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못된 사람은 역사가 심판하고, 우리의 바보짓은 자연이 심판한다.” 원로 환경운동가 서한태 박사의 이 기억할 만한 발언은 오늘날 갈수록 악화일로에 있는 환경상황에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단기적인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스스로의 보금자리를 무분별하게 망가뜨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뼈아픈 경종이 되어야 할 말이다.《녹색평론》은 발간 50호를 기념하여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선구자인 서한태 박사의 모범적인 생애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본지 편집진은 1999년 11월 하순, 목포의 서한태 박사를 직접 방문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12월 말 며칠 동안 팩스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은 대화의 기회를 가졌다. 일흔이 넘은 오늘에도 여전히 원기왕성하게 이 나라의 생태적 건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서한태 박사에 의하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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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본지 발간 50호를 기념하여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개척자 중 한분이신 서한태 박사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박사님께서는 원래 의학교육을 받으신 분으로 고향인 목포에서 오랫동안 의사로서 일해 오시다가, 1980년대 초부터 적극적인 환경운동가로서 활동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개발 붐 속에서, 일부 식자층에서 환경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를 본격적인 사회적 운동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그것을 지속적인 사회운동으로 조직화한 것은 박사님의 경우가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박사님의 환경운동은 자신이 사는 땅에 확고하게 뿌리박은 운동이라는 데에서 더욱 감명적입니다. 박사님께서 이처럼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그 전후 정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한태 저는 의사로서 의과대학 재학시부터 예방의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늘날 환경운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공기나 물, 토양 등은 바로 예방의학에서 다루었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을 하게 된 것은 영산호살리기 싸움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순수 민간 환경운동단체가 처음 탄생한 것은 79년 부산의 낙동강보전회였습니다. 조직상으로는 두번째였지만 구체적인 이슈를 가지고 반공해 싸움을 통해 전시민적으로 조직된 환경단체는 영산호보존회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 목포의 물사정은 아주 나빠서 웬만한 사람치고 물지게를 안 져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양과 질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80년도에 영산강 하구둑이 생기자 목포시민들은 이제 물만은 풍족하게 쓸 수 있다고 기뻐했는데 하필 취수원 바로 위인 영산호에 1일 2,700톤의 폐수를 배출하는 주정공장을 세우려 하자 이를 반대하는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83년 6월 23일 영산호보존회가 창립되었고 제가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가 암울한 시기였기 때문에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지역의 중요한 문제는 주로 기업인을 중심으로 한 지역유지들이 앞장서서 처리해왔는데, 이 시기에 만일 정부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면 사업을 할 수가 없는 처지여서, 제 직업이 의사로서 자유업이었기 때문에 책임자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공장폐수 등으로 불이익을 받았을 때 보상청구 등의 소극적인 소송제기를 하는 수준이었는데, 우리 영산호보존회는 공해 예상 기업이 들어서기도 전에, 그것도 주민운동을 통해서 승리를 이끌어낸 국내 최초의 반공해운동 성공사례이자 조직이었습니다. 전 시민이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중적인 운동의 결과로 얻어진 성공이었습니다. 특히 시대적으로 어두웠던 당시에 의약인 단체, 국제봉사클럽, 예총, 심지어 상공인까지 주축이 되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입니다.
결국 83년 11월 8월 영산강에 들어서려 했던 주정공장이 반월공단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싸움이 끝나자 목포시민들은 물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영산강 상류에 백만이 넘는 광주시민의 생활하수와 유역 농토에서 유입되는 농약과 화학비료 등으로 인해 영산강 수질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조직을 확산하고, 환경에 대한 지식을 쌓아 꾸준한 실천운동을 벌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영산호살리기 싸움을 통해서 제 자신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싸우면서 관청을 움직이는 방법도 배웠고, 몰지각한 기업인들을 질타하면서 내 땅을 지키는 방법도 배웠으며, 더불어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한 길도 여러모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녹색평론 영산호살리기 운동은 여러가지로 뜻깊은 사건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시대상황이 명령과 지시 일변도의 군사독재 치하였던 것을 고려할 때, 한 작은 지방도시의 주민전체가 이 운동에 참여하였고, 또 승리를 거두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자신이 자유로운 직업인이었기 때문에 운동의 선두에 나설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지만 그건 겸양의 말씀이지요. 이런 경우 오히려 의사라는 직업은 몸을 더 움츠리게 만드는 직업일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떻든 영산호 주정공장 설치문제는 그렇게 목포시민의 승리로 끝났습니다만,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박사님께서도 말씀하시듯이, 그 승리로 목포의 물문제도, 다른 환경문제도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도시의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를 비롯하여 농약과 비료로 인한 강물오염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총체적인 환경의 정비 없이는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 영산호살리기 운동이 남긴 또하나의 중요한 교훈이 아닌가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서한태 영산호 싸움이 승리했을 때 대부분의 목포시민들은 물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으나, 도리어 물사정은 더욱 어려워져 갔습니다. 이때 저에게는 “강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는 말이 크게 다가왔고, 종합적인 수자원관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강 오염의 원인에 대해서 두세가지 정도로 정리해보았는데, 생산활동과 소비과정, 여기에 국토개발의 잘못이 그것입니다.
물은 나무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숲이 중요한데도, 지금까지 건설부를 중심으로 한 개발부처들에서 생명의 가치보다 경제가치를 우선함으로써 무분별하게 산림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 물 오염을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설부 등 개발부처가 중심이 돼 시행했던 국토개발종합계획이 우리의 강과 산림 등 생태계를 망쳐온 것입니다.
저는 이제 환경부가 중심이 되어 국토의 개발과 생태를 보전하는 종합계획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공장의 오염배출시설을 잘 만든다고 해도 오염물질은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에 제도적으로는 환경오염물질 실명제 실시 등과 같은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의 감시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소비과정에서 생기는 오염문제는 소비자인 시민들 스스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환경단체에 가입하여 환경교육도 받고, 환경을 살리는 운동에도 동참함으로써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오염물질 총량규제나 환경오염물질 실명제와 같은 기업에 대한 법적규제가 아직까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정부와 기업이 한통속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물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데, 그 해결고리는 다름아닌 환경부로 물관리를 일원화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85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물관리 일원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물관리 일원화가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 부처간의 이기주의 때문에 실행이 안되고 있습니다. 물관리가 일원화되어야 우리나라 물문제가 큰 가닥을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녹색평론 정부 부처간의 이기주의가 현재 물관리 일원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말씀이신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또, 물관리가 환경부 책임하에 일원화된다고 하면 정말 우리나라의 물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십니까? 정부와 기업의 일차적인 책임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언론이나 일반 대중들의 환경의식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먹고살기 위해서는 환경파괴나 오염은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아직도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박사님 의견은 어떠신지요?
서한태 제가 20년 가까이 벌이고 있는 싸움은 물관리 일원화를 이루기 위한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물관리 일원화가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생겨서, 저는 86년 신년 연하장에 물관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실어 전국에 500통을 발송했습니다.
이 효과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6개월 후인 86년 6월 정부 각의에서 88년부터 물관리를 일원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88년이 되니까 한꺼번에 할 수 없으니까 단계적으로 하겠다고 다시 발표하더니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그러다가, 90년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인 트리할로메탄이 검출되는 사건이 나자 이승윤 부총리가 4개 부처로 나누어진 물관리를 환경청을 중심으로 일원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후 또 흐지부지되어 버렸습니다. 95년 2월 22일, 선거를 앞두고 민자당 이춘구 대표가 국회에서 물관리 일원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역시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거짓말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물관리 체계를 보면, 물의 양적 관리는 건교부가 맡고 질적 관리는 환경부가 맡고 있습니다. 물의 양과 질을 분리해서 관리하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환경부는 물관리 주무 부처인데 반하여 건교부는 도로, 철도, 항만, 해운 등이 주업무이고 여기에 물관리 업무는 이질적으로 끼어있기 때문에, 물관리 업무는 환경부가 맡는 것이 마땅합니다. OECD에서도 물관리는 총괄적으로 환경관장 부서에서 맡는 것이 좋다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물관리가 일원화되면 한정된 수자원을 수질에 따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물줄기를 행정 편의로 억지 분류하는 모순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건교부는 환경부에 비하여 직원 수도 16배나 되고 예산도 33배나 되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점은 대부분의 전문가나 학자들도 물관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데까지는 견해를 같이하고 있지만 막상 어느 부처가 맡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물관리를 환경부로 일원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이나 일반 국민들의 환경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환경부로 물관리가 일원화되면 물문제 해결의 큰 가닥이 잡히기 때문에 세부적인 문제는 보완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환경파괴나 오염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의 이면에는 사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학도 시멘트 싸이로 반대싸움이나 유달산 케이블카 설치를 저지하는 과정에서도 경험한 바 있습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세개의 섬이 물위에 둥실 떠있던, 이난영의 노래에 나오는 아름다운 삼학도에 86년 4,000톤짜리 시멘트 싸이로 2개와 시멘트 포대를 만드는 부대시설이 들어선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기독교인과 예총을 중심으로 86년 9월 9일 삼학도보존회를 만들어 강력한 싸움을 통해 추방해버렸습니다.
영산호 싸움 때는 전 시민의 호응을 받았으나 삼학도 싸움 때는 “경치가 밥먹여주느냐” “목포에는 공장도 없는데 공장이 들어서야 먹고살 수 있다”는 논리를 펴면서 시멘트 싸이로가 들어오는 것을 찬성하는 무리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삼학도에 땅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시민들을 부추긴 것이었습니다.
또 87년에는 수석같이 아름다운 기암절벽으로 된 유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해서, 87년 7월 12일 유달산보존회를 만들어 격렬한 싸움끝에 백지화시켰습니다. 이때에는 지역에서 주먹깨나 쓴다는 젊은 친구들이 제 뜻에 공감하여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유달산 케이블카 설치반대 싸움에서 어려웠던 것은, 주정공장이나 삼학도 시멘트 싸이로 문제와는 달리 상대가 지역사람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사람이 주민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져 “내 돈이 얼마나 피땀 흘린 돈인지 알지? 이발소 하면서 고생해 번 돈 아닌가. 그 돈으로, 호텔 운영하는 게 어려운 줄 알면서도 호텔을 짓고, 또 유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것은 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네. 게다가 바다에 유람선까지 띄우면 외지 관광객이 많이 올텐데, 그렇게 되면 지역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그런데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운운하면서 여론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민들 가운데도 유달산에 케이블카가 생기면 한번 타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정말 어려운 싸움이었습니다.
녹색평론 유달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투쟁 때라고 생각됩니다만, 박사님께서 어느 텔레비젼 대담 프로그램에서 “산이란 것은 땀을 흘려서 오른 사람에게만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말씀하시던 게 퍽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그 말씀 한마디에 박사님의 환경철학이 함축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그렇고, 영산강 싸움 이후 케이블카 문제나 삼학도 싸이로 반대운동 등 굵직굵직한 싸움에서 거듭 승리하였는데, 그것은 퍽 이례적인 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승리하게 된 데에는 어떤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그렇지만, 그런 싸움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문제가 전체적으로 계속 악화되어왔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이번에 모처럼 목포에 와서 보니, 신안 비치호텔이 해안경관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크게 눈에 거슬리지만, 삼학도도 이미 예전의 삼학도는 아닌 것 같고, 또 유명한 목포의 세발낙지도 요즘은 구경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목포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 국토에 걸친 현실입니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특히 호남지역에서는 그동안 산업발전이 뒤늦었다고 생각하여 그에 대한 반동으로 더 강한 개발심리가 조성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박사님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이 문제에 관련해서 박사님께서는 언젠가 국토의 보존과 개발의 적정규모가 무엇이냐고 정부에 질의서를 보낸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질의서를 보낸 취지와 정부 쪽의 대답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서한태 그간 환경운동을 하면서, 대체로 큰 시설을 만들거나 개발을 할 때에 겉으로 드러난 명목상의 목적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이권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달산 케이블카의 경우도, 추진하려는 사람들은 산을 보전하는 것이 케이블카 설치의 목적 중 하나라고 버젓이 내세웠지만, 그것은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산은 등산하는 사람보다는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수가 훨씬 많은데, 케이블카의 승강장이나 케이블 따위가 경관을 해칩니다. 그리고 설치하는 과정에 자연생태계가 훼손될 것이 뻔하고, 설치 후에는 몰려드는 인파로 산이 몸살을 앓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산을 편하게 올라가는 것보다 등에 땀을 흘리면서 올라가는 것이 기쁨도 더 크고 보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했던 것입니다.
제가 영산강 싸움, 삼학도 시멘트 싸이로 싸움, 유달산 케이블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반대운동을 벌이기 전에 평소 존경하는 진보적인 선후배들과 진지한 논의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결정하고, 또 계획을 세우거나 논의를 할 때, 상대편이 엿듣더라도 떳떳할 만큼 정당한 명분과 소신을 가지고 투쟁에 임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명분과 소신이 서면 엄청난 힘이 생기는 것을 매번 싸움에서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름대로 열심히 환경보전 운동을 해도, 파괴하는 쪽인 정부와 기업의 힘이 월등하게 세고, 지키려는 쪽인 환경단체의 힘은 약하기 때문에 우리의 환경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이 분통터지는 일입니다.
목포 인근도 갯벌을 매립하여 영암, 금호방조제 등을 축조함으로써 그 좋은 세발낙지도 구경하기 어렵게 되었고, 삼학도마저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목포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갯벌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 안타깝고, 당시 어떤 부분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많은 도시들이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서 공해도시가 된 것을 거울삼아, 뒤늦게 개발을 할 때에는 환경용량이나 자정능력 등을 고려하면서 지역생태계에 적합한 최소한의 개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자치단체장들이 환경에 대한 철학도 없이 선거를 의식하거나 떨어지는 떡고물 때문에 산림이나 갯벌, 농지를 훼손해서 개발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어려운 경제속에서 개발을 무분별하게 선호하는 주민의식도 문제입니다.
이런 생각에서 93년 8월 9일자로 정부 5개 부처 장관에게 국토면적에 비하여 산림면적, 농경지 등이 몇 퍼센트 정도가 적정규모인가 하고 질의했습니다. 그랬더니 건설부로부터 92년 기준 현황은 산림면적이 65.1%, 농경지가 20.8%, 나머지 도시산업용지가 14.1%라는 회답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질의를 했습니다. 나는 현황이 아니라 적정규모를 물었는데 왜 적정규모에 대해서는 회답이 없느냐고 했더니, 적정규모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무분별하게 산림을 훼손하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는 한심한 대답뿐이었습니다.
녹색평론 적정규모라는 개념 자체가 있었을 리 만무합니다. 늘 국토의 종합개발 계획이랍시고 청사진을 내놓는 정부도 그렇고, 이 나라의 권력집단치고 도대체 나라의 운명에 대해 장기적인 비젼을 갖고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연전에 전경련 산하 어느 기관에서 주최했다고 하는 심포지엄에서는 우리나라 전체 농경지를 현재의 2%까지 줄여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합니다. 농산물 경작은 포기하고 외국에서 사들여오면 된다는 거지요. 탐욕 때문에 이제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무분별한 사람들이 실제로 지금 세상의 실력자로 온갖 정책을 결정하는 권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포지역에서 환경운동이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둔 데 대해 지역의 양심적 인사들과의 충분하고도 공개적인 토론이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는 박사님의 말씀은 굉장히 귀중한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뭐니뭐니 해도 민주적 자결권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말씀이니까요. 환경운동의 과정도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사회 역시 철저히 주민자치에 토대를 둔 사회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제일 큰 문제는 한곳에 오래 거주하면서 정을 붙이고 뿌리를 박고 사는 사람들이 점점 드물어져간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십년에 걸친 이농현상으로 지금 농촌마을은 텅비고,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환경이든 사회문제든 무책임해지기 쉽습니다. 이런 빈틈을 노리고 기업이나 정부는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 환경오염 시설을 설치하려고 하고?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뿌리박고 사는 삶을 다시 되돌려 놓느냐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선구자이신 박사님의 생애에서 저희가 제일 감명을 받는 대목은 박사님이 목포지역에서 태어났고, 가까운 광주에서 대학을 다닌 뒤에, 다시 목포에 뿌리박고 오랜 세월 의사로서 일해오셨고, 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옹골찬 환경운동을 해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박사님이 주도해오신 운동은 근본적으로 그러한 박사님의 ‘뿌리박은 삶’에 기인한다고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
이런 점과 결부해서, 한결 더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에 헌신하시기 위하여 박사님께서는 재작년 이후 오랫동안 경영해 오신 병원도 폐업하고, (사)목포 환경과 건강연구소라는 조직을 새로이 세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환경훼손이 일어나는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 직접행동을 통하여 저지 반대운동을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러한 직접행동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신 결과인지요? 지금까지의 박사님의 경험에 비추어서, 앞으로의 우리의 환경운동이 어떤 식으로 전개돼야 할 것으로 보십니까?
서한태 적정규모는 모든 분야에서 중요하지만, 특히 환경분야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도시인구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십만이든 백만이든 상관이 없을는지 모르나, 환경의 측면에서 보면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수록 수송경비가 많이 들 뿐 아니라 이로 인해 대기오염이 발생하며 많은 도시인구가 쏟아버리는 오물들이 강과 바다의 수질오염의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게다가 쓰레기 처리에 큰 어려움을 겪는 등 일단 인구가 지나치게 많으면 그 자체가 거대한 오염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 수도권이 남한 인구 45%를 차지하고 경제력도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과감한 분산정책을 펴지 못하는 것은 정책입안자들의 생활권이 수도권이거나 아니면 땅투기를 해놓았거나, 많은 서울 시민으로부터 외면당하면 안된다는 정치적인 계산 때문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의 특수성을 살려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루고, 환경친화적이고 쾌적한 도시 주민공동체가 실현된 살맛나는 도시를 만들어가면, 서울로 이사를 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천식이 심해 서울에서 목포로 이사온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지역에서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도 어찌 보면 국토의 균형발전과 수도권 인구분산에 이바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아, 산림 면적도 1인당 세계 평균이 1헥타르인데 반하여 우리는 0.15헥타르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산림이 풍족한 편도 아니고 농경지도 식량자급률이 30% 미만이니까 농경지는 농경지대로 모자랍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쓸 수 있는 땅이 세계에서 가장 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라의 분수를 알아서 웅장하고 거대한 것보다는 작고 아담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뿌리를 내릴 때 후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도 늘상 부족하면 우선 공급을 늘려놓고 보자는 공급위주의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으니 참으로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에너지가 부족하면 비싼 외화로 에너지를 사오거나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급급했고, 땅이 필요하면 무분별하게 갯벌을 매립했으며, 교통이 혼잡하면 무조건 도로를 넓히는 데만 힘써 왔습니다.
새만금호만 하더라도 유입수인 동진강이나 만경강의 수질이, 죽음의 호수로 변한 시화호보다 2배나 악화되어 있다는데, 이대로 가면 새만금호도 죽음의 호수가 되리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무분별하게 개발만 하려는 것은, 무조건 크게 일을 벌여야 떨어지는 떡고물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오염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제도와 정책이 관련된 문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96년 7월 7일 사단법인 목포 환경과 건강 연구소를 만들어 지속적인 대안 제시와 자료수집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도 제도적인 개선을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만 더욱 강도를 높여 정책개선을 건의하고 있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면 국토개발계획을 건교부에서 환경부로 넘기는 문제, 환경부를 중심으로 하는 물관리 일원화, 공장에서 배출하는 환경오염물질의 실명제, 자동차 증가 억제정책, 수입식품 통관 검역강화 등을 끈질기게 촉구 건의하고 있습니다.
그간 경험을 통해서 저는 환경운동에는 5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조직, 교육, 논의, 실천, 평가입니다.
먼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직을 꾸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조직이나 10% 정도의 적극적인 핵심세력이 있으면 더욱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많은 조직들이 공통목표가 있으면 서로 연대도 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무엇이든 내용을 잘 알아야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꾸준한 교육에 힘써야 됩니다. 어느 곳에서나 끊임없이 문제는 생기기 때문에 진지한 논의를 통해 대안을 마련해야 하며, 대안이 마련되면 즉각 실천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선, 내용을 어느 정도 안다 하더라도 당국에 질의를 하여 회답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회답에 문제점이 있으면 몇 차례 되묻기도 하고, 건의서나 결의문을 채택해서 보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절차를 밟아가며 할 만큼 했는데도 목적이 달성되지 않을 때에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라도 요구사항을 강력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실천운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반성 평가하면서 운동을 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녹색평론 환경문제 전반에 걸친 박사님의 폭넓은 관심과 왕성한 활동력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박사님께서는 특히 근년에 수입농산물 문제에 관하여 크게 관심을 기울여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문제에 대하여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십시오.
그리고 식품문제 등과 관련하여, 박사님이 원래 의사로서 살아오신 분이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의료분야 전문가들이 이런 문제에 좀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대사회적으로 경각심을 환기하는 일을 왜 안하거나 못하는지 궁금합니다. 도대체 극소수의 의사들을 제외하고, 지금 환경문제에 관하여 우리나라의 의료계가 어떤 조직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의료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이 환경운동 차원에서 발휘된다면 사회적으로 큰 무게를 가질 수 있을 터인데, 유전자기술이니 뭐니 하는 첨단 의료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적극적이면서 좀더 근본적인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환경문제에 등한한 것은 의료계로서 직무유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박사님의 경우는 이런 면에서도 예외적인데, 혹시 박사님이 소속하고 계신 지역이나 전국적 차원에서 의료계가 환경문제에 발벗고 나설 수 있도록 어떤 시도를 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서한태 요즘 우리가 먹는 것이 말이 아닙니다. 마음놓고 먹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양적 생산을 위해 인체에 해로운 독한 농약을 뿌리고, 맛을 좋게 한답시고 화학조미료를 듬뿍 치며, 영양가치도 없는 가공식품이 범람하고 수입농산물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자기들이 먹는 것은 무척 까다롭게 따지면서 자국의 수출품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수확할 때만 농약을 뿌리는데 미국은 수확 후에도 농약처리를 하는 것이 법으로 인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출할 때 안전성 검사도 않고 일단 선적한 후에는 “내가 알게 뭐냐”는 배짱입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까지는 선박으로 40일 정도 걸리는데 어쩔 수 없이 적도 부근을 지나오게 됩니다. 적도를 지날 때 선실온도가 60℃ 정도로 고온다습하기 때문에, 벌레먹고 썩고 싹이 나고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독한 청산이나 메틸 브로마이드로 훈증을 합니다. 실제로 89년 인천항에 들어온 농약에 절여진 미국산 밀을 하역하던 인부가 한 사람은 즉사하고 네 사람은 졸도해버린 사고가 있었습니다.
부작용이 있을 때 책임소재를 분명히하기 위해서도 수입창구가 일원화되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와 농림부로 창구가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전문인력도 부족하고 첨단장비도 부족하고 기술수준도 미흡하며 검사항목도 선진국에 비해 적고 허용기준도 엉성합니다. 그리하여 통관 불합격률이 미국은 37%, 영국 25%, 일본은 19%인데 우리나라는 겨우 0.5%이니, 검역이 얼마나 허술한지 모르겠습니다.
통관검역만 엄격하면 멀리서 오는 농산물은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여기에다 90년에 한미무역 실무자회담에서 수입농산물의 안전치를 미국 전문가와 협의해서 결정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한국인의 생명까지 미국 전문가의 판단에 맡긴 셈입니다. 그후 통상협상 과정에서 미국 농산물에 대한 통관 검역필증까지 면제하기로 합의한 것은 사실상 우리 국민의 안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92년 7월에는 미국의 압력으로 가공식품의 제조년월일을 삭제하고 유통기간만 표시하기로 했으며, 93년 7월에는 잔류농약 실태를 신고하는 녹색신고제를 실시하려 했으나 미국이 매서운 눈초리를 보이니까 나약한 정부가 꼬리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95년에는 플로리다산 자몽을 통관검역에서 불합격시키자 “한국정부가 고의로 무역장벽을 만든 것이 명백하다”며 미국무역대표부가 WTO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못난 정부가 지레 겁을 먹고 ‘선통관 후검역’하겠다고 발표해버렸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미국의 오만불손하고 고압적인 압력에 굴복해야만 하는 겁니까? 정말 분통이 터집니다.
그래서 여러 차례 의사회 모임이 있을 때, 이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의사들이 나서야 한다, 내가 앞장설 테니 통관검역 강화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의사회 이름으로 채택하자고 해도 다들 무엇이 두려운지 따라주지 않습니다. 식생활 개선운동도 의사들이 나서주면 파급효과가 크므로 이 문제를 깊이있게 다루었으면 해도 아직까지는 큰 호응이 없어 서운한 생각도 듭니다.
2년 전에 ‘그린닥터’라는 모임이 창립되어 여기에 큰 기대를 걸었는데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포시 의사회는 ‘그린닥터’가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여러 차례 논의해오고 있으며, 다가오는 2000년부터는 의사들이 본격적으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자고 다짐한 바도 있습니다. 사실 의사들도 개인적으로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실제로 많은 의사들이 환경운동단체의 회원으로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목포시 의사회가 환경운동의 좋은 사례를 만들고 이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면 환경운동 발전에도 큰 몫을 하리라 믿습니다.
녹색평론 우리나라의 힘센 사람들 ― 정부나 기업, 언론과 학계를 막론하고 ― 의 큰 문제는, 예를 들어 자유무역 논리나 WTO체제 같은 것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기고, 늘 굴종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점이 아닌가 싶어요. 지난 11월 말에 시애틀에서 열린 WTO회의가 사실상 좌절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다국적기업의 전횡에 저항하는 세계 각처의 NGO그룹이나 풀뿌리 민중들의 결집된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더라도 결국은 우리가 노력하기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수 있는데도, 한국에서는 늘 세계적 흐름에 적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만 높습니다. 미국사람들이 하고, 세계적 흐름이 그러니까 덮어놓고 우리도 그렇게 가야 된다는 것인데, 이게 왜 늘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좀더 주체적으로,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고, 무엇이 진리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보는 힘이 너무도 약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건강 전문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의사들이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문제에 대해 이렇다 할 조직화된 관심을 표시하지 않는 것도 결국 그런 풍토에 관계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문적 성찰이나 교양을 무시하는 의과대학의 교육도 문제가 많은 것 같고, 미국의 의학교과서를 무조건 바이블로 떠받드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이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지만 요근래에 녹색평론이 중심이 되어 제기해오고 있는 수돗물 불소첨가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른바 서양에서도 모범적인 복지국가라고 하는 나라들에서는 하지 않고, 이웃 일본에서도 하지 않는 사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에서 하는 사업이라고 하여 덮어놓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더욱이 원래 독성물질인 불소를 사람이 한평생 먹는 물에 첨가하면 많은 건강상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과학적 증언이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미국 보건당국이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해서, 미국정부가 자기 국민이라면 철저히 보호하는 정부인데 나쁜 것을 하라고 할 리가 만무하다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논리를 내세워가며, 지금 우리 치과계 일부와 보건전문가, 시민운동단체 일부에서 이것을 적극 밀어붙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불소문제에 있어서도 박사님은 예외적인 분이십니다. 저희가 알기에 그동안 박사님은 수돗물 불소첨가를 지지해오셨다고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불소첨가를 적극 반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난 9월에 서울에서 결성된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의 공동대표로도 추대되셨지요. 이 문제로 평소 가깝게 지내던 몇몇 분들과 조금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그런 희생을 무릅쓰면서 자기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의 편을 든다는 건 정말 용기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박사님께서 어떤 경위로 불소문제에 대한 견해를 바꾸게 되셨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고, 이 문제에 관한 박사님의 소신을 말씀해주십시오.
서한태 지난날 저는 불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소신이 없었기 때문에 무관심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녹색평론에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실렸을 때, 평소 존경하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교수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인가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상대인 치과의사회나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단체로 인정받아온 ‘건치’ 같은 조직을 상대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보고 “저렇게 반대를 하는 데는 무슨 근거가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열심히 자료를 읽은 다음 나름대로 소신을 굳혔습니다. 제가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수돗물에는 아무리 미량이라 할지라도 유해물질이 들어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해물질의 허용기준이란 없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체내에 들어가면 일부만 배출될 뿐 거의 50%가 축적된다는 불소를 13세 이하의 어린이 충치예방을 위해서 수돗물에 투입한다는 것은 의사의 양심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환경운동을 하다보면 개발이냐 보전이냐로 팽팽히 맞설 때가 있습니다. 서툰 개발은 안한 것만 같지 못하므로 그것이 미칠 여러가지 영향을 다각적으로 따져보기 전에 일부터 벌여서는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수돗물 불소투입에 대한 찬반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만, 고귀한 생명과 직결되어있는 이 문제를 안전성이 검증되지도 않았는데 밀어붙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저는 의사로서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고 할지라도 환자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강제적으로 진료행위를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공의 수돗물에 일방적으로 불소를 투입하는 것은 바로 강제적 의료행위에 다름아닙니다. 더구나 독성물질인 불소가 투입된 수돗물을 한평생 마시면 건강상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과학적 경고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넷째, 미국이 하는 사업이라고 해서 생명과 관계가 있는 문제인데 신중한 검증도 없이 우리나라 치과계에서 이것을 적극 밀어붙이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뒤늦게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 검증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습니까?
다섯째, 설령 불소의 충치예방 효과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치아에 대한 국소적인 효과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불소의 효과를 믿는 사람들은 불소함유 치약을 사서 쓰거나 불소용액으로 양치질을 하면 될 일입니다. 그것은 특별히 돈이 드는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소를 굳이 수돗물에 풀어 섭취하게 함으로써 전신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게다가 수돗물은 실제로 음용수로는 극히 적은 양만 쓰이는데 거기에 전부 불소를 투입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는 일입니다.
녹색평론 한 개인으로서나 환경운동가로서나 박사님의 삶을 크게 특징짓는 것은 늘 사심없이 행동해 오셨다는 점으로 보입니다. 일찍이 의사로서 편하게 인생을 살 수 있는데도, 환경운동가가 되어 우리의 환경문제에 골몰하느라 늘 노심초사하시고, 일흔이 넘은 지금도 하루도 쉬지 않고 환경문제에 관련된 일로 동분서주하고 계시니까요. 이번에 목포를 방문하여, 박사님이 지난 20년 동안 국내의 온갖 간행물에서 환경관련 기사, 논문, 참고사항을 분야별로 스크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으신 것이 수십권이 넘는 것을 보고 저희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일을 순전히 혼자서 해낸 것이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박사님의 심정이 어떠하신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제1회 교보환경상의 대상을 받으셨을 때도, 그 상금을 박사님 자신의 용도로 한푼도 쓰지 않으셨더군요. 그런 데서 엿보이는 인품 때문에 박사님 주변에 계신 분들이 한결같이 박사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게 아닌가 합니다.
또, 연전에는 주변에서 목포시장 출마를 많이 권하였다지요. 지방자치제의 시장이 되시면 박사님께서 평소에 염원하고 계신 환경문제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인데, 왜 그런 권유를 거절하셨는지요. 정치와 행정가로서는 자신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시는지요?
서한태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식하라. 아무리 의로운 일도 어떤 선에서 멈출 줄 모르면 오만이다. 오만은 남과 함께 자신도 파괴한다. 개척자는 후학을 위해서 길을 터주면 된다. 그 이상을 탐하면 오만이다”라는 글을 리영희 교수 책에서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난번 목포의 시민단체들이 연대기구를 구성해 목포시장에 출마할 것을 바랐으나 단호히 거절한 것은 제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싸움꾼이지 행정을 잘할 사람은 못됩니다. 특히나 경제에 너무 어두워 시의 살림을 잘 못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행정’이나 ‘경제문제’는 제 성격에 맞지 않습니다.
녹색평론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만, 요즘 박사님께서는 ‘전남의제 21’에 관련해서도 매우 분주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을 위해서 ‘의제 21’이 무엇이며 그것이 환경운동의 일부로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끝으로, 그동안 일념으로 환경운동에 헌신해오시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우리가 사는 땅이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되기 위해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기탄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그 말씀과 관련하여 이 나라의 젊은 환경운동가들을 위해서 한마디 충고의 말씀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서한태 92년 남미 브라질에서 개최된 UN 환경개발회의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리우선언을 하고 그 후속조치로 21세기 지구환경 보전을 위한 행동강령인 ‘아젠다 21’을 채택했습니다. ‘아젠다’를 직역하다 보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의제 21’이라고 하는데, 이게 뭐하는 것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만약 ‘환경의제 21’이라고만 했어도 훨씬 감이 잡힐 텐데 말입니다. 또 지역에 따라 앞에 ‘그린’ 또는 ‘녹색’, ‘푸른’ 등의 수식어를 쓰고 있는데, 저는 순수한 우리말이고 부르기도 좋아서 ‘푸른전남 21’이라 이름지었습니다.
96년 11월 창립되어 제가 상임의장을 맡았는데, 전남도내 시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환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이들간의 유대와 친목을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운동은 친목의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경험에서 얻은 제나름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형식은 환경토론회라고 했지만 서로 상견례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고 각 지역의 활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환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친목을 다지는 데 힘썼습니다. 약 2년 정도 계속하니까 대충 파악이 되어서 98년 12월에 조직을 대폭 개편했습니다. 이제 ‘푸른전남 21’은 명실상부한 강력한 조직으로 꾸려졌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환경운동에서 중요한 것이 환경교육이라고 믿고 도내 시군을 순회하면서 강연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 쓰레기, 물, 바다, 숲, 환경농업, 이렇게 다섯가지 과제를 잡아 도내 시군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에 특별히 여천공단의 대기오염과 영광 핵발전소 문제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22개 시군에서는 다섯가지 주요과제 가운데 한두가지 정도를 중점적인 실천운동으로 추진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토론회를 개최해서 진지하게 논의하여 대책을 세우고 있으며, 끊임없는 평가를 통해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간 환경운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많은 사람을 모으고 운동에 동참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푸른전남 21’은 관이 협조해주니까 전남도내의 훌륭하고 좋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척 기쁩니다. 요즘 민간주도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현실적으로 사람을 모으기 위한 행정적인 지원이나 재정적인 지원은 관에서 해주고 일은 민간이 주도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이 있는 곳에 반드시 대책이 있음을 확신하면서 끈질긴 운동을 펼칠 때, 모든 이가 쾌적한 환경속에서 건강하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젊은 환경운동가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도덕성이 상실되면 아무 일도 안되니까, 사회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운동가 스스로 사생활까지도 깨끗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고 역사에 비추어 떳떳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한태 – 수돗물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공동대표, 목포 환경과 건강연구소 이사장
김종철 – 녹색평론 편집, 발행인. 영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