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오늘로 64일째를 걸었다. 지난 7월 1일부터 약 1,100km를 걸은 셈이다. 지나온 길을 전부 적어보자.
전라남도 : 진도, 해남, 강진, 장흥, 보성, 벌교, 순천, 광양
경상남도 : 하동, 진주, 산청, 함양
전라북도 : 남원, 순창
전라남도 : 담양, 장성, 광주
전라북도 : 고창, 정읍, 부안, 김제, 전주, 완주, 진안, 무주
충청북도 : 영동
경상북도 : 김천, 칠곡, 대구, 고령, 성주, 구미,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예천, 상주
충청북도 : 보은, 옥천, 대전
대구에 닿기까지 49일 동안은 한번도 차로 지역을 넘어 이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경상북도 고령 이후 상주까지 9개 시 . 군은 하루 낮동안 걷고, 저녁에 버스로 이동하는 ‘버스 순례’를 했다. 경북이 너무 넓은 데다가, 전통적인 주요도시 안동을 비롯한 좀더 많은 농업도시들을 정해진 일정 안에 순례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
걷기운동은 새로운 학교
100일 걷기운동 최대의 성과를 꼽으라면, 나는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힘이 10대들한테서 나왔다는 점을 들고 싶다. 지금 만 20세 이하의 청소년 15명이 걷고 있다. 이중에는 4명이 한달 이상 걸었고, 먼저 시작한 한내와 평화는 두달이 다 되어가는 기간을 걸었다. 나머지 아이들도 곧 한달을 넘기게 된다.
이 아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홈스쿨(가정학교) 아이들 ― 평화, 한내, 정준, 본이 4명이 이 경우이다. 둘째는 학교에 현장학습 신청을 한 아이들 ― 이슬, 새한, 지한, 수연 4명이 이 경우이다. 셋째는 대안학교(공동체)이다. 서울 연희동에 ‘새샘터’라는 가정공동체가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리를 떠돌던 경험을 한 청소년들이다. 이 세 종류의 아이들이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이라는 ‘상황’ 속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한달 이상 걸은 평화, 수연, 한내는 이미 그 나이 또래 아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자기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이 자리가 잡혔다. 새한이 어머니는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러 왔다가 너무나 놀랐다. 이제 12살인 새한이에게서 독립된 한 사람을 느꼈단다. 부모를 떠나서 살 수 있는 아이가 된 것이다. 방학때 캐나다 연수 보낸 친구들보다 훨씬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서도 새샘터 친구들의 변화는 걷기운동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이 처음에 “왜 여기서 우리가 고생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던 것을 생각하면, 변해도 보통 변한 게 아니다. 사실 지금은 우리 걷기운동에 이 새샘터 친구들이 없다면, 하루하루 일이 제대로 될까 싶을 정도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처음부터 걸었던 새샘터 주희의 역할이 컸다. 주희는 100일 걷기에서 큰 감동을 받고, 서울에 남아있던 공동체 친구들도 같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선생님들을 열심히 설득했다. 주희의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들은 깊이 생각한 끝에, 주희 말대로 다른 친구들도 이 걷기운동에 참여시키기로 했고, 선생님들도 같이 걷기로 했다.
새샘터 친구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경험이 있다. 이 친구들은 처음에 100일 걷기팀에 와서 정말 놀랐다고 한다. 그들이 아는 어른은 자기들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곳에 와보니 어른들이 다 자기들에게 와서 어린 학생들이 좋은 일 한다고 격려해주고 다독거려 준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도 한 것이다.
새샘터 친구들은 그 뒤로 새로 오는 어린 동생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이슬이, 새한이가 학교에 현장학습 신청을 하면서까지 100일 걷기에 끝까지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이 오빠들에게 받은 보살핌에 감격했기 때문이다.
평화, 주희에서 시작한 10대의 참여는 한내, 수연으로 이어지다 지금은 모두 15명이 되었다. 경북 구간에서는, 비록 일주일 동안이었지만, 의성농민회 회원 자녀 6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하룻동안 참여하는 어린이들도 많은데, 이 아이들은 자기 또래 혹은 더 어린 아이들이 한달 이상 걸었다는 말을 듣고는 크게 놀란다. 부모들은 자기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건지 모르겠다고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지금 우리는 학교를 나누는 모든 기준을 버렸다. 전통적인 건물이 있는 학교, 가정학교, 공동체학교 … 모든 종류의 학교가 100일 걷기운동 속에 다 들어있다. 100일 걷기운동은 상황을 만들어 놓고 게임에 참여하는 것처럼 즐기면서 배우는 곳이다. 새한이는 지금 자기가 끝없이 뻗어나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걷기운동과 예술
많은 시인, 작가, 예술가들이 사회현실에 참여하는 것은 그속에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100일 걷기운동에도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광주의 미술가 이지영 선생은 걷는 기간 동안, 저녁마다 아이들과 걸개그림 작업을 했다. 이 그림은 지금 걷기 대열을 돕기 위해 함께 움직이는 트럭 뒤에 걸려 있다. 이 그림 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100일 걷기 참가자들이다.
100일 걷기운동의 주제가도 만들어졌다. “결코 멈출 수 없다”가 바로 그 노래인데, 여성농민 노래단 ‘청보리사랑’에서 활동하는 박찬숙씨가 노래말을 쓰고 곡을 붙였다. 3일 동안 같이 걸어본 감동을 노래에 담은 것이다. 이 노래는 하룻동안 걷기를 마치고, 지역에서 참여하신 분들과 마무리 모임을 할 때 늘 부른다. 부를 때마다 힘이 솟아나는 밝은 노래다.
대구의 행사에서는 이귀선 선생의 춤공연을 보았다. 환영 프로그램 중 하나였는데, 제목이 “2002 우리쌀 ― 아리랑 고개를 넘어”였다. 100일 걷기운동을 위한 창작무용인 이 춤을 보고 참 많은 사람들이 감격하고 눈물을 흘렸다.
9월 2일부터〈동아일보〉에는 ‘식객’이라는 허영만 선생의 만화가 연재된다. 이 만화 속의 주요 캐릭터는 100일 걷기운동 참가자들이고, 내용도 우리쌀지키기에 중심을 둘 것이라고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작가인 김태일 감독은 처음부터 계속 같이 걸으면서 걷기운동의 전 과정을 영상에 담고 있다. 편집할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우리도 그 내용을 보지 못했는데, 대구에 도착했을 때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있는 대형 스크린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볼 수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이었다.
보은에서는 서예가 김성장 선생님이 “사람이 곧 하늘” 같은 아름다운 글씨를 써주셨고, 원주의 서예가 김봉준 선생님은 우리 걷기팀의 깃발과 몸벽보에 사용하고 있는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 글씨를 써주셨다.
그동안 걷기운동과 관련해 노래, 그림, 무용, 만화, 서예 같은 여러 분야에서 작품이 나온 셈이다. 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시인이신 이현주 목사님께서 같이 걸으시면서 시상(詩想)이 떠올랐다고 하셨으니, 좋은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운동은 이렇게 예술의 모든 양식으로 표현되어 나오고 있다.
걷기운동과 종교, 정신세계
100일 걷기운동은 처음부터 종교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WTO라는 어마어마한 벽 앞에서 거의 짓눌리는 기분이 들 정도로 위축된 농민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호소는 함께 기도하자는 말밖에 없었다. 그리고 걷는 사람들 스스로가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가장 먼저 이 기도에 응답한 곳은 불교였다. 남원 실상사는 지금도 매일 100일 걷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도법스님은 100일 걷기가 끝나는 다음날인 10월 14일부터 우리쌀과 농업을 위한 1000일 기도를 시작할 것을 생각하고 계시다는 뜻을 전해오기도 하셨다.
카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천주교 신부, 수녀님들의 참여도 계속 늘고 있다.
기독교(개신교)는 가장 늦게 반응을 하는 편이지만, 언제나 저력이 있다. 충남 일정은 반 정도의 숙소를 교회로 정할 정도로 기독교의 참여가 구체화되고 있다.
지금 100일 걷기에는 승려 세분이 계속 걷고 있고, 여러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같이 걷고 있다. 100일 걷기 안에서, 하나님이 나누어져 분열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참가자 중에는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다루는 수련을 해온 사람들도 많다. 하늘빛님은 차 농사를 짓는 도인이고, 효천 스님은 인터넷에서 차와 불교를 알려온 분이다. 하늘빛님은 매일 아침 단학체조로 참가자들의 몸을 풀어주고, 저녁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차를 마신다. 힘든 길을 걸으면서도 우리가 안정을 유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매일 함께 차를 마시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오시는 이수정씨는 인도에서 오랫동안 요가와 명상을 공부하신 분인데, 우리를 요가와 명상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걷는 것 자체가 또한 내면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다. ‘거룩’이라는 말은 ‘걸음’과 같은 뿌리를 가진 말이다. 김치환 현장팀장은 처음부터 계속 사진을 찍어오고 있는데, 그는 사람들의 얼굴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것은 내 얼굴만 봐도 알 것 같다. 가끔 거울을 보면,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되니 말이다. 처음 내걸었던 100일 걷기운동의 원칙 가운데 하나, 즉 명상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걷는다는 원칙은 성공한 것 같다.
사랑과 자발성
100일 걷기는 처음부터 조직을 통한 체계적인 운동이 아니었다.《녹색평론》에 처음 100일 걷기운동 제안문이 나왔을 때, 이런 중요한 일을 제안하는데, 연락처로 개인 세 사람 이름이 나온 걸 보고 의아스러워한 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처음에 개인 자격으로 제안을 했고, 처음 참가하겠다고 신청한 사람들도 모두 개인 자격이었다. 그렇게 모인 15명이 출발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떠한 조직활동을 같이 한 적도 없었고, 생각의 차이도 아주 컸다. ‘우리쌀지키기’ 이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누구도 누구에게 강제하거나 지시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모든 일은 자기 스스로 결정해서 해나가야 했다.
지금도 우리는 하루하루 생활하는 데 특별한 규칙이나 규율이 없다. 식사, 청소, 진행 어느것도 미리 정해서 하는 것은 없다. 모두가 각자 알아서 스스로 챙긴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모자라고 부족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열심히 하되 잘 안되는 건 그냥 넘어간다. 그것 때문에 상처주는 일은 되도록 삼간다.
그러나, 문제가 없지는 않다. 처음부터 걷던 사람 중 둘이 떠났고, 돌아온다고 말했지만 아직 오지 않은 사람도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만족하기는 정말 어렵다. 어떤 결정을 하든, 한가지 한가지 아주 조심스럽게 한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 품고 가는 길을 만드는 데는 조심하는 게 중요하다. 옛 어른들이 “혼자 있어도 조심한다”고 한 말의 의미를 정말 깊이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동참할 것이고, 또 떠나가기도 할 것이다. 만남과 떠남, 모두가 인연이다. 사랑으로 대할 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다.
인드라망 ― 함께 가는 길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특히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은, 과연 “민족농업의 희망”이고 “불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전농의 운동가들에게서 너무도 많이 배웠다. 전농의 운동가들은 이론과 실천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무엇보다 바닥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부러울 정도로 건강하다. 전농은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을, 오는 11월 13일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전농의 ‘우리쌀지키기 30만 농민대항쟁’과 연결하여 홍보하는 데 성공했다.
농협노조는 처음 생각과 달리, “연대의 양대 축”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참가했다. 거의 전 지역에서 조합원이 같이 걸었다. 이외에도 많은 단체와 운동가들, 지역주민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우리가 걸으면서 엮어낸 연대의 그물도 있다. 부안에서는 새만금 갯벌을 위해 지역주민들과 걸었다. 대구에서는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한 집회에 참석하였고, 이 집회에서 약속한 대로 구미를 지날 때는 ‘이주노동자를 위해 걷는 날’로 정했다. 옥천에서는 언론 민주화와 옥천지역의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을 지지하며 걸었다. 대전에서는 대동 사회복지관에서 자고, 용두동 철거지역 농성현장을 방문할 것이다. 이 날은 대전지역 도시빈민을 위해 걷는 날이다.
이것이 쌀이다. 쌀 안에는 쌀만 있는 게 아니다. 서해안 갯벌도 있고, 이주노동자의 고단한 삶도 있고, 언론 민주화의 꿈도 있으며, 가난한 도시 사람들의 희망도 있다. 세상 어느것 하나 연결되지 않는 게 없다. 쌀을 살려내면 모든 걸 다 살려낼 수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어려움과 희망을 걷기운동에 포함시킬 것이다.
연대
가장 어려운 것 한가지만 들라고 하면, 내게는 ‘연대’의 문제가 그렇다. 현재 걷기운동의 주최자인 ‘농업회생연대’에는 23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그 수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연대가 실제로 활동을 하느냐 하는 점이다. 언제나 그렇듯 연대는 이름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우리는, 국민을 감동시키기 전에 연대에 참가하고 있는 단체들의 실무자와 지도부를 먼저 감동시키는 게 더 필요해진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은 그저 뜻을 같이한다는 취지에서 이름만 걸어줘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더 많은 단체들이 농업회생연대에 참가했으면 좋겠다. 할 수 있으면 작은 소모임들도 참여하길 바란다. 서울 사랑의 교회에는 ‘토지’라는 이름의 농촌을 생각하는 소모임이 있는데, 우리는 이 ‘토지’ 모임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주관단체라고 말한다. ‘토지’ 모임에서는 회원을 조직해서 휴가날짜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연이어 계속 걷기에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적어도 한사람은 대열에 남아있는다. 그리고 주말이면 다같이 왔다가 간다. 굳이 돈을 내놓거나 사람이 직접 참석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단체와 모임들이 연대에 이름을 걸고 걷기운동에 뜻을 같이하기를 바란다.
언론을 통한 홍보
우리가 걷기운동을 하면서 가장 못한 것이 이 일이다. 마음 하나로 시작한 일이라, 처음부터 크게 비중을 둘 수도 없었고, 언론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지나가는 지역마다 지역언론사들이 취재를 했고, 특히 라디오 방송 인터뷰는 상당히 많이 했다. 텔레비젼 방송사로는 광주, 대구, 청주 MBC에서 각각 취재하여 10분 정도씩 소개되었다. 그외에도 여러 방송사에서 취재하여 잠깐씩이나마 저녁뉴스 등에 보도되었다. 인터넷신문〈오마이뉴스〉는 “우리쌀, 생명입니다”를 기획특집으로 다루고 있는데, 지금까지 13회 정도 기사가 실렸다. 비교적 영향력이 컸던 것은〈한겨레〉신문이었는데, 기사가 나온 뒤로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가장 역점을 둔 홍보는 무엇보다 인터넷 홈페이지(www.refarm.or.kr)를 통한 홍보였다. 전주의 전희식씨가 홈페이지를 새로 만든 뒤부터 홈페이지 조회수와 후원금 접수가 많이 늘었다. 그러나 늘 미안한 것은, 우리 힘으로는 현장의 신속한 내용을 알리는 게 힘들다는 점이다. 이 일은 각 지역에서 참가하는 분들이 먼저 작업을 하고, 우리가 형편이 되는 대로 보충하는 방식으로 하면 좋겠다.
보은취회
우리는 그동안 걸어오면서 무수히 많은 집회를 가졌다. 그중에서 가장 뜻깊은 집회는 지난 8월 31일 보은에서 열렸던 보은취회였다. 보은취회는 109년 전 동학의 지도부가 일본과 청나라의 지배가 노골화되던 때에 충북 보은에서 모여 나라의 장래를 이야기하고, ‘척양척왜(斥洋斥倭)’를 기치로 해서 2차 혁명을 결의한 모임이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WTO 수입개방’ 압력에 맞서야 하는 농민의 현실에서, 우리는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가치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100일 걷기가 60일을 맞는 시점이고, 중간평가도 필요했다.
동학굿과 제사가 주는 상징성도 있다. 동학농민군 2,800명이 죽은 북실 전투지에서 동학 영령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보은취회 장소인 장내리 속리초등학교로 신을 모셔왔다. 태풍이 막 내륙지방을 지나갈 무렵, 폭우와 거센 바람 속에 모셔온 신을 제단 가운데 세우고, 제사를 올렸다. 둥근 제단을 둘러싸고 선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절을 하고,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자신의 뜻을 털어놓았다. 트로이 전쟁신화 같은 옛 신화를 보면 전쟁의 승패는 인간의 힘보다는 신이 좌우하고 있다. 중요한 순간에 ‘신’ ‘하나님’이 참여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몹시 지쳤고,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보은취회가 보여준 가능성 중 하나는 호혜시장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우리쌀지키기 운동은 단순히 농민권익보호 운동이 아니다. 이 운동은 WTO라는 거센 태풍 앞에서, 자기 스스로를 중심에 두고 작지만 바람 피할 언덕 하나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삶과 가치관을 바꾸는 운동이다. 지금 가게에 가서 어떤 물건을 사도 WTO 영향이 미치지 않는 게 없다. 제품원료, 운송과정, 생산과정, 모든 게 자유무역시장에 지배당하고 있다. 이것을 떠나서 존재하는 새로운 시장이 있어야 한다. 사랑과 보살핌으로 운영되는 시장의 모델을 보은취회의 호혜시장에서 실험해보았다.
이번 호혜시장에서 중요한 몇몇 물품은 경매를 붙였는데, 경매를 통해 물건을 사게 된 모든 사람이 100일 걷기 참가자 중 애쓰는 분들에게 선물로 그것을 드렸다. 누구도 자기가 소유하기 위해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나누고 감사하기 위해 장터를 이용했다.
전망
보은취회는 우리가 이상(理想)으로 설정한 세계를 현실에서 보여줬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서로 동등한 모습으로 모든 사람이 한울님이 되고, 한울님의 마음으로 회의하고, 물건을 나누었다. 이제 비로소 그림이 그려진다. 특히 이번 화백회의에서는 ‘보은 결의안’을 채택하기 위한 논의를 했다. 여기에 그 초안을 옮겨 적는다.
보은 결의안(초안)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으로 농업회생연대를 굳건히 세우고, 우리쌀지키기에 대한 온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민족의 진정한 자주 독립을 위해 아래와 같은 보은 결의안을 채택한다.
농업회생연대에 참여하는 단체와 쌀개방을 막아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는 개인들은 보은 결의안이 실현되는 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1. 동학의 땅, 보은에서 모인 우리는 WTO체제로 초래되고 있는 한국 농업의 위기를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극복할 것을 결의한다.
1. 2004년 WTO 쌀 및 농산물 수입개방에 관한 전면 재협상에서 400만 농민과 4,000만 국민의 의지를 모아, 우리 농민대표를 파견하여 협상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한다.
1. 농산물 수입개방 국면에 맞서 농사의 근본을 분명히 세워 땅과 생명과 사람을 살리는 친환경-유기농업을 실천할 것을 결의한다.
1. 우리의 자녀가 농약과 방부제로 범벅이 된 외국산, 유전자조작 농산물에 노출되어 있음을 바로 보고, 학교급식에서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유기농산물이 사용되도록 노력한다. 이를 위해 각급 학교 학부모들이 주체가 되어, 각급 학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실질적인 힘을 확보한다. 또한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학교급식조례가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1. WTO를 정점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근본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 정치에서 직접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제도를 확립하고, 나눔과 호혜를 원리로 하는 시장을 건설할 것을 결의한다.
우리는 앞으로 이런 내용을 현실화하기 위해 남은 길을 걸을 것이다. 단순한 우리쌀지키기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여는 마음으로 걷는다. 결코 멈출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속에 조금이라도 삿된 마음이 생겨나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 이것이 우리를 끌고 왔고, 끌고 가는 힘이다. 결연한 의지와 쉼없는 자기반성.
이 글은 2002년 9월 2일까지의 걷기운동 상황을 정리한 것으로서, 공식적인 중간평가 결과는 아님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