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38일간의 단식을 끝내고 산(山)으로 돌아온 저에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던진 질문 중의 하나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견딜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고.
게으른 수행자였던 저를 산이 불러 세웠던 순간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소리는 바위를 깎는 포크레인의 기계소리에 묻혀 아주 가느다란 신음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거기 누구 없나요?
살려주세요 ….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늙은 어머니의 신음소리처럼도 들리는 이 소리는 지금 전국의 산하 곳곳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애처롭게 울리는 이 신음소리는 제게 신의 음성보다 더 무섭게 들렸습니다. 어쩌면 아픈 산하가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건 그 순간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에 낯선 거리에 서는 부끄러움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천성산·금정산 관통 고속철도 반대운동을 했던 지난 2년 동안 많은 단체와 종교인들이 거리에 서고 시민들과 언론이 함께 해주었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었으며, 우리 모두가 이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작은 불꽃으로 타오른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일은 대단히 정치적인 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대선공약으로 채택된 후, 정부는 공사 전면중지의 결정을 내렸고 우리들은 이 사회가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변화를 생명에 대한 사랑과 이 시대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불씨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이 희망의 문은 대단히 좁아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개발에 대한 요구가 희망의 문 앞에 커다란 장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불리웠던 이 땅은 우리의 선조들이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지금의 우리에게 물려준 땅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미래의 아이들에게 이 땅을 온전하게 물려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우리의 의지를 꺾고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산을 파괴하는 죽음의 터널을 뚫으려 달려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이 땅을 지켜온 선열의 염원과 줄곧 숨죽여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의 염원을 안고 3천배 기도에 들며 간절히 원하옵니다. 바라옵나니 몸과 마음으로 드리는 이 참회를 받아주시옵고, 우리가 작은 생명으로 걸음했던 이 대지 위에 희망의 역사를 쓸 수 있도록 저희를 버리지 마소서.
경부고속철도 금정산·천성산 통과에 반대해 지난 3월 14일부터 38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천성산 내원사 지율 스님이 지난 8월 13일부터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하루 3천배 기도를 올리고 있다. 오전 8-11시, 오후 1-4시, 오후 6-9시까지 세차례에 걸쳐 각 1천배씩, 하루 3천배를 바치면서 스님은 "수천배의 절을 하면서 천성산 고속철도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을 떠올리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거죠. 저는 천성산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만큼 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천성산 살리기 운동과 스님의 3천배 기도수행에 관한 자세한 소식은 http://www.cheonsung.com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