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78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지 40년이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의 생명윤리, 특히 의학적 측면이 포함된 생명윤리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일단 일본이 걸어온 의학의 역사, 특히 범죄적 역사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제가 직접 경험한 국제적인 활동 및 교류들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지금 현재 생명의학, 혹은 생명과학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생명과학과 전쟁과의 관련, 즉 군사적 이용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일본 의학범죄의 역사
①관동군 731부대(1939~1945년)
관동군 731부대는 일본이 중국 대륙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침략전쟁을 개시하고 7년 후인 1938년경 ‘관동군 방역·급수부’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다. 목적은 생물·화학 무기 개발이었다. 그 연구를 위해서 3,000명이 넘는 중국인, 조선인, 몽골인,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그들을 ‘마루타’(일본어로 통나무라는 뜻)라고 부르며 수많은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세균무기와 독가스 등은 중국 각지에서 실제로 사용되어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희생자를 만들었다. 또한 그 영향으로 지금도 중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감염증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전후(戰後)에 별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는 731부대의 연구·개발에 관련되었던 의학자나 과학자들이 전쟁 후 전원 연합군 총사령부에 의해 면죄되고, 일본 전국 각지의 대학과 연구실로 부임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 심지어 그들은 전쟁 중의 연구 ‘업적’까지 포함해서 평가를 받았고, 총장, 학장, 연구소장, 일본학술회원 등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②와다(和田) 심장이식 사건(1968년)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인 1968년 8월, 해수욕을 하다가 물에 빠져 의식을 잃은 야마구치 요시마사(山口義政, 21세)라는 청년이 홋카이도의 삿포로의과대학으로 실려 왔다. 대기하고 있던 와다 쥬로(和田壽郞) 흉부외과 교수 등은 마침 심장판막증으로 입원 중이었던 미야자키 노부오(宮崎信夫, 18세) 소년을 위한 장기기증자(심장 제공자)로서 그에 대한 심장이식 수술을 계획했다.
흉부외과팀은 야마구치 청년에 대한 검사나 응급조치는 대충 해치우고 그대로 수술실로 옮겨서 그 심장을 적출한 다음, 그것을 미야자키 소년의 심장과 교환했다. 그러나 수술 후 81일째에 미야자키 소년도 사망했다.
“두 명의 죽음으로부터 한 명에게 삶을!”이라고까지 칭송받았던 의료행위는, 실은 ‘뇌사상태조차 아니었던 살아 있는 청년으로부터 심장을 적출하여, 이식이 필요하지도 않은 소년의 심장과 맞바꾸는’ 그야말로 인체실험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와다 교수 등은 살인죄로 고발당했다(그러나 결국 불기소 처리되었다). 731부대에서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장기를 적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실험이 있었다. 즉 이 와다 사건은 731부대의 인체실험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 후 이 사건은, 응급실에서 야마구치 청년의 뇌파를 측정한 것으로 되어 있던 흉부외과 직원을 비롯해서 관련된 여러 명이 자살하고, 수술 당시 미야자키 소년으로부터 적출한 심장의 판막이 다른 사람의 판막과 바뀌었다는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며 수수께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한편 와다 교수는, 731부대 의사들이 면죄를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후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일본 최초의 심장이식 공로자’로서 도쿄여자대학 의과대학 교수로 영전했다.
이런 식의 731부대 인체실험이 전후에도 일본에서는 계속 행해졌는데, 그것이 대규모로 이루어진 것이 약해(藥害)에이즈(오염된 혈액제를 수혈받아 감염된 에이즈―역주) 사건이었다.
③약해에이즈 사건(1981~1986년)
기타노 마사지(北野政次) 부대장을 비롯해서 731부대원들이 설립한 일본혈액은행(나중에 ‘녹십자’가 되었다)은 731부대의 연구 ‘성과’를 기초로 전쟁 후 혈액사업에 진출했다. 혈액제제를 의학적으로 응용하려고 했던 일본 녹십자는 1980년대 초에 혈우병 환자들이 스스로 놓을 수 있는 혈액응고인자 주사(注射) 제제를 개시했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혈액을 이용해서 만든 제제 속에 에이즈 바이러스(HIV)가 혼입되어 있었고, 가열 단계를 거치면 HIV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대로 사용했다.
그 결과 혈우병 환자 1,800명이 에이즈에 감염되고, 그중 400명 정도가 사망했다. 1996년 3월, HIV 소송은 화해가 성립되고, 회사 측이 일정한 배상을 하도록 하라는 명령이 나왔다.
그 후 녹십자는 이름을 바꾼 채 계속 운영되어왔고, 이런 엄청난 ‘사건’이 있어도 관련된 의사나 의학자 그 누구도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이 ‘사건’의 ‘성과’를 기초로 한 많은 에이즈 치료약이 개발되어 현재 비싸게 팔리고 있다. 이것이 일본 의학범죄의 역사이다.
전시 중의 의학의 존재방식
1995년 7월 하순에서 8월 초순에 걸쳐서 중국 동북부 하얼빈에서 중국, 일본, 미국에서 참가한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나는 의사의 입장에서 본 일본의 현황에 대해서, “혈우병 환자의 에이즈 감염(약해에이즈 사건)은 731부대가 중국인, 조선인을 대상으로 자행한 세균감염 실험의 재현이다”라는 사실을 보고했다.
1999년 8월 ‘현대의료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 아홉 명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바르샤바의 게토 유적, 그리고 독일 베를린으로 답사여행을 떠났다. 일본과 자주 비교가 되기도 하지만, 독일 또한 전쟁 당시 나치에 의해 의학범죄가 행해졌던 나라이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 중의 의학적 범죄에 대해서 조금도 반성하거나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 데 비해서, 독일의 경우에는 나치 의학이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반성하고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가치―1918년부터 1945년까지의 독일 의학》은 나치 당시의 독일 의학을 반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독일의사회가 발행한 보고서이다. 여기에는 과거의 나치 독일 치하에서의 의학범죄 사실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에는 일본의사회를 비롯해서 아무 데서도 이러한 노력이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베를린에 체류하던 중 바로 이 《인간의 가치》를 편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정신과 의사인 크리스티안 프로스 씨를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한 고(故) 하야시 코조(林功三) 전 교토대학 교수의 도움을 받아 만나게 되었다. 일본과는 달리 독일이 전시 중의 의학의 존재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또 반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째서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에 대해 프로스 씨는 우리에게 여러가지 교훈을 주었다.
미국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한 2001년 9월부터 2002년 3월에 걸쳐 개설된 게이오대학 연속강좌를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고(故) 오다 마코토(小田實) 선생은 생명윤리에 관해 큰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특히 모든 생명체가 특허의 대상이 되고, 일부 기업들이 이를 독점하는 것에 강한 위기감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2002년 봄부터 발간된 계간 《식견교류》의 특집 ‘늙음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 글 한 편을 기고하도록 권유받게 되었다. 나는 “늙어가는 데 있어서만이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조작과 개입이 가능해질 수 있는 생명과학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경고의 글을 썼다(내 글이 실릴 예정이었던 《식견교류》 여름호는 실제로 발간되지 못했다).
‘국책’으로서의 과학, 특히 의학
“민관 통틀어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이 논리는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나마타, 산리츠카, 오키나와 그리고 일본 각지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약자의 희생을 낳았다.”(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 《근대 일본 150년―과학기술 총력전체제의 파탄》, 이와나미쇼텐, 2018, 87~88쪽)
“메이지(明治)로부터 다이쇼(大正)에 걸친 경제성장, 즉 부국화·근대화는 주로 농촌의 희생 위에 이루어졌고, 쇼와(昭和) 초기의 대국화는 식민지와 침략 지역의 민중의 희생 위에서, 그리고 전후의 고도성장 또한 어민이나 농민, 지방민의 희생 위에서 수행되었다. 생산 제일, 성장 제일을 외쳐온 메이지 이후 150년간 일본이 걸어온 길은 언제나 약자의 생활과 생명을 경시하면서 진행되어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일본은 후쿠시마의 파국을 탄생시키게 된다.”(같은 책, 236쪽)
야마모토 씨는 위와 같이 전전으로부터 전후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걸어온 길을 총괄하면서, 이에 가장 열심히 가담한 것이 과학기술이라는 점을 이 책에서 상세하게 논증하고 있다.
우리도 특히 의학·의료의 관점에서 “국책이라는 이름 밑에 많은 인민의 희생이 따랐다”는 점, “희생을 지렛대로 해서 ‘성과’를 내고 이로써 다시금 국책이 강행되는 식의, 희생의 연쇄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실태”에 대해서 지적해왔다. 따라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150년 역사는 국가의 정책, 즉 국책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또 희생시켜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국가의 입장을 뒷받침해온 의학자들이 어떠한 책임 추궁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야마모토 씨도 위의 책 205쪽에서 “자연과학자와 기술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과학은 전시로부터 평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의 비난도 받지 않고,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채 전후의 세계에서 살아남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책임을 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자신들의 영달을 꾀하고, 사회적으로도 출세를 계속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연구·조사의 집대성으로 우리는 《국책과 희생―원폭, 원전 그리고 현대의료의 행방》(사회평론사)을 2014년 11월에 출판하였다.
현대의 생명과학
①생명의 근원을 그 뿌리로부터 파괴하고 있다
현대의 생명과학은 인간의 탄생으로부터 종언(죽음)에 이르는 수많은 과정에 있어서, 이를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개인의 욕망에 따라 신의 영역에까지 손을 대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 또한 마음대로 변이시키려고 하고 있다.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해온 생명의 역사를 인간은 수십 년 만에 뒤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중에서도 최근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유전자편집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고자 한다. 유전정보, 즉 DNA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식물은 진화 과정을 통해 여러 차례의 (돌연)변이를 되풀이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는 지구상의 환경의 변화 속에서 생물이 살아남기 위한 생물학적 방어본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생명과학은 목적하는 부위의 DNA를 간단하게 절단, 제거하고 절단부에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하는 유전자편집기술을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예를 들어 근육량을 제어하는 미오스타틴 유전자를 제거함으로써 살찐 소나 돼지를 생산해서 고기의 양을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는 돼지의 생식 과정에서 유전자조작을 시행하여, 사람의 장기를 가진 돼지를 생산함으로써 그 돼지가 성장하면 인간에게 장기이식(이종이식)을 실행한다. 만일 이 기술을 인간에 적용한다면 인간의 의도대로 맞춤아기(디자이너 베이비)도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올림픽 금메달 선수가 되는 것도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닌 세상이 되는 것이다.
②전쟁(군사)에 동원되는 생명과학기술
유전자편집기술은 군사(전쟁) 분야에도 응용된다. 야마모토 요시타카 씨도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해 과학연구와 기술개발은 국가의 중요한 기능으로 간주되게 되었고, 그 목적에 있어서도 산업에 비해 군사의 비중이 현격하게 높아졌다.”(위의 책, 125쪽) 이러한 과학기술의 군사적 이용의 결과가 핵폭탄과 수소폭탄이며, 이제 그다음으로 생명과학이 무기로서 응용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전자 드라이브’라는 것이 있다. 말라리아나 댕기열 등의 감염을 일으키는 모기를 절멸하기 위해서 암컷이 되는 유전자를 파괴해서 세대를 교체시킨다. 이 기술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적에게 유익한 동식물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는 대량파괴무기로 얼마든지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합성생물학이 있다. 즉 현대의 생명과학기술을 가지고 생물체 자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2000년대에 급속하게 발전해서 2010년 5월 미국의 크레이그벤터연구소가 인공생명체인 ‘미니멈셀’(인공세포)을 만들었다.
이 연구에는 미국의 많은 산업계가 투자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베트남전 당시 고엽제를 개발, 사용한 주무부)이 큰 관심을 보이면서 개입하고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만들어 미생물무기로 사용할 생각일 텐데, 이는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초국적으로 큰 위협을 줄 무기가 될 것이다.
핵도 생명과학도 그것이 잘 사용되면 인류에게 유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의학의 경우는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토착종을 보호하기 위해서 유전자편집기술을 이용하면, 외래종을 절멸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 기술이 유익하게 사용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지역에 외래종이 갑자기 유입되는 것은 결국 인간행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생명과학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인간이 스스로 저지른 행위의 결과를 또다른 인위적인 힘으로 덮어버리고자 하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경우가 원폭이나 원전으로 인해 방사능 피폭을 당한 사람들의 경우이다. 피폭으로 인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생명과학기술을 이용해서, 즉 유전자조작기술을 활용하여 치료하려고 하는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아직 실용화되지는 않았지만 방사능에 강한 인간을 만들려고 하는 연구는 이미 진행 중이다. 이런 것들이 실현되면 원전사고가 있어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태는 실로 끔찍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김형수 정리·옮김)
이 글은 2018년 11월 3일, 녹색평론사 세미나실에서 열린 제3차 한일식견교류 모임에서 행한 강연을 녹취, 정리하여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