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 이곳 조탑리 마을 스피커에서 이전과 다른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민 여러분, 말씀드리겠습니다. 골프장 건설 반대가 적힌 노랑 깃발을 모두 내려주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집집마다 달아놓은 골프장 반대 깃발을 이제는 내려주십시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스피커에서는 정반대되는 소리가 저렁저렁 울려나왔기 때문이다.
“동민 여러분, 속히 나오십시오! 늦어도 여섯시 반에는 출발해야 합니다. 경운기가 있는 집에는 경운기를 끌고 나오고 자동차가 있는 집에는 자동차를 몰고 나오십시오! 노인들까지 한사람도 빠지지 말고 현장으로 나오십시오. 골프장 건설을 끝까지 막아야 됩니다.”
마을 이장님의 목소리는 처절하리만큼 간곡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여든살 노인까지 머리에 빨간 띠를 질끈 매고 골프장 건설현장까지 몰려갔다. 가서는 불도저를 끌어내고 포크레인을 막아서고 나무를 베는 전기톱을 뺏았다.
작년 2003년 12월에 골프장 건설허가가 정식으로 나면서 본격적으로 현장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주민들은 총동원이 되어 몸으로 막았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반대시위를 중단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허탈했겠는가.
골프장 반대 대책위원장님 말을 들어보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주민들을 동원하는 것도 무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과연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장장 16년간이나 시달려왔으니 주민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친 것이다.
이곳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 맞은편 지작골이란 산에 골프장이 건설된다는 말은 1988년부터 나왔다.
그해 어느날 마을 청년들 십여명이 업체측의 초대를 받고 풍성한 대접을 받고 왔다. 향응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나도 처음 알았다.
청년들은 풍성한 접대만 받은 것이 아니라 마을에도 큰 선물을 가득히 안고 왔다. 골프장이 건설되면 마을이 금방 부자 마을이 된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노인들은 노인대로 모두가 골프장에 취직이 되고, 근방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골프장에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높은 값으로 팔 수 있게 직판장을 만들어주고, 한마디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골프장 건설에 찬성하는 데 도장을 찍었다. 며칠 만에 90퍼센트가 넘는 찬성표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일이 그리 쉽게 되지는 않았다. 골프장 건설에 따르는 엄청난 피해가 입과 입을 통해 퍼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업체측에서 약속한 무지개 같은 꿈이 거짓이라는 게 조금씩 드러났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반대하기 시작한 건 향응에 초대받지 못한 나머지 청년들이었다.
갑자기 마을 인심이 험악해졌다. 앞뒷집 이웃끼리, 친척간에도 찬반으로 나뉘어져 서로 어울려 싸움까지 일어난 것이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누구네 아버지가 두들겨맞아 눈알이 빠진 것을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씻어가지고 병원에 가서 끼워넣었다는 험악한 소문이 들렸다. 누구네 아버지는 귀가 떨어져 역시 병원에 가서 꿰매 붙였다고도 했다.
알고 봤더니 눈알이 빠지진 않았고 빠질 뻔했을 만큼 맞아서 퉁퉁 부어 있었다. 누구네 아버지의 귀도 약간 찢겨져 치료를 받은 게 사실이었다. 이렇게 살벌한 가운데 찬반 양쪽이 나뉘어져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경제의 실체가 어떻다는 것을 이곳 조탑리 골프장 건설과정에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경제성장’은 중동전쟁이나 이 조그만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양이 크고 작은 차이뿐이지, 폭력이 동원되는 것은 똑같았다. 인간성이 파괴되고 인명의 살상과 자연파괴는 필수적인 것이다.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이 들어서는 과정에서도 보았지만 풍요와 편리를 얻기 위해 안동은 선비도 양반도 다 팽개쳐버렸던 것이다.
옛날에는 이곳이 남안동이 아니라 정지골이란 평지에 논밭이 펼쳐져 있었고 군데군데 커다란 옛 무덤이 수십기가 있었다. 그걸 모두 밀어버리고 고속도로 나들목을 만들었으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조탑리 일대는 지금도 수백개의 고분이 산과 골짜기에 널려 있다.
신일용과 원미경이 나왔던 사극영화 ‘물레야 물레야’(제목이 맞는지는 모르겠음)에서 원미경이 도망치다가 숨었던 커다란 동산이 있었다. 지금도 그 동산은 커다란 느티나무와 홰나무가 서있는 당산이 되어있지만, 사실은 그게 산이 아니라 커다란 옛 무덤인 것이다.
6·25전쟁 때는 북쪽으로 나있는 돌문을 허물고 무덤 안을 방공호로 쓰기도 했다. 그러느라 그 속에 들어있던 옛 토기 같은 부장품이 모두 훼손되어버려 여태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보물로 정해져서 보호받고 있는 5층 전탑 외에도 이곳엔 정교하게 깎아 만든 돌탑도 있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깨진 탑신 조각들이 냇물 돌다리로도 쓰이고 방천둑을 쌓는 데 쓰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수채구멍 덮개로도 쓰이고 어느 집 문앞 디딤돌로도 사용되었다.
앞산 너머 뒷골이란 곳도 옛날 절터였고 그곳에서 금동부처님이 발굴되기도 했다. 현재 골프장이 건설되고 있는 지작골 넓은 퍼덕도 사실은 절집터였다. 얼마 전까지도 많은 기와조각과 스님들이 쓰던 맷돌짝도 묻혀 있었던 곳이다. 조탑리 근처에는 여기저기 절터는 많은데 절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사라졌다. 안동은 유교문화의 고장이라고 자랑하지만, 그 유교문화는 수많은 불교문화를 파괴했던 것이다.
이제는 유교문화도 한낱 관광상품으로 전락해버리고 그 문화 속에 들어있던 정신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관광객들은 조탑리 5층 전탑을 보고 곧바로 고속도로를 지나 하회마을에 갔다가 봉정사 절집을 거쳐 도산서원으로 구경을 간다. 그런데 안동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봉정사 절집은 어떻게 남게 되었는지 정말 기적이다. 봉정사보다 더 큰 화려한 절집이 수없이 부서졌는데 봉정사는 하도 작아서 눈에 띄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조탑리에 살아오면서 그동안 일어난 여러 일들을 보고 과연 문명은 발전인지 퇴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과연 인간은 영혼을 지닌 고귀한 동물인지, 아니면 영특한 악마인지.
2004년 4월 19일은 이곳 송리동, 조탑동 사람들이 30만평 지작골 산을 지키기 위해 16년간이나 애쓴 보람도 없이 또다른 탑 하나가 무너져버린 날이다.
안동시내 여러 분들 중에, 좀 여유있게 살아가시며 안동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여러 분들, 그분들이 골프장건설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적극 도와준 덕분에 위대한 골프장이 드디어 완성되게 되었으니 축하할 일이다. 앞으로 안동의 문화재와 자연유산이 또 어떻게 변해갈지 누군가가 또 지켜볼 것이다.
나는 가끔 우리집에 승용차를 타고 오시는 손님에게 물어본다. “고속도로를 달려올 때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리 올 수 있어서 좋다는 말을 한다. 그분들은 고속도로가 뚫리는 과정을 잘 몰라서 그렇게 대답하는 것일 게다. 산이 잘려나가고 논밭이 쓸려나가고, 심지어 옛 무덤들이 파헤쳐지고 조상님들의 혼이 불도저에, 포크레인에 무자비하게 짓이겨진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고속도로로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이 바그다드를 향해 폭격을 하는 전투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수많은 생명이 죽었고 또 죽어가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 모두 끼니마다 밥상에 시체를 잔뜩 차려놓고 즐기며 먹는 드라큐라들이 아닌가. 시체를 먹고 시체로 된 옷을 입고, 시체로 만든 이불 속에 누워자고, 시체 위를 걸어다녀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목숨이니, 그 누구도 큰소리 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녘에 미안한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엄청난 파괴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6년간 줄기차게 골프장 건설 반대에 애써온 이곳 주민들이 그동안 겪었던 가슴 아픈 일들을 좀더 자세히 쓰고 싶었지만 새삼 들춰내어 다시 한번 상처 입는 일이 될까 봐 그만 쓰기로 한다.
끝으로, 수달보호협회 회장이신 박원수 선생님이 많은 노력을 하셨지만, 결국 조탑리 냇물에 여태 살아온 수달은 이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안동 시민들, 도대체 돈이 뭣이길래…여러분들은 참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