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는 인도의 케랄라주의 시골에서 태어나 심각한 빈곤과 계급 및 남녀차별적 환경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도시로 나와 고학으로 건축교육을 받았다. 나중에 건축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영화작가로서 활동하다가 30대 중반에 첫 소설《작은 것들의 신(神)(The God of Small Things)》을 썼다. 인도의 기층사회의 오랜 가부장적 전통의 압력 밑에서 희생되어온 사람들의 운명을 그린 이 소설은 1997년 미국의 랜덤 하우스를 통해 출판되면서 세계의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곧이어 영국의 부커상 수상작이 되기도 하였다. 무명의 건축가에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저자는 출판사의 주선으로 1년여에 걸친 세계여행 끝에 인도로 귀환한 후 얼마 안되어 인도의 핵무기 개발의 어리석음을 가열하게 비판하는 글 ―〈상상력의 종언(The End of Imagination)〉― 을 발표한 데 이어 세계적으로 논란거리가 되어온 나르마다 강 대형 댐 건설 문제에 눈을 돌려 다시 근본적인 비판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보다 큰 공공선(The Greater Common Good)〉이라는 긴 에세이가 집필되었고, 이것은 핵문제에 관한 에세이와 함께 엮어져《삶의 비용(The Cost of Living)》(1999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러한 새롭고도 노골적인 반체제적 활동으로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 주류사회로부터 지금까지의 찬사와 존경 대신에 비난과 냉대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이른바 ‘국익’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의 삶과 생명의 서식처를 보호하는 데 겨냥된, 근원적인 의미의 정치적 투쟁이 작가의 임무라고 하는 믿음에 아직 굽힘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 소개하는 글은 이 작가가 1999년 11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 교수의 초청으로, 같은 대학에서 열린 ‘네루 기념강연’에서 행한 연설을 발췌, 번역한 것인데, 원문은 인도 잡지 Frontline 2000년 2월호에 전문이 실렸고, 이어서 미국의 환경잡지 The Amicus Journal 2000년 가을호에 발췌문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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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작은 것들의 신(神)》의 출판을 둘러싼 이야기에 이미 친숙해 있다. 그것은《리더스 다이제스트》류의 낡아빠진 이야기 ― 한 무명 작가가 여러해에 걸쳐 은밀히 자신의 첫 소설을 썼고, 그것이 나중에 40개 언어로 번역이 되었고, 수백만부가 팔렸으며, 부커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소설을 쓴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는 그렇게 행복한 것이 아니다.
처음《작은 것들의 신》이 출간되었을 때, 나는 그 소설과 동반하여 이루어진 세계여행을 진심으로 즐겼다. 나로서는 전성기였다. 과거에는 내가 가볼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한 곳들을 여행하는 데 1년을 보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쓴 이야기가 여러 문화와 언어와 대륙을 넘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무척 고무되었다.
1년 뒤 나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로 판명되었다. 내가 없는 동안에 나의 예전 생활은 짐을 싸들고 멀리 떠나버렸던 것이다. 인도정부가 핵무기에다가 수백만달러를 쏟아부어넣는 동안 그 무기로 지키려는 땅은 썩어가고 있다. 강이 죽고, 숲이 사라지고, 공기는 숨쉬기가 불가능하게 되어가고 있다.
내가 사는 도시 델리는 바로 내 눈앞에서 변해가고 있다. 자동차들은 더욱 미끈해지고, 담장은 더욱 높아지고, 늙고 병든 야경꾼들 대신에 젊은 무장 경비원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그러나 하수도, 철로 주변, 공터 같은 음습한 곳에는 어디서나 마치 이처럼 빈민들이 들끓고 있다. 그 빈민들의 아이들은 산란한 마음으로 거리를 헤매고, 선글라스를 쓴 특권층들은 그들을 외면한다. 특권층 사람들의 아이들에게는 선글라스도 필요 없다. 그 아이들은 외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지 않는 법을 이미 터득하였다.
그러나 작가는 그렇게 쉽게 외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저주받은 운명이다. 작가라면 늘 아픈 눈을 뜬 채로 있어야 한다. 날마다 창문 유리에 얼굴을 바짝 대고 있어야 하고, 날마다 추악한 모습들의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낡아빠진 뻔한 것들을 새롭게 이야기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사랑과 탐욕, 정치와 지배, 권력과 권력의 결여 ― 이런 것들에 대해서 되풀이하여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 창문으로 세상을 내다보면서,《작은 것들의 신》을 쓰면서 여러해 동안 누렸던 즐거움에 대한 기억이 시들기 시작했다. 책의 판매를 통한 금전적 이익이 몰려들어왔다. 내 은행계좌는 급격히 불어났다. 나는 내가 우연하게도 이미 가진자들 사이에 세계의 부를 순환시키고 있는 거대한 파이프에 구멍을 뚫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파이프에서 어마어마한 속도와 힘으로 돈이 쏟아져 나오면서 내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나는《작은 것들의 신》속의 모든 감정, 모든 작은 느낌이 모조리 은화(銀貨)로 교환되어버렸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조심하지 않는다면, 어느날 나 자신이 은으로 된 심장을 가진 은색의 형체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내 주변의 폐허화된 풍경은 그저 나 자신의 번쩍임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데 이바지할 뿐일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이 이런 상태에 있을 때였다. 1999년 2월 인도 대법원이 중부 인도의 ‘나르마다’ 강에서 반쯤 지어진 상태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에 대해 4년간 계속되어온 법적 건설중단조치를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뉴스가 신문들에 보도되었다. 대법원의 명령은 독립투쟁 이래 가장 괄목할 만한 비폭력 저항운동의 하나인 ‘나르마다 바차오 안돌란(NBA)’ ― 나르마다 강을 살리기 위한 풀뿌리 운동조직 ― 에게 큰 타격이었다.
나는 나르마다 강 유역에서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나르마다에서 여러해 동안 활동해온 사람들 몇몇을 만났다. 내가 알게 된 것은 나를 변화시키고, 매혹시켰다. 그것은 한 정부가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국가이익이라는 이름 밑에서 어떻게 교묘한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있는가를 가차없이 폭로하고 있었다. 인도는 물론 티베트가 아니며, 아프가니스탄도, 동티모르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1999년 3월 나는 나르마다 강 계곡으로 갔다. 나는 나르마다 강 계곡이 한사람의 작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돌아왔다. 단순히 작가가 아니라 소설가가 필요하였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소설의 소재로서는 지나치게 품격이 없는 것으로 보여도, 소설가다운 솜씨와 열정으로 여러 분리된 부분들을 통합하여 일관된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소설가 말이다. 나는 나르마다 강의 이야기는 바로 현대 인도의 이야기라고 믿는다.
‘나르마다 유역 개발계획’은 세계에서 가장 야심적인 강 개발계획으로 여겨지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나르마다 강에는 3,200개의 댐이 들어서게 되고, 그 결과 나르마다 강과 그 41개의 지류들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들이 가득 들어차 거대한 물의 계단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댐들 중에서 30개가 대형댐이고, 135개는 중형의 댐, 그리고 나머지는 소형댐들이다. 이 개발계획은 그 유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2,500만명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강과 주변 전체 생태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나르마다 개발계획은 위대한 네루 시대의 꿈에 굳게 뿌리박고 있다. 반세기 내내 네루의 보병(步兵)들은 댐건설과 국가건설을 동일시해왔다. 오늘날 인도는 세계 제3의 거대 댐 건설국이다. ‘중앙 수자원위원회’에 의하면, 인도에는 대형댐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 3,600개이며, 그중 3,300개가 독립 이후에 건설된 것이다. 또 1,000개 이상이 지금 건설중에 있다.
댐이 곧 현대 인도의 사원이라고 말한 네루의 연설은 인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모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 어린시절부터의 이러한 교육을 통하여, 인도 사람들에게 대형댐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옹호되어야 하며, 결코 의심해서는 안되는 하나의 신앙이 되었다. 아이들은 거대한 댐들이 인도 사람들을 굶주림과 빈곤으로부터 구제해줄 것이라고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그러했던가? 댐들이 정말 인도의 식량안보의 열쇠인가?
오늘날 인도에는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관개지가 있다. 지난 50년 동안 관개지는 140%나 증가했다. 1951년에 우리가 5,600만톤의 곡물을 생산했지만, 지금은 매년 2억 2천만톤 정도를 생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물론 엄청난 진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러한 증산이 모두 대형댐 덕분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증산은 대부분 기계를 동원한 지하수의 이용, 다수확 혼성품종과 화학비료의 사용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총 곡물생산량 중에서 대형댐에 의한 관개지에서 수확된 곡물의 비율을 가리키는 아무런 공식적인 통계가 없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 유일한 조사결과는 ‘세계 댐 회의’에 히만슈 타케르가 제출한 자료이다. 그 자료는 인도의 총 곡물생산에서 대형댐의 기여도는 겨우 12%라고 추정하고 있다.
‘식품 및 생활필수품 공급부’에 의하면, 총 곡물생산량의 10%, 즉 2,200만톤(오스트레일리아의 총생산량에 해당하는)이 설치류 동물과 곤충들의 먹이로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쥐들을 먹이기 위해 댐을 건설하고, 마을공동체들을 뿌리뽑아버리고, 숲을 물에 잠기게 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임이 분명하다. 우리에게 긴급히 필요한 것은 댐이 아니라 좀더 개선된 식량저장고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전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발 입안자들은 인도의 전력소비가 50년 전보다 20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들먹인다. 그런데 아직 70% 이상의 농촌 가구가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장 가난한 지역들 ― 비하르, 우타르 프라데시, 오리사, 라자스탄 ― 에서는 아디바시(빈민)와 달리트(한때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린) 가구의 80% 이상이 전기 없이 살고 있다. 가난한 자들의 이름으로 생산되는 전력은 끝없이 탐욕적인 부유한 자들에 의해 소비되고 있다.
공식적으로도, 생산된 전력의 22%가 송전과정과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통해 소실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존 댐들은 급속히 쌓이는 침니(沈泥)로 인해, 댐의 수명이 원래 계획된 것의 절반 때로는 4분의 1로 단축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정부는 새로운 댐 건설을 결정하기 전에 기존 시스템의 효율성을 유지, 증가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이다.
댐이 건설되고, 사람들은 뿌리뽑혀지고, 숲은 물에 잠긴다. 그리고는 애초에 계획된 것들이 방기되어버린다. 운하는 완성되지 않으며, 댐으로 인한 혜택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득은 건설에 관계된 정치가, 관료, 건설업자들에게만 돌아갈 뿐이다.) 나르마다 강에 건설되었던 최초의 댐이 그 좋은 예가 된다. ‘마드하야 파라데시’주의 ‘바르지’ 댐은 1990년에 완공되었다. 그 댐의 건설에는 원래 예산보다 10배나 많은 돈이 들었고, 그로 인해 수몰된 지역은 기술자들이 예상한 넓이의 3배에 달했다. 162개 마을의 11만4천명의 사람들이 쫓겨났지만, 그들을 위한 아무런 재정착 프로그램도 없었다. 일부 사람들은 형편없는 보상금을 받았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일부는 굶어 죽었고, 또 일부는 ‘자발푸르’의 빈민가로 옮겨갔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무엇인가? 완공 후 10년이 지난 현재, ‘바르지’ 댐으로 관개가 가능하게 된 땅은 수몰된 지역의 넓이에 불과하다. 이 면적은 입안자들이 댐이 건설되면 관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땅의 5%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운하를 건설할 돈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다시 그 하류에 초대형의 ‘나르마다 사가르’ 댐과 ‘마헤슈와르’ 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들이 도대체 왜, 어떻게 일어나고 있을까? 그것은 대형댐들이 곧 부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상상을 넘어서는 규모의 국제적 부패가 여기에 작용한다. 은행가, 정치가, 관료, 환경전문가, 원조기관들 ― 이들이 모두 한통속이다. 그들로 인해 희생되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으로서 취급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대형댐의 건설로 인한 인간적 희생은 비용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기록에도 기재되지 않는다. 속담 그대로, “가난한 자들에게는 뺏아먹을 만한 것이 많다.”
내가 나르마다 프로젝트의 재앙에 대한 글〈보다 큰 공공선〉을 쓸 때, 무엇보다 내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주어진 통계가 아니라 당연히 있어야 할 통계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도정부는 댐 건설로 쫓겨나야 했던 사람들의 수에 대한 기록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가장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인도 국가도 용서받을 수 없지만, 인도의 지식인 공동체도 용서받을 수 없다.
비공식적인 추정은 2백만에서 5천만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다. ‘인도 공공행정 연구소’의 보수적인 자료에 근거한 나의 주먹구구식 계산으로는 3,300만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최근 ‘기획위원회’의 위원장 N.C. 삭세나는 자기로서는 이주민이 4천만명쯤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4천만명 ― .
이렇게 쫓겨나는 사람들의 약 60%는 달리트 또는 아디바시들이다. 인도 전체 인구 중 달리트는 15%, 아디바시는 겨우 8%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또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이들 희생자들의 인종적 ‘타자성(他者性)’은 국가건설자들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쫓겨난 수백만명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무도 실상을 모른다. 역사가 기록될 때, 그들은 통계수치로서도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인도는 국가적 재정착 정책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쫓겨난 사람들은 서푼도 안되는 보상금을 받게 되어있을 뿐이다. 그중 가장 가난한 달리트와 아디바시들은 애초에 자신들 이름으로 된 땅이 없이, 전적으로 강에 의지해서 생계를 꾸려왔으므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
쫓겨난 사람들의 일부는 한번 쫓겨나면 나중에 서너차례나 더 쫓겨난다. 댐 건설로 쫓겨나고, 군대의 사격연습장으로 쫓겨나고, 또다른 댐 건설로 쫓겨나고, 우라늄 광산 때문에 쫓겨난다.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멈추어 쉴 곳이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수몰민은 결국 거대 도시의 변두리 슬럼 속으로 흡수되고 만다. 거기서 그들은 값싼 노동력의 방대한 풀을 형성한다. (그 노동력은 또 보다 많은 사람들을 내쫓는 거대 건설 프로젝트에 동원된다.) ?? 그러나,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도시 변두리의 지옥 같은 구멍집으로부터도 뿌리뽑혀 내쫓기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날이 오는데, 그것은 선거철이 되고, 도시의 부유한 자들이 위생에 대해 까다롭게 굴기 때문이다. 흔히 슬럼의 주민들이 그렇게 하듯이, 그들은 델리와 같은 도시의 공공장소에서 똥을 누다가 총을 맞기도 한다. 실제로 2년 전쯤 그런 일이 있었다.
이처럼 비자발적인 이주를 강요하는 정치에 대해서 인도사회는 전체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민주적 체제의 피할 수 없는 티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의 차오르는 물 때문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집으로부터 강제퇴거를 당하고 있을 때, 인도 육군은 파키스탄 침입자들에 의해 점령된 영토를 하나도 빠짐없이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전선의 병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온 나라가 궐기했다. 중산층 주부들은 모금을 위해 요리 페스티발을 벌였고, 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위해 줄을 섰고, 음식과 옷과 구급약품을 수집했다. 배우, 스포츠맨, 저명인사들이 군대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국경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나르마다 강 주민에게는 그러한 도움의 손길이 주어지지 않았다.
주민들의 일부는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집에서 몇날 며칠이든 버티어 서서,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의 높이를 더 올릴 것을 허락한 대법원의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의 진보를 위해서 대가를 치르기를 꺼리는 사람들로 비쳐지고 있다. 그들은 민족의 이익에 반하고, 발전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딱지가 붙여지고, 감옥으로 끌려간다. “물론 슬픈 일이지요. 하지만 가혹한 결정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발전을 위해서는 누군가 대가를 치러야지요” 하는 것이 일반적인 합의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가끔 생각해본다. 만일 정부가 이들 매머드 댐의 완성에 필요한 자금을 위해서 국민 중 가장 부유한 사람들 수십만명의 재산과 은행계좌를 징발하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틀림없이, 그것은 국제적 스캔들이 될 것이다. 신문에는 톱으로 민주주의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가 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거대 댐으로 인한 생태적, 인간적 손상이라는 문제가 돌연히 제1면의 톱뉴스가 될 것이다.
거대한 댐들이 초래하는 환경재해는 어떠한 것일까? 수몰된 숲, 망가진 생태계, 파괴된 강, 침니로 인해 기능을 상실한 저수체계, 위험에 처해진 야생생물들, 사라지는 생명다양성, 침수 또는 염분 때문에 쓸모없이 된 수백만에이커의 땅 ― 이런 것들은 대차대조표에 나타나 있지 않다. 대규모 댐들이 환경에 미치는 누적적 영향에 대한 아무런 평가조사도 없다.
300개 댐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한 전문위원회의 조사연구는 전체 프로젝트의 89%가 환경부가 정한 환경지침을 어겼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환경부는 단 하나의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행동을 취하거나 허가취소를 결정하지 않았다.
이제 지금 건설중에 있는 것 가운데서 가장 거대한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 ― 계획된 댐들 중의 단 하나에 불과하지만 ― 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 건설로 이주해야 할 사람들은, 공식적인 통계로만 40,000 내지 42,000세대, 즉 20만여명에 달한다. NBA에 의하면 실질적인 영향을 받게 될 실제 세대수는 85,000이다. 백만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인 것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집계와 NBA의 집계 사이의 커다란 격차는 개발에 따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누군가 하는 데 대한 해석에 관계되어 있다. 정부에 의하면, 댐 건설로 집과 땅이 수몰되는 사람들만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땅과 강, 숲에 삶을 의존하고 있는 오래된 농촌공동체라는 피륙을 찢어놓을 때 그 실밥이 갖가지 방향으로 풀려나갈 것이라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이다. 정부가 간단히 무시하고 있지만, 수몰의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물에 잠기게 될 32,000에이커의 숲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는 댐 근처의 ‘슐파네쉬와르 야생지 보호지역’의 범위를 확장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이 보호지역의 경계 내로 편입될 숲속의 101개 마을 40,000여명의 아디바시들이 자신들의 삶터를 떠나도록 ‘설득당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댐 건설 프로젝트로 인한 피해를 입는 사람들로 계산되고 있지 않다.
수몰될 숲에 대한 보상으로 보호지역을 확대한다는 계획 이외에, 정부가 제안하는 또다른 조처는 땅을 확보하여 사라진 숲의 3배에 달하는 새로운 숲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새로운 숲의 조성 때문에 내쫓겨야 될 사람들은 댐 건설의 피해자로 계산되지 않는다.
나르마다 강 유역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구자라트’ 주정부는 댐이 건설되면 물을 댐 하류로 공급하지 않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것은 건기에는 바다에 이르기까지의 110마일의 하류 지역에 전혀 물이 없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댐 건설은 하구(河口)의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며, 힐사(아마 인도에서 가장 인기있는 생선인)와 민물 새우의 산란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다. 강의 하류에는 4만여명의 어민들이 강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도 댐 건설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로 계산되고 있지 않다.
댐 건설로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일생동안 사실상 돈이나 현대세계와는 아무런 접촉 없이 숲속 깊은 곳에서 살아왔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굶어죽거나 아니면 가장 가까운 인접 도시까지 몇킬로나 걸어가서 시장바닥에 앉아 자신들을 상품처럼 싸구려 노동력으로 팔거나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숲속에서 삶에 필요한 모든 것 ― 음식, 땔감, 가축의 먹이, 밧줄, 고무, 담배, 치분(齒紛), 약초, 건축재료 ― 을 얻어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하루 10 내지 20루피의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부터는 강물이 아니라 펌프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들이 살던 마을에서 확실히 그들은 가난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삶은 절대적인 재앙으로부터 늘 보호되어 있었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숲이 있었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강이 있었다. 가축은 그들의 고정된 저축이었다.
재정착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은 새로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다. 작거나 크거나 모든 것 ― 똥누는 일에서 오줌누는 일에 이르기까지, 버스표를 사는 일에서 새로운 언어와 돈을 이해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 이 그렇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복종해야 하는 법을 배우고, 주인을 섬기는 일을 배워야 하고, 아무에게나 말대답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급자족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존재에서 더욱 가난해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의 변덕에 매달려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된다는 것 ― 그 느낌이 어떤 것이겠는가?
1994년 5월 NBA는 댐 건설 프로젝트의 재고를 요청하는 청원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1995년 초, 수몰지역 주민들의 재정착 계획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한가지 이유로 ― 다른 모든 요인은 무시한 채 ― 법원은 공사중지를 명했다. 1999년 2월, 재정착 문제에 아무런 근본적인 변화도 없고, 재정착한 것으로 되어있었던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 자기들이 원래 살던 마을로 되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공사중지 명령을 철회하고, 공사재개를 허가하였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터로부터 내쫓기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 죽겠다고 선언하면서 여기에 응답했다. 법원은 법원의 명령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NBA는 이 조치를 거부했다. 언론에 보낸 성명에서 NBA를 이끌어온 메다 파트카르는 만약 법원이 더이상의 공사를 허락한다면 그녀 스스로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구자라트’ 주정부는 NBA가 법원을 모독했기 때문에 청원자로서의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청원을 제출하였다. 또한, 주정부는 내가〈보다 큰 공공선〉을 집필함으로써 법정의 존엄성을 훼손하였으므로 범죄행위로 다스려야 한다고 요청하였다.
1999년 7월과 8월, 몬순 기후가 계속되는 동안 나르마다 강의 수위가 높아지고, 마을 사람들이 법원의 결정에 저항하여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 속에서 집을 떠나지 않고 버티고, 농작물이 물에 잠기고 있는 상황에서, NBA가 정부 관리들이 실제 있지도 않은 재정착이 진행중이라는 허위 서류에 서명했음을 폭로하고 있을 때, 대법원의 세 대법관은 세 차례 회의를 가졌다.
그들이 논의한 유일한 문제는 법원의 존엄성이 훼손되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1999년 10월, 법원은 나와 NBA를 처벌해달라고 구자라트 주정부가 제출한 청원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판사들은 “악랄한 비난과 속악한 폭로주의로 정의의 물결이 오염되어서는 안된다”고 밝히면서도 우리들을 상대로 법정 모독에 따른 절차를 개시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면서 판사들은 이렇게 덧붙였다. “아룬다티 로이씨가 국가의 사법부에 관련하여 혐오스러운 글을 계속 써왔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어떠한 증거도 우리의 눈에 포착되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도 지금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경고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해왔던 방식대로 나갈 것인가?
경고를 따르는 게 신중한 처신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내 생각에, 그것은 예술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강이 작가를 필요로 하듯이, 작가는 강을 필요로 한다고 나는 믿는다. 작가만이 아니라, 시인, 화가, 춤꾼, 배우, 영화제작자 ― 모든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계속 살아있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계속 일을 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너무도 쉽게 포기해버린 정치적 투쟁을 다시 우리의 것으로 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지금 이 지점에서 현실을 외면해버린다면, 우리의 예술은 별로 이야기할 만한 것이 못될지 모른다. 나는 우리 모두가 큰 소리로 정치적 성명서를 발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마티스를 지지하고, 창턱에 금붕어가 걸쳐져 있는 그의 그림에 대해 전혀 유감이 없다. 내가 뜻하는 것은 다만 우리가 때때로 책에서 눈을 들어 우리 둘레의 세상 형편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스위치를 켜서 불을 밝히고, 냉방을 하고, 목욕을 즐길 수 있도록, 누군가가, 먼 곳에서,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를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의 높이는 289피트이다. 이로 인해 물에 잠긴 곳은 댐이 453피트의 높이로 완공될 경우 수몰될 전체 지역의 단 4분의 1밖에 안된다. 저항은 수그러들지 않은 채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법원의 허가 이후에도 주정부는 아직 댐 공사를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 올해 들어서, 대법원은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 건설이 환경부의 공식 허가를 받은 바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시 공사를 중지시켰다. 어쩌면 이것이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댐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전면적 재고를 요청한 NBA의 청원은 아직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정부가 이미 이 프로젝트에 엄청난 돈을 사용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업을 더 계속한다면 이미 쓴 것의 여섯배에 달하는 돈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멀쩡한 돈을 헛되이 내버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지금 현재의 높이로 댐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기술적 제안도 마련되어 있다. 지금처럼 낮은 높이의 댐으로 프로젝트를 재조정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확실한 비참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수천에이커에 달하는 숲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며, 아시아에서 가장 비옥한 농토의 일부를 수몰로부터 건지는 길이기도 하다.
그것은 비폭력과 민주주의 원칙의 승리를 의미하고,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함으로써 나는 인도에서 매우 인기없는 인물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선거에 출마할 사람이 아니다. 나는 국가가 아니라 강과 계곡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언제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