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15일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도롱뇽을 원고로 하고 자신들을 ‘도롱뇽의 친구들’이란 이름의 대리인으로 하여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을 상대로 ‘고속철도 양산시 천성산 구간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신청’을 부산지방법원에 제기하였다. 외국의 경우에는 유사한 몇가지 사례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소송이다.
동물이 원고가 되어 소송을 제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다. 그러나 회사와 같은 무형의 법인에게 법인격을 인정하고 소송상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당시에도, 일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송을 담당한 판사조차도 당황스러워하며 당시의 심정을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단지 법적 실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법인에게 법인격을 인정하여 소송상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법인이 소송상 권리를 가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동물의 경우에는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 서있는 것은 아닌가. 과연 자연물 자체에게 소송상 권리를 인정할 수 있을까.
환경에 대한 법적 고려
현대에 들어서 기술이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침해가 그 도를 벗어나게 되고, 이제 환경 침해에 따른 위해는 인간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되자 일부 진보적인 환경운동가를 중심으로 환경보호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여기에 사회의 각 세력들이 합류하게 되면서 환경을 법제도적으로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환경운동을 전개하는 변호사가 주축이 되어 인간의 환경 침해에 대하여 법원에 구제를 요구하는 소송이 잇따르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과정은 미국과 일본에서의 환경에 대한 법적 고려 과정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런데 환경 침해에 대한 구제 요구에 대하여 법원은 환경 자체의 이익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인간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환경 이익은 인간의 이익에 수반되는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인간중심의 가치관에 근거하여 법리를 전개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당사자적격’의 완화를 들 수 있다.
당사자적격의 완화
‘당사자적격(standing)’이란 소송상의 개념으로, 일정한 권리관계에 관하여 소송당사자(원고 또는 피고)로서 유효하게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을 받기 위하여 필요한 자격을 말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의 토지를 불법으로 점유하면서 훼손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A를 상대로 소송상 토지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 즉 당사자적격을 가진 자는 B일 뿐이다. 만일 이 토지 소유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C라는 사람이 A를 상대로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을 행사한다고 하면 C는 당사자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판사의 심리도 받지 못하고 법원의 문밖으로 쫓겨나는 소각하의 판결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적격이 위에서처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실제 소송과정에서 당사자적격 유무의 판단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가령 어느 지역에 대규모 연탄공장을 건설한다고 해보자. 연탄공장이 건설되어 가동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연탄먼지와 소음으로 인하여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공장 인근의 산에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었고 이 산책로를 주변 사람들이 자주 이용해 왔는데 연탄먼지와 소음으로 인하여 더이상 산책로를 이용하지 못하여 간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기타 경제적·심리적 이익을 잃어버리는 많은 부류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어느 범위까지 당사자적격을 인정해야 할 것인가. 과거에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만 당사자적격이 인정되었으나 최근에는 당사자적격을 확대하여 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부류에게도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오고 있다. 즉 당사자적격에 대하여 요구되는 요건을 완화하여 환경에 대한 침해는 사람에 대한 침해라는 인간중심적 이론에 근거하여 사람들이 좀더 쉽게 자신의 이름으로 환경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환경 자체를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점이 있다.
당사자적격 완화에 관한 미국의 사례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남아프리카 바다표범 소송사건을 들 수 있다. 1976년, 동물 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여러 단체들은 미국 회사가 남아프리카 바다표범 가죽을 수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신청에 대하여 상무성이 이를 허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연합하여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단체들은 소송에서 바다표범으로부터 가죽을 분리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방법이 해양포유동물보호법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단체들의 당사자적격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단체들은 단체 각 회원의 휴양적·심미적·과학적 및 교육적 이익의 침해를 주장하였다.
이 사건을 담당한 지방법원은 남아프리카는 너무 멀리 있을 뿐 아니라 바다표범이 거주하는 케이프 지역은 남아프리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갈 수 있는 곳인데, 미국의 바다표범 감시자에게 허가가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소송을 제기한 단체 회원들이 이곳을 여행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단체 회원들에게 당사자적격이 없다며 소송을 각하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항소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단체의 한 회원이 제출한, 미래에 남아프리카를 갈 계획이라는 내용의 법정진술서에 근거하여 당사자적격을 인정하고 수입허가를 취소하였다. 그후 이러한 입장은 판결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법원이 ‘사실상 침해’ 요건을 부가하면서 당사자적격을 제한하였다.
동물이나 식물의 소송상 권리 인정 가능성
가령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S1’과 ‘S2’ 사회가 있다고 하자. 자신의 노예가 다른 사람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 ‘S1’ 사회에서는 노예 주인이 마치 자기 재산에 손해를 입은 것과 같이 그가 원하는 경우에 한하여 소송을 제기하여 자기 재산에 입힌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데 비해 ‘S2’ 사회에서는 노예 자신이 직접 소송을 제기하여 자신이 입은 고통에 따른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비록 두 사회 모두 노예의 이익이 보호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예가 아니고 강을 예로 들어보자. 강에 의지하여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어떤 공장에서 강으로 오염물질을 배출하여 강을 오염시킨다고 해보자. 이런 경우 ‘S1’에서는 강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이 자신의 법적 권리가 침해되었음을 주장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오염행위자에게 대항할 방법이 없는데, 법원이 당사자적격을 최대한 완화시켜 강 주변의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준다 하더라도 강 주변의 주민은 오염 자체에 별다른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법적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더욱이 오염을 일으키는 공장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강 자체가 보호받을 길이 없게 된다.
그러나 ‘S2’ 사회에서는 강 주변 주민들의 소송에 의지하지 않고 강 자체가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강 자체가 보호됨으로 말미암아 기타 강 주변 사람들에 의해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 간과되기 쉬운 부분도 충분히 보호가 될 수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법원이 환경을 고려하게 된 후 지금까지, 법원은 당사자적격의 확대를 통하여 환경에 대한 침해는 사람에 대한 침해라는 입장에서 인간의 이익을 보호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환경을 보호하려는 입장을 취하여 왔으며 상당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당사자적격의 확대를 통한 환경의 간접적인 보호는 내재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기본적으로 환경 이익은 인간의 이익에 수반된다는 인간중심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렇다면 환경 혹은 자연물 자체에 소송상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수 없을까.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무능력자가 되면 이해관계인이 법원에 후견인의 선임을 청구하게 된다. 이에 법원은 누군가를 무능력자의 후견인으로 임명하게 되고 그 후견인이 무능력자의 법적 문제를 처리하게 된다. 또한 회사가 무능력자가 되면 법원은 그 회사를 위하여 파산관재인을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회사의 전반적인 문제를 관장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자연물의 경우에도 자연물이 어떤 위험에 빠졌을 때 법원이 후견인을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그 자연물에 대한 전반적인 법적 문제들을 처리하게 하면 될 것이다.
혹자는 자연물이 말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당사자가 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도 말을 할 수 없으며 국가, 영아, 무능력자도 말을 할 수 없으나 대리인을 통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또한 혹자는 자연물에게 소송상 당사자의 지위를 인정하게 되면 법원은 자연물이 제기하는 소송으로 업무가 마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소송상 당사자의 지위가 인정되는 자연물을 법으로 규정하고 필요한 경우 각각의 자연물에 대한 관리인 혹은 대리인을 임명함으로써 합리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부수적 존재가 아니다
한 사회가 어떤 실체를 법적으로 고려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 법원은 주로 인간중심에서 당사자적격을 확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을 따라왔다. 아마도 법원의 이러한 태도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인간중심의 사고에 근거를 둔 법적 파생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은 예전의 환경개념하고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더이상 인간의 이익에 수반되는 부수적인 존재가 아니며 환경 자체가 전 지구적으로 인간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념 또한 변화되어야 하고 환경을 인간의 이익에 수반되는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생각도 바꾸어야 한다.
동물을 포함하여 자연물에게 소송상 당사자의 지위를 인정하지 못할 이유도 없으며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확실하게 우리의 생존을 떠받치는 환경을 보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동물을 원고로 한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환경 자체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마도 도롱뇽을 원고로 한 소송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지만, 이러한 소송 하나 하나가 환경을 좀더 보호하는 초석으로 작용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이 글은 필자가 번역하여 최근 출간한 크리스토퍼 D. 스톤의 책《법정에 선 나무들》(아르케)을 많이 참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