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 오당 지음 장은주 옮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출산》(명진, 2001년)
《출산 속에 숨겨진 사랑의 과학》(명진, 2001년)
1978년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25년 동안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부인과 와 산과(産科) 영역에서 크고 작은 많은 경험들을 거쳤다. 원래는 부인암을 전공하여 암 환자의 치료에 전력을 다 하고 싶었다. 비록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죽어가는 생명을 다루는 의사 대신, 새 생명을 맞이하는 산과의사가 된 것은 무척 다행이라고 여기며 감사하고 있다.
종합병원에서 고위험 산모를 위주로 한 병원분만에 익숙해져 있다가 남편과 함께 의료 선교사로 서사모아국에 가서 후진국의 출산환경을 경험하였고, 이제는 개원하여 고위험 산모보다는 정상분만에 더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한사람의 여성으로서 4명의 자녀를 모두 자연분만하여 키웠다. 그리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또 훌륭한 아이들로 키워내기 위해 무척 노력하며 지내왔다. 산과의사로서, 여자로서, 특히 분만을 4번이나 체험하면서, 정상분만에 대한 내 생각들이 정리되고 있던 차에 미셀 오당 박사를,《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출산 속에 숨겨진 사랑의 과학》이라는 두권의 책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그분의 분만철학과 나의 분만철학이 상당히 일치되고 있음을 보고, 진리 또는 진실은 동과 서를 막론하고 어디서든지 통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출산문화’니 ‘출산문화의 변화’니 하는 소리는 내가 아이를 낳던 198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 1월, 서울방송 특집 다큐멘터리 ‘생명의 기적’이 방영되면서, 출산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빠르게 확산된 것이 사실이다.
외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영국의 산과의사 그랜틀리 딕 리드가 ‘두려움 없는 자연분만(출산)’을 주장하였고, 1950년 프랑스 산과의사 라마즈가 ‘고통 없는 자연분만’을, 1975년에 프랑스 산과의사 프레드릭 르봐이에가 ‘폭력 없는 자연분만’을, 그리고 1980년대 미셀 오당이 ‘새로운 자연분만’을 제창하였다. 그리고 1985년에는 미국의 산과의사 마이클 로젠탈이 ‘규제 없는 자연분만’을 제창함으로써 출산문화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자연의 힘을 믿는 출산법
미셀 오당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프랑스의 산과의사로서, 오랫동안 피티비에 병원의 산부인과 책임자로 일하였다. 여러 문화권에서의 다양한 출산과정을 연구하고, 40여년 동안 자연분만율 96%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했다. 1960년대에는 세계 최초로 종합병원 내에서 수중분만을 실시했고, 역시 세계 최초로 병원에서 가정분만(병원 내에 있지만 출산실을 최대한 집과 같이 편안하게 만들어 산모가 원하는 대로 출산을 하도록 돕는 것)을 실시했다. 그는 지금까지, 생애 초기의 경험이 인간에게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오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젖을 어떻게 찾는지를 아는 것처럼 여성은 이미 자신이 어떻게 아기를 낳아야 하는지에 대해 본능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엄마는 아기가 태어나면서 어떻게 안아야 하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를 안다. 출산은 정서적, 성적, 본능적 경험이므로 병원에서는 최대한 의학적 개입을 하지 않는 대신, 산모가 통증을 이겨내는 본능적인 능력을 발휘하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미셀 오당 박사는《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에서 주장한다. 그가 30년 전부터 시도한 분만법은 “여성이 아기를 낳도록 놓아두고 산모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라”는 한마디로 집약할 수 있다.
미셀 오당 박사와 피티비에 병원은 산모가 가장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세심하고 다양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침대의 기능을 하는 널찍한 쿠숀, 산모가 원하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는 따뜻한 풀, 은은한 조명이 갖추어진 방 … 그리고 아기가 자연스럽게 바깥세상으로 나오면 탯줄을 자르지 않은 채로 바닥에 몇초 동안 뉘었다가 엄마에게 안겨준다. 그러면 아기는 자연스럽게 엄마 젖을 찾아 문다. 이때 엄마와 주변 사람 모두가 감격의 순간을 공유한다. 태어나자마자 얼른 탯줄을 자르고 엄마에게서 분리시켜 각종 검사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상황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지금부터 약 30년 전 프랑스에서 행해졌던 출산법이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여전히 새롭고 신선하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산모와 아기의 권리를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출산문화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피티비에 병원의 임산부들은 부축을 받으면서 웅크리고 앉은 자세로 아기를 낳는다고 하여 나도 여러번 시도해 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 산모들의 인식이 아직 이를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산모들은 아직 대부분 분만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몸이 지니고 있는 ‘자연의 능력’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근원적인 감각보다는 지엽적인 몇가지 지식에 매달리려고 애쓰게 된다. 산모가 이런 상황이다 보면, 서로 호흡이 맞지 않아 때로는 깊은 절망감을 느끼곤 한다. 역시 산모를 도와주는 데는 인내와 사랑만큼 중요한 기술이 없는 것 같다.
출산과 사랑의 능력
《출산 속에 숨겨진 사랑의 과학》은, 사랑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면서 ‘출산’에 초점을 두었다. 출생 직후 수초간 가슴에서 시작되는 사랑의 경험, 이것이 바로 인간이 사랑을 발달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가령 출산 직후 새끼를 떼어놓으면 어미는 모성애를 별로 느끼지 않고, 새끼는 불안정하게 성장하는 것을 여러 동물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출산중인 어미에게 마취제를 사용했더니 자기 새끼를 잘 돌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도 실험결과로 나왔다. 성관계시 나오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여성이 출산할 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나온다는 실험도 있어 흥미롭다. 이 책은 이처럼 출산과 사랑에 관련된 여러 실험을 통해 산모와 아기에게 가장 좋은 출산법이 무엇인지 접근해간다.
출산 후 엄마와 아기의 생의 첫 만남, 첫 한시간이 신생아와 산모에게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모자 동실과 모유수유는 당연한 것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지금 70-80대)에는 이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혼은 곧 패가망신이고, 그러므로 어떻든 뼈를 시댁에 묻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지금 50대)에는 이혼이 늘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식만큼은 내 자식이라 하여 ‘자녀 양육권’을 놓고 심각하게 대립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이들(30대)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높은 이혼율에다가, 자식까지도 포기하며 자기 인생의 새 출발을 시도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자식을 떠맡지 않으려 하고, 그래서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들한테서 버림받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부모가 이성적으로 또는 법적으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애착을 갖는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중요한 일이 되었다. 본능적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적어도 아이들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은 이것이 최소한의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이러한 모든 것이 출산의 고통을 경험하고, 출산 후 아기와 충분한 접촉을 통해 생기는 모아애착의 본능이 발동되면서 생긴다면, 그 짧은 시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예리하게, 그리고 과학적인 증거들을 바탕으로 잘 풀어 설명하고 있다.
모성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능력이다. 과거 6 . 25 동란을 거치면서, 남편 없이 어머니 혼자 7-8명의 자녀들을 휼륭하게 키워낸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오직 모성애로써만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우리 병원에 찾아오는 어리고 약하게만 보이는 산모들에게서도, 그 속에 숨어있는 모성애의 위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큰딸을 무척 고생하며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그런데 위치가 좋지 않아 결국은 흡입분만을 했다. 그때 나는 “나처럼 미련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내가 수술 해달라고만 하면 즉시 해줄 텐데, 그렇게 했으면 이렇게 죽을 고생은 안했을 텐데, 내 딸은 절대로 이런 고생 안 시키고 수술해 주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렇게 고생해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된다는데, 도대체 그 근거는 어디 있지?” 하면서 회의에 빠졌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출산 속에 숨겨진 사랑의 과학》을 읽으면서, 여성은 출산을 경험하며 자신 속에 잠자고 있던 모성애가 비로소 깨어난다는 사실을 여러가지 과학적 증거를 통해 확인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수술하지 않고 낳은 것에 대하여 무척 감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위대한 모성애가 사라지면서 얄팍한 이기심이 그 자리를 차지해가고 있는 이 시점에, ‘사랑의 과학화’라는 새로운 깨달음으로 우리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우리는 사랑의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그런데 여성들은 특별히 출산을 경험하면서 사랑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것을 발달시킬 수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미셀 오당 박사는 그의 놀라운 통찰력으로 인간 깊이 숨겨진 비밀을 캐내어 우리에게 선물하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현대문명에 가리워 자칫하면 잃어버리고 지나쳐버리기 쉬운 것들을 다시 기억하게 해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과 사랑의 힘을 믿고, 그 힘에 기대어 출산이라는 소중한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모든 산모들이 이 책을 읽고,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성숙한 엄마가 되기를 기원한다. 특별히 이 책을 번역하는 수고를 한 장은주 선생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귀한 수고 덕분으로 새롭고 아름다운 출산문화가 이 땅에 정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