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미국과 세계평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골치아픈 문제, 우리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미국이 유엔의 결의도 없이 이라크를 일방적으로 공격한 결과 벌어진 지금의 세계 태세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작가입니다. 작가의 기질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제 개인적인 체험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늘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저와 미국의 ‘첫 만남’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에 저는 13살이었는데, 그 해가 저에게는 미국과의 첫 만남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전쟁을 통해 미국과 처음으로 만난 거지요. 그때 제가 실제 제 나이보다 조금 위였다면 전쟁이 아니라 영화나 재즈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서 미국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을 겁니다. 만약 실제 나이보다 아래였다면, 해방 후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던 야구를 통해 미국과 만났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제 경우는 미국과의 첫 만남이, 미 공군이 떨어뜨린 폭탄에 의해서 이루어진 셈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통해서 말입니다.
저는 오사카에서 태어났는데, 그 오사카에 미국이 공습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어요. 이 오사카는 그때까지만 해도 ― 일본이 메이지(明治)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하는데, 그 근대화 과정에서 경제와 공업의 중심이 바로 오사카였습니다. 즉 아시아를 향한, 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으로 만든 공업기지, 경제기지가 오사카였던 겁니다 ― 미국 공군의 특별한 대상이 된 장소였습니다.
제가 여기 1947년〈뉴욕타임스〉에 실렸던 사진을 한장 갖고 왔는데요. 아마 여러분은 처음 보는 사진일 겁니다. 이것은 1945년 6월 15일, 오사카 시내를 공중에서 찍은 사진인데, B29호가 폭탄을 투하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여기 길다랗고 흰 사각형이 오사카 항구입니다. 그리고 여기, 하얀 부분은 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솟아오르는 연기입니다. 이 연기 속은 온통 암흑이지만 겉으로는 하얗게 보입니다. 바로 여기가 제가 살던 곳입니다. 이 연기 속에요. 이건 대낮에 찍은 사진인데, 대낮이지만 이렇게 공습을 받고 있으면 연기 속에서는 새까만 세상뿐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지옥이었습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죽고, 화염이 온 세계를 덮쳤습니다.
이 체험을 여기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이 체험을 통해서 제가 얻은 교훈이 있습니다. 이 전쟁, 공습을 받으면서 얻은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할까요, 교훈이 뭔가 하면, 전쟁은 ‘하는 자’와 ‘당하는 자’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즉, 저 같은 시민은 당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그때 철저하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은, 이것은 전쟁이라고 하는 어휘로 표현할 수 있는 사태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라는 건 뭐냐 하면, 서로 대치하는 양쪽이 각자 무기를 갖고 다투는 것입니다. 이 사진이 촬영된 1945년 6월 15일 당시에 일본은 무기도 거의 없었거니와, 미국이라는 대국에 대항할 수 있는 군사적 상대가 못되었습니다. 특히 우리 같은 시민들은 압도적인 미국의 무력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그런 상태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전쟁이라는 어휘로 표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방적인 살육과 파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세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째, 전쟁에서 시민은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살육과 파괴를 당하는 쪽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제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 당시에 더 깊은 생각을 하지는 못했지만, 해방 후에 자라면서 사상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 교훈은 저에게 아주 핵심적인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저의 사상과 정신 형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이 뭔가. 제가 13살에 해방을 맞이했지만, 그 이전의 전쟁시기 동안 아까 보여드린 이런 파괴와 살육의 사진들을 무수히 보았습니다. 바로 일본군이 중국에다가 공습을 해서 도시가 파괴된 모습 같은 것이었지요. 그때도 그런 사진들을 많이 봤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단지 저와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무심하게 봤던 겁니다.
여러분도 그렇겠지만, 텔레비전 뉴스에서 전쟁 소식이 나오면 그 화면 속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곳은 나와는 다른 세계, 다른 곳에서 일어난 일로만 여겨지고, 어떤 정신적 동요나 공포도 주지 않습니다. 그런 동요나 공포의 느낌도 없이 그저 “아, 전쟁이구나” 하는 식으로밖에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은 자기자신이 전쟁을 ‘하는 쪽’ 사람의 시각에서 그 뉴스를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당하는 쪽’이 아니라 ‘하는 쪽’의 시각에서 말이지요.
일본의 메이지 유신, 다시말해 일본의 근대화는 타국에 대해 살육을 수행하고 모든 것을 불태우고 압제를 행사한, 그런 짓을 타국에 강요한 역사였다, 그러한 근대화였다, 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2차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거꾸로 자기가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근대화의 역설’이랄까요, 그것을 일본은 겪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일본이 조선반도를 침략한 역사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침략을 당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피해자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일본이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거지요.
세번째로 전쟁에서 얻은 교훈이 뭔가 하면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이라는 존재가 바로 앞에 왔는데 이 미국의 모습이 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얻은 결론이 뭐냐 하면 미국은 두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는 군사적인 얼굴이고, 또하나는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얼굴입니다. 그 두가지 얼굴 중에서 군사적인 얼굴을 보인 곳이 바로 한국이었고, 민주주의와 자유의 얼굴을 보인 곳이 일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미국이 바로 최근에 저지른 이라크 공격을 보면, 바로 미국의 군사강대국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군사독재정권을 옹호하고 그것을 뒤에서 부채질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더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군사강대국의 측면을 보였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오키나와입니다. 오키나와는 미국의 직접점령 하에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미군의 광대한 군사기지가 있습니다. 그 막강한 군사력에 맞서, 오키나와 시람들은 치열하게 투쟁했습니다. 지금 오키나와 섬은 미국의 직접점령에서 벗어나 해방을 얻었지만, 지금도 그 섬의 30%는 미국의 군사기지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을 보도로밖에 못 봤지만, 그 보도를 보면서 저는 공습의 화염 속에 있었던, 옛날 저와 같은 나이의 13살짜리 소년 소녀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라크의 소년 소녀들도 어느날 삽시간에, 느닷없이, 일방적인 공습에 의해서 살육과 파괴를 체험했습니다. 바로 제가 체험한 상황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전쟁은 끝났다, 이제 해방이 왔다 하고 미국이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또 느닷없이 종전 선언을 들은 13살의 소년 소녀들은 어떤 느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을까, 상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전쟁도 돌연하게 왔고, 평화도 돌연하게 온 것이지요.
그런데 이 상황은 미국이 돌연히 민주주의와 자유를 가져왔다, 미국이 가져온 민주주의와 자유는 좋은 것이기 때문에 “자, 이라크 소년 소녀들이여, 이것을 받아들여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저의 어릴 때 모습과 같습니다.
저는 1945년 8월 15일 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를 본 일도 없었거니와 의미 자체를 배운 적도 없었습니다. 또 ‘자유’란 말은 군국주의 하였으니까 물론 나쁜 말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와 자유, 아주 아름다운 민주주의와 자유를 가져다준 미국이라는 곳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폭탄을 떨어뜨린, 이 참상을 가져다준 나라이다, 그렇다면 “이건 뭘까” 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의 경험만 해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고 또 오사카 공습으로 파괴의 참상을 초래한 미국이, 이제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가져왔다 하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치게 했습니다. 그것은 거론할 것도 없다, 하는 태도를 보이는 거였습니다.
한쪽으로는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이름의 좋은 세상이 있고, 다른 쪽에는 파괴가 있는 이 모순을 어떻게 속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그 당시에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945년 해방 후에 일반 시민들 속의 모순과 갈등은 무엇이었냐 하면, 자기자신을 설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설득을 시키느냐. 한쪽으로는 살육과 파괴를 가져다준 상대방이 선량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가져왔다. 이 두개를 어떻게 결합시켜서 자기 속으로 소화를 시키는가 하는 것이 최대의 갈등이었고, 고민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이 그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일본식으로 변형시켰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민주주의와 평화주의’의 결합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은 필요없다, 전쟁은 정말 필요없다, 전쟁은 정말 참을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평화주의가 뭔가 하면, 군사수단을 버린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일본의 ‘평화헌법’입니다. 그 평화헌법의 전문(前文)에는 두가지 중요한 것이 나와있습니다. 하나는 ‘주권재민’이고 또하나가 ‘평화주의’입니다. 그 두가지를 결합함으로써 일본의 민주주의가 성립됐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볼 때 일본하고 다른 점이 있다고 봅니다. 냉전 체제 속에서 시작된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는, ‘반공’을 동반한 민주주의와 자유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반공’을 동반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공산당도 있었고 사회당도 아주 큰 힘을 갖고 있었으며,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일본에 들어온 연합군이라 하는 것은 미군뿐 아니라 소련군도 있었고 영국군이나 캐나다군 같은 다른 나라도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점이 한국과 비교해볼 때 다른 점이었습니다.
‘반공을 동반한’ 민주주의와 자유 밑에서 한국사회가 그동안 죽 발전해왔는데 그속에서 한국 나름대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기 위해, 확장하기 위해 해방투쟁, 민주화투쟁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민주주의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미군이, 점령군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배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싸워서 얻은 민주주의와 배급받은 민주주의는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재미있는 현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일본은 해방 후 50년을 겪으면서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는 이제 좋지 않다, 이제 평화주의는 버려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추진해오고 있고, 지금도 그런 움직임이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문제가 뭔가 하면, 미국에 현재 진짜 민주주의가 성립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재검토하는 문제입니다. 만약 미국이 일본을 점령할 당시에, 1950년대와 같은 ‘매카시즘의 미국’이 일본을 점령했더라면 지금 우리가 일본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 전후의 자유로운 사회가 존재했겠느냐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봅니다.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카시즘의 미국’이 독일을 ‘해방’시켰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회복지사회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고, 일본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는 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한쪽으로 소련이 동구권을 ‘해방’시켰는데, 소련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동구권에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 동구권이 무너진 셈인데요. 그렇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또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토대’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토대 위에서라야 우리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 하는 ‘갈림길’을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짜 민주주의가 지금 미국에 존재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재검토하는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미국은 지금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위축되고 있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민주주의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이 갖고 있는 “평화주의와 결합된 민주주의”와 한국이 “스스로 투쟁함으로써 얻은 민주주의와 자유”, 이 두가지가 함께, 과거 민주주의를 우리한테 준 미국에 역으로 자극을 주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한 한국과 일본의 반전 연대운동이 일어난다면 매우 희망적일 것이라는 제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 이야기로 끝마치겠습니다.
지금 미국의 부시정권은 일본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고, 또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시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자유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연대해서 민주주의와 자유로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주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통역:현순혜)
평화포럼 <미국과 세계평화>
영남대인문과학연구소, 2003년 5월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