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토다 키요시-김종철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를 열며
김종철 이렇게 많이 참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들은 별로 소문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또 오늘이 월요일이기 때문에 청중석에 빈자리가 꽤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지금 거의 자리가 다 찬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저희가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를 구상한 것은 지난 봄에서 여름 사이였습니다. 문제는 강좌개최에 필요한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영남대학교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게 되어 이런 자리가 열리게 됐습니다. 이런 면에서 영남대가 꽤 희망이 있는 대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제가 이 학교에 있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여기 앉아있는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기성세대의 상식으로는 이런 일을 하는 데 학교가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동의한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 한국에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강좌가 일회적인 것도 아니고, 앞으로 1년 동안 매달 이런 모임이 있을 겁니다. 제가 요즘 약간 고달프다는 생각 때문에 괜히 시작했다고 후회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작했으니까 다른 도리가 있습니까. 이 연속강좌가 계획대로 잘 진행되는 것으로, 도와주신 분들에게 보답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이번에 왜 어떤 동기로 연속강좌를 구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지금 갖고 계신 자료집에 제가 간단히 쓴 게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역사에 기록을 남겨야 되니까 그렇게 썼습니다만, 실은 구체적인 사정을 말씀드리면 지난번 새만금 문제로 네분 성직자에 의해 결행된 삼보일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더이상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방식으로는 계속 살아날 길이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징후로 보아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금년 들어 우리들 가운데서 새 정부에 대해서 꽤 많은 기대가 있었는데,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서 철저히 배신감을 느껴왔단 말이에요. 그 가운데서도 소위 국책사업이라는 이름 밑에서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대적인 환경파괴, 인간파괴, 생명파괴 현상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저항운동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극한적인 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합니다. 삼보일배는 그러한 저항운동으로서 세계사적 의의를 가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제가 핵폐기장 반대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부안에 다녀왔습니다만, 거기서 제가 느낀 것이 지금은 4·19 때와도 다르고 광주민중항쟁 때와도 다른, 좀더 차원을 달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안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단지 핵폐기장이 들어서서는 안된다는 운동이 아닙니다. 이 싸움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이 자멸적인 문명 자체에 대한 거부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운동은 엘리트 지식인들의 운동이 아니라, 아주 밑바닥 민중의 차원에서 “이건 아니다” 하고 지금까지 받아들여온 개발논리 자체에 대한 강력한 의문을 표시하기 시작한 운동입니다. 저는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개발논리라는 것은 엘리트에 의한 민중의 지배를 항구화하기 위한 술책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개발이니 경제성장이니 하는 논리는 근본에서부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논리인데, 우리는 그동안 이러한 논리를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왔던 것입니다. 지금 바로 그런 근본적인 의문이 부안에서 다수 풀뿌리 민중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단지 핵폐기장 반대가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입니다. 그리고, 그 투쟁이 지금은 민중의 삶의 토대인 자연세계를 보호하려는 투쟁으로 나타난다는 데에 이번 싸움의 역사적인 새로움, 세계사적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까 동대구역에서 토다 선생 일행을 모시고 택시를 타고 들어오면서도 제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만, 이 대구라는 도시는 원래 매우 진취적인 도시였는데 한 30년 동안 군사독재의 근거지가 되다보니 지금은 전국적으로도 의식이 제일 뒤떨어진 지역이 되어있지 않은가 ― 그런 생각이 지난번에 부안에 다녀오면서 새삼스럽게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산업화니 개발이니 하는 것에서 가장 소외되어온 지역이라고 하는 호남지역에서 오히려 진정으로 새로운 시대를 위한 깨달음이 풀뿌리 정서 속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라도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러한 새로운 기운은, 어떤 점에서, 지난번 문규현 신부님, 수경 스님 등이 주도하신 삼보일배 행진이 매우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저 네분의 성직자께서 이번에 결행하신 삼보일배는 일찍이 역사상 선례가 없는 고귀한 비폭력 직접행동입니다. 운동의 형식 자체가 새로운 것과 이 삼보일배가 우리사회에 던진 메시지가 종래의 일반적인 사회운동의 내용과는 질적으로 차원을 전혀 달리하는 것이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냥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중단하라는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명백히 대대적인 환경파괴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갯벌을 간척하여 거기서 뭔가 경제적 이익을 보기를 기대하는 욕심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사회적, 심리적 토대를 깨지 않고는 이제 더이상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지극한 기도와 참회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삼보일배였습니다.
그런데, 부안 갯벌에서 서울까지 65일 동안 계속된 이 고행에 대해서 우리사회 곳곳에서 순결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긴 했습니다만, 아직까지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동안의 개발논리, 경제성장 논리의 관성이 너무나 완강한 탓인지 거기에 대한 응답이 매우 미온적입니다. 미온적인 정도가 아니라, 삼보일배가 끝나자마자 정부가 이번에는 부안 앞바다 위도에 핵폐기장을 설치하겠다는 엉뚱한 선물을 내놓는 바람에 삼보일배의 고행 뒤에 잠시 쉴 틈도 없이 문규현 신부님은 지금 다시 엄청난 고통을 겪고 계십니다.
그런가 하면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서 부산시청 앞에서 지율 스님은 외롭게 38일간의 단식투쟁을 끝내고, 지금 다시 몇몇 여성 성직자들과 함께 삼보일배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아직 정부측에서 반응이 없기 때문에 삼보일배가 끝나는 대로 다시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다 북한산 관통도로 문제, 그리고 전국 곳곳에 크고작은 도로공사, 골프장 공사로 인한 문화와 자연에 대한 무지막지한 파괴의 현장들이 널려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판적인 지성의 목소리들이 별로 들려오지도 않습니다. 지식인들이란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깊이 고민을 했습니다. 이 땅에서 밥을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지금 멕시코의 칸쿤에서 한국의 농민 이경해씨가 자결이라는 극한투쟁까지 갈 수밖에 없을 만큼 너무도 어둡고 참담하게 된 우리 농업의 전망을 생각할 때, 또 9·11 동시다발 테러 사태 이후 노골적인 침략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미국의 패권주의의 그늘 밑에서 민족의 생존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지식인으로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2년 동안《녹색평론》을 엮어내면서 나름대로는 노력한다고 해왔습니다만, 이제 조금 다른 형식의 장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도 좀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12년 동안 투자한 것을 밑천으로 해서 우리들과 비슷한 고민을 해왔거나 또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좀더 깊이있는 사상과 실천을 보여주고 있는 세계적인 지성, 활동가들을 초빙해서 앞으로 연속강좌를 열면, 그 강좌 자체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로 인해서 한국에서 지금 일하고 있는 우리의 동지들에게 꽤 큰 자극도 되고,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상당히 구체적인 지침을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 이 자리, ’21세기를 위한 연속사상강좌’ 제1회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여기 모신 토다 키요시 선생님께는 약간 실례되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이 1회 강좌는 삼보일배를 통해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형식을 창조하신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을 모실 작정이었습니다.《녹색평론》지면에서도 그렇게 알리는 공고가 나갔죠. 그렇지만, 세상일이란 늘 우리 같은 사람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모양입니다. 저는 삼보일배가 끝나고 난 뒤 두 분 성직자께서 그동안 상한 몸을 좀 추스르고, 피로가 풀리는 기간이 한두달 걸릴 것이고, 그래서 9월 말쯤에 대구로 모시는 게 가능하리라 생각했는데, 상황이 전혀 엉뚱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문규현 신부님은 지금 부안에서 단 한시간도 몸이 빠져나올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저희 팀이 부안으로 가서 사상강좌를 개시해볼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지금 부안의 분위기는 이런 한가로운 강좌를 열기에 적당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리고, 삼보일배를 중심적인 화제로 삼아야 할 텐데, 지금 비록 부안의 풀뿌리 민심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해도 역시 새만금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전북민심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거기 가서 섣불리 새만금 문제를 건드리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마침 토다 키요시 선생이 다른 모임의 초청으로 한국에 오시기로 되어있었는데, 이 분을 대구로 오시게 해서 이 강좌를 여는 것도 뜻있는 일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토다 선생은 몇년 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저서《환경정의를 위하여》를 통해서 이미 한국 독자들에게도 알려져 있는 분이고, 이번에 녹색평론사에서 때마침 두번째 저서《환경학과 평화학》의 한국어 번역판이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한층 평화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매우 시의적절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다른 평화문제 관련 저서들과도 좀 다르게 평화문제를 동시에 환경문제로 파악하고 있는 점이 매우 돋보입니다. 어쨌든 좋은 기회로 생각되어, 토다 선생을 이번에 처음 초청하신 주체인 서울의 ‘상계동 모임’ 쪽의 협력을 얻어서 급히 이 모임이 성사되도록 일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토다 선생님이 대구까지 귀한 걸음을 해주셨습니다.
이런 행사는 주관하는 사람들의 뜻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과 같이 이렇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이 주목해주시는 덕분에 이런 자리가 열릴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사상강좌를 구상하고,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과정에서 사실 저는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대부분 실질적인 일은 제 주위의 동료들이 다 했습니다. 앞으로 저와 같이 이 강좌를 꾸려갈 ‘사상강좌 운영위원회’ 멤버들을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지금 영남대 인문과학연구소 소장으로 계신 이승렬 교수입니다.(박수) 그리고 운영위원회의 간사로 강사 섭외를 비롯하여 어려운 일을 도맡은 영문과의 박혜영 교수입니다.(박수) 또 오늘 사회자로 수고하고 계신 변홍철씨,《녹색평론》편집장입니다.(박수)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데는 늘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대학교수들이 맨날 어렵고 힘든 일은 조교한테 다 시키는 못된 버릇이 있잖아요. 그 조교 노릇을 하는 송경숙씨, 영문과 대학원생입니다.(박수)
오늘 모임은 토다 선생님의 간단한 발제가 있고, 이어서 주로 저와 대담형식으로 말을 주고받기로 되어있습니다만, 사실 대담이라기보다는 제가 주로 질문을 하고 토다 선생께서 대답을 해주실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성공적인 모임이 되느냐 마느냐는 거의 전적으로 통역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통역을 맡아주실 분을 소개합니다. 통역은 두 분이 맡아주시겠습니다. 발제문을 통역하실 김원식 선생님입니다.(박수) 김 선생님에 대해서는 아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대개 모르실 겁니다. 우리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기복을 겪어오신 분입니다. 오랜 세월 옥중에서 살아오셨고, 출옥 후에는 아나키즘의 입장에서 환경운동, 반핵운동, 평화운동에 헌신해오고 계신 우리나라의 가장 연로한 사회운동가 중의 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일본의 사회운동, 환경운동가들과 깊이 교류해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오늘 대담 부분의 통역은 영남대 심리학과의 이광오 교수님이 수고해주시기로 했습니다.(박수) 이 선생님은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공부를 하셨고,《녹색평론》의 애독자이면서 환경문제 등에 대해서 많은 지식과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일본 사람들도 탄복할 만큼 일본어가 능통하신 분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토다 키요시 선생님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이번 책에 약력이 나와있습니다만, 보시다시피 상당히 젊은 분이죠. 1956년 생입니다. 저보다 거의 열살 적은데요.(웃음) 오사카 시립대학의 농학부에서 공부한 다음,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사회과학 공부를 하셨습니다. 그 뒤 일본 각지에서 여러해 동안 강사 내지는 비상근 교원을 지냈습니다. 교편을 잡으면서 동시에 각종의 사회운동에 참여해왔습니다. 지금 나가사키대학 환경과학부 조교수로 계십니다. 이게 공식적으로 나와있는 약력입니다. 이 분은 가끔 제가 보는 일본잡지에 글을 쓰고 계시기 때문에 늘 제가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만, 일본 사람 가운데서도 굉장히 치밀한 사람인 것 같아요. 오늘 김원식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이 분이 예전에 고등학교 학생 때에는 귀재라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수재도 아니고 귀재라고요.(웃음) 책을 보면 아주 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관심 분야가 다채롭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꼼꼼하게 출처를 밝히고 있어요. 아까도 점심 먹으면서 잠시 이야기 나누는 동안에 우리가 하는 얘기들 가운데서 뭔가를 열심히 메모하고 그러는 걸 봤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기록을 잘 안하고, 거의 기억에만 의존하려고 하잖아요. 반성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토다 교수는 몇년 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책에서 그랬지만, 이번에《환경학과 평화학》에서도 너무나 치밀해요. 그가 하는 거의 모든 발언에 확실한 근거를 댑니다. 그냥 대충 넘어가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평소에 끊임없이 메모를 하고, 스크랩을 하고, 분류를 하고, 정리하고 하는 작업을 쉴새없이 하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이런 점에서 굉장히 본받을 만한 분입니다. 이번 책에서 그런 것을 더 느꼈습니다만, 평화와 환경에 관련된 문제, 지구 전역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 남북문제 등 무엇이든 이 분의 관심사가 아닌 것이 없어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끊임없이, 치밀하게 기록하고 정리한 결과로서 나온 책이니만큼 평화나 환경문제에 대한 훌륭한 참고서로서도 손색이 없어요.
그리고, 또 존경할 만한 것은 일본의 풀뿌리 사회운동, 생활협동조합 운동에서 무려 19년간이나 밑바닥 일꾼으로 자원봉사를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근대화는 아시아의 다른 민족뿐 아니라 자기들 가운데 하층민들에게도 심한 편견과 차별을 제도화 내지는 구조화해온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분은 굉장히 가난한 집 출신일 뿐만 아니라, 일본사회에서 전통적으로 극심한 천대를 받고 소외되어온 소위 부락구민 출신이에요. 그런 출신배경이 아마 대학에 자리잡는 데에도 큰 장애요소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물론 일체의 권위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그의 아나키즘 사상도 대학교수로서 인준받는 데 지장이 되었겠지요. 그래서 상당히 늦은 나이에 조교수가 됐습니다. 물론 일본의 조교수는 한국의 조교수와는 개념이 상당히 다릅니다만. 아까 얘기를 들으니, 앞으로도 이 대학에서 조교수 이상으로 승진할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웃음) 그런 뿌리깊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지금도 엄존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분의 저서를 읽어보면 도처에서 인간불평등의 문제, 공정성의 문제, 인간사회에서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차별하는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몇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이 분의 첫 저서《환경정의를 위하여》가 번역 출판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대개 자연과 인간의 공생문제, 이런 데에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다 씨는 이미 그때부터 환경정의라는 문제를 아주 날카롭게 제기하고 있다는 게 꽤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에서도 제가 느꼈습니다만, 예를 들어서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된다는 강한 주장을 펴는 장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를 여러가지 열거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게 뭐냐 하면 교도소에서 사형집행을 담당하는 교도관에게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사형제도가 강요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면은 아무리 열성적인 사형폐지론자들이라도 별로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분은 이런 걸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거예요. 평소에 인간평등 문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밑바닥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는 습관이 없었다면 이런 데 주목하기는 어려웠을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존엄한데, 그런 존엄한 인간에게 다른 인간의 목숨을 뺏는 일을 합법이라는 명분으로 강요하는 것은 가혹한 노동이다, 그러니 이런 점에서도 사형제도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그런 논리이지요. 하여간 인간의 근원적 존엄성, 평등사상에 철저한 분인 것 같아요.
빠트린 것이 있으면 나중에 보완하기로 하고, 우선 이 정도로 제 이야기는 마치겠습니다.(박수)
발제 ― 환경과 평화의 세기를 위하여
토다 인류는 400만년의 역사 속에 일만년 전의 ‘농업혁명'(농업의 발명)과 18세기의 ‘산업혁명'(공업사회의 성립)이라는 커다란 전환점을 거쳐, 현재, 공업문명은 앞길이 막혀 ‘환경혁명’을 필요로 한다고 미국의 레스터 브라운은 말한 바 있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역사가 윌리엄 맥닐이 말하듯, 1500년경까지는 이슬람문명과 중국문명이 우위였고, 유럽은 뒤떨어진 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1500년경부터 유럽문명 우위의 시대가 시작되어(콜럼버스 이래의 500년), 17세기의 과학혁명, 18세기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유럽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어몬드가 말하듯이, 자연조건의 차이가 문명간의 차이를 만들어냈는데도, 아즈텍과 잉카를 정복한 16세기의 스페인 사람들은 백인이 우월하다고 믿었습니다. 이 500년은 자본주의, 근대국가, 과학기술, 군사력이 서로 뒤엉켜서 발전한, 백인남성 우위의 시대입니다.
그 귀결이 ‘아메리카의 세기’라는 20세기로, 1908년에 자동차의 대량생산에 의한 석유낭비 경제가 성립되고, ‘환경파괴와 전쟁의 세기’가 되었습니다. 미소 냉전시대부터 미국의 일극(一極)지배 시대가 되었지만, 미국의 경제적 지배의 절정은 오히려 1950년대(세계 GDP의 50%)였으며, 현재는 쇠퇴과정에 들어서(세계 GDP의 20%), 방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차입금의 3분의 2가 동아시아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徐勝,《週刊金曜日》2003. 9. 19).
1948년에 미 국무성의 조지 캐넌은, 세계인구의 6.3%를 차지하는 미국이 세계 부(富)의 50%를 필요로 한다고 했고, 1997년에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세계인구의 4%를 차지하는 미국이 세계 부의 20%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불평등을 유지하기 위해서 힘(군대)도 필요하다고 내비쳤습니다. 전세계가 미국인과 같은 소비를 하면 5개의 지구가 필요하게 된다고 하는데요. 아시아의 OECD 가맹국인 일본이나 한국도 이러한 낭비문명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한편에서, 지구상에 현재 10억명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석유문명은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일부인 농업도 지금은 수출대국이지만, 지하수의 고갈, 표토의 유출, 농약과 화학비료의 과용, 유전자조작 작물의 남용 등으로 장기적으로는 큰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곡물자급률이 낮은 아시아의 선진공업국(일본, 한국, 대만)은 계속해서 미국에 의존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낭비문명의 장래에 불안을 느끼는 미국은 부시(아들)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구온난화에 관련된 교토의정서 이탈, ‘대(對)테러’ 등을 구실로 한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공 등, 환경 면에서나 군사 면에서 거듭해서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미국 주도의 WTO나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는 환경파괴와 불평등을 더욱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군사대국으로 낭비문명과 불평등을 존속시키려고 합니다. 또, 신자유주의와 군국주의가 결합해서 평화와 환경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1950년대의 키시 노부스케(전쟁범죄인), 1980년대의 나카소네 야스히로(전 제국해군장교)와 나란히 반동정권을 이끌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아시아의 영국’이 되기 위해서 ‘북조선문제’를 이용해 유사법제를 만들었고, 이라크 파병법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프랑스혁명 이래의 ‘추정무죄’ 원칙을 뒤집어엎고 대량파괴무기의 증거(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만)가 없는데도 이라크를 침공해, 무고한 시민을 많이 죽게 했습니다. 민주주의(democracy)는 금권정치(plutocracy)가 되었으며, 부시는 사상 최고의 선거자금 2억달러를 쓰고, ‘엉터리 대통령’이 된 인물입니다. 일본에서도 국민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이라크 파병을 비롯해서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20세기 문명의 세가지 큰 문제는, ① 환경파괴와 자원낭비의 문명(그 전형은 핵의 군사이용과 민사이용), ② 그것이 가져온 불평등과 빈곤, ③ 그것을 유지하는 군사화(미국은 50년간의 공습을 비롯한 국가테러로 1천만명 이상의 비전투원을 살상했을 것입니다)입니다. 21세기 벽두에도 이것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과제는 ‘전쟁과 환경파괴의 세기’를 ‘평화와 환경의 세기’로 전환하는 것이며, ① 환경보전과 환경정의, ② 평등과 글로벌한 정의, ③ 탈군사화입니다. 부유한 나라에 비해 가난한 나라의 임산부나 신생아의 사망 위험률이 600배나 되는(Multinational Monitor, July/August 2003) 것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더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과거 500년의 자본주의, 국가, 과학기술, 군사력을 검토하고, 계급, 민족·인종, 젠더(性)의 위계구조를 검토해서, 전쟁과 구조적 폭력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500년간 계속된 ‘근대 세계시스템’은 종말을 향해서 가고 있지만, 이것을 대체하는 세계가 ‘환경, 평화, 평등’의 세계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10-20년 동안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부족한 이야기는, 제가 쓴《환경정의를 위하여》(창비사, 김원식 옮김, 1996년),《환경학과 평화학》(녹색평론사, 김원식 옮김, 2003년)을 참조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박수)
대담
김종철 저부터 말을 꺼내죠. 오늘 대담이 될지 질의응답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김원식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토다 선생께서 며칠 서울에 머무는 동안 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고 그래요. 무슨 공부할 게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분의 꼼꼼한 치밀성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지금도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저도 노력하겠지만 여러분들도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토다 선생님께 말을 건네겠습니다. 이번이 두번째 한국방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일본에 비교해서 한국에 와서 특별히 느끼신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토다 4년 전에 왔을 때 느낀 감회나 마찬가진데, 한국에 와서 한국이 아시아의 선진공업국으로서 일본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자동차가 4년 전에 비해서 많아진 게 새로운 느낌이고요. 한국의 대기오염이 멕시코시티에 버금가는 그런 수준이라는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서울의 거리를 다니다 보니까 포장마차가 참 많았는데, 일본의 후쿠오카에도 포장마차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정겨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돌아본 곳은 서울과 대구인데요. 나가사키와 비교하면 두 도시 모두 훨씬 대규모의 도시입니다. 나가사키에는 전차가 있는데 여기는 아마 그것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김종철 이번 책에서 읽은 것입니다만, 토다 선생님은 나가사키에서 생활하시면서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으시고, 걷거나 자전거로 생활하신다고 하는데, 나가사키가 그럴 만한 도시환경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그것도 포함해서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신념 때문인가요?
토다 제가 자동차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한 것입니다만, 사실은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께서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는 데에 대해서 심리적인 저항감 같은 것이 일찍부터 있었습니다. 제가 어머니 뱃속에 있었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사는 나가사키는 노면전차라든지 버스라든지 이런 대중교통 수단들이 남아있어서 교통이 굉장히 편리하고, 또 제가 근무하는 나가사키대학까지는 저희 집에서 한 10분이면 걸어갈 수 있기 때문에 별로 불편함을 모르고 지냅니다. 다만 나가사키 바깥으로 나갈 때에는 좀 불편함이 있는데요. 그럴 때는 버스라든지 대중교통 수단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면전차가 옛날에는 굉장히 많았는데요. 도쿄에도 많았고, 오사카에도 많았고, 그랬습니다만, 지금은 거의 다 없어지고, 대도시에서 그런 것들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라든지 나가사키라든지 이런 도시에 노면전차들이 남아있습니다.
김종철 너무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주시는군요.(웃음) 아까 질문과 결국 같은 질문이지만, 여름에 냉방장치를 가동하지 않고, 겨울에는 난방을 하지 않는 대신에 옷을 두텁게 껴입고 지내신다고 책에서 쓰셨는데, 물론 에너지 문제를 고려한 생활실천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 대학에서 봉급으로 받은 돈은 대체 어디에 씁니까?(웃음)
토다 어머니가 계신데요. 어머니는 1932년에 태어나셨습니다. 행정상의 여러가지 착오가 있어서 어머니가 연금을 받지 못하시고, 생활이 어려우신 데다가 도쿄에 살고 계십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도쿄는 세계적으로 물가가 비싼데,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데 상당부분 쓰고 (웃음) 그렇습니다.
김종철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일본의 대학교수는 일반적으로 한국의 교수보다도 박봉 생활입니다. 토다 선생님,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 외에 일본에서 각종 시민운동에 관계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토다 학생시대 때부터입니다만, 나가사키에도 작지만 원자력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가 있습니다. 나가사키에 공급되는 전기의 50%는 사가현에 있는 원자력발전소에서 공급되고 있습니다. 나가사키의 공기가 오염되고 있는데요. 오염을 막기 위한 운동에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화호라든지 새만금 방조제라든지 이런 것도 굉장히 유명한데, 일본에서도 그렇게 유명한 것이 바로 이사하야라는 곳에 있는 것인데요. 부당한 공사를 계획해서 시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그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와 함께 피폭 도시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이라크전쟁과 관련해서 열화우라늄탄이 이라크에 투하되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그 문제와 관련된 사진 전시회라든지 그런 일들을 나가사키에서 개최하고 있습니다. 바스라와 바그다드에 피해자들이 많고 의사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 의사들이 오염 때문에 백혈병에 걸린다는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나가사키에 직접 와서 강연이라든지 일을 하셨고, 저도 강의에 참석하여 통역을 한다든지 일을 했습니다.
김종철 반핵문제라든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우선 제가 또 하나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토다 선생님은 청년시절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져, 대학 나오자마자 소비자 단체의 실무자로서 장기간에 걸쳐서 자원봉사를 하시고, 지금도 풀뿌리 민중의 입장에서 환경문제나 평화문제를 생각하시는 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만, 특별히 자기 인생을 그런 방향으로 살아가기로 하는 데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예를 들어, 지금은 고인이 된 저명한 반핵운동가 다카기 진자부로(高木仁三郞) 씨는 말년에 쓴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말하자면 제도권 안의 과학자에서 제도권 밖으로 나가서 반핵운동에 골몰하는 시민과학자가 된 중요한 동기 중의 하나가 젊은 시절에 일본 원자력공사에 취직해서 일할 때 자기가 맡은 일이 태평양 바다 밑의 흙에 들어있는 방사능의 농도를 조사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지구는 원래 형성기에 방사능이 많았고, 6억년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 표층에서는 방사능이 거의 사라져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지층에서는 엷게나마 천연적인 방사능이 아직 발견되지만, 표토 부분에서는 거의 방사능이 발견되지 않아야 정상인데도 자기가 실지 조사해보니까 오히려 놀랄 정도로 방사능 함유량이 많더라는 겁니다. 그것은 2차대전 이후에 계속되어온 핵실험 때문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게 이 분이 나중에 도쿄 도립대학 교수라는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시민과학자로 변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토다 선생께서도 그런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토다 다카기 진자부로 씨처럼 그런 큰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관련되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한가지 말씀드린다면, 제가 대학시절에 수의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래서 생물학을 배우고 그 생물학을 배우는 중에서 원자력의 문제라든지 화학물질이라든지 근대 기술력이라든지 이런 것들의 결과로 생태계가 교란이 되고, 그래서 동물과 인간의 삶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런 운동에 참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만, 제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문제를 세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는 원자력 문제인데요. 이라크의 열화우라늄 오염에 관한 문제만 하더라도 오염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생물 또는 생태학이라고 그럴까요. 인간과 동물과 식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야생동물을 남획한다든지 또 실험실에서 동물을 사용해서 실험을 한다든지 하면서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을 지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종철 선생님도 자주 언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독일 녹색당 창시자 중의 한사람인 루돌프 바로가 동물학대 문제에 대해서 가졌던 그러한 관심, 이것이 저의 두번째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번째는 담배의 문제입니다. 담배라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 않고 환경에도 좋지 않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세계에서 담배 때문에 죽는 사람이 매년 4백9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담배연기 속에는 일종의 방사능 물질인 폴로늄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알파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라늄이라든지 이러한 것들과 유사한 여러가지 피해를 줍니다. 일본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그런데요. 환경운동이나 평화운동에 참가하고 계신 분들이 아직도 담배를 많이 피우고 계신 것에 대해서 저는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웃음)
김종철 담배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입니다. 아까 제가 여쭤봤을 때 본인은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다고 하셨지요. 그러니까 담배 피우는 사람의 고충을 모르는 모양입니다.(웃음) 저는 담배를 오래 전에 끊었습니다만, 담배가 건강문제도 건강문제지만, 환경을 막대하게 파괴하는 주범 중의 하나라니 보통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세계에서 벌채되는 삼림 중의 절반 이상이 담배 건조용으로 쓰인다는 것은 토다 선생님 책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담배 당장 끊어야 되겠지요. 담배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담배나 커피 등 기호식품은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데, 선생님은 담배를 얘기하셨지만, 담배나 커피는 대개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잖아요. 저로서는 좀더 심각한 것은 설탕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설탕의 문제점이나 유해성에 대해서는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더 그래요. 인간의 건강에 관해 말하자면, 지금의 의학상식에서는 간과되고 있지만, 설탕이 담배보다도 더 치명적으로 유해하다는 독립적인 과학자들에 의해 발표된 학술적인 정보들이 꽤 있습니다. 정부나 관련기업, 주류의학계에서는 그런 사실을 적극 은폐하거나 무시하고 있지만, 따져보면 근대 식민지 역사의 산물인 설탕을 만약 인류가 먹지 않는다면, 인류의 건강이 오늘날처럼 이렇게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특히 정신건강, 뇌신경계의 이상이 많은 경우 설탕 섭취와 관계되어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담배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설탕문제도 반드시 거론해야 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토다 설탕문제는 미국적인 식생활의 문제라고 저는 봅니다. 미국적 식생활의 특징이라는 건 세가지입니다. 하나는 고기, 즉 살코기이고, 또 하나는 기름, 기름 가운데서도 동물성 기름, 그리고 또 하나는 설탕, 이 세가지가 미국적인 식생활을 대표한다고 봅니다.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지만, 미국적인 식생활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고 있는 나라입니다. 미국에서는 조사에 의하면 담배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이 1년에 약 40만명, 비만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약 3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비만 때문에 심장병이나 당뇨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사람이 비만이 되는 것은 살코기의 과다섭취, 다음에 기름, 다음에 설탕의 과도한 소비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탕이 우리의 신체나 정신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김종철 선생님이 지금 하신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래서 기호품이라고 해서, 기호품은 개인의 선택이라 해서 그것을 개인의 선택에 맡겨두기에는 문제의 심각성이 매우 커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담배, 술, 설탕, 이런 것이 다 기호품입니다만, 이러한 것을 개인의 선택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고, 술도 별로 안합니다. 그러나 단것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저도 이것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처집니다.(웃음)
김종철 앞으로 쓰실 다음 저서에는 설탕문제도 다루어주시기 바랍니다.(웃음) 지금 말씀하시는 도중에도 그런 얘기가 나왔지만, 일본과 한국의 청소년들의 식생활이 거의 미국화되어 가고 있는 게 정말 문제인 것 같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청소년들의 비행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있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얼마 전에는 12살짜리 소년이 네살 먹은 어린아이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살해하는 일이 일어나서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 기성세대의 보수층 인사들은 소년범죄를 다스리는 법을 더 강화해야 된다는 식으로 논의를 끌고가고 있다는데, 실은 그런 청소년 범죄나 비행의 근본원인이 지금 일본이나 한국사회가 구조적으로 자식을 제대로 키울 수가 없는, 어린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가 없는 그런 환경으로 가고 있는 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특히 아이들의 일상적인 식생활이 미국화된 게 제일 중요한 요인이 아닌가 싶어요. 육체적인 건강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의 정신위생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제 생각에는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또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식생활 패턴을 비롯한 생활양식의 면에서도 거의 돌이킬 수 없이 미국문화에 예속되어 있는 정도로 볼 때 앞으로 장래가 심히 암담한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토다 청소년들의 식생활이 미국화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지금 일본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제 중에 ‘페트병 증후군’이란 게 있습니다. 페트병 증후군은 페트병에 든 콜라나 주스 같은 단것을 아이들이 너무 마시고, 거기에 중독이 된 결과입니다. 설탕은 체중 1kg당 하루 1g을 섭취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체중이 20kg이라면 그 아이는 하루에 20g 정도 설탕을 섭취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페트병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적정 설탕 소비량의 5배 내지 10배의 설탕을 먹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잘못된 식생활이 아동들의 정신적인 건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고 아이들이 도넛을 많이 먹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많이 먹는다든지 하는 그런 식생활 패턴이 두드러진다 하겠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고기나 지방 섭취와 같은 잘못된 식습관이 몸에 밴다고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상당히 폭력적인 애니메이션들이 매우 유행하고 있습니다. ‘드래곤볼’ 같은 애니메이션에서는 폭력 장면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죠. 그러한 폭력문화는 미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습니다만, 만약에 일본도 미국처럼 총기소지가 자유롭다면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이즈미(小泉) 정권이 유사시 법안이라는 것을 만들어, 자위대를 외국에 파병하려고 했는데요. 이러한 것도 역시 일본에서 폭력문화가 심각해지고 있는 하나의 표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폭력문화는 당연히 아이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옆에 있는 캐나다도 총기소유가 자유화되어 있지만, 총기에 의한 살인사건은 미국에 비하면 매우 낮습니다. 캐나다에 그렇게 총기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기에 의한 범죄가 적은 것은 캐나다가 미국의 옆에 있으면서도 미국의 군사행동에 추종하지 않는, 추종의 비율이 아주 낮은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나 한국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협조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일부 사람들이 청소년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 처벌법안을 강화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요. 청소년 범죄와 비행에 대한 이러한 엄벌주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선진국가 중에서도 사형제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입니다. 그 사실과 소년범죄, 소년비행에 대한 엄벌주의 움직임이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과거의 얘기입니다만, 일본제국주의 당시에 고문을 통해서 거짓자백을 얻어내는 범죄가 있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고문이라는 것은 없어졌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짓자백이라는 것은 상당히 퍼져 있습니다. 소년범죄, 소년비행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거짓자백에 의해서 성립되는 억울한 범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년범죄에 관해서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소년비행이라든지 소년범죄를 막겠다는 것은 현명한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범죄에 관해서는 식생활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것들을 충분히 고려해서 대책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지난번《환경정의를 위하여》라는 저서가 나온 이후에 이번에 새롭게 나온 책에서는 선생님의 관심이 환경을 넘어서, 평화문제에 크게 집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최근 좀더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미국의 침략전쟁으로 인한 영향이 아닌가 짐작되는데요. 지금 일본과 한국이 실질적으로 미국의 식민지적 상황에 있기 때문에 일본사회나 한국사회가 계속해서 역사적인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 지금 진정한 평화와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자면 미국이 물론 변해야 되지만, 미국이 저런 상태로 제국주의적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일본과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나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저항의 힘이 얼마나 크냐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에 일본에서 전후 반세기 동안 어떻든 유지되어온 평화헌법 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볼 때 굉장히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서는 군사독재 체제가 붕괴되고 직접선거에 의해서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도 꽤 여러해가 지났습니다만, 아직도 냉전시대의 논리를 내세우는 소위 기득권층의 정치적, 사회적 지배력이 조금도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이른바 종전(終戰)과 해방이라는 역사적 계기를 슬기롭게 처리하지 못한 결과로서, 그러니까 해방 뒤에 한국은 친일파 내지 친일부역자를 청산하는 문제에 실패함으로써 이런 역사가 시작되었고,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전범을 처리하는 과정, 특히 1946년에 시작된 도쿄재판에서 천황을 불러서 재판정에 세워 전쟁책임을 묻지 못한 역사적 귀결로서 결국은 오늘날 일본의 정치 기상도가 다시 우경화로 치닫게 되는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토다 저는 일본 전범을 처리하는 도쿄재판에 두개의 큰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천황을 피고로서 세우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된 이면에는 미국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결국은 당시의 냉전상태에서 미국이 소련과 대립하게 된 상황에서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고, 일본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천황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두번째 큰 문제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용어입니다만 대량살상무기가 폐기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지금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문제는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이라크에 대해서, 대량살상무기를 실제로 가지고 있고 사용해본 적이 있는 미국이, 사용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과 도쿄재판에서 대량살상무기가 적절하게 처리되지 않았던 사실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량살상무기에는 핵무기, 생물무기, 화학무기, 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핵무기는 물론 도쿄재판에서 재판을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도쿄재판은 이긴 자가 진 자를 심판하는 재판이었기 때문에 미국이 가진 핵무기를 미국이 재판할 수는 없었습니다. 핵무기를 사용한 것은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은 자신들이 저지른 핵무기 사용이라는 범죄행위를 재판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의 두가지 대량살상무기는 일본이 사용했고, 따라서 그 두가지 무기의 사용에 대해서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전쟁범죄를 재판하는 것이 도쿄재판의 목적이었다면 이 생물무기와 화학무기에 대한 재판은 당연했습니다. 생물무기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731부대, 즉 이시이(石井) 부대가 그것을 개발해서 사용했는데요. 한국의 독립기념관에 전시기념물이 있습니다. 생물무기 사용에 대한 자세한 전시는 중국의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데 저도 그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물무기는 재판을 제대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미국이 이 생물무기를 스스로 사용하고 싶은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학무기 또한 일본제국주의 군대가 중국에서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서는 당시 도쿄재판의 소장(訴狀)에 기록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그것은 삭제됩니다. 삭제된 이유는 화학무기에 대해서 재판에서 이야기가 많아지면, 결국 핵무기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한 것은 미국과 일본인데, 결과적으로는 대량살상무기에 관련해서 미국도 일본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이런 핵무기, 생물무기, 화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통상적인 무기, 즉 클러스터 폭탄이나 열화우라늄탄 같은 것을 사용한 데 대해서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일본이나 미국이나 모두 사형제도를 가지고 있고, 또 거짓자백에 의한 범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보고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수백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자백에 의해서 사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아무 죄도 없는 이라크 민중 7천명, 8천명을 죽였다고 해서 뭔가 양심의 가책을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50년 전에 미국은 소련과 대항하기 위해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을 점령해서 예속적인 상태로 유지해왔습니다. 그런 조치 중에는 일본과 한국에 미군기지를 대규모로 유지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미군기지가 범죄라든지 환경오염이라든지 하는 것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년 유월에 한국의 여학생이 미군 탱크에 살해당하는 사건에서 볼 수 있었듯이 미국은 한국에서 구조적으로 범죄를 일으키기 쉬운 그런 위치에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정권이 미국에 의한 예속상태를 강화해서 미국에 협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볼 때, 고이즈미에 비해서 훨씬더 민주적인 입장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동조해서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전후 두가지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천황이 전범으로서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인데, 일본의 매스컴이 범하고 있는 중대한 두가지 실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천황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북한에 관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일본의 매스컴은 북한에 대해서는 대단히 공격적이고, 북한을 어떻게든지 물어뜯으려고 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천황에 대해서는 그 반대로 어떻게든지 천황을 높이고, 천황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보도하지 않으려고 하는 상반된 태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본이 이라크의 위험성을 강조했던 것처럼 일본은 지금 북한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본 매스컴의 이러한 태도는 일본사회의 우경화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조지 캐넌이라는 사람은 2차대전 직후 냉전체제로 접어드는 시기에 미국의 외교정책을 설계하는 데 꽤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 국무성 고위 관리였습니다. 그 조지 캐넌이 “지금 세계 인구의 6.3%를 차지하는 미국은 세계의 부의 50%를 필요로 한다”라고 말하면서, “미국이 세계에 대해 이타주의적인 정책을 실시하거나 윤리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는 생각은 매우 순진한 감상적인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지금과 같은 미국식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경우에 따라 다른 나라를 침략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된다”고 실지로 공언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유명한 말입니다. 그게 1948년이었어요. 지금 부시 대통령만 저런 게 아니고 실제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따지고 보면 물론 그 이전부터겠지만, 일관되게 그런 노선을 취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미안보조약 혹은 한미군사동맹 체제 하에 있는, 따라서 미국의 실질적인 예속국가가 되어있는 일본과 한국의 지배층, 기득권층은 지금 미국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미국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국익에 어긋난다, 국익에 반하는 것이니까 현실적인 노선을 지향해서 미국의 지배층을 추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 일본의 의회를 통과한 유사법제라든지, 또는 일본이나 한국이 공통하게 직면하고 있는 이라크 파병 문제라든지 이런 것에 대한 논의에서 한결같이 주장되고 있는 게 국익론과 현실론입니다. 실제로 이런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일본이나 한국의 지배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주류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예전에 쿠바 사태에 관련하여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맹렬히 비판하는 책《들어라 양키들아》를 썼던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즈는 이러한 현실주의 논리를 ‘미치광이 현실주의(crackpot realism)’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밀즈가 그런 말을 한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이나 일본사회에서 지배적인 것은 미치광이 현실주의입니다.
토다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지금 세계평화와 환경문제, 남북격차 등, 이런 문제를 포함해서 인류사회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여, 21세기가 환경과 평화의 세기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패권주의, 그리고 본질적으로 그 패권주의를 강화하는 도구인 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문제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미국의 패권주의를 약화시키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각도에서 타개책을 강구하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와 관련해서 제가 이번에 토다 선생의 책을 읽다가 눈에 번쩍 띄는 구절이 있었어요. 책의 결론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미국의 패권은 21세기 후반을 기다리지 않고 붕괴할 것이다.” “21세기 후반을 기다리지 않고 붕괴되어야 한다”라고 쓰지 않고 “21세기 후반을 기다리지 않고 붕괴할 것이다”라고 써놓았습니다. 모든 것을 극히 조심스럽게 꼼꼼히 근거를 대면서 적는 토다 선생의 평소 저술태도로 볼 때 상당히 단호한 문장인데, 이 문장은 다른 자료를 인용한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발언입니다. “미국의 패권은 21세기 후반을 기다리지 않고 붕괴할 것이다”라는 그 단호한 발언은 실제 어떤 근거에서 하신 말씀인지 좀 들려주시겠습니까?
토다 21세기 후반이 되었을 때 실제로 제 예측이 틀린다고 해서 제가 뭐 책임을 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웃음) 제가 그런 얘기를 한 것은, 김종철 선생님도 종종 말씀하시는 ‘집단자살체제’라는 것과 좀 통하는 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이트 밀즈가 ‘미치광이 현실주의’라고 말한 것도 결국 미국의 대외정책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미국이 취하고 있는 조치들도 역시 단기적인 안목에서 취한 조치들이지,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자살적, 자멸적 정책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교토의정서 탈퇴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단기적으로는 미국사회에 유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상기온이 발생한다든지, 지구온난화가 심화된다든지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런 피해에서 미국의 기업들도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장래의 큰 변화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현재도 미국의 기업들은 여러가지 인프라의 면에서 취약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자동차 국가가 된 나라인데요. 자동차가 달리기 위해서는 도로가 필요한데, 사실 미국에서 도로를 만든 지는 아주 오래됐습니다. 현재 그 미국의 자동차 도로들은 유지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전력소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전력소비가 굉장히 많은 나라인데요. 그러나 전력시스템이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다는 것은 최근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어난 전력공급 중지사태에서도 우리가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일본은 미국의 국채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국의 국채를 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마 한국도 미국의 국채를 많이 사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국채 구입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원칙적으로는 가능한 일이죠.
또, 미국의 농업생산력을 보자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그것도 역시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아까 발제에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만, 지하수가 고갈되고 있는 중이라든지, 표토가 유실되고 있다든지 하는 얘기를 드렸지요. 그런 것이 지금 미국농업에 매우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시노하라 다카시(篠原 孝)라고 하는 사람인데요. 1982년에 이 문제를 최초로 언급했습니다. 시노하라 씨는 일본의 농림수산성의 관리였습니다. 그는 미국에 1년간 머물면서 미국의 농업을 관찰했는데, 1년밖에 관찰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미국의 농업이 장기적으로 쇠퇴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게 뚜렷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여러 정책들은 다른 많은 나라들로부터 원망을 사고 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조지 캐넌은 미국이 미국 중심의 그런 정책들을 시행함으로써 다른 많은 나라들로부터 원성을 들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조금 전에 김종철 선생님께서 WTO라든지 세계은행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유엔을 비롯하여 이런 국제기구에서는 모든 나라가 한 표입니다. 세계에는 약 2백개 정도의 국가가 있습니다. 국제기구에서 한 나라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0.5%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엔에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여러 나라 있고, WTO나 세계은행도 역시 유엔처럼 의사결정기구가 불평등하게 그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세계은행의 경우 미국은 52%의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약 18%의 투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약 8%의 투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쪽이든 간에 0.5%에 비하면 상당히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셈이죠.
이라크 사태를 계기로 중동에서는 앞으로도 테러가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테러문제도 그렇고, 의사결정의 문제나 세계의 부를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미국은 무리를 합니다. 이렇게 무리를 해서 다른 나라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사태가 계속되면 그 체제는 결국 오래가지 못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상기후를 포함한 여러 기상이변들은 21세기 전반을 통해서 아주 심각한 상태로 점점 발전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10년 안에 미국의 헤게모니가 급격히 약해진다든지 하는 것은 기대하기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로 모순이 계속 축적된다면 앞으로 50년 후, 21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미국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매우 약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예측 이외에 구체적인 자료들의 검토에 바탕해서 아마도 50년이 미국에 있어서는 한계가 아닐까. 50년 후에는 미국의 지배력이 쇠퇴하게 되지 않을까, 라고 직관적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미국정부도, 미국 사람들도 자기들의 영향력이 21세기 후반에 쇠퇴하게 될 것이라는 데 대해서 어느정도 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국은 많은 무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폭주, 즉 멈추지 않고 달리는 폭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폭주는 미국의 현재 지배층을 구성하고 있는 군사산업이라든가 에너지산업이라든가, 정치적으로는 신보수주의파와 같은 지배층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자원의 낭비가 굉장히 심각한데요. 그러한 것도 역시 미국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한가지 예로서, 알루미늄의 소비를 한번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1996년에 1년간 1인당 알루미늄 소비가 얼마냐 하면, 세계평균은 3kg입니다. 인도는 1kg, 중국은 2kg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20kg입니다. 환경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은 17kg입니다. 한국은 15kg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미국의 자살행위를 한국과 일본이 바짝 쫓아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김종철 그런데, 미국이 망하는 것은 좋은데 미국이 망하기 전에 다른 나라나 힘없는 사람들이 먼저 망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이번 책에서 석유자원에 관해서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는 걸 봤는데, 실제로 석유자원 분석가들에 의하면 2010년 무렵에 세계 석유생산량이 절정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그 이후에는 석유값이 폭등할 것이기 때문에, 석유에너지를 기반으로 발전되어왔던 문명사회가 엄청난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아마 토다 선생께서도 그런 정보에 대해서는 이미 익숙해 있으리라 믿습니다만, 그러니까 이런 추세로는 더이상 갈 데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아까 토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듯이 미국의 농업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과 한국이 지금 산업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식량자급률이 낮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령 권력 엘리트들, 경제계 사람들이나 소위 전문가들은 앞으로 생명공학의 힘으로 식량문제는 거뜬하게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위 테크놀로지의 힘으로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생태적, 사회적 위기를 극복해갈 수 있다는 논리가 현재 주류문화 속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이 논리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가 대처해나가야 하는지 의견을 말씀해주시겠어요?
토다 일본에서도 생명공학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유전자조작식품(GMO)이라는 게 있습니다.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해서는 지금 많은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초제에 대한 내성과 해충에 대한 내성을 식물들이 갖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는 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제초제에 대한 내성을 키우게 되면 농약오염이 심각해질 것입니다. 해충에 대한 내성을 강화하는 데 유전자를 조작하게 되면 살충제에 대한 오염이 사람에게도 심각하게 미칠 것입니다. 그런 문제가 있긴 하지만 수확량은 확실히 증대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벤부르크 교수는 이런 유전자조작식품을 개발하고 재배하는 데 대해서, 수확량이 느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준다는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벤부르크 교수의 보고에 대해서 제대로 반론을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전자조작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로 수확량을 늘리게 될지 줄이게 될지, 이에 대해 아직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유전자조작식품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는 다른 문제보다도 공업과 농업의 밸런스, 이런 것을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진국들은 공업이 발전해 있습니다. 공업과 농업을 비교해볼 때 공업에 대해서 더 많은 투자를 하고, 공업에 기반을 두고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농업에 있어서 공업적인 논리라고 하면 농약의 사용이라든가 유전자조작식품이라든가 하는 것을 예로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농업에 대해서 말한다면, 좀더 농업 중심적으로 생각해야 되고, 공업의 논리로서 농업을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일본과 한국은 식량자급률이 30% 정도이기 때문에 농업에 대해서 더 많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쉽지만 두어개 질문만 더 드리겠습니다. 지금 공업과 농업의 적정한 배분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까 말씀하신 일본 농림수산성 관리 시노하라 씨가 또 다른 책에서, 일본이 살려면 대일본주의가 아니라 소일본주의로 나아가야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일본 근대사에서 그런 입장을 취한 논객이 더러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일본정부의 현직 관리가 이런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게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조금 놀랍습니다. 시노하라 씨가 그렇게 얘기한 것은 앞으로의 문명이 살아남으려면 결국 순환적인 사회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러자면 자연히 그런 소일본주의는 농사를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의 농업은 실은 농사라기보다는 공업화된 농업인데, 그것은 기계를 사용하고, 화학물질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농사를 자본주의적 화폐증식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공업화의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를 이대로 두고 우리가 아무리 농업 중심으로 가야 된다고 이야기해보았자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제가 보기에는 이 세계가 많은 사람들의 양심적인 생각과 발언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자본주의적 소득경쟁이라는 관성 속에 우리가 모두 포로가 되어있단 말이에요. 이게 아니고 다른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생활 자체가 자본주의 논리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한 이 예속상태에서 벗어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 저서의 결론에서 토다 선생께서도 서브시스턴스(subsistence)의 관점을 얘기하셨지만, 그러니까 요컨대 단순소박한 삶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하신 셈인데, 그것도 역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성장과 팽창을 생명으로 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는 말이 쉽지 자급 위주의 소박한 생활이란 게 거의 불가능할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과연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이 국면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냐. 이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냐. 그런 구체적인 전략이라든지 프로그램을 갖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지금도 토다 선생은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한국이나 일본에 있어서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이 있을 수 있는지, 그 사례가 있다면 듣고 싶군요. 우리는 일본이건 한국이건 배울 것은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에서 실제로 지식인들이나 시민운동가, 환경운동가 혹은 풀뿌리 민중운동 차원에서 새로운 삶을 실현하기 위한 진지한 실험 같은 게 있다면 소개해주시고, 토다 선생님 자신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전략적 구상이 있다면 아울러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토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농업이라는 것도 결국 대기업의 이익에 따라서, 의향에 따라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농업도 이익 중심이 되고, 단기적인 수지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농업의 공업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몬산토 회사가 될 것입니다. 유전자조작 곡물을 만들어내는데, 그 종자가 바람에 날아갈 수 있습니다. 또는 꼭 종자가 아니라도 식물의 화분(花粉)이 다른 데로 날아간다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농민의 밭에 떨어져서 자란다든지 화분이 거기로 들어온다든지 하면 그 종자를 개발한 생명공학 회사가 그 농민을 상대로, 자신들의 그 곡물 종자에 대한 소유권을 그 농민이 훔쳐갔다고 소송을 제기한다든지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분이 날아갔는지 검사하기 위해서 대기업의 직원들이 함부로 농민들의 밭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채취해 온다든지 이런 횡포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몬산토 폴리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동정책이 비난을 받고 있듯이 몬산토 회사의 이러한 행위도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의 이런 횡포에 저항하기 위해서 민중들 쪽에서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기업 체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WTO라든지 세계은행이라든지 이런 것에 반대하는 민중집회나 단합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세계사회포럼이라든지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렸던 집회가 그런 예가 될 것입니다.
인도에는 아주 많은 농민들이 있습니다. 그 인도 농민들의 저항이 몬산토 같은 회사들의 횡포에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그렇게 민중의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WTO라든지 대기업들의 횡포에 효과적으로 대처해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의 힘이라고 하면 돈과 그것을 보호하는 군대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대항하는 방법은 민중들의 머릿수, 민중들 사이의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밖에는 현재 생각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책으로서 필리핀의 월든 벨로가 쓴《탈세계화(De-Globalization)》가 상당히 참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보충 질문입니다만, 일본에서 현재 그러한 민중연대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활동이 있는지 좀 말씀해주십시오.
토다 일본의 농민운동 중에는 발전도상국의 농민들과 연대해서 활동하는 그런 운동도 있습니다. 그런 운동이 공정무역을 위한 운동이라든지 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김종철 국가와 자본, 그리고 소위 전문가가 결합된 이 강고한 체제를 뚫고 나아가는 전략으로서 민중연대를 말씀하셨는데,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민중연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되느냐 하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의 우리들에게 큰 고민인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시간이 없으니까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여기는 대학입니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책을 읽고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인데, 지금 일본이나 한국을 막론하고 제일 큰 문제는 대학생들이 책을 안 본다는 사실입니다.(웃음) 최근에 나온《세카이(世界)》 10월호에 보니까《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라는 책을 쓴 노마 필드의 글이 실려있는데, 제목이 〈전쟁과 교양〉이었습니다. 노마 필드는 잘 아시겠지만, 일본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시민으로서 지금 시카고대학의 일본학 교수입니다. 그 분의 글인데, 아마 최근에 어디서 강연한 내용인 것 같아요. 제목이 재미있어서 읽어보았는데, 물론 단순한 글은 아니고 꽤 복잡한 논의를 담은 글이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금 이 세계가 구조적 폭력에 갇히고, 노골적인 전쟁이라는 아주 불길한 위기상황에 빠진 것은 세계적으로 교양계층이 급속히 몰락해가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일본은 전통적으로 세계적인 독서의 나라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그런 일본에서도 이제는 독서인구의 감소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고단샤(講談社)라는 전통있는 큰 출판사가 최근에 부도를 냈다는 얘기도 들리고, 또 일본의 대학생의 지적 수준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다고 걱정하는 얘기도 많이 들립니다. 그런 상황이 일본과 한국에서 지금 공통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금 우회적인 논리인지 모르지만, 지금 세계가 왜 이렇게 급속하게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가를 깊이있게 파악하려면 세계의 현실에 대한 전체적인 상을 그려볼 수 있는 지성의 힘, 다시 말해서 인문적 교양의 힘이라는 토대가 있어야 하는데, 오늘날 전자시대의 스크린이 제공하는 즉자적인 만족의 공간에 흠뻑 빠져있는 젊은 세대들이 이러한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세계의 문제를 인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토다 교수님도 대학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문제에 평소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교양계층의 쇠퇴라는 문제에 대해서 평소에 생각하신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지요. 또, 그 문제와 결부해서, 최근에 작고한 정치사상가 후지타 쇼조(藤田省三) 씨가 벌써 오래 전에 “이제 일본사회는 상품 전체주의 시대로 들어섰다”라는 말을 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2차대전을 유발했던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보다도 더 무서운 게 상품 전체주의 체제인지 모릅니다. 저로서는 교양계층의 쇠퇴와 ‘상품 전체주의 시대’라는 개념은 아무래도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어떻든 사회구성원 속에서 수적으로 열세라 하더라도 교양계층이라고 할 만한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어야 우리가 앞으로 어떤 탈출구를 구상한다든지 전략을 짠다든지, 그런 것이 가능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주 세상이 비관적으로 돌아갈 것으로 우려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토다 최근 일본에서도 학생들 사이에 ‘탈활자’라는 것이 자주 얘기되고 있습니다. 만화는 읽지만 보통 책들을 잘 읽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만화라고 해서 다 나쁜 건 아니고 좋은 만화도 있죠. 만화에서 상당히 많은 것을 배우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미국 사람 안드레아스가 쓴《전쟁중독》이라고 하는 책인데요. 그런 만화를 읽는 것을 계기로 해서 보통 책을 읽는 쪽으로 나아가는 학생들도 많이 있습니다. 노마 필드나 후지타 쇼조가 얘기하고 있는 그런 것에 대해서 저도 완전히 공감합니다. 그 분들이 말하고 있는 상품 전체주의의 문제, 교양의 저하 문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책을 사지 않는데요. 실지로 교과서도 사지 않는 학생도 많이 있습니다.(웃음)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 정도를 사지 않는 학생은 거의 없었습니다. 요즘 학생들 중에 어떻게 하면 교과서를 사지 않고 학점을 제대로 받을 수 있나, 심각하게 고민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웃음)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아주 훌륭한 만화들은 혹시 교양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Star Wars Returns〉란 다큐멘터리)은 미국의 스티브 잼벡(Steve Jambeck)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인데,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라든지 이런 것에 관한 아주 훌륭한 비디오 테이픕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만든 것이고, 일본 사람들이 자막을 넣은 것입니다. 자막은 물론 문자죠.(웃음) 그래서 이것은 아마 형식의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어떤 형식이든지 간에 내용적으로 학생들에게 중요한 사실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그 내용이라든지 형식이라든지 이런 걸 떠나서 제가 생각하기에 ‘역사’라고 하는 것이 학생들의 교양과 관련해서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미래의 일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일을 잘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 중동문제를 생각할 때 과거 11세기에 십자군이 전쟁을 일으켜서 4만명이나 되는 중동 사람들을 학살한 사실이 있는데요. 이런 것에 대해서 거의 학생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에 대한 교양, 그리고 아울러 테크놀로지에 대한 교양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돌아가신 다카기 진자부로 씨와 같은 분의 활동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교양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교양,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판적인 교양, 이런 것들을 갖고 있으면 앞으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에 대해서 독자적인 사고나 행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예. 미진한 것이 많습니다만 시간이 너무 흘러서 여기서 끝을 내야 되겠습니다. 오늘 마지막에 민중연대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는데, 우선 지식인부터 연대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제가 주로 질문을 드리고, 토다 선생께서 답변을 해주셨는데, 다음에는 지식인 연대의 일환으로 토다 선생님이 저 같은 사람을 일본으로 불러서 저한테도 질문을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웃음) 오늘 장시간 좋은 얘기해주셔서 고맙습니다.(박수)
이 기록은 지난 9월 29일 영남대 인문관 101호에서, 녹색평론사와 영남대 인문과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제1회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