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기 진자부로 / 김원식 옮김
녹색평론사, 2000년
과학연구를 업으로 삼은, 소위 과학자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활동에 대해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반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험난한 길로 들어선 셈이다. 과학자들은, 그들이 과학연구 체제의 구성원이 되어서 연구를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성을 상실하고, 그 결과 반성적인 연구는 대단히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활동하든 대학 밖의 연구소에서 활동하든, 순수하게 진리를 탐구하려 하든 인류에게 유용한 인공물을 만들어내려 하든 과학연구자들은 그들 자신만의 독자적인 공간 속에서 독립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게 되어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연구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려야 하고,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비를 신청해야 하고, 연구결과나 연구신청서를 놓고 항시 동료 연구자들이나 지원기관의 심사에 자신을 내맡겨야만 한다. 이러한,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체제 속에서는 반성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간혹 그러한 기회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어느 과학자가 이 기회를 진정으로 붙잡으려 하면 연구자로서의 그의 장래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그의 반성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활동에 대한 반성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담은 기성 과학계의 관행에 대한 반성과 비판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는 동료 과학자로부터 따돌림당하고, 연구비 신청에서 어려움을 겪고, 그리고 그 귀결로서 ‘빈약한’ 또는 ‘주류’ 과학계로부터 쓸모없다고 판정받는 연구결과를 내놓는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연구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소장 과학자들에게는 반성의 대가가 연구자로서의 생애를 파괴할 정도로 심각할 수도 있다. 그가 대학이나 기업체와 맺은 계약은 더이상 갱신되지 않을 것이고, 과학계에서 기피인물로 낙인찍힌 탓에, 또는 심사제도를 통해 과학계에서 인정받는 연구를 수행하거나 논문을 낼 수 없게 된 탓에 다른 곳에서 자리를 얻기도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성 과학계는 진정으로 반성하는 또는 “반항하는 과학자 그 누구라도 그 경력을 파멸시킬 수 있는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제임스 러브로크 〈과학의 녹색화〉,《녹색평론》1994년 3-4월호, 88면).
물론 과학계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면서도 과학 연구활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반성하고 비판하는 과학자도 존재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반성적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오랫동안 기존 연구체제 속에서 활동하면서 명성을 쌓은 사람들이거나 기존 과학계의 관행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 사람들이다. 연구체제에 편입된 초기부터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끝까지 그 체제에 남아 성공적인 위치에 도달한 과학자의 예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에게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의 반성이라는 행위는 연구자로서의 생애를 내건 커다란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다.
과학자가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학자들과 비교해보면 잘 드러난다. 이들 분야의 학자들 중에서는 대학이나 연구소에 몸담고 있으면서 사회적으로 비판적인 활동을 하거나 학문 또는 학문활동 자체에 대해 반성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이들 중에는 또한 대학이나 연구소 밖에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는데, 이는 이들 학문의 성격과 학문체제가 이러한 독립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자나 인문학자는 혼자서 주로 책과 씨름하며 사색을 통해서 연구하고, 연구결과도 동료 학자들만이 아니라 일반인까지도 포괄하는 광범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학에 몸담고 있는 어떤 인문학자가 대학이나 학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급진적인 주장을 펴서 일자리를 잃었거나 기존 체제를 비판하고 스스로 자리를 버리고 떠난다고 해도, 이들의 연구활동이 조금 위축될 수는 있겠지만 연구가 불가능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들 인문사회과학자들은 또한 학문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이론이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훈련받지 않았던가.
그러나 과학자들은 주로 이미 확립된 지식을 효율적으로 습득하고, 계산방법을 익히고, 실험결과를 제대로 해석하고, 실험기기를 정확하게 다루는 방법만을 훈련받아왔지, 이론이나 주장을 비판적으로 보는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확실한’ 것, 즉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모든 이론이나 연구결과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리지만, 여기서 비판이란 말은 어떤 결과가 과연 충실한 실험을 바탕으로 얻어진 것인지, 어떤 이론이 적절한 실험적 수치와 올바른 계산법을 통해서 도출된 것인지를 엄밀하게 검토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사회적 맥락 속에서의 비판과 반성과는 조금도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동료들과의 협동연구가 아니면 연구가 거의 불가능하고, 설령 독립적으로 혼자 할 수 있는 연구라 하더라도 연구결과는 항상 동료 과학자만을 독자로 하는 폐쇄적인 학술지에 낼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의 결과로 인해 이들에게 돌아오는 책임이나 비난의 무게는 인문사회과학자들의 그것보다 훨씬 큰 경우가 종종 있다. 원자폭탄이나 화학무기, 탈리도마이드같이 인류에게 엄청난 손상을 입힌 예는 말할 것도 없고 과학자들에게는 사소하게 여겨지는 동물실험 같은 연구행위에 대해서도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
생물학, 의학, 약학, 실험심리학 분야의 연구자들 중 상당수는 연구결과를 내기 위해 많은 동물을 괴롭히거나 죽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들은 동물을 더 많이 괴롭히거나 죽일수록 더 많은 연구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이러한 연구가 사회적으로 과연 의미있는 것인가라는 반성적인 질문을 고려하지 않으면 많은 연구를 내놓는 것은 연구자의 업적을 높여주고 학계의 연구축적에 기여하는 일이므로 비난받을 만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연구업적을 높이기 위해서 동물을 괴롭혀야만 한다는 것은 이들이 인문사회과학자들과 분명히 다른, 업적추구의 결과에 대해 그들보다 훨씬 엄중한 비판을 당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동물보호론자인 피터 싱어는 철학자나 역사학자는 자신의 업적을 쌓으려 한다 해도 “종이낭비와 동료들을 지루하게 하는 것 이상의 해를 끼치지” 않지만, “동물실험이 포함된 업무에 종사하는 자들은 (동물들에게) 심한 아픔이나 장기적인 고통을 야기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들의 작업은 훨씬 엄격한 필요성의 기준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말로 동물실험을 비난한다(피터 싱어《동물해방》, 인간사랑 1999년 142면). 물론 과학연구 체제 내의 관행에 젖어있는 과학자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알더라도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반성적인 과학자로서 연구체제 안에 남아있으려는 사람이라면 싱어와 같은 과학 외부의 비판자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이들은 연구체제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으로부터 가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할지 모르는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반성적인 입장을 지키면서 과학연구를 수행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젊은 과학자로서 기존 과학계의 관행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 중에는 그래도 내부에 남아 개혁을 시도해보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지만 ―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타협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 과학연구 체제로부터 떠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떠난 사람들도 두 부류로 갈라지는데, 일본의 ‘시민과학자’로서 ‘대안적 노벨상’이라 불리는 ‘바른생활상’을 수상한 타까기 진자부로오가 이야기하듯 과학을 완전히 버리고 다른 활동을 택하는 경우와 제도권 내의 지위를 버리기는 했지만 “자립적인 과학기술을 지향”하는 경우가 있다(타까기 진자부로오《시민과학자로 살다》, 녹색평론사 2000년, 88면).
과학자들이 연구체제를 떠나는 일은 한 국가 내에서 과학계가 사회적인 맥락을 고려한 과학연구를 얼마나 용인하느냐에 좌우되기도 한다.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와 같이 과학계가 대단히 경직되어 있고 연배에 따른 위계질서가 강하게 남아있는, 따라서 ‘주류’ 연구가 아닌 연구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조에서는 과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에서처럼 좀더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고 연구체제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종신계약이 보장되는 구조나 미국과 같이 매우 다양한 연구구조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체제 내부에서 비판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들 나라에서도 비판적인 자세를 지닌 과학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이 과학연구 체제로부터 추방되는 일도 발생한다.) 독일에는 소수이긴 하지만 주류 ‘방사선학회’에 대항하여 핵발전소에서 방출되는 방사능의 피해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는 학자들이 결성한 ‘방사능보호학회’가 있고 ― 이 학회의 회장은 1998년 말 사민/녹색당이 정권을 잡은 후 환경부 직속 ‘방사능보호위원회’의 부의장이 되었다 ― 핵발전을 반대하는 생물학, 의학 분야의 교수들이 설립한 ‘방사능연구소’도 있다. 그리고 다름슈타트 대학에서는 십여년 전 어느 물리학 교수의 주창으로 핵무기의 피해와 핵무기 폐기를 연구하는 연구그룹이 결성되었는데, 이 그룹은 핵무기를 반대하는 국제 과학기술자 네트워크를 이끌어가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과학상점 활동을 지원하는 대학교수나 연구자들도 내부에서 반성적인 연구를 하는 과학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대학이나 연구소를 떠나는 경우에도 반성적으로 과학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아주 좁지는 않다.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상당수의 민간연구소에 들어가서 연구를 계속할 수도 있고, 시민단체와 연계해서 활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에게는 기존의 과학계에서 ‘독창적’이라고 판정받는 연구결과를 내놓을 기회는 극히 적다. 이들이 하는 일은 아주 좁은 분야로 들어가서 ‘독창적인’ 실험을 조직하여 연구를 하거나 실험결과를 계산을 통해서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핵발전소, 환경호르몬, 독성 화학물질같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과학기술 문제에 대해서 넓은 시각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고, 따라서 이로부터는 폐쇄적인 학술지에 실릴 만한 ‘독창적인’ 연구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독립적인 과학자들의 주요 독자는 과학기술자가 아니라 일반 시민이기 때문에 이들은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할 필요도 거의 느끼지 않는다.
북유럽과 달리 일본이나 한국과 같이 과학연구 체제가 경직되어 있고, 그렇다고 독립적인 연구기관도 몇개 되지 않는 나라에서는 과학계를 떠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과학을 완전히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극소수이긴 하지만 과학을 버리지 않고 ‘자립적인 과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갈 수 있는 것일까? ‘시민과학자’를 자처하는 타까기 진자부로오 박사는 자신이 바로 이 극소수에 속한다고 말하는데, 그가 걸었던 길은 그의 자전적 기록인《시민과학자로 살다》에서 조금 드러나듯이 그야말로 힘든 가시밭길이었던 것 같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 “핵분열이라는 경이적인 현상을 발견하기에 이른”(타까기, 50면) 오토 한과 같이 물질의 비밀을 발견하는 작업에 매력을 느껴서 핵화학을 공부하고, ‘일본원자력사업’이라는 회사에 들어가서 방사성 물질의 거동을 조사하는 연구에 참여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핵화학 연구를 수행한다. 회사에서 몇년 일한 후 기업의 부정직한 이윤추구 논리에 실망하고 있던 차에 플루토늄을 발견한 글렌 시보그의《초우라늄 원소》라는 책을 읽은 그는 핵화학에 “새로운 장을 써넣고야 말겠다고 가슴깊이 맹세”하고(타까기, 59면) 본격적인 연구를 해보고자 회사를 떠나 토오꾜오대학 부속 원자핵연구소에 들어간다.
연구소에서 타까기는 꽤 흥미있는 연구결과를 내놓았고 스스로 결과에 대해 어느정도 만족도 하지만, “연구가 연구를 낳는 세계”인 과학계에서 “논문 중독이라고 할 수 있는 증상”에 걸린 자신에 대한 자기반성을 통해 전환점을 찾던 중 토오꾜오 도립대에서 조교수 자리를 얻어 대학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간 지 3년 후 방사능의 위험을 연구하여 밝히기보다는 그러한 연구에 무관심하거나 감추려는 기성체제의 일부가 된 대학 안의 과학연구에 회의를 느끼고 결국 대학을 떠나고 만다. 이때부터 타까기는 자립적인 과학, ‘시민의 과학’을 하기로 결심하고 고통이 따르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타까기의 선택과정은 과학연구 체제나 연구관행에 대해 실망을 느끼고 기성 과학계를 떠난 다른 여러 사람들과 유사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꽤 있는 것 같다. 기성 연구체제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독립적 과학자로서 세계적으로 가장 큰 명성을 얻은 사람으로는 제임스 러브로크를 들 수 있다. 러브로크는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미량의 화합물을 검출하는 데 쓰이는 전자포획탐지기를 발명하여 상당한 액수의 로열티를 받을 수 있었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는 대학이나 연구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논문을 위한 논문, 연구를 위한 연구, 심사평가제도가 지배하는 기존 연구체제가 과학자의 창조성을 말살하고 ‘진정한’ 과학의 형성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기성 과학계의 관행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러브로크는 현대의 과학체제가 많은 젊은이를 끌어들이는 돈벌이 장소가 되었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타락하기 쉬운 현재와 같은 구조를 바꾸어서 과학을 천직으로 여기는, “지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얻으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그러므로 금전적인 보상도 하찮게 여기는 소수의 사람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러브로크, 앞의 글). 그리고 그는 열정적으로 지구와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한 “독립적인” 과학연구를 수행하려 한다.
그러나 러브로크와 같이 독립적인 과학자로서 실제로 실험을 하면서 깊은 지식을 추구하는 예는 아주 희귀한 것이다. 러브로크는 근대과학의 방법을 통해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매우 고귀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타까기도 “과학이 체제내화된 것에 대해” 불만이지 “경이로운 현상인 핵분열” 발견이나 플루토늄 발견 자체에 대해서는 경탄의 자세를 보이는 등 근대과학의 자연탐구 방식에 대해서는 별로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타까기가 자신의 암치료를 위해 서양의학에 의존해서 두차례의 대수술을 받았고 오랜 기간 독한 항암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도 근대과학에 대한 그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러브로크나 타까기는 모두 근대과학의 탐구방식은 인정하면서 “과학과 에콜로지의 통합”을 역설하거나 ‘시민과학’을 주창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독립적인 연구기관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나 과학상점 운영자들,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이들은 모두 과학이 거대화하고 시민을 소외시키고 과학자들이 전문성을 무기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비판하지만 근대과학의 자연관, 자연탐구 방식을 근본적으로 거부하지는 않는 것이다.
기성 과학계를 떠난 과학자들 중에는 러브로크나 타까기와 달리 근대과학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프리초프 카프라와 반다나 시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카프라는 근대과학의 환원주의적 패러다임과는 다른 전일적인 패러다임을 가진 과학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고, 시바는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만 보는 “기존의 도구주의적이고 환원주의적인 과학이 아닌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페미니즘적인 자급 과학과 기술 … 여성과 민중에 기반을 둔 그러한 풀뿌리 지식과 과학”을 추구한다.
카프라와 시바의 입장도 서로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데, 카프라는 기성 연구체제에 속해서 오랫동안 고에너지물리학을 가르치고 연구했기 때문에 이로부터 얻은 지식과 통찰을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려 한다. 그러므로 그는 현대과학의 분해나 환원이 아닌 통합적, 전일적, 시스템적 접근을 추구하지만 상당한 정도는 근대과학의 방법론이나 지금까지 이루어진 많은 근대과학의 성과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시바는 핵물리학자가 되려다 방사능의 위험에 눈뜬 후 이론물리학자가 되었고, 그후에는 인도의 사회상황, 환경파괴, 여성에 대한 착취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파괴나 착취에 서구의 가부장적, 식민주의적 과학이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가를 탐구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시바는 근대과학의 인식론적 전통이 근본적으로 환원주의적인 것이고, 이러한 환원주의 과학이 바로 여성과 자연에 대한 폭력의 근원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시바의 에코페미니즘은 자연과 여성에 대한 강제와 폭력을 낳는 근대과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생명들의 공생관계, “살아있는 관계의 재창조”를 주장한다(마리아 미스 . 반다나 시바《에코페미니즘》, 창작과비평사 2000년).
나 자신도 시바와 마찬가지로 제도권 속의 과학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과학(합성화학)을 떠났는데, 내가 과학을 버린 배경은 박사학위를 얻기 위해, 러브로크가 표현한 바와 같은 ‘하찮은’ 연구를 수행하는 동안 현대과학이 기본적으로 자연을 짓밟고 으깨는 작업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하찮은’ 연구가 아니라 러브로크의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연구를 했다고 해도 결국은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인데, 이 회의는 근원적으로 과학이 자연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화학에서 분자를 쪼갰다가 다시 붙인다거나 물리학에서 원자를 엄청난 힘으로 부숴뜨리는 행위나 생물학에서 유전자를 멋대로 조작하는 행위가 모두 자연 위에 군림하여 자연을 짓밟고 괴롭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바도 미스와 함께 쓴《에코페미니즘》에서 원자연구나 생명공학이 “연구대상을 공생적 맥락에서 강제로 분리하여” 조각내고 파괴하는 행위이고, 과학자들은 이렇게 하지 않고는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미스/시바, 65면). 그러므로 시바 등의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을 찾기보다는 공생적 관계, 유기적 전체를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공존하며 살 수 있게 해주는 토착기술, 풀뿌리 지식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립적인’ 과학을 추구하는 타까기나 러브로크는 근대과학의 패러다임을 거부하지 않는 입장이기 때문에 에코페미니즘을 포괄하는 생태주의와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이들은 모두 생태주의에 대해 친근감을 나타낸다. 러브로크는 DNA의 발견을 “환원주의적 방법으로 얻어진 가장 위대한 승리”로 찬양하면서도 에콜로지와 과학의 재통합을 주장하고(러브로크, 83면), 타까기는 스스로 생태주의를 자신의 삶의 양식으로 삼게 되었다고 고백한다(타까기 97, 153, 166면). 근본적으로 현대과학의 자연탐구방식과 생태주의는 양립할 수 없고, 따라서 현대과학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자립적’ 과학도 생태주의와는 연결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러브로크나 타까기는 상당히 모호한 입장을 내보이고 있는 셈이다. 차라리 그들이 ‘자립적인’ 과학을 기성 과학시스템이나 환경파괴에 대항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만 본다면 이들의 태도가 그렇게 모호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생태주의를 지향하되 생태주의적인 생활을 지키거나 관철하기 위한 대항수단으로 ‘자립적인’ 과학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모호함의 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이다.
생태주의의 견지에서 볼 때 모호하다고 여겨지는 태도는 과학계 내부에서 활동하는 반성적인 과학자들에게서 더 자주 발견된다. 이들은 과학계에 몸담고 있고 근대과학의 자연인식을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비록 반성적인 자세에서 양심적인 연구자 생활을 한다 해도 연구의 근본 토대를 뒤흔들 수 있는 일이 벌어지면 뒤로 물러서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 연구자들 중에도 생명공학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유전자조작 식품의 위험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생명을 조작하는 현대 생명공학이 생명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반생명적인 것이므로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는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을 접하면 대체로 방어태세를 취하게 된다. 이때 그들은 생명공학 연구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탐구정신을 막을 수는 없고, 연구를 중단하는 것은 인류의 훌륭한 지적 유산인 과학을 부정하고 생명에 대한 지식의 축적을 통한 인류의 진보를 방해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든다.
몇해 전 서울에서 열렸던 생명윤리 토론회에서 생명공학의 질주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비판적인 분자생물학자가 생명공학에 대한 비난에 직면해서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결국 인간 이외의 생물을 물질로 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 것이나, 독일의 지도적인 물리학자이자 핵발전 반대자로 널리 알려져 있고 ‘바른생활상’을 수상한 한스-페터 뒤르가 뮌헨공대의 연구용 원자로 가동을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의 운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나, 독일 녹색당의 대통령 후보였고 생명공학의 결과에 대해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분자생물학자 옌스 라이히가 생명공학의 전개는 막을 수 없는 대세이고 그 자신도 유전자 치료를 받아야 할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겠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이들이 근대과학의 패러다임을 버리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성 과학기술의 개혁을 원하거나 추구하면서도 라이히나 러브로크에서 시바에 이르기까지 서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다양한 입장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이들은 서로의 입장 차이 때문에 협력보다는 비판이라는 어쩌면 좀더 손쉬운 길을 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구체적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실천의 면(예를 들어 핵발전 반대, 유전자조작식품 반대 같은)에서는 대체로 협력의 태도를 보인다. 밖에서 보기에는 입장이 아주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해소되기 어려운 차이가 종종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독일 녹색운동의 구루(guru)격이었고 루돌프 바로와 독일 반핵운동의 정신적 지주로서 ‘바른생활상’을 수상했으며 오스트리아 녹색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문명비평가 로버트 융크는 서로 “정신적인 형제”라고 불렀지만, 이들은 현대과학기술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는 의견일치를 볼 수 없었다(Jungk《Trotzdem》, München 1995).
바로는 과학기술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떠나야 한다는 낭만주의적인 입장을 보였고, 반면에 융크는 과학기술은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산업문명을 철학, 종교, 예술 그리고 영성에까지 의존해서 확장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융크는 지배권력 성격의 과학기술을 조종하고 통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경관리주의적인 태도는 배격한다.
그는 “아마 대안적인 오두막집, 미래에 대한 우려, 카프라의 전일적인 비젼이 모두 함께 솟아나고” 이러한 것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Jungk《Die große Maschine》, München 1991, 12면). 그러므로 그가 보기에는 기성 과학기술계에 몸담고 있다 하더라도 ‘바른생활상’을 받은 독일의 뒤르나 미햐엘 주코, 미국의 새뮤얼 엡스타인, 그리고 라이히같이 미래에 대해서 진정으로 우려하는 양심적인 과학자라면 이 일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타까기도, ‘올터너티브 과학자’ 즉 시민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그의 ‘타까기 학교’ 운영방식을 보면 융크와 유사하게 근대과학의 성과도 받아들이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억압하지 않는” 미래를 만들어가려 하는 것 같다(타까기, 160, 166면).
타까기, 융크, 뒤르, 시바 등과 같이 ‘바른생활상’을 수상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이들이 대부분 현실의 문제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하는 동시에 ‘대안적인’ 것을 모색하는 실천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이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생태주의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대안적인 생활양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데, 타까기는 ‘타까기 학교’를 설립하여 체제 내 과학기술에 대항할 ‘시민과학’을 모색하고 있고, 융크는 ‘미래학교’를 만들어서 대안적인 미래를 위한 실천방향을 모색하고 있으며, 뒤르는 ‘글로벌 챌린지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대안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찾고 이에 맞는 생활방식을 모색한다. 시바도 인도에서 에코페미니즘에 입각한 풀뿌리 환경운동을 조직하는 등 실천적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물론 기성 과학계의 양심적인 과학자들과 협력하는 일도 실천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기존의 자연지배적, 가부장적, 권력과 밀착된 과학기술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과학계의 양심적인 학자, ‘시민과학자’, 생태주의자, 환경론자들이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대항의 단계에서는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을 거부하든 그렇지 않든, 과학기술을 대항의 도구로만 보든 그것 자체를 발전적으로 바꾸어가야 할 인류의 중요한 유산으로 보든 입장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유전자조작 식품을 반대하는 운동에는 양심적인 과학자나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사람들로부터 전통적인 수공업적 기술을 고집하는 아미쉬 공동체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생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려는 운동이 바로와 같은 반(反)기술적 낭만주의나 에코페미니즘 같은 지향 아래 통일될 수는 없는 일이고, 다양한 생각이나 운동이 함께 움직여야만 조금씩이나마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마당에 다양성의 인정과 연대란 불가결한 것이다. 그리고 융크가 말한 대로 어느 하나의 조류 아래에서가 아니라 여러 다양한 움직임이 힘을 합해 나아가야 새로운 미래를 열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자연에 대한 폭력에 기반한 기존 과학기술 체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대항하는 움직임들,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들간의 차이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파악은, 예를 들어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시민단체간의 ‘불화’의 원인을 제대로 알게 해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구체적인 실천 가운데서도 그속에 묻혀버리지 않고 항상 궁극적인 지향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