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미국과 세계평화
제 앞에 말씀하신 오다(小田) 선생님은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 초부터 이름을 들었고, 또 우리말로 번역된 약간의 글도 읽은 바가 있습니다. 수십년이 지나 이렇게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한 자리에서 얘기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는데, 참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또 러미스 선생은 제가 최근에야《녹색평론》에 실린 에세이들을 읽고서 이름을 비로소 알게 됐고, 그 날카로운 안목에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역시 참 즐겁게 생각을 합니다.
이 발제문에 무슨 내용을 어떤 순서로 정리할까 고심하던 지난 주말(5월 3일)〈조선일보〉와〈동아일보〉 외신면의 한 기사가 제 눈을 끌어당겼습니다. “한반도, 엄청난 폭풍 속으로 진입중”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두 신문 모두 워싱턴 특파원이 보내온 것으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돈 오버도퍼(Oberdorfer)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교수는 5월 1일 이 대학과 한국언론재단이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한반도가 지금 엄청난 폭풍(perfect storm) 속으로 진입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지난 50년 동안 한국문제를 다루어왔지만 “요즘처럼 걱정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걱정하는 까닭은 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많은 한국민들이 북한의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 핵문제가 제기되어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 것 같으며 ② 북한은 확고히 핵무기를 원하고 있고 ③ 미국은 북한에 대해 타협할 자세가 아니라는 점을 꼽았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한 . 미 양국 정부와 국민들이 북한문제에 관해 매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지난 50년간의 동맹관계가 곤경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는데요.
나는 오버도퍼 교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고 그의 견해가 미국의 한반도 정책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짐작하지 못합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 출신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는 6 . 25전쟁이 종전될 무렵부터 현장에서 한국문제를 다루어온 소위 전문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어떤 정책을 공식화하기 이전에, 정부 당국자 자신이 직접 언급하기 어려운 예민한 사안을 학자 또는 기자의 입을 통해 미리 띄워보는 것이 관례이므로, 이 오버도퍼의 견해도 미국 정부의 입김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한마디로 오버도퍼 발언의 진정한 목표는 북한의 핵소유 여부나 미국 정부의 비타협적 자세를 거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방문을 앞둔 남한 대통령 노무현씨를 협박하는 데 있습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을 맞은 미국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해 입에 발린 찬사를 늘어놓겠지만, 한국에서 작동되는 민주주의가 미국으로서는 그렇게 달가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1980년 5월 광주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미국 정부가 일관되게 견지했던 입장, 그리고 1981년 2월 피냄새를 채 지우지도 못하고 미국을 방문한 학살의 주모자를 환대한 레이건 행정부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주주의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처음 내세우려고 애쓴 명분은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다고 미국이 의심한 이른바 대량살상 무기였습니다. 몇가지 증거자료를 제시하기도 하였지요. 물론 그것들은 미국 자신이 날조해낸 것임이 곧 드러났습니다만. 그러자 미국의 침략명분은 강조점이 바뀌었는데, 후세인의 가혹한 독재와 호화스러운 사생활이 미국 주류언론의 가장 즐기는 메뉴로 떠올랐습니다. 가공할 첨단무기들이 동원된 끔찍한 살육과 파괴에 뒤이어 미군은 ‘자유’, ‘해방’, ‘민주주의’ 같은 낱말들을 입에 올리며 인류문명의 발상지를 점령하였습니다. 물론 미국은 이 낱말들을 반어적으로 사용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우리는 ‘역설’, ‘패러디’, ‘희화화’, ‘아이러니’ 같은 부정의 수사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내가 문제삼으려는 것은 미국이 민주주의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민주주의에 대해 이중 삼중의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어느 경우에나 언어는 상황을 사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개념적 일관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버도퍼의 발언에는 그냥 들어넘길 수 없는 우리의 생존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비록 협박의 언사 속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한반도가 1953년 이후 가장 심각한 폭풍 속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그의 암시는 우리에게 엄중한 경각심을 촉구합니다.
돌이켜보면 지난날에도 한반도 해역에 거친 파도가 몰아닥친 적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간첩선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납치되었을 때,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라고 이름붙여진 충돌이 발생했을 때 북 . 미관계는 험악했었고, 김신조사건, 아웅산사건, KAL기 폭파사건 때도 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며칠전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미국이 1994년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려는 구체적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버도퍼는 이 여러 경우들에서보다 더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로 몰려오는 듯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당선 무렵 미국에 대해 당당한 태도를 보이던 노무현씨가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급격히 온순한 자세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직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 것일까요. 대체 미국은 어떤 나라이기에 이처럼 세계를 쥐락펴락 멋대로 지배하는 것일까요. 굴복에 의한 생존이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체제 속에서 독립적인 삶의 길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차단되어 있는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미국은 확실히 특별하고 예외적인 나라입니다. 덩치에 있어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비견될 수 있겠지만, 이 나라들은 과거로부터 넘겨받은 역사적 부채가 너무 무거워서 당분간 눈을 바깥으로 돌릴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같은 나라들은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국민국가적 한계를 넘어서기가 어렵습니다. 19세기에 대영제국이 세계의 바다를 장악했다고 하지만 당시의 과학기술적 발전은 아직 지구 전체를 질적으로 통합할 만한 수준이 못되었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제국’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체제가 있었습니다. 서양인들에게는 로마제국이야말로 그 이름을 낳은 원형이고 모범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오랫동안 중국이 그러한 위치에 있었지요. 중국인들에게 중화제국은 하나의 국가적 영역이라기보다 ‘천하’, 즉 세계 전체였습니다. 아마 로마제국에도 그러한 이미지가 들어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로마 멸망 이후 최초로 서유럽을 통일한 칼 대제에게 ‘로마황제의 계승자’라는 명예가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19세기의 영국은 경쟁자들 중의 최강자였을 뿐이지 절대적 패권의 소유자, 즉 제국은 못되었던 셈입니다. 더욱이 영국은 로마제국이나 중화제국에 비하더라도 제국으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보기 힘듭니다. 물론 영국이 세계 도처에 광대한 식민지를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식민지들은 생각건대 ‘제국의 외부’를 구성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예컨대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 아닌 본토의 확장으로 간주하고자 그토록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은 1950년대에 실패하였습니다. 영국 또한 다른 식민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인접한 북아일랜드조차 ‘제국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데 곤경을 겪고 있고 스코틀랜드도 가끔 딴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황하 유역에서 조그맣게 시작한 중국은 이미 2천년 전에 다민족 . 다계급 . 다문화 국가로서의 제국적 면모를 갖추는 데 성공하였고, 티베트의 경우에서 보듯이 20세기 중반에도 그런 확장의 과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제국보다 더 순수한, 즉 개념에 가장 충실한 제국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미국은 봉건적 과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어떤 역사적 진화과정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콜럼버스의 도착부터 5백여년, 독립혁명부터 230여년 정도의 기간은 거의 동시대라고 부름직합니다. 또한 미국은 진정한 의미에서 다민족 국가입니다. 물론 앵글로-색슨족이 실권을 쥐고 지배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에서 러시안과 한족이 차지하는 것 같은 압도적 비중을 어느 한 종족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수민족들도 미국 안에서 사회학적 게토를 구성하고 있을망정 러시아와 중국에서처럼 지정학적 고유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미국은 인종들의 용광로입니다.
미국의 이러한 다민족성은 다문화적 역동성의 기반인 동시에 미국식 자유와 민주주의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원성은 그 역방향의 벡터, 즉 국가적 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구심을 인위적으로 창출하게 만듭니다. 지난날 유럽을 휩쓸었던, 그리고 그 파괴적 결과에 유럽인들 자신이 경악했던 국가주의적 열정이 오늘날 미국에서 애국주의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난 것을 보는 일은 우리에게 착잡하기 그지없는 노릇입니다.
무엇보다 미국은 물질적 풍요와 광적인 소비주의의 총본산입니다. 이미 미국은 20세기 초에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두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경제적 우위는 더욱 증대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미국은 1940년경 영국으로부터 그 패권적 지위를 상속받았습니다. 어떤 학자는 냉전시대에도 사실상 미국 주도의 단극적 체제였다고 주장하며 고르바초프의 정책은 미국 헤게모니의 공식화였을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소련의 해체는 미국 단일패권에 대한 경쟁의 가능성을 아예 소멸시켜버렸습니다. 생각건대 미국의 이러한 모든 패권적 지위의 바탕은 과학기술과 군사력의 절대적 우월성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1991년 부시 대통령은 이른바 ‘새로운 세계질서’를 선언하기에 이르는데, 한마디로 그것은 이제 미국이 어떠한 국제적 협약이나 외국과의 조약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겠다는 것, 즉 일방주의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미국은 자신이 위협이라고 간주하는 대상에 대한 선제공격, 말하자면 ‘예방전쟁’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유엔체제의 종말선언이고, ‘지구적 제국’의 선포였습니다.
미국의 이러한 일방주의 . 침략주의 경향이 유럽의 약화와 소련의 붕괴로 더욱 강화되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미국이라는 국가의 성립과정에서부터 잠재된 요소의 발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우리의 상식이 되어있지만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에 대한 무자비한 인종청소 없이 미국이 건설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텍사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을 라틴계 국가로부터 강탈하지 않았다면 미국의 경제적 성장은 훨씬 더 지체되었을 것입니다. 2차대전 직후의 그리스 내전, 곧 뒤이은 한반도의 6 . 25전쟁, 그리고 60년대의 베트남 전쟁을 통해 미국은 자유주의적 민주국가로서의 내적 구조와 군사주의적 침략국가로서의 대외적 정책을 결합한 독특한 ‘제국’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미군 궤도차량의 여중생 압사사건과 올해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계기로 반미정서와 반전운동이 대중화되었습니다. 최근 정부는 반전과 반미를 구별하면서 미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반전과 반미는 물론 다른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 옳은 말인 것처럼. 그러나 현실적으로, 강도와 살인을 처벌하여 사법적 정의를 구현하려 할 때 죄인으로부터 어떻게 죄를 분리한단 말입니까. 고대사회에서처럼 손목을 자르는 것은 더 잔인한 고통을 안기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조건에서 반미 없는 반전은 무의미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나에게 오래전부터 의문이었던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 같은 보편적 가치가 어떻게 한 나라 안에서 그 침략주의적 본질과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민주주의와 침략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단선적 발상이었습니다. 가령, 여기서 70년대 박정희 정권과 미국의 관계를 돌이켜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당시 양자 사이에 크고작은 정치적 갈등이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나는 유신독재에 대한 미국 정부의 비판이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판단해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은 미국 정부가 한국의 진정한 민주화를 희망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박 정권의 압도적 우위, 즉 유신독재는 미국이 한반도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데도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여러 정치세력에 의한 권력의 분산과 정기적인 정권교체를 내용으로 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나라에서나 제대로 뿌리내리기까지 일정한 불안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것이야말로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탈레반 정권을 쫓아낸 아프간에서, 후세인 정부를 제거한 이라크에서, 그리고 머지않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미국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민주제’란 바로 그런 정치적 분열과 불안정이 아닌가 나는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강자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약점입니다. 미제국이 몰락의 징조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어제오늘은 아닙니다. 월러스틴 같은 믿음직한 학자도 이제 미국한테 남은 것은 군사적 우월성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경제적 생산성에서 아직 미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지식산업에서도 여전히 압도적입니다. 최고의 문명과 최악의 야만이 하나의 체제 안에 통합되어 있는 지구적 제국이 미국인지도 모릅니다. 그 미국에서, 어떤 사람은 문명을 보고 다른 사람은 야만을 볼 터인데, 우리의 눈에는 야만이 주로 보입니다. 이 야만의 제국은 리영희씨의 예측으로는 이라크에 소비한 신무기의 보충을 위해 2년쯤 숨을 돌린 다음 북한을 향해, 그러니까 한반도를 향해 폭력의 손길을 돌릴 것이라 합니다. 그것은 상상하기도 두려운 재앙입니다. 이 악몽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막는 길은 무엇일까요. 그런 가능성이 있기나 한 것일까요.
여기서부터 나의 이야기는 현실성의 경계를 넘어 거의 공상 속으로 들어서는데, 지구적 제국 체제라는 인류사의 이 야만문명적 단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령 ‘지구적 연방제’가 구성될 수는 없을까 꿈꾸어 봅니다.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은 국민국가적 근원을 단절하지 않고서 어느정도 독자적인 정치경제적 . 문화적 단위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도 지금 정치적으로 분할되어 있지만 언젠가 통합될 수 있는 역사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최근 연속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부흥물결은 주목할 만합니다. 남아시아 또한 아세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대국에 대한 의존과 예속을 점차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직접적 관심사는 동북아시아에 느슨하게나마 하나로 묶여질 수 있는 정치 . 문화적 공동체가 형설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이미 십여년 전에 와다 하루끼(和田春樹) 교수는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구상을 발표하였고, 최근에 나는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저서《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2002년)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그것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대동아공영권과는 전혀 발상을 달리하는, 분권화와 네트워크화를 향해 움직이는 새로운 세계사적 추세에 적응하는 ‘다극적인 안전보장 시스템’인 동시에 경제 . 문화적 공생의 틀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지구 각처의 이런 분권적 . 독립적 단위들이 일종의 지구연방이라 할 만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바로 미국 단일체제의 해체가 급속도로 가시화됨을 뜻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간절한 소원이 담긴 꿈은 발설하는 순간 사람들에게 감화력을 가지며 마치 박토에 날려와 떨어진 민들레 씨앗처럼 현실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이런 문제들과 더불어, 민족문학작가회의를 처음에 김종철 선생이 거론하셨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한 언급을 약간만 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민족 또는 민족주의는 근대 세계의 산물입니다. 또 거꾸로 민족주의가 근대 세계를 만들어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민족국가 체제가 확립된 ‘베스트팔렌 조약’, 1648년에 ’30년 전쟁’이 끝나면서 이루어진 민족국가 체제, 이것이 이번 이라크 전쟁에 의해서 끝장났다, 이렇게 지적하는 글을 어디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하여간 이 민족국가 체제, 민족주의는 근대화를, 근대체제를 만들어냈지만 그와 동시에 이 지구상에 허다한 갈등과 분쟁, 심각한 전쟁을 야기한 것도 사실입니다. 냉전이 끝난 후에도 민족문제와 결부된 크고작은 전쟁들은 세계 여러 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족, 민족주의는 폐기되어야 되는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가 있고, 실지로 그런 주장을 하는 선의의 이론가들도 적지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방금 얘기한 강상중 교수의 글을 읽다가 아주 재미난 표현을 발견했는데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민족의 전압(電壓)을 낮추자.” 아주 적절한 표현,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19세기 또 20세기 유럽에서의 민족주의, 그 변형인 오늘날 미국의 국가주의 . 애국주의는 바로 끔찍한 전쟁의 재앙을 인류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가령 남의 식민지가 되고 끊임없이 약탈과 침략을 당하는 힘없는 백성들이 (오늘의 쿠르드족이라든가 지난날의 우리가) 민족적인 열정이 없이도 자기 삶을, 생존을 지탱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저는 민족은, 민족주의 이념은 폐기되어야 한다기보다는 그 전압을 낮춤으로써 아직도 역사 속에서 해야 할 긍정적 역할을 남겨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내년이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30주년이 되는데요, 그동안 작가회의 이름으로 독재정권에 저항하였고, 또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라든가, 한국에 와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의 참상을 고발하는 일이라든가 등등의 문제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의견은 민족주의의 부정적 측면보다는 민족이 가지고 있는 그 긍정적 에너지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방법으로 자기 입장을 지키고 있다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평화포럼 <미국과 세계평화>
영남대인문과학연구소, 2003년 5월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