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경제는 소유가 아니라 인간관계에 토대를 둔다. ― 존 페리 발로우
공동체의 붕괴는 현대세계 전역에 걸쳐 보편적인 문제가 되었다. 보통 이러한 문제가 돈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은 인식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이 문제와 그 해결이 모두 화폐체계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세계 전역에서, 부유한 나라건 가난한 나라건, 가족의 구조는 급속도로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가족이 안정되고, 결합력이 강한 단위라는 관념은 이제 신화가 되었다. … 미혼모, 증가하는 이혼율, 갈수록 작아지는 가정규모, 빈곤의 여성화 현상이 세계 전역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라고 최근의 한 연구는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일본만이 지난 30년간 사실상 큰 변화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세계 전역에서 우리는 같은 불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게 예전과 같지 않아요. 우리는 전에는 훨씬더 깊은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었어요.” 구체적인 예들은 각 문화에 따라 다를지 모르지만, 전체 경향은 동일하다. 그리고 그 결과도 비슷한 것인데, 예컨대 특히 비교적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공공재산에 대한 야만적 공격행위와 범죄율의 상승 등이 그러하다.
더욱 ‘발전된’ 나라일수록 이 경향은 더욱 심각하게 진전되어왔다. 예를 들어, 북유럽과 미국에서 대가족제는 19세기 동안 일반적인 규범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가 되면 핵가족이 표준이 되었다. 오늘날 미국의 평균적인 사회 단위는 이미 핵가족에서 편부/모의 가정으로 바뀌었는데, 그 결과 미국 아이들의 51%가 지금은 편부/모 밑에서 살고 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와 같은 현상이 세계의 거의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탈리아에서는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가족(la famiglia)이라고 하면 조부모, 부모, 숙부, 사촌, 조카, 사돈들과 같은 몇 세대를 포함한 60 내지 80명에 이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가족을 의미하였다. 이제 이 규준은 특히 좀더 ‘근대화된’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는 핵가족으로 바뀌어졌다. 다른 남유럽 및 라틴아메리카의 문화들도 같은 추세를 따르고 있다.
아리조나의 호피 인디언으로부터 콜롬비아의 코기족과 페루 국경내 아마존 유역의 치피보 인디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젊은 세대들이 그들 자신의 부족과의 유대를 잃어버리고, 마치 “백인들이 그렇게 하듯이” 보다 작은 하위집단이나 단순한 혈연가족에 대해서만 귀속감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보통 진보의 대가 또는 사회적 퇴폐의 징후로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붕괴가 일종의 전염병이라고 할 수 있는가? 거기에는 좀더 깊은 공통의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은 무엇일까?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붕괴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공동체가 어떻게 창조되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공동체에 관한 연구에서 가장 유용한 통찰은 인류학으로부터 나온다. 인류학자들은 사람들이 근접해서 산다고 해서 반드시 공동체가 생겨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거대도시의 고층 아파트들은 공동체를 형성하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통의 언어, 종교, 문화, 혈연도 자동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 모든 요인들은 명백히 공동체의 형성과정에 부차적인 구실을 하지만, 관건적인 요소는 다른 어떤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호혜(互惠)적인 선물교환이 공동체의 기초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공동체의 형성과 증여(贈與)경제
공동체가 만약 한 조각의 천[織物]이라면 그것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실[絲]은 무엇일까? 혹은, 다른 비유를 사용해서, 만약 공동체가 하나의 세포라면, 그것을 구성하는 원자는 무엇인가?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가장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
당신이 만약 못 상자가 필요하다면 당신은 철물상으로 가서 그것을 산다. 이러한 거래에서 당신도 철물상 점원도 다음번에 상대방에게 무엇을 주거나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화폐를 통한 교환은 그토록 효율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모든 거래는 각기 그 자체로서 완결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어서는 어떠한 공동체도 창조되지 않는다.
다른 가정을 해보자. 못 상자가 필요해서 밖으로 나가다가 당신은 이웃집 사람이 자기 집 현관에 앉아있는 것을 본다. 당신이 못 상자 하나를 사러간다고 하자 그가 “오, 지난번에 내가 못 상자를 여섯개나 샀어요. 여기 하나 드릴 테니 철물상까지 가실 필요 없겠지요.” 그러면서 그 사람은 당신이 돈으로 지불하려고 하는 것도 사양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순전히 물질적인 관점에서 볼 때 두 경우 모두에서 당신은 결국 못 상자를 갖게 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두번째 경우에는 무엇인가 다른 어떤 것이 덩달아 생겨났다고 지적할 것이다. 당신이 그 이웃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 때 당신은 그 사람에게 분명히 반갑게 인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토요일 밤에 그 사람이 당신의 현관문을 두드린 다음 깜박 잊고 버터를 사두지 못했는데 좀 나누어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한다면 당신은 기꺼이 그 부탁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못 상자 하나는 그것이 선물이 됨으로써 공동체 형성의 기초가 된 것이다.
그러나 못을 산다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상업적 거래는 닫혀진 체계 ― 못에 대해서 돈이라는 ― 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선물은 열린 체계이다. 그것은 거래의 불균형을 낳고, 그 불균형은 장래의 가능한 거래로 바로잡아지는 것이다. 증여 과정은 금전적 교환이 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창조해낸다. 하나의 새로운 실이 공동체라는 천 속으로 짜여들어간 것이다.
이와 같은 증여와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는 허다하다. 세계 전역에 걸쳐 고금을 막론하고 그러한 증거는 관찰되고 기록되어왔다.
몇몇 사례들
내가 선물과 공동체 형성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 인류학자들에 기댄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인류학자들의 현장연구의 노고가 없더라도 ‘공동체’라는 단어의 어원이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좀더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공동체(community)는 라틴어 cum과 munus(또는 munere)라는 두 말을 뿌리로 해서 나온 것이다. cum은 함께(together), 서로간에(among each other)를 의미하고, munus는 선물(gift)을 의미하며, munere는 준다(to give)를 의미하는 동사이다.
따라서 community는 “서로간에 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명백할 수 있는가?
이제 나는 이러한 불문율 ― 공동체란 선물교환의 결과로서 오랫동안 형성되어왔다라는 ― 이 오랜 옛날부터 실제로 기능해온 세가지의 예를 들어보겠다.
수도원 공동체
아니안(Aniane)의 베네딕투스는 초기 기독교 속에 몇몇 켈트적인 개념을 도입하여 서기 5세기에 서양에서 최초의 기독교 수도원 조직인 베네딕트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이 수도회의 규율에는 수도회의 경제적 필요를 조직하는 방식에 의해서 ‘공동체(communitas)’가 창조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수도사들은 하나의 집단으로서는 자급자족적이어야 하지만, 그들 자신들간에는 완전히 상호의존적이어야 한다. 모든 수도사가 ― 수도원장에서 문지기에 이르기까지, 요리사에서 서기(書記)에 이르기까지, 대장장이에서 치즈 만드는 이에 이르기까지 ― 소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 직분은 모두 공동체에 대한 선물로서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수도원들은 화폐를 통한 교환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러한 교환이 수도원과 바깥 세상 사이에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베네딕트 수도회의 규율이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 일체의 화폐교환을 명확히 금지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뜻깊은 것이었다.
비기독교적 수행자들은 라틴어의 어원을 알지 못하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한층더 나아가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불교 승원의 규칙에 의하면, 비구와 비구니들은 돈을 받아서도 안되고, 심지어 속인들과의 물물교환이나 거래에 종사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전적으로 증여경제 속에서만 산다. 속세의 후원자들이 승원을 위해 필요한 물자를 선물로서 제공하고, 승원은 그들의 후원자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선물로 준다. 이상적인 상황에서 이것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교환, 전적으로 자발적인 어떤 것이다. 이 경제에서 보답은 제공된 물자의 물질적 가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제공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마음의 순수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Thanissaro Bhikku, “The Economy of Gifts:An American monk looks at the traditional Buddhist economy”, Tricycle:The Buddhist Review(Winter, 1996) p. 56)
전통사회
1950년대 초에 로나 마셜과 그 여자의 남편은 남아프리카의 부시맨들과 함께 살았다. 이들 부부가 떠날 때 그들은 그 부족의 여성 모두에게 카우리 조개껍질로 만든 목걸이를 하나씩 선물로 주었다. 카우리 조개는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없는 것으로서, 뉴욕에서 사온 것이었다.
마셜 씨 부부가 일년 후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갔을 때 그들은 그 카우리 조개껍질이 본래 그들이 선물로 주었던 사람들에게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음을 보고 놀랐다. “그 조개껍질들은 온전한 목걸이가 아니라 그 지역의 변두리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장식물 가운데 한두개씩 끼어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카우리 조개껍질이라는 선물은 보다 넓은 공동체 전체를 통해서 마치 물처럼 퍼졌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증여사회를 미개사회로 간주하고, 그들을 가볍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 사회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방법들 중에는 비상하게 복잡하고 정교한 것이 적지 않다. 전통사회에서는 증여 의식(儀式)들이 그 공동체 내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활동으로 여겨진다. 그 의식들이 복잡하다는 것은 바로 증여행위에 부여되고 있는 중요성이 크기 때문인 것이다.
예를 들어, 폴리네시아 군도 내의 한 부족인 티코피아족은 한번의 결혼식에 24종류나 되는 선물교환 의식에 참여한다. 이 모든 과정을 끝내는 데 며칠이나 걸린다.
또다른 군도(群島)인 마씸 군도에서는 다른 용도로는 아무 쓸모가 없는 쿨라라는 장식품이 의례적인 선물로서 한 섬에서 다른 섬으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섬들 사이에서 여성용 ‘술라바’ 목걸이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는 반면에 남성용 ‘음왈리’ 팔찌는 남자들 사이에서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다.
북서부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포틀라치'(‘기르고’ ‘준다’는 말)를 행하기 위해서 이웃 부족들을 모두 초대하여 큰 잔치를 연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준 물건의 양과 질로 표시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또는 ‘폐하’니 ‘각하’와 같은 칭호에 따라 사람을 평가한다. 그러나 북미 인디언 부족 콰키우틀족 사이에서 진실로 명예로운 지위를 가진 이의 특징은 물건을 내놓는 데 아낌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와 과학공동체
서양세계에서 가족공동체를 기억할 수 있는 흔적은 크리스마스와 생일 때, 선물을 교환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결혼식에도 ― 두 가족이 공식적인 결합을 통해 하나의 더 큰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 여전히 두드러진 것은 선물교환이다.
일본은 공동체의 붕괴라는 추세를 저지해온 유일한 선진국이다. 그 이유는 보통 일본의 사회구조나 심리 속에 존재하는 신비스러운 특이성에 있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선물교환이라는 우리의 핵심적인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물물교환’이라는 일본의 전통은 호혜적 선물교환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명확히 금전적 거래를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선물교환은 실질적으로 일본문화의 모든 국면에서 관건적인 의식(儀式)이 되어 있다. 선물은 대가족 내에서뿐만 아니라 직장동료, 존경받는 개인, 사회에서 또는 직장에서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교환된다. 이것은 흔히 예술, 서예, 문예 또는 그밖의 다른 분야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공유하는 형태를 취한다. 중요한 것은 선물의 금전적 가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도이며, 개인적 체취의 질이다.
공동체 가운데서 가장 ‘현대적인’ 공동체 ― 세계 전역에 걸친 과학공동체 ― 조차도 이와 같은 불문율에 의해 자양분을 공급받는다. 실제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과학공동체에 제공하는 과학자들은 인정을 받고 지위를 누린다. 그와 대조적으로, 돈 때문에 하거나, 교과서만을 ― 상업적 동기에서 ― 쓰는 과학자들은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조롱을 당한다. “교과서 출판이 경멸받는 과학적 커뮤니케이션이 되기 쉬운 이유의 하나는 교과서의 저자가 공동체의 재산을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과학공동체 내에 소속되기를 바라는 한, 과학자가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신용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아이디어를 공동체에 대한 선물로서 ― 그 때문에 금전적 이익을 얻음이 없이 ― 제공한다는 명시적인 전제조건 위에서만 가능하다.
현대 독일의 과학자 알무트 코발스키는 물리적인 세계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증여개념에 기초한 완전히 새로운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식물에서 우리 몸의 장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그녀 자신이 “파장을 맞추고 부드럽게 주는” 과정이라고 묘사한 것을 핵심적인 교환 메커니즘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우리 몸속의 콩팥은 몸이라는 유기체의 다른 부분이 필요로 하는 것에 “파장을 맞추고”, 그리고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콩팥이 할 수 있는 것을 “부드럽게 제공한다.” 켄 윌버가 말하는 ‘홀론’ 이론도 이와 비슷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있다.
공동체는 어떻게 붕괴되는가
공동체를 해체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체 형성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나는 비호혜적인 금전적 교환이 선물교환을 대체할 때마다 공동체가 붕괴된다는 것을 일반이론으로 제시할 수 있다.
위에서 본 과학공동체의 경우부터 먼저 보자. MIT의 유전과학 교수 조나산 카인드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 미국의 생명의료과학이 가지고 있었던 강점의 하나는 재료와 정보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 그런데 지금은 [대학들이 재조합 DNA가 갖고 있는 상업적 잠재력으로부터 돈을 벌고자 하기 때문에] 만약 사적인 이득과 미생물 유기체에 대한 특허화를 제도화한다면, 그때는 과학자가 자신이 만든 재료를 공개하는 것을 원치 않게 됩니다. 이것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이상 새로운 박테리아나 자신의 연구결과물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자유로이 ― 무상으로 ― 공유하지 않습니다.” 과학공동체의 한 모서리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북서부 아메리카 인디언들과의 최초의 의미있는 접촉은 미국 혁명기에 쿠크 선장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후 모피 무역업자들이 들어왔고, 허드슨 베이 회사가 1830년대에 거기에 최초의 전초기지를 세웠다. 이 모든 사람의 관심은 오직 모피에 있었고, 다른 면에서는 인디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토착민들의 ‘이교적’ 전통을 고쳐주기 위해서 도착하기 수십년 전에 이미 몇몇 공동체들은 무역업자들의 상업적 교환에 접촉한 결과로 붕괴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공동체 내에서 선물교환을 금전적 교환으로 대체한 부족들은 한 세대 안에 붕괴되었다.
이 과정은 전통적인 사회들이 서구세계와 상업적으로 교섭할 때마다 세계 전역에서 되풀이되어 왔다. 비호혜적인 금전적 교환이 이들 전통사회 내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자마자 그 공동체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나는 1970년대에 페루 영토 내 아마존 유역에서 페루의 국가화폐가 몇몇 토착부족들 내에서 유통되기 시작했을 때 공동체 붕괴현상을 직접 목격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서, 우리는 공동체를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공동체는 정기적인 호혜적 교환을 통해 자양분을 얻지 못하면 쇠퇴하거나 사멸해버린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공동체를 서로서로 선물을 존중하고, 그들의 선물이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 반드시 보답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사는 인간집단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상스럽게 전지구적으로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는 공동체 붕괴라는 현상을 볼 때, 우리는 이제 아마존 부족의 붕괴와 이탈리아 대가족의 핵가족화, 또는 서구 핵가족의 위기 배후에 있는 공통한 메커니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요인들도 물론 작용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경우에 다 들어맞는 한가지 열쇠가 있다. 그것은 비호혜적인 금전적 교환이 이 각각의 공동체 체계 내에 발생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어떤 경제이론은 모든 거래가 화폐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 것을 ‘발전’의 한 핵심적인 신호로 여기는데, 왜냐하면 그 순간부터 그 거래들이 전부 국가의 통계체계에 잡히기 때문이다. 공동체 붕괴의 과정이 보다 ‘발전된’ 국가들에서 최고조에 이르러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헤이즐 헨더슨이 말하듯이, “오늘날 우리가 어머니가 마련해준 아침을 먹고 싶다면 우리는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맥도날드 가게로 가는 수밖에 없다.” 잔디를 깎는 대가로 아들에게 돈을 지불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회에서는 이미 핵가족의 붕괴가 진행중이다. 또, 할아버지를 양로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을 때는 대가족제가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양로원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에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이웃과 공동체의 재건”에 대한 욕망이 전체 인구 86%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항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에서 어떻게 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을까?
공동체를 건설하는 화폐
우리는 방금 돈이 개입될 때마다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규칙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쓰는 공식적인 국가화폐와 같은 희소하고, 경쟁을 유발하는 화폐가 개입될 때만 이것은 사실로 드러난다. 실제로, 다른 유형의 화폐를 사용하면 오히려 공동체 형성이라는 정반대의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몇몇 경우에는 수십년 동안이나 진행되어온 실생활상의 실험을 두고 말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이론은 실천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다.
화폐 중에는 호혜성을 내재적인 요건으로 하고 있는 것이 있으며, 그것은 국가화폐보다 증여경제와 더 잘 어울릴 수 있다. 실천적인 사례들은 그러한 화폐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건설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준다.
대체 그것은 어떤 종류의 돈인가?
몇몇 실례들
여기에서 보여주는 몇가지 사례들은 각기 특색을 가진 저마다의 접근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핵심적인 개념은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타임달러
디스트릭트 오브 콜롬비아 법과대학의 교수 에드가 칸이 1986년에 ‘타임달러’ 개념을 발전시켰을 때, 그것은 원래 플로리다의 은퇴자들 가정, 시카고의 한 학군, 워싱턴 디씨의 어떤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위해서였다. 이제 이것은 수백개 지역 또는 기관의 공동체 화폐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한가지 인센티브는 미국 국세청이 타임달러를 통한 거래에 면세를 결정한 사실이다.
이 시스템은 우아한 단순성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이 시스템이 운영되는지 잠깐 보자. 조는 시력이 나빠서 운전을 더이상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도시의 다른 편까지 가서 특수한 새 슬리퍼 한 켤레를 가져와야 할 필요가 생겼다. 줄리아가 그 슬리퍼를 가져오기 위해서 한시간 동안 운전을 해주기로 동의한다. 줄리아에게는 한 시간분의 흑자가 생겼고, 조에게는 한 시간분의 적자가 생겼는데, 이러한 사실을 그들은 관리실 옆의 칠판에 기록해둔다.
줄리아는 자신이 얻은 흑자를 또다른 이웃사람이 구운 비스킷을 구입하는 데 쓸 수 있고, 조는 자신의 적자를 공동체 소유의 정원을 손질하거나 나쁜 시력으로도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함으로써 해소시킬 수 있다. 만약 조가 줄리아의 집 정원에서 한 시간을 일한다면 그것은 좀더 단순한 바터(물물교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조가 공동체 내의 또다른 사람을 위해서 한 시간을 일함으로써 적자를 해소하고, 줄리아가 제인의 비스킷을 사는 데 자신의 흑자를 쓸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타임달러는 바터보다는 훨씬더 용이하게 교환을 완성시키는 시스템이 된다. 조와 줄리아는 거래의 종결을 위해서 “상응하는 욕구와 자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타임달러는 실제의 돈이 된다. 즉, 어떤 것을(이 경우에는 서비스에 소요된 시간) 지불수단으로 사용하기로 한 공동체 내의 약속인 것이다. 달리 말하여, 조와 줄리아는 돈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이처럼 간단하다.
이러한 시스템을 출범시키는 데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 소규모 공동체에서는 칠판이나 종이 한장을 쓰면 된다. 좀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타임키퍼’ 컴퓨터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www.timedollar.org) 무상으로 받아내려 쓸 수 있다. 참가자 전원의 이름이 적자, 흑자 기록과 함께 목록처럼 적혀있고, 새로운 참가자, 새로운 거래에 따른 변동사항들이 자동적으로 확대 기록된다.
게다가, 누군가가 흑자를 기록할 때마다 다른 누군가가 자동적으로 적자를 기록한다. 따라서 모든 타임달러의 합계는 어떤 시점에서도 늘 제로이다. 그러면서도, 조는 슬리퍼를, 줄리아는 비스킷을 갖게 되었고, 공동체 소유의 정원은 잘 가꾸어졌다.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데 단 1달러도 필요하지 않았다.
교환된 재화와 서비스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은퇴자들의 집에 대하여, 타임달러를 쓰고 있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을 비교하여, 조사가 이루어졌다. 타임달러를 사용하는 집들에서는 사람들간의 결속이 이루어져 있음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지내고 있었다.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모두가 참가하는 큰 파티가 열린다. 사람들은 서로를 위해 돌본다. 일주일에 한번 비공식적인 만찬이 열린다. 그들은 또 공동의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다. 요컨대, 공동체가 창조된 것이다.
이 단순한 고안물은 사람들이 상호 관계하는 방식을 바꾸어놓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헌이 보답을 받는다고 느낀다. 그들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부수적 효과도 나타났는데, 그것은 참가자들이 좀더 건강해졌다는 것이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는 ‘엘더플랜’이라고 불리는 한 건강보험회사가 노년 건강프로그램의 보험료 중 25%를 타임달러로 받기로 결정했다.
타임달러는 지금 브루클린 전역에서 영화 및 연극 입장권, 교통, 건강관리 제품, 슈퍼마켓, 점심식비 등에 대해서도 사용되고 있다.
의료비가 국가 전체의 재정을 파산시킬지도 모를 정도로 연금생활자의 비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세계에서 누군가 타임달러에 주목하는 사람은 없는가?
좋은 소식이 영국에서 들려오는데, 1998년 3월에 발표된 ‘노년세대를 위한 보다 나은 시정(市政)’ 프로그램 중에 타임달러를 포함시키기로 워트포드 시의회가 결정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노인들은 자신보다 형편이 더 나쁜 다른 노인들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휠체어를 탄 노인들이 출입하거나 식사를 하는 데 도움을 주고, 다른 노인들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을 함으로써 타임달러를 벌게 된 것이다.
타임달러는 건강관리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뿐만 아니라 청소년 범죄나 파괴된 동네의 무법상태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타임달러는 지금 서비스뿐만 아니라 식품, 옷, 집 저당, 건강보험, 컴퓨터 및 학생들을 위한 학자금 대여를 위해서도 교환될 수 있다.
또한, 아직 별로 시도되지는 않았지만, 타임달러 시스템과 지역 비즈니스 사이의 수정(受精) 잠재성은 매우 크며, 그것이 실현된다면 양쪽 모두에게 중요한 혜택을 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2000년에 이르러, 300개 이상의 지역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타임달러 시스템을 시작했는데, 그 대부분은 앵글로-색슨 국가들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사카아워
이사카는 뉴욕주 북부의 작은 대학도시로서 약 2만7천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이사카는 부유한 도시가 아니다. 예를 들어서, 뉴욕주에서 이사카는 가장 높은 ‘비실업 빈곤’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비실업 빈곤이란 정규직에 고용되어 있으면서도 소득이 너무 낮아서 식량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태이다.)
지역공동체 활동가인 폴 글로버는 뉴욕시가 인근에 있는 탓에 이 지역의 에너지가 거대도시의 광대함 속으로 계속하여 빨려들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1년 11월에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돈과 시간을 지역공동체 내에서 사용하도록 고취하기 위해서 한 보완적 통화를 출범시켰다. 이것은 타임달러보다는 조금더 하부구조를 필요로 하지만, 그래도 놀랄 만큼 단순하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격월간의 타블로이드 신문인데, 여기에 ‘이사카아워’를 사용하고 받는 개인들과 사업체들이 그들이 제공하는 물품과 서비스를 광고한다. 1이사카아워는 10달러에 상당하고, 대체로 이 지역에서의 시간당 최저 임금에 해당한다. 화폐의 종류는 2, 1, 1/2, 1/4아워짜리 등 네가지가 있다. 대부분의 이사카아워 지폐는 타블로이드 신문에 나온 광고자들을 통해서 처음 발행된다. 각 광고자는 신문에 자신의 광고를 낼 때 4이사카아워분의 지폐를 받는다. 이사카아워가 사용될 수 있는 공동체는 도시의 중심에서 반경 20마일 내로 자발적으로 국한된다.
격월간 타블로이드 신문은 대체로 1,200개 정도의 목록을 싣는데, 이 가운데는 200개 이상의 비즈니스 광고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지역 슈퍼마켓, 이 지역에 있는 세 영화관 전부, 농민시장, 의료, 변호사, 비즈니스 컨설팅, 그리고 시내 제일의 레스토랑이 들어있다. 지역의 은행도 보완적인 통화로서 이사카아워를 받으며, 그 결과 매우 충실한 지역 고객들을 갖게 되었다.
핵심적인 사항의 하나는 광고자들이 미국달러와 이사카아워를 혼합하여 가격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주택에 페인트를 칠해 주고자 하는 사람은 시간당 10달러, 60-40이라고 광고를 하는데, 이것은 페인트와 붓과 석유, 세금 등 소요되는 비용 전체 중 이사카아워를 60%, 정규 미국달러를 40%의 비율로 받겠다는 뜻이다. 또다른 사람은 시간당 11달러, 90-10이라고 광고를 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집에 칠을 해야 할 필요는 있고 달러보다는 이사카아워를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설령 전체 가격이 더 높다 하더라도 후자를 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보완화폐를 규칙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것으로 집세를 내거나 다른 서비스 비용으로 쓴다.
마지막으로, 이사카아워 총 발행고의 9.5%는 현재 공동체 전체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이 지역의 비영리 단체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지금까지 19개의 단체들이 이러한 기부금의 혜택을 입었다.
폴 글로버는 그 혜택에 대해 이렇게 요약해서 말한다. “수천에 달하는 거래와 새로운 많은 친구를 사귀는 일이 우리의 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수십만에 달하는 지역내 교환, 거래를 통해서 우리가 ‘풀뿌리 GNP’라고 부르는 것이 증진되었습니다.” 이 시스템 전반에 관련된 큰 결정들은 ― 인쇄, 지폐의 종류, 발생방식, 대출 ― ‘이사카 준비위원회’라고 할 수 있는, 매월 두차례 열리는 비공식적인 만찬에서 이루어진다.
이사카아워 시스템은 처음에는 일본에서,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텔레비젼에서 소개되었다. 참가자들은 결과에 기뻐하고, 각 사업체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규 달러와 이사카아워를 함께 사용하고자 한다는 것을 보아왔다. 폴 글로버의 활동가적 스타일이나 정치적 입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가 만든 이 시스템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 시스템은 또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폴 글로버는 이러한 시스템을 설립하는 방법을 묘사하고 있는 지침서를 25달러 또는 2.5이사카아워를 받고 팔고 있다. 1997년 현재 39개의 아워 시스템이 세계에서 운용중에 있다.
장단점:이사카아워는 낮은 비용을 들여 시작할 수 있는 모델이며, 또 실제로 잘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불환(不換) 지폐에 공통한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얼마나 많은 통화를 발행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앙집중적 관리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사카 준비위원회’에서 이것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모든 중앙은행 책임자들은 불환 지폐의 공급을 관리한다는 게 얼마나 다루기 힘든 것인가를 알고 있다. 가장 큰 위험은 사람들이 사용하려는 것보다 더 많이 화폐가 발행되면 인플레이션과 통화가치의 하락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사카아워의 관리자들이 폴 글로버와 그의 동료들의 지도 밑에서 화폐공급을 지혜롭게 보수적으로 계속 결정한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것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
꾸리찌바 ― 제3세계의 운명을 벗어난 브라질 도시
1971년에 자이메 레르네르는 브라질의 남동부 빠라나의 주도(州都) 꾸리찌바의 시장이 되었다. 그는 건축 전문가였다. 이 지역 도시들의 일반적인 추세처럼, 1942년에 12만명이었던 이 도시의 인구는 자이메가 시장이 되었을 때는 백만이 넘는 인구로 급속히 증가해 있었다. 1997년에 이르러 인구는 230만명에 다다랐다. 그리고, 또 일반적인 추세처럼, 이 인구의 태반이 ‘파벨라’, 즉 판지(板紙)와 골함석으로 지은 판자촌에서 살고 있었다.
자이메 레르네르가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는 쓰레기였다. 쓰레기 수거트럭은 파벨라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판자촌에는 트럭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도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쓰레기는 그냥 쌓였고, 설치류 동물들이 그속을 돌아다녔으며, 온갖 질병이 발생했다.
불도저를 가지고 그 지역을 밀어붙이고 도로를 건설한다는 것과 같은 ‘통상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에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레르네르는 다른 방식을 만들어내었다. 커다란 금속통들을 파벨라 입구의 큰 거리마다 설치하였다. 금속통들에는 각각 유리, 종이, 플라스틱, 썩는 물질 등등이라고 표기가 된 큰 라벨들을 붙여놓았다. 그 표지들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색깔로 구분해 놓기도 했다. 미리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하여 한 봉지 가득 넣어오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버스표를 하나 받게 되었다. 학교를 중심으로 한 쓰레기 수거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가난한 학동들에게 쓰레기를 봉지에 넣어오는 대가로 공책들을 주었다. 그러자 곧 판자촌 동네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쓰레기를 줍는 바람에 청결해졌고, 아이들은 플라스틱 종류들을 구분하는 방법도 재빨리 터득했다. 부모들은 시내에 있는 일자리까지 가는 데 그 버스표를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자이메 레르네르가 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독자적인 꾸리찌바 화폐의 창조였다. 그의 버스표는 일종의 보완화폐이다. “쓰레기가 아닌 쓰레기”라는 그의 프로그램은 “당신의 돈이 되는 쓰레기”로 명명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늘날 꾸리찌바 전체 가정의 70%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더 가난한 62개의 동네에 한정하더라도 11,000톤의 쓰레기가 거의 100만개에 달하는 버스 토큰과 1,200톤의 식품으로 교환되었다. 지난 3년 동안 100개 이상의 학교에서 200톤의 쓰레기가 190만권의 공책과 교환되었다. 꾸리찌바의 종이재생 사업만으로 매일 1,200그루의 나무가 절약된다.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레르네르 시장과 그 동료들이 처음부터 보완적 통화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 지역의 모든 주요 문제들에 대한 종합적인 시스템 분석을 하였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종의 보완화폐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법을 통해서 쓰레기재생 활동만이 꾸리찌바의 지역통화가 된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서, 시(市)의 재정에 압박을 주지 않으면서 역사적 건축물을 복구하고, 녹지대를 만들고,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서 또다른 시스템이 고안되었다. ‘솔 크리아도'(창조된 땅이라는 의미)라고 불리는 이것은 다음과 같이 운용된다.
대부분의 도시들처럼 꾸리찌바는 각 구역에 따라 지을 수 있는 건물 층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세세한 구역별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꾸리찌바에는 두개의 기준, 즉 통상적인 허용기준과 최대 허용기준이 있다. 예를 들어, 대지 1만평방미터의 호텔을 통상적 허용기준이 10층이며, 최대 허용기준이 15층으로 제한되어 있는 구역에 세우려고 한다. 만약 호텔 소유자가 15층을 건축하고자 한다면 그는 ‘솔 크리아도’ 시장에서 5만평방미터의 땅을 사야 한다. 시청은 다만 그 시장에서의 공급과 수요의 짝을 맞추어주는 구실만 할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솔 크리아도’ 땅은 어디서 공급받을 수 있는가?
한가지 원천은 역사적 건축물이다. 예를 들어, ‘클럽 이탈리아노’는 ‘가리발디 하우스’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역사적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이 재산은 전체 대지가 25,000평방미터이지만, 매우 심각한 복구작업을 필요로 했다. ‘클럽’은 건물 복구에 필요한 돈이 없었다. 그러나 그 건물은 이론적으로 2층 높이까지 지을 수 있는 구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가장 높은 값을 부른, 가령 앞에서 언급한 호텔 소유자에게 5만평방미터를 팔았다. 이 돈은 ‘클럽’ 관리자에게 귀속되고, 건축물 복구비용에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호텔 소유자는 시청 쪽의 재정적 개입 없이 역사적 건축물의 복구비를 지불하고 호텔의 나머지 층을 지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이러한 ‘솔 크리아도’ 땅을 공급하는 또다른 원천은 수목을 보호하면서 공동주택을 건설할 수 있는 녹지대들이다.
최근에 만들어지면서 공중에게 개방된 16개의 큰 공원 가운데 몇몇은 완전히 이런 식으로 재정문제를 해결하였다. 넓은 땅의 소유자가 그 땅의 한쪽이 공원이 되게 한다는 조건으로 땅의 일부를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다. 새로운 주택들은 공원에서 걸어서 닿을 만한 거리에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이점을 갖게 되었고, 꾸리찌바 시민들은 주말에 어슬렁거릴 수 있는 또하나의 공원을 갖게 되었으며, 시 당국은 이 때문에 빚을 지거나 세금을 올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모두가 이긴 것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 ‘솔 크리아도’ 시장이 결국 특화된 보완화폐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 덕분에 꾸리찌바는 다른 도시들이 전통적인 재정지출 방법을 통하여 얻는 공공재를 전혀 다른 방식을 통하여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명백해졌을 것이다. 잘 고안된 새로운 통화체계가 시행될 때마다 돈이나 돈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활동들보다 훨씬더 큰 어떤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음에 쓰레기와 공중보건 문제로서 시작된 일이 공공교통과 실업문제를 독특하게 혁신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된 것이다. ‘솔 크리아도’ 시장 시스템을 만들어냄으로써 시(市)에 아무런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고 중대한 공공의 이익이 획득되었다. 비결은 시 당국이나 이 도시 사람들이 특이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적인 시스템분석 방법을 통해서 당면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한 보완적 화폐가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그 결과는 상투적인 지혜를 거스르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도시로 나타났다.
꾸리찌바 ― 대안적인 발전 전략
- 공공교통 수단이 개인 승용차 사용보다 장려된다. 이것은 공공교통 수단을 개인 자동차보다 더 좋고, 더 편리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실현되고 있다. 예를 들어서, 꾸리찌바의 공공수송은 승객들의 타고 내리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시스템을 고안함으로써 개인 수송수단보다 더 빠르다. 버스 토큰을 가진 사람들은 특수하게 설계된 지상의 튜브형 버스정거장으로 들어간다. 버스가 도착하면 버스와 튜브가 접하는 면 전체가 동시에 열려 많은 사람들이 단 몇초 만에 타고 내릴 수 있다. 버스요금이나 토큰을 받는 데 시간이 소모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공공수송을 위한 전용차선 때문에 버스는 가장 빠른 수송수단이고, 도시의 어디로든 움직이는 데 가장 편리한 수단이다. 0.65R$(미화 약 50센트)짜리 차표 한장이면 거리에 상관없이 전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지선(支線)과 지역 내부 공공교통 체계로 연결되는 과정도 포함된다. 이러한 교통 시스템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는 시민들이 이것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수송 수단을 이용하는 네 사람 중 한명은 자기 차를 소유하고 있지만, 시내 볼일을 위해서 자기 차를 사용하지 않는다. 공공수송 체계의 효율성 때문에 도심지에 몇몇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보행자 전용도로는 지금 음악 연주, 인기있는 연극 공연, 아동들의 미술축제 등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도시들이 유령의 도시들이 되어버린 것과는 달리, 꾸리찌바에는 하루 24시간 열려 도심지역의 활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점과 레스토랑들의 아케이드들이 있다.
- 일반적으로 도시 계획자들은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에는 어떤 곳이든 교통체증을 막기 위해서 지하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매일 1,000톤 이상의 고형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도시들은 값비싼 쓰레기 분리기계가 설치된 공장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꾸리찌바는 그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다. 꾸리찌바의 공공교통 시스템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은 동등한 효율성을 가진 지하철 시스템에 드는 비용의 5%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절약되는 돈은 꾸리찌바의 버스들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버스의 하나가 되게 한다.
- 꾸리찌바에는 ‘자유환경대학’이 있어서 주부, 건물관리자, 상점주인, 택시 운전사들에게 무료로 실제적인 단기 강좌를 제공한다. 이들은 그들이 수행하는 매일매일의 활동들이 갖는 환경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교육을 받는다. 이 ‘대학’의 건물은 대부분 전신주를 재생한 재료로써 지어진 기념비적 건축물이다.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전에는 버려진 채석장이었지만, 지금은 호수 옆에서 목가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 꾸리찌바는 1950년대보다 현저하게 낮은 오염도를 기록하고 있는 브라질의 유일한 도시이다. 또한 이곳은 비교가능한 다른 브라질 도시들에 비해서 더 낮은 범죄율과 더 높은 교육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 도시는 별다른 적자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연방정부로부터의 보조금을 실제로 거절해온 브라질 유일의 도시이다.
- 한때 시내의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곳에 식물원이 세워졌고, 이 식물원은 지금 레크리에이션과 연구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도시 전역에는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16개의 자연공원이 있다. 그 결과 꾸리찌바는 주민 1인당 52평방미터의 자연녹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유엔이 정한 이상적인 도시 주민 1인당 녹지는 48평방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꾸리찌바의 수준은 제1세계 또는 제3세계를 통틀어서 예외적인 수준이다. 게다가, 이 모든 공원은 이 도시의 어디서든 공공수송 체계를 통해서 쉽게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시민들이 그 공원들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고, 또 실제로 이용하고 있다.
- 1992년에 유엔은 꾸리찌바를 세계의 모범 생태도시로 인정하였다. 자이메 레르네르는 그의 창의성에 대한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몇몇 다른 도시들이 꾸리찌바의 예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브라질의 약 20개 도시가 통합된 공공수송 체계를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케이프타운은 그 체계의 몇몇 특성을 모방하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칠레의 산티아고, 몬트리올, 파리, 프라하, 멕시코, 라고스는 꾸리찌바의 예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잘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표시는 자이메 레르네르가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되곤 하였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그는 빠라나주의 지사이다. 그를 브라질의 차기 대통령으로 옹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꾸리찌바의 이야기는 보완화폐와 관련해서 정치적 성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이메 레르네르의 성공은 단순히 개인적 카리스마나 종족적 배경에 말미암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증거는 한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세 사람의 정치적 성공이 이미 이러한 아이디어의 결과로 이루어졌다는 데서도 볼 수 있다. 레르네르를 승계한 두 사람의 시장 ― 라파엘 그레까와 카씨오 이나구치는 각기 다른 개성과 종족 배경을 가지고 있다 ― 은 자이메 레르네르의 기획팀의 참모들로서 출발했다. 이 노선의 승계에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보완적 시스템의 효과는 경제적 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꾸리찌바의 시민은 브라질의 최저 임금의 3.3배를 벌고 있는데, 그가 실질적으로 버는 소득의 총계는 적어도 그보다 30% 더 높다.(즉, 최저임금의 5배에 달한다.) 이 30% 차이는 쓰레기 수거체계로 인한 식품취득과 같은 비전통적인 금전의 형태로 발생하는 소득에서 온다. 또하나의 주목할 점은 꾸리찌바가 현재까지 브라질에서 가장 발달된 사회적 지원체계와 가장 생기있는 문화적, 교육적 프로그램의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도시들에 비해 더 높은 세율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거시 경제학의 통계적 수준으로 볼 때도, 꾸리찌바의 경우는 비범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1980년에서 1995년 사이에 꾸리찌바의 1인당 생산(Domestic Product)은 빠라나주 또는 브라질 전체보다도 45% 빠르게 성장하였다.
꾸리찌바는 25년에 걸친 경험의 결과 전통적인 국가통화와 잘 고안된 보완화폐를 혼용하는 통합적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준다는 점을 보여주는 실제적인 사례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한 제3세계의 도시가 한 세대 안에 제1세계의 생활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비아 쿠드 첨’ ― 동남아시아 최초의 공동체 화폐
2000년 3월 29일 방콕에서 버스로 약 10시간 걸리는 타일랜드 북동부 지역인 ‘쿠드 첨’의 마을사람들은 이자가 없는 공동체 화폐 ‘비아’를 가지고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얼른 보기에, 이 마을의 작은 시골시장은 타이의 다른 시골시장과 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고객이 “마을의 주부클럽에서 만든 저 물비누 한병 값은 얼마인가요?”라고 물으면, 탁자 뒤에 있는 부인이 환하게 웃으며 이를 드러내놓고 “30바트하고 5비아입니다”라고 답한다.
‘비아’는 타이의 공식통화 ‘바트’와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고, 또 ‘바트’와 함께 사용될 수 있는 이곳의 화폐의 이름이다. 1, 5, 10, 20, 50비아짜리 지폐가 있다. 이 지폐들은 ‘산티수크 비아은행’을 통해서 지역회원들에게 공급된다. ‘비아은행’ 여성 책임자 부아통 분스리는 지역회원들이 최대 500비아까지 빌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여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빌린 돈을 그 액수대로 되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여기에는 이자를 물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은행에 돈을 예치해 놓는다고 해서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비아은행에 등록한 지역회원들만이 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등록하지 않은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한다면 다른 지역회원들로부터 비아를 받아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환수단으로서 비아를 사용하는 것은 인근 6개의 마을에 국한되어 있다. 그래서 한 방문객은 이렇게 물었다. “내가 방콕행 버스표를 비아를 가지고 살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비아 쿠드 첨’ 실행위원회의 위원인 프라놈포른 테타이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마을사람들이 지역 외부에서 사는 물품의 수를 줄이고, 지역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지원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덧붙여 말한다. “우리의 농업소득(자스민 쌀 판매에서 오는)은 여전히 바트화로 되어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병원에 가는 것과 같은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데 바트를 계속해서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역의 산물인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서는 비아로 교환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보시(布施)의 의례가 끝난 다음 탈라드 사원의 주지 프라 수파자라와트르는 설법을 행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립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친절과 상호존경에 근거하여 서로서로 교환하였습니다. 자연환경은 풍성하였고, 공동체의 인간관계는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프라 수파자라와트르는 30년 동안 이 지역에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숲의 보존과 전통의학 지식의 부활과 지역문화의 보존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갈수록 공동체적 유대 없이 상업적 관계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내에서도 우리는 서로 돕기보다는 서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환경은 악화되고, 공동체적 관계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나는 ‘비아 쿠드 첨’이 파괴적인 의존을 줄이고, 우리의 공동체를 강화하는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시장에서 잠시 쉴 틈에 저명한 사회운동가이자 ‘교육정신 운동’의 창시자인 술락 시바락사는 말했다. “우리가 많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게 진정한 부가 아닙니다. 진정하게 부유하다는 것은 공동체의 안정을 뜻합니다. 마을사람들을 끝없는 부채의 순환고리에 가두어 두고 있는 소비주의는 이러한 안정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해답은 좀더 자립적인 삶으로 되돌아가는 데 있다고 술락 씨는 확언한다. 그는 말한다. “자립은 불교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 과정은 공동체와 함께 시작되어야 합니다. 위로부터 시행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출범하던 날 끝무렵에 그 지역의 600개 가정 가운데서 112개 가정이 ‘비아 쿠드 첨’ 시스템의 회원으로 등록했다. 8,000비아 이상이 이자 없는 대출금으로 마을사람들에게 제공되었다.
‘비아 쿠드 첨’의 기원
‘타이 공동체 화폐 시스템 계획’은 1997년에 타이의 다양한 NGO들의 협력으로 출발하였다. 캐나다와 홀란드의 자원봉사자들이 타이의 NGO 단체들과 세계 전역의 공동체 화폐 그룹들 사이의 정보교환을 돕고, 조언을 해주었다. 기금은 ‘일본 아시아센터 재단’에서 나왔다.
1998년 9월에 수린에 있는 ‘타이 북동부 훈련센터 재단’에서 공동체 화폐를 위한 워크숍이 열렸다. 북동부 지역 전역에 걸친 민중조직의 대표자 50명 이상이 ― ‘쿠드 첨’ 마을에서 온 네 사람을 포함해서 ― 모임에 참석하였다. 이들 대표자들은 ‘타이 공동체 화폐 시스템 계획’의 관계자들을 자기들 지역으로 초청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 ‘계획’ 관계자들은 ‘쿠드 첨’에 몇달 머물면서 그 지역 공동체와 그곳의 개발과 교환의 역사에 관해서 지식을 쌓았다. 여섯개 마을로부터 2명씩 모여 조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매월 한차례 열린 모임에서 공동체 화폐체계를 설립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관한 토의가 진행되었다. 지폐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다음에 ‘비아’ 지폐를 장식할 그림을 공개경쟁을 통해 결정하였다. 그 결과 지폐의 앞면은 벼논의 모심기에서 수확에 이르는 여러 단계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뒷면은 전통 축제의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또한, 모든 지폐에는 지역 방언으로 씌어진 ‘캄 콴’, 즉 명상시(瞑想詩)를 적어놓았다.
지역색깔을 강조한 이러한 도안은 부분적으로 멕시코시티의 공동체 화폐 탈록(Tlaloc)의 조직자 중의 한 사람인 루이스 로페젤라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로페젤라 씨는 두 공동체가 서로 배울 수 있도록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 1999년 4월에 쿠드 첨을 방문했던 것이다.
‘비아 쿠드 첨’ 공동체 화폐는 어떻게 운용되는가
이 공동체 화폐는 ‘비아 쿠드 첨 공동체 은행’에 계좌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자 없이 대출된다. 이 은행은 두 사람의 여성 회원에 의해 관리되며, 그들은 핵심 그룹을 형성하는 10명 정도의 회원과 함께 일한다.
계좌 하나하나가 단위로 간주되고, 각 단위에는 많은 회원이 들어있다. 그리하여, 한 가정이 한 단위가 되고, 식구들 한사람 한사람은 하위 참가자들이 된다. 한 단위는 최초에 500비아 한도 내에서 대출을 받아 시작하고, 이것을 갚아야 더 많은 비아를 대출받을 수 있다. 매달 단위 계좌에 대한 정보가 투명한 회계를 위해서 시스템 원장(原帳)에 이전된다. 시스템 전체 장부는 늘 대변과 차변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시스템의 현 상태에 관한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비아’ 화폐는 지역 산품을 구매하는 데 타이의 국가화폐 바트를 대신하고, 수입대체와 지역중심 생산활동을 증가시킬 의도로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서, 마을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 그동안 좀더 건강에 좋은 스낵식품이 지역에서 생산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비지역산 스낵식품을 위해서 상당한 돈이 쓰여지고 있었다.
참여적이고, 협동적인 활동을 통해서, 공동체의 필요와 욕구를 반영하는 하나의 시스템이 고안된 것이다. 이것은 그 공동체에 적합한 건전하고 단순한 회계 시스템을 사용한다. 이것은 광범위한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중요한 개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시스템의 장래의 발전은 공동체 자신이 결정하겠지만, 현 단계에서도 이미 그것은 수입대체, 무이자 금융, 소액대출, ‘비아은행’을 통한 건강 및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활동에서 실질적인 발전을 허용하고 있다.
‘비아 쿠드 첨 공동체 화폐체계’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런 종류로는 최초의 시스템이다. 이 화폐체계의 기술적인 독창성은 지폐 기술을 상호신용 체계(각 회계단위는 실제로 공동책임을 지는 개인들을 대표한다)와 결합시켰다는 데 있다. 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이러한 타이의 NGO 프로젝트가 홀란드, 캐나다, 멕시코의 공동체 화폐 전문가들이 일본의 비영리재단의 자금지원 밑에서 이루어낸 협력과 수정(受精) 작업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보완화폐 운동이 지금 세계 전역을 통해 더욱 확대, 세련화되고 있는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이 글은 최근 출간된 그의 저서 The Future of Money:Creating New Wealth, Work and a Wiser World(2001년)의 제6장을 일부를 제외하고 번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