸적인 체제가 바로 근대문명입니다. 그런 시스템을 오랫동안 ‘문명적’인 것으로 간주해왔다는 사실이야말로, ‘근대인’의 정신상태가 얼마나 정상이 아닌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증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태문명과 농경적 감수성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근대’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 지속 불가능성입니다. 왜냐하면 근대란 자신의 생존기반을 끊임없이 부수고 짓밟지 않으면 한순간도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근대문명을 뒷받침해온 것은 재생 불가능한 자원들이었습니다. 수십만 년에 걸친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기간 중 불과 200~300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근대문명’은 주로 지하에 매장된 재생 불가능한 자원들을 거의 고갈시켜버렸고, 그 자원 중 화석자원들이 근대문명의 유지와 확산을 위한 불가결한 에너지원으로 무절제하게 남용됨으로써 기후변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대두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싫든 좋든 이 근대문명을 종식시키고, 어쨌든 생태문명을 시급히 재창조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재창조’라는 말을 쓴 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즉, 생태문명이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우리가 창안할 필요도 없는, 오랜 세월 인류가 살아온 기본적 생활양식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인간 역사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비근대적’ 삶을 누려왔습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 비근대적 삶이란 기본적으로 재생 가능한 자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따라서 큰 이변이 없는 한, 그것은 이 지상에서의 인간의 영속적인 삶을 보장하는 생활양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생태문명의 재창조란 ‘근대’가 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기 이전의 거의 모든 토착적 혹은 전통적인 삶의 복구를 통해서 또하나의 ‘비근대적 문명’을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복구는 단순한 복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근대’를 통과해오는 동안 불가피하게 손상된 자연적 및 사회적 질서를 수선·치유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류 사회에 축적되어온 갖가지 창조적인 지혜와 경험과 기술을 살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재창조’라는 용어를 강조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생태문명을 재창조해야 한다면, 그 문명은 기본적으로 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문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에도, 대부분의 문명적 생활은 기본적으로 농사에 의존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농사 중심의 생활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 ‘순환적인 생활방식’으로서 거의 유일한 삶의 형태입니다. 물론 신석기시대에 접어들어 농업문명이 시작되면서 비록 국지적이지만 지구 생태계에 상당한 정도의 훼손이 가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터놓고 말해서 지금 우리가 구석기시대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입니다. 그리고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취민의 생활이 아무리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농업문명 시기 동안에 인간이 쌓아온 덕성들, 예를 들어 자연에 대한 공경과 순응적 태도, 근면성과 인내심, 자기절제와 겸손, 예의작법 그리고 무엇보다 평등과 자치, 자립의 관념 등등은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서는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매우 소중한 덕성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농업문명도 절제를 잃으면 땅을 난폭하게 다루고 그 결과로 사막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문명 가운데는 토지 관리를 제대로 못한 끝에 망해버린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중국, 만주, 조선, 일본을 방문하여 동아시아의 전통적 농민사회가 토지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꼼꼼히 관찰하고 그 조사 결과를 《4천 년간의 농부》(1911)라는 책으로 정리했던 미국의 토양학자 프랭클린 킹이 강조했듯이, 동아시아의 도작(稻作) 농민들이 전통적으로 행해왔던 지혜로운 농법, 즉 풍부한 자연적 시비(施肥)에 의한 지력의 보존과 철저한 물 관리로 토양유실과 토양오염을 막는 농사를 계속 유지한다면 농업문명은 천 년이든 만 년이든 영속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 지혜로운 농법의 존속을 저해하는 요인입니다. 적어도 동아시아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토착 농민들의 지혜로운 농법이 중단되고 토지가 오염되고 파괴되기 시작한 것은 이 지역에 들이닥친 서구 근대문명 때문입니다. 즉, 근대문명의 압도적인 지배와 영향 밑에서 동아시아의 농사도 단지 산업의 일부로 편입되어, 화폐 증식을 위한 영리 수단으로 변질돼버린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근대문명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생태문명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생태문명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4천 년간의 농부》라는 책이 말하는 순환적인 농사에 토대를 둔 문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농경적 감수성의 회복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농민들이나 농사에 직접 관계된 소수의 기관이나 개인들을 제외하고는 농사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그렇고, 재계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 학계 그리고 노동운동, 인권운동을 포함해서 일반적으로 진보적 사회운동을 한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그래도 문학인들에게는 아직도 미련이 있어서 기대를 걸고는 있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젊은 문학인들일수록 농사에 대한 관심도 희박하고, 농경적 감수성이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아예 시대착오적인 개념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1970~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문구를 비롯하여 우리 농촌, 농민의 현실에 관해서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작가들이 그리 흔치는 않아도 맥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또,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박경리, 박완서 등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관류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농경적 감수성에 뿌리를 둔 의식과 정조(情調)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극소수의 농촌 출신 시인들을 제외하고는 농경적 감수성의 표현은 한국문학에서 극히 생소한 것이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 제천에서 과수농사를 하면서 틈틈이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최용탁은 소설가로서는 유일한 예외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린 대로, 생태문명의 재창조에 있어서 농사가 갖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우리 문학계의 이런 현실은 참으로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러나 물론 이는 문학인들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지금 많은 기성세대의 한국인들은 이른바 압축적 산업화를 통해서, 한때 세계에서도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지금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실은 이 ‘자부심’이야말로 우리가 생태문명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핵심적인 걸림돌이 아닌가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연로한 문인들이나 지식인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그분들은 어렸을 때나 젊은 시절에 굉장히 가난하게 살았다는 기억 때문에 실제로 오늘날의 생활방식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부조리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으려 합니다. 하기는 식민지 시절에 태어났거나 해방 전후에 태어난 세대로서는 자신들이 겪었던 그 험하고 배고팠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풍요로운’ 소비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지식인이라면 당장의 눈앞의 현실 너머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대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다는 안락이나 풍요로운 소비생활의 정체가 무엇인지, 전후 맥락을 따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지식인들에게는 그게 잘 안되는 이유가 정확히 무엇일까요?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