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사고 이후 10년째의 봄이 왔다. 바로 그 10년 전에 받은 강한 충격을 어제의 일처럼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아니 “기억하고 있다”는 말은 정확한 게 아니다. 다른 역사적 대사건과 똑같이 체르노빌은 전세계와 사람들의 의식에 근원적인 영향을 준, 이를테면 그러한 무엇으로 우리의 일상(日常)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단계에 10년을 되돌아보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추억에서가 아니라, 지난 10년을 검증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작업이 지금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문제의식은 이 글의 부제(副題)로 제시한 것과 같다. 나는 결코 남다른 얘기로 내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다. 실은 이 원고를 쓰기 시작하다가 나는 한달이 걸린 유럽여행 ― 나의 유럽 왕래도 체르노빌사고의 해(1986년)부터 10년간 계속되어왔다 ― 에서 금방 돌아왔는데, 여행하는 동안 나는 내내 이 문제에 대한 자문(自問)을 계속했었다.
10년전, 누구도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우크라이나의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는 바람에 전세계가 방사능의 공포에 사로잡혔을 때,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런 공포는 이제는 싫다, 원자력발전소는 이 지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독에서 쓰기 시작한 ‘탈원발(脫原發)’이라는 말은 전세계 사람들의 모토가 되었다. 그해 가을, 내가 찾아간 유럽 각지에는 아직 방사능의 오염이 강하게 남아있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종말의 시작’을 부르짖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원자력 시대를 종결짓는 시대가 정말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한 의지와 소망을 담아서 하는 말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는 대단히 절박한 것이었으며, 만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들의 생명의 힘은 어차피 “끝장이 나고” 말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비엔나에서 내 노트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적었다.
“이것은 이중(二重)의 의미에서 ‘종말의 시작’이어야 한다. 핵의 위협을 끝장내는 종말이 시작되든가 아니면 인류의 종말이 시작 되든가, 이 두가지가 병행하면서 진행되든가. 지금은 그러한 시대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구나 하는 실감을 유럽에 와서 한층 강하게 느낀다. 어떻든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이러한 ‘종말의 시작’을 ‘시작의 시작’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과연 참말로 새로운 시대는 시작되었는가. 아니면 우리는 아직도 ‘종말의 시대’, 그 와중에서 고통받고 있을 뿐인가. 이제 그러한 문제를 검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고은폐
대형 방사능재해로서 체르노빌은 현재 어떠한 영향을 남겨놓았는가. 또 아직도 남겨놓고 있는 중인가. 이런 것이 주제가 되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그 전에 나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지금 우리 앞에 가로놓인 몬주사고(몬주 고속증식로의 나트륨 누출 화재사고)에 관한 문제도 강조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우선 구소련정부나 이에 동조한 각국 정부에 의한 철저한 사고은폐를 지적해야 한다. 사고 4개월 후,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주최한 비엔나 전문가회의에서 소련정부는 사고는 운전원의 ‘6가지 규칙위반’을 중심으로 해서 야기된 인위적 실수가 주요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이에 대하여 각국정부에서 파견된 전문가들도 모두 엄중한 논의도 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본의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사고 1년이 지난 1987년 7월에 발표한〈소련 원자력발전소사고 조사보고서〉에서 똑같이 ‘6가지 규칙위반’설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이 몇년 후에 밝혀졌다. 사고의 주요 원인을 체르노빌형 원자로(RBMK 원자로)의 구조적 결함(주로 긴급정지 장치를 작동시켰을 때, 오히려 반응이 증대되었다는 제어봉의 치명적 결함)과 몇년 전부터 이러한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방치한 소련의 원자력추진체제의 구조적 결함에 원인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사실은 1991년 1월에 발표된 소련 원자력산업안전감시위원회 보고서도 인정했다. 이 보고서는 ‘소련에서의 안전문화의 결함과 낙후성’을 중심과제로 한 흥미있는 것인데, 그 내용은 이른바 이미 1975년 11월에 체르노빌원자로와 같은 형(型)인 레닌그라드 원자력발전소 사고에서 원자로의 제어봉에 치명적 결함이 발견되었는데도 이 사고를 은폐한 사례가 말해주듯이 안전경시와 사고은폐 등의 구조적 체질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체르노빌사고는 위에서 지적된 것과 같은 사고은폐의 반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째, 전에 일어난 사고를 은폐하지 않았더라면 체르노빌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이며, 둘째, 사고원인의 규명과정 자체가 IAEA도 참가한 엄청난 조직적 음모였다는 것, 그리고 또 소련정부는 국민에게 사고와 오염상황에 대해서 철저하게 사실을 은폐하였으며 (이 얘기는 야로신스카야의 명저《극비 ― 체르노빌》에서 상세하게 서술되었다) 여기서도 IAEA는 철저하게 가담했으며, 그리고 1991년〈국제 체르노빌 프로젝트〉IAEA보고서를 발표할 때도 사실은 현장에 대한 치밀한 조사도 거의 하지 않고 “체르노빌사고에 따르는 건강피해에 대해서 주요한 것은 사람들의 심리적인 피해뿐이고 실질적인 방사능 피해는 없었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피해의 은폐까지 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과학적인 조사라기보다는 오히려 피해자의 범위축소와 “사고는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국제적 정치효과만을 고려한 극히 악질적인 것이었다. 물론 뒤에서 말하겠지만 피해는 모든 차원에 걸쳐서 현실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은폐에서 일본정부나 원자력추진전문가들도 깊숙히 관여했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된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고 다음해에 발표된 일본정부의 사고조사보고 ― 다시 말해서, 체르노빌사고에 관한 일본정부의 공식견해 ― 는 아직까지 수정되지 않았고,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체르노빌사고는 인위적 실수”였다고 일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수정 . 재검토해도 늦지는 않았는데 전혀 그러한 기색이 없을 뿐더러 당초에 허위보고로 세계를 기만했던 소련(현 러시아)정부에 대해서 항의하지도 않았다. 허위에 대한 이러한 불감증은 바로 일본의 ‘안전문화’의 결함과 낙후성을 의미하는 것인데 몬주사고의 은폐도 똑같은 맥락에서 사실이 은폐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국제적으로 빈축을 샀던 1991년 봄에 발표된 체르노빌사고 영향조사에 관한 IAEA보고서 작성팀의 리더는 바로 원자탄 영향조사의 중심기관인〈방사선영향연구소〉(히로시마 소재) 소장 시게마쓰 이쓰조오(重松逸造)씨이며, IAEA보고서는 이를테면 히로시마 . 나가사끼의 이름을 내걸고 체르노빌의 피해자를 묵살하려는 획책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지난 10년은 원자력추진기관이 국제적으로 조직적으로 사고은폐에 총력을 기울인 10년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산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한사람 한사람의 과학기술자는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허위를 전제로 과학기술은 더이상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둠속에서
위에서 말한 것과 관련되지만, 조금 다른 문제로 우리는 체르노빌사고에 관해서 아직도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사고가 난 해, 역시 유럽에서 원자로사고 해석(解析)의 국제적 권위자인 리처드 웹과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체르노빌사고는 핵폭주(核暴走)였다고 생각하지만 폭발의 상세한 성격, 다시 말해서 원자로의 진정한 위험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무서운 일이다. 우리는 어둠속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의 말은 진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러한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진실로 놀랄 만큼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이번에 유럽을 방문했을 때, 유럽의회의 위탁으로 체르노빌사고를 재현하기 위해서 컴퓨터계산을 하고 있는 리히아르트 돈데일러를 만났다. 그는 대형계산기로 장시간에 걸쳐 계산한 결과를 자기 컴퓨터화면에 재현하면서 체르노빌사고 때 어느 하나의 연료채널이 변하는 과정을 1,000분의 1초단위의 단층으로 보여주었는데, 최초의 증기폭발이 있고 나서 어떤 사태가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폭발은 두번이었는지, 세번이었는지, 또는 어떠한 성질의 폭발이었는지,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아무것도 상세한 것은 알지 못하고 있다. 원자로 내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이런 정도인 것이다. 이것은 역시 “어둠속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은 상태”가 아닌지….
체르노빌은 지금
IAEA의 보고와 달리 체르노빌의 방사능은 인간과 기타 모든 생물에게 생명과 건강상의 심대한 영향을 끼쳤고 또 앞으로도 그 영향은 계속될 것이다. 암이나 유전장해, 생태계 파괴 등 이러한 것이 드러나는 데는 긴 시일이 필요한데 그렇다면 이제부터 진짜 피해가 나타난다고 해야한다.
사고에 의한 오염과 피해상황을 말하는 데는 아무래도 제한된 지면에 모두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극히 상징적인 것만 말하겠다. 그리고 이제부터 서술하는 것은 일본의 몇몇 과학자가 벨라루시 공화국의 과학아카데미 과학자들(그 중심인물은 코노쁘리아 방사선생물학연구소 소장)과 공동으로 1994년 가을에 개최한 국제심포지움의 결과와 그때 일본측의 중심적 인물이며 지금도 체르노빌의 영향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이마나까 테쓰지(今中哲二, 쿄또대학 원자로실험소 교수)의 연구에서 거의 모두를 따온 것이다.
우선 첫째로 밝혀진 것은 요드에 의한 소아갑상선장해의 증가이다. 이것은 사고 때 노심으로부터 대량(노심 내장량의 20-70%, 이러저러한 평가가 있다)으로 방출된 요드-131이 갑상선에 들어가서 생긴 것이다. 벨라루시의 요드오염상황에 대해서 마뜨비엥꼬 등의 데이터를 그림-1에서 볼 수 있으며, 그것은 1평방킬로미터당 10퀴리 이상의 강한 오염이 사고원자로에서 몇백킬로미터의 범위에 걸쳐 확산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림1
요드에 의한 갑상선장해는, 갑상선의 기능저하, 기능항진, 비대, 종양 등 갖가지 범위에 퍼져 있으며 강한 오염지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엇인가 장해를 일으켰다고 생각되며 그중에서 가장 심각하고 현저한 것은 악성종양, 즉 암이다. IAEA보고서는 이러한 사실도 부정했었지만, 그후 WHO(세계보건기구)의 조사에서는 명백한 영향이 확인되어 이제는 그게 사실로 드러났다. 그림-2에서 WHO의 보고결과를 재현했다. 이 결과를 보면 갑상선암이 현재 급증하는 상황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2
그밖에 현재까지, 일반 주민의 건강피해는 소아백혈병, 백혈구피폭에서 오는 면역력저하, 이에 기인하는 감염증, 신경계통의 장해 등 그리고 염색체이상도 발견되기 때문에 장기간 잠복성 암이나 유전적 영향은 이제부터 드러날 전망이다.
사고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건강이나 생활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어느 정도나 될까.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전세계 50억 인구가 모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야말로 직접적인 영향은 어떠한가. 이마나까씨의 연구에 의하면 표-1 세슘-137에서 1평방킬로미터당 1퀴리 이상을 ‘오염지대’로 할 때,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시 3개 공화국의 오염지대의 면적을 합하면 일본 본주(本州) 면적의 64%에 해당하는 15만평방킬로미터에 인구 약 600만명이 이에 해당한다(700만명이라는 추정도 있다). 오염지대를 말하면 실은 스칸디나비아에 이르는 서북유럽까지 확산되었으니까 오염지대주민 피폭자수도 1,000만명 규모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 중에서 체르노빌사고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암은 틀림없이 수십만명은 될 것이다. 이밖에도, 물론 직접 사고처리와 제염작업에 종사했던 노동자, 군인(이른바 리끄비다뜨르 ― 청산인)들이 있다. 그 수만도 100만명 이하는 아닐 거라고 하는데 그중에서 이미 1만명은 사망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은 이만저만 어려운 문제가 아니지만 여하튼 사망자 말고도 사회에 복귀하지 못한 상병자(傷病者)도 수없이 많다고 한다.
표1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이상의 문제는 모두 현재진행형인 사태인 것이다. 3월 6일, AP통신에 의하면 체르노빌 피폭자를 위한 중심의료기관인 키에프의 방사선의학센터에는 현재 심각한 에너지부족 때문에 난방이 끊어져서 250명을 넘는 환자들이 위기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다. 추위에 떨고 빈혈증에 시달리는 드미뜨리 뽀리슈끄씨는 이른바 ‘청산인’ 중의 한사람인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오직 단 한가지, 정부가 우리들에 대해서 마음을 써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3월 6일자 저팬타임스에서). 그의 말은 단지 우크라이나정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정부와 사람들에게 한 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하나 잊어서는 안될 사태는, 생태계 전체에 대한 오염과 이상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할 여유가 전혀 없지만, 우리가 참가한 민스크의 심포지움(1994년 10월) 때, 벨라루시의 과학자들에 따르면 삼림의 식물과 생물, 그리고 동물의 변화 등 생태계 전체가 사고에 의해서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에 대한 극히 인상적인 보고가 있다고 하였다.
붕괴 직전에 있는 석관
사고 원자로를 봉쇄하기 위해서 만든 건조물 ‘석관’이 위험상황에 놓여있다는 말이 나온지는 오래된다. 사고 원자로의 거대한 뚜껑은 사고 때 한번 들어올려졌다가 뒤집혀진 채로 엉거주춤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 건물은 밀폐구조였는데, 어느새 큰 구멍이 여기저기 생기고 개구부분(開口部分)의 총면적은 1,000평방미터나 된다고 한다. 사고 원자로의 노심(爐心) 바로 밑에서는 핵연료의 잔해가 발열을 계속하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재임계(再臨界, 다시 핵반응을 일으키는 일)될 위험성까지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대량으로 남아있는 방사능이 지하수오염을 일으키는 것도 시간문제인 것이다.
체르노빌 10년이라는 것은 석관도 10년이 됐다는 얘기다. 사고 후의 곤란한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우선 “구린내 나는 물건에는 뚜껑을 덮어야” 한다고 해서 긴급 공사로 만든 게 석관이다. 강한 방사능의 영향을 받는 콘크리트나 계기 등의 열화(劣化)만 생각해도 용이하게 그 위기적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대책에 관한 논의는 이러저러한 게 많이 있지만 재정적 기술적 뒷받침이 불명확한 채 위기는 자꾸 심각해지고 있다. 10년을 맞으면서 IAEA회의(4월 9-12일)는 대책을 논의하는 모양인데 그리 큰 기대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우선 당장, 석관밖에다가 방어벽을 한겹 만들어서, 방사능의 방출을 막아볼 생각인 것 같은데, 내부의 붕괴가 본격화되면 도무지 그런 것으로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얘기다.
종말과 시작
석관의 이러한 상황은 체르노빌을 둘러싼 전체 상황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을 확대한 것이 바로 원자력산업 전체의 현재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밖으로는 그럭저럭 체면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에서 일어나는 붕괴는 확실히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은폐하고 있으니까 어딘가에서 커다란 결함이 불쑥불쑥 튕겨져 나온다. ‘몬주’ 고속증식로의 사고가 체르노빌 10년을 앞에 두고 일어난 것도 반드시 우연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이제 문제는 이 글 머리에서 제기한 질문으로 돌아간다. ‘종말’은 과연 진실로 끝나가고 있는가. 그리고 ‘시작’은 진실로 시작되고 있는가.
그림3
처음 질문에 대한 대답은 거의 모두 했다. 그렇다. ‘종말’의 징조는 명백하고 확실하다. 그림-3은 세계 주요 국가의 원자력발전소 발주상황을 보여주는 것인데, 적어도 ‘핵선진국’에서는 이미 원자력발전소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나는 체르노빌 10년을 맞는 유럽을 돌아보면서 새삼 그런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종말’이 순탄하게 진행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가지 큰 문제가 있다.
하나는 그림에서도 알 수 있는 바, 원자력발전소 시장이 아시아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시아가 경제성장에 눈을 돌리고 있는 사이에 핵선진국은 아시아에서 연명책(延命策)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문에 ‘공해수출’과 핵확산 등 많은 문제가 제기된다. 또하나는 핵폐기물, 폐기원자로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진정한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장래 세대에게 무거운 마이너스 유산을 물려주고 죽어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해결책이 없는 이상 진정한 ‘종말’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종말’이 없으니 거기 이어지는 ‘시작’도 기대할 수 없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 예정지 니이가따현 마끼쪼오에서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의 시비(是非)를 직접주민투표로 결정하게 될 것 같다. 주민투표조례가 쪼오의회에서 통과되었기 때문에 쿠보까와쪼오나 쿠시마쪼오의 원자력발전소 계획이 주민투표로 저지되었고, 또 아시하마에서도 진퇴양난에 빠져들었다. 이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제는 더이상 전력회사나 중앙정부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지 않겠다는 지역주민들의 명확한 주장이 주민투표조례라는 구체적인 수단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상징하듯이 지난 1월 23일, 후꾸시마현, 나이가따현, 후꾸이현의 현지사들은 수상에게 제언했다. 이 제언은 물론 ‘몬주’ 고속증식로 사고가 빌미가 되어 있지만 그러나 단순히 사고(몬주)의 진상규명만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까지 주민무시, 논의거부 등으로 일관한 일본의 원자력행정을 규탄하고, 이제부터는 정보공개와 철저한 국민적 논의에 입각해서 원자력정책(특히 플루토늄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제의한 것이다. 또, 이것은 미군기지 문제에 대한 오끼나와 현민과 현지사의 행동과 견줄 수 있는 ― 이 문제 때문에 환기되었다 ― 당당한 지역의 주장이며, 이것이 바로 체르노빌 10년이 갖다준 성과라 해도 과언은 아닐 성싶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이렇다. ‘종말’은 간단하고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핵시대(核時代) ― 올해는 베크렐이 방사능을 발견한 지 꼭 100년째가 되는 해이다 ― 는 방대한 마이너스 유산을 남기고 다음 세대로 인계되어 갈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시작’도 우리 주변에서 싹트고 있다. 이것을 우리 손으로 가꾸어 나갈 때 우리의 ‘시작’은 확실한 ‘플러스’의 유산으로 다음 세대로 인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사고 10주년(4월 26일)을 맞아 일본 월간지《軍縮》5월호에 발표된 글인데, 본지의 요청에 의하여 서울의 반핵자료정보실(02-387-1497)의 김원식(金源植)씨가 필자의 승락을 얻어 우리말로 옮겨 보내주었다. 귀중한 글의 번역 전재를 허락해준 필자와 자료제공에 힘써 주신 역자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