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좌담은 지난 8월 17일 대구에서 열렸다.
생존의 토대와 민주주의
김종철 요즘 개혁이니 친일행위 청산문제니 하는 정치적 주제를 둘러싸고 시국이 어지럽습니다. 게다가 경제가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가고 있는 게 분명하고, 그래서 한때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까지 들어온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해서 깊이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많이 들립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새삼스럽게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대중적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목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군사통치가 종식되고 소위 민주화가 웬만큼 이루어진 지도 이제는 꽤 여러 해가 흘렀는데도, 아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러고서야 과연 우리가 친일문제를 포함하여 현대사의 파행(跛行)을 정당하게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는지 걱정이 됩니다.
물론 그동안 여러 다른 매체를 통해서 박정희 시대에 대한 검토는 다양한 시각에서 많이 시도되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한 좀더 근원적이고 철저한 비판적 검토 없이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어떠한 진정한 개혁도, 진보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오늘 이런 자리라도 한번 마련해보면서 본격적인 논의를 우리 나름으로 시작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실은, 이번에 제가 이런 좌담회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얼마 전에 나온 천규석 선생님의 책《쌀과 민주주의》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책의 서장에서 천 선생님이 모처럼 마음먹고 최근의 주요 정치적·사회적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하고 있는데, 그걸 읽으면서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가 그동안 너무도 쉽게 민주주의를 말해왔지만, 정말 우리의 기초적 생존의 토대에 관련해서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민주주의를 생각해왔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자면 지금 우리가 운위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멀리까지는 못 간다 하더라도, 적어도 좀더 깊이 근원적인 관점에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무튼 지금 시점에서, 이라크 파병이라든지 쌀 개방 문제라든지, 또 지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되고 있는 수많은 정치적·사회적 현안들이 결국은 박정희 시대를 제대로 평가하고 청산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유신정치 시대는 20년도 더 전에 끝났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도 죽은 박정희가, 혹은 박정희의 유령이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든 게 본질적으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점에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겉모습으로는 많이 달라진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언론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틀림없어요. 군사정부 하에서는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가장 큰 굴레가 국가권력이었는데, 지금은 언론이 그런 점에서는 별로 구속을 느끼는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지금 언론자유에 가해지고 있는 핵심적인 압력은 국가권력이 아니라 기업이거나 언론 자신의 경영논리입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이 많이 달라진 건 분명해요.
그런데, 그런 달라진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령 들끓는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이라크 파병이 결행된다든지, 새만금을 비롯한 대규모 환경파괴가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주저없이 확대되는 분위기라든지, 이런 것을 보면 우리사회가 환경과 평화의 세기를 향해 나아가기는커녕 도리어 과거보다 더 심각한 퇴보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모든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정책들이 우선 먹고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경제지상주의와 안보논리, 그러니까 이른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합리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연 현 상황이 얼마만큼 박정희 시대와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국면에서 소위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박정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다른 방식을 생각할 만한 능력이 이 사회의 주류 혹은 지배엘리트들 사이에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실제로 약간의 민주적인 제도가 확립이 되고 국가권력의 직접적인 폭력이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물론 그것이 작은 문제는 아니지만―결국은 우리가 생존을 영위하는 근본적인 방식이 모든 사태의 뿌리를 이루는 관건이라고 한다면, 그런 점에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경제문제든 환경문제든 제가 보기에는 이대로 가면 결국 파국에 부딪칠 게 너무나 분명해요.
권력을 장악하거나 장악하려고 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달라진다고 해서, 또는 그들을 지지하는 집단들의 계급적 성향이 약간 달라진다고 해서―그것도 물론 작은 문제는 아니겠습니다만―상황이 변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람에 따라서는 세상 많이 달라졌다, 많이 좋아졌다 할 수도 있겠고, 실제로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희들《녹색평론》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상황은 절망적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고, 특히 요즘 경제문제의 해법이라고 내놓는 정부의 방침을 보면 더욱 암담한 기분이 듭니다.
박정희라는 개인에 관해서도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물론 있겠지만, 오늘 굳이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제목을 단 것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중요한 현안들을 짚어보는 데 있어서도 박정희 시대는 단지 지나간 시대의 문제가 아니고 현재 상황과 직결되어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선 박정희 내지는 박정희 시대에 대해 각자가 생각하고 계신 것을 대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서, 지금 우리가 부닥치고 있는 현안들에 관련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유산 내지는 현재성을 점검해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만…
신보연 그러면 우선 김 선생님께서는 ‘박정희 시대’를 어떤 시대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종철 저한테 묻지 말고 먼저 말씀을 좀 하시지…(웃음) 많은 사람들이 대개는 분석적인 어법으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박정희 시대는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민족의 숙원인 경제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대한 공로를 세웠다.”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며칠 전〈중앙일보〉에 실린 백낙청 선생의 짧은 시평도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었는데, 그 글의 제목이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로 되어있어요. 얼른 보면 시니컬한 비판조의 제목인데, 그럼에도 굳이 ‘유공자’라는 단어를 붙인 데서도 엿볼 수 있듯이, ‘지속불가능한 발전’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발전’을 이룩해낸 공로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을 담고 있는 글이었어요. 박정희라는 독재자의 철권통치를 통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크게 훼손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룩한 경제발전의 공로와 그로 인해 들어올려진 국가적 위상을 무시하는 것은 공정한 비판이 될 수 없다고 보는 생각이지요. 아마도 이것은 지금 꽤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박정희와 그 시대를 평가하려는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논리를 대표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대개가 그렇지 않습니까. 박정희를 호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심각하게 짓밟았지만 경제발전의 공로는 인정해줘야 되지 않겠나, 이게 일반적으로 하는 얘기들인데요. 이것이 과연 옳은 소린지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눠보시지요.
권혁범 저는 그 이전에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서 이런 점을 따져 보았으면 합니다. 소위 ‘박정희 시대’에 수량적인 의미에서 경제발전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공로냐 했을 때, 왜 시선이 박정희라고 하는 지도자에 쏠리게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경제적인 정책을 구상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주체세력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성격과 목표 등은 따지지 않고, 또한 피땀 흘려서 일한 노동자나 농민 이야기는 항상 빠져버리고 엘리트 집단, 소위 ‘산업화 세력’만이 거론되거든요. 그 산업화 세력이라는 말에는 노동자나 농민의 희생이라고 하는 의미는 전혀 안 들어가 있고, 경제엘리트나 박정희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공화당 세력만이 포함된다는 겁니다. 또하나는 그 경제발전의 부정적 유산, 산업화가 남긴, 아니 지금도 견고하게 유지하는 암흑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겁니다. 저는 일단 그런 문제의식을 좀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규석 나도 권 선생님 얘기에는 어느 정도 동감을 하긴 합니다. 예를 들어서 박정희가 이루었다는 소위 경제발전이 실상은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희생, 피땀을 통해 이루어진 거다, 물론 그런 얘기는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국가경영의 ‘목표’가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더구나 박정희 정권과 같은 독재체제에서는 그런 목표 설정과 추진에서 주도권이 박정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거든요.
박정희는 사실상 나하고 동시대 인물인데요. 박정희 시대를 몸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 시대를 살면서 내 개인적으로는 그 시대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내 관점에서 볼 때 농촌공동체가 가장 심각하게 깨어지는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박정희거든요. ‘새마을운동’ 같은 것도 농촌공동체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결국 전통적인 농촌문화와 공동체를 파괴한 것에 불과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소위 객관적인 어법으로 공과 과를 분석하기 이전에 거부감부터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나로서는 박정희는 철저히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지 조금이라도 계승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그리고 이후에 소위 ‘민주화운동’ 했다는 사람들, 소위 4·19세대부터 386세대까지, 이런 사람들은 우리보다야 훨씬 이론적으로 더 무장되고 공부도 많이 하고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 와서 이런 사람들이 박정희보다 한술 더 뜨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박정희는 그 막강한 국가권력을 통해 공동체를 파괴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인류의 역사란 결국은 기층공동체 파괴의 역사입니다. 민중의 자치적이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계속 파괴해온 역사더라고요. 그런데 박정희 시대에는 국가권력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민중의 삶을 수탈했는데, 지금 와서는 여기에 시장권력까지 합세를 해서 협공으로 민중의 공동체를 거덜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의 권력자들과 지배엘리트들―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소위 과거의 ‘민주화운동’ 세력이고 ‘진보주의자’들인데요―이 주도하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은 과거 자신들이 반대했던 박정희 정권의 패러다임을 버린 게 아니라 그것을 더욱 강화하고, 국가권력에다가 시장권력까지 가세를 시켜서 민중의 삶과 공동체를 더욱 참혹하고 가속적으로 파괴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박정희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을 계승하고 강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강수돌 박정희 시대를 흔히 “정치적으로 독재이긴 하나 경제적으로 놀라운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라는 식으로 평가하는데요. 저는 정치와 경제가 그렇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경제라는 말의 어원인 ‘경세제민’이라는 말이 원래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들을 (잘 먹고살게) 구한다”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정치가 경제요, 경제가 정치이기 때문이지요. 백성들이 잘 먹고살게 되는 상태 또는 그렇게 가는 과정, 그것이 곧 민주주의요, 바른 경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시대는 독재의 방식으로 가진 자 혹은 기득권층(특히 재벌)을 더 잘살게 했다는 점에서, 우리사회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보연 박정희 정권이, 그나마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던 장면 정부를 쿠데타로 엎고 집권을 하다 보니까 그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필요했을 겁니다. 거기서 민주주의와 바꿀 수 있을 만한 게 결국은 경제개발, 돈벌이, 잘사는 것, 이런 이데올로기였는데요. 가령 대표적으로 새마을운동이 한마디로 ‘잘살기 운동’이었거든요.
그렇다고 할 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선, 그 잘살기 위한 방식이 민주주의와 바꿀 만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 그리고 계속된 경제개발 과정이 정말 잘사는 과정이었는가 하는 것이지요.
제가 자란 시절이 바로 박정희 시대였는데요. 그때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초등학교 4, 5, 6학년 때까지는 누구나 그랬지만 밥을 제대로 못 먹었어요. 자주 굶고 깡보리밥도 먹고 그랬지요. 그러다 중학교 고등학교쯤 되면서 밥을 제대로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저는 초등학교 때 서울 상도동에 살았는데요, 봉천동까지만 가면 어느 개울에서든 마음놓고 헤엄을 치고 놀 수가 있었어요. 한강에서도 수영을 할 수가 있었지요. 그런데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었을 때 한강에 나가보면 똥덩어리들이 떠내려오고 강물에 발을 담글 수가 없을 정도로 오염이 되어버렸어요.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웬만한 시골의 개울도 다 마찬가지가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과연 이것이 잘살게 된 것인가.
저는 어릴 때 자주 굶긴 했어도 그렇다고 굶어서 죽지는 않았잖아요. 하지만 밥을 제대로 먹게 된 대가로 아이들이 마음놓고 물장구 칠 맑은 개울이 이 땅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면 이것이 과연 잘살게 된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인구의 거의 90퍼센트가 도시지역에 몰려 살면서, 이렇게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자연과 벗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것이 과연 잘사는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김종철 재미있는 것은, 이승만 정권 말기에 원조 관계로 미국 사람들에게 계획서를 써내면 좀더 유리한 조건으로 한국정부가 원조를 받게 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있었다고 해요. 그때 경제관료들이 계획서를 쓰자고 했는데, 대통령이 반대를 했다고 그래요. 반대논리가 뭐냐 하면, 계획경제라는 것은 공산주의에서나 하는 거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계획경제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 논리였다고 해요.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이런 면에서는 일관성이 있었다고 할까요. 그러나, 아무튼 그때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계획경제의 시나리오는 있었던 거예요. 장면 정부 때도 마찬가지고.
잘 알려져 있는 얘기지만, 박정희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던 근대화의 모델이라는 게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의 천황제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위로부터의 파쇼적 근대화였습니다. 그것이 골수에 박혀 있었던 거지요. 실제로 군사쿠데타 직후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된 박정희가 맨 처음 한 게 뭐냐 하면 야스오카(安岡正篤)라는 일본인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일이었어요. 야스오카라는 인물은 일본에서 전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전후에는 일본 자민당 정권의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일본 정계나 재계의 실력자들의 스승 노릇을 한 사람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 사람의 핵심적인 사상이라는 게 천황주의, 일본 중심의 아시아주의라는 겁니다. 그런 인물을 박정희가 제일 존경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박정희가 일본에 갔을 때 가장 처음 만난 사람도 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서, 앞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수출주도형으로 가야 한다는 충고도 나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원자재 가공해서 수출 위주로 가고, 재벌을 육성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성장정책을 전개하라는 아이디어, 또 종합상사라는 개념도 그 사람에게서 나왔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정희라는 사람이 일본의 천황제 국가주의에서 효율적인 부국강병의 원리만을 보았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로 인해 우선 조선이 식민지가 되고,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가 유린되고, 또 일본 자신이 태평양전쟁이라는 무모한 전쟁모험 끝에 결국 초토화되어 버린 역사적 사실에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어요. 파국이 와도 좋고, 멸망해도 좋으니까, 생존의 기반에 대한 장기적인 고려는 전혀 없이 무작정 개발하고, 성장에 매진해서 농업사회를 버리고 공업사회로 가야 한다는, 지난 수십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기본 논리도 바로 박정희의 이런 사고방식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되겠지요.
강수돌 김 선생님 말씀대로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 주도적인 경제성장, 경제발전 개념이 관철되어온 과정이 한반도에도 무비판적으로 적용된 것이 아니었나 싶고요. 특히 조선말 같은 경우는 개화파가 그런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식민지 과정을 거치면서 일제의 개발 내지는 성장 패러다임으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한편 그것을 닮아가는 형태로 재생산이 되어왔고, 박정희는 그걸 현실로 구체화한 주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박정희에게서 처음 싹이 트고 만들어졌다기보다, 그것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물론 있었겠지만, 한국사회의 근본을 보면 이미 그 싹들은 이전부터 죽 이어져 왔고 특히 식민지 피해를 받는 과정에서 목화나 쌀이나 콩을 공출로 뺏기고 서러움을 당하는 과정 속에서, “나도 저런 식의 발전을 통해서 일본처럼 강자가 되어야 하겠다”고 하는 그런 생각이 대중적으로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집단적 사고가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가능하게 했던 토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바로 그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경제학 교과서에서 배운, 1차보다 2차, 2차보다 3차 산업으로 이동하는 게 그게 발전이다, 라고 하는 엉터리 이론을 수용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진정한 반성도 없이, 아까 천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 와서는 국가권력에다 시장권력까지 가세해서 이런 과정을 더욱 가속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발의 논리, 멸망의 이데올로기
권혁범 강 선생님 말씀하신 것에서 좀더 세계사적인 방향으로 시야를 넓혀서 생각을 하자면, 그 방식이 후발 혹은 후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보편적인 근대화 방식이라고 하는 거죠. 그런 과정에서 보면 여러가지 차원의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를 우리가 깊이 파고 들어가면 결국 자본주의적인 방식, 서구적인 방식, 근대화 문제의 범위를 어떻게 바라볼 거냐 하는 것을 다루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인데요. 물론 그걸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 전에, 박정희 시대 때는 실제적인 정책의 차원에서 어떤 옵션 같은 게 있었겠느냐, 이런 것도 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것을 좀 분리해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또하나는 박정희 시대 경제발전을 얘기할 때, 자꾸 국내적인 상황에서만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 많이 알려진 상황이지만, 세계자본주의가 주변부와 중심부로 이원화 되어있는 상황에서 준주변부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상황이 50년대 말 오게 되잖아요. 그래서 준주변부의 역할을 떠맡게 될 그러한 국가단위가 필요했던 건데 거기에 응하는 조건이나 주체 등이 한국에 형성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만약에 이게 순수한 내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한국의 경제성장이나 발전이 굉장히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싱가포르, 대만, 브라질 같은 데서 진행된 것과 약간의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특히 아시아권에서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이었거든요.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해서 수출주도형의 경제정책을 세워가지고 압축적인 산업화를 했던 것은 공통점이니까 그것을 단순히 박정희 개인이라든가 혹은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이라든가 하는 차원에서, 좀더 세계자본주의로 시야를 넓혀서 봐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보연 저는 박정희 얘기를 하면서 ‘근대화’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는데요. ‘근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산업혁명이야말로, 말하자면 재생불가능한 방식으로 들어가는 초입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에서 박정희 시대야말로 그러한 근대, 즉 재생불가능한 방식을 아주 고스란히 구현해낸 시절이었던 셈입니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는 그러한 근대를 국내의 다른 정치가 혹은 정치세력에 비해, 뿐만 아니라 외국의 다른 어떤 지도자들에 비해서도 훨씬 효율적으로 실현한 ‘공헌’이 있다고 봅니다만, 제 입장에서 보면 재생불가능한 생활방식을 효율적으로 실현했다는 것, 그것을 위해 효율적으로 자연을 파괴했다고 볼 수 있거든요. 이런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면 박정희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불가능하다, 나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개발주의, 경제지상주의를 도저히 극복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종철 그러니까, ‘발전’의 시작이 곧 ‘멸망’의 시작이었다는 말이군요.
강수돌 우리가 또하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러면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그런 ‘멸망의 이데올로기’가 가능했을까 하는 것인데요. 그것이 가능한 조건이 있었다고 저는 봅니다. 해방 이후 정국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서는 안되겠다 하는 세력은 이미 대부분 북으로 넘어갔지요. 그리고 남은 사람들 중에 말 안 듣는 사람들은 6·25전쟁을 통해서 완전히 군사적으로 작살을 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민중을 국가 동원체제에 고분고분 따르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교육 시스템을 통해 군대식 교육을 효율적으로 시켜온 거죠. 이렇게 해서 성장지상주의, 효율지상주의가 집단적 사고의 틀을 형성하게 되었고 ‘하면 된다’ 또는 ‘안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엉터리 자신감이 주입되었고 또 ‘세계 제일 국가’를 만든다는 자기 최면에 걸리게 된 것이지요. 이건 동시에, 다른 근본적 대안에 대한 생각과 토론을 사전에 배제하는 효과를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바로 이런 조건들이 박정희 개발독재 내지는 ‘멸망’의 시작을 가능하게 했다고 봅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나라의 부르심에 복종하는 것이 우리 앞길을 위한 것이다”라고 하는 집단적 행위방식을 갖게 된 게 아닌가 합니다. 정부나 국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감시하고, 레드 컴플렉스라든지 좌경용공 담론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면서 배제해 나가고…그런 식으로 일체의 ‘다른 길’의 가능성의 싹을 거세해왔던 것인데요. 지금까지 국가권력이 그렇게 해오던 배제의 역할을 지금은 세계화된 시장의 힘을 빌려 조금더 간접적인 방식으로, 또 절차적 민주주의를 도입함으로써 좀더 세련된 형식으로, 대안적인 길의 선택을 배제해 나가는 것이 바로 지금 현 단계가 아닌가 싶거든요.
권혁범 아까 제가 ‘옵션’이란 얘길 했는데요. 김 선생님께서도 진정한 경제발전에 관해 질문을 던지셨는데, 그것은 사실 모든 국가의 산업화에 다 적용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미국, 영국 할것없이 우리가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인데요. 강 선생님 말씀대로, 박정희 시대가 세계자본주의에 편입되는 기점이 됐다는 점에서 우리가 얘기를 할 수 있는데, 그렇지만 이것은 이리로 갈 수 있었는데 저리로 갔었다, 라고 얘기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분배’와 관련해서는 그런 선택의 옵션이 있었다고 얘기할 수가 있겠죠. 좀더 분배지향적, 평등지향적인 자본주의 형태, 즉 ‘복지국가’라든지 하는 그런 형태나 혹은 중소기업 중심의 발전모델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느냐 하는 그런 차원에서는 우리가 이야기할 수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생태론에서 얘기하는 그런 옵션의 차원에서는 사실 그 당시에 대해서는 묻기가 어렵다는 뜻이죠.
그렇다고 우리가 60년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오늘날의 관점에서 우리가 그 옵션에 대해서 묻지 말아야 된다는 얘기는 아니고, 오히려 지금 우리가 박정희 시대를 완전히 재평가해야 되는 그런 시점에 와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아까 박정희 시대와 지금의 차이를 비교하는 차원에서 생각해본다면, 저는 과거 박정희 시대를 개발독재라고 한다면 지금은 ‘개발민주주의’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를 명분으로 개발을 무제한적으로 밀고 나가는 체제가 한국의 21세기에 완전히 정착되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굉장히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그 당시 대학을 다닌 저로서는 사실 70년대 중반에는 지금과 같은 정치적인 상황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거든요. 이것은 분명히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지요.
천규석 나는 생각이 좀 다른데요. 과거 박정희나 그 이전의 일제 잔재 세력이 지금의 새로운 기득권 세력으로 정치권력이 교체됐다는 면에서 굳이 말하자면 민주적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철저히 민중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근본적으로 똑같다고 봅니다.
권혁범 선생이, 박정희 시대를 ‘개발독재 시대’라고 한다면 지금은 ‘개발민주주의 시대’로 구별할 수 있다고 했는데 물론 정권의 교체가 과거 군사정권처럼 쿠데타나 공포적 수단으로 이뤄지지 않고, 선거라는 절차에 따라 외견상 평화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런 구분을 해볼 수도 있겠지요. 정치적이고 절차적인 면만 따지면 어느 정도 민주화된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개발 자체가 지속가능하지도 평화적이지도 않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폭력이 아닙니까. 또 그것이 민중의 자발적 요구와 주도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소수 지배자들에 의해 세뇌되고 강제된 것이라면 ‘개발’에다 ‘민주주의’를 갖다붙이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극단적으로 말해 기만적이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우스개로 말하면 박정희는 차라리, 박정희를 비판하면서 그의 개발논리만을 확대 재생산하는 지금의 ‘개발민주주의자’들보다는 오히려 노골적이라서 솔직했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권혁범 솔직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민족적 민주주의’니 하면서 수사(修辭)를 많이 사용했으니까. (웃음)
선거, 민주주의, 권력
김종철 박정희 때도 그랬고 아마 지금도 상당히 많은 지식인들이 공개적으로 얘기는 안하지만 “먹고살 만해야 민주주의가 된다”, 그런 고정관념을 갖고 있잖아요.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평화니, 그런 가치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먹고살 형편이 되어야 한다, 경제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지금도 경제위기 상황이 심화된다면서 다른 것들은 좀 유보해도 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돌려서, 지난번 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많이 했던 얘기가 있잖아요. 예전에 진보당 이후 근 반세기 만에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진보정당이 공식적으로 의회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그런데 진보당의 조봉암 선생이 정치적으로 이승만 정권을 위협하던 게 언제 일입니까. 아주 부패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자유당 때, 한국사회가 경제적으로 극심한 곤란을 겪을 때였잖아요. 그런데도 그때 자유당 정권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진보당이 민중사회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때 경제 수준으로 본다면, 민주주의고 뭐고 아무것도 안돼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이미 그 가난한 시대에, 그 이후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쳐 반세기나 지나서야 겨우 실현될까 말까 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혹은 그 이상의 수준의 민주주의적 현실이 있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적어도 진보정당의 위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말이에요.
또 한편, 물론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재벌 중심의 산업화 노선은 가령 대만의 산업화 노선과 비교해도 상당히 다르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 산업화라는 것이 그 자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이냐, 다시 말해서 ‘민주적인 산업화’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산업화 자체가 원천적인 폭력이란 말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산업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한 민주주의는 결국 공허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하지만 상당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더욱더 민주주의의 문제를 좀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가령 의회나 삼권분립이라는 제도를 유지하고, 보통선거에 의해서 정기적으로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허용되었다고 해서 그게 민주주의냐. 물론 박정희 시대에는 이것마저 없었으니까 대단한 진전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의 상황이 과연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있는 상황인지는 좀더 깊이 따져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 왜 실질적인 민주주의로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통속적인 신념과는 반대로 소위 근대화, 산업화가 심화되면 될수록 민주주의는 점점더 실현 불가능한 현실이 되기 쉬운 게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천규석 흔히들 지금은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나는 그걸 인정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그렇다고 아주 옛날로 올라가면 곤란하겠지만, 일제 때나 한말이나 아니면 박정희 시대 이전의 마을공동체를 보자고요. 물론 외부의 큰 권력이 빼앗아가고 수탈하고 그 권력의 지배를 받았지요. 국가가 있는 이상 마찬가지이긴 한데요. 그런데 농촌공동체 시절의 마을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사는 꼴은 다 비슷했어요. 물론 한 마을에 논 서른마지기 가진 사람도 있고 두마지기 가진 사람도 있고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고, 가진 것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러나 지금처럼 사는 꼴이 크게 차이가 안 나고 다들 비슷하게 살았는데요. 어느 정도의 경제적 평등이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라면, 가난했다고 하는 그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의 민주성도 그래요. 가령 마을에서 대소사를 의논하는 마을회의(동회)를 하면요, 하루면 끝날 수도 있지만 현안이 해결 안되면 1주일도 끌고가고 한달도 끌고간다고요. 전원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매일 그렇게 모이는 거예요. 그런 민주주의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하나도 안 남아 있잖아요. 민주주의라는 것이 밑바닥, 풀뿌리에서 올라오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나는 갈수록 이 사회가 민주주의와는 멀어진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그러니까 두가지 면에서 박정희는 비판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그가 경제개발, 경제발전, 산업화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발전이 아니라 한마디로 파괴였다는 것입니다. 경제의 대규모 물량화에는 물론 성공했지만, 그것은 지속이 불가능한, 파괴를 통한 일시적인 물량화일 뿐이었고 지속가능한 생존의 터전을 완전히 깨부순 파괴였다는 거지요. 다시 말해 그것을 통해 ‘미래’가 없어진 거잖아요. 물질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다른 한편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자치민주주의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를 박정희가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는 겁니다.
김종철 흔히 박정희 정권이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마이너스 업적을 세웠고, 산업화나 경제개발에서는 플러스 업적을 세웠다 하는데, 그렇게 이 둘을 떼어놓고 볼 게 아니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봐야지요. 천 선생님 말씀대로 산업화 그 자체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반을 파괴해왔다는 것이지요. 흔히 우리가 박정희 시대를 개발독재 시대라고 부르지만, 원리상 독재에 의하지 않은 개발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보십시오. 새만금이든, 천성산이든, 부안 핵폐기장 문제든, 이 모든 환경문제의 근저에는 예외없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할 만큼 정책결정 과정에서 강압적이거나 불투명한 절차가 개재하고 있거든요.
물론 박정희식의 개발은 유례가 없을 만큼 심각한 인권탄압과 민주주의 훼손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더 부드러운 방식의 개발을 상정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개발,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그 자체, 민중의 삶과 생명과 자연에 대한 엄청난 폭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해볼 때, 저는 박정희 시대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민주주의의 파괴와 산업화의 공로라는 것을 분리해서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요즘 흔히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운운하면서 이 둘의 결합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 그건 넌센스예요. 이것은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가 계속해서 경제성장, 개발을 추구하는 한, 그게 국가권력의 지도에 의한 것이든 시장원리를 중심으로 한 것이든 그런 개발, 성장은 기본적으로 폭력과 파괴의 과정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거기에 민주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제가 지금도 박정희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고 한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지금 천 선생님이나 제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이른바 대의제 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요즘 흔히 말하는 것은 대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의미하고 있지만, 그게 진정한 민주주의라고는 할 수 없지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영남대학교에서 20년 넘게 있었는데요. 원래 대구에 있던 두개의 사학을 5?16재단이 통합해서 만든 학교가 영남대입니다. 그래서 박정희가 교주였죠. 1980년 이후 마치 사유재산을 상속하듯이 그 딸이 재단이사장으로 취임하여 학교주인 행세를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교수들과 학생들의 노력으로, 몇해 뒤 그 재단을 물러나게 하고, 그후 영남대는 사실상 교수들이 직접 학교를 운영하는 ‘자치대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최초로 총장을 직선제에 의해 선출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박정희 시대에는, 그리고 군사정권이 끝나기까지에는, 우리가 직선제만 쟁취하면 민주주의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영남대에서 총장 직선제를 도입한 뒤로, 지금 네번째 총장입니다만, 갈수록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총장이 되고 있어요. 학내 민주주의도 말뿐이지, 권력의 집중현상은 예전에 비해서 나아진 게 거의 없어요. 사실, 영남대만 이런 게 아니라, 이것은 지금 직선제로 총장을 뽑는 한국의 대학의 일반적인 현실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되는가, 제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우선 선거를 하게 되니까 학교 내에 패거리 정치라는 게 형성되고, 선거가 있기 훨씬 전부터의 온갖 음성적 선거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야합, 향응, 뒷거래 따위 치사한 짓들이 저질러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정말 존경을 받을 만한, 사심이 없는 사람이 총장이 된다는 건 처음부터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 되어버렸어요. 이런 시스템 속에서 대학이 협잡꾼들의 소굴이 안되는 게 이상하겠지요.
그래서, 문제는 결국 개개인의 사람됨을 떠나서 시스템 자체에 있는 게 아니냐, 다시 말해서 선거제라는 게 본질적으로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어울릴 수 없는 게 아니냐, 그런 생각을 안할 수 없어요. 우리는 대부분 선거를 하면, 그게 곧 민주주의라고 믿어버리는 습성이 있잖아요. 그러나, 실제로 가만히 따지고 보면, 선거라는 것은 민주주의를 빙자한 속임수가 아닌가, 선거제도를 가지고는 민주주의가 되는 건 백년하청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강수돌 마치 제도화된 종교들이 더이상 종교의 근본을 지니지 못하는 것처럼, 제도화된 민주주의가 더이상 민주주의의 근본을 별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지요.
천규석 선거라는 것은 엘리트들이나 지배자들이 민중을 편갈라놓고 싸움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자기들은 그 배후에서 권력 획득을 노리는 정치놀음이라고요. 근본적으로 패거리 정치인 것이고, 돈과 명망이 있는 사람들만 당선될 수 있는 ‘정치 쇼’이지요.
김종철 지금 정부가 김영삼 정권 이후에 벌써 세번째 소위 민주정부잖아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태산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하여간 이 선거제도가 곧 민주주의는 아닌 것 같아요. 가령 희랍의 아테네 민주주의는 노예제를 근간으로 한 문제가 많은 민주주의였지만, 어쨌든 로마의 독재정치나 그후의 어떠한 공화국 정체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비교해 보더라도, 적어도 서양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민주주의였다고 평가를 받는데, 그게 반드시 광장에 시민들이 모두 나와서 결정을 하는 그런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하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아테네 민주주의의 본질적 특성은 대표자나 행정관을 선출하는 데 있어서 선거제가 아니라 추첨제, 즉 제비뽑기를 했다는 데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귀족정(貴族政)에서는 선거를 하고, 민주정(民主政)에서는 제비뽑기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민주정치를 했던 희랍의 도시국가에서는 제비뽑기로 선출을 한 것과 대조적으로 독재정치를 하였던 로마에서는 철저히 선거를 했다는데, 이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권혁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근본적으로 민주주의가 과연 뭐냐 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형식적인 민주주의, 절차적인 민주주의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과거 독재체제하고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렇게 얘기하기는 물론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장 저만 하더라도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요. (웃음)
그런데 다만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그런 절차적인 민주주의, 그에 대한 이해도 우리는 조금 잘못되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존 스튜어트 밀의 책만 보더라도,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의 고전인데, 거기에도 ‘다수결주의’ 같은 말은 안 나오거든요. 그의 사상은 어디까지나 소수자,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이거든요. 그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조차도 잘못되어 있다고 봐요.
어쨌든 그런 걸 우리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라 할 때, 그런 입장이 갖고 있는 의미는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늘날《녹색평론》이 지향하는 입장에서 제기할 수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나 문제점 같은 것을 함께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이 산업화 자체가 굉장히 폭력적인 과정인 동시에 위계서열화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예를 들면, 생명간의 위계질서, 그리고 인간 안에서의 위계질서를 인위적으로, 폭력적으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유지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래디컬 민주주의를 얘기한다고 하면 ‘민주적인 산업화’, 이런 것은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측면에서는 우리가 미국이나 영국 같은 소위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산업화 과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야 될 것은 “민주적인 산업화는 불가능하다”라는 것은 우파들도 주장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각도, 다른 맥락에서 말이지요.
신보연 선거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사고의 중심, 삶의 중심, 다시 말해 우리 생활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국가’로 되어있으니까 국가의 지도자를 뽑는 게 중요해지잖아요. 그래서 대통령을 뽑아야 되고, 그런데 그러려면 유권자 약 이천 몇백만이 투표를 해야지, 다 모여서 토론할 수는 없잖아요. 어쩔 수 없이 투표를 한단 말이에요.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투표를 하지 않고 일일이 토론으로 하려고 하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단위가 국가가 아닌 마을공동체, 지역으로 작아지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국가의 대표,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지금처럼 선거로 뽑더라도 그것은 사실상 큰 의미를 가지지 않고, 대신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히려 마을과 지역, 이렇게 작은 단위여서 그 대표를 뽑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직접 모여 토론을 하고 제비뽑기를 하는 그런 규모로 가야 한다는 거지요. 우리 동네 이장 뽑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며칠이고 모여서 누구를 이장으로 뽑을지 토론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강수돌 근본문제는 결국 권력이 풀뿌리에게 있지 않고 중앙집권화 되어있다는 점, 풀뿌리 민중 또는 시민이 권력을 직접 행사하기보다는 대의제를 통해, 대리로 행사하기로 된 그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선거제에 관해 조금만 덧붙이자면, 이것은 ‘결과를 중시하는 패러다임’과 ‘과정을 중시하는 패러다임’의 차이라고 보거든요. 비단 투표행위인 선거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즉 어떤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과정, 토론하는 과정, 각자 고민하고 서로 부대끼면서 좀더 나은 대안을 찾아보려고 하는 이런 ‘과정을 중시하는 패러다임’과, 효율성과 시간적인 제약, 경제적인 제약을 고려해서 뭐든 빨리 결정하고 어떻게든 성과를 내자, 라고 하는 ‘결과 중심의 패러다임’의 차이가 있다고 보고요. 선거제는 분명히 후자의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후자, 즉 ‘결과를 중시하는 패러다임’은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내면화해온 효율지상주의 근대화 패러다임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직접 권력을 행사해야 될 주체들이 자기들을 통치할 엘리트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걸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왔다는 것입니다. 권력의 주체인 시민들이 스스로 탈권력화해 왔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제 그 권력을 되찾는 운동을 하는 것, 스스로 토론과 결정의 주체로 나서는 것, 이것이 앞으로 진짜 민주주의의 내용을 이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혁범 절차적인 민주주의와 실질 민주주의, 이런 개념을 쓰기도 하는데요. 절차적인 민주주의, 가령 선거를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 등의 한계가 뚜렷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그것조차도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통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가지 형태의 민주화가 있는데, 예를 들면 그것이 가장 잘 돼 있어야 할 각급 학교나 대학 캠퍼스라고 하는 공간이 사실 ‘동토의 왕국’이잖아요. 사실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독재가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공간이 바로 학교인데요. 그런 차원에서 보더라도 절차적이고 합리적인 민주주의는 그것 나름대로 더욱 꾸준히 발전하고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거제가 가진 문제점을 많이 지적하셨는데, 사실상 이런 이야기는 결국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든요. 따라서 제가 보기에는 선거를 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 이런 문제라기보다는, 선거제라 할지라도 그것이 권력을 분산하는 방식으로 가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런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선거제라든지 대의민주주의라든지 하는 것이 인구가 많은 사회규모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거든요. 문제는 그런 형식을 매개로 하면서 우리가 권력의 분산, 즉 권력을 풀뿌리 민중이 되찾아오는 쪽으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고, 그런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심화과정인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껍데기뿐인 민주주의이겠지요.
김종철 박정희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박정희 시대의 큰 과오, 혹은 부정적인 유산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우리가 혹심한 탄압과 독재에 오래 시달려오는 바람에, 민주주의를 너무 형식적인 민주주의로만 생각하게 되는 그런 습관을 아주 깊게 갖게 되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실질적인 민주주의, 정말 민중의 삶의 내용을 기준으로 삼아서 민주주의를 생각해야 될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제도적으로나 절차적으로 서구에서 빌려온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아울러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민중의 구체적인 삶의 질보다는 GNP가 얼마니까 선진국에 접근했다 혹은 아직 멀었다, 이런 식으로 마치 국제사회에서 근대적 산업국가로서의 자격증을 얻는 것이 우리의 생존의 목적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세뇌가 되어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식으로, 안이하게 민주주의와 경제를 생각하는 사고습관이 우리사회, 특히 지식인 사회에 널리 퍼져있지 않은가 싶고, 그 결과 우리가 지금보다 정말 차원이 다른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심히 고갈돼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것이 결국은 야만적인 군사독재의 후유증 못지않게 고도 경제성장이라는 ‘공로’를 통해서 박정희 시대가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치명적인 유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략)