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의학의 한계》를 썼던 1974년에는, 나는 죽음의 ‘의료화’에 관해서 말하는 게 가능했다. 서양적인 죽음의 기술(이것은 유럽의 기독교화의 소산인데)은 안락이 보증된 말기(末期) 치료에 이미 자리를 양보해놓고 있었다. 내가 ‘의료화’라는 말을 만든 것은 의료체제가 종래에 교회가 해오던 역할을 떠맡았고, 그래서 이러한 의료체제의 상징적 효과 가운데는 사람들의 신념과 지각(知覺), 기본욕구와 욕망을 형성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의료 전문가들이 치료의 궁극적인 실패로 본 것(죽음 ― 역주)을, 보통사람들은 충분한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결과가 아닌가 하고 두려워했다. 그때는 ‘의인병(醫因病)’이라는 말을 쓰는 게 타당했다. 그것은 단지 의사나 약품이나 병원과 접촉함으로써 개인들이 겪게 되는 부작용 증상 때문만이 아니라, 의료의 신화를 내면화함으로써 사회와 문화가 미신적으로 재형성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가 의료관계 책을 쓴다면) 매우 다른 책을 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예전에 내가 의료에 대해서 쓴 것은 20세기 중엽에 주요한 제도적 기구들이, 그 기구들의 존립 목표에 대다수 고객들이 도달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반생산적인 기구로 변해버린 일반적인 성격을 예시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면, 학교는 배움을 방해하고, 수송(輸送)은 인간의 발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간의 대화를 왜곡시켰다. 나는 현대의료가 하는 일을, 그 신봉자들의 마음속에 통증과 장애와 죽음에 대한 예리한 두려움을 심어넣어주는, 포스트-기독교적인 전례(典禮)로서 분석하였다. 오늘날, 다양한 제도적 기구들, 특히 사회복지 서비스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기구들은 그 자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교육과 의료는 군사, 경제 및 그밖의 다른 시스템들과 서로 얽혀진 시스템으로 조직되어 있다.
20세기 중엽에 많은 사람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의료 서비스에 연루되는 것은 그들이 죽음에 임박해 있을 때였다. 나는 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쓸모없는 의료적 의식(儀式)과 관행 때문에 어떠한 비현실적인 기대가 고취되고, 의료화로 인해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성직자의 일이 얼마나 힘들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즉, 죽어가는 사람이 기꺼이 필연적인 사태를 받아들이고, 아름다운 기억에서 힘을 발견하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들이 어려워진 것이다.
갈레노스(고대 그리스 의학을 집대성하여 서양 중세, 르네상스의 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소아시아 출신 로마시대의 의사 ― 역주)의 전통에서는, 의사들은 레테(희랍신화에 나오는 명계(冥界)의 강, 즉 죽음을 의미함 ― 역주)의 손짓을 존중하고, 사람들이 카론(명계의 강을 지키는 뱃사공 ― 역주)의 배에 옮겨타는 것을 돕도록 훈련되어 있었다. 그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상(相), 즉 그들의 환자가 죽음의 공간으로 이동했음을 알려주는 징후들을 인식하는 것을 배웠다. 이 경계 지점에서, 자연 그 자체가 치료를 위해 맺어졌던 (의사와 환자 사이의) 계약을 파기했고, 치료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한 순간에는, 물러서는 것이 자기의 환자의 좋은 죽음에 대해 베풀 수 있는 의사의 적절한 서비스였다.
죽음과 싸우는 흰옷 차림의 의사는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회화예술에 나타난다. 치료 가능한 환자와 치료 불가능한 환자를 어떻게 분간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은 1910년의〈플렉스너 보고서〉(근대적 의료 및 의학교육의 확립을 제안한 미국의 의료개혁 보고서 ― 역주)가 나온 이후 미국의 의학교에서 사라졌다. 의사들이 죽음과 싸우는 데 열중해 있는 동안 환자는 하찮은 대상물이 되고, 그러고는 하나의 기술공학적인 구축물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묻는다. 죽음이라는 행위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자율적인 자아가 아직 존재하고 있는가?
1995년 지금, 나는 이러한 발전에 대해서 의료화를 비난할 수 없다. 텔레비전에서 새로운 기술은 연기(演技)의 본질을 바꿔놓았다. 의료 시스템에서 새로운 기술은 저 오래된 ‘죽음의 춤’을 완전히 내쫓아버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학문적 훈련이나 기재, 실험실, 병원으로 구성된 덩어리를 ‘의료’라는 영역으로 분리할 수 있게 한 구조는 점차로 사라졌다. 식품, 약품, 유전자, 스트레스, 나이, 공기, 에이즈 혹은 아노미와 같은 것은 이제 더이상 의료적인 문제가 아니라, 포괄적인 ‘시스템’의 문제가 되었다. 병인학(病因學)은 더이상 어떤 특정한 병인의 문제가 아니라, 피드백으로 순환하는 하나의 위계구조의 문제가 되었다. 환자는 이제 ‘유전자 풀(pool)’로부터 생태계 속으로 출현하는 하나의 ‘생명’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은 질병에 대한 진단을 요청하고, 그로부터 회복되기 위한 치료를 기대했다. 오늘날에는 ‘생명’이 관리되고, 최적화(最適化)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제 바이오(생명) 관리는 산업적 불소 방출이나 가정용 쓰레기 수집, 마약과의 전쟁, 그리고 (마약중독자를 위한) 주사침 무료분배 문제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1978년에 ‘면역체계’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같은해에 마이크로소프트가 DOS라는 운영체계를 출범시켰다. 5년 후, 통속적인 과학저술에서도 건강은 생물학적 시스템이 기능을 하고 있는 상태로, 죽음은 생명의 돌이킬 수 없는 기능정지로 언급되었다. 그 이후, 건강관리를 위해 추가된 자원의 대부분은 실제로 전체적인 관리 시스템에 의한 의료부문의 흡수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데 사용되었다. 시스템 분석은 건강관리에서 새로운 개념과 실천을 조장했지만, 또한 그것은 사람들의 자기자신을 지각하는 방식에 은밀히 영향을 끼쳤다. 점차로,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을 “나의 시스템의 상태”로서 말하게 된 것이다. 시스템 분석 개념은 우리의 자기 지각(知覺)을 변화시켰다.
의료화로 인해서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두 다리를 가진 진단 다발[束]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료화는 자기 지각을 몸으로부터 분리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시스템적 사고(思考)는 그렇게 한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기계가 그려보여주는 파라미터의 곡선을 응시한다. 생애의 마지막에 다가갈 때에 그들은 이미 오랫동안 자신을 다만 ‘생명’으로서 경험해왔다.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그들은 전문가에 의한 관리를 받아왔던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은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나는 좋은 죽음을 죽고 싶다(I hope to die a good death.)”라고, 능동태로 말하였다. 또한, 이 동사(die)는 자동사로도 말해질 수 있었다. 즉, “나는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I know I shall die.)”라고. 사람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고, 훌륭한 자세를 배워서 얻을 수 있다. 최근에, 그러나 아주 최근은 아니지만, 나는 (임종 직전 병원 중환자실에서의) 집중치료의 한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자기의 가족 속에 전통이 되어왔던, 죽음의 기술에 대한 기억을 회복하는 것을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법률과 교회는 죽음의 의료화에 있어서 의사들을 지지하였다. 의료전략의 돈키호테적인 영웅주의와의 협력은 환자에게도, 그 가족에게도, 하나의 의무로서 제시되었다. 때때로, 종교적 혹은 도덕적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의료수단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하여 발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유보는 의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의무를 보다 강화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었다. 번민은 의료팀의 노력으로 비쳐지고, 죽음은 소비자(=환자)의 최종적인 저항행위에 의한 의료팀의 노력이 좌절한 것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절차와 문화적 규범의 의료화는 일생에 걸친 자기진단, 자기규제, 예후를 염려하는 자기치료에 의해서 성취된 자기 지각으로부터 심각하게 몸을 분리시키지는 않았다.
자기자신의 죽음을 죽을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지각이 어느만큼 깊이 몸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의료화는 의존성을 길렀지만, 아직 사람은 자신의 신체로부터 분리된, 추상적인 존재가 되지는 않았다. 몸으로 하여금 자신의 몸으로부터 분리되게 하지는 않았다. 몸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은 마치 개인용 컴퓨터의 RAM 드라이브처럼, 관리됨으로써 유지되고 있는 생명으로서 자기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생명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기능정지될 뿐이다. 우리는 한 사람의 금욕주의자로서, 쾌락주의자로서, 혹은 기독교인으로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의 기능정지는 다가오는 자기완결적인 행위로서 상상될 수가 없다. 생명의 종말은 단지 연기(延期)될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관리된 연기는 살아있는 동안 내내 계속된다. 죽음은 단지 그때까지 계속되어온 메모리의 중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가 초음파 화면에서 태아를 보았을 때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의 생명으로서, 환경적·교육적·생명의료적 건강정책의 일개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위태로운 생존을 쓰라리면서도 달게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스스로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데 주요 장애물은 세련된 말기 치료가 아니라 일생에 걸쳐 행해지는 ‘잘못된 구체성’의 훈련이다.
이러한 상황이 확산되면, ‘죽음이 없는 사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주위에 죽은 자는 없고, 있는 것은 생명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보통사람들은 죽을 수 있는 능력의 결핍으로 고통당한다. ‘죽음이 없는 사회’에서는 죽을 수 있는 능력, 즉 살 수 있는 능력은 더이상 문화가 아니라 우정에 의존한다. 지금은, 지혜로운 인간은 자기에게 (죽음에 관한) 쓰디쓴 진실을 말해주고, 가차없는 종말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함께 있어줄 ‘죽음의 벗(amicus mortis)’을 가질 필요가 있고, 그 벗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지중해 세계의 오랜 규범이 부활해야 할 때이다. 나는 의료를 행하는 인간이 오늘날에도 그러한 벗이 될 수 없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출전― Ivan Illich, “Death Undefeated”, BMJ:British Medical Journal, vol.311, no.7021 (23-30 December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