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는 1980년에 국민투표 결과를 수용하여 의회에서 최신 원자로의 수명이 다하는 2010년경에 현존하는 모든 원자로를 폐쇄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투명하고 민주적인 합의와 절차를 거쳐 지하 30미터에 있는 거대한 암석동굴에 중저준위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을 마련하여 1986년에 비로소 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본지 제74호 참고)
그러나 우리나라의 핵폐기장 부지 선정과정은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밀실에서 추진되는 하나의 ‘작전’이었다. 작년 7월 11일 김종규 부안 군수의 독단적인 유치선언 이후 계속되고 있는 부안 군민들의 반대투쟁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그리고 이와 결탁한 건설업체, 그리고 학계에까지 이르는 핵 추진세력의 실체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월 14일 부안 방폐장유치 찬반 주민투표로 일단락되기까지 부안 군민들이 이들 핵 추진세력과 벌인 싸움은 이를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경이로움’이었다.
이 글에서는 부안 주민들의 반핵투쟁 과정에서 드러난, ‘핵 마피아’라고까지 불리는 한수원을 중심으로 한 핵 추진세력의 실체와 그들의 군사작전식 핵에너지정책 관철 방식, 그리고 이를 막아낸 ‘촛불집회’와 주민자치의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부안 주민투표’를 살펴보고자 한다.
정부의 ‘공고문’과 핵 추진세력의 의도
2003년 4월 21일 핵폐기장 부지선정을 위한 담화문이 나간 이래 5월 1일 첫 공고가 나가고 5월 27일, 6월 27일 변경공고에 이어 올 2월 5일 부지선정 방식은 또다시 바뀌었다. 거듭되는 변경공고는 미리 부안을 점찍어 놓고 이에 맞추어 갔음을 드러냈고 노무현 대통령도 이를 시인하였다. 비민주적인 부지선정 과정의 ‘합법적’ 근거로서 신문 한 귀퉁이를 차지했던 ‘공고문’을 늦게나마 면밀히 들여다보면 핵 추진세력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양성자가속기와 핵폐기장 연계 (2003년 4월 21일 공고)
정부는 2003년 2월 4일 국무총리 주재로 원자력위원회를 열어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건설 후보지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 후 후보지로 오른 영덕, 울진, 영광, 고창에서 “핵폐기장 결사반대”를 외치는 집회와 성명서가 잇따랐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은 4월 15일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을 더이상 늦춰서는 안될 것”이라며 “지방자치단체와 대표성 있는 주민들이 합의해서 부지선정을 신청하면 양성자가속기사업 유치에 가산점을 주는 등 연계해서 추진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정부와 한수원은 4월 21일과 23일 이틀에 걸쳐 주요 일간지에 담화문을 냈다. 10개 부처 장관과 한수원 사장 등 11명의 공동명의로 낸 이 담화문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을 유치하는 지역에서 양성자가속기사업을 신청하는 경우 특별가산점을 주고 신청지역의 발전을 위해 획기적으로 지원하겠다”며 “3,000억원의 지역 지원금을 제공하고 주민에 대한 직접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하였다.
당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양성자가속기사업을 유치하면 연간 경제적 파급효과가 1조원 이상에 이르고, ‘첨단산업의 메카’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선점하게 된다”고 주민들에게 홍보하면서 저마다 우리 지역이 최적지라며 유치전에 열을 올리던 때였다. 언론에서는 “핵폐기장을 양성자가속기에 끼워 판다”고 표현하기까지 하였다. 동해안의 고성, 양양, 울진, 영덕, 영일, 남해안의 장흥, 강진, 완도, 서해안의 진도, 영광, 고창, 보령, 안면도, 굴업도 등 전국의 해안가에서 퇴짜를 맞아온 핵폐기장이 획기적으로 지역발전을 이룰 ‘선물’로 둔갑하여 해안가 주민들에게 나타난 것이다.
4개 후보지 외의 지역에서도 신청 가능 (2003년 5월 1일 공고)
이어 5월 1일자〈대한매일〉에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 확보사업과 양성자기반 공학기술 개발사업 연계추진”이라는 제목 아래 이의 유치를 안내하는 공고가 과학기술부 장관과 양성자기반 공학기술 개발사업단장, 그리고 산자부 장관과 한수원 사장의 이름으로 실렸다. 울진, 영덕, 고창, 영덕에서 신청하면 우선 선정한다는 것과 기존의 양성자가속기사업 유치신청을 한 지역에서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하려면 추가로 핵폐기장 유치신청서를 내면 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핵폐기장 후보지로 오른 지역에서의 반대 불길은 사그러들 줄 몰랐다. 이 무렵 부안의 위도에서는 낚시꾼으로 가장한 ‘박사’로 통하는 사람이 나타나 주민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그는 5월 9일 위도 주민 80여명을 관광버스 2대에 태워 인솔하고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원자력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차 안에서 4월 21일 정부부처의 담화문을 근거로 3-5억원의 현금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믿게 하였다. 이어 위도에서는 유치위원회가 구성되고 부안에서는 양성자가속기 유치위원회가 구성되었다.
4개 후보지 외의 지역에서 신청하도록 유도 (2003년 5월 27일 공고)
이러한 양성자가속기와의 연계에도 불구하고 핵폐기장을 유치하겠다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고 고창, 영광, 영덕 등지에서 반핵운동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5월 6일 반핵국민행동은 “정부가 기초과학 연구용 및 첨단산업용으로 홍보하고 있는 ‘양성자가속기사업’이 규모를 확대할 경우 핵폐기물 재처리에 필수적인 핵변환설비로 운용이 가능한 원전 유관시설”이라며 “정부가 사실상 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으며, 고창 주민 200여명은 전북지역 21개 대학 총·학장단 회의가 있는 전북대학교에 들어가 전북에 핵폐기장을 유치하려는 학계의 음모를 들추어냈다. 또한 5월 7일에는 ‘핵폐기장 반대 영덕 군민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이 무렵, 노무현 대통령과 전북의 정치권은 이미 부안에 핵폐기장을 세우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각본대로 밀고 나갔음을, 놀랍게도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자인하였다.
“그때는 어떻든 조금 경쟁적인 것으로 봤다. 오히려 부안이 참 좋겠고 또 선물이 많이 붙어있으니까 이것은 좀 전라북도로 가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라는 판단도 좀 있고 해서 서둘러서 규정을 고쳐서 절차를 단축했다. 문을 좀더 열어놓고 신청을 더 받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서둘러서 단축해서 했다.”
이는 작년 10월 26일 전북지역 언론인들과의 대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위에서 말하는 ‘선물’이란 양성자가속기사업과의 연계추진이다. 이 사업은 당시 지역발전을 앞당기는 첨단산업으로 인식되어 전북 익산시 등 5개 지역에서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고 있었다. 위 대통령 말을 보면 이 사업을 부안에 주기 위해 서둘러 규정도 고치고 절차를 단축했다고 생색을 내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5월 27일 변경공고이다. 이 공고의 주 내용은 건설업체로 하여금 핵폐기장 유치활동을 벌이게 하고 그 반대급부로 공사에 대한 계약체결권(수의계약)을 준다는 것이며, 유치활동은 2월 4일에 선정 발표한 울진, 영덕, 영광, 고창의 4개 후보지 이외의 지역에서 벌이라는 것이다. 4개 지역에서 반대운동이 워낙 거센 데다 자치단체장도 신청할 기미가 안 보이자 4개 후보지 이외의 지역에서 신청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가 뻔히 드러난다.
실제로 건설회사 직원이 부안 주산면에서 마을주민의 도장을 무단 사용, 핵폐기장 유치신청서 조작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또한 반대급부로 수의계약권을 주겠다니 이는 이들 건설업체들이 유치활동을 하는 데 돈을 충분히 쓸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신청 이전에 지질조사 완료 (6월 27일 변경공고)
5월 27일자 변경공고가 나간 후 한달 만에 과학기술부와 산업자원부는 6월 27일자〈대한매일〉에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 확보사업과 양성자기반 공학기술 개발사업 연계추진 변경공고’를 또다시 냈다.
여기서 달라진 주 내용은 부지 심사기준에서 “4개 후보지역(울진, 영덕, 고창, 영광)의 지자체 또는 상기 4개 지역 이외의 지자체 중 2003년 7월 15일까지 부지조사를 완료하고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로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지자체가 유치신청한 경우 우선 선정한다”는 조항이다. 이는 4개 후보지역에서 신청한 경우 우선순위를 두던 것을 바꾼 것이다. 예를 들어 영광과 부안이 동시에 신청했을 경우 영광을 선정할 수밖에 없는 규정을 부안을 선정할 수 있도록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4개 후보지역 이외에서 재벌기업들이 유치활동을 벌여 선정되면 계약체결권을 준다는 5월 27일자 한수원의 공고를 보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4개 후보지역에서 신청해버리면 건설회사들이 부안에 들인 노력은 물거품이 돼버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한 5월 1일자 공고에서는 7월 15일까지 유치신청을 마감한 후 부지조사를 실시한다고 하였는데, 6월 27일의 변경공고에서는 7월 15일까지 부지조사를 완료하도록 고쳤다. 그 이유는 위도는 이미 1991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 부지 부적합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유치신청을 받고 나서 부지조사를 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지질조사를 정확히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불법과 속임수로 진행된 위도 지질조사
지질조사가 당장 다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지하수법 37조 3항에 보면 굴착행위를 할 때에는 신고를 먼저 하고 교부증을 받도록 되어있다.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있다.
산자부로부터 부지조사 용역을 받은 대우엔지니어링은 부안 군청에 굴착신고를 냈다. 그러나 부안군청이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자 전북도에 행정심판을 신청하는 한편 변경공고가 나간 다음날인 6월 28일부터 법을 어겨가며 굴착작업에 착수하여 7월 1일부터 5일 사이에 양수용으로 4공, 암체 확인용으로 1공을 완료하였다. 그것도 암체 확인용 1공은 부지 밖에서 뚫었다. 7월 5일에야 접수증이 군청으로부터 교부됐다. 이로부터 1주일 후인 7월 11일 산자부는 위도가 핵폐기장 부지로 적합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부안군에 보냈다. 1주일 동안 5개공을 파보고 그후 1주일 동안 검토해서 적합 판정을 내린 것이다. 지질조사에 착수해서 판정을 내리기까지 14일 걸렸다. 이를 근거로 부안 군수는 유치신청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반핵국민행동은 8월 27일 부안핵폐기장 지질 안전성에 대해 벌인 위도 현지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위도의 활성단층 존재 여부는 확인이 안되었을 뿐 없다는 증거가 없는데 부지선정위원회와 산자부는 활성단층이 없다고 확언하고 있다”며 “위도 역시 활성단층으로 의심할 만한 증거가 있는 곳이 있으므로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산자부는 핵폐기장 부지 지질조사를 대우엔지니어링에 용역을 주었다. 위도에서 5개공을 시추할 때 대우엔지니어링은 그중 1개공을 한 시추업체에 하청을 주었다. 이를 맡아 한 시추업자의 폭로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40미터만 파라” 했다는 것이다.
“96년도에 농업기반공사에서 위도에 생활용수 개발을 위해 관정을 뚫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참여했습니다. 그때 팠을 때 50미터 전까지는 지하수가 없었고 먼지만 풀풀 났습니다. 50미터에서 80미터 구간에 엄청난 파쇄대가 있었고, 저희들이 암반을 뚫는 날이 25밀리인데 10센티에서 15센티, 20센티까지 2톤 가량 암반 자체가 무너져가지고 올라왔어요. 그리고 수량이, 7일간 측정을 해봤는데 하루 430톤 정도 나왔어요. 그리고 거기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 천공을 했는데 깊이 200미터 이상 파니까 해수가 500톤 이상 나왔어요.”
산자부의 예비조사 보고서에는 “파쇄대의 폭이 수 센티미터 이하인 것들이 간혹 관찰될 뿐 대부분 뚜렷한 파쇄대를 수반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제가 볼 적에는 파쇄대가 아주 심하고 암반의 강도가 거의 없었습니다. 암반이 부서져가지고 나옵니다. 암반을 그대로 뽑아올리는데 암반에 균열이 굉장히 심한 채 올라오는 겁니다.”
작년 8월 26일 민주당 ‘위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조사특위'(위원장 최명헌)는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과 추진과정의 문제점 등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기 위해 위도를 방문하였다. 한수원 사장이 선정 부지에서 국회의원들에게 보고하면서 부지 천공을 각 270미터 하였다고 보고하자 ‘위도지킴이’ 서대석 대표가 ‘전체’ 천공길이가 270미터라 하여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수원에서 국회의원들에게 나눠준 자료에는 270미터 판 것으로 되어있었다. “270미터 4개공” 이렇게 써서 모두 200미터 이상 뚫은 것으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270미터 판 것은 사기이고 실질적으로는 40미터씩 팠다. 미터수 검사를 해보면 안다, 그러자 여러 의원들이 ‘그럼 미터수 검사를 해보자’ 하면서 이거 사기 아니냐고 하니까 그제서야 도합 합쳐서 270미터라고 하면서 ‘미터수 검사는 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어요.”
한편 정부의 조사에서는 위도에서는 특별히 보호해야 할 동식물이 없어 생태적으로도 A등급을 주었다. 그러나 8월 26일자〈한겨레〉는 “위도에는 수달·황조롱이 등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위도상사화 같은 희귀 특산식물, 열대성 상록활엽수림이 집단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확인됐다”고 보도하였다.
‘환경운동연합’과 ‘문화연대’도 작년 12월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위도에 수달을 비롯해 검은머리물떼새, 황조롱이, 매, 원앙 등 5종의 천연기념물이 발견돼 산자부의 최종 부지 확정발표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중저준위 핵폐기장에 대한 과기부 기술기준 제9조에 따르면 “처분장은 기타관련법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핵심 증인의 국정감사 출두거부
10월 10일에 있었던 산자위 국정감사에서 컨소시움을 구성한 건설회사는 현대, 대우, 삼성, 대림산업, 두산중공업 등 5개사로 밝혀졌다. 강인섭 의원(한나라당)은 이날 국감에서 현대건설 원자력사업단장인 최대일 현대건설 전무를 증인으로 채택하였는데 그는 병원 입원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강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5개 건설회사들이 각기 5억원씩 25억원을 걷어 협약서 초안까지 만들고 이 사업을 뒤에서 도와주려 했다”며, 나름대로 취재한 결과 “D산업이 골프장 건설을 하기 위해 40만평을 위도 반대편에 있는 격포 부근에 사두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유치활동을 하는 위원들이 활동비조로 월 185만원을 받는다는 것과 유치서명을 받아오면 1명당 5,000원씩 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돈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에 대한 로비자금도 모두 건설회사에서 나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풀지 못한 채 국정감사는 별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핵관련 먹이사슬 구조에서 핵폐기장 음모의 핵심을 포착하고도 정치권이 이를 밝혀내지 못한 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핵산업 유치에 혈안이 된 전북 정치인들
“부안 위도의 지질이 방폐장 부지로는 전국에서 최고라는 통보를 받고 어제 저녁 김 군수와 만나 얘기를 나눴다. 전북의 발전을 위해 방폐장을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도의회도 유치 찬성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부안 군의회 의장도 힘을 몰아주기로 했고 도민들의 관심도 높다. 반드시 유치해서 전북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겠다.”
김종규 부안 군수가 핵폐기장 유치선언을 하던 날 강현욱 도지사가 전북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강 도지사는 작년 4월 15일 노무현 대통령의 “양성자가속기사업과 핵폐기장을 연계추진하라”는 지시가 나온 이후 적극 핵폐기장을 유치하려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도청 직원들과 함께 프랑스 견학을 다녀왔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폐기장 유치가 전북 발전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전북 도청 초청으로 작년 7월 7일 방한한 프랑스 에포테몽 시의 질 제라르 시장은 전북 도청에서 방사성폐기물 처리장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이 들어서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며 핵폐기장의 안전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한편 정동영 의원(현 열린우리당 의장)은 작년 5월 16일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우리는 부안 위도거나 고창이거나 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유치에 나서 풀어내야 하는 입장이다. 학자들이 원자력발전소가 달리는 자동차라면 방폐장은 서있는 자동차라고 한다. 전북대학교 등이 중심이 돼 방폐장의 안전성 여부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으며 안전성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전북의 미래와 관계돼 있으며 과거 전주의 제지산업 메카 지정을 놓치는 것과 같은 선례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강현욱 도지사와 함께 김원기 의원(정읍, 열린우리당)도 정읍 방사선센터 유치에 적극 앞장서 마침내 기공식을 갖게 한 장본인이다. 이들 정치인들은 핵관련 산업을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과대포장하여 도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더구나 핵관련 시설들은 주민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담보로 하는 사업이므로 여타 사업에 비해 극도로 신중하고 수많은 검토를 거쳐야 할 것임에도 졸속, 비공개 밀실거래를 통해서 진행시켜왔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핵폐기장 유치가 도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오자 이들 정치인들은 양성자가속기사업을 내세워 도민들을 또다시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이를 유치할 경우 “전북은 첨단과학의 메카가 된다”며 핵폐기장과 연계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안 군민들은 양성자가속기사업은 기술적 연관성 때문에 애초부터 핵폐기장 주변에 건설하도록 계획될 수밖에 없는 “핵폐기물 변환사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1월 5일 쌀쌀한 강바람이 부는 여의도 시민공원에서는 주민투표 국면을 맞아 핵폐기장 유치 찬성세력이 부안 군청 등의 지원을 얻어 벌인 ‘2대 국책사업 부안 유치를 위한 범전북도민 촉구대회’가 부안군 등 전북에서 관광버스로 올라온 500여명의 전북 도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종규 군수와 함께 산자부에 유치신청서를 낸 김형인 군의회 의장은 “양성자가속기를 유치하면 부안은 30만 인구로 늘어나고 공해 없는 첨단과학도시가 될 것”이라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서울대 교수들의 관악산 핵폐기장 유치 ‘쇼’
2004년 1월 9일 오전 10시 관악구 주민대표 200여명은 관악산이 내려다보는 구청건물 3층 강당에 모여 “서울대 일부 교수들의 관악산 내에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유치주장을 결사반대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이틀 전 강창순 원자핵공학과 교수, 황우석 수의학과 교수, 이무하 농업생명대학장, 홍경자 간호대학장, 오연천 행정대학원장, 백남원 보건대학원장, 이태수 인문대학장, 한민구 공대학장, 김하석 자연대학장 등 모두 63명의 서울대 교수들이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유치가 주민 안전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확신을 바탕으로 정운찬 총장에게 서울대가 이 시설을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해줄 것을 건의한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이들 교수들은 건의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순수한 학자적 양심의 발로”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으며, 황우석 교수는 “돌팔매질을 당하더라도 학자들이 나서서 안전성을 설득하고 원자력 연구의 수혜자인 서울대로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창순 교수는 성명서 마지막 부분을 낭독하면서 감정이 북받쳐오르는 듯 울먹이기도 했다. 이러한 교수들의 제안에 서울대측은 “학교 차원에서 아무런 입장정리가 돼있지 않지만 명망 높은 교수들이 우국충정으로 건의하는 것인만큼 일단 접수했다”고 말했다.
한편 핵 추진세력에서는 이번 서울대 내 원전센터 유치를 주도한 원자핵공학과 강창순 교수는 16개국의 16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원자력 안전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고,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 역시 복제 송아지 등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생명공학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이며 그외에 한민구 공대학장, 오연천 행정대학원장, 김병종 미대학장, 백남원 보건대학원장 등 이번 원전센터 서울대 유치에 앞장선 교수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석학들”이라고 추켜세웠다.
한 언론은 “이번 제안에 참여한 많은 교수들이 직접 원자력에 대해 연구하는 전문가들이고, 그들 스스로 그 원전수거물을 자신들의 주변에 놓고 살겠다고 자청하고 있으니, 그러한 제안 자체가 바로 이 원전수거물 처리장의 안전성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이며, 일반 시민들에게 좋은 교육효과를 준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이러한 서울대 일부 교수들의 제안에 서울시립대 이수곤 교수(토목학)는 “핵문제에 밝은 학자들의 주장에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으나 관악산은 화산(火山)으로 절리가 많은 불안정한 산이며 40여년 전에 지어진 관악산 터널은 군사용 벙커이지 핵폐기물처분장으로는 쓸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고, “85년도부터 물색하기 시작한 핵폐기물처분장에서는 지질이 가장 중요하다”며 “서울대 교수들은 관악산의 지질에 대해 개념이 없다”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핵폐기장으로 섬을 선택하는 이유는 육상운송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이라며 더구나 “미국의 기준으로 보아도 인구밀집지역에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본래 이들 서명교수들의 목적은 ‘관악산 핵폐기장’이 아니었다. ‘서울대 교수’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핵이 안전하다”라는 상징조작으로써 부안 주민들을 현혹시키겠다는 얄팍한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행동에는 또다른 꼼수도 숨어있다. ‘건의’라는 형식을 빌어 공을 총장에게 넘기고 정작 자신들은 ‘총장’과 ‘건의’ 뒤에 숨어버린 것이다. 이 공을 총장이 공론에 붙이건 내팽개치건 간에 본인들은 대외적으로 “학자적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라는 존재가치를 과시하고, 핵산업계로부터는 용기를 치하받음과 동시에 ‘핵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간의 먹이사슬 관계를 돈독히 한 것이다.
반핵투쟁을 통해 성숙해진 주민의식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때
민심을 떠난 고부 군수 조병갑이나 똑같아서
군민들로부터 쫓겨다니는 도망군수 김종규를
잘했다며 칭찬하지 않고참여정부의 자치단체장으로서
박정희식 강압논리보다는 민주적 절차나 과정이 소중하니
민의를 제대로 수렴하라는 충고를 하였으리― 부안초등학교 이강산 선생의 시〈나라면〉중에서
2003년 7월 11일 김종규 부안 군수가 독단적으로 핵폐기장을 부안에 유치하겠다고 선언하고 몰래 부안을 빠져나가 군의회의 의결마저 무시한 채 과천 산자부 청사에 나타나 유치신청을 하자 부안은 반핵물결에 휩싸였다. 연일 집회를 열어 ‘매향군수’를 성토하고 유치신청 “무효”를 외쳤다. 그러나 정부는 진압전문 경찰 5천여명을 보내 알루미늄 방패에 날을 세워 공격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코뼈가 주저앉고 살점이 찢어지는 부상자가 속출했다.
후보지 결정을 이틀 앞둔 7월 22일, 부안읍에서 가장 큰 거리인 수협 앞 사거리에 1만5천여명의 부안 군민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군청 앞으로 평화적인 행진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작정이나 한듯 과잉·폭력진압으로 일관하였다. 부상자가 속출했고 부안은 비탄과 분노에 빠져들었다. 성난 군민들은 부안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막고 늦은 밤까지 “군수퇴진, 핵폐기장 철회”를 외쳤으나 경찰은 이들에게 체포령을 내렸다.
이튿날 노무현 대통령은 김종규 군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핵폐기장 유치철회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잘해달라”고 격려했다. 이날 전화에서 김 군수에게 “얼마나 힘이 드느냐.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치하한 뒤, “용기를 잃지 말고 국책사업에 최선을 다해달라”며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안 군민 90% 이상이 지지를 했던 민심은 순간 노무현 정권을 떠나버렸다.
군수의 기습적인 유치신청에 허를 찔린 후 연일 경찰과 대치하며 핵폐기장 반대집회를 열어오던 부안 군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안 군민 여러분의 협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런 글귀를 넣은 산자부와 한수원의 광고가 각 일간지에 실리고 부안의 지역신문에 실려 가가호호 배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산자부와 한수원의 광고는 계속됐다. TV 광고도 나왔다. “위도,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부지로 최종 확정.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 힘을 모을 때입니다. 전북 부안군 주민 여러분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 사람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이토록 부안을 우롱할 수 있단 말인가.” 7월 22일 경찰의 방패에 찍혀 코뼈가 주저앉고 살이 터지고 온몸에 피멍이 든 부상자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는 부안 군민들은 치미는 분노를 도저히 삭일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언론은 냉담하기만 했다. 어차피 “어딘가에 세워야 할 핵폐기장”이라며 지역주의로 몰고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민들은 촛불을 들고 수협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것이다. 7월 26일의 일이었다. 이로부터 ‘핵없는 세상’의 염원을 담은 부안 주민들의 촛불은 태풍이 불어도 눈보라가 몰아쳐도 꺼지지 않았다.
정부는 채찍과 함께 당근도 제시하였다. 부안군의 지역발전을 위해 2009년까지 부안군에 모두 1천2백5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하였으며 한수원 본사를 부안으로 이전하겠다고 하였다. 전북도는 위도에 내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포함한 관광랜드를 조성하는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고 전북대 총장은 부안에 전북대 분교를 설립하겠다며 거들었다. 또한 산자부 장관은 위도에 대통령 별장을 짓겠다고 하였다. 한수원은 현금보상이 안되는 것으로 굳어지자 돌아선 위도의 민심을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여름 휴가철을 맞은 한수원 직원들에게 위도 낚싯배 이용을 적극 독려하자, 직원들은 낚시는 하지 않고 돈만 주고 하루 이용에 30만원 하는 낚싯배를 사용한 증빙서를 받아가기도 하였으며, 한포대 6천원 하는 위도 멸치를 4만원에 전량 수매하기도 하였다. 부안의 일부 마을에는 추석 선물로 법랑세트와 넥타이 선물세트를 돌렸다.
그러나 매일 3-5천여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를 통해 주민들은 진실을 알았고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임을 확인하였다. 이들 앞에 치졸하기 이를 데 없는 당근정책은 ‘미끼’에 불과하였다. 등교거부에 나선 학생들은 치열한 싸움판을 보고 어른스러워졌고 모든 군민이 ‘핵폭력’ 앞에 하나가 되었다. 가가호호 노란색 반핵기가 나부꼈다. 촛불집회는 어느덧 반핵운동을 뛰어넘어 “주민자치의 희망을 실현해줄 마당”으로 떠올라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9월 10일 추석을 앞두고 정부는 촛불집회를 막으려고, 수협 앞 상설무대를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철거하였으며 20개 중대 병력을 동원하여 현수막을 뜯어냈다. 그러나, 이후 ‘반핵무대팀’은 매일 무대를 조립했다 헐었다를 반복했으며, ‘막칠하세’라는 이름의 미술팀은 부안군 각 마을을 찾아다니며 벽화를 그렸다. 또한 ‘노랑고무신’이라는 이름의 노래패가 탄생하여 군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러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변산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조 아무개(47)씨는 대다수가 농민인 부안 사람들의 땅에 뿌리박은 삶을 투쟁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작년 5월에 김 군수가 변산면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나서면서 부안 농민들은 골프장 반대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때도 군수의 독단적인 결정이었어요. 핵싸움이 안 벌어졌으면 우리는 골프장 반대투쟁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삼면을 돌아가며 갯벌인 부안 변산반도에서 모든 생리는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를 박탈하는 핵폐기장을 누가 환영할 것인가. 더구나 지방자치시대에 주민들이 뽑은 군수가 독단적으로 그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대대로 삶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온 부안 군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이며, 촛불집회는 대동굿, 축제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노령층 인구가 많은 부안군에서 어르신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작년 11월 23일,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부안성당에 들어서시는 한 할머니의 배낭을 엿보았다. 무릎덮개용 보료, 습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비닐봉지에 넣어만든 깔방석, 목도리, 타다 남은 초, 종이컵, 바람막이용으로 허리를 잘라 만든 페트병, 그리고 짝짝이가 들어있었다.
“우리 손으로 주민자치 이루자”
정부는 부안 군수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유치신청을 하도록 만들었고, 주민 대책이 용이하다고 보고, 위도를 방폐장 부지로 최종 선정하였다. 그러나 부안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자 뒤늦게 부지선정위원회의 명단과 이들의 최종 평가결과를 공개하였으며 이와 함께 주민투표를 들고 나왔다.
이미 모든 절차가 비민주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지질조사 과정에서 속임수와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던 터에 부안 군민들은 우선 부안 핵폐기장을 즉각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며 정부의 주민투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10월 말 정부와 대화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연내에 주민투표를 실시한다는 중재안을 수용하였다.
그러나 먼저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던 정부는 연내 주민투표 실시를 거부하며 부안읍에 1만여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하였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주민들 수보다 더 많이 투입된 경찰병력은 11월 19일과 20일 또한번의 유혈사태를 빚으며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했다. 촛불집회는 부안성당으로 쫓겨들어왔지만 몰아치는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그 열기는 더욱 높아갔다.
정부가 총선 이후 실시를 주장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부안대책위’는 12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다음달 7일까지 부안 핵폐기물처리장 건립과 관련한 주민투표 조기실시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주민투표를 단행할 것”을 선언하였다. 대책위는 “총선 60일 전부터 일체의 선거행위를 하지 말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주민투표일을 2월 14일로 정했으며 정부가 기한 내에 응답하지 않더라도 시민단체를 선관위로 한 자체투표를 진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책위는 “전국의 뜻있는 시민사회단체, 종교계가 평화적인 주민투표 진행을 위해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구성해줄 것을 제안한다”면서 “국민 모두가 인정하고 주민들이 결과에 만족할 수 있는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신뢰성 있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1월 15일 부안대책위와 부안군민들은 수협 앞 광장에서 ‘부안 군민 주민투표 실시 선포식’을 갖고 “2월 14일 투표를 통해 핵폐기장 막아내고 주민자치를 이루는 승리의 날로 만들자”고 밝혔다.
대책위 김인경 공동대표는 “독재에 의한 통치의 시대를 넘어 주민에 의한 정치, 주민에 의한 자치를 일구어내는 역사적 출발점이자 큰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선언의 의미를 밝히고 “부안 군민 독자 주민투표는 부안에서의 핵폐기장 음모를 완전히 끝장내고, 나아가 이 나라 에너지정책을 바꿔내는 역사적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침내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의 인사들로 ‘부안 방폐장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위원장 박원순 변호사)가 구성되었다. 관리위는 25일 개소식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주민투표를 막아보려는 부안 군수와 전북 도지사의 몸부림은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들은 군청과 도청의 공무원들을 부안의 각 마을로 보내 주민투표 불참 선전활동을 벌이도록 하였으며, 투표 하루 전날 부안 군수는 경비행기를 동원하여 부안읍 상공에 전단을 살포하기까지 하였다.
도청 공무원들이 대거 부안에 들어오자 각 마을에서는 ‘자경대’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도청 공무원들의 동태를 면대책위에 알렸고 면대책위에서는 공무원들의 이동을 끝까지 추적하여 마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였다. 오줌이 마려운 공무원이 동네에서 오줌도 못 누고 허겁지겁 면사무소를 찾아 달려가는 일도 벌어졌다. 마포삼거리와 마동삼거리 등 주요 길목에서는 밤에도 화톳불을 피워놓고 지켰으며 투표 당일 아침에야 철수하였다. ‘민’이 ‘관’의 침투를 감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주민투표를 앞둔 지난 1월 30일, 구시대적 관 주도의 관변적 계몽단체의 집합체로 낙인 찍힌 ‘강한전북일등도민 운동 추진 자원봉사단체 협의회'(이하 ‘강한전북일등도민’)가 마침내 부안 문제에 개입하였다. 주민투표관리위원회 위원장인 박원순 변호사에 대해 원색적인 인신모독성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강한전북일등도민’에는 전라북도 내 민간단체 145개가 참여하고 있으며 송기태 공동대표는 현재 전북 상공인들의 대표격인 전주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이들은 언론 등 전북 여론을 주도하며 새만금사업 추진을 중앙정부에 촉구해왔다. 이들은 작년 5월 7일 ‘강한전북일등도민’ 현판식을 갖고 활동에 들어가 ‘새만금추진협의회’의 서울 상경투쟁에 이어 5월 22일 전북 도청 앞 광장에서 새만금사업을 계속하라는 궐기대회를 열었다. 여기에서 송기태·유유순 공동대표는 연설에 나서서 “도민의 숙원사업인 새만금사업을 중단시키려 한다면 200만 도민의 이름을 걸고 정권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읍 지원은 부안군과 유치찬성 단체가 낸 ‘주민투표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2월 14일 주민투표는 주민들이 스스로 실시하는 사적(私的) 주민투표로 규정했다”면서 “이번 주민투표와 같은 사적 주민투표를 명문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없는만큼 사적 주민투표까지는 막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로써 부안군과 전북도가 주장하던 불법성 시비가 말끔히 사라지고 투표율을 더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행사를 막을 법률은 없었던 것이다.
투표 전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각 종교계 성직자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버스를 대절하여 속속 부안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부안 주민투표 사무원 참관인 교육을 받고 투표소 근처 주민들 집에서 잠을 잔 다음 이튿날 새벽 5시부터 각 투표소에 배치되어 자원봉사활동을 펼쳤다.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쓴 부안 주민투표 개표결과는 유권자의 73.73%(위도면 제외)가 참여하여 91.89%가 핵폐기장 유치를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끝나지 않은 싸움
미국, 일본, 프랑스에서도 핵폐기장은 낙후된 지역에서 개발을 미끼로 파고들었다. 부안에서도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고 황금어장이 죽어가자 빚더미에 오른 위도에 현금보상과 지역개발을 미끼로 파고들었다. 이를 상대로 지난 8개월간 생업을 팽개치며 투쟁을 벌여온 부안 주민들은 주민투표의 승리로 이제 “일상 속에서 투쟁을 하자”며 생업에 복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김종규의 유치신청은 아직 유효하고 정부는 주민투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2월 5일 발표한 정부의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부지공모에 관한 공고’는 부안 이외의 지역에서 새롭게 유치신청을 받겠다고 하고 있어 전국 해안가 고을이 다시 긴장하고 있다. 이를 두고 부안 주민들은 “정부가 해안가 주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며 “핵폐기장 추진계획 철회하고 핵발전 중심 전력정책을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2월 10일 김종규 부안 군수는 예술회관에서 치러진 찬성측의 집회에 나타나 “핵폐기장 유치 외에 부안의 발전을 가져올 대안을 제시해보라”며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2월 7일 백산고등학교에서 치러진 주민투표 읍·면 토론회에 나온 한 주민은 “부안이 발전하는 길은 가장 부안다운 것을 살리는 일”이라며 지금까지의 개발논리를 극복하는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이 핵을 물리치고 나아가 진정한 주민자치의 공동체를 이룩해나갈 것인지는 자신들의 손에 달려있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이미 “핵없는 세상을 위하여, 죽임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하여 어떤 사사로움도 없이 싸우는 2003 부안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