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1953.7.27.) 이래 65년간이나 적대관계를 증폭해오던 한반도의 전운(戰雲)이 2018년 들어 잇따른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평화협력 무드로 바뀌고 있다. 남북 대치상황과 북핵문제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혹세무민해오던 정치집단들이 잠깐 주춤하는 사이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세 명의 지도자들이 전격적으로 세기의 역사적 정치 쇼를 성공시킨 것이다. 그러나 65년, 정확히는 70년이라는 세월은 너무 길었다. 그 기간 얼마나 많은 풀뿌리 백성들이 무고한 오해와 갈등 그리고 불신으로 고통받고 서로 고통을 주었던가!
오해가 많다. 한 핏줄, 한 언어, 한 모습이지만 장장 70여 년 동안 갈라져 다른 사상, 다른 정치·경제체제,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 속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갈등도 크다.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맞대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 전쟁을 했었고 아직도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호시탐탐 서로 으르렁거려왔기 때문이다. 불신의 늪은 더욱 깊다. 하늘의 새와 바닷속 물고기, 비무장지대(DMZ) 들짐승들을 빼놓고는 왕래하지 못하고 소식도 제대로 듣고 전하지 못하며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살아온 70년. 한 동포, 한 형제라면서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여유마저 없이 지나온 세월이었기 때문이다.
오해도, 갈등도, 불신도 오고 가는 정 속에 녹아나는 법, 주는 정에 받는 정이 생기는 법, 교류와 협력만이 해법이다. 그중에도 경제 교류와 협력이 앞장서야 여타 문제들이 풀리기 시작할 것은 인지상정이다. 적대관계 해소의 보편적 진리이다. 현 단계 남북관계에 있어 신뢰성 회복만큼 중요한 과제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경제 교류·협력의 증대야말로 가장 강력한 신뢰 회복의 수단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중에서도 인간생명 유지의 기본조건인 식량과 농업 분야의 교류·협력은 남북 신뢰 회복의 시작이며 끝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경제와 식량문제는 생존조건에 관련되고 따라서 이념과 국경을 초월할 수 있다. 오해와 갈등 그리고 불신을 관통하고 녹여낼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실마리이다. 남북한은 경제발전 수준과 내용이 서로 다른 만큼 서로를 필요로 하는 보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인도주의적 차원의 경협만이 아니라 통상적인 경협이야말로 남북한이 서로 취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나눠 가질, 장기적으로 둘 다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 가운데 민초들의 삶의 질이 높아짐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제 경제 교류와 협력의 총론적 필요론, 당위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좀더 미시적이고 인간적인 그리고 실용적인 단계적 접근방법이 모색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방법론에 대한 접근방식이 정치적이어서도 아니된다. 남북관계를 여느 국가, 정부 간의 관계가 아닌 ‘특수한 관계’라고 설정한 이상 그에 상응하는 태도와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특히 민간 수준의 경제협력은 상업주의의 판단에 맡기되, 정부 간 대규모 교류와 협력은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유무상통하여야 한다는 대원칙을 전제로 하더라도, 사사건건 법리론적 자구(字句)에 얽매여 엄격한 등가성과 동시성을 고집하는 편협된 상호주의로는 화해와 협력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신뢰 구축을 위한 토대를 쌓는 일
세계의 모든 사회주의권이 변했고 그 종주국이었던 구소련과 중국마저 상전벽해로 변했다. 영원히 동토의 나라로 머물 것 같던 북한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변하지 않고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범세계적 대세를 거부할 수 없다. 초이념·초국경의 국제 조류에 휩쓸려 이 지구상에서 그 지도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도 경제체제를 개혁·개방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세계관에 바탕을 둔 긴 안목의 교류와 협력이 그래서 필요하다.
처음 시도해보는 신자유주의화한 괴물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캄캄한 산길을 가는 것처럼 두렵다. 자칫 사회 양극화와 분열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 초롱불에 의지하여 나아가야 하는 초심자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는 자세와 참을성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상호주의라는 시장경제 이론을 앞세워 초롱불마저 불어 꺼버리는 조급한 당위론적 진단과 처방은 경계해야 한다. 오해를 부추기고 갈등을 심화시키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북한은 왜 당장 그 달콤한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완전히 도입하지 않는가. 해보기 전에는, 아니 겪어보기 전에는 의심만 앞세웠던 게 지난날의 개혁·개방 국가들이었다. 중국도, 베트남도, 동유럽도 그러했다. 정치는 틀어쥐고 경제만 슬슬 풀어주는 방식이 성공을 담보했던 터이다. 러시아만 오히려 너무 앞질러 정치와 경제체제를 한꺼번에 개방하는 바람에 초기엔 크나큰 혼란을 겪은 바 있다.
남북한 또는 미국 북한 간에 정치적·군사적 의제는 잠시 뒤로 미루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문화와 스포츠 교류와 경제협력 등으로 오해와 갈등 그리고 불신과 의심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게 먼저다. 정치 그리고 인권 및 군사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과욕은 금물이다.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은 어느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우리 민족 자신의 과제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남북한 간의 화해와 협력의 물길을 막으려는 비인도주의적인 ‘퍼주기론’ 공격과 무조건적인 ‘상호주의’ 남발이 발을 붙이게 해서는 아니된다. 이러한 잔꾀로 특정 집단은 짧은 순간 정치적 이득을 볼 수 있을지 모르나 평화를 지향하는 세기적인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필연코 이들을 잠재우고 말 것이다.
시나브로 이 지구상의 실질적으로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이산가족들의 극적인 해후는 반세기 넘게 둘로 갈라져 살아왔던 민초들로 하여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후 오랜 가뭄 끝의 시냇물처럼, 끊겼다 살아났다 반복하면서 아슬아슬 실낱같이 이어져오던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의 징검다리는, 부시 정권 이래 미국의 패권 행사와 그 소산물인 북핵문제 그리고 ‘이명박근혜’ 정권의 폭정으로 부서질 듯했으나 민족문제를 소중히 껴안으려는 풀뿌리 민초들의 촛불혁명으로 그 명맥이 4·27 판문점 선언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남북·북미 정상 간의 역사적 만남과 소강상태의 작은 평화마저 전쟁무기 판매 세력과 결탁한 수구적 보수세력의 끈질긴 흠집내기, 발목잡기, 딴지걸기로 인해 야금야금 상처받고 퇴조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그 첫째 이유는 그동안 분단 조국 체제에서 누려오던 각종 기득권의 상실 위기에 직면한 극우 보수세력과 일부 언론재벌 그리고 정치권에서 발악·발작하고 있는 수구적 ‘주류 세력’들의 반동이 만만찮고 끈질기기 때문이다. 또다른 요인은 ‘부시’ 정권 이래 정리되지 못한 미국 주도의 선악 이원론적 대북관이다. 우리의 가장 큰 우방인 미국 지도자들의 머리와 꼬리가 불분명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란스런 발언과 정책들로 인해 국내외 특정 종교·언론·정치 세력이 준동하여 자칫 남북통일 무용론을 불러일으킬 조짐이다.
국내 일각에선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식의 감상적 통일론이 있는가 하면, 지금 이 체제 이대로이면 족하지 무슨 통일이냐 하는 식의 현상유지 고수파가 있다. 통일비용을 과다하게 포장하고 통일에 따른 편익을 애써 숨기는 편벽된 발표가 횡행하는 배경이 그러하다. 반면, 통일의 이점과 순기능을 예지해내며 단계적·점진적 교류 확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실사구시론이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내심 북진통일론에 다름없는 일전불사(一戰不辭)식 흡수통일론을 내비치는 극단적 통일주의와는 크게 차별된다. 이같이 각기 상이한 통일론의 저변에 깔려 있는 정치적 저의와 사연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그 장단점을 따지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 오히려 남북 간에 오랜 세월 쌓여온, 그리고 국내외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확대재생산 되어온 상호 불신의 벽을 어떻게 제거하고 화해와 평화공존, 그리고 교류·협력을 촉진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존이구동(存異求同)의 원칙
남북한에 현존하는 이질성 해소와 신뢰 회복을 위해선 교류와 협력을 증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분단 70년의 통일사에 있어 기념비적 이정표인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충실히 실천하겠다는 양쪽의 의지와 노력이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6·15, 4·27, 6·12 등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정신을 공유하여야 한다. 기본합의서 항목을 한꺼번에 실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질적인 사항은 뒤로 미루고, 받아들이기 쉬운 일부터 실천해나가려는 존이구동(存異求同)의 지혜’가 그래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 정부 간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민초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정 역할을 수행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괜한 정치적 드잡이로 국민적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면 일차적으로 민초와 민간조직들이 주역을 맡아 통일을 추동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 길을 열어주고 큰 틀을 짜주는 데 주저해서는 아니된다. 현재와 미래의 역사는 바야흐로 민초들에 의하여 쓰이고 증언되는 시민사회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한 것은 급박한 국내외 정세 변화와 남북 양측의 국내 상황으로 인해, 남북 양쪽 모두에 6·15와 4·27 정상회담으로 어렵사리 재구축한 화해와 평화 교류·협력 관계를 포기할 수 없는 수요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북쪽은 식량, 전력, 인프라 개발 등 경제분야에서, 남쪽은 이산가족 상봉, 북쪽 자원개발, 경제개발 참여 등 인도주의적 사안과 한반도 평화 및 경제관리 문제 등으로 남북한 관계 개선을 필요로 한다.
현 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의 악화가 어느 쪽에도 유리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될 경우 남쪽은 경제위기의 가중, 북쪽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화 가속으로 둘 다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미·일 보수 정권과 국제적 전쟁업자들의 음모에 따라 어떠한 형태의 무력충돌이 한반도에 일어날 경우 남북 공히 걷잡을 수 없는 위험과 혼란에 빠져들고 북핵문제를 빙자한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렇듯 국제 정치, 경제, 군사 동향이 긴박할수록 남북 간의 화해·협력은 지속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상호 간의 경색 국면을 타개하고 평화공존할 수 있는 협력의 길이 열려야 한다.
따라서 남북 양측은 보다 솔직하고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양측이 평화공존 프로세스의 기본전제로서 ‘존이구동의 원칙’에 서로 동의하여야 한다. 상호 간 이견이 있는 부분은 뒤로 미루고 동의한 것부터 실천하되, 일단 약속한 사항은 체제를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명분론에 발목 잡히지 않고 끝까지 지킨다는 투명하고 공개적인 신의·성실의 자세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한 간 최소한 5대 현안만이라도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젝트로 재확인하고 북측에 ‘존이구동의 원칙’에 충실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5대 현안이란 ①북쪽의 나무 심기 지원과 인도주의 차원의 농업·식량·비료·의료 지원, ②이산가족 상봉과 면회소 설치, ③북측의 전력과 도로망, 철로망 등 인프라 건설 지원, ④경의선·경원선의 조속한 복원과 TCR(중국횡단철도), TSR(시베리아횡단철도)과의 연결, 그리고 ⑤‘이명박근혜’ 정권이 무작정 폐쇄한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 관광 허용, 내실화 지원 등이다.
첫 번째 두 항목은 인도주의적 사항이기 때문에 어떤 전제조건을 달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등가성과 동시성을 전제로 하는 상호주의의 적용 대상도 아니다. 그냥 실천하는 일만 남아 있다. 그래야 신뢰가 쌓인다. 도울 것은 군말 없이 돕고 줄 수 있는 것은 대담하게 주어야 한다. 나머지 세 항목은 남북한에 공히 이익이 되고 평화 증진에 절대적으로 기여할 것이 확실하므로 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첨예한 이견이 예상되는 군사문제(주한미군 철수, 핵, 미사일방어(MD) 등)와 정치·사상 문제(형법, 보안법, 주적론 등)는 정상들 간의 최종적 합의에 맡기고, 민관은 서로 당장 이익이 되고 남북 간 전쟁 억제에 도움이 되는 일부터 차근차근 합의·실천하는 평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사회주의의 철옹성이었던 중국과 러시아도 국제환경의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했다. 북한도 느리긴 하지만 많이 변화하고 있다. 시장경제 개혁조치가 그 예이다. 평양을 비롯해 북한 어느 곳을 가보아도 해가 다르게 확연한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남북한이 협력하면 이러한 경제·생활의 변화가 더욱 가속이 붙을 것으로 진단된다.
평화공존 프로세스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클린턴 정부 말기에 늑장 대처로 북미관계에 있어서 획기적 전기를 가져오지 못한 북한은 문재인―트럼프 대통령 치하에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선 아니된다. 시간은 어느 편도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현명한 국제 정세 읽기와 대담한 결심, 그리고 우리 정부의 솔직·투명한 접근방식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까닭이다.
남북 교류의 출발점은 농업이 되어야
일찍이 시성(詩聖) 괴테는 “눈물의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더불어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굶주린 배를 끌어안고 눈물의 보릿고개(3~5월)와 쓰라린 피고개(8~9월)를 살아본 사람이면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을 감상주의적 행동이라고 비아냥대지 않을 것이다. 북한 190여 지역에서 배급창구를 관리·운영하고 있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전반적으로 연간 470만~480만 톤가량의 양곡 생산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만성적 식량부족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북한의 어린이, 노약자, 임산부들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이러할 때 오늘날 북녘 땅이 겪고 있는 식량난의 근인을 새롭게 점검하여 새삼 동북아시아의 식량안보 및 평화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울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정체된 북한 농업의 개혁·개선 방안을 모색함에 있어 그 해결의 한 방도로서 남북 간의 교류·협력을 증진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북방정책 성공에 필수적이다.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한국의 기초를 쌓는 데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략 65%대의 식량자급률을 유지해왔으나 1994년을 전후해 급속도로 악화되어 한때는 50%대를 하회했다(물론 남한의 24%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1인당 소비량이나 품질을 고려할 때 거의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이른바 ‘경제 3난(식량난, 물자난,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외화난으로 고통받는 와중에 자연재해까지 연거푸 겪은 북한은 가히 만성적·구조적 식량부족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부족한 식량을 정상적인 수입으로 충당하는 일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북한은 해외로부터 식량원조를 받기 시작했으나 세계 각국의 원조는 세계식량계획(WFP) 등 유엔 기관과 중국, 미국, 한국, 일본의 도움 없이는 크게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년간 북한 주민, 특히 취약자에게 기초식량을 공급해온 WFP는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대북 식량지원 규모가 축소되었다며 세계 각국에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북한 농업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은 다음 세 가지이다. ①기상이변 등 연속적인 자연재해로 인한 농업생산 기반 붕괴와 농지 감소 현상을 들 수 있다. 과도한 연료채취 행위와 산지 난개발에 따른 산림 황폐화가 자연재해를 증폭시킨 결과이다. 이로 인한 생산력 감퇴는 최소 15% 이상이 된다. ②종자·종묘 품종 불량과 결핍 그리고 비료, 농약, 석유 등의 원자재난, 거기에 더하여 각종 농기계의 노후화로 인해 해마다 최소한 20% 내외의 식량 생산력 감소가 초래되고 있다. 한때 70%대 이상으로 우리나라를 앞섰던 농업 기계화율도 사회주의권 경제 몰락과 대외경제 차단으로 부품 조달이 여의치 않아 급속히 떨어졌다. 총체적 외화난과 에너지난이 그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③달라진 국제경제 여건에 쿠바처럼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북한의 경직된 농업 경영체제와 기술체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최근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한 중앙통제식 계획생산체제와 구태의연한 ‘주체농법’ 그리고 구소련의 ‘콜호스·소프호스’식 집단주의 협동농장제도 자체 내에 큰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사회주의 집단생산 방식과 주체농법만으로는 개별 농가에 생산 인센티브가 결여되어 농업의 생산력 향상과 발전에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인센티브가 없는 구호 제창과 채찍질만으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변화하는 북한
제한적인 개방은 허용하면서도 한사코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을 거부해오던 북한이 2002년 7·1조치를 기하여 부분적으로 시장경제 원칙을 도입한 것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큰 변화였다. 농업 내부에 한정해 보더라도 1996년 말부터 궁여지책으로 협동농장 내에서 시행하던 소단위의 ‘분조(分組)관리제’를 최소 5~20농가 단위까지 허용하고, 국가가 할당한 생산량을 납부하고 남은 농산물은 자유 가격으로 자유 농민시장에 내다 팔게 하는 등 시장경제 인센티브 제도를 제한적으로 실시했다.
주목할 사실은 2000년대 들어 북한의 농업 및 식량 정책이 여러 면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주체농법에 구애되지 않고 실사구시적 입장을 취하기 시작한 것 같다. 과학적 성과가 입증될 경우 과거의 교조적 지침을 조용히 수정하는 전향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점진적이긴 하지만 그동안 변할 줄 모르던 경직된 생산·기술 체계에서도 점차 완화 내지는 개선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물론 시장개혁 조치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체제 내의 여러 장애요인이 극복되어야 한다. 당과 군 우위의 경직적인 체제와 비효율성 그리고 낭비적인 지출 등이다. 농업 내부 문제로서는 종자, 비료, 농약 등 농업생산 자재의 원활한 조달이 당장 시급한 과제이다. 막대한 투자를 요하는 재해복구 사업과 이상 기상조건에 대비한 항구적인 농업 기반시설 보강 그리고 대대적인 산림 녹화사업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당장 부족한 식량 조달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북한의 점진적 개혁·개방의 장래가 달려 있다.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급식제도 지원사업이라고 본다. 장차 이들이 통일된 나라의 주역으로 성장했을 때 사회발전에 큰 부담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다. 아직도 ‘대북 퍼주기’를 비판하며 남북 협력을 비방하는 일부 식자들은 만일 6·25 전후 외국의 식량원조가 없었을 경우, 우리 사회·경제 발전의 주역이 돼온 현재의 60대 이상 현 지도층 세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역지사지해보아야 한다.
통일의 초석이 될 농업 협력
국내외 정세와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종합할 때, 남북한 간 교류·협력은 농업 및 식량 분야부터 시작하는 것이 민생 차원과 인도주의 차원 그리고 탈정치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장기적으로도 남북한 농업 협력은 남한의 논농사와 북한의 밭농사가 조화를 이루어 서로 도움이 된다. 우리에게 남아도는 비료와 농약, 농기계 및 좋은 종자기술, 쌀 재고 등 경제 여력을 활용하여 북한의 농업을 갱생시켜 남북 농업의 보완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에서 한국 농업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북한의 부분적인 시장경제체제로의 변화를 기회로 삼아, 단순히 물적·기술적 지원에 국한하지 않고 시장경제의 원리와 그 운용기술도 함께 전수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식량부족 상황을 도울 수 있는 방안으로서 ①과잉 재고미를 연간 40만 톤 이상 매년 보내는 것이 적절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②정부는 민간 차원의 나무심기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③일본과 미국에 잉여 곡물의 대북 지원을 권유하며, ④필요하면 장기차관 방식으로 북한에 수입을 알선, 지급보증 해주는 방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려면 북한은 남한을 신뢰하고 떳떳이 지원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 ⑤정부 차원의 종자, 비료, 퇴비, 생물농약, 농업기술, 농기계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이와 연계한 밭작물의 계약재배 실시도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⑥낙후된 북한의 농업생산 기반시설 복구 투자와 ⑦DMZ의 공동 활용, ⑧현재 오염되지 않은 북한 연해안의 수산물 양식사업 지원, ⑨그리고 북한 땅에 인접한 연해주와 만주 삼강평원 지역 식량농업개발사업에의 공동 진출도 가능하다고 본다. 끝으로 ⑩미, 일, 중, 러, 유럽연합(EU) 등이 참여하는 북한 농업개발 국제 컨소시엄(가칭 KADO)의 창설, 운영을 제안한다.
남북 협력에 의해 친환경 유기농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물질적·기술적 지원이 보장된다면, 북한으로서는 중·장기적으로 식량 증산과 국민건강 및 환경보전을 동시에 기할 수 있는 유기농법을 거국적으로 시행하고 싶어 한다. 어차피 절대적으로 부족한 화학비료와 농약의 조달을 현재 외부에 의존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친환경적 대안 농법을 취하는 길이 최선의 지름길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평양의 농업과학원이 상당 수준의 미생물제제를 이미 개발해 놓고 있음을 필자는 현지 확인한 바 있다. 또한 이는 통일에 앞선 남북한 간의 농업분야 협력에 있어서, 친환경 유기농업 자재, 기술 그리고 가공 및 유통이 중요한 부분임을 말해준다. 우리 후손과 한반도의 환경·생태계 보전 및 평화 증진을 위해서도 지속가능한 유기농업을 남북한에 고루 진흥시킬 대책을 양측이 심각히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우선 지방정부 단위에서라도 친환경 농민단체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이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국제 규격의 유기질 비료 및 퇴비와 더불어 각종 미생물제제, 목초액, 천적 배양 기술 등도 북쪽에 지원해야 한다. 증산도 도모하고 환경·생태계도 보전하는 친환경농업은 어느 한쪽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삼천리 금수강산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변 국제 정세가 불리할수록 오히려 남북한 민관이 서로 협력하여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 기반을 실질적으로 확고히 다져나가는 길은 지속가능한 식량 및 농수산업 진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당대의 우리 모두가 깊이 인식하고 실천에 옮길 때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결코 멈춰서는 아니될 우리 한민족 구원의 과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