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홀거 하이데 지음
《중독의 시대》(개마고원, 2018년)
중독 과정을 영속화하는 병든 시스템
“두려움이라는 것이 사람의 진정한 욕구를 인지하지 못하게 방해하기에, 당사자는 하나의 대체물을 강박적으로 찾게 된다. 이것이 곧 중독이다.”
이 책은 1945년 이후의 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중독의 관점에서 서술한 최초의 저서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우선 저자들은 중독을 선악이 아닌 일종의 질병으로, 그것도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한국은 이 질병에 감염된 중독사회이다. 저자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물질적 중독을 넘어 ‘과정’과 ‘행위’의 중독에 집중하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일중독과 쇼핑중독을 들고 있다.
모든 병은 그 원인을 알아야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저자들은 중독의 심층적 원인은 ‘두려움’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 한 개인에게 요구되는 내면의 느낌이나 욕구에 정직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내재적 자율성의 결핍으로 인한 두려움을 중독의 발생 원인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가설하에 저자들은 중독의 역사를 자연을 대상화하여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기 시작한 자본주의적 산업화 또는 근대화와 연결 짓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들을 둘러싼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는 ‘통제만능주의’를 내면화하여 모든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킨다. 공동체의식의 자리를 분열과 경쟁의 원리가 차지한다.
사회적 차원의 중독과 마찬가지로 개인 차원의 중독의 발생 원인으로 성장과정의 관계에서 누적되는 ‘흔적들’, 즉 두려움을 야기하는 ‘정신적 상흔’을 들고 있다.
“이 대체물이 더이상 공급되지 않거나 갈수록 더 많고 더 센 것을 얻을 수 없을 때 중독자는 금단현상을 느낀다.…삶 자체가 공허해지기도 한다.”
결국 중독자는 대체물의 양을 아무리 늘려도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늘 결핍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 대체물이 물질이든 행위든 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반복하게 된다. 이들 중독자는 일정한 중독행위(7가지의 구체적 패턴)를 보이게 되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독자 자신은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대부분의 경우에 이를 부정한다는 사실이다.
중독행위의 특징을 설명한 후 저자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연구해온 일중독에 대한 구체적 증상들을 나열한다. “일 또는 일자리, 일의 성과를 자기정체성으로 삼고”, “금단현상을 경험하면서” 휴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일하지 않으면 늘 “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더 나아가 “심신의 피로나 도덕적 판단력 같은 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해”, 결국은 “자신의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그런 다음 저자들은 일을 흥분제(프리랜서형 직업, 즉 자유업이나 전문직), 진정제(블루칼라형) 또는 은폐제(지위를 내세워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과대망상형’)로 분류한다. 이렇게 저자들은 모든 직업에서 일중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일중독자는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를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인정받고자 한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그들이 성장한 조직에서 중독행위에 감염되는데, 그것은 당연하게도 가정이라는 중독시스템이다. 더 나아가 그들이 속한 기업 등의 사회조직에서도 이러한 중독행위는 강화된다. 성과에 따른 다양한 보상에 대한 기대가 중독자의 내면의 욕구(필요)를 압도한다. 중독자는 만족을 느끼고 조직은 그에게 중독을 강요한다. 이제 둘은 ‘공범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책은 이러한 공범관계의 뿌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본의) 파괴적 합리성은 선진 산업사회의 노동자계급에게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생산력을 해방’시키는 것으로 수용되었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패배당한 상태에서 그 주체성과 정체성이 점점 더 많이 탈취당하고 이로 인해 온순하게 길들여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파괴적인 과정을 통해 생산되어 중심부로 이전된 ‘가치’를 나눠 먹는 공범관계는 더 강화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 공범관계는 조직 구성원이 더이상 중독자가 아니면 해체된다. 그러나 개인을 중독자로 만든 시스템에서는 어쩌면 공허한 바람일 수도 있다. 저자들의 주장대로 자본주의 자체가 중독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제 저자들은 당연히 중독자나 그의 조직을 얽매고 있는 자본주의체제로 넘어간다. ‘자본주의 자체가 중독시스템’이기 때문에, 그것은 늘 인간의 욕망을 만들어내고 재생산한다. 이러한 욕망의 생산과 재생산이 일시적이라면 자본주의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욕망은 무한정 생산되어야 한다. 또한 이것이 바로 자본의 본질이다. 결국 자본은 문명사회가 인간에게서 빼앗은 진정한 내면의 욕구를 대리물(상품)을 통해 충족시킨다.
자연과 인간을 파괴함으로써 생산되는, 일상의 필요를 넘는 엄청난 상품이 시장을 가득 채운다. 이들 상품은 어쨌든 소비되어 이윤을 실현해야 한다. 최근의 발명품인 스마트폰은 그 중독성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상품보다 파괴적이다. 정보중독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인기중독이나 관계중독을 조장하여 인간관계의 본질을 가상세계로 이동시키고 있다. 또한 이는 국가 차원에서 촉진되는데, 데이터 무상 공급이 그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시스템에서 모든 개인은 중독시스템을 구성하는 기본 세포이다. 이 세포의 성장은 중독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를 확대재생산한다. 아니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이 세포는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 결국 세포, 그들이 속한 다양한 조직인 학교, 가족, 노조, 기업, 정부 그리고 이것들을 품에 안고 작동하는 사회 전체가 하나의 중독시스템으로 완성된다. 잘 짜인 연결망으로 서로를 얽매어 중독이라는 단일한 작동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괴물체,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독 과정을 영속화하는 병든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인 것이다.
중독에 빠진 한국사회
저자들은 한국사회를 중독사회로 규정하고 그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고찰한다. 일제강점기 이후의 이데올로기 대립과정에서 빚어진 참혹한 학살과 전쟁으로 인한 ‘집단 트라우마’의 형성과 이를 토대로 한 과잉착취 그리고 ‘경제 기적’을 중독 과정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사회적 차원의 정신적 상흔은 민중에게 저항의 무력감을 느끼게 했으며, 민중은 ‘세계 제일’이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박정희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생존전략을 내면화했다. 박정희와 그의 성장 이데올로기가 집단 트라우마를 대체했으며, 다른 삶의 대안이 차단된 상황에서 민중은 노동을 삶의 중심에 놓게 되어 일중독이 사회 전면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저자들에 따르면 집단적으로 퍼져 나간 이 ‘공격자와의 동일시’가 중독사회 내지 중독시스템으로서의 한국사회를 고찰하는 데 결정적인 측면이다. 이 동일시를 통해 민중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성을 상실하고, 지도자로서의 공격자의 논리를 내면화하여 무조건적인 복종을 우선시하였다. 저항과 진실을 위한 투쟁은 사회적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자신과 자연에 대한 자발적인 과잉착취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 만들어진 것이다. 삶의 질은 물적 풍요로 이해되었으며, 성장의 몫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지구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교육중독을 만들어냈다.
1997년의 외환위기로 드러난 전반적인 경제위기는 한국사회의 중독시스템에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요했다. 금 모으기 등의 민족주의 열풍이 불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지배했다. 많은 한국인들은 ‘외국’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느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분노는 절정에 달했지만, 결국 IMF가 강요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규율의 재확립은 국가의 강력한 힘으로 관철되었다. 대량의 정리해고가 실행되고 구조화되었으며, 민중은 또다른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과 4년 만에 IMF를 극복하였다는 자부심을 아직도 갖고 있다.
저자들은 중독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노무현 정권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화한 김대중 정부와 별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노동력에 대한 착취 강도는 높아졌고 재벌의 경제적 집중은 심화되었으며 경제적 양극화도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지적한다. 일자리에서 쫓겨난 실업자와 일자리 자체를 가져보지 못한 청년 구직자는 일이라는 행위중독에서 물질중독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일자리 무한경쟁에서 중독 대상이 부재한 ‘강박적 집착’ 증상을 보이고 있다. 다른 이들에 대한 공격성의 심화는 사회적 폭력을 급속하게 증가시켰으며, 자신에 대한 치명적인 폭력인 자살 비율은 10년 이상 변함없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들은 1997년 이후 한국의 경제는 ‘국가―재벌 체제’에서 시장이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재벌―국가 복합체’로 이행했다고 파악한다. 재벌은 노동자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대해 한편으로 일부 노동자에 대한 물질적 양보로, 다른 한편으로 국가에 대해선 뇌물 공세와 언론 장악, 시장친화적 제도 구축 등으로 대응하면서 지배체제를 공고히 했다. 저자들은 이러한 시장의 우위를 “민주화된 국가도 이미 재벌 중심의 성장논리에 중독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재벌을 상징하는 조직인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은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시장경제의 확립과 확산을 위해 언론과 관료뿐만 아니라 관변단체를 지원해 국가를 자본의 이해에 걸맞게 움직이려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들은 2015년부터 시작된 노동법 개악 시도는 자본이 권력과 공모하여 노동착취 강화를 도모한 것으로 파악한다.
저자들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론을 자본주의 경제위기의 원인을 ‘유효수요 부족’으로 돌리고 분배와 복지를 통한 대중의 구매력을 높임으로써 해결하고자 하는 케인스 이론에 기반한 정책이라고 파악한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론이 이윤주도성장론에 비해 인간적으로 보이긴 하나 여전히 성장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인간의 생명력과 자연을 파괴하는 성장중독증은 ‘우리 몸의 암적 존재’라고까지 말한다. “더이상 성장하지 않고 이미 가지고 있는 물적 토대를 모든 인간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는 부족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저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민국 중독사회를 극복할 사회적·역사적 사명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요구는 구조화된 시스템을 내재적인 모순의 지양 없이 몇 년간의 정책으로 해체할 수 있다는 다소 주지주의적인 바람일 수도 있다.
저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수많은 안전사고의 원인을 중독사회에서, 높은 과로사 등도 중독에서 찾고 있다. 저자들의 탁월한 통찰력은 한국의 소위 ‘진보’도 중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주장에서 발휘된다. 즉 한국의 노동자운동이나 시민운동 역시 자본주의 중독시스템을 문제삼기보다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에 실질적으로 종속된 노동운동은 시스템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고용안정을 가져오는 물량 확보, 임금 인상을 위해 자본의 불법적 돈벌이에 눈을 감아주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동참하기까지 하고, 거의 모든 노동조합이 생존권을 자본에 저당 잡힌 채 일중독을 조장하고, 옹호한다.
저자들은 시민운동도 이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되어버렸다고 주장한다. 처음의 사명감은 사라지고 조직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몇 명의 실무자만이 일중독에 빠져버린다. 더욱이 시민단체의 물질적 토대는 더이상 시민들의 십시일반이 아니라 지자체나 기업이 되어버려 독립성을 상실했다. 또한 시민단체가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일부가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시민단체 자체가 권력에 중독된다. 결국 시민단체가 중독사회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기보다 그 빈틈을 메워 중독을 더욱 고착화한다.
저자들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우리 삶이 뒤틀린 원인을 (성장중독으로 나타나는) 자본의 가치 생산 그 자체에서 찾지 않고, 대체로 (파괴적으로) 생산되는 가치 분배에서만 찾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삶의 구조의 원리는
중독시스템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물론 그 출발은 나 자신이 (동반)중독자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유보다 존재를 지향하는, 결과보다 과정을 지향하는, 그리고 외면보다 내면을 지향하는 삶으로의 방향전환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향전환을 토대로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의 시스템을 상상해볼 수 있다. 저자들은 기계의 원리인 자동성, 획일성, 무한성이 지배하는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파괴’를 특성으로 하는 근대성 패러다임의 극복을 말하는데, 야생성, 다양성, 순환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자연의 원리와 계획성, 창의성, 윤리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인위적 원리의 중간 어디쯤에서 새로운 시스템의 기본 원리를 찾을 것을 제안한다.
이 새로운 시스템을 세울 주체는 누구인가? ‘인간적 필요’를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다. 이를 위해 중독시스템에서 경쟁과 분열을 내면화하여 서로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근본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모든 분열의 경계선을 넘어 소통할 것을 제안한다. 이 소통에서는 두려움을 직시할 용기, 자기 내면과의 접촉, 자신에 대한 열린 마음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용이하게 할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자본과 권력은 분열과 경쟁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지만,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소통과 연대를 통해 지배구조를 해체함으로써 새 삶의 구조를 열 수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짧은 서평으로 책 전체를 보여줄 수 없다. 저자들이 말한 ‘과감한 발상의 전환’에 동의하는 모든 분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