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민낯
지난 4월 30일 오전 0시 34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절차)에 올리기로 결정됐다. 18명 위원 중 12명이 찬성해서 가결된 것이다. 이로써 1988년 이후 처음으로 큰 틀의 선거제도 개혁안이 본회의 표결까지는 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개혁이 좌절될 가능성도 있고, 변수도 많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오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정치불신, 정치혐오가 큰 한국에서 살면서 나도 정치에 대해 일정한 불신과 혐오를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시민사회운동에는 참여하면서 정치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랬던 사람이 2011년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고 현실 정치에 뛰어들게 된 것은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계기가 되었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위 ‘민주정부’ 시절에도 치솟아 오르던 부동산 가격, 이명박 정권에서 벌어졌던 4대강사업, 지역에서 벌어지는 기득권 정치의 행태, 소수자와 약자들에게는 한없이 가혹하면서 기득권자에게는 관대한 정치와 행정·사법을 보면서 좌절하고 분노해 왔던 것이 결국 정치에 직접 참여하게 만들었다.
막상 정치에 참여하게 되면서, 한국 정치의 민낯을 좀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언론에 보도되는 부패, 예산 부정사용, 채용비리, 재판청탁, 막말, 망언 등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수 시민들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한다”는 것이었다. 입법권, 예산심의권, 국정조사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가 일을 안하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문제는 켜켜이 쌓여간다.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을 하면서 그런 정치의 현실에 부딪힌 이계삼(밀양송전탑반대책위원회 전 사무국장)은 이를 두고 ‘정치의 부재’라고 표현했다.
주권자들이 주권을 위임받은 자들에게 아주 작은 책임이라도 질 것을 부탁하는 자리에서 보험 외판원처럼, 다단계 판매원처럼, 옹송거리며, 고개 조아리며, 굽신거려야 했습니다. 어르신들과 일정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올 때마다 저는 진한 비애를,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수십 번 국회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이런 감정 속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계삼, 20대 총선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출마의 변 중에서
물론 국회의원들은 몹시 바쁘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의 절반 이상은 공동체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이다. 지역구 관리하고, 정당에서 시키는 정쟁 관련된 일을 하는 데 절반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는 것이 몇몇 국회의원들의 솔직한 얘기였다. 이런 식의 정치에서 기후변화와 같은 심각한 위기에 대한 논의는 불가능했다. 핵발전의 위협, 미세먼지, 심각한 불평등,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 등도 국회에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에만 일차적인 관심이 있었다.
어느 것이 현실적인 전략인가
녹색당을 창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식의 정치를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현실은 ‘수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거대 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는 소수 정당으로서는 넘어서기 힘든 장벽이었다. 정책은 중요하지 않았고, 정당 기호가 중요했다. 돈 없는 정당이다 보니 광고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선거 때마다 한 장짜리 공보물을 보내는 데에도 1억 5,000만원 이상이 드는 현실에서 인지도를 높이기도 매우 어려웠다.
전 세계 녹색당의 경험을 보더라도, 이런 식의 선거제도에서 녹색당이 정치를 바꾼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녹색당만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내세우는 그 어떤 정당도 국회로 진입하기는커녕, 생존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2016년 4월 총선에서의 좌절을 경험한 이후에 선거제도를 반드시 바꿔내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것이 현실적인 전략이었다.
방향은 나와 있었다. 정당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꿔야 했다. 비례대표제 선거방식 중에서도 2015년 2월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권고했던 독일식에 가까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그래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데 힘을 모아보자는 얘깃거리를 들고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을 찾아다녔다. 동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왜 안되는 일만 골라서 하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과거에 진보정당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우리도 열심히 해봤는데, 잘 안됐다”는 얘기도 했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니, 사람을 바꾸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나 사람을 바꿔서 정치를 바꾼다는 것이야말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기존의 정당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가서 뭘 바꾼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치를 바꾸겠다고 기득권 정당에 들어간 사람을 얼마 후에 만나보면, 정치를 바꾼 게 아니라 본인이 바뀌어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87년 민주화 이후 숱하게 기존 정당으로 들어간 민주화운동 출신, 학생·노동 운동 출신, 시민운동 출신들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나? 대부분 별 차이 없는 정치인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 정치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현실적인 노선이었다. 사람을 바꿔본들 정치가 근본적으로 바뀔 확률은 1%도 안된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었다. 반면에 세계적인 경험을 볼 때에 선거제도를 바꾸면 정치가 크게 바뀔 확률은 50%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바꿀 수 있는 확률이 단 10%밖에 안된다고 하더라도,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더 현실적인 노선일 수밖에 없었다.
탄핵과 대선, 그리고 좌절
2016년 가을부터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려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그리고 ‘촛불’이 일어났고, 탄핵 절차가 시작됐다. 이렇게 큰 정치적 열기가 단지 대통령 한 사람을 교체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시민사회단체들이 2017년 1월에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법 개혁 공동행동’(이후 ‘정치개혁공동행동’으로 명칭을 변경)을 결성했다.
우선 대선 후보들에게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입장을 묻는 활동을 했다. 대선 후보 중에서는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안철수 후보는 따로 한번 만나기도 했다. 문재인, 심상정 후보는 2012년 대선 때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안철수 후보는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겠다는 엉뚱한 공약을 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선 전에 안철수 후보를 따로 만났는데,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지하며, 한국은 다당제로 가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이렇게 문재인, 심상정, 안철수 후보가 찬성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았다.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기대가 컸다. 대통령도 당선 직후에 5당 원내대표들을 만났을 때에 “선거제도 개혁만 된다면 (헌법개정을 할 때) 권력구조 부분은 양보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했다. ‘촛불’로 정권교체를 이룬 다음에 선거제도 개혁을 하고 개헌까지 한다면, 얼마나 멋질 것인가, 라는 기대를 가졌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7년 하반기는 선거제도 개혁을 하기에 좋은 조건이었지만, 한국의 정치판은 엉뚱하게도 정계개편으로 흘러갔다. 안철수 씨는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을 추진했다. 중요한 시기를 흘려보내게 된 것이다.
2017년 하반기에는 국회에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구성됐지만, 아무런 논의의 진전이 없었다.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하면서 ‘다수결이 아닌 합의로 처리’를 한다고 못 박아 놓았는데, 합의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에 국회에서 만난 민주당의 어느 보좌관은 “합의로 처리를 한다는 건 하지 말자는 얘기나 같다”고 개인적 의견을 얘기했다. 결국 그 보좌관의 말이 옳았다. 2017년 12월 한 달 동안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자유한국당 앞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지만, 언론의 관심도 없었다. 몸도 마음도 추운 겨울이었다.
대통령 개헌안 자문기구에 참여
2017년에는 선거제도 개혁 논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회에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함께 개헌특위도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헌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학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에서 자문보고서를 냈지만, 정작 논의를 해야 할 국회 개헌특위는 겉돌고 있었다. 2018년 6·13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것이 대통령 공약이었지만, 그 공약도 지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결국 ‘촛불’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정치시스템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상황이었다.
필자는 본래 선거제도 개혁을 먼저 하거나, 아니면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을 동시에 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개헌이라도 불씨를 살려야 했다. 그래서 2018년 1월 8일 〈경향신문〉에 “개헌,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라는 칼럼을 썼다. 헌법상 대통령도 개헌안 발의권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 방법으로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런데 2월 초쯤에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추진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라는 자문기구를 만들어서 개헌안 초안을 작성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접했다. 얼마 후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으로부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에 부위원장으로 참여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잠시 고민했지만,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이 유일한 돌파구라고 생각해서 수락을 했다.
2018년 2월 13일 첫 회의를 가진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에는 3월 13일까지 대통령에게 보고할 개헌안 초안을 작성하는 역할이 맡겨졌다. 한 달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기존에 나왔던 여러 개헌안들을 검토하여 초안을 작성해야 했다. 며칠 밤을 새다시피 토론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위원들끼리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지역을 돌면서 순회간담회도 했고, 여성, 노동, 농민, 교육, 인권 등 다양한 단체와 관련 학회들로부터 의견을 듣기도 했다.
선거제도와 관련해서는 다행히 위원회 내에서 이견이 없었다. 그래서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라는 문구를 헌법에 명시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성의 원칙을 헌법에 명시하기로 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 유럽 여러 국가에서는 이렇게 헌법에 비례성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청와대에서도 받아들여져서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 포함됐다. 이렇게 헌법에 비례성의 원칙이 포함되면 공직선거법을 그에 맞게 바꿀 수밖에 없으므로 선거제도 개혁의 길이 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3월 26일 발의한 개헌안은 제대로 논의도 못 해보고 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은, 청와대나 여당이 적극적으로 협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자유한국당과 이견이 컸던 권력구조 부분에 대해서 다른 야당들이 제안한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제’ 같은 방안을 놓고 절충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했다(‘국회의 국무총리 추천제’는 국회가 국무총리를 단수 또는 복수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사실 선거제도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버리고 비례대표제로 개혁하려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이지만, 권력구조는 정답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국가 중에 대통령제를 택한 국가는 미국, 대한민국,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5개 국가뿐이다. 나머지는 의원내각제 27개국, 이원집정부제 5개국이다(중앙선관위 자료 참고). 그런 점에서 청와대와 여당이 ‘대통령 4년 연임제’라는 권력구조만을 고집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개헌을 무산시킨 일차적인 책임은 자유한국당에 있었다. 당시 홍준표 씨가 대표를 맡고 있던 자유한국당은 토지공개념을 놓고 ‘사회주의 개헌’ 운운하면서 합리적인 개헌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자유한국당의 실수
개헌도 무산되고 선거제도 개혁은 실패한 채 2018년 6월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시민사회에서 모았던 선거제도 개혁운동의 동력도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6·13 지방선거는 여당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자유한국당은 지방의회선거에서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피해자가 되었다.
자유한국당은 서울, 경기, 인천, 충남, 충북, 대전, 제주, 부산, 울산 등 호남지방을 제외한 지역에서 정당득표율에 훨씬 못 미치는 의석을 차지했다. 서울시의회의 경우에는 더불어민주당이 50.92%의 정당득표율로 92.73%의 의석을 차지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25.24%의 정당득표율에도 불구하고 5.45%의 의석만을 차지했다.
자유한국당은 선거 참패의 후유증으로 홍준표 대표가 물러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협상을 하게 됐다. 상임위원장, 특별위원장 자리를 나누는 협상에서 자유한국당은 중요한 판단 착오를 하게 된다. 정치개혁특위 위원장 자리를 정의당에 배분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실수를 한다. 18명의 위원 중에서 자유한국당 몫을 6명으로 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또한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하면서 ‘합의로 처리’한다는 문구를 넣지 않았다. 패스트트랙이 가능한 조건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국회법상 상임위원회나 특별위원회 위원의 5분의 3 이상이 동의하면 패스트트랙 절차에 올릴 수 있는데, 18명의 정치개혁특위 위원 중 5분의 3이면 11명이었다. 11명만 동의하면 자유한국당이 반대해도 패스트트랙은 가능했다. 그리고 위원장이 패스트트랙에 소극적이어도 사실상 불가능한데, 위원장을 정의당에서 맡기로 됐으니 그 문제도 해결된 셈이었다. 필자를 포함해서 몇몇 사람들은 이때부터 패스트트랙이라는 절차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기회가 열리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이라는 점이었다. 6·13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하고 대통령 지지율도 괜찮으니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더라도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한국 정치에서 이런 계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지만, 민주당의 개혁 의지가 약한 상황이므로 다른 정당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동력이 나와야 했다.
정의당은 본래 선거제도 개혁을 적극적으로 하자는 입장이므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의 태도가 중요했다. 그런데 6·13 지방선거 이후 두 정당의 대표를 새로 선출하면서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8월 5일 민주평화당 당대표로 정동영 의원이 선출됐고, 9월 2일에는 바른미래당 당대표로 손학규 대표가 선출됐다. 다른 정책과 관련해서는 이견들이 있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상당한 공감대를 나누고 있는 분들이었다.
정치평론가 박성민 씨는 2019년 6월 1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정치의 세계에서는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합목적적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요한 한 가지에 대해 의견이 같으면 그 사안과 관련해서는 같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은 정의당,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과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하기로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녹색당, 민중당, 노동당, 미래당(우리미래)까지 포함해서 원내·외 7개 정당이 함께하는 실무연석회의를 꾸려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10월 2일에는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결의하는 공동기자회견을 가지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만 18세 선거권 등을 함께 추진하기로 발표했다. 국회 의원회관 안에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정당―시민사회 공동상황실도 만들어졌다. 아마도 이렇게 다양한 성향의 정당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의 행동을 결의한 것은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10월 31일에는 국회 앞에서 촛불문화제도 열면서,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빨리 하도록 촉구하는 활동을 벌여나갔다.
손학규가 박주민보다 낫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겉돌았다. 자유한국당만이 아니라 민주당도 소극적이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0월에 시민단체 대표자들을 만났을 때에는 “우리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고 얘기했지만, 그 얘기는 금세 없었던 걸로 되었다. 게다가 12월 6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다른 정당들을 배제하고 2019년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다.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그 소식을 들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곧바로 단식에 돌입했고, 이정미 대표도 함께했다.
이 무렵 필자는 ‘페이스북’에 “손학규가 박주민보다 낫다”는 글을 올렸다. 박주민 의원을 언급한 것은 하나의 예시다. 72세의 손학규 대표는 단식을 하고 있는데, 민주당 내부의 개혁적이라고 하는 의원들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들은 당 내부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한다고 얘기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국면에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과감하게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손학규, 이정미 대표의 단식이 이어지면서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 내용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을 적극 검토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국회의원 숫자를 10% 범위 내에서 증원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월 말까지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합의문은 발표되자마자 휴지조각 취급을 당했다. 민주당은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자유한국당은 언제 합의를 했느냐는 듯 딴소리를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12월 말로 끝나는 정치개혁특위가 연장이 된 것이었다. 마지막 기회는 남아 있는 셈이었다.
패스트트랙이라는 마지막 카드
한편 2018년 11월 학계와 시민사회 인사들로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어 필자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자문위원들은 여러 번의 논의 끝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국회예산을 동결한다는 것을 전제로 국회의원 숫자를 360명으로 늘리자는 의견을 2019년 1월 9일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이런 의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합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2019년 1월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선거제도 개혁안은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과 글로 쏟아냈다. 처음에는, 그게 되겠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과 같은 중요한 개혁은 여러 우연적 요소들이 맞아떨어질 때에 현실이 된다. 그렇게 될지 안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는 것뿐이었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칼자루는 민주당이 쥐고 있었다. 정의당,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지도부들은 선거제도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올리자는 입장이었지만, 민주당이 같이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쉽게 그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공수처법(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과 묶어서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런 방안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비판도 많았다.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법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법보다는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에 관심이 많았던 민주당을 패스트트랙에 합류하게 만들려면 두 가지를 묶는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다행히 민주당도 3월 7일 의원총회를 열어서 선거제도 개혁안과 공수처법 등을 묶어서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했다. 문제는 민주당이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반쪽짜리 제도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안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패스트트랙에 올려야 2020년 총선 전에 본회의 표결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패스트트랙에 올려지면 270일 후에 본회의 표결이 이뤄지는데, 그 전에 수정을 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래서 일단 패스트트랙에 올리자는 공감대가 국회 안팎에서 만들어졌다.
결국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은 3월 17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만 18세 선거권을 핵심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불충분한 내용이지만, 이렇게라도 진행을 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정당득표율대로 배분되는 의석의 최소 50%를 우선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가령 A당이 10%의 정당 득표를 했다면 300명 국회의원의 10%에 해당하는 30석을 배분받는 것이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그런데 ‘준연동형’은 30석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뺀 숫자의 50%를 우선 보장하는 방안이다. 만약 A당이 지역구 당선자가 10명이라면, 30석에서 10석을 뺀 20석의 50%, 즉 10석을 비례대표로 우선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A당은 지역구 당선자 10명에 비례대표를 최소한 10석을 보장받으니, 최소 20석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미흡하기는 하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는 방안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르면, 지역구 당선자가 한 명도 없는 정당도 비례대표 진입장벽인 3% 정당득표율을 넘어서면 최소 6명(300명의 3%면 9명이고, 그 50%면 4.5명인데 반올림이 된다. 그리고 1명 정도는 추가 배분을 받을 수 있다)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생길 수 있다. 지금은 3%를 넘겨도 1명 국회의석만 배분되는 것을 생각하면 소수 정당의 의석이 상당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는 정말 예측 불가능한 곳이었다. 공수처법을 둘러싸고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의 사법개혁특위 위원들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일이 꼬여갔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은 생각보다 강력하게 저항했다.
상인적 현실감각
마지막까지 공수처법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던 상황에서 4월 15일 필자는 〈경향신문〉에 글을 썼다(당시는 청와대와 여당이 기소권 있는 공수처를 고집하고, 바른미래당은 기소권 없는 공수처를 주장하던 상황이었다). 필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인용해서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청와대와 여당더러 들으라고 한 얘기였다. ‘기소권 있는 공수처’를 주장하다가 아무것도 안되는 것보다는 일부 양보를 해서라도 선거제도 개혁과 검찰개혁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다행히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지도부 간에는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 공수처가 판사, 검사, 고위 경찰에 한해서 부분적 기소권을 갖는 것으로 의견이 좁혀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바른미래당 내부의 격렬한 갈등, 자유한국당의 물리력을 동원한 난동사태 등이 이어졌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마지막에 패스트트랙이 성사되게 한 일등 공신은 역설적으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였다. 이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국회의원 감금, 국회선진화법 위반, 기물 파손 등의 난동사태를 벌이자 민주당이 막판에 “이견이 최종적으로 조율되지 않았으므로 두 개의 공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만약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가 그렇게 극단적인 행태를 보이지 않았다면, 공수처법을 둘러싼 이견 때문에 패스트트랙은 실패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것이 우연적 요소이다. 이런 요소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어떻게 일을 되게 할 것인가
선거제도 개혁은 정치를 크게 바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야말로 정치판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민주주의 역사를 보더라도 선거제도 개혁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영국, 캐나다 같은 나라는 양심적인 세력들이 숱하게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비례대표제로 바꾸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에서 선거제도 개혁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정치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최대의 기회가 왔다고 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에 저항하면서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간 것도 그만큼 선거제도 개혁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당 등 기존 원내정당의 국회의원들 중에도 여전히 속으로는 선거제도 개혁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패스트트랙은 시작에 불과하다. 중간에 합의가 된다면 기한이 단축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년 1월 말~2월 초에 국회 본회의 표결이 이뤄질 것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본회의 표결에서 통과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방향은 어느 정도 나와 있다.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연봉(2019년 기준 1억 5,100만원이 넘는다)과 보좌진 규모, 예산 부정사용, 채용비리 연루, 부동산 투기, ‘갑질’, 망언과 막말 등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이다. 이런 분노를 모아 국회를 갈아엎는 수준의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이 중요하다. 국회의원 특권을 없애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논의도 가능해진다. 국민소환제 도입도 요구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만이 아니라 포괄적인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런 엉터리 같은 국회를 궁극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것을 더 알려나가면서 최대한 여론의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반(反)개혁’으로 찍히는 것이 부담스러운 국회의원들에게 전국적으로 압력을 조직해나가야 한다.
국회 본회의 표결은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기 때문에,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일부가 반대해도 통과는 가능하다. 민주당과 나머지 야당들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이 개혁을 배반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번 기회에 선거제도 개혁을 현실로 만들어내야 한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운동을 해오던 와중에 2018년 10월부터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도 다시 맡고 있다. 이중의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부담이 크지만, 일의 부담보다 큰 것이 마음의 부담이다. 기후위기가 이렇게 심각해지고 온갖 문제들이 쌓여 있는 지금, 선거제도 개혁으로 변화의 물꼬를 트지 못하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약한 힘이지만, 어떻게든 선거제도 개혁이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양심적인 정치인, 시민사회단체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야말로 진인사대천명의 심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