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방금 소개받은 황대권입니다. 아까 앞에서 채규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도중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면 간첩이라고 했는데, 제가 그래서 간첩이 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웃음) 사실 저로서는 이런 자리에 한번도 서본 바가 없고요, 다만 혼자서 이런 궁리, 저런 궁리 하다가 세월을 보낸 사람입니다. 제가 이런 자리에 설 자격이 없음에도, 처음에는 당황했다가, 결국 서게 된 것은 저 역시《녹색평론》의 열렬한 독자로서 여러분과 얘기를 나눠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으로 만용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강연 제목이 ‘뿌리내리기’인데,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보고 강연 제목을 뭐라고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는데, 사실 제가 대학 이후 지금까지 한가지 전공이 없습니다. 워낙 잡스럽게 공부한 사람이라서, 제가 무슨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해야 할지 딱 부러지게 말씀을 못 드리겠더라고요. 그래서《녹색평론》에서 알아서 붙여달라 했더니 ‘뿌리내리기’라는 제목을 붙여줬어요. 아마도 제가 세상에 나와서 새롭게 뿌리내리기를 시도하는 사람이니 겸사겸사 해서 그렇게 붙인 모양입니다. 이 제목을 받고 나서야 아, 내가 무슨 얘기를 해야겠다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뿌리내리기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풀뿌리입니다. 그리고 풀뿌리 하면, 잡초, 이런 것이 생각나서 오늘 제가 잡초를 주제로 해서 생태문제랄까요, 생태주의 운동에 대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그리고 끝에는 잡초에 대한 우리 관념을 어떻게 가지고 생태주의 운동을 펼쳐나갈 것인가, 그 연관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제가 사실 여러분에게 너무 생소한 사람이라서 간단하게 저에 대해서 몇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원래 농대를 졸업했지만, 유신시대 때 사회상황이 그랬듯이 유신철폐운동 하고 반정부투쟁 하고 이러다 정치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전두환 쿠데타 이후에 미국으로 정치학을 공부하러 갔어요. 미국에서, 주로 제3세계 정치학, 제3세계 혁명론 이런 것을 공부하다가, 1985년에, 전두환 시절이죠, 안기부에서 조작한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어요. 그 당시 저와 같이 공부했던 한 친구가 귀국할 때 평양을 방문하는 바람에 그 친구하고 같이 있었다, 같이 토론을 하고 그랬다, 이래가지고 안기부에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받은 끝에 간첩으로 조작되어 그런 형량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게 되면 첫돌 잔치 때 아기 앞에다 물건들을 놔두고 처음 집는 것을 보고, 아 이 애가 이담에 뭐가 되겠구나 이런 것을 짐작한다고 합니다. 어린애가 가령 지폐를 집으면 이 아이는 이담에 큰 상인이 되겠구나, 연필을 집으면 이 아이는 큰 학자가 되겠구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상당히 맞는 것 같아요.
제가 군대를 79년도에 제대했는데, 제대하고 처음으로 읽은 책이 파울로 프레이리의《페다고지》라는 책이었어요. 이 책이 제가 미국 유학갈 때까지 저의 사고와 행동을 사로잡았던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82년도에 미국 유학을 갔어요. 정치학을 공부하러. 그때 미국에 가자마자 첫 번째로 읽은 책이 카스트로의 책입니다. 젊은 카스트로가 청년동지들을 이끌고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고 나서 법정에 끌려갔을 때 법정에서 한 최후진술 제목이 “역사는 나를 용서할 것이다”였는데, 바로 그 최후진술을 담은 책이었어요. 이 책이 한 3년 가까이 되는 미국유학 기간 동안 저의 생각과 활동을 지배했습니다. 그후 소위 반제(反帝)운동이라 그럴까요, 그런 데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활동하다가 결국 징역까지 살게 되었는데, 그렇게 무기징역을 살다가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13년 2개월 만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감옥 안에서 많은 변화를 겪고 나와서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던 중, 오랫동안 저의 석방운동을 하여준 앰네스티 인터내셔날, 즉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초청장이 날아왔어요. 그래서 유럽에 가서 세상구경도 하고, 간 김에 평소에 하고 싶었던 공부도 좀 하고 이러고 돌아온 지가 한달 반쯤 됐습니다. 제가 이번에 영국에 주로 있었는데요. 영국에 가자마자 읽었던 첫번째 책이 뭐냐 하면 여러분도 잘 아시는 장 지오노의《나무를 심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앞으로의 저의 남은 생애를 지배할 그런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농업의 산업화, 생물종 다양성의 파괴
오늘 얘기할 것은 잡초인데요. 잡초란 무엇이냐, 그리고 잡초에 대한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잡초를 한자로 풀면 ‘잡스러운 풀’이 됩니다. 학술서적을 뒤져보면 영어로는 정의가 수십가지가 나와요.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의를 한두가지 들어보면, ‘원치 않는 장소에 난 모든 풀들’, 또는 ‘잘못된 자리에 난 잘못된 풀’ 대개 이렇습니다. 이것은 풀에 대한 철저히 인간 중심주의적인 정의입니다.
“내가 심은 것은 작물이고, 내가 길러먹을 것 또한 작물이다. 너는 내가 길러먹을 작물의 영양을 빼앗아먹고, 재배하는 데 방해만 되니 하등 쓸모가 없는 풀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이해와는 상반되는 적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미안하지만 너는 모조리 죽어주어야겠다.”
이것이 오늘날 농사짓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마음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뽑고, 베고, 약을 치고, 태우고 ?? 하여튼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합니다. 이런 농업행태는 적어도 20세기 중반에 농업이 산업화되기 전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힘이 좀 들어서 그랬지. 그러나 산업화된 농업에서는 잡초를 박멸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농약을 뿌려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어떠한 일이 벌어졌습니까? 제가 긴 얘기 안해도 유명한 레이첼 카슨 여사가 쓴《침묵의 봄》이라는 책에 아주 잘 나와있죠. 농약을 쳐서 잡초를 제거한 결과 모든 풀과 식물들이 사라지고 그 풀씨를 먹고 살아가는 야생동물과 새들이 다 죽어가고 결국 지상에서 새의 노랫소리가 사라진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로 전세계 도처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그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미국 같은 나라는 1952년까지만 해도 경작지의 10% 정도만 제초제를 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경작지의 90% 정도가 농약을 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그 어마어마한 넓은 땅에 농약을 그렇게 뿌려대니 그게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결국은 다 우리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죠. 그런데 농약을 쳐서 잡초를 제거하는 것은 아까 말한 환경오염이라든지 혹은 식품오염이라든지 이런 거 못지않은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생물종 다양성의 문제입니다. 제가 생태학을 접하면서 가장 몸서리를 치면서 공부한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구상에 생물종이 현저하게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장 주된 원인이 농업에 있어요. 아까 잡초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이 땅의 주인은 식물입니다. 지구상에 이렇게 동물들이 살 만한 조건을 만들어 준 게 식물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어느날 딱 나타나서는 야채를 심어놓고 원래 주인인 풀들을 다 쫓아냈어요. 풀만 쫓아낸 것이 아니라 그런 풀들을 먹고사는 온갖 짐승들, 생물들을 다 쫓아냈습니다. 그 결과 이 지구상에 생물종들이 현저하게 사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보고에 의하면 하루에도 몇백종씩 지금 생물종이 멸종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영국에 있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 가운데 하나는 새들이 그렇게 많다는 거였어요. 새들 종류도 많습니다. 조금 호젓한 시골집 같은 데서 자면요, 아침에 늦잠을 잘 수가 없어요. 새들 때문에 시끄러워서요. 얼마나 지저귀는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나오는 학술지를 보니, 제가 보기엔 그렇게 새가 많은데도 전전(戰前)에 농약을 쓰기 전하고 비교하면 종류가 절반으로 줄어든 거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보세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 그때 저는 서울 변두리에 살았지만 ― 참새, 까치부터 시작해서 온갖 새들이 참 많았어요. 주로 토종 텃새들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 새들을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새나 온갖 야생동물들뿐만 아니라,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작물의 종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농업이 산업화되기 전에 벼의 종자 수만 한 3만종 가량 재배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녹색혁명을 거쳐서 요즘 재배하고 있는 벼의 종류가 겨우 12가지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그 많은 종이 다 어디로 갔어요? 종자라는 것이 한해 심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 씨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계속적으로 재배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된 원인이 바로 농약을 뿌리는 농사, 단작(單作)에 의한 농사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거대한 사회시스템, 즉 자본주의 시스템하고 맞물려 있습니다. 즉 요새 말하는 ‘슈퍼마켓 시스템’이죠. 슈퍼마켓이라는 곳은 품종의 다양성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잘 팔리는 물건만 갖다놓습니다. 물건이 잘 안 팔리면 가차없이 주문을 끊어버립니다. 시장에서 주문을 안하면 농민들이 생산을 안하게 됩니다. 생산을 안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단종되는 것이죠. 제가 영국에 가서 놀란 것이, 영국이 추운 나란데 슈퍼마켓에 들어가니까 상품이 무지무지하게 많아요. 저 열대지방에서 나는 것부터 다 있어요. 그리고 영국에서 생산된 것들만 해도 상품 종류가 어마어마해요. 그런데 이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식품가공산업이 발달한 것이지 작물의 종이 늘어난 게 아니예요. 작물의 종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어요. 우리가 산업농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골의 농부들이 일년 동안 농사지어서 먹고, 채취하고, 이용하고 한 것이 100종에서 300종 됐다고 그래요. 식물종으로서 인간이 먹고 이용하고 한 것이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슈퍼마켓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품시스템을 보면 우리들이 먹는 야채종류가 20가지를 넘지 않아요. 겨우 20가지도 안되는 것들이 슈퍼마켓에 있는 90%의 상품들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눈에 다양해 보이는 모든 상품들은 생물종이 늘어나서 그런 게 아니고 식품가공산업이 발달해서 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녹색혁명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죠. 제가 녹색혁명을 잘 몰랐을 때에는, 야 ‘녹색’도 좋은 말이고 ‘혁명’도 좋은 말인데 저것 좀 빨리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웃음)
녹색혁명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생존차원의 농업을 자본주의 농업으로 편입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선진국의 실험실에서 다수확 품종을 개발해서 그것을 전세계에 풀어먹인 게 바로 녹색혁명입니다. 농부들이 받아서 쥔 것은 다수확품종 곡물 한알이었지만, 여기에 온갖 사회시스템이 다 따라 들어옵니다. 바로 그 다수확품종 하나를 재배하기 위해서 비료 들어가야지 농약 들어가야지, 또 다수확품종은 물을 많이 먹습니다. 그래서 관개수로 정비해야지, 대규모 농기계 도입해야지,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이다 보니까 이것을 지도할 농사 지도원도 있어야 합니다. 들어오기는 낱알 하나였지만 선진국에서 만든 거대한 사회시스템이 다 들어갑니다. 바로 이것을 제3세계 정부들이 발벗고 나서서 했고, 돈이 없는 제3세계 정부나 농부들이 이걸 갚을 길이 없으니까 결국 생산량은 몇배 늘어났지만 모조리 빚더미에 앉고 말았어요. 이것이 가속화된 것이 오늘날 WTO체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제초제를 사용하는, 풀을 제거하는 관행농법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가져오고, 식품오염을 가져오고, 생물종 다양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어요.
‘잡초’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럼 우리 생태주의자는 잡초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물론 생태주의에도 여러가지 스펙트럼이 있어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과 다른 생물종이 동등하다, 다른 생물종들도 고귀한 가치를 갖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잡초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잡초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잡초라고 부르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죠. 일종의 모독입니다. 사람들이 이상한 작물을 심어놓고 자신을 모조리 제거하려고 드니 잡초로서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영국의 한 잡초학자가 잡초의 이상형, 즉 가장 이상적인 잡초의 품성을 적어놨어요. 제가 한번 이 사람이 이상적인 잡초란 뭔가 하고 써놓은 걸 그대로 읽어보겠습니다. “이상적인 잡초는 쓸데없이 크고, 생장속도가 빠르고, 못생겼고, 쓸모가 없고, 꿀이 없고, 야생적 가치가 없고, 숫자가 많고, 쉽게 번식하고, 맛이 없고, 가시가 많고, 알러지를 일으키고, 독성이 있고, 역겨운 냄새를 내고, 잎이 금방 무성해지고, 재배하기 까다롭고, 제초제에 내성이 강하고, 뿌리가 울퉁불퉁하다.” 하여간 잡초에다 나쁜 말은 다 갖다붙였어요. 이렇게 잡초에다 나쁜 말은 다 갖다붙이고, 잡초는 싹 죽여버리고, 그 자리에 희멀건 야채만 키워서 먹었어요. 이것이 오늘날의 농업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이게 아주 낯익은 사고방식입니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제3세계를 침략할 때 바로 똑같은 방법을 썼어요. 자기네 문명이 가장 선진적이고 인간적이고 민주적이고 인간의 문명이 가야 할 방향이다, 이렇게 정의해놓고 나머지 제3세계 문명들에는 방금 말한 잡초처럼 모든 나쁜 품성들을 다 붙여놓았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진보의 이름 아래 이것들을 싸그리 없애려 하였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질서입니다. 이것이 농업에 적용된 것이 바로 잡초를 제거하는, 제초제를 쓰는 농업인 것입니다. 최근 서구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생태학적 제국주의’라고 해서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알려진 식물종 ― 물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식물, 사람들이 미처 이름을 붙이지 못한 식물종이 더 많습니다만 ― 이 약 35만종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35만종의 식물 중에서 인간들이 재배해서 먹고 있는 것은 약 3천종 가량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35만에서 3천을 빼면 숫자가 어떻게 됩니까. 대략 34만7천종의 식물들을 전부 잡초라고 없애버리는 그런 우를 지금 인류가 범하고 있어요. 그것이 어째서 잡초인가. 그래서 저는 잡초라는 말을 안 씁니다. 대신에 저는 야초(野草)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이 야초는 하나하나가 모두 나름대로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아직 그 가치를 잘 몰라요.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없애버리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이렇게 잡초를 공부하다가 발견한 아주 멋들어진 정의가 하나 있어요. 에머슨이라는 학자가 붙인 정의인데요. “잡초는 그 가치가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풀이다.” 아주 기가 막힌 정의라고 봅니다. 물론 이것도 약간은 인간 중심적인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상당히 겸손하고 잡초를 이해하려는 그러한 정의라고 봅니다. 잡초들이 아직은 우리한테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이 잡초들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옛날에 우리 농부들은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들은 농사를 지을 때 밭 가운데 나는 잡초들을 무조건 잡아 뽑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잡초의 특성들을 연구해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또 먹을 수 없는 것들 가운데서 생활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들을 구분하여 쓰임새에 따라 이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퇴비를 만든다든지, 빗자루를 만든다든지, 여러가지 생활도구를 만들어 썼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게 됐습니까? 산업화가 된 이후로 이러한 생활용품들은 모두 다 상품으로 나와있지요. 새끼줄 대신에 나일론 끈을 쓰고 초가지붕 대신에 양철지붕을 올리고 ?? 이러다 보니까 야초를 활용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우리가 70년대에 통일벼를 심었죠. 정부에서 통일벼 안 심으면 가만두질 않았어요. 여기 정농회 오재길 선생님도 오셨지만 제가 지난 여름에 변산에 계신 정경식 선생님 집에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분이 70년대 통일벼 심을 때 재래종 벼를 심었다가 이웃집에서 간첩신고를 했다고 그래요. 우리사회는 툭하면 간첩이에요. (웃음) 그런데 이분이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유기농업 잘했다고 대통령상을 받았어요. 세월이 엄청나게 변했죠. 그런데 그 당시 통일벼라는 것이 사실 재래종에 비해 소출이 두배 세배 이렇게 났어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렇게 소출을 내려고 하면 엄청난 외부투입을 해야 합니다. 엄청난 비료를 넣어야 되고, 관개시설 다 해야 되고, 기계로 다 해야 되고 ?? 그 비용을 다 따지면 사실 소출 많이 난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옛날에 모든 연관관계가 살아있을 때는 수확이 좋다 했을 때는 요 알갱이뿐만 아니라 잎사귀, 줄기 이것도 무성한 것이 좋았어요. 왜? 그것도 다 쓰는 거니까. 퇴비로 쓰고 생활재로 쓰고 하니까. 그런데 이 연관관계가 끊겨버리니까 이게 다 필요없는 거예요. 알갱이만 크게 해서 먹으면 돼요. 벼가 줄기는 부실하고 머리만 크다보니 바람만 불면 잘 쓰러집니다. 완전히 세상이 가분수로 되어버린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이 야초가 자라는 것을 가만히 보면 말예요. 이것이 쓸데없이 그 자리에 난 게 아닙니다. 이런 얘기 많이 하지만,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안 만들었다는 겁니다. 야초도 마찬가지예요. 야초가 쓸데없이 그 자리에 난 건 하나도 없어요. 다 자연이, 그 땅이 필요해서 야초를 그 자리에 키우는 것이죠. 쓸데없이 난 게 아니예요. 예를 들면 어떤 특정 잡초들은 그 토양이 척박해서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 뿌리를 저 땅속 깊이 내려 땅속 암반에서 미네랄을 끌어올려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듭니다. 이런 걸 요즘 농부들이 몰라요. 그리고 어떤 풀들은 공기중에서 필요한 무기물질을 흡수해서 토양으로 보내주기도 합니다. 또 풀을 다 뽑아버리고 맨땅이 드러나게 되면 비나 바람 때문에 토양유실이 심화됩니다. 토양이 침식되고 그런 걸 땅이 싫어하니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잡초를, 풀을 내는 겁니다. 그밖에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아직 그걸 다 밝혀내지 못하고 있어요.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지금 그런 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마을공동체와 생태주의
제가 사실 잡초, 야초와 인연을 맺은 게 어떤 책을 통해서, 관념을 통해서 된 게 아닙니다. 제가 감옥에 가기 전까지 공부했던 것은 제국주의였습니다. 한국의 모든 운동은 반제(反帝)노선에 따라서 운동을 해야 한다, 이런 관념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활동을 했습니다. 뭐 그러다 결국은 어떻게 어떻게 해서 간첩이 되어버렸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건진 것은 두가지입니다. 공동체와 생태주의가 그것입니다.
대학시절 이후 지금까지도 제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제3세계 민중들이 어떻게 자주적으로, 자립적으로 살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꾸준히 고민하고 연구하고 하는 가운데서 제가 발견한 것이 공동체입니다.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오직 공동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결론이었어요.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제3세계 혁명을 연구하면서였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관념을 갖게 된 것은 베트남 혁명을 공부하면서였어요. 베트남 혁명을 전쟁학자들은 ‘마을전쟁’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미군이 정글에다 아무리 폭격을 해도 결국 정글 속에 숨어사는 월맹군, 베트남 민족해방군을 이기지 못했어요. 위에서 아무리 폭격을 퍼부어도. 이건 뭐냐 하면 마을공동체라는 소프트웨어를 미국이 파괴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월남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호치민이라는 정치지도자가 공산주의 정치군사조직을 베트남의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와 결합시켜서 결국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런 결론을 얻었습니다. 특히 여기서 공동체야말로 막강한 제국주의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사회구조다, 이런 결론을 얻었습니다. 실제적으로 지금 WTO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농업이 살아날 길이 뭐냐 할 때 저는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이 사회가 지역공동체 중심으로 재편되지 않는 한은 아무런 대안을 찾을 수가 없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제가 감옥 들어가기 전까지 제국주의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얻은 결론입니다.
제가 지금처럼 이렇게 변화된 것은 감옥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였는데요. 감옥에서 생태주의자로 이렇게 변신이랄까 혹은 자기 존재에 대한 어떤 근원적인 재인식이랄까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에 가면 슈마허대학이라고 생태학을 가르치는 유명한 대학이 있어요.《녹색평론》독자들은 아마 대부분 아실 겁니다. 거기서 되지도 않는 영어를 가지고 제가 강연 비슷한 것을 했어요. 제목이 “어떻게 감옥 안에서 심층생태학이 싹트게 되었는가”였습니다. 감옥에서 생태학에 관한 책 한권 읽어보지 않고 심층생태주의자가 되었다고 하니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너무 신기해 하면서 열심히 들어주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반은 거짓말이고 반은 맞습니다. 반은 맞다는 것은 사실상 그 무렵에 생태학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이 없었어요. 제가 거의 다 몸으로 깨달은 거죠. 그리고 반은 거짓말이라는 것은 제가《녹색평론》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독자입니다. 제게는《녹색평론》이 있었던 것이죠.《녹색평론》이 저를 변화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몸의 깨달음, 몸의 확장
그런데 그건 책 얘기이고, 사실 감옥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게 뭐냐 하면 한평짜리 방에서 생활하는 건데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방안에 혼자 딱 앉아있으면 마주치는 게 뭐냐 하면 자기 몸입니다. 자기 몸밖에 갖고 놀 게 없어요.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작고하신 김남주 시인이 쓰신 시 중에 이런 시구가 있습니다. “감옥에 가본 사람은 안다. 감옥에, 독방 안에 할 일이 얼마나 없는지. 독방에 앉아서 자기 몸의 일부를 붙들고 흔드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다.” 조금 말을 돌려서 표현했지만 사실상 그렇습니다. 거기서 자기 몸을 관찰하게 됩니다. 딴 건 할 게 없으니까. 도대체 이 몸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겨먹었으며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그걸 관찰하게 됩니다. 저는 생태주의를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생태주의자는 들판에 나가서 자연을 관찰하고 새와 벗하고 이래서 생태주의자가 된다, 이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생태주의자는 자기 몸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은 것에 둘러싸여 있어서 자기 몸을 관찰할 기회가 없어요. 너무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있어 자기 몸이 어떻게 돼먹은지도 모릅니다. 저는 참 운이 좋게도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어요.
‘몸’이라는 글자를 한번 살펴봅시다. ‘ㅁ’이 있고 점을 찍고, 일획을 긋고 다시 ‘ㅁ’이 있어요. 저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했어요. 첫째 미음은 하늘이고 점은 사람이고 일획은 대지, 즉 자연이다. 밑의 미음은 미음받침이고. 이 관념을 딱 놓고 가만히 앉아서 천지와 나와 대자연 이것을 잘 생각하면서 미음을 한번 발음해 보십시오. “음 ??” 하고. 그럼 진동이 일어납니다. 이 진동 속에서 천지와 내가 하나가 됩니다. 이게 내 몸입니다. 내 몸안에 진동이 일자 천지만물이 하나가 된다, 그런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이 그때부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한평짜리 방안에서 내가 우주구나 그것을 깨달으면서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달라 보이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방안에 파리 같은 것이 날아오면 귀찮으니까 쫓아버렸지만, 아, 저 녀석도 내 몸의 일부구나 하고선 같이 대화하고, 거미 한마리가 줄을 타고 내려오면, 아, 이 녀석도 내 몸의 일부구나 하게 됩니다. 자기가 접하는 모든 것을 자기 몸의 확장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물론 감옥에 들어갔다고 해서 이런 생각을 금방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는 게 바뀌는 데 굉장히 시간이 걸립니다. 이것을 깨닫는 데만도 감옥 안에서 5년이라는 세월을 흘려보냈습니다. 그 5년의 세월은 뭐였냐 하면, 내가 억울해서 못살겠다, 내가 간첩 비슷한 짓도 하지 않고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을 사는데 이거 억울해서 못살겠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 억울함을 밝혀내고 나가야겠다 하면서 이 자리에서 다 말씀드리기 힘든 별별 짓을 다 했습니다. 단식투쟁도 하고, 밀서도 날려보내고, 만세도 불러보고 ?? 만세 불렀다는 건 뭐냐 하면, 그 무렵엔 독방에 갇혀 있을지라도 김일성 만세를 외치면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상태에서도 추가징역 3년을 받았어요. 감옥살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짓이 다 실패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그렇게 몸부림치는 가운데 제 몸도 다 망가졌어요. 하여튼 그때 제가 만성 기관지염에 요통에 치통에 뭐 몸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깨달음이 동시에 오는 것이었습니다. 몸의 깨달음이랄까요. 그때 제가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 시작했던 것이 자연요법이었습니다. 자연요법으로서 제가 주로 했던 것이 풀이에요. 아까 제가 몸의 확장을 이야기했는데요. 그건 방안에 있을 때 그렇고. 그 안에서 하루에 한시간씩 운동시간이 주어지는데, 운동시간에 나가서 운동장에 난 풀들을 보면 아, 요놈도 내 몸의 일부구나 하고 이제 그 풀들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의료시설이 변변치 않으니까 몸을 고치기 위해서 풀들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풀들을 하나하나 가꾸고 관찰하고 또 먹고 이러면서 저도 모르게 점점 생태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풀과의 교감
제가 안동교도소에서만 7년을 있었는데요. 거기서 교도소장한테 특별히 허락을 받아가지고 운동장 한구석에 제 화단을 하나 만들었어요. 그래서 거기를 야초화단으로 만들었어요. 그거 유지하는 데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교도소라는 데는 일절 풀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데입니다. 왜냐하면 풀이 이렇게 자라면 재소자들이 풀 속에 숨어서 탈옥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풀이 보이는 족족 다 뽑아버립니다. 구내 청소를 하는 재소자 집단이 있어서, 그 사람들은 매일같이 빗자루나 삽을 들고 다니면서 풀 뽑는 게 일이에요. 이런 가운데에서 제가 야초화단을 가꾸었으니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아니 왜 풀을 화단에다 심어놨어 하고 다 뽑아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한동안은 계속 이 친구들하고, 야 이건 내가 키우는 거니까 제발 뽑지 마라 하고 아주 말다툼도 많이 하고 그랬어요. 나중에 제가 워낙 열심히 풀을 가꾸고 기르고 하니깐 이 친구들이 이해를 해서 제 화단에는 손을 안 대게 됐어요. 옛날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들춰보니까 제가 거기서 가꾼 풀들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어서, 풀이름을 한번 적어봤어요. 여러분들 한번 재미 삼아서 들어보세요.
산부추, 며느리밑씻개, 수까치깨, 둥근 매듭풀, 바늘 사초, 산국, 구절초, 쑥부쟁이, 사철쑥, 새콩, 괭이밥, 꿀풀, 새잎 양지꽃, 쇠뜨기, 조밥나물, 아기똥풀, 석잠풀, 박주가리 나물, 딱지꽃, 황금, 제비꽃, 조뱅이, 달맞이꽃, 배초향, 땅빈대, 물봉선, 쇠별꽃 …
지금 제가 읽은 게 한 80가지 됩니다. 이것을 단지 심고 기른 것뿐만 아니라, 일일이 그 안에서 식물지를 기록했어요. 여기 잠시 보여드릴까 합니다. 그런데 감옥에서는 자기 글을 써서 가지고 있지를 못합니다. 나갈 때 다 빼앗겨요.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면 이것을 편지형식으로 기록해서 밖으로 내보냅니다. 저도 그 당시에 감옥에서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다 적어서 누군가한테 편지형식으로 내보냈습니다. 이것이 그때 제가 식물지를 만들면서 기록했던 봉함엽서입니다. 일일이 그림을 다 그려서 이렇게 기록했던 것이죠. 제가 아까 말씀드린 서양의 한 잡초학자는 잡초의 습성, 그 못된 습성들을 전부 다 망라해가지고 이것이 잡초다 그랬는데, 거기에 대비시켜보기 위해서 제가 썼던 편지 가운데 야초에 관한 글 하나를 읽어보겠습니다.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저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그림도 그렸는데, 요것이 왕고들빼기 잎입니다. 모두 시커멓게 나왔는데요. 이게 원래는 올 칼라입니다. 제가 그 안에서 그림을 그릴 때는 칼라로 그렸던 건데 원본이 지금 없어요. 조금 긴 것 같지만 한번 들어보십시오.
오늘 드디어 당신에게 야생초의 왕을 소개하오. 이름하여 왕고들빼기. 이름에 ‘왕’자가 붙어서가 아니라 이 풀은 정말 야생초의 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소. 야생초의 모든 조건을 탁월하게 갖추고 있는 데다 덩치 또한 크기 때문이오. 먼저 크기를 봅시다. 비슷하게 생긴 고들빼기는 아무리 커야 40센티미터를 넘지 못하는 데 비해 이놈은 토질만 좋으면 2미터까지 큰다오. 이 안에서는 토질도 안좋은 데다 이사람 저사람 자꾸 만지는 바람에 기껏 1미터 정도밖에 안 크지만 산자락이나 들판에 홀로 자라는 것들은 죽죽 잘 자란다오. 작년에 임하댐에 갔을 때 댐 언저리에 우뚝우뚝 서있는 이놈들을 보니 참으로 반갑데. 어찌나 잘 자랐는지 모두들 2미터 안팎이었소.
둘째로, 야생초는 그 모양이 야성적이라야 볼 맛이 나오. 와일드한 맛이야 엉겅퀴나 방가지똥을 따를 것이 없지만, 이놈은 또다른 야성미를 보여준다오. 여기 그려진 잎새를 잘 보오. 이것은 실물크기 그대로 그린 것이오. 잎 가장자리가 죽죽 날카롭게 찢어진 게 시원스럽지 않소. 신기한 것은 잎 모양이 기본적으로는 대칭적이지만 한그루에 달린 수십장의 잎을 다 살펴보아도 제대로 된 대칭꼴을 찾기는 정말 힘들다는 거요. 그래도 여기 그린 것은 그중에 가장 대칭꼴이고 얌전하게 생긴 놈을 고른 것이오. 대부분이 그야말로 미친년 찢어진 치마모양으로 제멋대로 생겨먹었다오. 야성미의 극치라고 할 만하오.
셋째로, 야생초는 번식력이 좋아야 하오. 이놈은 키가 큰 만큼 꽃도 엄청나게 피우는 편이오. 꽃은 같은 국화과의 구절초나 쑥부쟁이보다는 못하지만 같은 모양의 고들빼기나 씀바귀보다는 훨씬 낫소. 이파리의 와일드함에 비해 꽃은 아주 소박하고 정밀한 느낌을 준다오. 이놈들이 수정을 끝내고 꽃이 다 말라 떨어진 뒤에 벌이는 낙하산 쇼는 정말 볼 만하오. 바람 부는 날이면 운동장 한구석은 왕고들빼기씨를 물고 있는 하얀 솜털들로 더부룩하니까.
봄이 되면 화단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미는데 처음에는 그냥 고들빼기나 씀바귀와 잘 구분이 안되오. 다만 뽑아보면 이놈은 꼭 알타리무 같은 동그란 뿌리를 갖고 있거든. 이때는 잎이 아직 갈라지기 전이라 씀바귀와 혼동하기 쉽소. 바로 이 무렵에 뽑아먹는 왕고들빼기가 가장 맛이 좋소. 둥그런 뿌리하고 대여섯장 달린 잎을 통째로 깨끗이 씻어 고추장에 비벼 먹으면 쌉싸름한 게 맛이 아주 상쾌하오. 아무튼 이놈의 발아력은 씀바귀나 고들빼기보단 못하지만 생명력은 대단히 끈질긴 놈이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생장 도중 흰가루잎병에 잘 걸리는 것이오.
내가 이 안에서 확인해볼 수는 없었지만 한 교도관의 말에 의하면 근자에 이 왕고들빼기가 사람들 사이에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나돌고 나서는 그 값이 엄청나게 뛰고 심지어는 재배하는 자까지 생겼다고 하는데 사실이오? 이 선생님은 ― 이 선생님은 제 옆방에 계시던 재일교포 선생님입니다 ― 이 말을 들으시고는 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가 올해 들어 틈만 나면 왕고들빼기 많이 해먹자고 채근하시더라고. 나 참! 아무튼 이놈은 맛도 좋으니, 내년에는 씨 받아다 일부러 파종 한번 해보아야 하겠소. 당신도 짐작하듯이 이 안에서 내가 접할 수 있는 야생초는 아주 한정되어 있소. 이러한 상황에서 내멋대로 정한 야생초의 왕이니 만일 밖에 나간다면 또 달라질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본 풀 중에 왕고들빼기만큼 야생초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풀은 별로 없었소. 끝으로 왕고들빼기의 잎은 ‘녹색’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소. 내가 반한 것은 어쩌면 이 현란한 녹색인지도 모르겠소.
이런 내용이었는데요. 여러분은 제가 다양한 풀이름을 댄 것을 보고, 교도소에 풀이 그렇게 많으냐,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풀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다 긁어모아도 기껏해야 10여종, 20종을 넘지 않습니다. 제가 100여종 가까이 기를 수 있었던 것은, 장기수들한테 일년에 한두차례씩 일종의 사회적응 훈련으로서 ‘사회참관’이란 게 있습니다. 말하자면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같은 거 비슷한데요. 인근의 절이나 관광지 같은 데 데려가서 나들이를 시켜요. 그렇게 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절이나 사람들 구경하느라 두리번거리지만, 저는 그냥 땅만 보고 다녔어요. 새로운 풀이 있는가 하구요. 그래가지고 못 보던 풀만 나왔다 하면 뽑아서 다 주머니에 넣었어요. 들어와서 그걸 제 화단에 심어서 키운 게 그렇게 100여종 가까이 되는 것입니다.
제 개인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제가 이렇게 긴 글을 인용한 것은 풀과 우리 삶과의 교감이라고 할까요, 그런 예를 들고 싶어서 한 것입니다.
야생초와 더불어 짓는 농사
이제 우리가 야생초와 공생하게 될 때,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지을 때 생기는 이점이 무엇인가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첫번째,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종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지구상의 생물종을 무차별하게 죽여왔어요.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그와 더불어 무수한 생물종들이 더불어 살게 됩니다.
두번째로,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토양침식과 오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풀이 덮여있으면 토양침식이 일어나지 않아요. 자연농업의 첫째 조건이 땅을 갈지 않는 것입니다. 풀을 함부로 제거하지 않음으로써 토양침식도 방지하고 익충의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등 여러가지 이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CO2 증가를 억제하는 데 기여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지금 지구상에 이산화탄소 증가 때문에 말들이 많죠. 소위 그린하우스 효과라는 이걸 줄이기 위해서 각국에서 별의별 조치를 다 하고 있어요. 교토의정서도 그중의 하나이지요. 얼마 전에 미국에서 반대를 해서 무산될 뻔하다가 어정쩡하게 타협을 해서 넘어간 일이 있는데요. 사실 지구상의 탄소는 대기중에 있는 것은 얼마 안되고 90%가 전부 땅에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경운을 하게 되면 탄소가 공기중으로 방출되고 CO2가 생깁니다. 지구상에 농경지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을 다 경운하게 되면 CO2 증가에 엄청나게 기여를 하게 됩니다. 자연농업이 왜 소중하냐 하면 경운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가에서는 농부들이 휴경을 하게 되면 휴경보상금을 주는데 그것이 휴경을 하니까 준다 이런 차원도 있고요 ― 선진국에서는 다 휴경보상제를 하고 있어요 ― 그런데 여기 보상이유 중의 일부가, 당신이 휴경을 함으로써 공기중에 CO2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보상금을 준다,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건 대단히 구체적인 사례인데, 그런 이유에서도 농업이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또 풀이 무성하게 자라면 거기서 산소가 방출되니까 역시 CO2 증가 억제에 기여하게 됩니다.
네번째로, 다양한 야초들이 자라게 되면 환경과 경관이 좋아지죠. ‘경관 생태학’이라고, 그런 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있습니다.
다섯번째로,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우리 영양원이 풍부해집니다. 사실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별명이 토끼였습니다. 토끼같이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니라, 풀이란 풀은 다 뽑아먹고 있으니까 주위 동료들이 별명을 그렇게 붙여줬어요. 야생초에 한번 맛을 들이면 일반 채소들은 싱거워서 맛이 없어요. 채소라는 것이 뭐냐 하면 야생초를 오랫동안 재배해서 맛과 향기를 다 빼버리고 밋밋하게 만든 것입니다. 영양의 에센스가 다 야초에 들어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수백종 심어놓고 자기 입맛에 따라서 뽑아먹는다면 식료품비가 따로 들 필요가 없어요.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 같은 분은요, 그분도 채소씨를 뿌려요. 그런데 채소를 길러먹는 게 아니고, 야생화된 채소밭을 가꿔요. 먹을 수 있는 야초씨하고 기존 채소씨, 가령 배추나 무 이런 것을 뒤섞어서 무차별로 뿌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놔둬요. 그게 하나의 야채밭이 돼요. 그러고서 자기 입맛에 맞게 뜯어먹는 거예요. 그밖에 차, 약술, 약재 이런 것들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죠. 감옥 안에 있을 때 제 방엔 책도 많이 있었지만 방이 아주 복잡했어요. 야생초를 절기마다 뜯어서 말려가지고 그걸 비닐봉지에 담아 방에다 주욱 걸어놓습니다. 한 10여가지 말려가지고 이것을 분위기에 따라서 차로 우려먹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건강을 유지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 야생초를 연구하시게 되면, 풀의 특성과 맛 이런 것을 다 알게 되면 집에서 커피 같은 것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야생초를 갈무리해놓고 기분에 따라, 가령 내가 오늘 좀 우울하다 그러면 우울한 기분에 맞는 차맛이 있습니다. 자기가 연구해보면 알아요. 그것을 달여먹고, 오늘은 즐겁다 그러면 즐거울 때 먹는 차, 이걸 스스로 공부하면서 알게 돼요. 그 안에서 야생초에 관한 온갖 책들을 읽고 공부하면서 이런 체계를 쌓아나갔어요. 이것 자체가 재미죠.
그 다음에 여섯번째로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다양한 생필품 재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창작력을 발휘하게 되면 가정에서 필요한 소소한 물건들은 전부 주변에서 나는 야생식물들로부터 다 얻어 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전부 돈주고 사려고 그러니까 가계비만 늘어나고 생활도 재미없게 되고 이렇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제가 이점으로 들고 싶은 것은,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면 자연과 공생하면서 조화롭게 살 수 있다, 즉 자기 삶의 총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태주의 운동을 저는 복잡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생태주의 운동을 삶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삶의 조건인 식물, 자연, 이것과 공생할 수 있고 일치할 수 있으면 이것이 생태주의적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가장 손쉬운 재료가 바로 야초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야초만 우리가 잘 이용하면 우리 식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거의 3분의 1로 줄일 수 있습니다. 3분의 1이 뭡니까? 자기가 먹는 쌀값만 들면 됩니다. 그리고 육식에 치중하고 있는 식생활로부터도 멀어지게 됩니다. 워낙 먹을 게 다양한데 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어요.
농업을 상업주의에서 해방시키자
시간이 많이 됐군요.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야초를 이용한 농업을 하려면, 먼저 자연농법을 실천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꼭 제초를 해야 한다면 선택적인 제초를 해야 합니다. 자기가 심어놓은 작물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풀만 제거해야 합니다. 제거를 하더라도 그 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어디에 들고 나가면 안됩니다. 다 그 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겁니다. 내버려둔다고 해서 손해가 나는 게 아니예요. 그게 다 전부 작물한테 이득이 됩니다. 거기에 작물에 해를 주는 해충, 익충들이 다같이 살기 때문에 이 녀석들이 평형을 이뤄가지고 결국은 작물한테나 사람한테 다 이득이 되는 것이죠.
세번째로 야초의 다양한 용도를 개발해야 합니다. 이 세가지가 야초와 함께하는 농사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WTO 체제 아래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아까도 제가 잠깐 말씀드렸지만, WTO 체제 하에서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영국에 있다가 왔지만 영국의 농업을 돌아보니까 희망이 없어요. 밀, 보리 심을 데다 전부 풀 심어서 양과 젖소들 먹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구제역이다 광우병이다 해서 잘 안돼요. 희망이 없어요. 우리 정부가 지금 기대하고 있는 정책이란 것이 국제경쟁력을 갖기 위해 농지를 소수한테 집중시켜서 기업농을 하겠다는 것인데, 오래 전부터 기업농을 하고 있는 영국을 보더라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 농토가 우리나라 농가 평균과 비교해볼 때 70-100배는 넓어요. 무지무지하게 넓어요. 그런데도 안돼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국이나 호주같이 광대한 면적을 어마어마하게 큰 기계로 농사짓는 나라하고 우리가 아무리 기업농 한다고 해도 가격경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 같은 나라들은 WTO 체제에서 기존의 농사방식을 가지고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걸 수용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틈새시장’을 찾자 이런 이야기들 많이 하는데, 틈새라는 게 뭡니까. 다른 것들이 다 차지하고 있는 곳에 틈새가 조금 났다는 것인데, 그런 틈새는 일부 농민들이나 혜택을 볼 수 있지 농업 전반에 대한 대안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오히려 대안적인 농업으로 가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회에 농업을 상업주의로부터 해방시키자, 상업주의 농업을 짓지 말자 이겁니다. 전국이 개인별 혹은 공동체별로 농사를 지어서 서로 나눠 먹자, 이것이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농업문제만큼은 전국에 있는 시민단체나 개인들이 나라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라고 인식을 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단체들이, 민주노총도 그렇고 전교조도 그렇고, 경실련이니 할 것 없이 모든 시민단체들은 자기 나름의 생태농장을 가져야 합니다. 농업팀을 다 꾸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한살림’이나 ‘생협’ 등의 소비자 조직과 다 연결되어서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아니 시민단체들이 농장을 가지고 있으면 구태여 다른 생협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들 조직 자체가 생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농업문제는 자기자신이 해결한다.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책임진다.” 앞으로 방법이란 이것밖에 없다고 봅니다. 농업을 상업주의로부터 해방시켜야 합니다.
제가 자연농업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대단히 막강한 자연농업 조직이 있습니다. 모키치 오카다라는 분인데, 이분은 후쿠오카 마사노부하고 같은 시기에 자연농법을 창안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발견한 자연농법으로 세계인구를 구원하자고 해서 ‘세계 구세교’라는 종교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 조직을 들여다보면 아주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유엔인가 어디 국제기구에서 연설을 하는데 “내가 이 조직을 만든 것은 무슨 교주가 되어서 행세하려는 게 아니고, 농업을 상업주의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이것을 만들었다” 그럽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농업을 상업주의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종교조직을 통해 농법을 전파하고, 또 종교조직 자체가 생활협동조합입니다. 거기서 서로 나눠 먹고 교육하고 이렇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적 도그마를 가진 단일조직의 예이지만, 우리나라의 어떤 시민운동단체들도 농업을 자기 문제로 인식해서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는 우리가 당면한 농업문제 해결을 어디에서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예정된 시간을 좀 지나서 이야기했는데, 제 삶의 경력 자체가 이상주의적이다 보니까 제 주장도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비하하지 않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이런 말도 안되는 이상주의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 이상주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타락의 구렁텅이로 떨어지지 않고 역사발전을 해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이상주의적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오늘 창간 10주년을 맞은《녹색평론》과 독자 여러분이 저의 동지이고 제 스승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제 새롭게 태어난 인생을 출발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제가 이러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에 조그마한 밑거름이라도 되고 싶은데, 여러분의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리면서 오늘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이 글은 2001년 12월 8일 대구 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열린 '녹색평론 창간 10주년 기념모임'의 기념강연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